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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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3

“일자리요?”

아델의 물음에 마들렌이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네, 혹시 저택에 제가 할 만한 일이 없을까요?”

“이제 몸이 좀 괜찮아졌는데, 일하시려고요? 아니, 그보다 갑자기 일은 왜요?”

“언제까지나 아무것도 안 하고 신세만 질 수는 없으니까요.”

“자리가 하나 비긴 하는데.”

“부탁드립니다!”

아델은 허리를 숙였다.

“하지만 손님에게 어떻게 일을 시켜요. 도련님이 괜찮다고 하시면, 그러면 저도 생각해 볼게요.”

마들렌은 단호하게 말했다. 어쩔 수 없이 아델은 루카스에게로 향해야 했다.

똑똑.

“아델입니다. 잠깐 시간이 되실까요?”

루카스는 연무장 다음으로 시간을 많이 보내는 서재에 있었다.

“시간은 된다. 그런데 무슨 일이지?”

아델은 조곤조곤한 말투로 사정을 설명하였다.

“그러니 제가 저택에서 일을 하게 해 주세요.”

“손님에게 일을 시키라고? 누가 들으면 비웃을 소리군.”

“그럼 저를 하녀와 똑같이 대하시면 되잖아요.”

“말이 되는 소리를,”

거기까지 말하던 루카스는 말을 멈췄다. 농담이라고 여기기엔 아델의 표정이 진지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지금 방은 너무 커요. 그러니 저도 사용인들이 머무는 방에서 지내겠어요.”

“그러면 론슈카는?”

“저랑 같이 자면 되죠.”

물론 아직 론슈카가 어리니까 그래도 되겠지만, 아무래도 그건 아닌 것 같았다.

“하여간 하녀 일은 안 된다.”

“하지만 전 일거리가 필요해요.”

루카스는 한참 생각하더니 아델에게 말했다.

“그럼 타협하지. 하녀 일 말고 내 일을 돕는 건 어떤가?”

“루카스 님의 일을요?”

그가 도우라고 하는 일은 기껏해야 가벼운 서류 정리뿐이었다. 그 정도라면 힘들지도 않고 괜찮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한 권유였으나, 아델은 머뭇거리다 말했다.

“전 글자를 모르는데요?”

그러고 보니 잊고 있었다. 이 여자가 산속 깊은 곳의 작은 마을 출신이라는 걸.

사람은 태어나고 자란 곳의 영향을 받는다. 딱히 출신을 트집 잡아 비하할 생각은 아니었지만, 배우지 못한 사람은 그만큼 부족한 면이 보이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아델은 그렇지 않았다. 괜찮은 가정에서 제대로 배우고 자란 사람 같다는 느낌이라 잊고 있었다.

글자, 글자를 모른다, 라.

루카스는 망설이다가 책이 꽂혀 있는 책장으로 다가가 낡은 책 하나를 꺼내 아델에게 건네주었다.

갑자기 무슨 책인가 싶어 아델은 눈만 깜박였다. 오래된 듯 표지는 바랬지만, 제법 잘 보관된 모양새의 책이었다.

“내가 어릴 때 글자를 배우면서 쓴 책이다. 제법 쉽게 설명되어 있으니 보기에 괜찮을 거다.”

그럼 루카스에게는 소중한 책일지도 몰랐다.

“그런 걸 제게 주셔도 되나요?”

“빌려주는 거다. 다 익히고 가지고 와.”

얼마나 빨리 익힐지는 모르겠지만. 설사 익히더라도 그걸 현실에 적용하는 데는 시일이 더 걸릴 것이다. 선생도 없이 책 하나로 뭘 어떻게 하랴.

‘틀림없이 쩔쩔매며 공부할 테니 그동안은 조용하겠지.’

루카스는 그렇게 생각했다.

* * *

“정말 쉽게 되어 있네?”

