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34 필립 스콰이어 =========================================================================
“으아아아! 젠장할! 빌어먹을!”
마티아스가 성의 복도를 지나며, 상대를 저주하는 욕설을 계속해서 늘어놓았다.
“아프다고, 빌어먹을! 약이 하나도 효과가 없잖아!”
그는 붕대로 칭칭 감긴 손을 감싸 쥐고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최대한 서둘러 약을 지어 올리겠다는 하인의 말에도, 그는 증오에 찬 외침만을 뱉어냈다. 방문 앞에 이르러, 문을 열어주려는 하인을 밀쳐내고 성한 팔을 뻗어 난폭하게 문을 열어젖혔다. 방 안에서도 고함 소리는 계속되었다.
스콰이어 영부인은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마티아스를 지켜보다가, 빠른 걸음으로 남편의 집무실로 향했다.
“여보, 우리 아들 꼴을 보셨어요? 제발 당신이 가셔서 말씀 좀 해주세요. 그 애가 제 성질을 못 이기고 날뛰다가 더 큰 일을 당하기 전에 말이에요. 꾸중도 하시고 위로도 해주시고, 가끔은 아버지 노릇을 해주실 수 없어요?”
“그놈 나이가 서른셋이오.”
필립은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로 펜끝을 까만 잉크에 적셨다. 입 끝에는 냉소적인 비웃음이 걸렸다.
“머저리 같은 놈이 언젠가 그럴 줄 알았지.”
“서른셋이 아니라 열셋일 적에는요? 세 살 적에는요?”
바가지를 긁기 시작한 부인의 태도가 못마땅해, 필립은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아무 짝에 쓸모없는 인간도 자식이라는 이유 하나로 공짜로 먹이고 입히고 재웠는데, 아무 의무도 하지 않았다는 듯한 말이 귀에 거슬렸다.
“될 놈들은 성 밖에 방치해도 알아서 잘 크는 법이오. 밭일 하는 놈들에게 맡기든 벽돌 나르는 놈들에게 맡기든, 어엿한 사내로 자라서 제 몫을 하고 늙은 부모를 먹인단 말이오. 당신은 서른셋 된 아들에게 젖을 물리고 싶은 거요?”
“필립 공작님!”
영부인이 분노로 정색하며 소리쳤다.
그녀는 한때, 무뚝뚝하지만 도덕적이고 신사적인 인물로 평가받는 필립을 존경했었다. 그러나 가족 앞에서도 아무런 정을 보여주지 않고 일관되게 냉정하기만 한 데다, 더러는 이런 상스럽고 천한 말까지 서슴지 않는 그에게 애정도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이내 영부인이 진절머리 내며 몸을 돌렸다.
혼자만의 평화를 되찾은 필립은 나머지 서류들에다 사인하는 일에 집중했다. 그리고 일을 모두 마친 후에서야 허리를 폈다.
그는 뻣뻣한 관절에서 소리가 나도록 기지개를 켠 후, 섬세한 손길로 잉크병의 뚜껑을 닫았다. 그러고 나서 젖은 천과 마른 천을 이용해 펜촉을 정성스럽게 닦아내기 시작했다.
보좌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 소란도 목격하지 못한 듯 태연히 고개를 들고 책상 옆에 부동자세로 서 있었다.
“...그래서, 내 아들을 불구로 만든 놈이 누구라고?”
필립이 손질을 마친 펜 끝을 들여다보며 낮게 물었다.
잉크가 말라붙어 스며들기 전에 늘 이렇게 닦아내고 광을 내주었기 때문에, 지금도 처음처럼 아름다운 빛을 내고 있었다. 얼룩 한 점 없는, 칼날처럼 반짝이는 은빛이 무척 만족스러웠다.
*
웨버 가가 새벽에 습격을 당한 화요일.
이날 오후, 필립은 왕세자를 알현하기 위해 왕성을 방문했다가 허탕을 치고 돌아오는 중이었다.
