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짝 걱정인 건, 이 아름다운 모습을 본 아이들이 겁을 안 먹으면 어쩌나 하는 거야. 명색이 할로윈인데 말이지. 흐음, 아무래도 너무 예쁘게 분장을 한 것 같군.”
이안 키스트의 할로윈 파티 이후, 파티에 초대된 게스트들은 호스트인 이안과 함께 근처에 있는 아동 병원을 방문하여 그곳의 어린 환우들과 시간을 보낼 예정이었다.
요한은 그런 아이들을 떠올리며 너무도 진지하게 중얼거리는 레온하르트의 모습에 크게 놀랐다. 그는 뚫어져라 거울을 응시하며 진심으로 걱정을 하고 있었다.
예쁜 분장?
‘그럴 리가.’
위협을 느낀다면 모를까…….
물론 미녀와 야수에서 ‘미녀’를 담당한 레온하르트의 복장은 충분히 만화영화의 히로인을 연상케 했다. 그러나 그의 부리부리한 눈과 화장, 그리고 너무도 큰 키는 예쁘다는 말이 흘러나오기는커녕, 저도 모르게 뒤로 주춤 물러나게끔 하는 포스를 풍겨 대는 중이었다.
요한은 ‘이거 너무 잘나도 문제군.’ 하고 중얼대고 있는 레온하르트를 바라보며 속으로 웃었다.
“요한.”
2층에 머무는 시간이 생각보다 길어졌다.
이제 슬슬 내려가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말하며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려던 요한은 제 이름을 부르는 레온하르트를 응시했다. 그러자 레온하르트 악셀이 불쑥 손을 내밀었다.
“악셀 씨?”
“잡아 줄래? 보다시피, 드레스라.”
2미터의 공주님은 치렁치렁한 드레스 끝자락을 가리키며 어깨를 으쓱였다.
잠깐 머뭇거리던 요한은 이내 알겠다는 듯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야수 복장을 하기 위해 장갑을 낀 상태였지만 레온하르트의 커다란 손을 붙잡는 데는 큰 문제가 없었다.
또각또각.
레온하르트가 있던 2층에서 할로윈 파티가 한창인 1층의 연회장으로 내려가는 길.
아래로 내려갈수록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경쾌한 구두 소리에 그들 역시 고개를 들어 올렸다 요한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내려오고 있는 레온하르트를 발견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레온하르트의 분장에 폭소를 터트렸지만 레온하르트는 그들이 웃든 말든 전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더욱 당당하게 걸음을 옮기며 자신의 분장에 충실할 뿐이었다.
요한이 레온하르트의 손을 꽉 붙들며 드레스를 입은 그가 넘어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을 때였다.
“요한.”
요한은 1층의 연회장에 도착해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네던 레온하르트의 음성에 그를 쳐다봤다.
“이걸로 위시리스트 항목 하나는 제거해도 되지 않겠어?”
위시리스트?
갈색 머리카락의 공주로 분한 레온하르트 악셀이 의아해하는 요한을 보며 제 손과 요한의 손이 맞닿아 있는 아래를 고갯짓했다.
“잡고 있잖아, 우리.”
“예?”
“물론 이곳이 거리는 아니고 눈도 내리지 않는 실내지만, 그래도.”
그게 무……!
[눈이 오는 날…… 소중한 사람과 손을 잡고 거리를 걷는 것 정도는 해 보고 싶네요.]
의아한 표정을 짓던 요한의 눈동자가 크게 요동쳤다. 순간적으로 말을 잃어버린 요한이 그저 그를 바라보고만 있자, 레온하르트는 요한에게 짙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두근.
고요하던 가슴이 반동을 일으켰다. 잔잔히 퍼지기 시작한 설렘이 부드러운 눈빛과 함께 어우러져 닫혀 있던 요한의 문을 똑똑 두드린다.
“어, 야수랑 벨. 거기 있었네? 이제 곧 출발할 거니까 준비해.”
