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7화 (37/59)

그렇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레온하르트는 꽤 심각하게 고민했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기다림 끝에 돌아온 안나마리아의 반응은 그가 생각했던 것과 차이가 있었다.

[물론 제가 무대 위의 악셀 씨를 아주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요한과 악셀 씨의 관계를 인정하는 건 아니에요. 그러니 제가 당신을 마음에 들어 한다고 오해하면 곤란해요. 으…… 제길! 이건 다 요한을 위해서니까, 그 애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기 싫으니까! 그래서…… 그래서 이러는 거라고요.]

입술을 살짝 짓누르던 안나마리아는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다시 들어 올리며 레온하르트에게 말했다.

[보고 싶어…… 했어요. 줄곧. 그렇게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요한은 본 적이 없었는데. 그래서 질투가 나기는 하지만, 그 애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이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당신뿐이니까, 악셀 씨가 하세요.]

안나마리아 디어는 레온하르트 악셀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괜찮은 여자였다. 레온하르트는 어째서 요한이 그녀를 그토록 믿고 의지하는지, 그 순간 이해할 수 있었다.

멈칫하는 레온하르트를 보며 어디선가 준비해 온 꽃다발까지 내밀고선 ‘요한에게 줘요. 그 애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니까.’라고 말하는 안나마리아는 흔들리지 않았다.

덕분에, 레온하르트는 구하기 힘든 수국 꽃다발을 요한에게 내밀 수 있었다.

‘아.’

두근두근.

꽃다발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간다.

침실 문을 열고 들어온 요한이 침대에 앉아 꽃다발을 내밀고 있는 자신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자 레온하르트의 올라간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보고 있는 거 맞지?’

분명 요한이 안으로 들어오며 침실의 불을 켰고, 그 과정에서 자신을 똑똑히 발견했을 텐데 어찌 된 셈인지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1초, 2초…….

10초 정도 시간이 흐르자 어색한 웃음이 맺혔다.

오늘 오전, 안나마리아에게서 전해 들은 계획을 실천하기 위해 레온하르트 악셀은 부리나케 움직여야 했다. 다행히 요한의 경기는 저녁이었고 자신의 공연 역시 마티네가 아닌 밤 공연이었던지라 얼추 시간이 맞아떨어졌다.

그러나 요한이 집에 도착하기 전에 레온하르트가 침실에 들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주된 목표여서, 그 일을 실행하기까지 숨 가쁘게 뛸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굳어 버릴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너무 갑작스러웠나? 하하.”

레온하르트는 도무지 움직일 생각을 않는 요한을 응시하며 흠흠, 헛기침을 흘렸다. 그는 머쓱한 표정으로 꽃다발을 스윽 내려놓더니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났다.

“저기 요한, 뭐라고 말이라도…….”

계속된 침묵에 눈꼬리를 반쯤 휘고 있던 레온하르트가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그때였다.

‘……!’

레온하르트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던 요한이 돌연 입술을 꽉 악물더니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무표정한 요한의 얼굴이 그토록 많은 감정으로 물드는 것을 처음 목격한 레온하르트가 멈칫한 사이, 성큼성큼 다가온 요한이 양팔을 벌렸다. 레온하르트는 와락 저를 끌어안아 버리는 요한을 보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두근두근.

거칠게 뛰고 있는 가슴의 박동 소리가 귀에 닿았다. 레온하르트는 아래에서 느껴지는 요한의 체취에 천천히 고개를 내렸다.

안나마리아로부터 요한이 경기장에서 곧장 집으로 올 거라고 듣기는 했지만, 그가 내뱉는 숨결이 이토록 현실감 있게 느껴지는 까닭은 아마도 두 사람이 일주일 만에 재회를 했기 때문일 거라 생각했다.

레온하르트는 저를 안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요한의 손끝이 파르르 떨리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벅차올라 눈앞이 어지러웠다.

“악셀 씨.”

얼마나 안고 있었을까.

소리를 내뱉지 않아도 그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똑똑히 전달되는 느낌이었다. 그저 포옹을 할 뿐이건만, 요한의 감정과 흥분의 정도가 전해져 사타구니 쪽이 저릿했다. 당장이라도 그의 옷을 벗겨 내 침대 위를 뒹굴고 싶었지만 신사 된 도리로 참고 또 참았다.

그렇게 레온하르트가 인내와 처절하게 싸우고 있을 때, 요한이 고개를 들어 레온하르트를 바라봤다.