애초에 확정한 약속이 아니기는 하였으나, 필립이 대략 오늘쯤 왕성을 방문하겠노라 말했던 것을 왕세자도 일부러 기억해두려는 듯 했었다. 왕세자는 성에 머무는 동안에는 여간해서는 필립과의 면담을 미루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그 대신 수행원이 나타나, 지금 왕세자가 중요한 손님과 면담 중이라 나오지 못한다고 고하였다.
“투스미아에서 중요한 손님이 방문하셨습니다. 폐하께서 연합국을 순방 중이시라, 왕세자 저하께서 대신 들어가셔야 합니다.”
“손님이라니 이렇게 갑자기 말인가.”
어쨌든 왕세자가 국왕을 대신해 업무를 보는 중이라니, 필립은 할 수 없이 후퇴했다.
‘귀한 손님’이라 봤자 북국 국왕이라도 행차했을까. 이 시대까지 왕국의 빗장을 닫아걸고 숨어사는 우물 안 개구리들이 무력을 좀 가졌다고 오만불손하기 짝이 없다는 생각에 입술이 씰룩거렸다.
마티아스의 일 때문에라도 더욱 왕세자를 만나서 여러 가지 상의를 좀 해두고 싶었는데 곤혹스러워졌다. 오늘따라 둘째 왕자는 성 안을 빈둥빈둥 돌아다니고 있었지만, 그는 정치에도 관심이 없고 철없는 사내들처럼 로망을 떠들며 싸우고 나돌아다니는 일이나 좋아했다. 당연히 필립과는 말이 잘 통하지 않았다.
아쉬운 대로 그에게 인사를 올린 후, 필립은 스콰이어로 돌아왔다.
성 안이 잠잠한 느낌이었다. 실제로는 다들 제자리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단지 필립 자신의 일이 안 풀려 기분이 가라앉은 탓인지, 시끄러운 마티아스를 근신시킨 효과인지, 스콰이어 성 전체가 싸할 정도로 조용하고 정숙한 느낌을 주었다.
필립은 마티아스가 마취 효과가 섞인 약을 퍼마시고 자고 있다는 보고를 들은 후, 집무실로 들어가서 업무를 보았다. 오늘은 늦게까지 깨어있을 생각에, 각성 효과가 있는 차를 내어오도록 했다.
보고서를 들여다 본 지 10여분이나 지났을까, 눈꺼풀이 무거워지고 도저히 버틸 재간이 없어졌다. 필립은 앉아 있던 커다란 가죽 의자 쿠션에 등을 기대고 잠시 눈을 감았다.
졸음을 몰아내주는 차를 마시고 있는데?
흐릿한 머릿속에 그런 의문이 떠오르는 듯도 했지만, 동시에 의식이 사라지고 말았다.
째깍째깍, 시계 바늘 움직이는 소리가 귓가에 커다랗게 울렸다. 그 외에는 쥐 죽은 듯 고요했다. 움찔거리며 손가락이 작게 경련했다. 필립은 손 안에 질 좋은 가죽 쿠션이 덧대어진 의자의 손잡이가 만져지는 것을 느꼈다.
의식은 천천히 현실로 돌아왔다.
눈은 맨 마지막에 떠졌다.
손님용 소파에서 인기척이 느껴져, 필립이 눈동자를 움직였다. 순간 가위에 눌린 듯 뒷목이 섬뜩해졌다. 소파에 앉아 있는 남자와 그 뒤에 그림자처럼 서 있는 또 다른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여긴 어떻게 들어왔나.”
필립이 갈라진 목소리로 낮게 물었다.
꿈인지 생시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들은 이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다. 이곳은 손님이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공간이었고, 지금은 그들이 그 집과 함께 최후를 맞이한 후였어야 하니까.
웨버는 소파에 팔을 걸치고 앉아서 눈을 내리깔고 있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필립의 책상으로부터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곳에 세로로 놓인 소파 자리였다. 그는 입을 다문 채로 날카롭고 어두운 옆모습을 보이고 앉아 있었다.
나쁜 꿈이다. 잠이 덜 깬 것일지도 몰랐다. 필립은 두 눈을 꾹 감고, 엄지와 집게손가락으로 눈두덩이를 지그시 눌렀다.
차가 왜 효과가 없었지?
