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6
론슈카를 데려가려고 하는 것도, 정령사를 탐낸다는 느낌이 아니라 다른 이유가 있는 것같이 느껴졌다.
그래, 마치 동질감을 느끼는 사람 같았다.
‘저런 잘난 사람도 어릴 땐 괴로웠던 걸까.’
아델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자그마한 발은 엉망이었다.
얇은 발톱은 깨지고 멍들어 피가 엉겨 있었고, 살갗은 벗겨져 속살을 내보였다. 안타깝고 죄스러운 마음에 절로 한숨이 일었다.
아델은 최대한 조심스럽게 대야의 물을 손에 묻혀 아이의 발을 씻겨 주었다. 루카스는 환자가 무슨 짓이냐고 기막혀했지만, 결국 아델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그녀는 터진 상처를 다시 수습하자마자 대야에 미지근한 물을 담아 와 아이를 씻기기 시작했다.
“그러다 상처가 다시 터지면 볼만하겠군. 차라리 내가 하지.”
그 말에 론슈카가 격렬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네 엄마의.”
상처가 다시 터질 텐데 괜찮나? 그렇게 말하려던 루카스는 다시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아델이 애원하는 시선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이었다.
아이를 괴롭힌 나쁜 여자인 걸 아는데도 저 시선을 외면하기 어려웠다.
이상한 일이지. 루카스는 답답한 마음에 고개를 흔들다 밖으로 나갔다.
* * *
‘이제야 조용해졌네.’
혹시라도 론슈카가 아파할까 봐, 움직이는 손길이 조심스럽다.
하지만 아무리 조심스럽게 한다 해도 상처에 물이 닿는 행위였다. 쓰리지 않을 리 없었다.
그런데도 아이는 조금도 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저 가끔 입을 쭉 찢으며 어색한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아프지 않니?”
가늘게 떨려 오는 목소리에 론슈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아프지 않았다. 정말로!
엄마가 자신을 만지고 있었다. 론슈카는 그것만으로도 무척 행복해서 더한 고통도 견뎌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엄마.’
마음이 둥실둥실해졌다.
아델은 오랜 시간에 걸쳐 론슈카를 씻기고, 루카스가 미리 준비해 둔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혔다. 이렇게 깔끔하게 입혀 두니 훨씬 좋았다.
“머리카락도 자를까?”
앞머리를 쓰다듬으며 묻자 론슈카가 고개를 내저었다.
“이, 이상하게 생겼어.”
“누가?”
“론, 론슈카.”
“아닌데? 누가 그런 말을…….”
그렇게 묻다가 금방 깨달았다. 론슈카에게 그런 말을 퍼부은 존재가 누구일지.
그동안 아이는 아델 본인과 내내 같이 지내 왔다. 그랬다. 언제나 그랬듯이 이번에도 론슈카에게 상처를 입힌 사람은 아델, 자신이었다.
“론슈카.”
“으, 으으응?”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하지만 언제까지 아이가 스스로를 괴물이라고 여기게 둘 수 없었다.
하나둘씩 고쳐서 자신감을 찾게 해 줘야 했다. 그래야 그도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을 테니까.
모든 것을 깨닫고 자신을 미워하게 될지라도, 사실을 알려 줘야 했다. 언젠가는.
일단 지금은 자신감을 북돋워 주기로 하였다.
아델이 말했다.
“론슈카는 아주 예뻐.”
“예, 예, 예뻐?”
“그리고 멋있어.”
론슈카가 아델에게 의심스러운 시선을 보냈다.
“아닌데?”
“정말인데? 론슈카는 엄마 말을 믿지 않는 거니?”
“미, 믿어!”
바락 높아진 소리가 귓가에 징징 울렸다.
“그럼 지금 말도 믿어 줘.”
“하, 하지만.”
괴물이랬잖아. 끔찍하게 생겼다고 했잖아.
론슈카는 혼란스러운 모양이었다.
“있지, 론슈카. 그동안 엄마는 나쁜 엄마였어.”
“아냐, 엄마 안 나빠.”
“아냐, 나빴어. 숲속 깊은 곳에 산다는 마녀보다 나빴어.”
“마녀보다?”
어릴 때 아이들이 가장 많이 듣는 소리 중 하나가 그것이었다.
‘말 안 들으면 숲속 마녀가 잡아간다.’
마녀는 아이들을 납치하여 잡아먹는 나쁜 존재였고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그 마녀보다 나쁘다니.
론슈카는 충격받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도 잠시였을 뿐이다. 이내 무언가 결심한 표정으로 론슈카는 말을 꺼냈다.
“어, 엄마가 마녀라도 괘, 괘, 괜찮아.”
“마녀는 나쁜데?”
“그, 그, 그, 그래도!”
흥분하니 말더듬이 더 심해졌다. 그 와중에도 론슈카는 자신의 의견을 철회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엄마니까.’
고작 그 이유 하나만으로 맹목적인 사랑을 보여 주는 론슈카, 내 아들.
아델의 눈가에 서서히 물기가 어리기 시작했다. 울 자격이 없는데. 자신이 울어선 안 되는데. 자꾸 눈물이 나려 했다.
“미안해. 미안해, 론슈카.”
울지 않으려 눈을 부릅떠 보았지만, 흐르는 눈물을 막지 못했다.
그런 아델에게 론슈카의 손이 천천히 다가왔다. 자잘한 상처투성이인 손이 눈에 띌 정도로 떨리고 있었다.
“괘, 괘, 괜찮아.”
