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
아이에게는 그 끔찍하던 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낡은 옷은 아직도 흙이 묻어 지저분하고, 드러난 살에는 상처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아델은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끔찍한 통증에 머리까지 아파 왔지만, 지금은 그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이리, 이리 오렴.”
양팔을 벌리며 이름을 부르자, 한참을 망설이던 아이가 천천히 그녀에게로 다가왔다.
그러나 움찔거리면서 망설이는 마음이 동작에 고스란히 묻어났다. 그래도 아델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렸다.
천천히 다가온 론슈카의 손이 아델에게 닿았다. 그 순간의 벅차오르는 감정이란. 말로 설명하기 어려웠다.
“론슈카, 내 아들.”
아델은 조심스럽게 아이를 품에 안았다. 하고 싶은 말도 많았고, 해 주고 싶은 것도 많았으나 당장은 이 말밖에 할 수 없었다.
“무사해서 다행이야.”
그 말에 론슈카가 가만히 아델을 올려다보았다. 저를 그토록 모질게 대한 어미였음에도 아이의 시선에 담긴 것은 증오가 아니었다.
그저 무한한 애정.
“엄마가 미안해.”
눈가에 열이 올랐다. 당장이라도 울고 싶은 걸 참고 론슈카를 더 세게 끌어안았다.
지금만은 등의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바로 앞의 아이에게 모든 신경이 쏠릴 뿐이었다.
“괘, 괜찮아. 나는 괴물이니까.”
그런 아델을 이해한다며, 론슈카는 자신을 괴물이라고 불렀다.
아니, 아니다. 아이는 괴물이 아니었다. 그저 감당하기 어려운 힘을 타고난 특별한 아이일 뿐이었다.
“아니야, 론슈카는 괴물이 아니야.”
아델은 입술을 꾹 깨물며 울음을 참았다. 론슈카도 울지 않고 있는데, 자신이 우는 건 너무나도 염치가 없었다. 그래서 필사적으로 눈물을 참았다.
“론슈카는 그냥 특별한 아이일 뿐이야.”
“트, 특별해?”
“응, 특별해.”
“트, 트, 특별한 게 뭐야?”
“남들과 조금 다르지만 사랑스럽다는 의미지.”
“사, 사랑.”
론슈카가 입술을 비틀며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얼핏 보면 비웃는 듯한 표정이었으나, 아델은 알고 있었다. 아이는 그저 웃고 싶을 뿐이었다.
하지만 살아온 세월이 너무 힘들어서, 얼굴의 상처가 아파서 제대로 웃지 못하는 것뿐이었다.
먹먹한 심정에 입술만 달싹이는데, 그녀의 표정을 본 아이가 화들짝 놀라며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론슈카?”
“이, 이상하니까.”
“이상하지 않아.”
아델은 과거의 자신을 후회하며, 희미하게 웃었다. 아이가 웃지 못하는 만큼 자신이 웃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델은 활짝 웃었다. 순간 머리가 핑 하고 어지러워졌지만, 웃는 얼굴을 지우지 않았다.
그리고 그 순간, 뒤늦게야 방문이 열려 있음을 인식했다. 또한 처음 보는 장신의 남자가 거기 서 있음을 알게 되었다.
가장 먼저 눈길이 닿은 곳은 길게 기른 은발이었다.
‘귀족이구나.’
평민 남자는 머리카락을 길게 기르는 경우가 드물었다. 일하는 데 걸리적거리고 관리가 어렵기 때문이었다.
다음으로 눈에 들어온 곳은 깊은 보랏빛 눈동자였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눈동자가 아델을 바라보고 있었다.
“누구세요?”
아델은 목소리를 쥐어짜 물었다. 열은 더 오르고 있었고, 등은 이제 축축하게 젖어 들기 시작했다. 갈무리한 상처가 터진 모양이었다.
그 상황에서 남자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성큼성큼 다가오는 것에 위협을 느껴 론슈카를 꼭 끌어안았다.
가까이 다가온 남자는 론슈카를 안아다 아델과 떨어트려 놓았다.
“엄마!”
아델이 자신을 부르는 론슈카의 목소리에 당황하여 두 팔만 휘젓고 있는데,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단 눕지.”
“네?”
“누우라고. 상처가 도로 터지지 않았나. 의원을 불러오겠다.”
다소 긴 설명에 아델은 어느 정도 상황을 파악했다. 상처를 걱정해 주는 걸 보니 그들을 해칠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그제야 마음을 놓고 침대 위에 엎드려 눕자, 남자가 도로 방을 나갔다. 이어 떨어트려 놓았던 론슈카가 냉큼 달려와 침대 옆에 붙어 섰다.
그러고 보니 론슈카도 치료를 받아야 했다. 왜 의원이 아이는 봐 주지 않았던 걸까? 설마 아이의 얼굴에 난 상처 자국 때문에 그런 건 아니겠지?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불의 정령이 만든 화재 속에서 생긴 상처. 그 상처는 아델에게 있어서 자신이 아이를 방치해 온 증거 같은 것이었다.
