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마차가 좁은 길을 구불구불 올라갔다. 좌우로 늘어선 나무의 키가 커 햇볕이 잘 들지 않는다. 마치 끝에 마녀의 집이라도 있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그 끝에 있는 건, 담쟁이 넝쿨에 휘감긴 근사한 저택이었다.
저택 주변은 높은 나무가 없어 햇볕도 잘 들었으며, 자연적으로 형성된 듯 보이는 풀밭이 근사했다.
“도착했다.”
마차가 입구에 스르르 멈춰 섰다.
제일 먼저 내린 루카스가 양손을 내밀자, 아델이 어색한 태도로 그를 붙잡고 미끄러지듯 내려왔다. 그리고 이번엔 아델이 안쪽을 향해 손을 내밀자, 론슈카가 나타났다.
아직 몸이 좋지 않은 아델이 론슈카를 안아 내리기 전에, 루카스가 움직였다.
상종하기 싫은 여자였지만, 그렇다고 환자를 함부로 대하기도 애매했다. 무엇보다도 일단 론슈카의 엄마였으니까.
셋이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안쪽에서 누군가가 화살같이 달려 나왔다. 반짝이는 금빛 머리를 지닌 아이, 레온이었다.
아이는 달려 나온 그대로 도움닫기를 하여 루카스에게 날아 차기를 하였다.
그러나 공격은 금방 막혔다. 이어 레온은 주먹을 내지르며 루카스를 열심히 공략해 나갔으나, 결과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제 그만.”
루카스가 그렇게 말하고 나서야 레온은 멈춰 섰다.
“어서 오십시오!”
“그래, 제법 열심히 연습했구나.”
루카스가 웃으며 레온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었다.
언제나 삐뚜름한 비웃음밖에 보이지 않았던 그였는데, 자신의 아이에게는 다른가 보다. 아델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둘을 바라보았다.
“소개하지.”
루카스가 레온에게 말했다.
“이쪽은 이번에 새로 데려온 론슈카. 정령사다.”
“안녕하십니까?”
“이쪽은 레온. 내 제자다. 검을 배우고 있지.”
레온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해 왔지만, 론슈카는 얼굴을 마주하지 않았다. 그대로 아델의 뒤에 숨으며 경계의 시선을 보내왔다.
지금까지 또래 아이들에게 끔찍한 괴물 취급을 받아 왔던 론슈카였다. 이해 못 할 행동은 아니었기에 아델은 부드럽게 말했다.
“론슈카, 인사해야지.”
“아, 아, 안녕?”
론슈카는 간신히 인사를 끝마쳤다. 이어 아델이 인사하려는 순간, 어떤 기억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어려서 모든 것을 잃고 헤메던 남주인공. 그리고 그런 남주인공을 구원해 준 스승.
그 스승은 차후 황제의 명을 받은 론슈카에 의해 위험에 처하게 된다.
그것이 결정적으로 남주인공이 친우였던 론슈카를 버리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거기까지 떠올리자 가슴이 싸늘하게 식어 내렸다. 왜 지금까지 떠올리지 못했을까.
레온, 저 작은 금발의 아이는 이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었다. 원래라면 좀 더 뒤에 론슈카와 만나게 될 아이.
모든 걸 알아차리자 더는 이 자리가 편하지 않았다.
아델은 저도 모르게 론슈카를 감싼 채 뒤로 주춤 물러섰다. 그런 그녀를 보며 레온이 물었다.
“여성분은 누구십니까?”
루카스는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이 아델을 힐끔 보며 답했다.
“아델. 론슈카의 엄마다.”
그 말에 레온이 눈을 크게 뜨고 둘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붉은 눈동자에 화려한 붉은 머리를 가진 론슈카. 초록눈에 평범한 밤색 머리를 가진 아델은 얼핏 보기엔 크게 닮아 보이지 않았다.
그사이, 시녀장과 시종장이 주인을 맞이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다녀오셨습니까?”
인사를 한 둘은 론슈카를 보고 인자하게 웃었으며, 이어 아델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에는 조금 실망했다.
“론슈카의 엄마일 뿐이다. 둘이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야. 일단은 곰에게 다친 상처가 덜 나았으니 손님으로 머물게 하도록 하지. 이후의 일은 스스로 잘 생각해 봐야 할 거다.”
아직도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감추며 아델은 고개를 숙였다.
“네, 감사합니다.”
빈말은 아니었다. 그가 아니었으면 아델은 죽고, 론슈카는 숲을 헤매다 끔찍한 일을 당했을 것이다.
그가 누구건 도움을 받은 건 사실이었다. 몇 번이나 고개를 숙여도 부족했다.
“그리고 론슈카. 난 정령사가 아니지만, 적어도 능력을 안정시키는 건 도와줄 수 있다. 내일부터 레온과 함께 내 밑에서 배우도록 해라.”
그 말에 론슈카는 자연스럽게 아델을 올려다보았다.
