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8
“죽을 정도의 상처는 아냐. 그냥 조금 힘들어서 잠든 것뿐이다. 네가 지금 들어가면 치료에 방해가 돼. 엄마가 늦게 낫는 건 너도 싫겠지?”
그제야 론슈카는 몸에서 힘을 뺐다. 하지만 여전히 울고 있었다.
이걸 어찌 달래야 하나.
한숨을 내쉬는데 복도 저편에 우뚝 서 있는 레온이 눈에 들어왔다.
“레온.”
“스승님.”
레온이 가까이 다가왔다.
“그분은 괜찮으신 겁니까?”
이제는 제자까지 아델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괜찮을 거다.”
“다행이네요.”
레온이 고개를 끄덕이며 론슈카를 바라보았다.
“괜찮으실 거야. 스승님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니까.”
그러면서 눈물에 젖은 론슈카의 얼굴을 손수건으로 닦아 주었다. 아무래도 저보다 작은 론슈카가 신경 쓰이는 것 같았다. 실제로 두 살 어리기도 했고.
‘더 살찌워야겠군.’
루카스는 그리 생각하며 복도에 주저앉았다. 어쩐지 피곤했다.
* * *
치료가 끝난 후에도 아델은 깨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마들렌이 열심히 간호했지만 깊이 잠든 듯 눈을 뜨지 않았다.
당연하게도 론슈카는 그런 엄마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뭐라도 좀 먹어야지.”
다른 사람들이 걱정하든 말든 음식을 먹지도, 화장실에 가지도 않고 그대로 아델의 옆에 붙어 있었다. 잠시라도 떨어졌다가는 큰일이라도 날 것만 같았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마들렌은 너무 피곤한 나머지, 따뜻한 햇볕 아래 꾸벅꾸벅 잠들었다.
그녀 대신 아델을 열심히 바라보던 론슈카는 한참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다가 조심스럽게 아델의 손을 잡았다.
“어, 엄마.”
내가 싫어서 일어나지 않는 건 아니지? 그런 거지?
의원은 괜찮다고 했는데 왜 일어나지 않는지 모르겠다.
론슈카는 꼭 잡은 아델의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어느새 새어 나온 뜨거운 눈물이 여린 살갗 위에 떨어졌다.
“어, 엄마.”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엄마 없는 세상은 론슈카에겐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이, 이, 일어나.”
안 그러면 나도 따라갈 거야.
론슈카의 애절한 마음이 닿아서였을까? 내내 늘어져 있던 손이 꿈틀 움직였다. 그러더니 이내 내내 감겨 있던 눈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론슈카?”
“엄마!”
론슈카는 기쁨에 활짝 웃었다. 상냥하게 웃는 엄마는 론슈카를 끌어안고 이마에 입 맞추어 주었다.
엄마 주변이 빛나고 있었다. 그 빛은 점점 더 강렬해졌고, 이내 엄마가 흐물흐물하게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엄마!”
당황한 론슈카가 크게 소리치는 순간, 눈이 번쩍 떠졌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둘러보자 아직 잠들어 있는 엄마가 보였다. 그럼 그 모든 게 꿈이었나 보다. 어쩐지. 말을 더듬지 않더라니.
론슈카는 아이답지 않은 한숨을 내쉬며 눈물을 글썽였다.
“안 되겠군.”
뒤에서 루카스의 목소리가 들려오는데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러다 강제로 잡아 오는 손아귀에 버둥거렸다.
“뭐, 뭐, 뭐!”
“이리 와라.”
다시 꾀죄죄해진 론슈카를 덜렁 들어 올린 루카스는 그대로 식당으로 향했다. 그리고 강제로 의자에 앉힌 뒤 수프 그릇을 내려놓았다.
“먹어.”
“시, 시, 싫어.”
엄마에게 가 봐야 해.
론슈카가 다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려 했으나 루카스가 그런 아이를 내리눌렀다.
“먹어. 먹고 건강해야지.”
“왜, 왜, 왜?”
루카스는 참을성 있게 이유를 설명했다.
“네 엄마가 깨어났을 때, 네가 다시 비쩍 말라 있으면 좋아할까? 싫어할까?”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여기 오는 내내 잘 먹을 때마다 칭찬하던 아델을 떠올렸다.
론슈카는 입술을 꾹 깨물고 있다가 수프 그릇을 양손으로 들었다. 그러고는 아직 뜨거운 수프를 벌컥벌컥 마셨다.
“다, 다 먹었어!”
“입이 데잖아!”
기겁한 루카스가 의원을 부르려는 데도 아이는 여전히 엄마에게 가고 싶어 발만 동동 굴렀다.
“이, 이, 이제 가도 돼?”
“씻고 나서.”
초조해하던 아이는 욕실에서 나오기 무섭게 다시 제 엄마가 있는 방으로 달려갔다. 다 됐다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벌어진 일이었다.
그런 아이를 잡아채려던 루카스는 결국 한숨을 쉬며 손을 거뒀다.
* * *
꿈을, 깊은 꿈을 꾸었다.
아니, 그걸 꿈이라고 해도 될까? 아니, 그건 지나간 일이긴 해도 실제로 있었던 일이었다.
차라리 빙의라도 했으면 죄책감이라도 덜하련만. 아델은 확실한 그녀였다. 어떻게 이렇게 되는 거지? 여긴 소설 속이 아니야?
