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은 사뭇 진지한 레온하르트를 보며 차분하게 대답했다.
“걱정할 만큼 큰 부상은 아닙니다.”
“그런데 3주나 걸린다고?”
요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벼운 인대 부상이라 물론 더 빨리 회복될 수도 있습니다.”
“…….”
“개막이 얼마 안 남았으니 구단 차원에서 관리를 해 줄 겁니다. 그러니까 너무 걱정 마세요. 가장 중요한 다리 부상이라 한동안 푹 쉬기도 할 거고요.”
“그러면!”
응?
“그러면 네가 회복될 때까지 내가 널 간호하도록 하지.”
요한은 저만 믿으라는 듯 가슴을 탁탁 두드리며 핸드폰을 꺼내 드는 레온하르트를 멍하니 응시했다.
레온하르트는 미간까지 좁히며 검색 사이트에 ‘올바른 간호법’이라는 문구를 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요한의 미간이 좁아졌다.
어쩐지…….
‘불안하군.’
* * *
요한의 사고 소식이 들려온 지 3주가 지나고 어느새 프리미어리그 개막일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어느 날이었다.
“요한!”
도서관에서 남은 공부를 이어 가던 안나마리아 디어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그녀의 오랜 친구인 요한으로부터 온 전화였다.
그간 자신의 공부와 요한의 재활 훈련으로 인해 도통 만날 시간이 없었던지라, 얼른 책을 덮고 도서관을 나선 그녀는 약속 장소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는 남자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에 모자를 꾹 눌러쓰고 있던 요한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왔어?”
“많이 기다렸니?”
“아니, 별로.”
헉헉, 가쁜 숨소리를 내며 물음을 던지자 요한이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고개를 가로저었다.
생긋 웃으며 제게로 다가온 종업원에게 라테 한 잔을 주문한 안나마리아는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고 있는 요한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요한.”
밝게 반기기는 했지만 어딘가 근심이 가득한 표정.
알고 지낸 지 수년의 세월이 흘렀기에 친구의 변화쯤은 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
힘없어 보이는 요한의 푸른 눈동자가 제게 꽂히자 안나마리아는 질문을 던졌다.
“무슨 일 있어?”
“아.”
있구나.
근래 요한에게 악재가 겹쳤던 것을 모르지 않았다.
LA에서의 사고 이후 팀에서 요한의 경쟁 상대들을 복귀시키거나 새로 영입까지 했으니, 어쩌면 자신의 입지에 대한 불안감을 느꼈겠지.
그래서 이렇게 얼굴이 어두워 보이는 걸까?
원래도 잘 생긋거리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낯빛이 어둡지는 않았기에 안나마리아는 걱정이 가득 담긴 얼굴로 물었다.
잠시 주저하듯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던 요한이 곧 결심했다는 듯 그녀를 바라봤다.
“넘어오지…… 않아.”
응?
“뭐가?”
뜬금없는 요한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고개를 갸웃거리던 안나마리아는 이내 탁, 손뼉을 치며 붉은 입술을 달싹였다.
“앨리한테 들었어. 이번 주부터 다시 훈련에 나가고 있다며? 넘어오지 않는다는 건…… 패스가 안 넘어온다는 거지? 어? 그런데 너한테 패스를 안 해 준다고? 그럴 리가. 네가 메인 공격수인데 왜…….”
“공이 아니야, 안나.”
“……어?”
요한은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공이 아니라면? 안나마리아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요한을 바라봤다.
요한이 한숨을 푹 내쉬더니 말을 이었다.
“그간 레온이 내 간호를 해 준 건 알고 있지?”
“당연하지! 심지어 악셀 씨가 바쁜 일 다 제쳐 두고 처음 며칠은 휴가까지 냈다며. 너랑 같이 있으려고!”
보면 볼수록 진국인 남자였다. 자신이 백기를 들 수밖에 없을 만큼.
그 오만한 남자가 제 친구를 진심으로 대하는 모습을 지켜봤던 안나마리아는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그 반응에 씁쓸하게 웃은 요한은 ‘그래. 뭐, 같이 있기는 했지…….’라고 중얼거렸다.