때마침 이안 키스트가 나타나 서로를 쳐다보고 있는 두 남자에게 말하지 않았더라면.
요한은 자신이 그 자리에서 무슨 짓을 저질러 버렸을지…… 감히 상상이 되지 않았다.
* * *
레온하르트 악셀이 여장을 한 계기는 사소한 것이었다.
그는 이번 할로윈 파티를 계기로 무언가를 ‘달성’하고 싶었다.
하여 요한과 나란히 서 있어도 의심을 받지 않을 캐릭터를 오랫동안 물색했다. 명색이 할로윈이니만큼 아이들이 무서워할 만한 모습도 있었지만, 손을 잡고 있거나 함께 서 있어도 이상해 보이지 않을 캐릭터들이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나쁘지 않겠군.’
한참의 검색 끝에 발견한 ‘미녀와 야수’는 적절한 분장만 더해진다면 아이들을 놀라게 해 줄 수도 있으며, 요한과 나란히 있어도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어 보였다.
“벨을? 네가?”
예의 캐릭터들로 분하기 위해서는 웨스트엔드에서 꽤 잔뼈가 굵은 이안 키스트의 도움이 필요했다.
비교적 선이 굵은 역할만 해 왔던 자신과 달리 이안은 여장 남자 역할도 소화해 낸 적이 있을 만큼 웬만한 배역들은 다 거쳐 왔는데, 그 덕분인지 특수 분장을 담당하는 분장사들과 몹시 친한 편이었다.
그래서일까.
이안 키스트는 무대 위가 아닌 실생활에서도 자주 특수 분장 활동을 이어 갔고, 매년 할로윈 파티 개최를 자청했다. 파티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레온하르트는 지난 몇 번의 참석 제안을 그냥 지나친 편이었지만, 올해만큼은 달랐다.
[악셀 씨, 혹시 저번에 제안하셨던 할로윈 파티 참석할 수 있을까요?]
다른 사람도 아닌 요한이 스스로 참석하고자 했던 첫 할로윈 파티인데 그냥 보낼 수는 없지. 당시 레온하르트 악셀의 눈은 몹시 불탔다.
“분장을 해 주는 거야 어렵지 않지만…….”
“다행이군.”
“…….”
“왜.”
옅게 웃으며 한시름 덜었다는 표정을 짓던 레온하르트는 말을 하다 말고 저를 빤히 바라보는 이안의 눈빛에 미간을 꿈틀거렸다. 그러자 피식 웃은 이안이 말했다.
“진짜 단단히 빠졌네?”
레온하르트는 미묘한 눈웃음을 그리며 저를 쳐다보는 이안에게 대꾸했다.
“이안, 난 언제나 진심이야.”
“알지. 너는 연애에 대해서 신중하다는 거.”
“…….”
“알지만…….”
알지만?
“이번엔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순식간에 얼굴에서 미소를 거두어 버리는 이안을 보며 레온하르트는 인상을 썼다. 이안 키스트가 말을 이어 갔다.
“너나 그쪽이나 직업이 직업이니만큼 당연히 신중해야지. 게다가 하필 상대가 남자…… 뭐, 네가 알아서 할 일이지.”
“…….”
“벨이라고 했지? 그럼 수잔한테 바로 연락해야겠군. 레온하르트 악셀의 여장을 도와 달라고 하면 수잔이 얼마나 즐거워할지…… 후후. 볼만하겠어! 혹시 파티에서 사진 찍으면 내 SNS에 올려도…… 알았어! 안 올려. 안 올린다고!”
점점 가늘어지는 레온하르트의 눈빛에 이안이 쳇 입술을 삐죽였다.
64화
“그럼 레온, 네가 책임지고 백 선수 집까지 모셔다 드려.”
이안 키스트 집의 주변에 위치한 블루 하트 아동 병원에서 봉사활동을 마치고 나오는 길이었다. 레온하르트는 저와 요한에게 힘차게 소리치고선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바스티안 랄프를 향해 걸어가는 이안의 등을 응시했다.
