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보다 아름다운-133화 (133/140)

00133 조용한 반격(발렌틴) =========================================================================

카네시스 루미아의 집은 테스카 외곽에 있었다. 호텔 이시스를 관리하도록 그의 아버지인 엘릭 루미아로부터 일임을 받고 아이넨에서 거주하기 위해 세운 대저택이었다. 수십 명 되는 호텔 일꾼들의 숙식을 겸할 목적도 있어서 상당히 큰 부지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호텔 경비를 맡은 무인들을 포함한 바쉬인들이 득실거리며 상주하다 보니 방비 면에서도 안심이 되는 곳이었다.

발렌틴은 날이 밝자마자 아드리아나를 그곳에 데려다주었다. 그녀가 발렌틴과 너무 멀리 떨어지기는 불안하다고 해서 차선책으로 택한 곳이었다.

차에서 내리자, 미리 도움을 요청받아 기다리고 있던 안주인, 루미아 부인이 나와서 반겨주었다.

“염려 놓으시고 일 잘 보시고 오세요, 웨버 경. 그동안 우리 부인은 제가 성심으로 아껴드리고 사랑해드릴게요.”

루미아 부인이 자기보다 한참 작은 아드리아나의 손을 보듬고 주물거리며 미소 지었다.

“그럼 며칠 내로 아내를 데리러 오겠습니다.”

발렌틴은 루미아 부인에게 부탁해둔 후, ‘며칠 후에 봅시다’하고 아드리아나와 인사를 나누었다. 못내 안쓰러워하며 매달리는 그녀에게 가볍게 키스하고 차에 오르자, 루미아 부인은 아침저녁으로 전화해서 감시할 테니 한눈 팔지 말라며 손을 흔들었다.

“성으로 바로 갈까요?”

펜이 핸들을 돌리며 말했다.

발렌틴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피해 사실이 생겼으니 수사를 요청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테스카에서 스콰이어 가의 아들을 가해자로서 제대로 수사할 리 없었다.

마티아스를 사법 처리시키기 위해 그를 기소해줄 다른 사람이 필요했다. 통상 백작 이상의 작위를 가진 자라면 그보다 낮은 작위인 남작을 수사할 수 있었는데 현실적으로는 그게 쉽지 않았다. 공작가인 스콰이어의 눈치를 보다보니 아이넨 전체 공후백작 누구도 사건을 맡아주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발렌틴은 과거에 그를 살인죄로 고발하려고 시도되었던 일이 단 한 차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마티아스의 두 번째 부인이 사망한 후, 부인의 가문 측에서 학대 사실을 근거로 살해 의혹을 제기했던 것이다. 어느 정도 힘을 가진 후작가였던 부인의 가문에서 아이디 왕세자에게 기소를 요청했지만 조용히 묻혔다. 왕세자가 기소를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현재로서는 스콰이어 가에 타격을 주는 것이 국론 분열과 국력 약화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그래서 발렌틴도 아직 섣불리 마티아스에 관한 일을 누군가에게 상의하지 않았다. 자칫 스콰이어 가에 이야기가 새어 들어가 그쪽에서 먼저 손을 써버리면 해결이 더욱 어려워질 터였다.

마티아스를 기소해 재판에 넘겨줄 후보로는 두 사람을 생각하고 있었다. 둘 다 접촉하고 부탁하는 과정 자체가 까다로웠다. 절대적이고 외면할 수 없는 증거를 잡아서 터뜨렸다면 쉬웠을 텐데, 그러지 못하는 게 아쉬웠다.

“저주였다면, 증거가 안 나올 거예요.”

그런 말을 하는 조사관도 있었다.

“일부에서는 아직도 주술을 연구하고 사용하잖아요. 고가이지만 그런 약들은 추적하기 어렵다고 들었어요. 어쩌면 마티아스 본인이 자각하지 못하는 저주를 했을 수도 있고요.”

외국에서야 마력이나 재능 따위의 이름으로 개인이 초자연적인 힘을 정당하게 훈련하고 이용하기도 했지만, 아이넨에서는 미신을 타파하고 도시화 하려는 국왕과 왕세자의 정책으로 토착신이나 초자연적인 힘을 숭배하는 경향이 거의 사라져 있었다.

그것도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제삼자를 찾는 편이 더 그럴싸했다.

“물론 그쪽도 알아보고는 있습니다만, 수비가 높네요.”

그리고 그 후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태였다.

발렌틴은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 없어, 왕성에 가서 분위기를 살폈다. 왕국 살림을 꾸리는 이들 중에 스콰이어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가 없다는 게 현실이었다. 왕조차 반목하지 않으려 하는 가문이었으니, 권력을 지키고 정치를 해 나감에 있어서 발목을 잡히지 않고 싶은 게 당연했다.