아델은 책을 펼쳐 보곤 작게 미소 지었다. 단어와 함께 그려진 여러 가지 사물들. 그리고 그와 연관하여 알 수 있는 문자.

교육열 높은 한국에 살던 이들이라면, 대부분 고3 시기를 거친다. 그리고 아델도 그중 한 명이었다. 이미 공부를 하던 버릇이 있다는 소리였다.

의욕적으로 펜을 잡은 아델은 빠른 속도로 책을 익혀 나가기 시작했다.

나중에 방문한 론슈카는 엄마가 공부하는 걸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더니 아델에게 물었다.

“어, 엄마도 공부해?”

“응? 그래, 엄마도 공부해.”

“나, 나랑 똑같은 거?”

“응, 똑같은 거.”

여기서는 아무리 아델이라도 조금 부끄러웠다. 아이에겐 세상 모든 것이 스승이라지만, 그걸 적용시키기에 아델은 평범한 사람이었으니까.

“도, 도와줄까?”

혼자서도 할 수 있었지만, 돕겠다고 나서는 론슈카의 모습이 너무나도 귀여워서 아델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만 도와줄래?”

“마, 많이 도와줘도 괜찮은데!”

“그럼 많이.”

둘은 얼굴을 마주 보며 웃었다. 그리고 오붓한 모자의 시간이 이어졌다.

* * *

“다 외웠어요.”

퀭한 얼굴로 나타난 아델은 간만에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이걸 외우고 쓸 수 있게 되기까지 한 달 동안 얼마나 미친 듯이 공부를 했던가.

건강을 위해 산책하는 시간을 빼고는 책만 들여다보았다. 나중에는 론슈카가 몰래 책에 불을 지르려고 할 정도였다.

“단순히 외우기만 하는 게 아니라, 사용할 수도 있어야 한다.”

루카스의 말에 아델은 가슴을 내밀며 말했다.

“할 수 있어요!”

“그러면 시험을 봐도 되겠지?”

“물론이죠.”

짧은 단어부터 시작하여 문장까지, 루카스는 간단한 시험을 거쳐 아델의 능력을 인정했다.

“예전에 글을 배워 본 적이 있나?”

“아니요, 이번이 처음이에요.”

전생에서야 배웠지만, 지금은 처음이니까 틀린 말은 아니었다.

“대단하군.”

루카스는 짧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자, 그럼 이제 일자리를 주세요.”

맡겨 놓기라도 한 듯이 일자리를 달라고 하는 모습을 보니 루카스는 어쩐지 입꼬리가 근질거렸다. 그동안 숨기고 있던 아델의 본모습 중 일부를 본 기분이 들었다.

“좋아. 그런데 그 전에, 숫자는 다룰 줄 아나?”

또다시 기한을 뒤로 미룰 셈이었다.

“다룰 줄 알아요.”

“단순히 읽는 것이 아니라 더하고 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네.”

“흐음?”

너무 멀리 갔나? 아델은 그런 생각을 내색하지 않으려 애쓰며 침착하게 대답했다.

‘사실 곱하기 나누기도 안답니다. 놀랍게도 암산도 해요!’ 라는 말도 하고 싶었지만 꾹 참으며 겸손한 표정을 짓는 건 덤이었다.

“숫자는 조금 알아요.”

“알았다. 약속은 약속이니까 일자리를 주지.”

루카스는 벽 한편에 늘어진 설렁줄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시종장인 키슈가 도착했다.

“부르셨습니까?”

“론슈카의 엄마가 오늘부터 일을 하기로 했다. 그 준비를 부탁하지.”

“어떤 일인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내 서류 정리를 도울 거다.”

그 말에 키슈는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중요한 서류는 맡기지 않겠지만, 그런 걸 외부인에게 맡겨도 되는가 싶어서였다.

하지만 그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그들의 주인인 루카스를 믿기 때문이었다.

키슈는 물었다.

“어디다 책상을 준비하면 될까요?”