격렬하게 요동치던 레온하르트의 녹빛 눈동자가 요한을 향했다.

요한이 붉은 입술을 움직였다.

“보고 싶었습니다.”

“……!”

“너무…… 보고 싶었어요.”

진심을 가득 담은 요한의 말에 겨우 붙들고 있던 이성의 끈이 또다시 끊어졌다.

* * *

“아.”

멍하니 창밖을 응시하던 안나마리아는 낮은 탄성을 흘렸다.

감탄과 동시에 체념을 담기도 한 그 소리는, 안나마리아의 길고 길었던 첫사랑을 끝내는 외침이기도 했다.

“하아.”

환하게 반짝이던 요한의 침실이 순식간에 어둠으로 뒤덮이는 것을 지켜보던 안나마리아는 긴 숨을 흘렸다.

대체 이게 무슨 꼴이람.

고백 한 번 해 보지 못하고 끝나 버린 그녀의 사랑은 처음부터 가망이 없었다. 아무리 자신이 열렬하게 요한을 좋아한다고 해도, 상대가 제게 전혀 관심이 없는 것을.

그럼에도 요한을 향해 계속 마음을 주고 있었던 건, 요한이 계속해서 사랑을 찾지 못한다면 제게도 기회가 올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것도 다 끝났네.”

그 실낱같은 희망도 오늘 밤 이후로 끝이 나 버렸다.

안나마리아는 하하, 쓴 물이 가득 담긴 실소를 터트렸다.

어쩌면 이런 날이 올 것이라고 예상했던 건지도. 그래서 나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요한이 어렵게, 자신의 성적 취향에 대해 고백했을 때부터 안나마리아는 예감하고 있었다.

‘어떻게 말릴 수 있겠냐고…….’

다른 사람이라면.

이전처럼, 요한을 힘들게 하는 사람이라면 어떻게든 둘 사이를 찢어 놓았을 거다. 무슨 권한으로? 소꿉친구, 그리고 그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권한으로!

하지만…….

[좋아합니다.]

[……!]

[정말 많이, 좋아합니다. 같이하고 싶습니다. 무엇이든. 요한의 처음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그녀가 반했던 그 눈빛으로 그렇게 절절하게 말하는 웨스트엔드의 왕자라니.

‘물러날 수밖에 없잖아.’

안나마리아는 쓰게 웃으며 투덜거렸다.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그녀는 두 손 두 발 다 들어 버리고 말았다.

이렇게 된 이상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친구와 가장 좋아하는 배우가 행복해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수밖에 없겠다고, 굳게 마음먹은 그녀는 열려 있던 창문을 닫으려 했다.

“응?”

레드 가든과의 경기 이후, 요한의 집 주변에 진을 치고 있던 파파라치들이 사라졌다. 더 이상 요한에게서 무언가 뽑아낼 수 없을 거라 여긴 건지, 아니면 새로운 먹잇감을 찾은 건지 알 수는 없지만, 그녀와 요한, 그리고 앨리슨이 바라던 결과였다.

불행 중 다행이라 여기며 고요에 휩싸인 동네를 살피던 안나마리아는 요한의 집 앞에서 전진을 했다, 후진을 했다, 그리고 다시 전진을 이어 가고 있는 웬 SUV를 발견했다.

안나마리아의 눈이 가늘어졌다.

“뭐야, 저건?”

79화

“악셀 씨.”

레온하르트가 뿌연 수증기를 헤치고 욕실을 나올 무렵이었다. 레온하르트는 자신의 샤워 가운을 잡아끄는 누군가의 손길에 고개를 돌렸다.

머리카락 끝으로 뚝뚝, 흘러내리는 물방울을 닦으려던 그는 욕실 문 근처에 서 있다 저를 끌어당기는 요한의 행동에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보다 앞서 샤워를 마쳤던 요한에게 끌려 어딘가로 움직이던 레온하르트는 자신을 침대 쪽으로 밀어 버리는 요한의 행동에 멈칫했다.

요한은 당황한 레온하르트의 배 위로 올라타며 후우, 짧게 숨을 내쉬었다.

‘이런.’

요한의 무표정한 얼굴에 잔잔한 흥분이 감돈다. 당장이라도 자신을 집어삼킬 듯 뜨거운 시선이었기에 레온하르트의 입꼬리가 스윽 올라갔다.

레온하르트 악셀은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오늘따라 무척 적극적이군.”

