소설리스트

015 (15/132)

#015

“도와주세요!”

“무슨 일이십니까?”

“괴한이 제 아이를 납치해 갔어요.”

“네? 허어. 거리에서 그런 일은 드문데. 어떻게 생겼는지 보셨습니까?”

“못 봤어요. 하지만 로브를 뒤집어쓰고 마법을 썼어요!”

“마법!”

그제야 경비대원의 태도가 더 진지해졌다. 그는 아델에게 좀 더 자세히 묻더니 곧바로 위에 보고했다.

“일단 어디 사는지 알려 주시면 가족에게 연락을 넣어 드리겠습니다.”

아델은 더듬더듬 루카스의 저택 위치를 알려 주었다.

“아, 그 저택.”

“그 저택?”

“외국에서 온 고위 귀족이 살고 있는 곳이지.”

그들은 좀 더 바쁘게 움직이기로 하였다. 괜히 다른 나라의 귀족과 문제가 생기는 건 사양이었다. 그 전에 사건을 해결하고 싶었기에 분주하게 움직였다.

아델 또한 그들과 같이 움직이기로 하였다.

‘울지 마, 울면 시야가 흐려져.’

적어도 아이들을 찾기 전까지는 울 수가 없었다.

아델은 이를 악물고 걸음을 내디뎠다. 그리고 경비대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론슈카를 구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건 전부 해야 했다. 그 작은 아이에게 다시 고통을 줄 수는 없었다. 순해 보이던 초록빛 눈동자가 사납게 빛났다.

‘어떻게든.’

아이들을 구해 낼 것이다. 안 되면 자신의 몸을 던져서라도.

* * *

내부가 훤히 드러난 카페테리아. 그 안에서 차를 마시던 남자가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도시가 소란스럽군. 거기, 멈춰 서 보아라.”

그러고는 지나가던 경비대원을 불러 세웠다. 경비대원은 얼결에 멈춰 섰다가 화들짝 놀랐다. 그를 불러 세운 남자의 미모가 무척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투명하리만치 깊은 붉은 눈에 오뚝 선 코, 다물린 입매가 매혹적이었다. 살짝 곱슬거리는 붉은 머리는 하나로 묶어 늘어트렸는데, 그것마저도 아름다워 보이는 자였다.

“무슨 일이지?”

“아, 아이가 납치되었습니다.”

“납치범은?”

“마법사인 것 같다고 합니다.”

“좀 더 자세히 말해 봐.”

당장이라도 아이를 찾으러 가야 했지만, 남자에게서는 거부할 수 없는 위압감이 느껴졌다.

결국 경비대원은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아델에게 들은 이야기를 똑같이 들려주었다.

“일반 마법사는 아니겠군. 철저히 관리되는 마법사들이 무엇 하러 멀쩡한 아이를 납치하겠는가.”

원하면 나라에서 죄인을 얼마든지 공급해 줄 텐데 말이다. 그렇다면 남은 건 하나, 흑마법사뿐이었다.

“흐, 흑마법사요?”

남자는 혀를 차고는 경비대원을 놔주었다.

“이만 가 봐라.”

“네? 네넵!”

남자는 얼마 마시지도 않은 찻잔을 보다가 혀를 찼다.

“로잘린, 일어나라.”

“네, 아버지.”

남자의 말에 맞은편에 있던 작은 여자아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분홍색 머리에 붉은 눈동자를 지닌 아이는 고작해야 일고여덟 살로 보였는데 표정이 지나치게 딱딱했다. 마치 인형 같은 외양이었다.

“자, 실습이다. 정령을 불러서 흑마법사의 흔적을 찾아봐라.”

“네, 아버지.”

로잘린은 곧바로 정령을 불러냈다. 작은 물고기처럼 보이는 그것은 물의 하급 정령이었다.

“운디네, 이 도시에 있는 흑마법사를 찾아 줘.”

정령의 등급 중 제일 아래라 가진바 능력이 뛰어나진 않았지만, 매일매일 교류를 한 탓에 이해력이 뛰어났다. 물의 정령은 금방 허공을 헤엄치며 사라져 갔다.

그다음부터는 정신력 싸움이다. 정령이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힘을 쓰면 쓸수록 정령사는 힘들어진다.

처음에는 똑바로 서 있던 로잘린의 다리가 나중에는 벌벌 떨리기 시작했다.

힘들고 괴로웠다. 그러나 로잘린은 포기하지 않았다.

모처럼 아버지와 여기까지 왔다.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죽을 만큼 힘을 냈고, 마침내 찾아냈다!

“차, 찾았어요.”

주륵. 코에서 코피가 흘러내렸다. 너무 무리를 한 탓이었다.

그러나 로잘린은 소매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코피를 닦았다.

“무능력한 것.”

차가운 목소리가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로잘린은 고개를 푹 숙였다.

아버지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는데, 자신은 여전히 모자랐다. 그 사실이 무척 괴로웠다.

“그럼 움직여 볼까.”

로잘린의 정령에게 붙여 둔 자신의 정령에게 위치를 들은 남자는 카페를 나와 천천히 움직였다. 이미 정령을 붙여 두었기 때문에 이렇게 움직여도 괜찮았다.

* * *

론슈카는 천천히 눈을 깜박였다. 어쩐지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리고 몸이 흔들리고 있었다.

흐린 기억을 더듬자 쓰러지기 직전의 일이 기억났다. 이상한 사람에게 잡혔던 것과 엄마가 그를 부르던 일이 떠올랐다.

