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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보다 아름다운-140화 (14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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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기분이 아주 좋다.

일단 새 옷이 마음에 들었다. 오늘 처음으로 받은 진줏빛 드레스는 웬디 언니가 결혼식 때 입었던 신부용 드레스만큼이나 예쁜 것 같다. 길 위에 쌓인 흰 눈이 햇빛에 빛날 때처럼 은은한 반짝임도 느껴진다.

이따가 저녁때가 되면 아버지를 마중 나가서 내 새 드레스를 보여드릴 생각에 미소가 절로 나온다. 틀림없이 예쁘다고 칭찬해주시며 나를 안아주시겠지. 어째서일까. 왠지 예쁘다는 칭찬은 어머니께 듣는 것도 기쁘지만 아버지께 듣는 편이 더 간지럽고 기쁘다.

내 아버지에 대해 말하자면, 투스미아의 다른 남자 어른들보다 몸집이 약간 작은 편이지만 그 대신 100배는 잘생겼고 내 어머니를 한 팔로 안아 들 수 있을 정도로 힘이 센 분이다. 그러니 커다란 레헤드 땅의 주인 노릇을 하는 데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게 당연하다. 모든 영지민이 내 아버지를 ‘주인님’이라고 부르며 존경한다.

그리고 이건 최근에 배우게 된 사실인데, 아버지는 진짜 레헤드 백작님인 큰오빠를 대신해서 영지를 다스리는 섭정이기 때문에 원래는 아버지를 ‘주인님’이라고 부르면 안 된다. 하지만 어른들의 복잡한 사정이 있어서 용인되고 있는 특수한 사정이라고, 바키가 내게 알려주었다.

아버지는 자기를 골탕 먹이려는 바쉬 공작님의 계략으로 이런 지경이 되었다고 말씀하셨지만 내 생각에는 아닌 것 같다. 언제인가 바쉬 공작님께서 우리 형제들에게 ‘너희를 낳아주었으니, 굳이 따지자면 발렌틴 웨버는 예쁜 놈이라고 할 수 있단다’하고 말씀하신 적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거울 앞에 서서 새 드레스를 입은 내 모습을 마지막으로 점검했다. 오늘따라 훨씬 어머니를 닮아 보이는 기분이 들어서 행복해졌다.

들뜬 기분으로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내 뒤를 따라 다녀주는 사람은 유모처럼 나를 돌봐준 셜리다. 셜리의 아이들은 나보다 나이가 많은 남자 아이들이라 굳이 따라다니지 않고 내버려둬도 된다고 한다.

참, 오늘의 좋은 일이 또 하나 있다.

어머니가 곧 레헤드로 돌아오신다. 아이넨에서 일을 보시고 나서 웬디 언니 부부를 데려오기로 한 날이다.

킹스턴 수학반의 방학이 시작되면, 웬디 언니는 학생들을 기숙사나 집으로 돌려보내고 레헤드로 휴가를 지내러 온다. 앞으로 한 달간 우리는 또 함께 지낼 것이다. 그림 작품 활동이라면 여기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까.

웬디 언니는 어머니의 여동생이나 다름없는 사람이며, 우리를 무척이나 사랑한다. 내가 말하는 우리란 물론 웨버 가족을 뜻한다. 언니가 결혼을 한다고 했을 때는 아주 조금 걱정이 되었지만, 로건 경은 마음씨가 웬디 언니와 똑 닮은 좋은 사람이다.

“웬디 씨가 못 알아보면 어떡하죠? 우리 소피아 아가씨가 너무 자라버리셔서 말이에요.”

셜리가 내게 말하며 웃었다. 바로 반 년 전에도 잠깐 만났으니까 벌써 얼굴을 잊어버렸을 리 없는데도 괜한 소리를 한다. 하지만 사실 오늘 나와 마주친 시녀들도 모두 같은 말을 했다. ‘갑자기 어엿한 아가씨가 다 되셨어요.’ 하고.

“셜리. 나도 빨리 커서 새신부가 되고 싶어요. 그 전에 먼저 훌륭한 첼리스트가 될 거지만요.”

“아무렴요. 하지만 너무 빨리 결혼하시겠다는 말씀은 하지 마세요. 특히 아가씨의 부모님 앞에서는요.”

“결혼해도 다 함께 살 텐데 뭐가 걱정이에요?”

나는 조금 부끄러웠지만 씩씩하게 말했다.

어떤 여성들은 결혼하면 남편을 따라서 멀리 떠나기도 한다지만 나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이유는 내가 시집갈 곳이....

아니, 그건 좀 나중에 이야기해야겠다.

“안녕하세요, 바키 씨. 성을 구경하러 왔어요. 방금 여기 일하시는 분을 통해, 우리 주인님 내외께서는 부재중이시라는 말씀을 들었네요.”