다시 눈을 떴을 때도, 불청객들의 환영은 사라지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웨버는 이제 필립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기까지 했다.
한순간 숨이 턱 막혔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자신이 초래한 누군가의 희생 앞에 유감을 느껴본 일은 있었을지언정 두려움을 느껴본 일은 없었는데.
“오늘 새벽, 스콰이어의 사병이 제 집을 습격했습니다.”
웨버가 나직이 말했다. 살아 있는 인간의 것 같지 않은 무감정한 목소리였다. 깊고 낮은 곳에서 울리는 듯한 목소리가 정적 안에 조용히 퍼졌다.
“무슨 소릴 하는 건지 모르겠군. 게 아무도 없느냐.”
필립이 목소리를 쥐어짜냈다.
그러나 밖은 여전히 잠잠했고 아무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있을 수 없는 인물들에 이어, 있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솟았다. 악몽일 수밖에 없었다. 이 불청객들은 살아있는 인간들의 규율에 구애받는 존재가 아닌 게 분명했다.
그때 천천히, 웨버의 가슴이 들썩였다. 그는 눈을 한 번 깜박이며 불편한 듯 목을 살짝 움직였다.
“공작께서 답을 모르시면 곤란합니다. 스콰이어의 군이 누구의 지시를 받고 움직입니까? 아들들을 지나치게 사랑하여 사병을 움직일 권한마저 나누어주셨다면 또 모르겠습니다만.”
“자다가 별 봉창 두드리는 소리를 듣는군.”
필립은 불확실한 자각 속에서, 이것이 현실이라는 전제 하의 대응을 해나갈 수밖에 없었다. 아직 몽롱함에 빠져 있는 머리를 억지로 각성시키며 바삐 회전시켰다.
습격이 실패했다면.
웨버가 살아서 이곳까지 역습해온 것이라면.
절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일이었다. 그가 이미 마티아스가 보낸 자객들을 처리한 일도 있었다는 말은 들었지만, 마티아스가 보낸 뜨내기 용병 대여섯과 필립이 암살조로 써온 사병 11명의 전력은 비교불가였다.
이제 필립으로서는 막대한 손실을 감당해야 했다. 어쩌면 그보다 더 위험한 일을 감수해야 할지도 몰랐다.
서랍 안에 들어 있는 권총. 그걸로 저 두 명을 해치울 수 있을까. 저 둘이 다는 아닐 터였다. 필립의 사병을 처리한 자들이 어딘가에 있을 터였다. 그런데 지금 성 밖은 어떻게 되어 있지?
필립은 어지러운 생각에 빠져 있는 동안에 방해받지 않았다. 웨버의 무리는 조용히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내게 뭘 먹인 건가. 자네가 지금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 건지 알고 있나?”
“주술약입니다. 잘 아실 텐데요.”
웨버가 말했다.
필립은 마른 침을 삼켰다.
엄밀히 말하면 잘 아는 건 아니었다. 아들을 붙잡아놓는 구실도 못하는 부인을 시끄럽지 않게 조용히 처리하게 하도록 던트에게 주문했을 뿐이었다. 역시 이건 꿈이라는 확신과 함께 머릿속이 몽롱하게 흐려졌다. 그러나 입술 안쪽을 깨물어 상처를 내가며, 필립은 억지로 정신을 차렸다.
“마티아스 때문인가. 자네 부인에게 지독한 짓을 할 뻔했다는 얘기는 들었네. 그렇지 않아도 근신시키고 있는 참인데, 놈도 이성이 돌아오면 제 잘못을 깨달을 걸세.”
그때 소파에서 작게 코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필립은 웨버가 이러쿵저러쿵 훈계하려드는 건 아닌가 생각했지만, 들려온 것은 간결한 요구였다.
“제 집을 습격한 범인을 밝혀주십시오, 공작님.”
웨버의 말에, 필립은 이를 악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조사를 해보겠네.”
“지금, 범인을 지명하실 수 있을 겁니다.”
“웨버 경.”