“여기에.”

이번에는 아델과 키슈, 둘 다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여기에요?”

되물은 사람은 아델이었다.

“그래, 여기.”

아무리 별거 아닌 서류라도 외부인의 뭘 믿고 혼자 보게 두겠는가. 루카스는 곁에서 아델을 지켜보며, 감시할 생각이었다.

아델도 그런 사정은 대충 짐작하였기에 더 말하진 않았다.

“처음에는 주급이 많지 않을 거야. 하지만 성과가 나오면 더 올려 주지.”

그토록 원하던 돈 이야기도 루카스가 먼저 꺼내 주었다. 아델은 열심히 하기로 결심했다!

* * *

햇볕이 내리쬐는 오후, 아델은 부지런히 종이를 넘겨보고 있었다. 그 속도가 제법 빨라서 제대로 보고 있는지 의심이 갔다.

루카스는 그걸 물어볼까 하다가 그만두기로 했다. 아델이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지 그 진심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이제 조금 있으면 아이들의 수업 시간이 가까워진다.

아델과 론슈카가 저택에 온 뒤로 레온은 좀 더 활발해졌다. 그러면서도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아 실력은 쑥쑥 늘고 있었다.

론슈카, 그 아이도 마찬가지였다. 이제는 다룰 수 있는 정령도 제법 늘었고, 다른 사람의 눈에 보이게도 할 수도 있게 되었다.

‘말도 꾸준히 나아지고 있다.’

어느 날, 아델은 론슈카의 수업을 같이 들어도 되냐고 물었다. 물론 루카스는 허락했다.

그리고 수업에 들어갔다 나온 아델은 얼굴이 빨개져 있었다.

“제가 가르쳐 볼게요.”

그러더니 루카스에게 그렇게 말했다.

“당신이?”

“네.”

아델은 굳게 결심한 표정을 짓더니 그날부터 저녁에 시간을 내어 론슈카와 둘이서 뭔가를 하기 시작했다. 가끔은 레온도 그 사이에 끼기도 했다.

마들렌과 키슈도 아델에게 뭔가 부탁을 받은 모양인지 종종 그들과 함께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루카스에게도 부탁하였다.

“당분간 론슈카와 대화할 때 너무 빠르게 말하지 말아 주세요. 론슈카의 말에 끼어들거나 방해하는 행동도 안 돼요. 잘못을 지적하거나, 고쳐 주는 것, 개방형 질문도 자제해 주세요.”

“그리고?”

“너무 어려운 단어 사용도 피해 주시고, 마지막으로.”

아델은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론슈카의 말을 주의 깊게 들어 주세요.”

“어렵지는 않은 일이군.”

“그렇지만 아이에게는 많은 도움이 된답니다.”

하나같이 아이에게는 좋을 것 같은 주의 사항이었다.

“도움이 된다니 따르겠다. 하지만 그 전에 질문 하나 해도 되나?”

“뭔가요?”

“당신은 정말 산속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글도 배우지 못한 게 맞나?”

루카스의 질문에 아델이 대답했다.

“너무 노골적인 질문이군요.”

“그래서 답은?”

“맞아요.”

“그러면 그런 건 어디서 알아 온 거지?”

“그건.”

아델은 머뭇거리다가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러더니 좀 더 짙은 미소를 지었는데, 그 모습이 어쩐지 슬퍼 보였다.

“비밀이랍니다.”

답은 그게 다였다. 캐물으려면 물을 수야 있다.

하지만 아델이 그렇게 대답한 순간, 루카스는 더는 묻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유는 모른다. 그저 그런 생각이 들었을 뿐이었다.

그 뒤로 론슈카는 순조롭게 나아지고 있었다. 가끔은 말을 더듬지 않기도 했다. 엄마의 수업이 효과적인 모양이었다. 가끔 참여하는 레온도 즐거워 보였고.

오늘도 평화로운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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