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1화 (31/59)

“흣!”

하아.

레온하르트가 아닌, 요한이 주가 되어 시작된 피스톤질이었다. 상대의 굵은 페니스가 내벽을 긁을 기세로 들어왔다가 순식간에 애널 입구까지 빠져나가자 진한 숨이 터져 나왔다.

한 번, 두 번.

요한은 점점 더 속도를 높여 가며 누워 있는 레온하르트를 자극하기 위한 몸짓을 이어 갔다.

“으윽, 흐, 흡, 크윽…….”

깊게 박힌 뿌리를 뺐다 다시 집어넣는 과정은 요한으로 하여금 진한 고통과 신음을 발생케 했으나 그만큼 짜릿한 희열을 안겨 주기도 했다. 살들이 스쳐 질퍽이는 소리가 났고, 그럴 때마다 제 중심이 반응해서 꼿꼿하게 서 버릴 정도였다.

하아.

그를 받아들이는 과정에 현기증이 일 정도라 입술을 꾹 다물고 있던 요한은 팽창할 듯 부풀어 오른 레온하르트로 인해 얼굴을 찌푸렸다.

지금 이 순간, 그의 위에 올라타 있는 이 과정을 그만두고 싶은 마음과 더 받아들이고 싶은 마음이 공존했다.

하지만.

‘멈추고…… 싶지 않아.’

다시 의지를 다잡은 요한은 고개를 들어 레온하르트의 위에서 허리를 튕겼다.

* * *

“악셀, 흐, 악셀 씨.”

“응. 듣고 있어. 듣고 있어, 요한.”

“하, 악셀…… 씨.”

“가고 싶어? 나올 것 같아?”

“흐으, 읍.”

“가도 돼. 얼마든지.”

“으읏, 하으으.”

“괜찮으니까, 어서.”

어떻게든 저를 받아들이기 위해 애쓰는 요한이 예뻐 주체할 수 없었다. 입을 꾹 다물고 있으면서도 가끔씩 흘리는 그의 숨소리가 자신을 더욱더 자극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미치겠군.

상대가 지금껏 만나 왔던 상대들과는 달리 분명 달릴 것이 달리고 또 건장하기 그지없는 사내라는 것을 똑똑하게 인지하고 있다. 이곳을 나간다면 뭇 소녀들뿐 아니라 런던 내의 팬들에게서 엄청난 지지를 받을 유망한 스포츠 스타라는 것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온하르트의 페니스는 그 어느 때보다 확실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자신을 꽉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 벽안의 동양계 남성을 잡아먹고 싶다고, 거센 아우성까지 치는 중이었다.

제 위에서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신음을 흘리는 요한의 얼굴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하얗던 그의 피부가 점점 붉어지는 것을 지켜보는 과정은 짜릿한 쾌감을 일으켰다. 그는 사랑스럽고, 아름답고, 지독하게 금욕적이라 더더욱 달아올랐다.

“하윽!”

귀가 간지러운 교성을 흘리며 제 손안에 애액을 분출하는 요한을 보고 있노라면 숨이 컥 막힌다. 사정을 한 뒤 바르르 떨며 축 늘어지는 그의 모습이라니. 어떻게 예뻐 보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오늘따라 여러 자세를 취하며 관계를 맺었다.

처음 주도를 한 사람은 요한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적극적으로 변해 버린 사람은 자신이었다. 요한의 무표정했던 얼굴이 점점 흐트러지는 것에 레온하르트 악셀의 가슴은 격렬하게 벌렁거렸다.

‘큰일이군.’

그의 입술이 벌어지는 것을 보자마자 입을 맞추고 싶은 충동이 일 정도니 이젠 더 이상 물러설 곳도, 빠져나갈 곳도 보이지 않았다.

“연락하겠습니다.”

정점에 이르렀던 욕실에서의 섹스 이후 길게 숨을 몰아쉬던 요한은 어느덧 새벽 6시에 가까워진 시계를 확인한 후 샤워 가운만 걸친 채 침대에 누워 있는 레온하르트에게 말했다.

