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황후는 황제를 싫어할 수 없다 (2)
이본느가 애써 죽인 모든 것은 종종 어두운 밤에 맹렬히 되살아나 그를 덮쳤다. 복수라도 하듯 더 강렬한 기억, 더 끔찍한 감정이 되어 꿈에 침입해 이본느를 산산조각 냈다.
살아 숨 쉬는 괴물처럼 그를 쥐고 흔드는 꿈에 패해 헐떡이며 깰 때면, 이본느는 카를로이와 동침할 일이 없는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카를로이는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겠지. 미쳤다는 죄목으로 내쫓으려고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본느 대신 카를로이의 침실에 드나드는 여자들은 대개 황궁에서 일하는 하녀들이었다. 어쩔 땐 시녀도 있었고, 간혹 밖에서 데려온 듯한 여자들도 있었다.
이본느와 혼인하기 전에는 여자에게 눈길도 준 적 없다는 사람이 갑자기 이러는 것을 보면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투명했지만, 한편으론 그만큼 어설펐다.
간혹 몇몇 여자들은, 그러니까 황제인 카를로이보다도 공작의 위세를 더 무서워하는 여자들은, 궁 안에서 이본느를 마주하면 손발을 싹싹 빌며 대뜸 묻지도 않은 사실을 토해 내곤 했다.
<정말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맹세코 황제께선 제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으셨습니다!>
아무래도 이본느가 공작을 등에 업고 자기들을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 버릴 거라 믿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생각한대도 놀랄 일은 아니었다. 어쨌든 카를로이는 누구를 심심풀이로 죽인다는 소문이 있는 사람은 아니고, 공작은 파리 죽이듯 사람을 죽인다는 악명이 있는 사람이니.
정말 카를로이와 아무 일이 없었어서 저렇게 이야기하는 건지, 아니면 이본느가 무서워서 거짓말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쪽이든 카를로이에겐 안 된 일이었다.
분명 침실에서 있었던 일은 절대 바깥에 이야기해선 안 된다고 엄명을 내렸을 텐데 저렇게 아무 소용도 없다니. 황궁조차 온전히 카를로이의 공간은 되지 못하는 듯했다.
카를로이도 이런 어설픈 짓거리는 아무 효과도 없다는 걸 깨달았는지 침소로 공연한 여자들을 불러들이는 것은 금방 그만두었다. 척만 하지 말고 진짜로 안으면 될 일인데 그건 또 싫은 건지.
그래서 카를로이가 뜬금없이 키아나를 황비로 맞는다 했을 땐 그저 저 어설픈 짓거리의 연장선이겠거니, 막연히 생각했다.
침실에서 장난질을 치는 것보단 황비를 들이는 게 나라를 뒤집어 놓기엔 더 효과적이긴 했다. 대륙 네 개 국가 중 축첩이 허용되는 나라는 크로이센과 라르투아밖에 없었지만, 크로이센은 200년간은 그 제도가 유명무실했으니.
대체 어떻게 그 존재를 기억해 낸 건지 의아할 정도로 크로이센에서 황비는 비현실적인 제도였다. 생각이 바뀐 것은 점심 식사에 카를로이가 키아나를 데리고 왔을 때였다.
“내가 처음 겪는 사랑이라는 감정에 너무 푹 빠져 거기까지 생각하지는 못했지 뭡니까.”
카를로이는 즐거워 보였다. 무엇보다도 키아나 로덴은…… 모르겠다. 이본느는 자신이었어도 키아나 로덴과 같은 사람을 사랑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 얼마나 아내로 맞고 싶었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공작 때문에 나를 차마 죽이지는 못하고 저 여자를 위해 죽은 제도도 살려냈구나.
문득 어린 날의 칼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사랑하는 사람과 잘 살고 싶다는, 참 소박한 꿈을 말하던 칼. 귀한 집 아이가 꿈꾸기엔 참 시답잖고 별 볼 일 없는 꿈이라고, 그때 이본느는 생각했었다.
<가족이 만들고 싶은 거야? 별것도 없잖아. 난 우리 엄마만 있어도 괜찮은데.>
<별것도 아니라면 못 가질 이유도 없잖아. 내 편이 있다는 게 어떤 건지 알고 싶어. 그건…… 피로도 돈으로도 만들 수 없는 것 같아.>
떠올리고 싶지 않은 예전 목소리에 현재 카를로이의 모습이 겹쳐졌다. 자신에게는 한 번도 보여 준 적 없는 얼굴을 키아나에게 보여 주는 카를로이의 모습이.
이상하게도 계속 손이 떨렸다. 밤도 아닌데 왜 죽였던 것들이 되살아날까. 이본느는 손에 힘을 주며 애써 그 자리를 버텼다.
카를로이가 키아나에게 보내는 미소를, 어린 날 언젠가 자신에게만 보이던 그 미소를 보지 않은 척하기 위해 애를 쓰며 버텼다.
정말로 마음의 위안을 위해 황비를 맞은 거라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카를로이는 이 궁전에서 안식처가 필요할 테니. 이본느는 절대 그렇게 되어 줄 수 없는 사람이었고.
하지만 안타깝게도 어쩔 수 없다고 자기 세뇌를 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14년의 세월도 아무 도움을 주지 못했다. 오랜 세월 눌러 온 감각이 꿈틀대는 것이 느껴졌다.
이본느는 정말로 미쳐 버리기 직전이었다.
* * *
리리안 루는 거울을 잘 보지 않았다. 일단 볼 이유가 없었다. 어둠의 숲에서 사는 아이에겐 깨끗함이나 예쁨, 이런 외적인 요소는 아무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드니스는 심심하면 리리안이 아주 예쁜 아이라고 했지만, 리리안은 드니스가 자신보다 더 심한 거짓말쟁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아파서 눈까지 안 좋아졌거나.
“너 왜 자꾸 계속 사람을 뚫어져라 쳐다봐. 너 좀, 아니, 눈 크게 뜨고 그렇게 쳐다보지 마. 너 다 알고 그러는 거지?”
“뭔 소리야, 갑자기 왜?”
“보지 말라면 보지 마, 좀! 받을 건 다 받아 놓고 말 하나를 안 들어주네.”
그래서 칼이 뜬금없이 자신을 쳐다보지 말라고 성질을 부릴 때도 못생긴 애는 싫어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눈 작게 뜨고 쳐다보는 건 된다는 거야?”
“……아니. 그냥 쳐다보지 마. 그리고 웃지도 마.”
리리안이 심상치 않은 얼굴로 칼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감금된 지 일주일이 좀 지나면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상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자살한 사람도 여럿 있었다. 칼도 드디어 정신을 놓은 걸까.
“뭐 하는 거야.”
“혹시 어디 아파? 헛것이 보인다든가.”
“누굴 미친놈 취급 하는 거야!”
귀가 또 붉어졌다. 겨울철 밖에 내놓은 볼도 아닌데 왜 자꾸 저러는지. 리리안은 혹시 칼의 취향이…… 하고 의심했지만 이내 자신의 추측에 실소가 나왔다. 아까도 물에 비친 제 얼굴을 똑똑히 보고 오는 길이었다.
성별 취향은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지만, 더럽기만 한 자신은 그 누구의 취향도 될 리가 없다. 리리안 루는 주제를 잘 아는 아이였고, 그걸 꽤 자랑스럽게 여겼다.
“너 내가 더럽고 못생겼다고 지금 그러는 거지? 하여튼 너같이 잘생긴 것들은…….”
“야,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다고 너는……. 왜 말을 지어내고 그러냐.”
“너 같은 애들 생각하는 거야 뻔하지, 뭐. 근데 난 신경 안 써. 나도 알거든, 나 못생…….”
“아, 아니라고! 너 눈이 예쁘다고!”
벌컥 화를 내기에 칭찬이 아니라 욕인 줄 알았다.
‘그래, 너 못생겼다!’라는 말투로 정반대의 말을 하는 카를로이를 리리안이 빤히 쳐다봤다. 말의 내용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탓이었다.
카를로이는 저도 모르게 소리를 쳐 놓고 후회하는 듯 눈길을 피하고 있었다.
드디어 이해한 리리안의 눈이 동그래지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리리안의 입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갈 즈음 갑자기 칼이 퉁명스럽게 중얼거렸다.
“먹을 거나 좀 가져다줘! 이러다 굶어서 죽겠어.”
리리안은 실실 웃으면서 부엌으로 들어갔다.
칼도 참, 귀여운 구석이 있었다. 먹을 것 좀 먹어 보겠다고 저런 침 바른 말로 비위도 맞출 줄 알고. 아니면, 정말 내 눈이 예쁜가?
리리안은 칼이 준 브로치를 허리춤에서 꺼내 들었다. 아직 팔아 주겠다는 사람이 없어 리리안의 주머니에 잠들어 있는 브로치였다. 투명하게 빛나는 브로치 뒷면에 눈을 가져다 대자 반짝이는 초록 눈이 보였다.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부엌에서는 콧노래가 흘러나오고 묶인 소년은 아직도 귀가 빨개져 있다. 그런 날들이 있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 * *
“시녀장님! 시녀장님!”