신사적이고 합법적인 방법으로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러면 결국 스콰이어와 직접 부딪치는 방법밖에 남지 않을 것이다.

발렌틴은 생각에 잠겨 화랑 앞의 정원을 서성였다.

그때, 이런 시기에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지도 못한 사람의 그림자가 불쑥 나타났다.

“웨버 경, 자동차가 들어오는 걸 보고 왔소. 긴히 드릴 말씀이 있소.”

“왕자님.”

발렌틴이 돌아보고 얼른 공손하게 목례했다.

케이드는 덤불 속에 앉아서 얼굴만 내밀고 인사를 받은 후 말을 이었다.

“약혼녀가 일주일째 나랑 말을 안 하고 있소. 어떤 죽일 놈이 내가 옛날에 사귀었던 여성들 얘기를 한 모양이야. 상황이 아주 긴박하오.”

“...예, 그러셨군요.”

두 사람은 잠시 심각한 얼굴로 침묵했다. 케이드는 약혼녀를 생각하며 고민하는 듯했고, 발렌틴은 이 화제를 받아줘야 하는지 흘려 넘겨도 되는지를 고민했다.

“요즘은 성에 자주 들어오시는군요.”

발렌틴이 다시금 입을 떼었다.

케이드가 바로 미간의 주름을 펴고 미소 지었다.

“음. 모험 자금도 떨어졌고 우리 형님께 잘 보일 겸 기어들어왔소. 회의 중이시라기에 기다리는 중이오만. 사랑하는 형님 어깨도 주물러드리고 알랑방귀를 좀 뀌면 기름진 논밭 한 마지기쯤은 하사해주시지 않겠소? 내 보니 농장 주인만큼 좋은 직업이 없는 것 같아. 괜히 모험가가 되었소.”

“모험가가 아니라 왕자님이시지 않습니까.”

발렌틴의 중얼거림을 못 들은 척, 케이드가 별안간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이 애처가 양반께서 왜 부인이랑 함께 안 오신 거요? 저번에도 혼자 오시더니, 경도 부인과 다투셨소?”

“아닙니다. 입덧이 심해서 집에서 쉬게 하고 있습니다.”

“오, 저런.... 하지만 자기 자식이라니 얼마나 예쁠까. 나도 얼른 자식을 많이 낳고 싶은데 귀여운 약혼녀가 나와 몸을 섞기는커녕 말도 안 섞어주고 있다고 내가 말했소? 정말 위급한 문제가 아닐 수 없소.”

심각하기는 심각했는지 케이드는 약혼녀가 말을 안 한다는 소리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발렌틴은 늘 위기감 없어 보이는 태평한 케이드가 허둥대고 있는 모습에 괜한 자조감을 느꼈다. 자신도 가끔은 남들에게 이런 식으로 보이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여인 때문에 평정을 잃고 바보가 되는 남자가 이다지도 흔하다니. 자신들이야 가정의 평화를 지키는 중이라고 정당화한다고 쳐도, 마티아스까지 나쁜 의미로 비슷한 상태라고 할 수 있을 듯했다.

문득 케이드가 집게손가락을 세워 발렌틴을 가리켰다.

“참, 또 생각해 봤는데 말이오. 우리 웨버 경은 틀림없이 투스미아 어딘가의 대농장의 지주, 또는 못해도 그 후계자뻘 되시는 분인 것 같소. 부자하면 역시 대농장이지, 암.”

몇 번만의 찍기였는지, 드디어 케이드가 답을 맞췄다.

발렌틴은 말하려고 연 입술을 움직이지 못했다.

“...응? 핫하하! 내가 드디어 맞춰버렸군! 으핫하하! 이리 와요, 이리 와. 우리 사업 계획을 좀 의논해 봅시다. 그 전에 우리 애처가 양반께서 여인의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 쓰시는 필살기들에 대해 듣고 나서 말이오.”

“저도 마침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왕자님.”

발렌틴이 미소 지으며 케이드를 바라보았다.

“...그렇소?”

케이드도 묘한 미소를 지었다.

다부진 체격에 금빛 머리카락과 푸른 눈이 그의 형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정치가보다는 전사처럼 보이는 수더분하고 잘생긴 인상이었다. 영락없이 냉정한 정치가의 얼굴을 한 아이디 왕세자와는 조금도 닮지 않았다.

두 형제는 외모와 낳은 어머니뿐만 아니라, 그 밖에도 많은 면에서 서로 달랐다.

*

발렌틴은 해가 저문 뒤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정원 입구로 들어서자, 현관문이 열리는 게 보였다. 오늘 마중해주는 사람은 플레밍과 제시카 두 사람이었다. 제시카는 아드리아나의 부재를 의식해서인지 ‘어서 오십쇼, 주인 어르신.’하고 쾌활하게 말하며 인사해주었다.