“요한?”
“같이 있기만 하고, 전혀 스킨십을 하지 않아.”
“……스킨십?”
“…….”
“요한?”
“다 나은 지가 언젠데, 제기랄.”
차분한 친구의 입에서 욕설이 흘러나오는 모습이 무척이나 낯선 듯 안나마리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요한은 사뭇 진지하게 안나를 바라보며 입 안에서만 맴돌던 말을 꺼냈다.
“내게 매력을 느끼지 않는 건가?”
“어어?”
“다른 것도 아니고 고작 인대 부상인데, 왜 섹스를 안 하는 거지?”
“요, 요한.”
“눈치를 줬는데도 알아듣지를 못하더라고. 아니면 일부러 모르는 척하는 건가.”
“아.”
“안나.”
“으응?”
“넌 내가, 유리처럼 보여?”
뭐?
“건드리면 와르르 부서질 만큼 나약해 보이는 걸까. 그 사람 눈에는.”
“호, 호호.”
안나마리아는 불만이 가득한 요한의 낯선 모습에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한참이나 그간 쌓인 감정을 토로하던 요한은 이내 한숨을 푹 내쉬며 중얼거렸다.
“미안해, 안나. 안 그래도 바쁜 너한테 이런 이야기까지 하고 싶진 않았는데…….”
낮게 구시렁거리던 요한이 돌연 중얼거리며 사과의 말을 하자 안나마리아는 한동안 그를 가만히 응시했다.
‘그러니까, 또 고전하고 있다는 거군.’
만약 과거의 안나마리아였다면 요한의 이야기를 듣고 질투를 하거나 혹은 부러워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의 그녀는 자신의 친구인 요한이 진심으로 행복하기를 바랐고, 그의 사랑도 성공하기를 바랐다.
“요한.”
평생의 인연을 만난 요한은 이런 쪽에서 여전히 서툴렀다. 아래턱을 슥슥 만지며 고민하는 척하던 안나마리아는 이내 싱긋 웃으며 입술을 달싹였다.
“내가 보기에 너는 가끔씩 밀고 나가야 할 때 물러나는 경우가 있어.”
“물러나는…… 경우?”
안나마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는 네 마음을 제대로 표현 못 하고 돌려서 표현하지.”
“아…….”
작게 탄성을 터트리는 것을 보니 제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눈치챈 모양이다. 안나마리아는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럴 땐 말이지, 이렇게 해 보는 거야.”
안나마리아는 귀를 기울이는 요한에게 작게 속삭였다.
* * *
“후우.”
기다란 지하 통로를 지나 요한의 집과 이어진 지하 문을 열기 직전, 레온하르트 악셀은 크게 호흡을 골랐다.
벌렁거리던 가슴은 곧 안정을 되찾았지만 머릿속에 자리 잡은 걱정은 여전히 떨칠 수가 없었다.
‘오늘도…… 긴 싸움이 되겠군.’
레온하르트 악셀은 지난 3주 동안 스스로와의 지독한 싸움을 이어 가고 있었다.
그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부상이라면 당연히 조심해야지. 보통 사람도 아니고 축구 선수잖아. 거기다 개막을 코앞에 둔.]
심장을 철렁거리게 만든 요한의 부상 이후, 나날이 좋아지는 모습이 보이기는 했지만 이상하게 손을 대기가 어려웠다.
조언이랍시고 던진 이안 키스트의 말이 적잖은 영향을 끼친 것이 분명했다.
요한과 같이 살게 된 이후, 더욱 스스로를 제어하기가 어려웠다. 요한의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에도 영향을 받는지라, 더욱 그럴지도 모른다.
‘견뎌 내, 레온하르트 악셀.’
넌 요한의 든든한 연인이지, 섹스에 환장한 녀석이 아니라고.
물론 자신의 연인이 가만히 있어도 빛이 나고, 손을 뻗고 싶고, 섹시한 것은 사실이나 아픈 사람을 건드릴 만큼 굶주리지는 않았다.
아니, 굶주려 있긴 하지만 요한의 복귀가 가까워지고 있지 않은가.
