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
“어, 엄마!”
론슈카가 조심스럽게 부르자 아델이 그를 돌아보며 웃었다. 창가에서 새어 들어오는 빛 때문일까? 마치 그녀가 빛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론슈카.”
엄마는 아직 바뀌지 않았다. 과거에 그를 싸늘한 눈으로 보던 엄마가 아니었다. 마녀가 아닌 엄마는 착하니까 뭘 해도 괜찮다고 해 준다.
론슈카는 히죽 웃으며 가까이 다가가 꽃다발을 내밀었다.
“서, 선물.”
“어머나, 나 주는 거니?”
아델이 눈꼬리를 접으며 꽃다발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향기를 맡으며 부드럽게 웃었다.
론슈카는 그 모습이 좋아서 입을 헤 벌리고 아델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엄마의 표정이 변하는 걸 보았다. 동그랗던 이마에 주름이 지며 놀란 듯 눈동자가 동그래졌다.
“론슈카, 손은 왜 그렇니?”
론슈카는 손을 내보이며 말했다.
“너, 넘어졌어.”
“어쩌다가?”
“다, 달리기하다가.”
“조심하지.”
아델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꽃다발을 내려놓고 론슈카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붕대로 둘러싸인 손을 조심스럽게 매만지며 그 위에 입 맞추었다.
“빨리 나아라, 사랑하는 내 아들.”
친애하는 사이에 흔히 하는 가벼운 축복이었다. 하지만 방 밖에서 그걸 보고 있던 레온은 순간 가슴이 찡하니 아파 왔다.
지켜야 하는 기본적인 예의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아프고, 아파서.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뒷걸음질을 치다가 도망쳤다.
한참을 달려 자신의 방에 도착하고 나서야, 레온은 간신히 숨을 고를 수 있었다.
생전 처음 겪는 감정이 레온을 뒤흔들었다.
“왜 아팠던 걸까?”
멍하니 중얼거리던 레온은 창밖으로 자신을 찾는 루카스를 보았다.
“아, 맞다!”
레온은 다급히 방에서 뛰쳐나가 루카스에게 향했다.
“스승님! 저 여기 있어요!”
“레온, 론슈카의 상처는 치료했나?”
“네, 잘 치료했어요.”
“그래.”
루카스는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걸 보던 레온은 다시 가슴이 답답해졌다. 혹시 몸 어딘가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손으로 가슴을 툭툭 두드려 보던 레온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정 아프면 의원한테 보이면 되니까.
지금 당장 중요한 것은 오랜만에 만난 스승님이 시킨 훈련을 성실하게 이행하는 것이었다.
레온은 루카스를 따라 움직이다가 문득 뒤돌아보았다. 2층 구석방의 열린 창문. 론슈카와 그의 엄마가 있는 방이었다.
레온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그곳을 바라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 * *
‘커서 무엇이 되고 싶지?’
‘뛰어난 검사이자 기사가 되고 싶습니다.’
그 누구보다 정의로운 기사. 그게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친척들에 의해 모든 걸 빼앗긴 레온의 꿈이었다.
기사는 약한 자를 지키며, 레이디를 존중하고, 주군을 모신다. 그 누구보다 훌륭한 기사가 되어 자신의 가문을 되찾고 싶었다.
그러니 열심히 해야지. 레온은 루카스를 따라오던 날, 그렇게 결심했다.
그랬는데.
요즘 따라 자꾸 나쁜 마음이 들었다.
론슈카는 레온과는 달리 태도가 퉁명스럽다. 엄마 외에는 아무것도 관심이 없어 다른 사람들이 잘해 줘도 그러려니, 한다.
그 태도는 스승인 루카스 앞에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 최근에는 더 나빠진 것 같았다.
레온은 훈련을 끝내고 먼지 범벅이 되어 여느 때와 같이 꽃을 꺾는 론슈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내내 비쩍 말라 있더니, 자기 엄마가 깨어나고 나선 다시 살이 붙었다.
저번에 슬쩍 봤더니 론슈카의 엄마가 달래 가면서 계속 입에 먹을 걸 넣어 주고 있었다. 그리고 밥을 다 먹으면 잘 먹었다고 칭찬했다.
‘밥은 나도 잘 먹는데.’
레온은 이상하게 속이 아파 왔다. 그사이, 론슈카는 혼자서 엉성한 꽃다발을 완성해 가고 있었다.
잠시 망설이던 레온은 론슈카에게 말을 걸었다.
“정원 남쪽으로 가면 더 예쁜 꽃이 있는 거 알아?”
“더 예쁜 꽃?”
“그래, 장미라고 하는데 진짜 예뻐.”
론슈카는 거의 완성해 가는 꽃다발을 보다가 레온을 힐끔 바라보았다.
“어딘데?”
“저쪽. 가르쳐 줄게.”
스승님인 루카스는 장미를 좋아했다. 하지만 그가 좋아하는 장미는 블러드 장미로 다른 장미들보다 유독 가시가 날카로워 정원사 외에는 아무도 건드리지 말라고 하였다.