필립이 다소 울컥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억지 부리지 말게. 내 아들 일로 피해를 입은 일은 유감스럽네만, 자네가 지금 저지르고 있는 일을 눈감아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아량을 베푸는 걸세. 그만하고 물러가게나. 오늘 일은 문제 삼지 않겠네.”
이내 웨버가 필립을 응시하던 눈길을 거두었다. 그는 고개를 정면으로 돌리고, 표정을 지우며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일단 마티아스 경을 기소해 합당한 벌을 받게 하겠습니다.”
“웨버 경.”
“공작께서 그를 자수하게 하거나 고발해 주신다면, 요청하시는 대로 오늘의 사건을 조사하실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하하.”
대본에 써진 글씨를 읽는 듯한 괴상한 웃음소리가 나오고 말았다.
야만족의 피가 섞인 미천한 노동자 따위가. 근본 없이 벌어들인 돈으로 명예를 산 졸부 따위가.
필립은 웨버가 거금을 들여 고용했을 용병들이 몇 명이나 될지 추측해 보았다. 암살조 11명을 처리했을 정도면 백번 양보해서 최소 스무 명은 될 거라고 쳤다. 그러나 그들이 운 좋게도 성 안으로는 통과했지만 전투를 벌여서 살아나갈 확률은 없다고 보았다.
단지 문제는 필립의 안전이었다. 지금 방 안에 있는 둘, 그리고 방문 밖에 진치고 있을지 모를 패거리를 혼자 상대할 수는 없었다.
“아직 계산을 못 끝내셨습니까?”
웨버가 문득 말했다.
“자네가 먹인 약 때문에 머리가 잘 안 도는군.”
“똑같이 갚아드리겠습니다.”
웨버가 손에 든 회중시계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성을 불태우고 무기를 든 군대를 들여보내겠습니다. 이 땅에서 스콰이어의 이름을 가진 자는 하나도 남지 않게 될 것입니다.”
“군대라고?”
필립이 입술 끝을 비죽 끌어올렸다.
마치 자신의 군대를 거느린 자의 엄포 같은 허세였다.
“내 대를 멸하겠다고?”
웨버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고개를 살짝 돌린 채로 필립의 시선을 받았다. 필립은 계속해서 조소했다. 서서히 머리가 맑아지고 분노가 치솟았다.
“이거 참 무서운 분이시구먼. 무고한 남자와 여자, 아이까지 죽일 셈이겠군. 단지 의심만으로 전쟁을 일으키겠다? 자네가 아니라 내가 공작이니 참으로 다행이네.”
필립의 말에, 웨버가 묘한 미소를 지으며 몸을 일으켰다.
“전쟁은 원래 그렇습니다. 하지만 무고한 사람이 희생할 필요가 있습니까. 공작님을 버리고 도망칠 시간은 충분히 줄 것이니 염려 놓으십시오.”
그러고 나서 시간을 확인하더니, ‘제스’하고 바깥의 누군가를 불렀다.
방문이 열리고, 팔과 입을 포박당한 채로 여성 무인에게 구속되어 있는 마티아스의 모습이 나타났다. 곁에는 한패인 듯한 또 다른 무인도 있었다.
웨버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마티아스 경부터 모셔가겠습니다. 공작께서 아들을 자수하게 도울 용의가 없으시다니, 저희 법대로 처리하겠습니다.”
“이게 무슨 짓들인가....”
필립은 눈을 이글거리며 마티아스를 구속한 키 큰 여자의 모습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여자의 검에, 투스미아 왕가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그녀는 몹시도 불손한 투로 말했다.
“항의를 하려거든 투스미아 왕실에다 하시오. 나는 정식 서임을 받은 기사이고 마티아스가 저지른 사건들의 목격자요. 내게는 우리 왕국법에 따라 왕국민에게 손해를 가한 범죄자를 구속할 권한이 있소.”
이제 필립은 어깨를 들먹이며 웨버를 바라보았다.
진정 그들이 왕국민 하나하나에게 이런 대우를 한단 말인지 믿을 수가 없었다. 무모한 일이다. 왕국 전체를 전쟁의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는 일이다.
그들의 힘이 조금만 더 작았더라면.
아니, 이 자가 평범한 왕국민 하나인 건 확실한 건가?