시녀인 레이디 앙센이 다급하게 메리앤을 찾았다. 메리앤은 여러모로 궁 안에서 말이 많았는데, 가장 큰 이유는 출신 모를 평민이면서 시녀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공작저에서부터 이본느를 모셨다는 이유 그 하나만으로 메리앤은 황후의 시녀장이 될 수 있었다.
“무슨 일이지?”
“황후 폐하께서 갑자기 이상하세요!”
공작파 귀족들의 여식이었던 시녀들은 그런 메리앤을 아니꼽게 여기기도 했지만, 결국 메리앤을 인정하게 되었다.
자신들에겐 유독 싸늘한 이본느가 메리앤에겐 그나마 너그러웠기 때문에. 또한 속을 영 알 수 없는 이본느를 그나마 잘 파악하는 것도 메리앤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다급히 메리앤부터 찾는 것이었다.
메리앤은 두 번 묻지 않고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의 침실로 달려갔다. 어두컴컴하니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았다.
메리앤이 불을 켜려 하자 안에서 불을 켜지 말라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시녀가 옆에서 전전긍긍하며 말했다.
“불을 켜지 말라고 아까부터……. 켜기만 하면 거울을 다 깨고 던지시고 그래요.”
“황후께서 술을 드신 거냐?”
메리앤이 날카롭게 묻자 레이디 앙센이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메리앤이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해하는 얼굴이었다. 레이디 앙센은 코를 킁킁거렸다. 혹시 침실에서 술 냄새가 나나.
메리앤은 한숨을 쉬며 조심스럽게 이본느에게로 다가갔다. 이본느는 어두운 걸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러는 것을 보면 술에 취해 정신을 반쯤 놓은 게 분명했다.
“폐하, 어찌 이러세요.”
술 한 병이 침대 위에서 굴러다녔다. 온 바닥에 깨진 거울 조각들이 있었고, 이본느는 마치 자신이 그 조각 중의 하나라도 되는 듯 침대 위에 앉아 있었다. 이본느가 얼마나 많이 망가졌는지, 얼마나 많이 부서졌는지 한눈에 보였다.
“거울 다 치워. 꼴도 보기 싫으니까.”
“이미 다 깨 버려서 남은 것도 없어 보이는데요.”
“내 얼굴이 비치는 건 죄다 없애 버려. 유리는 쓰지 말라고 분명히 말했잖아.”
메리앤에게 하는 말 같기도 하고 혼잣말 같기도 했다. 거울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아 하던 아이는 이제 없다.
공작저에 들어오고 자신의 얼굴이 공작과 닮아 갈 때마다 이본느는 종종 이런 짓을 하곤 했다. 공작 부인의 딸이었던 진짜 이본느를 기억하고 있는 메리앤이 보기에도 아이러니한 일이긴 했다.
“미쳐 버리겠어. 눈에 보일 때마다 죽고 싶어. 얼굴을 찔러 버리고 싶어.”
이본느가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공작 부인의 딸은 눈곱만큼도 공작을 닮지 않았지만 지금 이본느는 외모도 모자라서 공작의 신체적 특징까지 물려받은 듯했다.
공작은 딱 두 가지에 민감한 반응을 일으켜서 가까이하지를 못했는데, 복숭아와 리투나 생화였다. 그것마저도 이본느는 쏙 빼닮았다.
꽃의 나라로 유명한 크로이센에서 단 하나의 꽃, 꽃의 왕을 꼽는다면 모두가 리투나라고 할 것이다. 리투나 꽃 중에서도 백색의 생화는 대륙 통틀어 가장 화려하다 불리는 꽃이었다.
한 꽃에 수백 개의 꽃잎이 만개하는 리투나 생화는 꽃이 필 때까지 키우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기에 왕족과 귀족들만 볼 수 있는 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아름다움이 유명해 사람들은 주로 조화를 가져다 장식했지만, 왕족과 고위 귀족은 생화로 장식을 하곤 했다.
다만 황궁 공식 연회에서는 30년 전쯤부터 장식용으로 잘 사용되지 않았는데, 델루아 공작이 리투나 생화 향에 민감한 반응을 일으켰기 때문이었다.
해서 공작저에는 갖가지 꽃이 많았지만 리투나 생화만큼은 보이지 않았다. 공작저에서도 없는 꽃이었기에 이본느 스스로도 황궁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모르는 사실이었다.
이본느는 황궁에 들어와서 리투나 생화가 가득 피어 있는 정원을 걷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런 것까지 공작을 빼닮은 것에 대해 얼마나 어이없어하던지.
그날도 이본느는 지금처럼 술을 마시고 막힌 울음소리를 내다 잠이 들었다. 하지만 그건 옛날이었다. 한동안 이본느는 마치 황궁의 삶에 익숙해져 버린 듯 이런 짓을 하지 않았었다.
“무슨 일이에요, 폐하. 뭐가 문제인지 말해 보세요.”
“정말 몰라, 메리앤? 문제가 정말 뭔지 몰라서 나에게 묻는 거야?”
갑자기 쳐든 고개와 분노 가득한 눈, 날카로운 목소리가 부담스러워 메리앤이 시선을 돌렸다. 죄책감이 메리앤의 가슴을 찔렀다.
공작저의 많은 수족 중에 유일하게 이본느에게 마음을 쓰는 사람이 메리앤이었다. 공작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너무 목을 죄면 미쳐 날뛸지도 모르지. 메리앤 너는 그 망아지 목줄을 느슨하게 해 주는 사람이라는 걸 잊지 마라. 하지만 풀어 줘서는 안 돼. 그런 짓을 했다간…….>
알기만 할까? 그마저도 이용하는 인간이었다. 언젠가 공작이 내린 명령을 떠올리며 메리앤은 소름이 돋아 팔을 쓰다듬었다. 그 모습을 보던 이본느가 제 얼굴을 감쌌다.
“메리앤, 미안해. 내 눈에 안 보이는 곳으로 가 줘. 자네 잘못이 아닌 걸로 자네에게 몹쓸 소리 하고 싶지 않아.”
메리앤은 고개를 끄덕이고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했다. 이본느는 자신을 볼 수 없지만 자신은 여전히 이본느를 볼 수 있는 곳에.
황제와 공작이 동시에 난리를 피우는 통에 아무래도 이성이 끊긴 모양이었다. 그래, 문제는 황비 책봉식이었다.
황제는 이본느에게 책봉식을 준비하라 했지만 흠을 잡으려고 기다리는 것쯤은 메리앤도 알았다. 그리고 이미 이렇게 지체된 것부터가 흠이었다.
시종장을 시켜서 사람을 닦달하는 것도 모자라 황제는 이본느가 보이면 꼭 직접 타박을 주곤 했다.
<일부러 이러는 겁니까? 당신이 이렇게 해 봤자 어차피 키아나는 황비가 될 거니까 힘 빼지 마세요.>
황제의 말이 어찌나 싸늘한지 그 순간만큼은 목이 날아가도 메리앤이 대신 뭐라 하고 싶을 정도였다.
반면에 공작은 죽어도 황비를 받아들이면 안 된다고 이본느에게 고함을 질러 댔다. 책봉식은 무조건 안 된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렇게 황제가 뭐 하는 짓거리냐고 타박을 주고 난 후엔 공작이 와서 폭언을 늘어놓는 일이 반복되었다. 이본느는 그 사이에서 어쩔 줄을 몰랐다. 이본느가 저렇게 미치려 하는 것도 이해가 됐다.
술에 취해 잠들었다 깨면 나아질 일이기에 메리앤은 차분히 기다리려 했다. 카를로이가 갑자기 들이닥치기 전까지는, 분명.
카를로이가 들이닥칠 때부터 메리앤은 가슴이 선득하고 초조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이본느는 누가 봐도 제정신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걸 모두 황제가 직접 두 눈으로 봤으니 무슨 트집이 잡힐지 모르는 일이었다.
공작의 위세와 황후의 평판은 다른 이야기였다. 황후가 정신 줄을 놓았다는 소문이라도 퍼졌다가는 공작이 이본느에게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었다.
“메리앤! 메리앤도 내 말을……!”
갑자기 환해진 침실 때문에 이본느가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메리앤에게 화풀이하지 않기로 다짐했지만 메리앤까지 제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생각하자 분노와도 같은 절망감이 이본느를 휘감았다.
이본느는 공작과 카를로이 둘 다 유리로 찔러 버리고 싶단 충동에 시달렸다. 아니, 사실은 거짓말이다. 공작과 카를로이가 아니다. 유리로 자신을 끝내 버리고 싶단 충동이었다. 밝은 곳에 있으면 정말 그렇게 해 버릴지도 몰랐다.