아델은 잠시 머뭇거렸다. 원래라면 주인공과 론슈카는 좀 더 뒤에 만나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어려서부터 만나서 같은 스승 아래 배우게 되다니.
그럼 미래는 어떻게 되는 걸까?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거 하나는 알았다. 지금 아델은 루카스의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다.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는 상황에서 여기 머물러도 될까?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어느 시점이 되자, 아델은 그 자리에 스르륵 주저앉았다. 그동안 쌓인 피로가 터져 버린 것이다.
“엄마?”
당황한 론슈카가 아델을 부르는데도 그에 답해 줄 수 없었다. 그저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리려 애쓰며, 가라앉는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 애쓸 뿐이었다.
* * *
아델이 쓰러졌다.
“어, 어, 어, 엄마!”
당황한 론슈카가 아델을 부르고, 루카스가 빠르게 움직였다. 그는 아델을 안아 들고 저택 안으로 뛰어 들어가며 외쳤다.
“키슈, 어서 의원을 불러오도록. 마들렌, 나를 좀 도와줘.”
“네!”
시종장인 키슈가 저택 내에 상주하는 의원을 부르기 위해 달려가고, 이어 마들렌이 루카스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그 끝에 론슈카가 허둥지둥 따라붙었다.
가장 가까운 방에 뛰어든 루카스는 먼저 아델의 이마를 짚어 보았다. 열이 펄펄 끓어오르고 있었다.
다급히 침대 위에 눕히자, 뒤따라온 마들렌이 상의를 느슨하게 하고 신발을 벗겼다.
“갑자기 무슨 일이래요?”
마들렌의 말에 루카스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설명하자면 할 수 있었으나, 돌아올 반응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곰에게 상처 입은 여자를 며칠 요양시키지도 않고, 의원에게 보이면서 여기까지 데려왔다고?
그래도 나름 배려를 한다고 했으나, 그게 부족하다는 걸 루카스도 인식하고 있었다. 상처는 느리게 아물어 갔으나 여행 도중의 피로는 계속 쌓이고, 쌓여 눈에 띄게 몸이 약해져 가는 게 보였으니까.
자기 아들을 괴롭히던 여자라고 해도 상냥한 마들렌은 기겁할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본가를 나올 때부터 곁에 있어 주었던 그녀였다. 사소한 것도 감추고 싶진 않았다.
“그게.”
거기까지 이야기했을 때, 론슈카가 방으로 뛰어들어 왔다. 아이는 숨을 헐떡이면서도 엄마에게 가까이 다가가 붙었다.
“어, 어, 엄마!”
루카스는 더 말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도 아이 앞에서 그걸 곧이곧대로 다 이야기해선 안 된다는 자각 정도는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마들렌은 뭔가 일이 있었던 걸 눈치챈 모양이었지만, 그녀는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문이 열리며 키슈와 의원이 뛰어들어 왔다. 다급히 끌려온 의원은 침대 위에 누운 아델에게로 향했다.
“이쪽이 환자입니까?”
“그래.”
“어디 특별히 좋지 않은 부분이 있습니까?”
“한 달 전쯤 곰에게 공격당했다.”
“곰이요?”
의원이 기겁한 표정을 지었다.
“나, 나, 나.”
론슈카가 눈물 콧물이 범벅된 얼굴로 말을 더듬었다.
“나를 구해 주다가.”
아이의 말에 의원이 눈이 동그래졌다. 마들렌도 마찬가지였다.
“어머나!”
루카스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 이어서 설명하였다.
“등을 다쳤다.”
“상처는 아물었습니까?”
“대부분의 의원들은 조심스럽게 움직이면 괜찮을 거라고 했다.”
괜찮지 않단 소리군. 의원은 한숨을 내쉬며 아델의 상처를 살폈다.
생각보다 상처는 깊지 않았다. 곰이 깊게 긁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곰에게 공격당한 상처. 무리를 했으니 몸 상태가 멀쩡할 리 없었다.
“의원이 그랬다고요?”
의원이 미심쩍은 시선으로 루카스를 바라보았다.
그래, 사실은 원하는 답을 듣기 위해 조금 압박을 하긴 했다. 하지만 정말로 죽을 정도였다면 그도 데리고 다니진 않았을 것이다.
이런 여자라도, 아이에겐 세상인 것을 알고 있었기에.
“뭐, 이건 일단 넘어가겠습니다. 치료가 더 급하니까요.”
의원은 키슈와 루카스를 내보냈다.
더불어 론슈카도 잠시 데리고 나가 있어 달라 하였다. 엄마가 치료받는 과정을 보고 아이가 충격을 받을까 염려했던 것이다.
당연히 론슈카는 나가지 않겠다고 버둥거렸고, 결국 루카스에 의해 강제로 끌려 나왔다.
“어, 어, 엄마아아아!”
“잠시 치료하는 것뿐이다. 의원이 나온 뒤에 다시 들어가면 되잖아.”
“그, 그, 그사이에 죽으면.”
“죽지 않는다.”
어떻게 알아? 론슈카가 루카스를 올려다보며 훌쩍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