하지만 늘 웃는 얼굴로 반겨주며 매달렸던 아내와 강아지가 보이지 않으니 집안 전체가 조용한 느낌이었다. 결혼하기 전에 수년을 이렇게 지내왔는데도, 이제는 아내 없이 빈 집이 황량하기 그지없게 느껴졌다. 마치 손님이 없어 문을 닫은 가게처럼 쓸쓸하게 느끼는 자신을 깨닫고, 발렌틴은 쓴웃음을 지었다.

목욕을 마치고 침대에 누웠다.

옆이 허전해서 쉽사리 잠이 오지 않았다. 조곤조곤 지저귀는 듯한 듣기 좋은 목소리, 웃는 얼굴이 키우는 강아지와 똑 닮았다고 말해주면 금세 무섭게 치켜뜨는 동그란 눈, 매일 밤 속삭여주는 달콤하고 가슴 벅찬 고백의 말들, 그 모든 게 꿈이 되어 사라진 것만 같은 착각이 일었다.

발렌틴은 아드리아나가 흔들릴까 봐 두려워졌던 그날, 나 없이는 못 살 것 같다고 말해달라고 한 적이 있었다. 입장을 바꿔본다면, 자신은 진실로 그러하리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가치 있고 좋았던 모든 일들이 한순간에 빛을 잃는다는 게 어떤 것인지 상상할 수 있었다. 이제 아내 없이는, 과거에 했던 어떤 경험들과도 비교할 수 없는 무게가 가슴을 짓누르고 숨을 쉴 수 없게 될 것 같았다.

결혼을 하며 그런 감정까지 따라오기를 바란 적은 없었건만.

하지만 발렌틴은 아내 또한 자신을 그만큼 사랑하고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녀가 더 걱정이었다.

‘날 걱정하고 있을 텐데.’

그때 딱 마침 벨이 울렸다.

전화를 걸어온 것은 루미아 부인이었다.

“밤늦게 실례해요, 웨버 경. 잠시만 기다리세요, 부인을 바꿔드릴게요.”

이내 아드리아나가 수화기를 넘겨받았다. 그녀는 그리움이 듬뿍 묻어나는 목소리로, 왠지 조금 부끄러워하며 말했다.

“여보, 저예요. 잘 주무시라고 인사드리려고 전화했어요.”

발렌틴은 금방 대답하지 못했다.

귓가에 남은 아내의 목소리에 온통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멍청이가 된 기분이야.’

아드리아나에게 인사해주고 돌아와 누운 후에도, 그런 생각이 가시지 않았다. 풋내기 소년처럼 사랑하는 마음 자체에 빠져 있어서는 일을 그르치고 실수할 뿐이라고, 발렌틴은 자신을 타이르고 억지로 잠을 청했다.

얼마 후, 그는 잠을 자다 한순간에 정신이 말짱해져 눈을 떴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었다. 적막을 대신하고 있는 빗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니, 그 속에서 심상치 않은 기척이 퍼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몸을 일으키고 셔츠에 팔을 끼워 넣었다. 그 순간 방문이 벌컥 열렸다.

“주인님.”

펜이었다. 그의 손에는 비상용 권총이 들려 있었다.

희미하게 매캐한 탄 냄새가 흘러들어왔다.

“제스가 플레밍과 벨마를 피신시키는 걸 보고 왔습니다. 곧 들이닥칠-.”

그의 말이 미처 끝나기 전에, 와장창 유리 깨지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렸다. 누군가 1층 창문들을 박살낸 듯했다.

발렌틴은 일단 침대 바닥에 넣어뒀던 칼을 꺼내들었다. 프로를 상대할 수도 없을 터였고 아군은 놈들을 2층까지 올려 보내지도 않을 거라고 호언장담했지만, 뭐라도 쥐고 있는 편이 나았다.

이겨야 함은 물론이었고, 가능하면 희생자도 하나 내지 말아야 했다.

바쉬에서 초대한 제시카의 동료들이란 그녀처럼 바쉬 공작을 위해 일하는 자들이었다. 다만 치안대 대원은 아니었고, 비상 시 치안대를 대신해 기동대의 역할을 하는 바쉬군의 수색대 한 개 분대였다. 엘릭의 결재와 공작의 허가를 거쳐 빌려온 정예들이니, 아이넨의 자객들에게 손가락 하나라도 당했다가는 다 같이 쫓겨날지도 몰랐다.

“용병은 아닌 것 같습니다. 마님을 납치하려고 했던 놈들하고는 움직임이 달랐어요.”

펜이 말했다.

