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
“당신이 치료를 할 줄 안다 하지 않았소?”
“아이가 싫다더군.”
의원이 따라 들어온 남자를 탓해 보았지만, 돌아오는 답을 들으니 그의 잘못은 아닌 듯했다.
“그래도 해 줘야지요.”
의원은 한숨을 푹 쉬고는 론슈카에게 다가갔다.
“아이야, 상처를 치료하자꾸나.”
론슈카가 눈을 데굴데굴 굴려 아델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얌전히 발을 내밀었다. 아델이 깨어나기 전과는 딴판인 태도였다.
“치료할 곳이 발뿐만은 아닌 것 같은데.”
의원이 약을 챙기며 론슈카의 소매를 걷어붙였다. 거기에는 덴 자국, 긁힌 자국, 맞은 듯한 멍 자국 등 여러 상처가 있었다.
“이런 어린아이를 누가 때렸나.”
한숨처럼 나온 목소리에도 론슈카는 반응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그를 걱정했던 사람들은 여럿 있었다. 하지만 그건 언제나 잠시였을 뿐이었다. 그가 불을 다루는 걸 보면 전부 태도를 달리했다. 괴물이라 불리며 멀어져 갔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은 싫었다. 그들의 호의는 언제나 일시적일 뿐, 끝은 언제나 처참했다.
괴물이라 불러도, 말로 상처를 입혀도, 언제나 함께해 주는 엄마만이 세상의 전부였다.
의원이 발을 깨끗이 닦고 치료하는 내내, 론슈카는 아델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아프지 않니?”
그런 론슈카에게 아델이 물었다. 아이는 잠시 눈을 데굴데굴 굴리다가 대답했다.
“아, 아프지 않아.”
상처는 언제나 있어 오던 것이라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그래서 괜찮다고 대답하고 말았다.
‘아프다고 말해야 하는데!’
뒤늦게야 깨달았지만, 이미 늦었다.
어쩌지? 이러다 엄마의 관심을 못 받는 게 아닐까? 론슈카는 불안한 눈으로 아델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뜻밖에도 아델은 그를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그 떨어지지 않는 시선에 행복해졌다. 론슈카는 또다시 히죽거렸다.
그러나 아델은 론슈카의 모습에 더욱더 가슴이 아팠다. 얼마나 상처에 익숙해졌으면 저럴까. 그런 생각이 드니 자책감에 죽어 버릴 것 같았다.
“발은 치료했고, 이제 다른 곳도 보자.”
의원은 론슈카의 팔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더니 아예 상의를 벗겨 버렸다.
아델은 그 모습을 보고는 질끈 눈을 감아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모든 것은 자신의 죄니까, 지켜볼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의 상처에 약이 발려 가는 걸 보며 눈시울이 뜨거워져 가는 걸 참았다. 아델이 할 수 있는 것은 론슈카의 손을 더 세게 잡는 것뿐이었다.
차라리 자신이 전부 아플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럴 수도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은 사죄의 말뿐이었다.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결국, 터져 나온 아델의 목소리가 죄책감을 담고 떨렸다. 의원은 미처 아이를 치료하느라 눈치채지 못했지만, 루카스는 그 안에 담긴 감정을 깨달았다.
직접 때렸는지, 아니면 때리는 걸 방치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아델이 학대의 주범인 건 분명했다.
그걸 깨닫는 순간 혐오가 목 끝까지 치솟아 올랐다. 저런 엄마라도 좋다고 손을 꼭 잡고 있는 아이의 모습에서 과거를 엿봤다.
자신을 학대하던 어머니, 그 어머니를 놓지 못했던 자신을 말이다.
그래서였는지도 모른다. 루카스는 충동적인 결정을 내렸다.
그는 상처를 거의 다 치료한 론슈카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고 시선을 맞췄다. 그리고 말했다.
“상처를 회복하면 나를 따라가지 않겠나?”
그 말에 론슈카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원하는 건 주지 못할지도 모르겠지만, 모자람 없이 자라게 해 주겠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루카스, 그는 공작가의 장남이었으니까.
비록 권력에 회의를 느껴 가문을 뛰쳐나오긴 했지만, 할머니 쪽으로부터 물려받은 많은 재산이 있었기에 원하는 대로 살 수 있었다.
론슈카가 가장 원하는 어머니의 사랑은 줄 수 없을 테지만, 그 외의 것은 얼마든지 제공할 수 있을 터.
“나와 함께 가자.”
잠시 루카스에게로 향하던 붉은 눈동자가 옆으로 굴러갔다. 그곳에는 놀란 표정을 지은 아이의 엄마가 있었다.
아이가 물었다.
“어, 엄마도 같이?”
“아니, 너 혼자서.”
루카스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아이 엄마의 표정이 급격하게 무너졌다. 물기에 젖은 초록빛 눈동자가 흐려지며 당장이라도 눈물을 쏟을 듯했다.