그러나 절망 어린 눈으로 보게 된 것은 메리앤이 아니라 카를로이였다. 카를로이가 알 수 없는 표정을 하고 자신 앞에 서 있었다.
이본느로서의 그 어떤 모습도 카를로이에겐 보여 주고 싶지 않았지만, 이런 너절한 모습은 더더군다나 보여 주기 싫었다.
이본느는 할 말을 잃고 카를로이를 올려다보았다. 똑같이 자신을 내려다보던 카를로이는……. 갑자기 손을 잡았다.
살이 닿자마자 숨이 막혀 왔다. 잊으려 한 과거의 기억이 또 휘몰아쳐 이본느는 숨을 내쉴 수가 없었다.
<넌 원래 그렇게 다치는 걸 신경 안 써?>
<별거 아니니까 그렇지. 원래 이런 곳에서 이렇게 살면 이 정도는 다쳐. 그거 가지고 벌벌 떠는 게 유난이야.>
<아, 그게 아니라……. 아프긴 할 거 아니야.>
언젠가 자신의 피 묻은 발을 닦아 주던 칼이 생각났다. 이본느의 상처를 제 상처보다 더 아파하던. 마치 그때처럼 손을 잡고 있어서 미칠 것 같았다.
이본느는 남은 이성을 한껏 끌어모아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이런 걸 떠올려 봤자 자신에게 득 될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그리 끌어모은 이성은 너무나 약한 것이라, 카를로이의 날카로운 말 하나에 다시 흩어져 버렸다. 나간 넋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을 때 이미 이본느는 이성을 잃고 카를로이에게 말을 쏟아 낸 이후였다.
카를로이에게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도, 그를 원망하지 않는다는 것도 거짓말이었나.
어떻게 이렇게 바로 앞에 두고, 숨까지 닿을 정도로 앞에 두고 모를 수가 있는지. 스스로도 믿을 수 없는 분노였다.
“그래서 지금 그댄 나를 위해서 이러고 있다, 그 말을 하고 싶은 겁니까.”
카를로이의 질문을 듣자 이본느의 머리가 비로소 차가워졌다. 카를로이를 위해서 이러는 게 아니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카를로이를 위한 것이었다면 진즉 알아서 죽어 없어져 줬을 테고, 공작의 충실한 개가 되려고 했다면 카를로이의 말을 무시했을 것이었다. 자신은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을 뿐이었다. 그 무엇도 할 수가 없기에.
온몸이 아파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이본느는 유리 조각이 널브러진 침대에 우두커니 앉아 멍하니 눈물만 흘렸다.
카를로이가 떠난 후 이본느는 충동적으로 황비 책봉식 준비를 진행했다. 어차피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더는 이대로 있을 수 없었다.
* * *
칼이 준 브로치를 파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근처 시골 잡상인들은 하나같이 그걸 사기를 거부했다. 너무 값진 것은 위험하다나 뭐라나. 게다가 제값을 쳐줄 능력도 없다고 했다.
리리안은 어둠의 숲과는 조금 떨어진 작은 도시 보석상까지 가서야 그걸 팔 수가 있었다.
“어머, 루. 이게 다 어디서 난 거야?”
약을 한 아름 실어서 집에 온 리리안을 보고 드니스가 의심을 숨기지 못했다. 그러든 말든, 리리안은 신나서 방글방글 웃었다.
“있어, 그런 게! 나쁜 짓은 아니야!”
“근데 왜 말을 못 해?”
“엄만 알 필요 없어. 치료사 아저씨가 말하는데 이 정도면 1년은 거뜬히 버틸 수 있대! 그러니까 엄마 바느질 더 안 해도 돼!”
드니스는 리리안을 계속 추궁했지만 몸도 약한 사람이 건강한 어린아이를 이길 수는 없는 법이었다. 게다가 그 약은 심지어 예전에 쓰던 약보다 더 좋은 약이었다. 비싼 약의 효과는 얼마나 대단하던지!
드니스는 약을 먹은 이틀 후부터 바로 기침이 잦아들었고 좀 더 오래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일어나자마자 드니스는 일감을 찾기 시작했다. 드니스가 얼마나 놀라며 기뻐하던지 리리안은 칼을 끌어안고 마구 입맞춤을 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리리안은 신이 나서 콧노래를 부르며 깡패들의 장소로 달려갔다. 한 손에는 금화가, 다른 한 손에는 칼에게 줄 비싼 음식이 쥐어져 있었다.
하지만 평소와는 다르게 칼이 갇혀 있는 곳 앞에 깡패들이 심각한 얼굴로 모여 서 있었다.
며칠간 깡패들은 칼을 때리지도 않고 버려두었는데 저러고 있는 걸 보니 무슨 일이 생긴 듯했다. 리리안은 숨을 죽이고 옆에 자리를 잡고 숨어들었다.
“너무 위험한 거 아니야? 단순한 애가 아니잖아.”
“돈을 그만큼 주는데 위험해도 해야지. 그리고 선택지가 있을 것 같아? 이제 와서 못 하겠다 하면 어떻게 되겠냐고. 우리를 어떻게 할 거 같아, 공작이?”
“쩝. 그래도 어린애를.”
“여길 완전히 뜰 수 있을 정도로 돈을 줄 텐데. 잘하면 마하로 건너갈 수도 있어. 이 지긋지긋한 생활도 끝이란 걸 모르겠어?”
“알겠어.”
“사흘 뒤야.”
제대로 잘 들리지 않았지만 중요한 내용은 다 알아챌 수 있었다. 깡패들의 표정을 보고 리리안은 확신했다.
거래가 잘되지 않았고, 그에 따라 칼을 죽이라는 명령이 내려온 게 분명했다. 이런 일을 한두 번 본 게 아니었다. 리리안은 제 손에 쥐어진 금화를 멍하니 바라봤다.
나쁜 짓, 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갇혀 있는 남자아이를 외면하고, 그 애에게 받은 돈인데. 그 애가 죽게 내버려 둔다면 결국 이 돈은 나쁜 돈이 되는 게 아닐까.
적어도 그 전의 사람들에게 리리안은 무엇을 주지도, 받지도 않았다.
“왔어?”
리리안이 들어가자 눈에 띄게 밝아지는 얼굴을 보고는 죄책감이 더 강해졌다.
리리안이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 칼은 자신의 머리를 움직였다. 묶인 몸 중 유일하게 자유로운 곳이 머리였는데, 그마저도 리리안만을 향했다. 보이는 건 리리안 하나밖에 없는 애처럼.
그 모습을 보고 리리안은 결심했다. 리리안 루는 훔치지 않는 이상 꽁으로 무엇을 받지 않는다. 그리고 리리안은 칼의 호의를 이대로 훔칠 생각이 없었다.
약간은 야위고 지친 얼굴로 리리안만 뚫어져라 보는, 그사이에 왠지 좀 큰 것 같은 남자아이의 얼굴을 보며 리리안은 결심했다. 내가 이 아이를 구해 주겠다고.
* * *
“비가 장난이 아니겠어. 보아하니 시간이 지날수록 더 심해질 거다.”
“집이 다 무너질 각오도 해야겠는데요. 이번 비를 피하려면 마법석 아니고서는 힘들 것 같은데. 크로이센은 다 좋은데 비가 이렇게 오락가락해요.”
“마법석이 어디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이야? 집 무너지면 어떡해야 하나…….”
리리안은 빗물 찬 양동이들을 비우며 어른들이 하는 이야기들을 주워들었다.
어제부터 빗방울이 떨어지더니 오늘은 그 세기가 더 거세졌다. 리리안은 이것을 천운이라 생각했다. 칼을 풀어 주라고 하늘이 계시를 주는 거나 다름없었다.
이대로 태풍 수준까지 가면…….
돌아다닐 수 없을 상태가 되기 전에 리리안은 빠르게 시내를 다녀왔다.
“어이, 꼬맹이!”
브로치를 팔았던 보석상이 지나가던 리리안을 보고 불러 댔다. 바빠 죽겠는데, 리리안이 눈살을 찌푸렸지만 가게에서 달려 나와 리리안을 붙잡는 보석상도 만만치 않았다. 그래도 보석상이 우산을 들고 나온 덕에 리리안은 비를 덜 맞을 수 있었다.
“왜요?”
“너 그때 팔았던 브로치 대체 어디서 난 거냐?”
“그런 것까지 알아야 해요?”
“잘 만든 가짜 아니었어?”
도시 보석상이라고 능력이 더 좋은 것도 아닌 듯했다. 대체 그 고급스러움을 보고 어떻게 가짜라 생각한단 말인가?
“가짜라고 생각한 거예요? 아니, 잠시만. 아저씨! 그러면 나한테 준 돈도 설마 가짜라고 생각하고 준 돈이에요?”
“흠흠. 얘가 무슨 소리를. 많이 쳐준 거니까 그런 소리 하지 말어! 그나저나 네 이름이 뭐냐?”