그의 말소리에 바깥 소음이 섞였다. 연극 배경 효과음처럼 물건 부서지는 소리와 깨지는 소리 등이 이어졌다. 그리고 얼마지 않아 발렌틴의 방과 가까운 계단 쪽에서도 둔탁한 충격음이 들렸다.

권총을 쥔 펜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발렌틴은 바깥의 상황에만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사랑하는 가족과의 보금자리가 된 집이 망쳐지는 것을 무력하게 기다리고만 있으려니 가슴이 쓰렸지만,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군이 최대한 빨리 끝내주길 바라는 것뿐이었다.

왠지 멍해졌다.

자신의 일가를 몰살시키려 한 상대를 어떻게 할까 새삼스러운 고민이 되었다. 이런 적반하장도 없을 것이다. 만일 이 자리에 임신한 아내가 있었더라면.

이번 상대는 위선자의 가면을 쓴 교활하고 잔혹하기 짝이 없는 자다.

비틀린 본능으로 미친 짓을 벌이고 다니는 껍데기만 가진 얼간이와는 달랐다. 신사적, 합법적을 따질 게 아니라 어떻게든 그 자리에서 끌어내려야 할 듯했다.

그 후 아군 대장이 방문을 노크하기까지, 그리 긴 시간은 걸리지 않았다.

그가 장담한 대로, 침입자들은 2층까지 올라오지 못했다. 단 한 명이 계단 층계참 위에까지 올라와 쓰러져 있었고 나머지는 1층과 바깥에 널브러져 있었다. 모두 11명이나 되었다.

“아주 작정하고 해치우려고 했나 봅니다.”

펜이 창문 앞에서 부서진 유리 조각을 뒤집어 쓴 시신을 발로 뒤집어 보며 말했다.

“이놈들은 군인이오. 우리와 같은 일을 하는 놈들이었소.”

바쉬군의 대장이 말했다.

“딱 동업자의 냄새가 나더라고요.”

“우리가 완벽하게 숨어 있기는 했지만 진짜 아무것도 모르고 온 건가? 우릴 얕잡아 보고 온 건 아니겠지?”

바쉬의 사내들이 저마다 떠들었다. 지금 저택 안에 있는 5명과 밖에 있는 4명을 포함해 9명이었다. 개중에는 제시카를 포함해 칼도 못 잡아봤다고 불평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놈들, 내가 무서워서 나 똥 싸는 동안에 쳐들어왔군.”

“네놈 칼솜씨만큼이나 연약한 장이군. 허구한날 똥통에만 앉아 있는 놈이 얼어죽을 나라를 지키겠다.”

“닥쳐. 아침밥 먹어야 되는데 똥 얘기하지 마, 잡놈들아.”

제시카가 오만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무리의 대장을 제외하고는 대부분과 친구 사이여서 어느샌가 위화감 없이 그 사이에 끼어 있었다.

“흠. 그럼 호텔로 갈까.”

발렌틴이 뒷목을 문지르며 말했다.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는 집에서 밥을 먹을 만큼 비위가 강하지는 못했다.

“거기서 일단 식사부터 하고 나서 움직이지.”

“아, 드디어 시작이군요.”

“우린 조용히 그놈만 잘 끌어내면 돼.”

바쉬군은 실행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었던 계획을 결국 밀어붙이게 된 것을 은근히 기대하는 분위기였다. 젊은 10대와 20대들이다 보니, 이국의 적, 그것도 자기네 주군과 같은 공작가를 뒤질 생각에 자못 흥분하고 긴장하고 있을 터였다.

발렌틴의 머릿속에서는, 이짓을 해온 적을 끌어내릴 방법이 조금 바뀌었다. 보복해야 할 원수가 하나 늘었기 때문이다.

이내 집을 나서려 하기 직전에, 전화벨이 울렸다.

발렌틴은 아수라장을 헤치고 걸어가서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저기, 여보. 안녕히 주무셨어요?”

이번에는 카네시스가 전화해서 아드리아나를 바꿔주었다.

발렌틴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주위를 에워싸고 구경하는 시커먼 사내들 사이에서, 태연한 척하며 ‘당신도 잘 잤소?’하고 인사했다.

“얼른 보고 싶었다고 해주세요.”

제시카가 허리를 쿡 찔렀다.

수화기 너머에서 머뭇거리는 아내의 얼굴 표정을 상상하다가, 발렌틴은 부추김 받은 대로 ‘보고 싶었소, 여보.’하고 말했다. 그러자 조그맣게 부끄러워하는 듯한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장미꽃처럼 짙게 물든 볼을 손으로 감싸 가리고 있을 아드리아나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 작품 후기 ============================

선추코평쿠 고맙습니다. 왠지 대립하고는 있어도 쭉 달달한 느낌이네요. 다음편에 시점 다시 바뀝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