“랄프 선수가 왜 날 데려다줍니까? 우리 집은 걸어서도 갈 수 있는데.”
“말이 많군요. 어차피 탈 거, 그냥 타면 안 되겠습니까?”
“나는 뭐 말도 못 합니까?”
“워낙 시끄러워서.”
저 둘…….
“……셀 씨.”
언제부터 저리 친해졌지?
“악셀 씨!”
“……아, 미안. 불렀어?”
티격거리는 두 남자의 대화를 들으며 의심의 눈초리를 떨치지 못하던 레온하르트는 재차 들린 요한의 음성에 정신을 차렸다. 여전히 야수로 분하고 있던 요한이 슬쩍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우리도 가죠.”
레온하르트는 그 말을 마친 뒤 제게 손을 내미는 요한을 가만히 바라봤다.
이안의 집에서부터 병원, 그리고 다시 병원의 주차장까지. 요한은 할로윈 파티가 열리는 내내 제 곁에 붙어 있으면서 에스코트해 주고 있었다. 아마도 구두를 신어 비틀거리는 걸 부축하기 위함일 것이다.
‘실은 벗으면…… 되는 거지만.’
이안의 집에 널린 것이 운동화나 남성용 구두였고, 어차피 신발조차 가리는 길이의 드레스였기에 레온하르트는 꼭 공주님용 하이힐을 신지 않아도 되었다.
[이왕 분장한 거, 리얼해야지. 안 그래?]
그러나 제가 뱉어 낸 말도 있고, 또 다른 사람들 앞에서 요한과 손을 잡겠다는 발칙한 꿍꿍이가 있었기에 굳이 신발을 갈아신지 않았다.
레온하르트는 덤덤하게 말하는 요한에게 손을 내민 뒤 빙긋 웃었다.
‘응?’
오늘이 할로윈이라서 다행인 점이 또 있다. 이런 기괴한 꼴을 한 제 모습을 수상쩍게 보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는 거다. 주변 사람들 역시 어떻게든 튀는 복장을 하고 있었기에 상대적으로 숨어들 수 있었다.
괜찮은 방법이었어.
할로윈 파티에 참석하기 잘했다며 미소 짓던 레온하르트는 스르륵, 무언가 제 콧등에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축축한 무언가가 순식간에 녹아내려 툭, 코를 타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놀라 고개를 들자 하늘에서 하얗고 작은 입자가 내려오고 있었다.
“……!”
레온하르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눈이라고?’
곧 겨울이 코앞이긴 하지만 강설량이 적은 런던에 벌써 눈이 내릴 리 없는데.
물론 금세 멎을 것처럼 미약하기 짝이 없는 양이었지만 확실히, 눈은 눈이었다.
요한과 함께 걸어가던 레온하르트는 스르륵, 스르륵 내려오는 눈송이를 응시하다 위로 향했던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두근.
그러자 투명한 눈처럼 어둠 속에서도 하얗게 빛나는 요한의 푸른 눈동자가 시야로 들어왔다.
비록 현재의 자신은 불편하기 짝이 없는 예의 공주님 드레스를 입고 있고, 장난꾸러기 환우들이 가발 끝자락을 있는 힘껏 잡아당긴 탓에 꼴이 말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눈이 내리니까.’
레온하르트는 주위를 잠시 두리번거린 후 요한을 향해 작게 속삭였다.
“하늘이 도왔군. 그쪽이랑 손을 잡고 있을 때 눈이 내리다니. 내 운도 꽤 나쁘지 않지?”
앞으로 두 달은 더 있어야 그의 위시리스트를 완벽하게 충족시켜 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빠르게 두 가지 일을 모두 완료하고 말았다.
이런 걸 보면 요즘 들어 이상기후를 보이는 지구에 감사해야 하는 건지.
레온하르트는 그 말을 뱉어 낸 뒤 마침 도착한 제 차 앞에 서선 씩 웃었다. 그 모습을 보던 요한이 순간 입을 벌리려는가 싶더니 다시 굳은 얼굴로 먼저 운전석에 올랐다.