그러나 그녀는 울지 않았다.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서 필사적으로 눈물을 참아 냈다.
수많은 감정이 눈을 통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결론을 내린 듯 감정이 호수 속의 나무처럼 조용히 가라앉았다.
“호, 호, 혼자?”
론슈카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몸을 사시나무처럼 떨기 시작했다.
“아, 아, 안 돼! 어, 엄마랑 같이!”
“아니, 네 엄마는 안 돼.”
“왜, 왜?”
론슈카는 당황한 목소리로 말을 평소보다 더 심하게 더듬었다.
아이가 당황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루카스는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 그저 아이를 설득하려 할 뿐이었다.
“널 아프게 하니까.”
“아, 안 아파!”
론슈카가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작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델의 손을 꽉 잡으며 손톱을 박아 넣었다. 그로도 모자라 아델의 팔을 꼭 잡고 온몸으로 매달렸다.
엄마가 절대 보낼 수 없다고 말해 주길 원했으나, 그런 답은 나오지 않았다. 겁이 덜컥 났다.
역시 내가 걸리적거렸던 걸까?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엄마랑 떨어지지 않을 수 있을까?
론슈카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그러다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생각해 보니 루카스는 자신이 괴물인 걸 모르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걸 알게 되면 저와 함께 가지는 말을 취소할 게 분명하다.
“나, 난 괴물이야!”
그렇게 외치고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제 쏟아질 폭언을 생각했으나, 아무런 목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의아함에 눈을 뜨니 루카스가 한층 더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내내 무뚝뚝하던 얼굴이 일그러진 채 론슈카를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뭐, 뭘?”
“괴물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럼 어째서 괴물인가. 그 질문에 론슈카는 머뭇거리다가 속삭이듯 말했다.
“부, 불.”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론슈카의 발 앞에서 작은 불꽃이 확 피어났다.
“으악! 불이 났다!”
그걸 본 의원은 놀라 비명을 지르고 물을 찾아 날뛰었다.
반면 아델은 담담한 표정으로 론슈카를 보호하듯 꼭 끌어안았다. 루카스는 그 과정을 자세히 지켜보고 있었다.
불은 금방 꺼졌으나, 의원에게 의혹을 남겼다. 그는 친절하던 태도를 버리고 론슈카를 경계했다.
론슈카에게는 일상이었다. 그에게 관심을 가지고 다가왔던 이들 중 끝까지 곁에 남아 있는 사람은 없었다.
언제나 곁에 있어 주던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아델, 엄마.
고통을 주는 사람도, 기쁨을 주는 사람도 전부 한 사람이었다. 그를 미워하긴 했지만, 다른 사람들처럼 침을 뱉거나 때린 적은 없었다.
그러니까 의원의 태도는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새삼 그런 것에 상처받지 않는다. 지금은 그저 꼭 끌어안은 엄마의 품이 기쁘기만 할 뿐이었다.
그때, 루카스가 가까이 다가와 탄 자국이 남은 바닥을 훑었다. 이어 론슈카에게 물었다.
“네가 한 건가?”
그 말에 론슈카는 답했다.
“나, 난 괴물이니까 할 수 있어.”
무섭지? 이제 데려갈 수 없겠지?
그런 의도를 담아 최대한 무섭게 말했으나 루카스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표정으로, 론슈카를 바라보던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너, 정령사의 재능이 있구나.”
루카스가 그렇게 말하자마자 론슈카를 꼭 끌어안고 있던 아델의 팔에서 힘이 빠졌다.
처음으로 론슈카의 재능을 알아보는 사람이 나왔다. 심지어 그 사람은 아이를 돌봐 주겠다고 하던 사람이었다.
전생과 현생의 일로 사람이 얼마나 믿을 수 없는 존재인지는 알고 있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어쩌면 죄인인 자신 말고도 론슈카를 인정하고 행복하게 해 줄 사람이 있지 않을까.
점점 빠지는 힘에 론슈카는 덜컥 겁이 났다.
“어, 어, 엄마?”
론슈카는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쥐어짜 내 물었다. 간절한 마음을 담아서.
“나, 나, 날 버릴 거야?”
숲에서는 쉽게 포기했던 마음이 이제는 달라졌다. 처음으로 맛본 엄마의 관심은 너무나도 달콤해서 이제 와서 포기할 수 없었다.
론슈카는 애써 웃으며 말했다.
“나, 나 울지도 않는데. 바, 밥도 조금 먹는데. 이, 일도 잘할 건데.”
아이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을 필사적으로 늘어놓았다.
밥은 하루에 한 번, 조금만 먹으면 된다. 그것도 힘들면 아예 주지 않아도 되었다.
나중에 배가 아파지긴 했지만, 나무껍질을 벗겨 먹거나 풀을 뜯어 먹으면 된다. 일은 해 본 적이 없었지만, 자주 봤으니 어떻게든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