“리…… 예요.”
“리? 무슨 이름이 그래? 성은?”
“없어요!”
“어디 사는데?”
“이상하네. 아저씨가 이딴 거 알아서 뭐 하게요? 그냥 가난한 곳에 살아요.”
이름을 곧이곧대로 말해 주면 안 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시내 보석상이 대체 자신의 이름을 알아서 어디에 쓸 거란 말이야.
대충 둘러대는 리리안을 의심스럽게 쳐다보던 보석상은 리리안의 행색을 보곤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쯧쯔. 돈 받은 건 다 어디에다 써먹었냐? 옷이라도 좀 사 입지. 우산을 사든가.”
“남이사, 신경 끄고 길이나 막지 마세요.”
“성깔 하고는. 너 손에 든 건 뭐야, 플루비석 아니야? 미친 게냐? 폭우가 올 게 뻔한데 비싼 돈 주고 왜 그런 걸 사서 들고 다니고? 이런 폭우는 플루비석만으론 안 막아져, 안투석을 사야지!”
“아, 안투석도 샀으니까 신경 좀 끄시라고요.”
이번엔 말이 먹혔는지 보석상이 리리안의 머리를 한 대 쥐어박곤 자신의 가게로 들어갔다. 거머리 같던 보석상을 떼어 낸 리리안은 가게에서 샀던 마법석들을 소중한 보석이라도 되는 듯 제 품 안에 넣었다.
비가 불규칙적으로 내리는 크로이센에서는 비가 올 때 마법석 중 플루비석을 자주 사용하곤 했다. 어디든 플루비석을 붙여 놓으면 그곳으로 빗물이 집중되기 때문이었다.
반대로 비를 다른 곳으로 흩어지게 하는 안투석은 폭우가 올 때 필요한 물건이었다. 이것들을 다 살 수 있었던 것도 칼의 브로치 덕이었다.
리리안이 의심을 받지 않으면서 칼을 풀어 줄 방법은 딱 하나밖에 없었다. 그곳이 비에 무너지는 것.
“싫어.”
하지만 이건 리리안이 예상치 못한 방향이었다. 야심차게 제 계획을 설명해 주었지만, 칼은 짧게 그 한마디만 했다. 싫다고.
“너 괜히 힘 빼지 마. 쓸데없는 짓이야.”
이곳에 너무 오래 갇혀 있어서 제 주제를 까먹은 걸까, 아니면 드디어 미친 걸까. 살려 준다는데도 싫다 하고.
“미쳤어? 싫고 말고 할 게 없어. 너 여기서 나가야 해. 지금 아니면 기회도 없는데!”
“갑자기 왜 그러는데? 왜, 그 새끼들이 나 죽이기라도 하겠대?”
쉽게 대답하지 못하는 리리안을 보고 칼은 답을 알아차린 듯했다. 하지만 그런 것치고 칼의 표정은 여전히 덤덤했다.
“그럴 줄 알았어.”
“뭐가 그럴 줄 알았다는 거야?”
“날 구해 주러 아무도 오지 않을 거 알았다고. 내가 죽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는 뜻이겠지. 솔직히 그렇게 결정할 것 같았어.”
조용히 말을 잇는 칼의 모습에선 이제 신경질을 내던 어린애 같은 기색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마치 모든 것을 이해한 어른과도 같은 그 모습이 너무 어색해 리리안은 더 초조해졌다.
그리고 이해가 가지 않았다. 대체 어떤 가족이 그런 결정을 한단 말인지. 열세 살 아이를 이렇게 버린다고?
“그래서 진짜 죽겠다는 뜻은 아니지? 나갈 수 있다니까, 여기서. 나갈 수 있는데 안 나가는 건 멍청한 짓이야. 고집 좀 부리지 마!”
“나가서, 나가면 내가 어디로 가는데? 내가 있던 곳은 내가 없는 게 낫다고 판단을 내린 거야. 이제 갈 데도 없다고.”
카를로이는 한숨도 귀찮다는 듯 대충 쉬었다.
“너도 괜한 짓 하지 마. 나 풀어 주면 너한테도 안 좋을 거라며.”
차라리 리리안에게 욕을 하고 신경질을 부리는 게 더 나을 법했다. 이렇게 담담하게 포기를 말하는 모습은 영 적응이 되지를 않았다.
한편으로는 놀랍지도 않았다. 오랜 감금에 지친 것이었다. 살아 돌아가겠다고 이를 악물고 말하던 어린애는 없고, 이제는 그냥 지쳐 버린 사람 하나가 있을 뿐이었다.
도대체 이 불쌍한 머저리를 어떻게 설득해야 좋을지 몰라 리리안은 빙빙 돌며 생각에 잠겼다. 체념한 표정을 보아하니 지금 당장 죽여도 군말 없이 죽을 것 같았다.
오랜 숙고의 결과, 리리안은 자신이 아는 가장 효과적인 설득 방법을 쓰기로 했다.
“아! 뭐야!”
리리안은 최대한 세게 칼의 머리통을 갈겼다. 소리가 크게 나도록.
적절한 폭력만큼 설득력 있는 방법도 없다.
“복수하겠다며! 안 해? 뭐라도 해 보고 죽어야지 너 바보냐?”
“네가 뭘 안다고 나한테 이래라저래라야.”
퍽! 한 대 더 때렸다.
“네가 죽으면 그 인간만 좋은 일 아니야? 살 수 있으면 돌아가서 뭐라도 해 보고 죽어, 멍청아”
아무렇지 않은 척 가만히 있을 땐 언제고 리리안의 말에 칼의 눈엔 분노가 홧홧이 타올랐다. 맞은 것 때문에 화가 난 걸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리리안은 매서운 기세로 다시 한번 못을 박았다.
“돌아가. 돌아가서 직접 확인해. 누가 그런 판단을 내렸는지 보고 다 후회하게 만들어 주란 말이야.”
“네가 뭘 알아? 돌아가면 거긴 지옥이야. 돌아가도 또 죽을 수도 있어.”
또 때려야 하나?
“여긴 아니고? 마지막으로 묻는 거야. 여기서 진짜 죽을 거야, 아니면 뭐라도 해 볼 거야?”
대답 없는 칼을 내려다보다 리리안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리리안이 등을 돌리자마자 뒤에서 성급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간다, 가!
평소처럼 돌아온 모습에 리리안이 뒤를 돌며 빙그레 웃었다. 다행이었다. 차마 저 예쁜 얼굴을 더 때릴 수는 없었다.
“웃지 말랬잖아!”
“또 또, 시비다.”
“……너도 갈 거야? 우리 집…… 넓은데. 너랑 네 엄마도 같이 살 수 있을 정도로. 치료사도 있어.”
“난 여기가 집이야. 그리고 아픈 엄마 데리고 어떻게 가? 네 집이 어디쯤인데? 네가 뭐 마차라도 끌고 올 거야?”
“그건…….”
“그거 봐. 네 목숨이나 잘 챙겨.”
눈에 띄게 시무룩해 보이는 칼을 보고 리리안이 말을 덧붙였다.
“도망치는 것까진 도와줄게.”
“빚은…… 꼭 갚을게.”
“됐어. 브로치로도 충분해.”
리리안이 활짝 웃어 보였다. 또다시 붉어지는 칼의 귀를 보고 리리안은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래, 저렇게 예쁜 남자아이를 죽게 해서는 안 되지. 천장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리리안의 웃음소리와 어우러졌다.
* * *
비는 사람들의 예상보다 훨씬 거셌다. 이런 폭우는 처음 본다고 모두가 입을 모아 말할 정도였다.
리리안은 괜히 지붕에 플루비석을 붙인 것이 아닌가 잠시 후회했다. 이 정도의 비로는 플루비석 없이도 집을, 아니 아예 마을 전체를 쓸어내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집에다 안투석을 잔뜩 붙이고 왔지만, 여전히 걱정되는 건 사실이었다. 마리엘 아줌마가 안투석을 대가로 대신 엄마와 같이 있어 주겠다고 했지만 작은 불안은 남아 있었다.
“야. 나가기는커녕 우리도 여기서 죽는 거 아니야? 수장되겠다.”
칼이 의심스러운 얼굴로 물은 것은 비가 안으로 들이찰 때부터였다.
리리안이 소굴 곳곳에 플루비석을 붙여 놓아 난장판이 된 통에 깡패들은 다른 곳을 점검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니면 어차피 칼은 죽일 놈이라 신경 쓰지 않는 걸 수도.
“그렇게 개죽음당할 순 없지.”
리리안은 안투석을 자신의 몸과 칼의 몸에 마구 붙이며 중얼거렸다. 그러고 나서는 칼을 풀어 주었다. 꼬박 2주 만에 풀려난 칼은 자유로운 팔다리가 익숙하지 않은지 움직이는 게 영 어색했다.