‘쑥스러운 건가.’
레온하르트는 그런 요한의 뒷모습을 응시하다 눈썹을 위아래로 까딱이며 조수석으로 향했다.
‘아.’
공주 차림인 벨보다는 야수가 훨씬 운전하기 편한 탓에 운전석에 앉은 요한은 오늘따라 이상할 정도로 빠르게 액셀러레이터를 밟아 댔다. 가끔 운전대를 맡기면 물 흐르듯 고요하게 운전을 하던 그가 속도를 높이는 것에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든 것도 잠시. 레온하르트는 어느덧 도착한 제집을 발견하고선 아쉬운 입맛을 다셨다.
‘큰일이군.’
오후 내내 함께 있었는데 이 자리를 벗어나기 싫은 건 또 뭔지.
할로윈 파티 때 요한에게 자신과 함께하는 추억 하나 정도는 만들어 주려던 계획이 성공적으로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레온하르트는 ‘도착했습니다.’라는 말을 요한이 꺼내지 않길 바랐다.
자신이 아는 요한이라면, 자신의 집에 도착하자마자 차를 주차한 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귀가해 버릴 사람이었으니까.
“저…….”
“악셀 씨.”
고민했다.
자신도 그렇지만 요한 역시 내일 훈련이 있는 상황.
그랬기에 더더욱 지금 보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아주 잠깐이라도 더 함께 있고 싶어져 말을 꺼내려던 찰나, 레온하르트는 차고 안쪽까지 들어온 후 시동을 끈 요한이 자신을 응시하자 흠칫거렸다.
두근두근.
갑자기 들썩이는 심장 박동 소리에 흠칫하던 레온하르트는 푸른 눈을 빛내고 있는 요한의 곧은 시선에 어색하게 웃었다. ‘가려고?’라는 말이 입 안에 맴돈다.
잡고 싶다.
잡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하지만 그의 내일을 위해서는…… 곤란하겠지.
레온하르트는 속으로 쓴물을 삼키며 요한의 다음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렸다.
“차 한 잔, 마시고 가도 되겠습니까?”
뭐?
차 키를 건네주며 오늘 파티는 즐거웠다든가, 혹은 얼른 분장 지우십시오, 라는 둥의 말이 나올 거라 예상했던 레온하르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차?”
제대로 들은 게 맞는 건가.
“예.”
“차를…… 마시겠다고?”
“네.”
“우리 집에서?”
“…….”
“요한?”
“일단 내리시죠. 차 우리는 법을 모르신다면 제가 대신 하겠습니다.”
“어?”
“뭐 하십니까. 안 내리십니까?”
레온하르트는 어느새 운전석에서 내려 저를 닦달하는 요한의 은근한 압력에 멈칫했다. 강렬히 빛나고 있는 요한의 푸른 눈동자가 심장에 와 닿았다. 요한의 기백에 압도당했던 레온하르트는 얼떨결에 조수석의 문을 닫고 내렸다.
‘느닷없이 차라니.’
아버지가 영국인이라더니, 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피는 못 속인다.
자신이라면 이 시간에 맥주나 와인을 마셨을 텐데.
그는 마치 제집인 것처럼 차고를 벗어나 집 안으로 들어가는 요한의 뒤를 응시하며 피식거렸다.
“내가 차를 안 좋아해서, 우리 집에 차 종류가 그리 많은 편은 아니야. 밀크티나 얼그레이 같은 것만 있……!”
그리고 먼저 현관에 들어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요한에게 레온하르트가 말을 걸 때였다. 현관문이 채 닫히기도 전에, 누군가의 손이 레온하르트의 손목으로 향했다.
레온하르트가 대응할 틈도 없이 그를 안쪽으로 끌어당긴 요한은 이내 근처의 벽 쪽으로 레온하르트를 밀쳤다.
쿵!
레온하르트의 커다란 등이 벽과 닿아 요란한 소리를 냈다.