갑자기 나타난 손님들 한 무리가 홀 안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나는 기둥 뒤에 숨어서 그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젊은 남자들이 무리에 포함되어 있어서 함부로 나서고 싶지 않았다.

“안녕하십니까, 베리 부인. 예, 공교롭게도 두 분 모두 부재중이십니다. 주인님께서는 시찰이 늦어지실 예정이고 마님께서는 아직 입국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후에나 들어오실 듯하네요.”

“그렇군요. 로아타르에서 제 조카가 왔는데 스테판 웨버 씨에게 많은 도움을 받고 있대요. 레헤드 성을 구경시켜주는 김에 우리 주인님 내외를 뵙고 인사를 올리게 해드리면 좋겠다 싶었는데 아쉽네요. 다음에 또 기회가 있겠죠.”

“물론이지요. 언제든지 또 오십시오. 오늘은 조카분과 즐거운 시간 보내십시오.”

손님들은 아쉬워하며 바키에게 인사하고 물러났다. 나는 손님들의 모습이 멀어지는 것을 확인한 후 바키에게 다가갔다.

“바키.”

“소피아 아가씨.”

“혹시 우리 어머니께서 몇 시에 돌아오실지 아세요?”

바키는 내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은 듯, 허리를 굽히며 귀를 기울였다. 바키가 나이가 많아서는 아니고, 내가 어머니를 닮아서 목소리가 작기 때문이었다.

“셜리랑 같이 항구로 마중 나가면 안 돼요? 우리 배가 들어오는 걸 보고 싶어요.”

“저도 그렇게 해드리고 싶습니다만.”

바키가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서 나를 올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정확한 도착 시간을 짐작하기가 어려워서 말입니다. 나가셨다가 괜한 고생만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아가씨께서 항구에 계신 모습을 보시면 마님께서도 걱정하시지 않겠습니까?”

“저도 이제 다 컸는걸요. 셜리랑 경호원을 데려가도 안 되나요?”

내 말에 바키가 눈을 가늘게 떴다. 눈가에 주름이 번지며 인상이 더 부드럽고 다정해졌다.

“물론 다 크셨지요. 하지만 아무리 크셔도 부모님께는 아기랍니다. 마님께서는 우리 아가씨가 성에서 맞아주시는 편을 더 기뻐하실 겁니다.”

“응... 알겠어요.”

나는 바키의 말을 왠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연주실로 올라가서 내 첼로를 꺼냈다. 어머니와 함께 쓰는 연주실로 다른 방보다 방음이 훨씬 잘 되었다. 엔드핀을 끼우는 것은 셜리가 도와주었다. 튜닝은 아침에 가정교사가 해주었던 그대로였다.

내 첼로는 어머니의 것보다 훨씬 작고 가볍게 만들어졌다. 내 키가 어머니만큼 크고 내 실력이 어머니만큼 훌륭해졌을 때에는 내게도 커다란 첼로가 생길 것이다. 그때까지는 이 작은 첼로로도 충분하다.

나는 내 연습용 의자에 앉아서, 이번 주에 새로 배운 소나타를 연습했다. 작은 첼로를 내게 기대게 해서 내 몸의 일부가 되게 하고서 활을 움직이면, 악기와 맞닿아 있는 내 몸 전체가 함께 울린다. 잃어버렸던 팔 하나가 생겨나는 것처럼, 잃어버렸던 심장 하나가 더 생겨나는 것처럼 편안해지고 행복한 기분이 된다.

하루빨리 어머니만큼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게 되면 좋겠다. 연주회에도 나가고, 레코드에 곡을 담아서 연주회에 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게 내 꿈이다.

얼마 전에는 어머니께 부탁드려서 먼저 한 일이 있는데, 내가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자장가를 어머니의 연주로 녹음해서, 자기 어머니에게 자장가를 들을 수 없는 아이들에게 보내준 것이다.

내가 더 자라면 스스로도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될 거다.

어른이 된다는 건 얼마나 근사한 일일까.

아마도 그때가 되면 나는 어머니가 이루시지 못한 첼로 연주자의 꿈을 대신 이루었을 것이고, 바쉬와 레헤드 성을 꾸리는 일을 도우며 부모님 일을 덜어 드리고 있을 것이며, 또한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신부가 되어 행복한 가정을 보살피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싫어하는 종류의 채소나 훈제 생선까지도 남기지 않고 다 먹고 있다. 훌륭한 어른이 되기 위해.

오늘은 특히 더 신경 써서 영양을 섭취하고 공부도 할 생각이다. 왜냐하면 바로 내일이....

“소피아 아가씨, 마님께서 돌아오셨답니다.”

나는 한창 빠져 있었던 연주를 도중에 멈췄다. 첼로를 셜리에게 맡긴 후 밖으로 뛰어나갔다.