입고 있던 티셔츠를 벗어 던지던 요한이 레온하르트의 작은 음성에 행동을 멈추었다. 그러다 레온하르트의 샤워 가운 쪽으로 기다란 손가락을 밀어 넣으며 눈을 내리깔았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응?”

“많이, 참았으니까요.”

“……!”

요한을 놀릴 생각이었던 레온하르트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진 것은 그 시점이었다. 나지막한 목소리였지만 이 넓은 침실에는 요한과 레온하르트, 단둘뿐이었으므로 그의 귀에 들리기엔 충분했다.

두근. 레온하르트의 녹색 눈동자가 크게 일렁였다.

“악셀 씨.”

한 방 먹이려다 오히려 한 방 먹은 꼴이 된 레온하르트를 위에서 내려다보며 싱긋 웃고 있던 요한이 그를 불렀다. 요동치는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한 레온하르트가 고개를 들어 그를 응시하자 요한이 쯧, 혀를 차며 속삭였다.

“벌써 서면 어떡합니까.”

“어?”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읏!”

한 손으로 레온하르트의 가슴 근처를 지분거리던 요한이 다른 한 손을 뒤로 돌려 자신의 엉덩이를 꾹꾹 찌르고 있는 레온하르트의 앞섶을 어루만지자 레온하르트가 야릇한 신음을 내뱉었다.

미처 대비하지 못했던 레온하르트는 요한의 적극적인 행동에 주도권을 빼앗기며 눈을 질끈 감았다. 아래위로 레온하르트를 자극하던 요한이 또다시 작게 말을 건넸다.

“오래 참았던 만큼 쉽게 재우지 않을 겁니다.”

…….

“그러니까 악셀 씨도……!”

쿵.

경고를 하는 건지, 아니면 유혹을 하는 건지.

굳이 따지자면 레온하르트에겐 후자 쪽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 만큼 매혹적인 말들을 쏟아 내던 요한은 눈웃음을 그리며 말을 뱉어 내다 아, 낮게 탄성을 터트렸다. 레온하르트가 자신의 아래위를 쓸어내리던 요한의 손을 덥석 잡았기 때문이다.

“……뭡니까.”

레온하르트의 위에서 승기를 잡아 가던 요한은 갑자기 드러눕게 되자 입을 쭉 내밀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불만에 가득 찬 눈빛으로 저를 응시하는 요한의 시선에 왠지 모를 짜릿함을 느낀 레온하르트가 요한의 오른쪽 다리를 제 어깨 위로 걸치며 중얼거렸다.

“미안하지만 참고 있던 건 나도 마찬가지라.”

그 말을 끝으로 요한을 내려다보던 레온하르트의 눈빛이 변했다.

인간의 욕망이란, 정말로 끝이 없다.

그를 보지 못할 때는 그저 아주 잠깐이라도 연락이 닿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마음이, 얼굴을 마주하자 입을 맞추고 싶어졌고, 숨결이, 그리고 입술이 닿자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요한의 온몸 구석구석을 헤집고 싶어졌다.

대놓고 욕망을 드러내면 그가 어떻게 바라볼지 상상이 되지 않아 나름의 인내력을 키우던 자신과 달리, 저를 보자마자 달려드는 요한의 적극적인 유혹을 레온하르트 악셀이 굳이 거절할 이유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여 레온하르트는 제게로 뻗어 오는 요한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기로 했다.

“흐읍!”

신음을 내뱉지 않기 위해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요한이 숨소리를 흘리자마자 온몸에 저릿한 전율이 감돌았다. 아래에서 거친 숨결을 내뱉던 그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는 것이 훤히 보이자 가슴은 더욱더 뜨거워졌다. 앞뒤로 몸을 움직일 때마다 휘어지는 그의 허리와 손끝이 닿으면 어쩔 줄 몰라 하는 그의 등이 가쁘게 호흡했다.

탄력 있는 엉덩이 사이로 비집고 들어갈수록 강하게 조여드는 요한으로 인해 레온하르트는 끊임없는 갈증에 시달렸다. 자신의 풍성한 머리 숲으로 손가락을 집어넣는 요한의 따뜻한 온기가 정수리 끝에서 아래로 전달되었다.

요한은 자신의 허리를 잡고선 피스톤질을 이어 가는 레온하르트를 올려다보았다.

‘하아.’