필립이 넋을 놓고 있다가,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마티아스를 풀어주게.”
그가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 분하고 원통한 마음에 눈시울이 타는 듯 뜨거워졌다.
“그 애를 자수하라 하겠네. 그 애는 이 땅에서 법적 절차를 밟을 것이네.”
투스미아에까지 끌려가서는 살아남을 도리가 없었다. 북국의 기사에게 현행범으로 구속당해 심판을 받게 된다는 소문이 퍼지면, 지금까지 마티아스의 루머가 퍼지지 않도록 단속했던 일은 전부 허사가 될 터였다.
게다가, 여자는 그렇다 쳐도 그 곁의 남자는 아무리 봐도 용병 나부랭이가 아니었다. 섬기는 주군을 위해 사는 인간들의 눈빛을, 필립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제야 수긍할 수 있었다. 자객들과 단련된 사병들을 쉽게 해치우고 여기까지 밀고 들어온 자들의 정체를.
“아, 아버지! 대체 왜 이런 놈들의 말을 들으시는 겁니까? 이놈들을 어떻게 좀 해보십시오! 이런 놈들 하나 처리하지 못하신단 말입니까?”
어느새 재갈을 푼 마티아스가 발악했다.
“이자들의 뜻대로는 절대 안 할 겁니다. 난 잘못한 게 없단 말입니다. 사내가 바람 좀 피우고 다닌 게 손가락 잃고 감옥에까지 갈 일입니까? 여자들도 처음에만 튕겼지 나중엔 다 제게 매달렸습니다. 서로 즐기고 사는 게 죕니까? 누가 저보다 깨끗하게 살아서 절 심판한단 말입니까?”
“그만 하거라.”
필립이 이를 악물고 뇌까렸다.
마티아스는 분을 견디지 못하고 울부짖었다. 오른손이 피 묻은 붕대로 감겨 있어 성치 않은 모습으로 몸부림치는 꼴이 처절하기 그지없었다.
필립은 무너질 것 같은 몸을 책상을 짚고 의지한 채로, 하염없이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 막내아들만은 정말 뜻대로 되지 않았다. 무소불위의 힘이던 자신의 권력마저도 그의 앞에서는 휴지조각이나 다름없이 하찮게 쓰였다.
그냥 조금 한심했을 뿐인 아들의 삶이, 견딜 수 없이 비참해져버렸다.
“당장 이자들을 죽여요! 병사들은 다 어디 갔습니까? 아버지라면서 도대체 제게 해주시는 게 뭡니까!”
뜨거운 눈물이 차올랐다. 필립은 새어나오려는 흐느낌을 억누르고, 조용히 서랍을 열었다.
재빨리 총을 꺼내, 아들에게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그 순간, 엉뚱한 곳에서 먼저 총성이 울렸다.
웨버의 뒤에 서 있던 사내가 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쿵, 하고 몸이 의자에서 미끄러져 내려 바닥과 충돌하는 소리를 들었다. 필립은 바닥에 쓰러진 채, 어두운 책상 밑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마티아스는 총에 맞지 않았다.
자신이 죽는다면, 그라도 사는 편이 나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어쩌면, 그저 나쁜 꿈이 이어지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다시 약기운이 도는 듯 졸음이 몰려왔다. 곧 꿈이 깨리라고 생각하니 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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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갈등이다 보니 완결 쓰는 기분으로 썼는데 어둡기 짝이 없네요. 시점도 그렇고 장르도 바뀐 느낌...
그럼 아드리아나의 밝은 시점으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선추코평쿠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uu
(+참, 일단 요청해주신 분이 계셔서 소장본 희망조사를 받아봅니다. 가능성 낮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희망하시는 분은 공지를 확인해주세요! 이북은 아마 할 것 같은데 종이책 정식 출간은 모르겠네요 그쪽은 정식 컨택 온 게 없어유ㅜㅜ)
+오메 오늘도 너무 늦을 거 같네요ㅜㅜ 하루 있다가 손 펼 수 없는 달달함으로 돌아올게요ㅜㅜ 죄송합니다. 좋은 꿈 꾸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