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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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

론슈카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레온에게 말했다.

“자, 자꾸 엄마한테 부, 붙지 마.”

“아델 님이 괜찮다고 하셨어.”

“너, 넌 스승님이 있잖아!”

레온은 그제야 스승인 루카스를 떠올렸다.

“그야 그, 그렇지만.”

스승님은 스승님인데. 레온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아델을 올려다보았다.

최근 레온의 안에서 아델의 존재감이 커지면서 종종 이런 행동을 보이곤 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레온을 위해 도움을 주었다.

물론 대부분은 전생의 기억에 기반한 도움이었다. 현생의 아델은 어릴 때부터 깊은 산속 마을에서 힘들게 자라,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레온에게 스승님은 어떤 존재야?”

“스승님은 스승님이죠.”

“하지만 스승님은 다르게 생각하지 않을까? 한번 물어보는 건 어떨까? 그리고… 레온도 일단 여기 앉아서 한번 고민해 볼까?”

아델이 웃으면서 의자를 끌어 주자, 레온은 그 위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그걸 확인한 아델은 몰래 방을 빠져나갔다. 레온은 하나의 주제를 던져 주면 그걸 가지고 꽤 긴 시간 고민했기에 시간은 충분했다.

아델은 연무장에서 검을 휘두르는 루카스를 찾았다.

“루카스 님.”

인기척을 느낀 루카스가 검을 내려놓고 아델을 돌아보았다.

“왜 그러지?”

기분 탓일까? 언제부터인가 루카스의 행동이 좀 더 유해졌다.

“레온의 문제로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레온?”

루카스가 성큼성큼 다가와 아델의 앞에 섰다. 장신의 남자가 다가와 서니 다소 위협적인 느낌이 들었지만, 아델은 물러서지 않았다.

“레온이 왜?”

“요즘 고민이 많은 것 같답니다. 스승님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서요.”

그 말에 루카스는 고개를 약간 기울이더니 말했다.

“스승은 스승이지.”

“그리고요?”

“그리고?”

뭔가 더 필요한 것인가?

루카스는 다소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스승은 스승이지 뭐가 더 있단 말인가.

하지만 아델의 말을 마냥 무시하지는 않았다. 루카스도 은연중에 느끼고 있었다. 적어도 아델이 가진 론슈카에 대한 사랑은 진심이라는걸.

‘의문이 드는 부분이 있지만.’

아니, 일단 지금은 소중한 제자인 레온에 대해 고민할 때였다.

“루카스 님, 레온이 지금 몇 살이죠?”

“여덟 살이지.”

“보통 여덟 살이면 무얼 할까요?”

“일을 하거나 무언가를 배우겠지.”

그제야 아델은 깨달았다. 자신이 너무 전생의 경험에 기댄 생각을 했다는 걸. 이 시대에는 어려도 설 수 있고 일할 수 있으면 부모를 도와야 했다.

물론 하루 종일 부려 먹진 않고 적당히 놀 시간도 주겠지만, 그게 아이들의 하루였다. 귀족가의 아이라면 일할 시간에 공부할 테고.

“흠. 일단 여덟 살은 아직 부모님의 사랑이 필요한 나이랍니다.”

“레온의 부모는 죽었다.”

“그건 알고 있어요. 하지만 부모님이 안 계시더라도 그 비슷한 존재는 있지 않나요?”

그러면서 아델은 루카스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스승이 가족과 같은 존재란 말인가?”

“아닌가요?”

맞다. 루카스에게 있어 레온은 소중했으며, 가족이라고 불러도 될 만한 존재였다. 하지만 그걸 지금까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루카스는 새삼스러운 표정으로 아델을 내려다보았다. 평소에는 이렇게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는데. 레온의 일에 이렇게 발 벗고 나서는 걸 보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사람이 제가 배 아파 낳은 아이를 괴롭혔을까? 내내 들었던 의문이 다시 솟아올랐다.

“곧 레온이 올 거예요.”

아델은 그 말을 남기고 연무장을 떠나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 레온이 나타났다.

“스승님!”

빨갛게 상기된 얼굴을 한 레온이 루카스에게 다가와 물었다.

“스승님에게 저는 어떤 존재인가요?”

루카스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굳이 답이 필요한 질문인가?”

“네, 듣고 싶어요.”

“그럼 대답해 주마. 레온, 너는 나의 유일한 가족이다.”

그러자 레온의 표정이 활짝 펴졌다.

“저도 스승님이 가족이에요!”

달려온 작은 몸이 루카스에게 안겨 들었다. 저택에 데리고 온 뒤로 제법 컸다고 생각했는데, 그 모든 게 착각이었다.

레온은 아직 작은 아이였다.

‘나는 왜 그걸 몰랐을까.’

루카스는 어느새 훌쩍이기 시작한 레온을 끌어안으며 등을 토닥여 주었다. 아직 자신은 많이 모자란 모양이었다.

“가족이 생겨서 좋아요.”

레온이 말했다.

“나도 좋구나.”

“그런데 가족이 좀 더 많으면 더 좋을 것 같아요.”

“더 많이?”