쾅!
갑자기 엄청난 소리가 들리더니 리리안 위쪽의 천장 한쪽이 무너져 내렸다. 리리안은 눈을 찔끔 감고 팔로 머리 위를 감쌌다. 그런데 전혀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의아한 얼굴로 눈을 살짝 빼꼼 뜨자 자신을 감싸고 있는 칼이 보였다.
“야, 너 미쳤어!”
풀려나자마자 하는 짓이 저 대신 무너진 천장을 맞는 일이라니 어지간히 미친놈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 리리안에게 도망치라고 소리치던 모습이 떠올랐다.
“아.”
등을 제대로 맞은 건지 약한 신음이 칼에게서 흘러나왔다.
“뭐 하러 그래?”
“아, 그냥 앞에 사람이 있으니까 한 거야. 구해 줘도 난리냐, 너는.”
“……고마워.”
리리안이 순순히 고맙단 소리를 하자 오히려 칼은 입을 다물었다.
리리안은 슬슬 여기를 뜰 때가 되었음을 직감했다. 이제 곧 있으면 이곳이 다 무너질 것이고, 깡패들이 들이닥칠 것이었다.
“나가자. 지금 나가야 해.”
카를로이는 마치 리리안의 손이 유일한 밧줄이라도 되는 양 간절하게, 그리고 힘을 주어 그 손을 꽉 붙잡았다.
“……네 손 되게 따뜻하다.”
뒤에서 칼이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리리안은 밖으로 나가는 데 온 정신이 집중돼 있었다.
오늘 자신이 여기 오는 건 그 누구도 보지 못했으니 리리안을 의심하진 않을 것이다. 리리안은 뒷문을 조심스레 열고 칼을 끌고 나왔다.
“어디로 가야 할지 알아?”
“당연한 걸 묻고 있어. 여긴 내 구역이라고.”
“근데 넌 왜 날 구해 주는 거야?”
리리안이 맞닿은 손에 힘을 주었다. 손과 손이 닿는 느낌이 어색하고 이상했다. 사실 그건 오히려 리리안이 칼한테 묻고 싶은 말이었다.
왜 ‘자꾸’ 구해 주냐고 묻고 싶었다. 도망치라는 걱정도 해 주고, 브로치를 줘서 드니스를 구해 주고, 무너지는 천장도 대신 맞아 주고.
칼이 저런 사람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구해 줄 일도 없었을 텐데.
“그냥 사람이 있으니까. 그래서 그렇게 한 거야.”
등 뒤에서 칼이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잘 웃지 않는 칼이라 그런 웃음소리는 참 희귀한 것이었다. 그 조용한 목소리가 이상하게 듣기가 좋았다. 리리안은 왠지 자신의 귀가 뜨거워졌다고 생각했다.
밖은 비가 너무 심하게 내려서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잘못하면 그대로 쓸려 갈지도 몰랐다. 리리안이 침을 꿀꺽 삼키고 칼을 잡아끌었다.
“가자.”
비가 거세게 쏟아졌다. 리리안 루는 비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루라는 이름이 비에서 따온 것이긴 했지만, 리리안 루는 비가 좋고, 싫고 이런 걸 가릴 처지가 되지는 않았기 때문에.
하지만 칼을 만난 이후로 리리안은 비가 오는 날은 꼭 밖을 들여다보곤 했다. 그건 공작저로 들어가 이본느 델루아로 살게 돼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까, 칼과 있었던 시간은 리리안 루가 유일하게 리리안 루로 있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드니스의 딸 루가 아니라, 힘겹게 돈을 버는 루가 아니라, 그저 또래 아이와 말을 주고받는 열두 살 리리안 루로 있을 수 있는 시간.
많은 것을 해 주고, 또 더 해 줄 것이라고 약속하고 떠났던 어떤 남자아이와 보냈던 시간을 리리안은 잊지 못했다. 칼은 리리안 루가 살면서 유일하게 한 선행이었기 때문에.
유일하게 자신의 삶에서 자랑스러웠던 것. 아름답고 빛이 나던 것.
비가 오는 날이면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고도 웃고 말할 수 있었던 짧디짧은 시간을 떠올리곤 했다. 이제 그것은 이본느의 습관이 되어서 더는 과거를 떠올리진 않더라도 몸은 비를 따라 움직이곤 했다.
오늘처럼.
“오늘은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산책은 힘들 것 같은데요. 정무궁마저 피해를 입어서 다들 난리던걸요.”
메리앤이 조심스럽게 이본느에게 말했다. 이본느가 평소처럼 산책을 나갈 채비를 하자 건넨 말이었다.
“괜찮아.”
“괜찮다니요. 가뜩이나 황궁이 좀 그런데…….”
메리앤이 말리려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크로이센의 제1황궁인 푸르투 궁전은 그 위용과 화려함으로 대륙 전역에서 유명했다. ‘푸르투’가 고대어로 황금이라는 뜻이었으니 과연 그 이름값을 한다고 할 만했다.
그러나 화려함에 치중되어 있어 구조가 튼튼하진 못했는데 과거부터 잦은 전쟁을 겪으면서 건물들은 더 약해졌다.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은 그 사실을 더 잘 알 수 있었다.
“정원은 괜찮아.”
“정원은 뭐 크로이센이 아니고, 비가 안 내린다던가요? 정원이 뭐 그렇게 좋다고 매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푸르투 궁전이 아직 자랑하는 것이 하나 있다면 궁전의 정원이었다. 총 172구역으로 나뉘는 거대한 정원에서는 온갖 종류의 식물을 구경할 수 있었다. 전쟁을 겪으면서도 정원만은 그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간직했다.
“야외 정원으로 안 가면 되지 않겠나.”
이본느는 포기하지 않고 메리앤을 설득했다.
이본느는 산책할 땐 그 정원을 구경하곤 했다. 비가 오는 날도 마찬가지였다. 꽃을 좋아하냐 하면 또 그건 아니었다. 꽃을 좋아하는 건 드니스였다. 처지가 안 돼 맘 놓고 좋아하지 못했을 뿐이지 드니스는 항상 꽃을 원하고 좋아했다.
이본느에게 꽃이란 일종의 증서와도 같았다. 자신이 공작의 말을 듣는 대가로 얻은 것들이 무엇인지 아름답게 만발한 꽃들이 보여 주었다. 리리안 루와 다르게 이본느 델루아는 그리고 드니스는 여유롭게 꽃을 구경할 처지가 되었으니까.
게다가 꽃은 끊임없이 이본느에게 드니스의 존재를 각인시켰다. 엄마가 아직 공작의 손에 있다는 걸 잊지 않게 해 주는.
또 꽃은……. 아니다, 생각하지 말자.
점점 복잡해지는 이본느의 표정을 보던 메리앤이 졌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엔투라룸으로 모시겠습니다.”
엔투라룸이라 불리는 실내 정원은 푸르투 궁전의 정원 중에서도 최고의 장관이라 할 수 있었다. 각국 사절들과 황족들까지도 구경하고 싶어 하는 푸르투의 자랑이었다. 정작 카를로이는 그곳을 버려두었지만.
듣기로는 정원이라면 치를 떨고 싫어해서 그렇다는데, 이본느는 의외라 생각했다. 어릴 때 알던 칼은 꽃을 굉장히 좋아했었는데.
귀가 먹먹할 정도로 들리는 빗소리를 헤치고 실내 정원에 도착해서도 이본느는 말없이 앉아만 있었다.
이본느가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는 메리앤은 그저 이본느가 황비 책봉식과 공작의 방문 때문에 심란해하는 것이라 여겼다. 조금 전 방문한 공작과 무슨 대화를 했는지까지는 알 수 없던 탓이었다.
“……잠깐 밖으로 나가는 것도 안 되나?”
한참 뒤에 열린 입에선 이상한 요구가 튀어나왔다. 메리앤은 휘몰아치는 바깥을 잠시 응시하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저으려고 했다.
“문 앞에만 가만히, 잠시만 있겠네. 숨이 좀 답답해.”
메리앤으로서는 이본느의 명령도 그렇지만 부탁은 더더욱 거절할 힘이 없었다. 그 어느 것도 하고 싶은 대로 못 하고 사는 사람이 이 정도마저 시녀장인 자신에게 부탁해야 하는 모습을 보고 싶진 않았다.
메리앤이 답이 없자 이본느는 그것이 긍정임을 알았는지 천천히 밖으로 나갔다. 바깥바람을 들이마시자 드디어 숨쉬기가 편해졌다.
자신이 죽는다면 아마 질식사로 죽게 되지 않을까 하고 이본느는 종종 생각했다. 그 정도로 숨쉬기가 버거웠다.
다행히 가림막은 크고 넓어 적당히 비를 막아 주었다. 가림막을 통해 손바닥에 떨어지는 빗방울들이 차가웠다. 제 의지 하나 없이 아래로 추락하는 물방울들을 쳐다보며 이본느는 공작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황비 책봉식을 왜 진행하냐며, 미쳤냐며 난리를 치는 공작에게 이본느는 간단히 답을 했다.