그러자 그런 요한을 응시하던 레온하르트가 입술을 달싹였다.

“조금만 더 있다 가면…… 안 돼?”

66화

아쉽다.

요한과 헤어지는 것이 못내 아쉬워 미칠 지경이다.

레온하르트가 입을 삐죽거리자 잠시 놀란 표정을 짓던 요한이 피식 웃었다.

“내일모레 리그컵 경기가 있습니다. 선발은 아닐 것 같지만 대기를 해야 할지도 몰라서.”

또?

레온하르트는 투덜댔다.

“그놈의 축구 경기는 잦아도 너무 잦군.”

“하하.”

“그래 가지고 몸이 남아나겠어?”

“시즌 중이니까요. 이 모든 경기를 소화하려고 몸을 만들기도 하고, 또…….”

“……?”

“뛸 수 있을 때 많이 뛰어야죠. 쉽게 오는 기회가 아니니.”

그간의 고생을 짐작할 수 있는 간절한 대답이었기에 레온하르트는 더 투정을 부리지도 못했다.

레온하르트는 몸을 일으키려 했다.

“데려다주지.”

“아닙니다. 혼자 갈 수 있습니다.”

“이봐, 요한. 너 방금…….”

“전 괜찮습니다, 악셀 씨.”

“…….”

“피곤할 텐데 쉬십시오. 연락할게요.”

손을 휘휘 내저은 요한은 미소와 함께 몸을 돌렸다.

‘이거 참.’

자신을 네 번이나 받아들였음에도 너무 멀쩡해 보이는 요한의 뒷모습에 레온하르트는 헛웃음을 삼켰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내가 깔린 줄 알겠어.

레온하르트는 ‘쉬십시오.’ 하고, 침실 문을 닫고 나가는 요한의 음성을 들으며 스르륵 눈꺼풀을 내리깔았다.

“어서 오세요, 악셀 씨!”

그다음 날이었다.

상쾌하기 그지없는 11월의 하루를 보내고, 요한이 속한 런던 FC의 리그컵 경기가 열리는 2일 정오.

저녁 공연을 소화하기 위해 집을 나섰던 레온하르트는 요한을 수색할 때부터 그랬던 대로 퀸 레베카 시어터 앞에 위치한 신문 가게에 들렀다.

“마사 씨, 오늘도 부탁드립니다.”

“아, 오늘 자…… 신문이요?”

신문 가게 주인인 마사의 얼굴이 난처함으로 물들자 레온하르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러십니까? 설마, 신문이 없습니까?”

마사는 어색하게 웃었다.

“예.”

“네?”

진짜로?

놀라는 레온하르트에게 마사가 설명을 덧붙였다.

“오늘 ‘The Moon’의 조간신문에 꽤 충격적인 기사가 실려서요. 사람들이 너 나 할 거 없이 다 사가 버렸지 뭡니까.”

충격적인 기사?

“뭐, 재입고 요청해서 석간신문 가져올 때 조간신문도 더 도착할 예정이긴 한데, 필요하시다면…….”

“아뇨, 괜찮습니다.”

“예?”

“인터넷으로 보죠. ‘The Moon’ 사이트에 들어가면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근래 들어 그가 구입하는 신문은 보통 스포츠 신문이었고, 요한의 경기는 오늘 밤 예정되어 있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요한의 활약이 실리지도 않았을 오늘 자 조간신문을 굳이 구매할 필요는 없다고 여긴 레온하르트가 빙긋 웃으며 말하자 마사가 동조했다.

“그렇죠! 내일도 오실 겁니까? 그럼 악셀 씨의 신문은 미리 빼 두겠습니다.”

레온하르트는 저를 완전히 단골로 인식해 버린 마사의 말에 하하 웃으며 그러면 감사하죠, 라고 말한 뒤 퀸 레베카 시어터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충격적인 기사라니.’