그는 누구보다 자신의 커리어를 뿌듯하게 여기고, 이제 막 주목받기 시작한 선수였다.
어느 업계나 그렇듯, 본인이 종사하고 있는 업계에서 살아남는 과정은 치열했다.
요한에게 쏟아지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가 계속되기를 바라는 레온하르트 입장에서는 확실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요한, 나 왔어.”
레온하르트는 닫혀 있던 현관문을 끼익, 열고 드넓은 거실 안으로 들어섰다.
근 3주 동안 같은 일정을 반복해 온 요한이었으므로 지금 이 시간에는 집중 치료실에서 다리 마사지를 하고 있어야 했다.
없나?
그런데 어찌 된 셈인지 요한은 있어야 할 장소에 보이지 않았다.
레온하르트는 고개를 갸웃대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요한?”
거실에도 없고.
“여기 있나?”
침실 옆 욕실도 마찬가지.
잘 시간은 아닌데 벌써 침실에 있는 건가.
그 외 다른 장소들을 더 찾아보던 레온하르트는 요한과 자신이 주로 잠을 자는 침실로 향했다.
달칵, 문을 열자 낯익은 얼굴이 시야로 들어왔다.
“여기 있었군, 요한. 한참 찾았어.”
“오셨습니까, 레온.”
“여기 이거. 먹고 싶다고 했던 레몬 타르트야. 이 집 거 맞지?”
“……네. 거기 두십시오.”
“그래. 그런데 샤워 가운은 왜 입고 있어? 치료가 이제 끝났나?”
“…….”
타르트가 든 봉투를 근처 테이블에 올려 둔 레온하르트는 침대 위의 요한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요한?”
요한의 눈빛이 평소와 다르다. 레온하르트는 그의 낯선 모습에 눈썹을 꿈틀거렸다.
뭔가…… 이상하군.
“레온.”
그때였다.
수상한 분위기에 움찔거리던 레온하르트는 저를 부르는 요한을 직시했다. 요한은 그런 그에게 손을 쭉 내밀며 말했다.
아니.
“벗겨.”
명령했다.
121화 - 외전 6
‘……뭐?’
요한의 입 밖으로 흘러나온 말은 매우 짧았으나, 적어도 레온하르트 악셀에게 미치는 파급력은 상당했다. 레온하르트는 제 귀를 의심했다.
지금 내가 무슨 소리를……!
그리고 그 순간, 얼이 빠진 상태에서 멈칫거리고 있는 레온하르트를 쳐다보던 요한이 스윽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슥.
레온하르트는 저도 모르게 뒤로 발을 움직였다.
“피하는 겁니까?”
“어어?”
“피하는 거냐고요.”
직설적인 발언이었지만 아주 살짝 상처가 엿보이는 듯한 말투에 레온하르트는 힘껏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자 요한이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왜 뒷걸음질 치는 거죠?”
“그, 그게……. 다, 당혹스러워서.”
“당혹?”
더는 자제할 수 없을까 봐.
‘젠장할.’
입술을 잘근 깨문 레온하르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요한의 모습을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전치 4주의 진단을 받았던 요한의 왼쪽 발목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회복되었다. 아마도 집에서의 극진한 간호와 구단에서의 관리가 효과를 본 것이 분명했다.
개막 일정에 맞추어 무리하게 운동을 한 것도 아니었기에 효과가 남달랐다.
그래서일까.
하얀 샤워 가운을 입고 있는 요한의 몸은 더할 나위 없이 건강해 보였다.
꿀꺽.
저도 모르게 레온하르트의 목구멍 사이로 침이 넘어갔다.
상대가 재활 치료 중인 축구 선수라는 것을 똑똑히 인지하고 있음에도, 와락 덮쳐 버리고 싶을 만큼 섹시하게 느껴졌다.
고개를 아래로 떨군 레온하르트는 천천히 소리를 냈다.
“요한.”
“네.”
“지금 설마…… 날 유혹하는 건 아니지?”
완쾌까지 얼마 남지 않았건만, 이런 유혹은 참으로 곤혹스러웠다.
요한이 훨훨 날기를 바라는 그의 입장에서는 더욱 그랬다.