레온하르트는 당황한 표정으로 요한을 응시했다. 그러자 내내 쓰고 있던 야수 장갑까지 바닥으로 떨어트린 요한이 서늘하고도 일렁이는 벽안으로 그를 올려다봤다.
“요……한?”
“입.”
두근.
“다물어 주시겠습니까? 지금은.”
강압적이다 못해 섹시하기까지 한 그의 명령에 레온하르트 악셀은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가, 갑자기 이러기야?
심장이 쿵쿵 뛰어 저도 모르게 그의 명령을 따르게 됐다.
요한은 잔뜩 언 전봇대처럼 멀뚱히 서 있는 레온하르트의 목덜미 쪽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고는 이내 살짝 힘을 주어 레온하르트의 얼굴을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
고개를 숙인 레온하르트의 입술 위로 뜨겁고 촉촉한 것이 와 닿는다. 어찌나 강렬한 온기인지 그의 정신을 얼얼하게 만들어 버릴 정도였다.
요한은 실로 거침없이 나아가는 기관차처럼 레온하르트의 벌어진 입 안으로 침투하고 있었다.
여장을 한 탓에 기다란 속눈썹을 붙이고 있던 레온하르트의 눈두덩이 파르르 떨렸다.
‘대, 대체…….’
그가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러한 행위가 결코 싫지 않을 뿐 아니라 짜릿하기 그지없어 레온하르트 악셀은 잠깐의 당혹감을 금세 떨쳐 버렸다. 그러고는 제 안으로 깊게 밀려 들어오는 요한의 혀를 옭아매며 그의 키스에 어울려 주었다.
뜨거운 숨결과 함께 오가는 타액의 교환이 이어졌다. 그가 제 안을 탐하는 것만큼이나 레온하르트 역시 요한을 물고 놓아주지 않았다. 물컹한 혀가 딱딱한 치열을 쓸고, 안쪽으로 깊게 들어와 호흡을 맞바꾸었다.
눈앞이 어지러워지는 듯한 현기증이 느껴졌지만, 전신을 휘감는 전율로 인해 꾹꾹 눌러 온 욕망이 샘솟는 것을 느꼈다.
레온하르트는 공주 분장을 위해 발랐던 붉은 립스틱이 입가로 번져 가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 요한이 진한 키스를 끝낸 후 물러나는 것을 지켜보았다.
하아.
두근두근.
가슴의 박동이 안정을 되찾지 못하고 있었다.
한번 달아오른 열기가 쉽게 가시지는 않을 것 같은데.
레온하르트는 붉어진 눈으로 요한을 응시했다. 키스의 여운이 남아 풀어진 눈이었다.
“요…….”
“악셀 씨와 하고 싶습니다.”
그런 레온하르트에게 요한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하고 싶었습니다. 아까부터.”
짙은 벽안을 제게 꽂은 채.
“해요, 섹스.”
요구했다.
65화
지이익!
레온하르트의 체격에 맞추어 제작된 벨 공주의 샛노란 드레스 지퍼가 요한의 손가락에 의해 아래로 내려갔다. 제 살갗을 스치는 금속 지퍼의 차가운 촉감이 온몸을 부르르 떨리게 했다. 레온하르트는 멈칫하는 저를 보며 스윽 고개를 들어 올리는 요한을 내려다봤다.
‘아.’
아래로 시선을 내리는 순간, 레온하르트의 어깨에 걸쳐 있던 가발의 끝자락이 요한의 얼굴 위로 살포시 쏟아졌다. 레온하르트는 그런 머리카락 사이로 요한의 파랗고 투명한 눈동자를 발견했다. 요한의 미간이 좁아졌다 펴지는 게 보이자 레온하르트는 빙긋 웃었다.
“미안. 불편하지?”
요한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벗는 게…….”
“괜찮습니다.”
요한이 불편해하는 것 같아 갈색 가발을 벗어 던지려던 레온하르트는 그의 손가락이 가발에 닿기 직전, 제 손목을 잡아 버리는 요한을 의아하게 응시했다. 요한은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동자로 시선을 꽂은 채 말했다.