처음엔 비집고 들어가기 힘들 정도로 빡빡했던 구멍은 몇 번의 침입으로 인해 부드러워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받아들이는 게 힘겨웠던 모양인지, 요한의 이마에 송골송골 맺혀 있던 땀방울이 뺨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리는 모습이 시야로 들어왔다.

아래위로 움직이던 레온하르트는 땀에 젖은 요한의 젖은 앞머리를 뒤로 넘겨주며 맺혀 있던 방울을 기다란 혀로 핥았다.

“……!”

그러한 레온하르트의 행동을 인지한 요한이 감고 있던 눈꺼풀을 번쩍 위로 들어 올리며 그를 응시했다.

레온하르트는 생긋 웃으며 이번엔 그의 눈두덩 위로 입술을 가져다 대더니, 다시 아래로 내려와 그의 볼, 그리고 입술 위를 뒤덮었다.

인상을 쓰며 레온하르트를 바라보던 요한은 점점 더 가까워지는 그의 숨결에 천천히 입을 벌렸다. 요한의 안에 가득 들어차 있던 레온하르트의 페니스가 요한의 입술을 스치자 더욱더 단단해졌다.

“이상……합니다.”

달아오른 요한을 더한 절정으로 안내하기 위해 움직이던 레온하르트는 그의 입 속을 헤집다 천천히 떨어져 나갔다. 그러던 도중 들리는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레온하르트의 굵직한 기둥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가쁜 호흡을 내쉬고 있던 요한이 말을 이었다.

“예전에는…… 아픔이 더 많이 느껴졌는데, 요즘은 그러지 않아서. 아마도…… 악셀 씨와 하는 섹스가 좋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를 힘껏 받아들이던 요한의 푸른색 눈동자가 땀인지, 아니면 눈물인지 알 수 없는 방울 때문에 더욱더 예쁘게 빛났다. 그러한 요한의 다리 사이에 제 것을 밀어 넣고 있던 레온하르트는 요한이 뱉어 낸 발언에 크게 요동치는 제 페니스의 움직임을 인지했다.

“윽.”

조금 전보다 흥분한 것이 틀림없는 레온하르트의 페니스로 인해 움찔하던 요한이 순간적으로 숨을 내뱉으며 레온하르트를 올려다봤다.

레온하르트는 어리둥절해하는 요한에게 손을 뻗으며 중얼거렸다.

“요한.”

“……예?”

“그렇게 자극하면 부드럽게 할 수 없다는 걸, 왜 모르지?”

레온하르트는 ‘이젠 정말 한계라고.’ 중얼거리며 요한의 안으로 제 페니스를 뿌리 끝까지 밀어 넣었다.

* * *

“앨리슨…… 그러니까 제 고모이자, 요한의 에이전트로 활동하고 계시는 분이에요. 하여간 앨리가 그랬는데, 이번 일이 그냥 일어난 건 아니래요.”

“그냥 일어난 일이 아니라니?”

오늘 오전의 일이다.

요한을 만나러 왔다가 우연히 안나마리아와 한배를 타게 되었던 레온하르트는 그녀로부터 예기치 못한 이야기를 접했다. 꽤 충격적인 그녀의 발언에 미간을 찌푸린 레온하르트는 한숨을 푹 내쉬는 안나마리아를 바라보며 그녀의 다음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렸다.

안나마리아는 아직도 화가 난다는 듯 이를 부드득 갈기까지 하며 입술을 달싹였다.

“앨리가 그러기를, 분명 잭콜은, 아…… 이 사람은 요한이 있었던 리저브 팀 전 감독이에요. 어쨌든 잭콜은 경질될 때 언론과 접촉하지 않기로 구단과 약조를 했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인터뷰를 자청했다?”

“화가 난 구단 쪽 관계자가 잭콜한테 항의를 했는데, 잭콜이 그 항의를 듣고 오히려 길길이 날뛰었대요. 자기는 그런 약조를 한 적이 없다고. 오히려 자신이 경질된 이유가 말도 안 되는 이유 아니었냐며, 요한이 게이라면 자기가 잘릴 이유도 없지 않냐고 말도 안 되는 발언까지 했대요.”

레온하르트는 안나마리아의 말을 듣고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요한이 게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문 것으로 알고 있었기에, 더욱.

순간적으로 입을 다물어 버린 레온하르트를 보며 쓴웃음을 흘리는 안나마리아에게 그는 다시 물었다.

“……그쪽에서 요한이 게이라는 걸 어떻게 알았지?”