떨리는 목소리로 물음을 던진 레온하르트는 그 말이 끝나자마자 스윽, 제 앞으로 다가오는 요한의 발을 발견했다.
깜짝 놀라 고개를 드니 요한이 기다란 팔을 뻗어 레온하르트의 목을 감쌌다.
“그걸 이제 아셨습니까?”
뭐?
“레온은 정말 눈치가 없군요.”
“요, 요한.”
“그러니 제발.”
요한이 속삭였다.
“벗겨 주십시오. 지금, 당장.”
쿵쿵.
칼만 들지 않았을 뿐, 뱉어 내는 말들이 날카롭게 심장을 파고든다.
명령과 다름없는 요한의 발언에 고요하던 가슴이 멋대로 들썩이는 것을 보면.
부드럽고 강력한 목소리가 귓가에 와닿자 레온하르트는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제 눈에 들어온 요한의 파란 눈동자는 무언가를 결심한 듯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요한은 쉽게 대답하지 못하는 레온하르트를 보며 말을 이어 나갔다.
“물론 제가 부상당한 상태이긴 합니다만, 치료에 전념한 덕에 빠르게 회복되고 있습니다.”
“요한.”
“레온, 저는 당신이 건드리면 부서질 만큼 약한 존재가 아닙니다.”
계속 주저하는 레온하르트의 모습에 요한의 말이 이어졌다.
“제게는 성욕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연인도 있어요. 성욕도 있고, 연인도 있으니 섹스를 하고 싶어 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
“물론 그동안 당신이 그런 태도를 취한 건 이해합니다. 아무래도 민감한 부위인 데다 재발의 위험이 있으니 불안하셨겠죠. 하지만…….”
요한의 벽안이 레온하르트에게 꽂혔다.
“더는 못 참겠습니다.”
요한은 짧고도 강하게 제 의견을 피력했다. 레온하르트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레온.”
“…….”
“우리가 각자의 집을 나와 함께 살기로 결정한 건, 서로를 더욱더 많이 탐하기 위해서 아닙니까?”
틀린 말이 아니었다. 계속되는 요한의 말에 레온하르트는 자신이 꿀 먹은 벙어리라도 된 것 같았다.
“당신이 저를 소중하게 여겨 주는 게 좋습니다. 사랑받고 있는 느낌이니까. 그런데 선이 지나치면 서운할 수도 있는 겁니다.”
“…….”
“당신이 안아 주지 않아서 요즘 무척 서운했습니다. 혹시 내게 매력이 부족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할 만큼요.”
“…….”
“레온, 난 당신과 사랑을 나누고 싶습니다. 특히 지금 이 순간, 강하게요.”
쿵쾅거리던 레온하르트의 심장이 끝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흔들림 없는 요한의 눈빛과 자신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친 순간부터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이거…….
‘한 방 먹었군.’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레온하르트는 돌연 큰 웃음을 터트리며 입꼬리를 올렸다.
한참이나 웃던 레온하르트가 이번엔 조금 전과 다른 눈빛으로 입술을 달싹였다.
“요한.”
“네.”
“한 가지만 물어도 되나?”
요한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자 레온하르트가 뒤로 물렸던 발걸음을 다시 앞으로 뻗었다.
한 걸음.
두 걸음.
가까워지는 거리만큼, 숨결 역시 가까워진다.
멀어졌던 시선이 다시금 거리를 좁히고 호흡이 빨라졌다.
“하아.”
길게 뱉어 내는 요한의 숨이 코끝을 간질일 만큼 두 사람 사이가 좁아졌을 때, 레온하르트가 입 안에 담고 있던 질문을 밖으로 던졌다.
“이제 참지…… 않아도 돼?”
“…….”
“잘됐어. 사실 인내는 나한테 그리 익숙하지……!”
작은 미소와 함께 중얼거리던 레온하르트의 말은 대답 대신 발꿈치를 들어 그의 입술을 자신의 입술로 덮어 버린 요한의 행동에 의해 삼켜졌다.
‘아.’
뜨거운 혀끝이 입술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자 단단하게 웅크리고 있던 레온하르트의 혀 역시 금세 물컹해졌다.