잘못하다간 다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론슈카는 언제나 제멋대로니까.
레온은 애써 자기 합리화를 하며 그 자리에 서 있다가 고개를 확 들었다. 론슈카가 다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론슈카!”
그러고는 정원의 남쪽으로 달려갔다. 그곳에는 장미를 향해 손을 뻗는 론슈카가 보였다.
레온이 있는 힘껏 달려 그 손을 잡자 론슈카가 왜 그러냐는 듯이 레온을 올려다보았다.
“생각해 보니 이 장미는 위험해.”
“위, 위험?”
“가시가 뾰족하거든.”
그 말에 론슈카는 레온에게 손이 잡힌 채로 물끄러미 장미를 바라보았다.
“태, 태우면 돼.”
루카스의 수업이 효과가 있었던 걸까? 론슈카는 이제 작은 불꽃 하나둘쯤은 자기 맘대로 다룰 수 있게 되었다.
가시만 태우는 건 섬세한 작업이었지만, 조금이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안 돼. 스승님의 장미야.”
레온의 말에 론슈카가 뚱한 표정을 지었다. 알 게 뭐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간신히 저 깊은 곳에 눌러두었던 감정이 다시 울렁거렸다.
“안 돼.”
“왜, 왜 안 돼.”
“스승님의 장미라니까.”
둘은 실랑이를 벌였다. 그러다 론슈카가 잔뜩 부아가 치민 얼굴로 장미를 향해 손을 뻗었다.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레온은 저도 모르게 론슈카를 떠밀었다.
뒤로 밀린 론슈카가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고 나서야 자신이 한 행동을 깨달았다.
미안하다고 해야 해. 레온이 막 고개를 들어 사과를 하려는 순간, 뜨거운 불꽃이 손등을 때렸다. 론슈카의 정령이었다.
미안했던 마음이 스르르 사라지며 화가 났다.
“론슈카!”
“왜, 왜 소리 질러!”
“방금 네가 날 공격했잖아!”
“네, 네, 네가 먼저 밀, 밀었잖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맞는 말이었기에 레온을 더 부끄럽게 만들었다. 밀빛으로 보기 좋게 탄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건……!”
레온은 핑계를 대려고 입을 열었다가 다물었다. 그리고 바닥을 내려다보며 이를 악물었다.
‘방금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한 거지?’
론슈카를 탓하고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려고 하지 않았나? 그게 정의로운 행동인가 묻는다면 아니라고 답할 수 있었다.
그걸 아는데, 이상하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사과해야 하는데. 미안하다고 하고 일으켜 세워 줘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괴로움에 숨이 턱턱 막히는 것 같았다.
그때였다. 다른 사람에게 들켜 버린 것은.
밤색 머리에 다정한 초록색 눈을 가진 사람. 아델이었다.
‘왜 하필?’
차라리 스승님인 루카스에게 들켰더라면 많이 혼나더라도, 벌을 받더라도 괜찮았을 것 같았다. 마들렌이나 키슈에게 들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아델은, 그녀에게만은 들키고 싶지 않았다. 레온은 양손을 꼭 잡고 땅을 노려보았다.
“론슈카?”
아델이 론슈카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더니 허겁지겁 달려와 아직 바닥에 앉아 있는 론슈카의 옆에 앉았다.
어쩌면 론슈카가 혼자 넘어진 거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레온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전생에 직장 생활을 해 본 적도 있는 아델이었다. 두 아이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분위기를 읽어 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레온이 론슈카를 밀었구나.’
아델은 침착하려 애썼다. 레온은 저택의 주인인 루카스의 제자였다.
최근 론슈카도 같이 수업을 받고 있긴 했지만, 아직 무엇 하나 제대로 확정된 것이 없었다. 그래서 아델이 더 초조해하는 것도 있었다.
“론슈카, 일단 일어날까?”
아델은 론슈카를 일으켜 세우고 엉덩이에 묻은 먼지를 털어 주었다. 론슈카는 엄마가 엉덩이를 털어 주는 게 좋은지 히죽 웃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엄마가 좋다고 웃는 론슈카가 안타깝기도 하고 사랑스럽기도 하였다.
울컥. 눈물이 솟아나려는 걸 꾹 참으며 아델은 레온을 돌아보았다. 그러다 깨달았다. 레온이 몸을 가늘게 떨고 있는 것을 말이다.
문득 마들렌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레온은 착한 아이예요. 하지만 가끔 너무 착해지려다 보니 힘든 것같이 보여요.’
물끄러미 레온을 바라보는데 문득 론슈카의 배 속에서 천둥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꼬르륵.
배가 고픈 모양이었다. 루카스의 수업을 듣기 시작하면서부터 식욕이 점점 왕성해지더니, 금세 배가 고파졌나 보다.
아델은 론슈카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론슈카는 당연하다는 듯이 그 위에 제 작은 손을 얹었다. 그 사소한 행동에도 아델은 가슴이 뭉클해졌다.
‘아, 맞다.’
이어 아델은 레온에게도 손을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