“어머니!”

일주일 만에 귀가하시는 어머니다. 팔을 활짝 벌리고 달려가자 어머니가 몸을 낮춰서 나를 꼭 끌어안았다.

“잘 지냈니, 소피아? 우리 아가씨를 얼마나 보고 싶었다고.”

“저도요, 어머니. 건강하셨나요? 아버지는 시찰 나가셔서 저녁 때 돌아오실 거예요.”

“그래, 그렇구나.”

어머니께서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준 후 몸을 일으켰다.

나는 웬디 언니와 로건 경에게도 무릎을 굽혀 인사했다. 웬디 언니는 어머니처럼 나를 안아주었고, 로건 경은 포옹하는 대신 내 손등에다 살짝 입을 맞췄다.

“우리 소피아, 아가씨가 다 되었네!”

웬디 언니는 정말 셜리가 예상했던 그대로를 말했다.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어머니와 웬디 언니의 손을 양쪽으로 잡은 채 집안으로 들어갔다. 한동안 떨어져 지냈던 두 사람이 돌아와서 기분이 좋았다. 이제 저녁이 되면 아버지가 돌아오실 거고, 내일은 바쉬에서 두 오빠들도 돌아올 참이다.

“웬디 언니, 그림 어디에 있어요? 우리 강아지들 그려주기로 한 것 말이에요.”

“기다려 봐. 꺼내줄게.”

“요즘 저도 수채화를 배우고 있는데 잘 못하겠어요.”

내가 부끄러워하며 말하자, 어머니가 웃으며 나섰다.

“나를 닮아서 그런가 봐. 애들이 그림에는 영 소질이 없네. 그나마 안드레아가 스케치 정도는 곧잘 하는 편인데, 에버릿하고 소피아는 별로 재미도 없대.”

어머니의 말에 내 가슴이 쿵 하고 뛰었다.

한 달 넘게 만나지 못한 나의 큰오빠의 이름 때문이다.

내가 사랑하는, 그리고 언젠가 내 남편이 될지도 모르는 사람.

*

“여보, 내일은 시간 비우실 수 있겠어요?”

어머니가 물었다.

아버지는 이제 막 들어오셔서 옷을 갈아입고, 어머니 방에 딸린 응접실에서 함께 차를 나누는 중이었다.

나도 끼어 있었다. 아버지가 너무 늦게 돌아오시는 바람에 저녁 식사를 같이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식사 대신 후식이라도 같이 나눠먹어야 만족스럽게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말씀을 나누시다가, 이따금 나를 바라보며 웃으셨다. 혹시나 머리를 쓰다듬어주시지 않을까 기대하며 살그머니 아버지의 반응을 살폈지만, 어쩐지 갈수록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시는 일이 줄어들기만 했다. 내가 다 커버렸기 때문일까. 어른이 되는 일에도 치명적으로 나쁜 점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음. 내일은 되도록 우리 아이들하고 시간을 보낼 생각이야. 안드레아와는 한 달만인가? 에버릿에게도 바쉬에서 공부하는 게 어땠는지 궁금한 게 많소.”

“잘 할 거예요. 두 아이 다, 일을 가르치면 뭐든 잘 알아듣잖아요.”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그러자 아버지가 자상한 얼굴로 미소 지으시며 내 쪽을 보고 말씀하셨다.

“응. 세 아이가 다 그렇지.”

아버지의 말에 어머니가 잠시 숨을 멈췄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어머니는 내게 오해라고 손사래를 쳐 보이신 후 아버지에게 말했다.

“여보, 그렇게 말씀하시면 꼭 제가 일부러 소피아를 빼놓은 것 같잖아요. 당신이 바쉬에 간 아이들 말씀을 하셨기 때문에 두 아이라고 한 거란 말이에요.”

“알아. 일부러 그랬소. 나만 소피아에게 점수 더 따려고.”

아버지가 말하며 눈을 가늘게 떴다.

나는 그 말에 수줍어하며 웃었다. 어머니도 웃고는 계셨지만 눈으로 아버지를 흘겨보셨다.

아버지는 의자에 기대어서 느긋하게 우리를 바라보시다가, 문득 나를 방에 데려다주겠다고 말씀하시며 일어나셨다. 아직 잘 시간이 되지 않았는데 벌써 두 분이서만 있고 싶으신 모양이다.

조금 서운하지만, 나는 사랑하는 부부에게 부부만의 오붓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아버지와 어머니도 일주일 만에 재회한 순간이다.

============================ 작품 후기 ============================

소피아 웨버: 만 5세. 삼남매 중 막내. 장남인 안드레아와 결혼하는 꿈은 지극히 일방적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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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들 나이는 다음화에 나옵니다.

이번 에필로그2의 하편은 1~3일 후에 올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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