놓지 않겠다는 듯 강하게 옭아매는 요한은 꽤 굶주린 듯 레온하르트의 모든 것을 빨아당길 기세였다.
주저하지 않는 그의 모습에 순간 현기증이 일었던 레온하르트는 당황하지 않으려 애썼다.
정처없이 허공을 휘젓던 레온하르트의 손이 겨우 요한의 등에 닿은 후에야 그는 침착함을 되찾았다.
레온하르트는 순식간에 요한을 제 품으로 끌어당겼다.
“하!”
진한 타액을 나누며 짙은 숨결을 교환하던 요한의 입 밖으로 탄성이 흘러나왔다.
두 사람의 입술이 간신히 떨어진 직후, 레온하르트는 제 품 안에서 눈썹을 파르르 떨고 있는 요한을 발견할 수 있었다.
분명, 스스로 벗겨 달라 했었지.
매듭을 풀면 스르륵 흘러내리는 샤워 가운이었지만, 선뜻 풀 생각이 들지 않는다. 레온하르트는 입꼬리를 슥 올리더니 한 손을 벌어진 샤워 가운 틈 사이로 집어넣었다.
“……!”
차가운 레온하르트의 손이 자신의 뜨거운 몸과 닿자 요한이 두 눈을 크게 떴다. 거침없이 일렁이는 그의 푸른 눈동자가 레온하르트의 신경을 더욱 자극했다.
유혹한 것은 본인이면서, 손끝이 스칠 때마다 움찔거리는 요한의 모습에 괴리감이 느껴져 더욱 짜릿했다.
젠장.
그와 스킨십을 하면 이젠 자연스럽게 반응하는 아랫도리에 묵직한 기운이 용솟음친다.
도통 마음대로 제어되지 않는 신체의 반응에 낮게 욕설을 흘리던 레온하르트는 어느새 솟아난 요한의 돌기를 손끝으로 지분거렸다.
“으…….”
오소소 돋아난 유두 끝을 엄지와 검지로 만지작대자 요한의 고운 미간이 좁아졌다.
그런 요한의 볼에 촉, 입을 맞춘 레온하르트는 다시 고개를 숙여 이번에는 더욱더 깊숙한 곳으로 손을 내렸다.
탄탄한 복근을 지나 더 은밀하게 숨겨진 곳으로 향하는 그의 손길은 거침이 없었다.
레온하르트 악셀의 기다란 손가락이 요한의 사타구니 사이에서 움직임을 멈췄다.
‘아.’
요한이 속옷을 입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아주 잠깐 놀랐던 레온하르트는 곧 요한의 마음을 이해했다.
단단히 각오했나 보군.
하긴, 지난 3주 동안 저 역시 섹스를 참기 위해 인고의 시간을 보내지 않았던가.
요한도 남자이니만큼 힘들었겠지.
그제야 납득이 된 레온하르트는 씩 웃으며 제 손가락 끝이 스칠수록 움찔거리는 빈도가 잦아지는 요한의 다리 사이를 덥석 움켜쥐었다.
“읍!”
신음을 참기 위해 입술을 꽉 악물고 있던 요한이 커다란 손바닥으로 피스톤질을 시작하는 레온하르트로 인해 결국 입을 벌렸다. 기다란 요한의 페니스가 단단해지며 서서히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하아, 하아, 읏, 으으!”
마주 보고 서 있는 상태라 그런지, 요한이 숨을 헐떡거리는 소리부터 그가 짓고 있는 표정과 느낌까지 오롯이 레온하르트에게 전달되었다.
빌어……먹을.
이제 더는 참기 힘든 상황에 다다랐을 때는, 요한이 이미 제 손안에서 한 번 사정을 해 버린 뒤였다.
삼켜 버리고 싶다.
몇 주 동안 참고 또 참았던 만큼, 눈앞의 요한을 마구 탐해 버리고 싶다.
뜨거운 감정의 소용돌이가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거세진 순간, 레온하르트의 또 다른 손이 요한의 허리에 걸쳐져 있던 샤워 가운을 거칠게 잡아 내렸다.