대체 얼마나 충격적이길래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조간신문이 모두 동이 난 거지?

눈썹을 까딱이며 쿡쿡 웃던 그는 핸드폰을 꺼내 들어 인터넷을 켰다.

“……!”

기나긴 로딩 후 펼쳐진 모바일 브라우저의 1면을 발견한 레온하르트가 우뚝 멈춰 섰다.

* * *

<[단독] 런던 소재 축구 클럽의 전직 리저브 팀 감독의 충격 인터뷰, 대공개!>

영국에서 사생활을 다루는 언론사 중 둘째가라면 서러울 ‘The Moon’의 인터넷 사이트를 켜면 누구나 혹할 만한 굵고 큰 글씨가 박힌 팝업창이 떴다.

의문을 품은 사람들이 그 글자들을 콕 누르면 하나의 기사로 연결이 되는데, 그 기사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를 비롯한 전 세계 축구계의 시즌이 한창인 와중, 본 기자는 놀라운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한때, 축구 클럽의 리저브 팀 감독으로 일했다던 J 씨가 인터뷰를 자청해 왔기 때문이다.

몇 달 전, J 씨는 자신이 소속되어 있던 리저브 팀의 감독으로 열심히 일하던 도중, 성추문 의혹에 휩싸여 강제적으로 경질되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그를 경질하는 데 결정적인 증언을 한 리저브 팀 소속의 선수가, J 씨에게 악의를 품고 증언을 조작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나왔다고 한다.

J 씨는 예의 선수와 신체적 스킨십을 한 것은 사실이나, 결코 강제는 없었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오히려 유혹을 당한 것은 바로 자신이며, 그로 인해 자신은 직장을 잃었다고 호소하고 있다.

바로 그 증거로, J 씨는 이름을 밝힐 수 없는 그 선수가 지난 8월 말, 소호의 한 게이 클럽을 방문하여 문란한 밤을 보냈다고 하는데, 실제로 그 선수가 소호의 게이 클럽을 방문했던 것이 사실로 드러나 충격을…….>

쾅!

“말도 안 됩니다!”

인터넷뿐 아니라 지면 위에도 똑같은 기사가 실렸다. 기사를 읽어 내려가며 온몸을 부들부들 떨던 앨리슨 디어가 들고 있던 신문을 테이블 위로 내던지며 이를 갈았다.

그러고는 한숨을 푹 내쉬고 있는 런던 FC의 보드진을 향해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지금 이 기사 내용이 사실이냐고 묻고 있는 겁니까, 당신들은?”

침을 튀겨 가며 소리치는 앨리슨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몇몇 임원들 중 런던 FC의 단장인 마리오 클락이 꾹 다물고 있던 입술을 움직였다.

“디어 씨, 흥분하시지 말고…… 일단 앉으시죠.”

앨리슨은 황당한 숨을 터트렸다.

“흥분? 이보세요, 단장님. 제가 지금 흥분 안 하게 생겼어요?”

“디어 씨.”

“갑자기 전화해서 여기까지 오게 하더니, 이 기사가 사실이냐고 노골적으로 묻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

“…….”

앨리슨은 큰 눈을 부라렸다.

“이게 대체 무슨 어이없는 상황이죠? 당신들, 오늘 리그컵 경기가 있는 날이라는 거 잊었습니까? 문제가 있으면 나만 부르면 되지, 곧 경기를 치를 선수까지 호출해서 묻는 건 무슨 의도냐고요!”

런던 FC의 보드진과 호의적인 관계를 유지해 온 앨리슨이 이토록 흥분한 것은 ‘그날’ 이후 처음이다. ‘그날’은, 리저브 팀 감독이었던 로시 잭콜의 더러운 짓거리를 뒤늦게 알게 된 앨리슨이 보드진에게 달려가 불같이 화를 낸 날이었다.

[지금 당장 선택해요! 우리 백인지, 아니면 잭콜 그 개자식인지! 나는 이 더러운 새끼 밑에서 우리 요한이 뛰는 걸 용납할 수 없어요!]