이게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루카스가 의아함에 되묻자 레온이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델 님이 엄마가 되어 주는 거예요.”

이번엔 뭐라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 * *

레온이 당찬 소망을 말하고 있는 동안, 아델도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동안은 아파서 몸을 추스르느라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걸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아델은 종이 위에 차분하게 글을 써 내려갔다. 물론 이 세계의 글씨는 아니었다.

아델의 어머니는 독특한 사람이었다. 딸을 위하는가 싶으면서도 가끔은 그녀를 멀리했다. 그리고 글을 배우는 것도 반대했다.

뭐, 워낙 시골 마을이라 남자애들도 글자를 익힌 애는 거의 없었다.

‘그래, 이런 세상이지.’

그러니 앞으로를 제대로 대비할 필요가 있었다. 아델은 가장 먼저 일어날 일을 정리했다.

주인공과 만나기 전까지 론슈카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아델이 가장 좋아하던 등장인물이었기 때문에 사소한 것도 잘 기억하고 있었다.

「론슈카는 엄마에게 학대받다가 쫓겨난다. 그리고 나쁜 마법사를 만나서,」

거기까지 적다가 아델은 펜 끝을 이로 잘근 깨물었다.

나쁜 마법사는 아마 차후에 남주인공인 레온도 만나게 될, 마족을 추앙하는 흑마법사일 것이다.

그렇기에 끔찍한 일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사람.

그 사람은 론슈카를 납치하여 내내 괴롭게 한다.

고작 한 문단으로 설명된 것이 전부였지만, 지금이라면 안다. 그 한 문단 안에 얼마나 많은 고통이 담겨 있는지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야기는 달라졌어.’

아델은 론슈카를 버리지 않았고, 자신이 살던 곳을 떠나 루카스의 저택으로 들어왔다. 흑마법사의 은신처와 멀어진 것이다.

‘그러니 괜찮지 않을까?’

괜찮아야 하는데.

그녀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론슈카가 자랄 때까지는 계속 주의를 기울이자. 혹시라도 다치거나 다른 이에게 상처받지 않도록.

아델은 무능력했지만, 최선을 다해 볼 생각이었다. 그러자면 일단은.

“돈이 필요해.”

지금은 루카스의 저택에 얹혀살며 필요한 걸 제공받고 있었지만, 염치가 있지. 원하는 걸 전부 내 달라 할 수도 없었다.

일을 하고 돈을 벌어야 했다.

하지만 다른 곳으로 일을 하러 가면 론슈카와 떨어져 있어야 한다. 그건 불안했다. 그러니 제일 좋은 방법은.

“이 저택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건데.”

최근 마들렌이 하녀 중 하나가 결혼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갔다 하였으니, 그 자리를 노려 보는 건 어떨까?

전생의 아델도, 현생의 아델도. 집안일이라면 많이 해 보았다. 이런 커다란 저택을 청소하는 일은 어렵겠지만, 노력하면 어떻게든 될 것이다.

말이라도 해 보자. 그렇게 생각하며 다음 내용을 적어 내려갔다.

아델이 봤던 소설의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레온이었다.

그나마 악역이었던 론슈카는 어느 정도 등장했지만, 죽음으로써 레온을 각성시킨 루카스에 대한 이야기는 두루뭉술하게 적혀있었다.

「루카스는 레온의 스승이다. 그는 소드 마스터이자, 공작가의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후 대정령사가 된 론슈카의 손에 죽게 된다.」

다음은 레온.

아델이 가장 많은 정보를 알고 있는 캐릭터였다.

「일단 레온은 주인공. 귀족가의 아이였지만, 음모로 인해 가문이 몰락한다.

간신히 살아남아 떠돌아다니던 레온을 구해준 건 루카스. 처음에는 레온의 정체를 몰랐지만, 나중에 그를 알게 되면서 도움을 주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다.

그쯤에 정령사 가문의 여주도 등장한다. 그녀는 금방 레온과 사랑에 빠지며, 그를 위해서 가문도 배신한다.」

대충 정리하니 이런 내용이 나왔다.

이 모든 일은 서로 연결되어 있었고, 그 끝에는 흑막이 있을 터였다.

문제가 하나 있다면,

“흑막이 생각나지 않아.”

분명 소설은 다 읽은 것 같은데 왜 생각나지 않는 걸까.

아델은 손으로 머리를 헤집었다.

“모르겠네.”

한참을 머리를 감싸 안고 고민을 하다 결국 생각하길 포기했다.

론슈카가 좀 더 자라면 그녀는 아이를 데리고 이 저택을 떠날 것이다. 레온에게 미안하긴 하지만, 어린 시절은 순탄했던 것 같으니 괜찮겠지.

이기적이라 해도 좋았다. 지금 아델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은 론슈카였다.

레온이야 주인공이니 힘들긴 해도 결국엔 행복해질 것이다. 루카스가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어쩔 수 없다.

아델은 생각을 마치자 열심히 적은 종이를 불태워버렸다.

‘누가 보기라도 하면 곤란하니까.’

의심받을 행동은 하지 않는 게 나았다. 그러니 당장 할 수 있는 것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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