<황비를 그때 독살하면 되잖아요.>
독살. 스스로도 제 입에서 나온 무도하고 잔인한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진심이냐?>
<황제가 언제 또 제게 일을 맡길지 모르는데 이런 때가 아니면 언제 가능하겠어요. 게다가 황제는 로덴가 여자가 저랑 단둘이서는 마주치지도 못하게 해요.>
<흥, 미친놈. 아주 난리가 났군.>
<어차피 황비를 없애야 한다면 황비가 되기 전에 그렇게 하는 게 낫겠죠.>
<하지만 네가 준비한 책봉식에서 황비가 독살당하면 당연히 내 짓이라 생각할 텐데.>
<그 정도의 분위기는 충분히 해결하실 수 있는 분이시잖아요, 공작님. 황제도, 황족도 아니고 황비가 아직 되지도 못한 여자 하나 죽인 건데요.>
반쯤은 어쩔 수 없이 내몰려서 뱉은 독한 말을 오히려 공작은 맘에 들어 하는 듯했다.
드디어 쓸모가 있다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자신과 닮은 점이 외모 말고 하나쯤은 있다고 생각했을까.
황비 책봉식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명단과 책봉식 준비 관련 서류들을 죄다 받아 가는 꼴이 벌써 키아나 로덴을 죽일 생각에 신이 난 듯했다.
어쩔 수 없다. 이본느는 빗방울들을 맞으며 그렇게 생각했다. 위에서 아래로 무참히 떨어지는 물만큼이나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황비 책봉식을 계속 미룰 순 없고 공작의 독촉도 무시할 순 없으니.
이 비에 차라리 쓸려 내려가고 싶다. 비가 내리는 꼴이 마치 14년 전 같았다.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내리던 그날과 비슷했다.
죽지 말고 할 수 있는 걸 하라고 호기롭게 소리치던 그때의 리리안 루는 없고,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달고 사는 가짜 이본느 델루아만 남았지만.
생각해 보니 그때도 남 일이라 그렇게 말할 수 있었던 건 아닌지. 정작 자신의 일이 되니 이본느 델루아는 이토록 힘이 없다.
“폐하!”
시녀들의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도대체 언제 온 건지 카를로이가 서 있었다. 방금 전까지 어린 칼을 떠올리고 있어서 그런지 기분이 묘했다. 칼이 자라지 않았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무용한 생각을 했다.
다 자라 버린 카를로이는 무섭게 쏟아지는 비를 봐도 뭐 하나 떠오르는 게 없는지 여전히 냉담했다.
자신은 관심도 없는 정원 하나 드나들었다고 타박이나 주고. 그동안은 이본느에게 관심이 없어서 놔둔 모양이었다.
사람 속도 모르고 가만두지 않겠다는 말만 해 대고. 미워 죽을 것 같았다.
“건강이 안 좋니, 어쩌니 매일 사람을 들볶으면서 쓸데없이 산책은 왜 하지? 황비 책봉식 일은 아무렇게나 대충 하면서 산책인지 뭔지 할 기력은 남아돕니까?”
하는 말마다 사람을 후벼 파는 가시였다. 좋게 나오는 말이 없었다.
그래, 멍청한 카를로이 따위, 무시하자. 이본느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하지만 몸이 그 생각을 따라 주지 않았다. 결심이 우습게도 잘못 들은 소리 하나에도 이본느는 카를로이를 감싸 안았다.
“……뭐였소?”
물어도 대답할 말이 없었다. 이본느 자신도 스스로가 어이가 없는데 카를로이는 오죽할까.
이본느는 속으로 그저 빚을 갚은 것뿐이라 되뇌었다. 어린 날 칼이 했던 행동을 똑같이 따라 했을 뿐이라고. 아니, 한편으론 차라리 기억해 주기를 바랐다. 비슷한 상황, 비슷한 말, 무엇이라도 기억해 주기를.
하지만 기억은커녕 더러운 것이라도 묻은 것처럼 몸을 털어 대는 카를로이를 보니 정말 이본느는 목을 매달고 싶어졌다. 죽으면 믿어 줄까?
카를로이의 뒤로 눈을 빛내며 서 있는 레이디 키아나가 보였다. 그렇지 않아도 극한에 다다른 마음이 괜히 더 불편해졌다. 저 여자는 고민이 있을까? 어려운 일이라는 게 있을까. 부러웠다.
부러움도 잠시, 독살하니 마니 했던 말들이 떠올라 괜스레 미안해졌다.
힘든 일 하나 없이 살아온 사람이 나 때문에 죽게 되는 걸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무고한 아가씨를 죽일 수도 없는 노릇이고.
게다가 카를로이가 저 여자를 정말 사랑한다면……. 정다운 새 한 쌍처럼 서로에게 먹을 것을 먹여 주던 모습이 떠올랐다.
이본느는 속으로 비아냥거렸다. 참, 운명의 짝이지. 난 복숭아도 못 먹는데 둘은 그런 것도 없이 하하호호 잘 나눠 먹고.
별의별 생각을 하며 키아나를 빤히 바라보았더니 키아나는 당황스러운지 눈을 도로록 굴렸다. 그 모습이 더욱 순진해 보여 아무래도 해독제라도 어떻게 몰래 구해 미리 먹이는 시도라도 해야 하나 고민할 찰나, 카를로이는 키아나는 출입을 허락받았다며 묻지도 않은 소리를 해 댔다.
내게 정원을 보여 주고 싶다고, 보여 준다고 약속할 땐 언제고. 문득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간신히 누르고 이본느는 실내 정원을 빠져나왔다.
칼은 그 어떤 약속도 지키지 않았다. 정원에 데려다주겠다는 약속도, 기억한다는 약속도, 지켜 주겠다는 약속도.
빗소리가 사무치도록 지겨워졌다.
* * *
황비 책봉식이 다가올수록 잠을 잘 자지 못하던 이본느는 결국 키아나의 거처로 밀서를 보냈다. 죽어도 안 된다고, 이러다 들키면 큰일 난다는 메리앤을 간신히 설득해서 한 짓이었다.
차라리 아픈 척 책봉식에 나타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여자 하나를 생으로 죽일 수도 없는 노릇이고, 키아나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듯한 카를로이의 모습이 계속 마음에 걸렸기에.
황궁에서 카를로이가 유일하게 마음에 둔 여자마저 공작의 손에 사라지게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위험 부담이 무색하게도 불구하고 카를로이 측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이본느에게 황비 책봉식이 어떻게 되어 가냐고 빈말로도 묻지 않았다.
이대로 포기하려던 이본느가 자신의 잔에 대신 독을 넣겠다는 생각을 해 낸 건 불과 하루 전이었다. 이본느는 이국적인 식물들을 모아 심은 제28정원에서 꽃을 구경 중이었다.
“저 꽃 정말 소름 끼치지 않아요? 예쁘기는 한데 자살을 하는 꽃이라니.”
투명하고 깨끗한 물 위에 아름답게 자리한 화려한 붉은 꽃을 보던 메리앤이 이본느에게 속삭였다.
“자살을 해? 꽃이?”
“모르셨어요? 저게 왜 마하 제국에서만 핀다는 소라노 꽃이잖아요. 곤충이 닿으면 혼자 액을 내뿜고 자살한대요.”
“왜 여기 있는 꽃은 멀쩡하지?”
“마하에서만 피는 걸 마법으로 피워서 그런 걸 수도 있고, 곤충이 없어서 그런 걸 수도 있겠네요.”
강렬하도록 아름다운 꽃은 이본느에게 진한 잔상을 남겼다. 하다못해 꽃조차도 자신의 말로를 선택할 수 있다니 충격이었다.
그런데 나는?
이본느의 새 결심을 들은 메리앤은 기겁해 소리를 질렀다.
“절대 안 돼요! 죽고 싶으신 거예요?”
“그런 게 아니야. 미리 해독제를 먹으면 돼.”
“해독제가 안 통하는 독이면 대체 어쩌실 건데요! 공작은 바보가 아니에요!”
“독 종류야 미리 알아내려면 알아낼 수 있잖아.”
“그래요? 그럼 차라리 해독제를 레이디 로덴에게 대신 먹이면 되겠네요. 그렇죠?”
날카로운 메리앤의 목소리에 이본느가 입을 다물었다. 메리앤은 기세등등해져 마치 공작저에 있을 때처럼 이본느를 다그쳤다.
“거봐요. 황후 폐하께서도 알고 계신 거죠, 해독제로는 안전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걸! 게다가 몸도 약하시면서.”
“……그런 게 아니야. 해독제가 있다 해도 로덴가의 영애한테 어떻게 접근해.”
메리앤이 또 뭐라고 잔소리를 하려 들자 이본느가 재빠르게 말을 이었다.