아니, 어쩌면 그날보다 더욱 흥분한 것 같기도 하군.

요한은 파르르 떨며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는 앨리슨 디어를 향해 입을 열었다.

“앨리.”

“가만있어 봐, 요한!”

“앨리, 일단 앉으세요.”

“요한!”

“단장님이 어떤 말씀을 하시려는 건지 들어 봐야 하잖아요.”

“윽!”

“앨리.”

비교적 차분한 요한과 달리 이를 꽉 악물며 상기된 얼굴을 감추지 못하던 앨리슨은 옅게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요한의 눈빛에 ‘젠장!’ 하고 욕설을 흘렸다. 그러고는 요한의 옆자리에 털썩 주저앉더니 씩씩거리며 숨을 흘렸다.

요한은 그런 그녀를 흘긋거리다 자신의 맞은편에 앉아 있는 보드진의 일원들을 바라봤다.

[필립 선수, 지금 당장 사무실로 와 주세요. 디어 씨도 함께.]

새벽 6시를 막 넘길 무렵이었을까.

오늘 밤 열리는 리그컵은 홈 경기였기에 오후 1시까지 LTC에 모여 버스를 타고 경기장으로 갈 예정이었다.

11시쯤 LTC에 도착할 생각으로 준비를 하던 요한은 예기치 못한 시간에 걸려 온 전화에 의아해했다. 잠시 고심한 그는 웰비 감독에게 양해를 구하는 전화를 한 뒤 앨리슨 디어와 함께 먼저 미라클 스타디움으로 향했다.

웃으며 무슨 일이냐고 묻는 앨리슨 디어에게 비서관 퍼시가 막 배포 중인 조간신문 하나를 내밀었고, 의아해하며 그것을 받아 든 앨리슨이 찬찬히 그 기사를 읽다 굳어진 것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 후의 일은 난장판이나 마찬가지였다.

사색이 된 앨리슨을 의아하게 바라보던 요한 역시 예의 신문을 받아 든 후 안색이 어두워졌고, 아무리 생각해도 믿을 수 없다며 몇 번이고 신문을 확인한 앨리슨이 조금 전처럼 큰소리를 치는 과정이 반복됐다.

요한은 비록 이름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자신을 저격한 것이 분명한 로시 잭콜의 믿을 수 없는 인터뷰에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

“디어 씨, 흥분은 좀 가라앉히셨습니까?”

몇 초 전까지 침을 튀겨 대던 앨리슨이 하아, 하아 숨을 고르며 이를 갈고 있자 클락 단장이 쓴웃음을 흘리며 말을 걸어왔다. 앨리슨이 대답 대신 인상을 썼지만 클락 단장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는 ‘그럼 다시 대화를 이어 나가도록 하죠.’ 하고 앨리슨과 요한을 번갈아 응시하더니 소리를 내뱉었다.

“보통 기사가 터지기 전에 저희 쪽에 먼저 연락이 들어옵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교섭을 통해 기사를 막기도 한다는 것 정도는, 두 분 모두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요한은 대답하지 않았다. 클락 단장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이번 기사는…… 언론사 쪽에서 그 어떤 협상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뒤 우리에게 이제 막 배포 중인 기사 내용을 보내 왔습니다. 그 때문에 막을 틈조차 없었죠. 혹시, 들리십니까?”

클락 단장은 회의실 밖을 가리켰다. 요한과 앨리슨이 있는 회의실 밖은 귀가 따가울 정도로 울려 대는 전화벨 소리가 가득했다. J 감독이 누구인지 진작 알아차리고 런던 FC에 사실 확인을 위한 전화를 쉬지 않고 걸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클락 단장은 점점 더 어두워지는 요한의 얼굴을 응시하며 말했다.

“필립 선수, 잭콜 전 감독이 왜 이런 인터뷰를 한 건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필립 선수의 결백을 믿습니다. 비단 필립 선수에게만 성추행을 가한 것도 아니고, 이미 증거 영상도 있으니까요.”