“쓰고 계셔도 됩니다.”
“아…….”
요한은 단호하게 말한 뒤 레온하르트의 어깨에서 반쯤 내려온 레몬빛 드레스를 아래로 내렸다. 거침없는 요한의 행동에 레온하르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를 벽에 밀어붙이며 옷을 벗기고 있던 요한은 드레스 아래에서 드러난 레온하르트의 모습에 황당한 숨을 흘렸다.
“이건…….”
“이, 이안이!”
“……?”
“이안이, 이왕 분장할 거면 제대로…… 해야 한대서.”
젠장.
복부 쪽에 차고 있던 코르셋이 드러나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말까지 더듬으며 중얼대는 레온하르트의 모습에 요한이 픽 웃는 것이 보였다. 아주 세심하군요, 하고 작게 속삭인 요한이 코르셋과 속옷, 그리고 가터벨트까지 착용하고 있는 레온하르트의 다리 사이로 손바닥을 가져다 댔다.
돌아 버리겠네.
요한의 말대로 세세한 곳까지 살폈던 분장이 부끄럽지는 않았지만, 분명 속옷을 걸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벌거벗은 것처럼 얼굴이 달아오른다.
이것이 요한의 손가락 끝이 제 몸을 스쳐 지나가기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로 수치심 때문인지 알 수는 없지만 쿵쿵 뛰는 가슴 박동이 멈추지 않았다.
요한의 손가락이 지나간 길이 데인 것처럼 뜨거웠다.
침을 꿀꺽 삼킨 레온하르트는 자신의 사타구니 쪽을 슥슥 문지르는 요한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차를 마신다는 핑계로 자신의 집 안으로 들어와 순식간에 벽으로 자신을 밀치고, 또 이젠 노란 드레스까지 벗겨 낸 요한은 가라앉은 눈동자로 레온하르트의 몸 구석구석을 관찰하며 중얼거렸다.
참아야 하는 건지, 아니면 그를 넘어트려야 하는 건지 가늠하지 못한 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레온하르트는 나지막한 요한의 음성에 멈칫했다.
요한은 레온하르트의 가슴을 세게 압박하고 있던 코르셋을 풀며 미소 지었다.
“악셀 씨가 점점…… 귀여워 보입니다.”
뭐?
레온하르트는 휘어지는 요한의 눈꼬리에 시선을 집중시켰다. 요한이 중얼거렸다.
“당신의 행동 하나하나가 귀엽고 생각나서…… 두근거리는데, 이걸 어떡해야 합니까?”
수줍은 듯 옅게 웃는 요한을 보며 레온하르트의 이성이 뚝 끊어졌다.
[잡고 있잖아, 우리.]
부드럽게 들려온 레온하르트의 속삭임에 숨이 막히는 것을 느꼈다. 그 말을 기억하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고요하던 눈동자가 거칠게 일렁이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요한은 저를 위해 여장까지 한 후 말갛게 웃고 있는 레온하르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
그 후 기적처럼 내린 눈은, 꾹꾹 참고 있던 요한의 감정을 더욱 벅차게 했다.
표현……하고 싶어졌다.
눈치 따위 보지 않고 거침없이 제게로 다가오는 그처럼, 저 역시.
‘나도.’
아마도 서툴겠지만, 말을 하고 싶어졌다.
그렇다. 요한은 어떻게든 저를 웃게 하려 노력하는 이 사람에게, 조금이나마 제 마음을 드러내고 싶었을 뿐이다.
“하!”
딱딱하게 솟은 페니스가 젖은 애널 입구에 닿자 그의 몸이 먼저 움찔거렸다. 교성을 내뱉지 않으려 애썼으나 쉽지 않았다. 충분히 풀어 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를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아 요한은 미간을 좁혔다.
“요…….”
“가만히.”