불이 나던 날, 아델은 주저앉아 떨고 있는 론슈카를 봤으면서도 혼자 도망쳤다. 굳어 있던 아이는 불타오르며 떨어지는 나무 조각을 얼굴에 맞고 놀라서 밖으로 뛰쳐나왔다.
지금 생각하면 천만다행이었지만, 그 때문에 아이에게 상처가 생겼다. 이후 제대로 된 치료를 하지 못해 흉터는 생각보다 더 크게 남았다.
아델은 손을 내밀어 론슈카의 얼굴 근처를 더듬었다. 차마 만질 수는 없어 허공만 더듬다 손을 내렸다. 그리고 자문했다.
‘내가 론슈카를 만져도 될까?’
지금까지는 아이를 위한답시고 가까이 다가갔는데, 어쩌면 그게 잘못일지도 몰랐다.
엄마의 애정을 갈구하고 있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미움을 받아 오던 아이였다. 무섭지 않을 리 없었다.
* * *
어색하게 허공을 맴돌던 손이 물러가자, 론슈카가 그를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왜 만져 주지 않는 걸까?’
깨어난 엄마는 여전히 다정했다. 그게 무척이나 좋았는데, 갑자기 만지는 걸 망설이는 듯했다.
역시 내가 싫은 걸까? 론슈카는 아파 오는 가슴께를 손으로 꾹 눌렀다. 그러고는 깊게 숨을 들이켜고 먼저 손을 뻗어 보았다.
‘너 같은 거, 사라져 버려!’
악담을 퍼붓던 엄마가 떠올랐다.
눈앞이 까매지며 몸이 떨려 오기 시작했지만, 용기를 내어 떨리는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침대 위에 떨어져 있는 큰 손 위에 자신의 작은 손을 얹었다.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던 엄마가 이내 부드럽게 웃었다.
자신의 끔찍한 웃음과는 다른 예쁜 웃음이었다. 그러고는 손을 가만히 뺐다. 웃으면서 떨어지는 손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역시 잘못한 건가? 엄마가 만져도 된다고 하지 않았는데 멋대로 만져서 화가 난 걸까?
엄마가 이전처럼 화를 낼 것이란 생각에 론슈카는 질끈 눈을 감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그저 작은 손을 통해 온기만이 전해져 올 뿐이었다.
“엄마가 만져도 괜찮겠니?”
상냥한 목소리가 물어 왔다.
“괘, 괜찮아!”
너무 소리를 높인 탓인지 목소리가 이상하게 들렸지만, 그것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혹시라도 엄마가 듣지 못할까 봐 우렁차게 대답했다. 그 목소리에 엄마가 재차 웃더니 안심했다는 듯이 말했다.
“다행이다.”
뭐가 다행인지는 몰랐지만, 론슈카도 엄마를 따라 웃었다.
엄마가 웃어 줘서 기뻤다. 자신을 여전히 만져 줘서 행복했다.
그는 히죽거리면서 자유로운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보기 흉할 테니 가린 것이었다. 그러다 문득 아직 치료하지 않은 자신의 상처를 떠올렸다.
상처를 보면 엄마가 속상해한댔는데, 아직 속상해하지 않는 걸 보면 상처가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론슈카는 상처투성이의 발을 꼼지락거렸다. 엄마한테 보여 주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잡고 있는 손을 놓고 싶지도 않았다.
‘상처는 조금 더 있다가 보여 줘도 되지 않을까?’
론슈카는 그렇게 생각하며 계속 히죽거렸다. 작은 가슴이 기대감으로 두근거렸다.
태어나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이 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헛된 바람일 뿐이었나 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닫혀 있던 문이 다시 열리며 남자, 루카스가 의원과 함께 들어섰다.
“이런 이런.”
나이 든 의원은 한숨지으며 아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고는 곧바로 등의 상처를 보려 했으나, 그 전에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전 괜찮으니까 제 아들의 상처를 먼저 봐 주세요.”
그 말에 의원은 엄마와 손을 잡고 있는 아이를 힐끔 보고는 혀를 찼다.
엄마가 아이를 구박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는데 하는 걸 보니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이리 애틋한 모자가 어디 있을까.
하마터면 오해로 인해 말실수를 할 뻔했다. 의원은 그렇게 생각하며 아델에게로 몸을 기울였다.
“곰한테 당한 상처가 더 큰데. 누가 아이 엄마 아니랄까 봐. 아이는 당신의 상처를 먼저 보고 봐 주겠소.”
의원은 그렇게 말하며 아델의 상처를 살폈다.
터진 상처를 깨끗이 소독한 천으로 닦아 내고, 다시 지혈초를 붙였다. 그런 후 붕대를 갈아 주고 나니 아델의 표정이 좀 더 평온해졌다.
이제는 여자의 아들, 론슈카를 치료해 줄 차례였다. 아델을 치료하고 급한 환자가 생겨 미처 보지 못했는데, 여전히 상태가 엉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