“그걸 아시는 분이 어째서!”

“디어 씨, 제 말을 끝까지 들어주십시오.”

클락 단장은 발끈하며 테이블을 내리치는 앨리슨에게 말한 뒤 다시금 요한을 응시했다.

“잭콜 씨의 주장에 대해서는 충분히 반박할 수 있습니다. 언론 플레이로 한탕 해 먹으려고 하는 것 같은데, 본때를 보여 줄 수 있을 만큼요. 하지만…….”

두근.

요한은 말을 잇다 말고 사진 한 장을 건네는 클락 단장의 행동에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서늘한 표정을 짓고 있던 클락 단장은 테이블 위의 사진을 보며 눈을 크게 뜨는 요한에게 물었다.

“지난 8월에 찍힌 이 사진은…… 대체 어떻게 반박해야 할까요?”

클락 단장이 내민 사진 속엔 요한이 레온하르트와 처음 만났던 게이 클럽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67화

요한은 제 얼굴을 살피고 있는 마리오 클락의 뜨거운 시선을 똑똑히 인지하며 가만히 예의 사진으로 시선을 꽂았다.

‘…….’

미동 없는 그의 파란색 눈동자에, 런던 소호 거리에 자리 잡은 클럽 ‘Dawnlight’ 안으로 들어가는 그의 뒷모습이 들어왔다. 때는 지난 8월, 요한이 런던 FC 1군 팀으로의 콜 업 소식을 들은 직후의 일이었다.

앨리슨 디어에게 소개받은 클럽의 관리인 에디 밀러의 옆모습 역시 찍힌 것으로 보아 이제 막 클럽 안으로 들어가는 장면임이 분명했다.

요한은 무의식적으로 이를 악물었다.

실로 반사적인 행동이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요한은 생각이 바로 얼굴에 드러나는 편은 아니었다. 덕분에 말없이 그의 얼굴을 살피고 있던 상대방은 요한이 당황했다는 것을 아직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런던 FC 리저브 팀의 일원이었으나 당시 제대로 된 경기도 치르지 못하고 있었기에 자신을 알아볼 사람이 없다고 여긴 것이 요한의 실수라면 실수였다.

사진이 찍힐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기에 심장이 쿵쿵, 뛰었다.

요한의 얼굴에 어둠이 드리워졌다.

“반박이라니요?”

입을 굳게 다문 채 그저 사진만을 응시하고 있는 요한을 클락 단장이 매서운 눈으로 쳐다보고 있을 때였다. 클락 단장이 내민 사진을 인상을 쓴 채 바라보던 앨리슨 디어가 황당한 숨을 흘리며 그를 향해 되물었다.

요한을 향해 있던 클락 단장의 두 눈이 앨리슨에게로 꽂혔다. 앨리슨은 몹시 불쾌하다는 감정을 한껏 담아 말했다.

“단장님, 지금 무슨 의도로 이런 질문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군요.”

“디어 씨.”

“고작 클럽에 출입한 것 가지고 지금 우리에게 이런 행동을 취하시는 겁니까? 그리고 설마, ‘Dawnlight’의 소유주가 누구인지 모르고 하시는 질문은 아니죠?”

앨리슨의 말에는 뾰족한 가시가 돋쳐 있었다.

요한은 오히려 코웃음을 치며 마리오 클락 단장에게 일격을 가하는 앨리슨을 힐긋거렸다.

앨리슨은 조금 전보다 확실히 더 가라앉은 녹안으로 클락 단장을 노려보고 있었다. 올라간 그녀의 입꼬리가 이토록 살벌해 보이는 것은 요한이 잭콜의 행각에 대해 알렸을 때 이후 꽤 오랜만이었다.

두근.

살얼음판 위를 걷는 듯한 앨리슨과 클락 단장의 미묘한 신경전은 꽤 오랫동안 이어졌다.