스륵, 툭!
두근. 두근.
벗기기 전부터 이미 붉은 반점을 새기고 있던 요한의 나신이 한눈에 들어오자 레온하르트는 요한의 손목을 덥석 잡고 그를 침대 쪽으로 끌어당겼다.
붉게 충혈된 레온하르트의 눈빛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차린 요한은 말없이 침대 위 매트리스 위로 누웠다.
“요한.”
“네.”
“안고 싶어.”
네 가장 깊숙하고 뜨거운 곳까지 완벽하게 안아 버리고 싶어.
강한 열망이 온몸을 휘감는다. 그간 어떻게 참았던 건지 스스로가 당혹스러울 만큼 갈망의 정도가 짙어졌다.
요한은 입고 있던 옷들을 훌훌 벗어 던지기 시작하는 레온하르트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 ‘들어가도 돼?’ 하고 한 번 더 속삭이는 그를 향해 웃어 보였다.
“레온.”
“응.”
“이런 것까지 일일이 보고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
“뭐, 그렇게 걱정되신다면…… 이번엔 제가 당신 안으로 들어가는 것도 나쁘지는, 읏!”
묘한 눈웃음을 그리며 말을 잇던 요한은 보란 듯이 제 애널 속으로 굵직한 기둥을 집어넣는 레온하르트로 인해 다음 말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후우.”
아직은 빡빡한 요한의 애널이 레온하르트의 침입으로 인해 뻐끔거린다. 겨우 귀두의 끝 부분을 넣었던 레온하르트는 요한의 다리를 좌우로 벌리고선 그의 배를 슥슥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위험한…… 소리를 하는군.”
“……자극이 된 것 같네요.”
어디 그냥 자극이 된 것뿐일까.
요한이 지지 않고 눈썹을 꿈틀거리며 대꾸하자 레온하르트의 전신이 더욱 달아오른다. 평온해 보이는 말투와 달리, 한껏 흥분한 요한의 애널에서는 진한 애액이 쉴 새 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레온하르트 악셀은 그런 연인을 온전히 느끼기 위해 요한의 깊숙한 곳까지 제 페니스를 밀어 넣으며 허리를 튕기기 시작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하게 탐해 주겠어.
* * *
“으음.”
색색거리는 레온하르트 악셀의 숨소리가 방 안을 뒤덮은 새벽녘, 요한은 침대 위에서 깊이 잠든 레온하르트를 내려다보았다.
고요하기 짝이 없는 그 순간, 불현듯 안나마리아와 나누었던 대화가 머리를 스쳤다.
[이렇게 해 보는 거야.]
짙은 미소와 함께 해결책을 제시해 준 안나마리아는 확실히 제 친구다웠다. 누구보다 자신을 잘 파악하고 있었고, 훌륭한 조언을 여러 차례 해 주기도 했다.
그래서였을까. 항상 고민이 있으면 안나마리아에게 달려가곤 했던 요한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완벽한 조언을 얻을 수 있었다.
안나마리아는 자신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요한에게 더욱 직설적으로 말했다.
[노골적으로 표현해 보는 거지.]
[노골……적으로?]
[응, 노골적으로. 악셀 씨에게 네가 아주 많이 달아오른 상태라는 걸, 표현하는 거지.]
[…….]
[악셀 씨라면, 아마 금세 넘어올걸?]
요한의 고민 따위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손까지 휘휘 저으며 말하던 안나마리아의 미소가 눈앞에 아른거린다.
“요한…….”
피식 웃는 소리를 들은 건지, 사자 갈기처럼 마구 헝클어져 있던 레온하르트의 머리카락이 파르르 떨렸다.
제 이름을 부르며 뒤척이는 그의 머리 숲으로 기다란 손가락을 뻗은 요한은 차분하게 그의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었다. 그러고는 다시 레온하르트 근처로 몸을 뉘며 그를 끌어안았다.
‘고마워, 안나.’
유혹의 방법이 매우 노골적이어서 그것을 행한 스스로도 살짝 당혹스러웠지만 결과적으로는…….
‘나쁘지 않은 조언이었어.’
확실히, 만족스러웠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