“사진.”

“사진?”

“네. 사진이 있는 모양이에요. 누군가 찍은 게 틀림없는, 지난 8월의 사진.”

“8월이면……!”

“맞아요. 악셀 씨를 만났던 시점이죠.”

덤덤한 안나마리아의 말을 들은 레온하르트의 얼굴이 파리해졌다. 그가 입을 꾹 다물고 있자 흐리게 웃던 안나마리아가 손을 휘휘 저었다.

“다행히 고작 클럽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찍힌 사진이어서 요한의 게이설을 증명하진 못했어요.”

“아.”

“하지만 앞으로는 악셀 씨도 꽤 주의해야 할 거예요. 누군가 악의를 가지고 요한의 뒤를 캐고 있다는 건 아무래도 사실인 것 같으니까. 그러지 않고서야 그땐 무명에 불과했던 요한의 사진을 어떻게 찾았겠어요? 안 그래요?”

요한이 때 아닌 게이설에 휘말린 이유가 저로 인해서라는 것을 알게 된 레온하르트는 안나마리아의 말을 귀담아들을 수밖에 없었다.

‘주의……라.’

확실히 비교적 자유로운 레온하르트와 달리, 요한은 성적 취향이 밝혀져서 좋은 직업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안나마리아의 말처럼 당시 무명이었기에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요한의 사진을 두 달 만에 구했다는 것은 눈여겨볼 일이기는 했다.

‘거슬리는군.’

짙은 새벽.

검은 하늘 위의 하얀 달만이 거리를 밝히는 시간. 레온하르트는 제 옆에서 잠든 요한을 내려다보며 서늘하게 눈을 빛냈다.

[누군가 악의를 가지고 요한의 뒤를 캐고 있다는 건 아무래도 사실인 것 같으니까.]

특히나 안나마리아가 언급한 ‘악의’라는 단어가 신경 쓰여 견딜 수 없었다.

“음…….”

레온하르트는 잠든 요한의 흐트러진 앞머리가 그의 눈을 찌르는 것을 지켜보며 기다란 손가락으로 그것을 넘겨준 후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오른편에 잠든 요한과 달리 왼편의 테이블 위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핸드폰이 시야로 들어온다.

현재 시각 새벽 4시.

연락을 취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지만, 냉랭한 얼굴로 핸드폰을 응시하던 레온하르트는 곧 손을 쭉 뻗어 핸드폰을 움켜쥐고선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80화

“그게 무슨 소립니까? 못 해…… 먹겠다니요!”

오랫동안 잠잠했던 테임즈에게서 연락이 오자 장은 기쁜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을 하자마자 들려오는 발언에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그러자 하아, 긴 숨을 흘린 조셉 테임즈가 말했다.

-처음에는 그저 단순한 뒷조사인 줄 알았는데, 날이 갈수록……. 후우, 어쨌든 전 여기서 손 떼겠습니다.

“이봐요!”

-이보고 뭐고, 말이 나온 김에 크로비스 씨에게도 경고드리죠.

“예?”

-이쯤에서 그만두시죠. 그게 크로비스 씨에게도 이득일 겁니다. 그동안 일한 비용은 조만간 청구서 보낼 테니 확인하시고요. 그럼.

“뭐라고? 이봐요, 잠깐 기다…… 젠장!”

장은 제 할 말만 내뱉은 후 멋대로 끊어 버린 조셉 테임즈로 인해 황당한 숨을 터트렸다.

혹시나 기다렸던 소식이 들려올까 싶어 퇴근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전화를 받았더니 갑자기 일을 그만두겠다는 선언을 받을 줄은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다.

쾅!

장은 마침 시야로 들어온 벽을 손으로 내리치며 부드득 이를 갈았다.

‘일이 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

준비는 완벽했다.

제 앞길을 가로막는, 요한 백이라는 그 망할 놈을 무너트릴 방법은…….

요한 백은 겨우 스물이 된 애송이였고, 그 또래의 선수들은 주변에서 흔들면 마구잡이로 흔들리는 경우가 잦았다. 막 소년에서 성인으로 성장한 이들인 탓에 아직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했기에 멘탈적으로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경기장 내에서 그를 건드릴 순 없기에 외적인 면을 건드리기로 결심한 장은 그동안 의문에 빠져 있던 백의 사생활을 파고들었다.

몇 달 전, 백이 게이 클럽을 찾았다는 테임즈의 말은 컴컴한 어둠을 헤매던 장에게 있어 한 줄기 빛이나 다름없었다.