“하하.”

그 숨 막히는 침묵을 먼저 깨트린 사람은 다름 아닌 마리오 클락 단장이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실례가 많았습니다, 미스 디어.”

“…….”

“필립 선수에게도 사과드립니다. 아무래도 제가 무례를 저지른 것 같군요.”

그는 빙긋 웃으며 두 남녀에게 정중하게 사과한 뒤,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의자에 착석했다. 요한은 확연히 달라진 태도를 보이는 클락 단장의 눈꼬리가 한층 부드러워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클락 단장은 어이없어하는 앨리슨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 나갔다.

“물론 디어 씨의 말씀대로 저 역시 ‘Dawnlight’의 소유주가 누구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Dawnlight’가 특별한 곳이긴 하나, 필립 선수가 못 갈 곳은 아니죠. 만일 디어 씨가 초대한다면 그곳에서 만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닐 테고요.”

“그런데 왜!”

“저희는 그저 확인이 필요했을 뿐입니다.”

“확인이요?”

클락 단장의 답변에 앨리슨이 미간을 좁혔다. 미소 짓던 클락 단장이 다시 입술을 움직였다.

“네. ‘Dawnlight’가 평범한 클럽이라면 모를까, 조금 특별하지 않습니까.”

“……!”

“해서 필립 선수의 확인이 필요했습니다. 아무래도 의심을 받고 있는 상황이니.”

클락 단장이 요한을 쳐다봤다.

“하지만 두 분의 태도를 보아하니 제 우려는 접어 두어도 될 것 같군요. 다행입니다.”

요한은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클락 단장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두 분께서도 보셨다시피 이 사진은 누가 봐도 기사에서 주장한 내용을 뒷받침해 주지는 못합니다. 필립 선수가 단순히 ‘Dawnlight’ 안으로 ‘들어갔을’ 뿐이지 않습니까? 게다가 ‘Dawnlight’의 출입이 필립 선수의 성적 취향을 증명한다고 ‘The Moon’이 확신을 가졌다면…… 굳이 내게 이 사진을 보내오지 않고 바로 기사를 실었겠지요.”

요한은 클락 단장이 흥, 코웃음 치는 것을 가만히 지켜봤다. 그는 반듯하게 미소를 지으며 요한과 앨리슨을 번갈아 응시했다.

“제 생각에 ‘The Moon’은 이걸로 우리를 압박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잭콜 씨의 인터뷰를 땄으니, 우리에게도 뭔가 얻어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겠죠.”

“…….”

“그러나 결정적인 증거가 고작 이 사진뿐이니 그들도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는 않을 겁니다. 그들 역시 ‘Dawnlight’의 주인이 누구인지, 그 주인이 필립 선수와 어떠한 관계인지 잘 알고 있으니까요. 또 잘못된 정보를 퍼트리면 어떤 꼴을 당하는지도 잘 알 테니 모험은 하지 않을 겁니다.”

클락 단장은 긴말을 쏟아 낸 후 숨을 골랐다.

“퍼시.”

그러고는 회의실 출입구 쪽에 서 있던 자신의 비서관 퍼시를 불렀다.

퍼시가 그에게 다가오자 클락 단장이 말했다.

“준비한 대로 공식 성명서를 발표하도록 하세요.”

“공식 성명서라니요?”

앨리슨이 놀란 표정을 짓자 옅게 눈웃음을 그린 클락 단장이 말을 이었다.

“비록 이름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The Moon’으로부터 지목당한 클럽이 우리라는 소문이 이미 퍼져 버렸습니다. 리저브 팀 감독을 경질시킨 팀은 런던 내에 우리밖에 없으니까요. 그러니 말도 안 되는 추측성 기사들이 오가기 전에 먼저 해명을 해야죠. 잭콜 씨가 주장한 일은 결코 없었다고. 그리고…….”

클락 단장은 요한을 쳐다봤다.