“그리고 혹시 만에 하나 잘못된대도, 공작은 엄마를 해치진 않을 거야. 내가 일부러 그랬다고는 생각도 못 할 테니까.”
“그런 말도 안 되는…….”
“메리앤, 너 같으면 내가 그랬을 거라 생각하겠어?”
메리앤은 충격받은 얼굴로 이본느를 바라보더니, 물음엔 답도 하지 않고 질문을 했다.
“정말로, 죽고 싶은 거예요?”
메리앤의 질문에 이본느는 아니라 대답하려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자신은 정말 메리앤의 말대로 죽기를 원하는 걸까.
대답하지 못하는 이본느를 보고 얼굴이 새파래진 메리앤은 다른 방향으로 그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잔을 바꿔치기했다는 걸 알아챌 거예요, 공작은.”
이본느의 이성에 호소하려는 작전인가 보다. 이본느는 무심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심증도 없을 텐데 확증조차 없을걸. 항상 그렇듯 관련자들 전부 죽여 버릴 테니까.”
“그래도 절대 안 돼요.”
“메리앤이 도와주지 않는다면 다른 하녀를 통해서 할 거야. 그럼 더 쉽게 들키고 공작은 날 가만두지 않겠지.”
협박과도 다름없는 말에 메리앤이 아연한 얼굴로 이본느를 올려다봤다.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시는 거예요? 설마 황제를 마음에 두셨나요?”
이본느는 한 번 더 고개를 저었다. 자신은 카를로이를 마음에 둘 수 없다. 이런 처지에 만에 하나 그를 어린 날처럼 마음에 품게 된다면 아마 버틸 수가 없겠지.
“그냥…… 그래 보고 싶을 뿐이야. 적어도 이건 내가 선택한 게 될 테니까.”
선택이란 걸 해 보고 싶어. 이본느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마지막으로 했던 선택은 까마득하게 오래전이었다.
한참이나 대답이 없던 메리앤이 결국 아주 작게 속삭였다.
“해독제는 무조건 먹어야 해요. 어떻게든 제가 알아 올 테니까. 무조건이에요.”
이본느는 그 말을 듣고 굉장히 오랜만에 웃어 보였다. 왠지 뿌듯했다. 오랜만에 한 선택이 무고한 사람을 또 구하는 것이라는 게.
나는 공작만큼 역겨운 사람은 아닐지도 몰라. 나는 그 사람과 닮지 않았다.
이본느의 그 말간 웃음을 본 메리앤만 괜히 괴로워졌다. 적어도 이런 일로 웃는 걸 보고 싶지는 않았는데. 메리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본느는 계속 웃었다.
* * *
리리안과 칼의 도망은 전혀 쉽지 않았다. 제일 큰 문제는 폭우였다. 그들의 탈출을 쉽게 만들었던 폭우는 딱 그만큼 그들의 도망을 방해했다.
어둠의 숲의 외진 곳을 통해 빠져나가려던 계획은 폭우 때문에 난이도가 극심해졌다. 비는 무자비하게 아이들의 옷을 적셨다. 몸에 붙인 안투석이라도 없었으면 아마 진즉 비에 파묻혀 죽었을지도 몰랐다.
숲을 벗어나는 데만 하루가 넘게 걸렸고, 비는 절정이 지났지만 여전히 강했다. 그동안 리리안과 칼은 여기저기 부딪히고 쓸려 몸이 말이 아니었다.
곱게 자란 듯한 칼은, 아니 곱게 자라서 그런지 리리안이 상처가 나는 꼴을 그대로 두고 보지를 못 했다.
“아니, 조심 좀 해! 비 맞아서 더 큰일 나면 어쩌려고 이래.”
피가 날 때마다 꼭 멈춰서 리리안의 상처를 손보는 칼을 보며 리리안은 역시 귀한 집 아이들은 까탈스럽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상처를 하나하나 손보다가는 시간만 더 지체된다고. 투덜거리는 리리안을 칼은 깔끔히 무시했다.
“야, 자기 상처를 무시하는 사람은 건강하지가 못한 거야.”
잔소리마저 심했다. 리리안은 자신에겐 이 정도는 일상과도 같은 일이라고 말했지만, 칼은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
리리안의 앞에서 걷고 있던 칼이 작게 신음을 내뱉었다. 등에서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뭐야, 언제 다쳤어?”
“별거 아니야.”
분명 리리안 대신 무너지는 천장을 맞을 때 다친 것이 분명했다. 리리안이 어쩔 줄 모르는 얼굴로 보자 칼이 인상을 찌푸렸다.
“아까부터 계속 넘어져서 쓸린 거야, 진짜야.”
“거짓말 좀 작작해. 넘어져서 더 심해진 거겠지. 약이라도 대충 발라야겠어.”
남의 상처 가지곤 그렇게 극성스럽게 굴더니 자기 몸에 대해선 왜 저러는지 리리안은 알 수가 없었다. 아니, 자기 상처를 무시하는 사람은 건강하지가 못하다며. 멍청이 같으니라고!
툴툴거리는 리리안을 보고도 칼은 자기 몸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비를 오래 맞아 지친 아이들은 동굴로 숨어들었다. 동굴 근처와 입구에는 비바람에 위태롭게 흔들리는 꽃들이 피어 있었다.
“이거 너 닮았다.”
칼의 등에 약을 발라 주던 리리안에게 칼이 동굴 입구에 피어 있던 들꽃 한 송이를 내밀었다. 새하얀 꽃의 어디를 보고 리리안을 떠올렸는지 모를 일이라 리리안은 그저 인상을 찌푸렸다. 굳이 닮은 사람을 찾자면 리리안보다는 칼이 꽃을 닮았을 터였다.
“밖에 피어 있는 건 처음 봐. 궁…… 우리 집에 있던 건 마법으로 억지로 피워 낸 거라 색이 이렇진 않았는데.”
리리안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 대신 마법으로 핀 꽃이 더 화려하지 않나? 카를로이는 마법으로 피워 낸 꽃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듯했다.
“정원사 말로는 야생화를 마법으로 똑같이 피게 하는 건 힘들대. 아무리 똑같이 만들어도 어딘가는 다르다고.”
묻지도 않았는데 줄줄 말하는 걸 보니 칼은 꽃을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드니스가 떠올라 리리안의 표정이 약간 시무룩해졌다. 리리안의 얼굴을 살피던 칼이 조용히 물었다.
“넌 꽃 안 좋아해?”
“좋고 싫을 게 뭐 있어. 넌 좋아하나 보다?”
“보고 있으면 좋아. 뭔가…… 시간을 견디게 해 줘. 아무리 져도 계속 피는 걸 보고 있으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칼의 말소리가 점점 흐려졌다. 리리안은 애써 밝은 목소리로 화제를 돌렸다.
“우리 엄마도 꽃을 좋아해. 엄마 소원은 항상 큰 정원을 가지는 거였대. 작은 화단이라도 만들어 주고 싶은데.”
“궁…… 우리 집에 정말 큰 정원이 있어. 네가 보면 좋아할 텐데. 너희 엄마도. 어차피 나 혼자만 보는 곳인데. 언젠가는 꼭 보여 줄게.”
마치 초대라도 하고 싶어 하는 얼굴이 웃겨서 리리안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옷이 마르기 시작하자 한기가 들어 웃음 사이로 기침이 흘러나왔다. 입술까지 파랗게 질려 기침을 해 대는 리리안을 칼이 알 수 없는 얼굴로 보다 물었다.
“얼마나 남았어?”
“조금. 이곳만 지나면 마르키아의 들랑시가 나와. 치안이 잘된 곳이고 공작령이 아니라 괜찮을 거야.”
“마르키아? 그럼 변경백인가…….”
“벼, 변 뭐?”
“아무것도 아니야. 그럼 넌 여기서 비가 멎을 때까지 기다리다가 네 집으로 돌아가.”
“칼 너는?”
“난 혼자 갈 수 있어.”
사실 리리안도 마음 한쪽이 엄마에게 쏠려 있긴 했다. 마리엘 아줌마는 좋은 사람이고 받은 만큼은 해 주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칼은 리리안이 야무지게 챙겨 온, 그러나 물에 약간 젖은 음식 몇 가지와 물건들을 다 리리안 옆에다 뒀다. 리리안이 불안한 눈으로 그를 살폈지만 어쩐지 칼의 얼굴은 단호해 보였다.
“지금쯤 내 시체가 없다는 걸 눈치챘을 거야.”
“그게 무슨 상관이야. 어차피 죽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포기하겠지.”
“넌 공작을 몰라. 일이 실패한 걸 알게 되면 관련자 전체를, 아니 잘하면 마을 전체를 없애 버릴 거야.”
리리안의 얼굴이 희게 질렸다. 고작 이런 말에 겁에 질리는 아이가 자신의 탈출을 도왔다니 칼은 기분이 묘해졌다.
