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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죽기를 바랄 때가 있었다-0화 (1/22)

네가 죽기를 바랄 때가 있었다 1권

ⓒ진서,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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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그날은 크로이센의 황제 카를로이 크로이탄과 델루아 공작의 금지옥엽 이본느 델루아가 국혼을 한 지 딱 1년이 되는 날이었다. 국혼 기념일을 맞아 수도는 일주일째 축제 분위기였으며 수도의 황궁 푸르투 궁전 내에서는 국혼을 축하하는 파티가 열렸다.

의외로 구색을 갖춰 제대로 열리는 축제와 파티에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제국인들 중에서 황제가 제 황후를 지독하게 싫어한다는 것을, 아니 싫어하다 못해 증오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기에.

당연히 황제가 국혼 기념일을 깔끔히 무시할 거라 예상했으나 성대하게 열리는 축제를 보고 사람들은 혹시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국혼 기념일 당일에 열린 황궁의 파티에서 혹시나가 역시나임을 알게 되었다.

국혼 기념이라는 명분이 민망할 정도로 황제와 황후는 단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황제는 보란 듯 다른 여자들과만 춤을 췄고 황후는 그런 천대가 익숙한지 미동도 없이 무표정으로 시녀들의 시중만 받고 있었다.

델루아 공작은 사랑해 마지않는 딸이 받는 대접에 눈물까지 글썽거리며 분개했지만 달리 방도가 없었다. 어쨌거나 부부의 일은 부부의 일이었다.

델루아 공작의 눈치를 본 귀족들이 가서 황후에게 말을 걸며 아양을 떨었지만, 황후는 마치 그 무엇도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다는 듯 아무 반응이 없었다.

의연한 건지, 냉담한 건지 구분이 가지 않는 태도였다.

“이날을 맞아 그대들에게 알리고 싶은 것이 있네.”

황제는 혼자 즐거운 낯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빙그레 미소 짓는 얼굴은 건국 이래 최고로 아름다운 남자라는 유명세에 맞게 아름다웠지만 찝찝했다.

황제가 저런 식으로, 저렇게 혼자만 즐거운 낯으로 뻔뻔하게 통보한 것 중에 멀쩡한 일은 없었다.

귀족들이 가장 싫어하는 그의 표정이었다.

“황후와 내가 결혼을 한 지 어느덧 1년인데 아직도 후계가 없지 않나. 큰일이야. 암, 큰일이고말고.”

태평하게 말을 시작한 황제가 술잔을 들어 제 목을 축였다. 귀족들은 이젠 황제에 대한 적개심을 숨기지도 않는 델루아 공작의 눈치를 살폈다.

황제가 황후와 동침하지 않는다는 건 황궁에 돌아다니는 쥐새끼들도 아는 일이었다. 황후의 처소에 제 얼굴 한번 비추지 않으면서 후계 운운하는 것이 참으로 뻔뻔했다.

반면 황후는 마치 남의 일을 듣는 것처럼 여전히 무표정했다. 영혼이 어디 다른 곳에 가 있는 사람 같았다.

“부부 관계가 이렇듯 소원하니 국혼 기념일을 맞아 무언가 변화를 주어야 할 것 같아. 환경이 변하면 좀 달라지는 게 있겠지.”

“무슨 변화를 말씀하시는지……?”

누군가 불안한 말투로 물었다. 황제는 대답 없이 옆에 서 있던 신하 하나를 툭 건드렸다.

신하는 영 내키지 않는 듯 머뭇거리더니 옆의 시종에게 무언가를 시켰다. 명령은 밑으로, 밑으로 쭉 내려가더니 연회장 입구의 시종에게까지 닿았다. 그 시종이 외쳤다.

“로덴 후작가의 영애, 레이디 로덴이 입장하십니다!”

연회장의 문이 열리고 새까만 머리를 우아하게 틀어 올린 여자가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안으로 들어섰다.

연회장 내에는 싸늘한 정적만이 흘렀다.

여자의 드레스, 여자가 한 모든 장식이 황후에게 맞먹는 것임은 누구나 알 수 있었다.

“아니, 저 무슨…….”

마치 황후처럼 입장하는 여자를 보고 공작 측근 귀족들의 얼굴이 새파래져 델루아 공작과 이본느 델루아를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델루아 공작은 이제 얼굴이 터질 것처럼 붉어져 있었고, 황후의 무표정한 얼굴이 드디어 변했다.

지겨워 죽겠다는 표정을 한 얼굴로.

“폐하, 이렇게 부르시면 부끄럽다고 말씀드렸잖아요!”

키아나 로덴은 모든 시선을 가볍게 무시하고 황제의 곁으로 다가가 애교 띤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황제는 키아나 로덴의 허리를 다정하게 끌어안고 말했다.

“키아나를 황비로 삼을 생각이네.”

황제의 선포에 여기저기서 “폐하!” 하는 외침이 들려왔다. 황제는 들리지도 않는지 다정하게 키아나에게 복숭아 따위의 과일을 친히 먹여 주며 싱글벙글 웃어 댔다.

200년도 전에 없어진 제도를 들먹이는 망나니 황제가 쓸데없이 잘생긴 얼굴로 미소 지으며 술잔을 들었다.

“참고로 무를 수는 없어. 내가 이미 레이디의 소중한 것을 받았거든. 황제가 되어 책임도 못 지면 그런 부끄러움도 없지.”

동침까지 했다는 뜻인가? 황제의 말이 무슨 뜻인지 생각하던 귀족들이 뒤집혔다.

황제는 정신을 못 차리고 여전히 키아나와 주거니 받거니 애정을 과시하고 있었다. 결국 델루아 공작이 분노를 참지 못하고 고함을 질렀다.

“폐하!”

연회장을 뒤흔드는 노성에도 황제는 대수롭지 않게 황후를 쳐다봤다.

“황후, 설마 질투하진 않겠지요? 후계를 위해서 이 정도야.”

황후에게서는 자식을 보지 않겠다는 말과 다름없었다. 황후 이본느는 여전히 이 모든 소란이 자신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네.”

높낮이 하나 없는 말투와 건조한 목소리로 짧게 뱉은 단어 하나, 그것이 이본느의 대답 전부였다. 그 무심한 얼굴을 보는 황제의 낯에 일순 분노가 스친 것도 같았지만 사람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황제는 황후가 숨만 쉬어도 싫어하는 사람이었기에.

“편해서 좋군. 그럼 키아나를 황비로 만드는 절차들은 공들이 알아서 하시오. 나는 이만 가 볼 테니. 할 일이 있거든.”

“폐하!”

황제는 술잔을 내려놓고 키아나를 품에 끌어안은 채 퇴장했다. 그 꼴을 보아하니 ‘할 일’이 무엇인지 짐작되는 듯했다.

국혼 기념일에 열린 연회 한가운데에서 황제는 새 여자와 퇴장하고 황후 홀로 남았다. 기가 막힌 날이었다.

파티의 성대함과 화려함조차도 이 순간의 여흥을 위한 질 나쁜 농담처럼 느껴졌다.

모든 시선이 제게로 쏠리자 이본느는 지루해 죽겠다는 얼굴로, 귀찮다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뭐 하는가? 명대로 하게.”

그렇게 그들이 결혼한 지 1년이 되는 날, 황제 카를로이는 황후를 엿 먹이겠단 심산으로 새 여자를 데려와 그 여자를 황비로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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