몇 번의 자극으로 인해 이미 두꺼워진 그의 페니스를 받아들이기가 어려워 미간을 좁히고 있는 요한에게 레온하르트가 말을 걸려 했다. 요한은 손을 뻗으려는 그에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냉정한 말을 쏟아 냈다.
“가만히, 계십시오. 제가…… 할 겁니다.”
의지가 담긴 요한의 발언에 머뭇거리던 레온하르트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는 원하는 대로 하라는 듯 기다란 가발을 뒤집어쓴 머리를 매트리스 위로 눕혔다. 요한은 후우, 한 번 크게 숨을 몰아쉬며 심호흡을 했다. 그러고는 손을 아래로 내려 레온하르트의 아랫배를 짓누르고선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으읏.”
톡톡, 요한의 안으로 들어오기 위해 꿈틀거리던 기다랗고 묵직한 페니스가 애널 입구를 비집고 들어왔다. 벌렁거리던 애널이 그것을 받아들이기 시작하자 살이 찢기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요한의 입술 사이로 신음이 터져 나왔다. 하아. 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호흡은 거칠어졌고 아래의 통증은 심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반쯤 들어온 그것을 완벽하게 받아들이기 위해 요한은 아래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하윽, 읍!”
처음에는 빡빡하기만 하던 애널 입구가 안쪽으로 파고드는 페니스로 인해 점점 넓어졌다. 그만큼 요한의 안도 뜨겁게 달아오른다. 숨이 가빠지는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요한은 전립선을 자극해 버리는 페니스로 인해 파르르, 눈꺼풀을 떨었다.
“요한.”
그때였다.
레온하르트가 힘겹게 저를 받아들이기 위해 애쓰고 있는 그의 이름을 불렀다. 자신이 하게 해 달라며, 상위 포지션을 차지하고 있던 요한의 푸른 눈동자가 레온하르트에게 꽂혔다. 슬쩍 머리를 든 레온하르트가 요한에게 손을 내밀었다.
“잡아.”
“……!”
“어서. 하나가 되는 건, 같이 해야 하는 거잖아.”
그 말에 찌릿, 전신에 전율이 감돌았다.
‘그러……네.’
저 혼자 애쓴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 요한은 용솟음치는 아래와 달리 부드럽고 다정한 시선으로 제게 손을 뻗고 있는 레온하르트의 녹안을 응시했다. 그러다 슬쩍 고개를 끄덕이며 레온하르트의 손바닥 위로 제 손바닥을 겹쳤다.
레온하르트는 기다렸다는 듯 요한의 손가락 사이로 제 손가락을 끼워 넣으며 힘을 주었다. 요한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더, 들어가도 되나.”
“……예. �!”
요한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절반쯤 그의 안을 채우고 있던 레온하르트의 페니스가 움직였다. 레온하르트가 엉덩이를 살짝 튕기며 반동을 주었기 때문이다. 내벽에 닿을 것처럼 진동하는 그로 인해 요한은 결국 레온하르트의 가슴 쪽으로 쓰러졌다. 다행히 레온하르트가 몸을 일으켜 그를 감쌌기에 요한은 다시금 앉은 자세로 그와 몸을 겹칠 수 있었다.
“움직일 수 있겠어?”
“…….”
“어렵다면…….”
“움직일 겁니다. 움직이고, 싶어요.”
비교적 차분한 눈빛과 달리 제 안에서 어떻게든 움직여 달라고 꿈틀거리는 그의 페니스는 꽤 대조적이다. 요한의 단호한 대답에 피식 웃으며 ‘그럼 원하는 대로.’라 중얼거리던 레온하르트가 매트리스 위로 몸을 기댔다. 하아. 빡빡한 안에 가득 찬 레온하르트의 페니스가 살짝 반동만 해도 저릿해졌다. 주르륵, 등 뒤로 땀방울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끼면서도 눈을 한 번 감았다 뜬 요한은 아직 잡고 있던 그의 오른손과 잠깐 놓았다 다시 잡은 왼손에 힘을 주며 엉덩이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