장은 주저 없이 그 사실을 언론에 퍼트렸고, 곧 백을 둘러싼 구설수가 런던에서 영국 전역으로 확대되었다.

그리고 장 크로비스 주니어의 예상대로 백은 자신을 향한 언론의 손가락질에 흔들렸다.

아무리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던 선수라 해도 언론에 대한 대처에서부터 어린 선수 특유의 미숙함이 드러났다. 경기장 외에서 받은 충격이 쉽게 가시지 않았는지 경기장 내까지 플레이가 이어지자 백은 더욱더 큰 야유에 시달렸다.

그것을 기다리고 있던 장에게 기회가 온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조금 더.

조금만 더 하면, 제 앞을 가로막는 저 애송이를 완벽하게 무너트릴 수 있다.

장은 손쓸 틈 없이 무너지는, 런던이 자랑하는 ‘별’의 몰락을 웃으며 지켜보았다.

‘……!’

하지만 완벽할 것만 같던 그의 계획이 틀어지기 시작했다.

지난 일요일, 그 빌어먹을 애송이가 더블 해트트릭이라는 PL 역사상 진기록을 수립한 그 경기 이후로.

리그 1위 팀인 레드 가든을 상대로 뇌진탕 후유증에 시달리던 요한 백을 기용한 조지 웰비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물론 백이 없는 사이 제대로 된 활약을 보여 주지 못한 자신에게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멘탈적으로 틀어진 녀석을 쓸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어디 그런 녀석을 기용한 대가 한번 제대로 치러 보라지, 하고 중얼거리며 벤치에 앉아 경기를 지켜보던 장은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백 말이야, 그 녀석 진짜 대단한 것 같지 않아?]

요한 백을 둘러싼 비난 여론은 그 경기 하나로 금세 역전이 되어 버렸다.

[아무래도 우리 팀에서 물건이 나온 게 분명해.]

[소문엔 게이라던데.]

[소문은 소문일 뿐이지. 그러고 보니 백이 갔다던 그 클럽, 백의 에이전트가 주인인 클럽 아닌가? 그렇다고 들은 것 같은데.]

[그러면 더욱 뜬소문일 확률이 높겠군. 게이 클럽에 간다고 해서 전부 게이인 것도 아니고.]

[사실 성적 취향이 축구에 큰 영향을 끼치는 건 아니잖아? 난 어제 경기 보면서 경이로움까지 느껴지더라.]

[괜히 별이라 불리는 게 아니겠지. 그러고 보니 갑자기 백한테 그런 루머가 퍼진 게 좀 이상해. 누군가 일부러 그 이야기를 흘린 거 아닌가? 살짝 의심이 되는군.]

팬들의 반응을 가장 빠르게 알 수 있는 SNS는 물론이거니와 드레싱 룸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백의 스캔들이 터진 그날 이후 그를 본체만체하던 런던 FC의 팀 동료들까지, 레드 가든과의 경기 이후 태도를 달리한 것이다.

그 모습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던 장의 속이 부글부글 끓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장, 백을 질투하기보다는…… 동료로 인정하는 건 어떨까? 대화를 나눠 보니 꽤 괜찮은 녀석 같던데.]

오죽하면 자신의 최측근인 에런까지 식사를 하면서 그런 말을 건넬 정도였을까.

‘레이스 그 개자식! 내가 무슨 일을 당했는지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아무리 생각해도 화가 풀리지 않자 장이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부드득 이를 갈았다.

레드 가든과의 홈 경기 이후 런던 FC의 선수들 중 대부분은 2주 동안의 A매치 기간에 들어섰다. 각국에서 소집되지 않은 선수들은 LTC에 나와 훈련을 이어 가고 있었는데, 그 와중 장은 어제 아침 구단 관계자로부터 호출을 받았다.

저번에 이어 두 번째 호출인지라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딱히 걸릴 것도 없다 여겼던 장에게 런던 FC의 전반적인 책임을 담당하는 마리오 클락이 하하, 웃으며 말했다.

[크로비스 선수가 기뻐할 일이 있어서 불렀습니다. 며칠 전 러시아에서 크로비스 선수에 대한 오퍼가 왔습니다. 임대료는 생각보다 나오지 않겠지만, 주급은 80% 맞춰 줄 용의가 있다고 합니다. 어떡하시겠습니까, 크로비스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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