철없는 하룻밤의 행동으로 아이를 가졌다.
처음 임신했을 때는 모든 행동을 조심하고 아이에게 다정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 주었다. 주위에선 그런 아델을 향해 미쳤다 수군거렸지만 괜찮았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녀는 죽기 전에 말했다.
“내가, 내가 좀 더 주의했어야 했는데. 아이를 혼자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려주었더라면.”
그게 어머니의 마지막 유언이었다.
어머니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아이가 있었으니까. 아이를 잘 키우다 보면 언젠가 그도 돌아와 줄 거야.
그렇게 생각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키워 가면서 위화감을 느끼게 되었다.
론슈카는 왜 이렇게 이상할까? 왜 평범하지 못하지? 왜 이런 이상한 힘을 쓸까? 갈수록 아이가 꺼려졌다.
정체도 모를 사람의 아이를 낳은 아델은 마을에서 따돌림을 받기 시작했다. 거기다 론슈카의 능력은 사람들의 눈총을 샀다. 그 때문이었을까.
사랑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러지 못했다. 자괴감에 몸부림치면서도 아이를 미워했다. 그러다 보니 아파졌다.
아델은 고통에 몸부림쳤다. 몸의 상처가 아픈 게 아니야.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아이에게 주었던 상처 때문에 마음이 아팠다. 그럴 자격도 없으면서, 가슴을 부여잡고 오열했다.
루카스가 자신에게 부당하게 구는 걸 알면서 아무런 소리도 하지 않은 것도 그것 때문이었다. 자신은 죄인이니까, 아파도 되니까.
‘하지만 그래도 되는 걸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델은 론슈카의 전부였다. 잘못된 애정이라도 그건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그런 아델이 먼저 곁을 떠나 버리면, 론슈카는 괴로워하지 않을까? 원래 정해져 있던 미래대로 불행해지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섣불리 론슈카의 곁을 떠날 수도 없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론슈카가 좀 더 자라서 진정한 애정을 구별할 수 있게 되면, 그렇게 되면 그때 어떤 식으로든 떠나자. 더는 자신의 존재가 필요 없어지면 그때.
아델은 천천히 눈을 떴다.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리자, 바로 앞에 울먹이는 론슈카의 얼굴이 보였다.
“어, 어, 엄마!”
“론…슈카.”
“어, 어, 엄마!”
“그래.”
아델은 당장이라도 달려들고 싶은 표정을 짓고 있는 론슈카에게 손을 뻗었다.
내 손을 잡아도 괜찮아. 이 손은 너를 더 이상 때리지 않을 테니까. 내 품에 안겨도 괜찮아. 더는 너를 내동댕이치지 않을 테니까.
“내 사랑하는 아이.”
아델은 론슈카를 꼭 끌어안고 희미하게 웃었다.
* * *
아델이 깨어나고 본격적으로 요양이 시작되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일어나서 저택의 일을 돕고 싶었지만, 시녀장인 마들렌이 엄한 표정으로 말렸다.
“의원님의 말로는 한참 더 누워 있어야 한대요. 당장 도로 누워요.”
아델로서는 강경한 마들렌을 이길 수 없었다.
“그리고 좀 더 많이 먹어요. 이게 뭐예요?”
그러면서 도무지 무슨 고기인지 알 수 없는 것이 들어간 갈색의 죽을 건네주었다. 말로는 건강에 좋은 것만 넣었다던데, 맛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왜요? 맛없어요? 몸에 좋다는 건 다 들어갔는데.”
“몸에 좋은 거요?”
“그럼요. 구하기 힘든 것도 잔뜩 들어갔어요. 무척 귀한 것이랍니다. 그러니 전부 먹어요.”
그 말에 아델을 꾹 참고 죽을 전부 삼켰다. 몇 번인가 울컥하고 도로 뱉어 낼 뻔했지만, 꿋꿋하게 참았다. 구하기 힘든 거라는데 비싸겠지.
아델이 열심히 먹는 모습을 보며 론슈카도 간만에 왕성한 식욕을 뽐냈다.
그렇게 쉬면서 본의 아니게 건강식을 축내고 있던 도중, 루카스도 한 번 찾아왔다. 마침 론슈카는 아델의 설득에 마들렌과 함께 욕실로 간 참이었다.
그는 무언가 말하고 싶은 듯 한참을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곧 론슈카의 수업을 시작할 거다.”
아, 아델은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을 알 것 같았다.
론슈카는 그녀가 깨어나고서부터 내내 곁에 붙어 있었다. 밥도 같이 먹으려 했고, 씻을 때도 후다닥 다녀왔다. 이 때문에 귀 뒤의 때를 제대로 닦지 않아 결국 아델이 물수건으로 뽀득뽀득 닦아 주어야 했다.
그런 론슈카였으니 아마 잠들어 있었을 때도 그랬을 것이다.
“론슈카에게 수업을 잘 들으라고 말해 둘게요.”
그 말에 루카스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잠시 아델의 발치를 노려보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방을 나섰다.
뭔가 더 말하고 싶었던 걸까?
아델은 고개를 갸웃거리다 몸을 다시 눕혔다. 작은 마을에서 누워 자던 짚으로 속을 채운 침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푹신했지만, 마음이 불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