“만일 잭콜 씨가 계속해서 허위 사실을 유포할 경우, 우리 역시 참지 않고 강경 대응을 취할 생각이라고도 말이죠.”

생긋 웃으며 말을 마친 클락 단장에게 동조하듯 고개를 끄덕인 비서관 퍼시가 곧 회의실을 벗어났다. 퍼시가 나갈 때까지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클락 단장은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요한과 앨리슨을 향해 손을 뻗었다.

“즐겁고 유익한 대화였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와 주셔서 근심을 덜었습니다. 곧 경기가 있죠? 오늘 경기 잘 부탁드립니다, 필립 선수. 그리고 디어 씨는 이왕 오신 김에 저와 함께 경기를 관전하시는 게 어떨까요? 하하.”

* * *

“능구렁이 같은 자식!”

마리오 클락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요한에게는 경기에 대한 독려를, 그리고 앨리슨에게는 곧 있을 리그컵의 관전 제안을 했다.

그의 말에 어이없어하는 앨리슨에게 환한 눈웃음으로 답한 클락 단장은 잠깐 자리를 비우겠다는 말을 한 뒤 회의실을 나섰다. 그리고 그런 그가 자리를 비우자마자 앨리슨은 부드득 이를 갈며 소리쳤다.

“결과적으로 우리를 떠보려고 여기까지 불렀다는 소리잖아!”

온몸을 파르르 떨어 가며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는 앨리슨의 말에 요한은 쓴웃음을 흘렸다. 그녀의 말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경기 시작 전의 이른 아침부터 두 사람을 호출한 이유는 요한이 게이인지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클락 단장은 원하는 답을 얻었다.

요한은 ‘오늘도 파이팅입니다.’ 하고 생긋 웃던 클락 단장의 냉정함을 떠올렸다.

“언론들도 그래!”

앨리슨은 아직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있는 힘껏 소리쳤다.

“네가 잭콜 그 망할 자식한테 당했던 것만 생각하면 아직도 치가 떨리는데, 어떻게 우리한테 그럴 수가 있지? 피해자랑 가해자를 제대로 구분 못 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게다가 뭐? 네가 게이? 나 참, 어이가 없어서! 고작 내 클럽에 발을 디뎠다는 이유만으로 너를 게이로 몰아간단 말이야? 그럼 ‘Dawnlight’를 방문하는 그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동성애자인 거냐고!”

콧김까지 씩씩 뿜어대며 잔뜩 흥분하던 앨리슨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요한의 어깨 위로 손을 얹었다. 톡톡. 그녀의 손길이 어깨를 스쳤다. 요한은 앨리슨을 응시했다. 앨리슨이 말했다.

“걱정 마, 요한. 클럽에서 공식 성명을 발표하면 잭콜 자식도 더는 너를 못 건드릴 거야. 지가 여기서 저지른 짓이 있는데 어떻게 더 입을 나불거리겠어?”

“…….”

“게다가 클락 단장이 한 말도 있으니 ‘The Moon’에서도……. 요한?”

요한을 달래듯 말하던 앨리슨은 자신을 보지도 않고 생각에 잠긴 그를 발견하고선 고개를 갸웃거렸다.

두근두근.

요한은 처음 이 회의실에 들어섰을 때부터 줄곧 같은 자세로 얼굴을 굳히고 있었다.

‘부주의……했어.’

이른 아침부터 보드진의 연락을 받았을 때 왠지 모르게 불길한 예감이 들기는 했으나 모르는 척했다. 더군다나 오늘은 클럽의 경기가 있는 날이었기에 다른 쪽으로 생각을 하기가 싫었다. 모든 신경은 오로지 경기에만 집중되어야 했고, 그래야 최상의 컨디션으로 피치 위를 뛰어다닐 수 있었다.

회의실 문을 열기 전까지만 해도 요한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앨리슨의 클럽에서 자신의 모습이 찍혀 버리다니.

그것도 레온하르트와 만났던 그날 밤의 일을 목격한 ‘누군가’가 있을 수도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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