시선을 옆에 돌리자 마찬가지로 결박되어 쓰러진 레온이 보였다.

“흐흐, 실험체, 이런 훌륭한 실험체를 둘이나!”

흑마법사는 기뻐 날뛰고 있었다. 우연히 내려간 도시에서 이런 실험체를 발견하다니 운이 좋았다.

도시에서 소란을 피운 탓에 추격자가 붙었지만, 이성이 흐려진 머리는 상황파악을 하지 못했다. 그저 기뻐하기만 할 뿐이었다.

“정령사에 기사!”

마나를 품고 있는 존재들을 가지고 할 수 있는 건 많았다.

특히 정령사! 마법사보다 보기 드문 그들은 독특한 마나를 지니고 있어 무척 가지고 싶어 하던 실험체였다.

“정령사로 뭘 할까.”

흑마법사의 머릿속에 여러 실험이 떠올랐다. 하나같이 실험체의 고통은 배려하지 않은 끔찍한 것이었다.

“이, 일단 은신처로 가야지.”

흐릿한 머리로도 여기 계속 있는 게 좋지 않단 건 알았다. 그래서 서둘러 아이들을 챙기는데 갑자기 허공에서 무언가가 느껴졌다.

“응?”

허겁지겁 아이들을 들어 올리던 흑마법사는 갑자기 뚜둑 목을 꺾었다. 평소에는 늘 흐렸던 머리가 맑아지고 이성이 돌아왔다.

“정령.”

추적자가 붙었다. 게다가 그 존재는 정령을 다룰 수 있었다. 혹시나 바닥에 있는 아이가 불러낸 것인가 했지만, 아무래도 그건 아닌 듯했다.

“정령사가 붙었군.”

뒷배가 제법 대단한 아이였던가. 흑마법사는 머리를 털며 신경질을 냈다.

하필이면 이런 아이를 도시에서 납치했다니. 그냥 알아만 두고 나중을 노렸어야지.

후회해도 이미 때는 늦었다.

“아이는 포기해야 해.”

그게 이성적인 판단이었다. 그러나 내면의 또 다른 그가 외치고 있었다. 실험체를 포기하고 싶지 않다고!

그래, 이런 작은 도시에 능력 있는 정령사가 나타날 리 있나. 그들은 언제나 수도, 아니면 전쟁터에 머무르고 있었다.

“죽이자. 정령사를 죽이자.”

흑마법사의 눈알이 까맣게 물들더니 기이한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도 실력이 제법 뛰어난 흑마법사인지라, 어지간한 정령사는 상대할 자신이 있었다.

“일단 실험체부터.”

흑마법사는 히죽거리며 다시 아이들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 순간, 뜨거운 불꽃이 그의 얼굴로 돌진했다.

“악!”

그와 동시에 아이들이 밧줄을 떨치고 일어나 뛰어 도망치기 시작했다.

흑마법사가 기이한 행동을 보이는 동안 론슈카가 불꽃을 불러 밧줄을 태웠고, 이어 기습을 한 뒤 도망친 것이었다.

“내, 내 실험체들!”

흑마법사는 불꽃에 데어 빨개진 얼굴로 아이들의 뒤를 쫓았다.

언제나 루카스가 하는 훈련은 힘들기만 하다고 생각했는데, 예전보다 뛰는 게 어렵지 않았다.

론슈카는 신기함을 느끼면서 달렸다. 그리고 달리면서 불꽃에게 속삭였다.

“공격해, 더 공격해!”

귀찮게 앞을 가리는 불꽃에 분노한 흑마법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잡히면 가만두지 않을 테다!”

등줄기로 오싹 소름이 돋았다. 론슈카와 레온은 전력을 다해 뛰었다.

하지만 아무리 훈련을 받은 아이라고 해도 어른과의 차이는 쉽게 좁힐 수 없었다. 둘은 점점 흑마법사가 가까워지는 걸 느꼈다.

* * *

아델은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숲을 헤매었다. 중간까지는 경비대원들과 함께했으나, 어느 순간부터 흩어져 찾게 되었다.

상관없었다. 숲속에서는 그들보다 아델이 더 잘 움직일 것이다. 원래 그곳에서 살아왔으니까.

아델은 분주하게 움직이며 흔적을 찾으려 애썼다.

‘사람이 지나갔어. 오래 지나지 않았으니 흔적이 남아 있을 거야.’

동물이 남긴 흔적은 구분할 수 있었다. 숲속에 먹을 만한 걸 구하러 가려면 기본적인 흔적은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잘못하다가는 곰이나 맹수를 마주쳐 죽을 수도 있으니까.

‘론슈카, 레온!’

크게 소리쳐 부르고 싶은 걸 꾹 참았다.

뺨을 스치고 지나간 나뭇가지의 날카로움도 느껴지지 않았다. 엉망이 되어 가는 손끝도, 발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저 아이들만을 떠올렸다.

그러다 저 멀리서 반짝이는 붉은 불꽃을 발견했다.

“론슈카!”

론슈카의 불꽃이었다. 하나 보이던 불꽃의 수가 점점 늘어나더니 폭주하듯 하늘을 수놓았다.

예전에 집이 불탔을 때보다 더 격렬한 움직임에 아델은 날듯이 그쪽으로 달려갔다. 숨이 턱턱 막혀 왔지만, 멈추지 않았다.

마침내 작은 공터 가까이 도착했을 때, 아델은 론슈카와 레온을 확인할 수 있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