리리안보다 많이 가진 사람은 많았지만 그중 누구도 자신을 도와주진 않았다. 리리안보다 크고 강한 사람은 셀 수 없이 많았지만 그중 누구도 자신을 구해 주겠다고 하진 않았다. 리리안보다 오랫동안 알아 온 사람도 있었지만 그 누구도 자신을 지켜 주진 않았다.
칼은 갑자기 자신의 앞에 나타난 작은 구원자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천천히 눈에 담았다.
안 그래도 마른 몸에 사정없이 난 생채기, 움츠러든 몸, 계속해서 나오는 기침, 헝클어진 머리와 같은 것들. 그러고도 자신이 걱정된다는 듯 올곧게 저를 보는 반짝이는 초록색 눈동자를. 황궁에 널려 있던 에메랄드도 저 눈보단 덜 반짝였던 것 같다.
“폭우 때문에 지금 당장 어쩌지는 못하겠지만 언제 위험해질지 몰라. 넌 빨리 네가 사는 곳으로 돌아가. 너희 엄마도 걱정될 거 아니야. 가면 바로 공작령을 떠나.”
“떠나라고?”
“너도 할 수 있다면 마르키아령으로 가 있어. 내가 준 브로치 팔았지? 그 금화로 몇 달은 살 수 있을 거야. 그러면…… 내가 곧 널 찾을게.”
“너는, 너는 어쩌고?”
“난 이제부터 혼자 갈 수 있어. 혹시 모르니까 금화만 좀 빌리자.”
칼은 정말 금화만 몇 개 챙기더니 나머지는 전부 다 리리안의 옆에 두었다. 그것도 모자라 자기가 입고 있는 겉옷을 벗어 리리안에게 덮어 주기까지 했다.
“미쳤어? 너 그렇게 얇은 옷 입고 비 맞으면 얼어 죽어.”
“이틀 안에 그칠 비야. 넌 그때까지 여기서 몸 좀 사리다가 비가 적당히 그치면 돌아가.”
리리안이 저도 모르게 칼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칼은 조그만 손을 한참 동안 내려다보더니 처음으로 미소를 지었다. 리리안이 지금껏 본 것 중 가장 따뜻한, 그래서 아름다운 미소였다.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린 것 같아 어색했다. 그래서 그런 걸까, 리리안은 괜히 얼굴이 달아올랐다.
“루, 너는 할 만큼 했어. 내가 너에게 준 것보다도, 더 해 줬어. 이제는 내가 알아서 할게.”
칼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처음이었다. 리리안의 손에 힘이 들어가자 칼이 부드럽게 그 손을 감싸 쥐었다.
“고마웠어. 돌아가면 꼭 너를 찾을게. 물론 바로는 찾지 못하겠지만……. 내가 찾는 걸 알면 너까지 위험해질 테니까. 하지만 최대한 빨리 찾을 거야.”
그렇게 위험한 곳이라니. 리리안은 문득 그런 곳에 칼을 돌려보내겠다는 제 계획이 너무 무모하지 않았나 하는 후회를 했다.
“난 그동안 지킬 게, 지키고 싶은 게 없었는데…….”
“칼?”
“돌아가면 꼭 너를 찾을게. 절대 잊지 않을 거야, 네가 날 구해 줬다는걸. 잊고 싶어도 잊지 못할 거야.”
“너도 조금만 있다가 가. 비가 아직도 많이 오잖아…….”
칼이 입술을 깨물었다. 몸에 지닌 게 없다는 사실이 이렇게까지 아쉬운 적은 없었다. 뭐라도 주고 싶은데 브로치는 이미 팔았을 테고, 자신이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정말이지 단 하나도 없었다.
“난 최대한 빨리 가야 해. 나랑 더 있으면 너만 더 위험해질 거고. 너 혼자 있다 발견되면 그나마 괜찮겠지만.”
“칼.”
“정말이야, 약속할게, 루.”
뭘 약속한다는 건지 모르겠다. 단호한 모습에 리리안은 그저 손에서 힘을 풀 수밖에 없었다.
“내 이름, 리리안 루야. 리리안 루.”
무슨 남자애 이름이 그러냐고 물을 줄 알았던 칼은 그저 웃기만 했다.
“이름 예쁘네. 루가 더 잘 어울리긴 하지만. 비가 생각나는 이름이잖아.”
리리안이 당황해서 칼을 빤히 올려다봤다. 무슨 뜻이지? 웃음이 넘실거리는 금색 눈을 보다가 마침내 리리안은 깨달았다. 얘, 내가 여자인 걸 알았구나.
“대체 언제부터야?”
리리안의 질문에도 칼은 계속 웃기만 했다. 칼은 리리안의 손을 놓고는 다시 한번 리리안의 어깨에 덮인 제 옷을 여며 주었다.
“살아서 돌아올게.”
리리안은 칼이 조금 치사하다고 생각했다.
“루, 반드시 널 그 누구도 부럽지 않게 만들어 줄게. 내가 지켜 줄게.”
아니, 조금이 아니고 몹시 치사했다. 내내 퉁명스럽게 굴다가 헤어질 때가 돼서야 이렇게 다정하게 구는 게 정말이지 너무 치사했다.
헤어지는 게 쉽지가 않잖아. 이제야 이름을 부르고. 차라리 처음처럼 싸가지 없게 굴었다면 리리안도 미련 없이 꺼지라고 했을 텐데.
하지만 그 표정과 손이 따뜻해 리리안은 쉽게 입을 뗄 수가 없었다. 빗소리가 정적을 메웠다. 눈에다 새겨 넣을 것처럼 한참을 리리안을 바라보던 칼이 얼굴을 가까이했다.
“그러니까 너도 살아 있어야 해. 날 잊으면 안 돼.”
그 말이 마치 주문처럼 리리안의 귀를 울렸다. 차가운 입술이 이마에 닿았다. 리리안은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상한 일이다. 고작 열흘 좀 넘게 안 남자아이인데. 고작 2주 만에 칼은 아이에서 어른이 된 것 같다. 리리안이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칼은 마침내 결심한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굴 입구에서 잠시 뒤를 돌아보던 칼이 결국 동굴을 나서서 달리기 시작했다.
리리안은 꽃 한 송이를 손에 꼭 쥐고 이제는 비만 보이는 밖을 한참을 바라봤다. 이 비가 모두 그치면 마치 꿈을 꾼 듯 이 모든 일이 함께 사라질 거란 생각이 들었다.
* * *
비가 그치듯이 이본느 델루아는 꿈에서 깨어났다. 흐린 눈에 보이는 것은 동굴의 거친 천장이 아니라 황궁의 화려하기 짝이 없는 천장이었다.
천장의 명화가 눈에 들어왔다. 서로를 너무 사랑해서 한날한시에 죽었다는 어느 황제와 황후의 그림.
눈을 한 번 깜빡이자 그림이 선명해지고 정신이 돌아왔다. 처음 든 생각은 복합적이었다. 어떻게 엄마를 잊고 그렇게 무서운 도박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 또 한편으로는 결국 다시 살았구나 하는 생각.
눈을 몇 번 더 깜빡이자 옆에 자신을 보고 있는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폐하. 왜 이곳에.”
카를로이였다. 꿈에서도 계속 보이던 얼굴이 깨고 나서도 보일 줄이야. 괜히 어지러운 머리가 더 혼란스러워졌다.
“……아까 황후가 잠결에 칼이라고 중얼거리던데.”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한편으론 스스로가 어이가 없었다. 잊지 말라고 먼저 시킨 주제에 정작 자신은 까맣게 홀랑 잊어버린 멍청이가 뭐가 좋다고 이름을 불렀다는 말인가. 모두 다 이 청승맞은 꿈 때문이었다.
까칠하게 대답하면 알아서 적당히 사라질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과는 다르게 카를로이는 갑자기 이본느의 손을 잡았다. 꿈에서 느껴졌던 아득한 온기가 마치 현실이 된 듯한 이상한 기분에 이본느의 가슴이 불안하게 뛰었다.
“……걱정, 했습니다.”
두 귀로 듣고도 믿을 수 없는 말에 이본느의 가슴이 더 세차게 뛰었다. 혹시 아직 꿈에서 다 깨지 않은 것이 아닐까. 이것도 또 다른 꿈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피부로 느껴지는 카를로이의 손은 지나치게 뜨거웠다. 이토록 뜨거운 꿈이 세상에 있었나.
가슴이 불안하게 뛰었다. 이본느 델루아는 이제 더 이상 리리안 루가 아니었다. 리리안 루의 모든 것은 이본느의 안에서 죽었다. 누군가에 대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도 견딜 수 있었던 리리안 루는 없다.
이번에도 또 그런 일이 생긴다면 이본느 델루아는 견디지 못하고 정말로 죽을지도 몰랐다.
무서움인지 설렘인지 모를 감정으로 심장이 계속해서 두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