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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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4

“으히히.”

비쩍 마른 중년 남자가 고개를 휘휘 젓다가 발작하듯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동굴 안을 몇 번이나 돌다가 벽에 쿵쿵 머리를 박았다.

아무리 보아도 제정신이 아닌 자의 행동이었다.

한참 이상하게 움직이던 남자는 어느 순간, 제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그러더니 흐리멍덩한 눈빛이 선명해졌다.

“실험체가 필요해. 더, 더 많이. 잔뜩. 아니, 아니야. 제대로 된 실험체 하나만 있어도 좋은데.”

이 근방에는 실험체로 쓸 만한 게 적었다. 이래서 작은 마을이란.

다른 이들에게 잡힐 염려가 없어 안전한 편이긴 했지만, 대신 실험체의 질이 떨어졌다.

“안 돼, 안 돼. 그러면 안 돼.”

그러면 흑마법을 연구하기 더 어려워진다. 하루라도 빨리 마족을 불러서 더 강해져야 하는데, 이래선 안 됐다.

“위치를 옮겨 볼까?”

남자는 중얼거리며 동굴 안을 둘러보았다. 음산한 기운이 감도는 동굴에서는 피비린내가 진하게 풍기고 있었다.

“그래, 위치를 바꿔 보자.”

어차피 이 근방에서 쓸 만한 실험체는 동이 났다.

“그럼 어디로 가 볼까?”

남자는 고심하며 손가락으로 허공을 가리켰다. 그리고 이내 결심한 듯, 한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래, 저쪽이 좋겠어.”

그의 손가락이 과거 아델이 론슈카, 루카스와 함께 마차를 타고 지나간 길을 향했다.

* * *

하나, 둘, 셋, 넷…….

신중하게 은화를 세던 아델은 이윽고 무언가를 결심한 얼굴로 그 모든 걸 주머니에 쓸어 담았다. 곧 그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론슈카의 생일.

하지만 론슈카는 생일에 축하를 받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아델이 그날을 끔찍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엄마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아이에겐 괴로운 날이었을 것이다.

‘그 생각을 바꿔 주고 싶어.’

그 때문에 미리 밑 작업도 해 두었다. 『아기 곰의 즐거운 생일 파티』란 동화책을 닳도록 읽어 주었다. 이제는 그 이야기를 전부 외울 수 있을 정도였다.

론슈카는 생일에 아기 곰이 어째서 기뻐하며 케이크를 먹는지 아직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이었지만, 얌전히 들어 주었다.

‘모두 내 잘못이야.’

가슴이 옥죄어 오듯 아파 왔다.

그래도 이번 생일 파티는 마들렌의 도움을 받아 제법 괜찮게 준비될 예정이었다.

마들렌이 직접 케이크를 구워 준다 했으며, 키슈와 레온이 장식을 돕는다고 했다. 그 외 요리는 아델 본인이 직접 하기로 했다. 아마 전생의 기억에 많이 기대는 요리가 되겠지만 먹을 만은 하리라.

‘그리고 선물.’

제일 중요한 선물을 사야 했다.

론슈카는 지금까지 엄마에게 아무것도 받은 게 없었다. 자기 물건이 없단 소리였다.

당사자는 태연하게 행동하고 있었지만, 아델은 그것도 마음이 아팠다.

“그럼 뭘 사 주지?”

주머니를 손 위에서 굴리자 짤랑짤랑-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계속 가지고 다닐 수 있고, 의미 있는 그런 선물.

한참을 고민하던 아델은 일단 직접 보고 판단하기로 했다.

그렇다. 오늘은 아델이 저택에 온 후로 처음 하는 외출이었다.

“나도 갈래!”

빌린 마차에 막 오르기 전에 론슈카가 허겁지겁 달려왔다.

아차, 몰래 선물을 사 오려고 했는데 마들렌이 잡아 두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냥 잠시 시장에 다녀오는 건데?”

“그, 그래도 갈 거야!”

론슈카는 조금 흥분해 있었다. 말 더듬는 건 많이 나아졌지만, 감정적으로 흥분했을 때는 종종 튀어나오곤 했다.

“나, 나도 간다니까!”

그렇게 말하는 아이의 눈은 불안함으로 젖어 있었다.

제법 오랜 시간 저택에서 같이 있었기에 괜찮은 줄 알았는데, 아직 엄마와 떨어지는 게 불안한 모양이었다.

“엄마 물건 다 두고 가는데? 금방 돌아올 건데?”

“그, 그래도!”

“알았어. 같이 가자. 대신 엄마 곁에서 절대 떨어지면 안 돼?”

“응!”

그러기로 하고 생긋 웃고 있는데, 저 멀리 익숙한 금발머리 남자아이가 보였다. 레온이었다.

다급히 달려온 레온은 아델에게 물었다.

“저도 같이 가도 되나요?”

“안 될 건 없지.”