마침내 론슈카의 손이 아델의 뺨에 닿아 왔다. 고작 뺨에 손을 대는 이 행위 하나에 론슈카는 얼마나 많은 용기를 냈을까.
아델은 그게 또 미안해서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 * *
“씻겨 놓으니 훨씬 낫군.”
루카스는 새 옷을 입은 론슈카를 보며 그렇게 평가했다.
지저분하던 몸을 깨끗이 씻고, 엉망이던 머리카락도 깨끗이 빗어 넘겼다. 그러고 나니 화상 자국으로도 온전히 가릴 수 없었던 외모가 드러났다.
화상 자국만 없다면, 아이는 누구에게나 호감을 살 만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본 얼굴인 것 같은데.’
이렇게 말끔하게 해 놓으니 낯이 익다. 그런데 그게 누군지 떠오르지는 않았다.
하긴 지금 그걸 아는 게 뭐가 중요할까. 어차피 자신은 사교계를 떠나다시피 했고, 두 모자는 그곳으로 발 디딜 일도 없다.
“일단 환자가 있으니 마차를 수배해 놨다.”
그 덕에 이 작은 마을에 며칠 더 묵어야 했지만, 상관없었다. 넘쳐나는 것이 시간이었으니까.
예정보다 늦어진 걸음에 저택에 있는 그 녀석은 불만을 품겠지만. 뭐, 어쩌겠는가.
환자에 비쩍 마른 어린아이. 말을 타고 가기엔 힘들었다. 그래서 굳이 돈을 써 가며 다른 마을에서 마차를 빌려 오게 한 것이기도 했고 말이다.
시간은 금방 지났다. 작은 마차가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루카스는 곧바로 그곳을 떠났다. 물론 아델과 론슈카도 함께였다.
“어, 엄마.”
아직 상처가 완전히 아물지 않은 아델은 마차의 덜컹임에 괴로워했다. 그러자 론슈카는 안절부절못하다가 자신의 겉옷이며 방석을 들어 아델을 편하게 해 주기 위해 애썼다.
‘저럴 가치가 있을까.’
루카스는 그 모습을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마을에서 지내는 동안 아델이 아이에게 보인 모습은 헌신적이었다.
하지만 루카스는 보인 모습만을 믿고 마음을 놓지 않았다.
내내 애정을 갈구하며 살아왔을 아이와 그 아이를 방치한 여자. 자신이 귀족인 걸 알아보고 노리는 게 있어서 저렇게 행동하는지도 몰랐다.
어째서 곰에게서 아이를 감쌌는가? 라는 문제는 남아 있었지만, 그것도 사실은 다른 이유가 있었다면?
‘그 여자처럼.’
루카스는 여전히 허둥지둥거리는 론슈카를 바라보다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여행하는 동안 아델은 내내 들끓는 열과 고통에 신음했다. 그 때문에 마차가 움직이는 속도는 느렸다.
마을마다 들러서 의원에게 상처를 보이고, 주의해서 움직였다. 그럴 때마다 ‘이럴 필요까지 있는가?’ 싶었던 루카스지만, 론슈카를 보면 어쩔 수 없었다.
아이에게 있어 여전히 엄마는 절대적이었다. 그리고 루카스는 그 절대적인 존재를 쉽사리 빼앗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마차는 목적지에 다다라 가고 있었다.
* * *
금발에 파란 눈을 가진 남자아이가 가만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본 시녀장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루카스 님을 기다리고 계시나요?”
“아닙니다. 저는 그냥 창밖을 보고 싶었을 뿐입니다.”
“호호, 정말요? 그럼 이건 필요 없겠네요?”
시녀장이 손에 든 편지 봉투를 살랑살랑 흔들어 보였다. 그러자 창밖을 바라보던 아이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달려와 양손을 모아 내밀었다.
“제자 된 도리로 스승님의 편지는 봐야겠지요.”
“참, 저희한테는 말을 편히 하셔도 된다니까요.”
“아닙니다, 저는 이게 편합니다.”
아이는 꿋꿋하게 말하고는 편지를 냉큼 받아 갔다.
‘특이한 아이.’
어느 날, 평소처럼 외유하던 루카스가 길고양이처럼 덥석 들고 돌아온 아이.
꾀죄죄한 아이의 모습에 놀라 누구냐고 묻자 그가 대답했다.
“제자다.”
그 이후 아이는 루카스의 밑에서 검술을 배웠다.
지금은 비록 가문을 떠나왔다고 하나, 원래 루카스는 뛰어난 검사였다. 그의 고국에서도 세 손가락에 꼽히는 실력자일 뿐만 아니라 소드마스터이기까지 했다.
그런 그가 가르치는 제자라니!
당연히 많은 이들이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아이를 회유하기 위해 애쓰거나, 아니면 질투를 하며 해치려 하였다.
그렇게 하여 고국을 떠나 자리 잡은 작은 저택. 이곳에서 아이는 열심히 검술을 배워 나갔다.
하지만 아이가 있음에도 루카스는 방랑벽을 어찌하진 못한 모양이었다. 이번에도 뛰쳐나갔다 싶더니,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뭐, 편지는 보내셨지만.’
아이, 레온은 바르게 앉아 편지를 읽고 있었다. 그러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무슨 내용이길래 그러세요?”
“아이를 하나 더 데려온다고 하시네요.”
“네?”
시녀장이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레온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읽었던 문장을 다시 읽어 보았다.
“아이라고.”
그러나 아무리 다시 봐도 편지의 내용은 바뀌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