그래도 혼자가 아니라 다행이었다. 처음 가는 시장에서 아델이 헤맬까 걱정한 루카스는 시종 하나를 붙여 주었다.

진이라는 이름의 시종은 큰 키에 무뚝뚝한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몇 번 보지 못했지만, 제법 믿음직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스승님께 허락은 받고 왔니?”

“그럼요! 조심해서 다녀오래요. 저 시장은 여러 번 가 봤어요.”

레온이 신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렇게 네 명, 아니 마부를 포함하여 다섯은 시장으로 향했다.

꼬불꼬불하고 좁은 길을 지나 한참을 달리니, 저 멀리 도시가 보였다. 성문을 통과하자, 시장을 찾는 건 금방이었다.

생각보다 깔끔하게 정돈된 시장을 본 아델은 저도 모르게 감탄을 흘렸다.

이제 같이 돌아다니면서 구경하다가 적합한 물건을 발견하면 론슈카 몰래 사면 된다. 그에 대해서는 이미 진과도 이야기를 맞춰 두었다.

알록달록한 사탕이 담긴 사탕 가게.

론슈카는 사탕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래서 조금 사 주었더니 볼에 볼록하게 넣고 열심히 먹었다. 그 모습이 다람쥐 같아서 귀여웠다.

다음은 옷가게. 옷은 루카스가 언제나 사 주었기에 굳이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대장간. 무기나 정령사에게 필요한 보조 도구를 사기엔 돈이 턱없이 부족하기에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했다.

그런 식으로 하나씩 돌아다니자니 힘은 들었지만, 기분이 좋아졌다. 특히 론슈카가 웃을 때는 아델의 입가에도 미소가 돌았다.

그러다 문득 한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낡은 간판을 가진 가게는 일종의 문방구인 모양이었다.

찬찬히 진열대를 살펴보는데, 유독 눈에 들어오는 펜대가 하나 있었다. 나무와 금속을 섞어서 만든 단아해 보이는 펜대였다.

‘비쌀까?’

아델은 힐끔 가격표를 살펴보았다.

‘아, 살 수 있는 가격이다.’

펜대라면 공부할 때도 쓰고, 어딜 가든 챙겨 갈 수도 있을 것이다.

아델은 고민하다가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눈치 빠른 진이 아이들의 시선을 잘 끌고 있었다.

“이거 주세요.”

아델은 작고 빠른 목소리로 주인에게 말했다. 그러나 나이 든 주인은 아델의 마음과 달리 조급하지 않았다.

그는 느릿느릿 움직여 다가와 펜대를 들고는 한 바퀴 돌려 보았다. 그다음에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느린 발걸음으로 안으로 들어갔다. 포장해 올 생각인 듯했다.

아델은 그를 차분하게 기다리며 힐끔 뒤를 돌아보았다. 론슈카와 레온은 커다란 과자를 들고 열심히 먹고 있었다.

‘귀엽기도 하지.’

“다 됐소.”

아델이 웃으며 뒤돌아서 주인에게 포장된 펜대를 받아 들었다. 이제 아이들과 합류한 다음에 저택으로 돌아가면 된다.

첫 외출은 무사히 끝날 것 같았다. 다행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발을 내딛는 순간, 아이들의 뒤로 새까만 그림자가 보였다. 무언가 싶어 눈을 찡그리며 자세히 보니 낡은 로브를 뒤집어쓴 사람인 듯했다.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아델이 허겁지겁 달려가는 것과 동시에 진이 큰소리로 외쳤다.

“누구냐!”

이어 작은 폭발음과 함께 시야가 가려졌다. 앞이 보이지 않는 건 무서웠지만, 이대로 아이들을 잃을 순 없었다.

아델은 필사적으로 뛰어 쓰러진 진을 지나 로브에게 도착했다. 그의 앞에는 기절한 듯 보이는 아이들이 있었다.

“저리 가!”

아델은 로브에게 몸을 부딪쳤다. 그리고 로브가 균형을 잃은 사이, 아이들을 잡으려고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곧바로 반격이 왔고 아델은 바닥으로 내던져졌다. 그리고 간신히 몸을 추슬러 다시 일어났을 때는 아무도 존재하질 않았다.

‘마법? 하지만 이 시대의 마법은 엄격히 관리되고 있는…, 설마.’

아델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흑마법사.’

생각나는 건 그밖에 없었다.

‘진정해. 진정해, 아델.’

아델은 손을 들어 자신의 뺨을 때렸다. 화끈한 통증에 정신이 좀 더 맑아지는 것 같았다.

‘일단 무얼 할 수 있는지 생각해.’

소설 속에선 산속에서 납치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여기는 도시. 산속과는 다르게 도와줄 사람이 많을 것이다. 경비대 같은 것 말이다.

아델은 이를 악물고 쓰러져 있는 진에게 다가갔다.

다행히 상처는 깊지 않은 듯했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돈을 쥐여 주고 진을 부탁해 놓은 채, 아델은 물어물어 경비대로 내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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