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30 선전포고(마티아스) %2B 조용한 반격 =========================================================================
7월의 왕성 무도회 때부터 마티아스는 마침내 소문의 그 귀부인을 보게 되리라고 가슴이 부풀어 있었다.
스물 넘은 기혼녀에게 먼저 관심이 가기는 처음이었다. 이런저런 교양과 재능을 지녔으며 올곧고도 부드러운 성품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진부한 과장으로 점철된 소문은 그렇다 쳐도, 마티아스와 어릴 적부터 어울리던 친척 사내의 말은 흘려들을 수 없었다.
“내가 본 여자들 중에 제일이었네. 먹어보고 싶기로 말일세. 나도 미인깨나 섭렵한 남잔데, 그런 분위기를 가진 여자는 처음이었어. 생긴 건 완전 코니스 여자야. 영락없이 순진한 처녀같이 생겼다고.”
마티아스는 당장 애인인 첼시아에게 그 소문의 진위 여부를 물었다. 마침 그녀가 테스카를 방문하고 왔다는 말을 들은 참이었다.
그러나 첼시아는 ‘여성과 남성이 느끼는 것이 엄연히 다르며 자신은 타인의 외모에 흥미가 없고 둔감한 편이라 잘 모르겠다’고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게다가 불행하게도, ‘웨버 부인’은 무도회에 오지 않았다. 임신을 해서 몸을 조심하고 있을 거라는 소문도 들렸다.
‘애를 가졌다고?’
마티아스는 속으로 ‘순진한 처녀’라는 비유를 썼던 친척을 떠올리며 조소했다. 또한 그 순결한 체하는 여자가 그 남편과 얼마나 많은 밤을 음탕하게 보냈을지 상상하며 흥분했다.
“저 사람이에요. 부인과 둘이 썩 어울리는 짝은 아니죠. 어떻게 만나서 결혼한지는 모르겠지만.”
첼시아가 멀리 보이는 ‘웨버’를 가리키며 말했다.
웨버. 순진한 처녀를 차지하고 임신시킨 남편.
한눈에 봐도 불쾌한 자였다. 겉은 그럭저럭 번지르르하게 생겼으나 북국인의 피가 섞였다는 것치고는 키도 별로 크지 않았다. 185cm인 마티아스와 비슷하거나 조금 큰 정도일 것 같았다.
게다가 그는 연회에서 술도 별로 마시지 않고 가랑이에 털도 안 난 애송이마냥 음료나 홀짝였다. 그에게 호의를 보이며 다가서는 여자들에게는 불친절하고 무례하기까지 했다. 아름답고 낯선 여성들에게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남자라니. 필시 여성혐오자이거나 교양을 못 배운 천민이라는 뜻이다.
“알만 하군. 여자를 무시하는 데다 남자들 앞에서는 점잖고 교양 있는 척하는 전형적인 위선자야. 실은 물건도 잘 안 설 테고 잠자리도 형편없겠지. 부인이 복이 없군.”
마티아스의 말에 첼시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단지 들고 있던 칵테일을 아끼듯 오물거리며 마셨다.
이후 마티아스는 스콰이어로 돌아가서 웨버 부인에 대해 알아보았다. 하인은 며칠 뒤, 웨버 부인의 초상화와 간단한 보고를 가져왔다.
“오드리 웨버라고 이름이 알려져 있는데, 처녀 때의 이름은 아드리아나 클로제였고 남작가의 상속녀였다고 합니다. 얼마 전에 그 남편이 상속인 확정을 받은 상태입니다.”
순간 머리에 벼락이 내리친 기분이었다.
“아드리아나 클로제....”
마티아스는 흥분으로 차올라 초상화를 쥔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 이름과 그 모습에 온 마음을 사로잡혔다. 금방 바지 앞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초상화 안의 여인은 그야말로 눈처럼 희고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처녀처럼 순결하고 연약한 영혼을, 그녀의 겉모습을 옮겨다놓은 그림에 불과한 그 육신 안에서조차 들여다볼 수 있었다.
이보다 더한 운명이 있을까.
그녀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자신의 부인이 될 뻔했던 여자였다. 공작과 영부인이 하는 대화를 들어서 그 이름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스콰이어로 오던 중에 불행한 사고로 실종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녀는 결국 이렇게 다시 눈앞에 나타나주었다.
“...이 여잔 내 거야.”
마티아스는 감동하며 초상화에 입을 맞추었다.
“나의 부인.”
3년 전에 새로 들인 네 번째 부인은 얼마 전부터 앓아 누워 있었다. 안타깝지만, 아마 그녀도 오래 버티지 못할 터였다.
5번째 부인을 들일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
마티아스는 테스카의 영부인이 주최하는 중요한 회의가 있다는 날을 선택해, 급히 마차에 올랐다.
절호의 찬스였다. 전해들은 소식으로는, 테스카의 부인 회의가 끝난 후에 부인들이 자유롭게 남자를 물색해서 연애를 즐긴다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사전에 연회도 함께 곁들여진다니 더없는 기회였다.
지금까지 자신의 취향이었던 여자들은 전부 자신을 마음에 들어했다. 유혹해서 쓰러뜨리지 못한 여자가 없었다.
‘꼬셔내서 애인으로 만들어 뒀다가, 나중에 부인으로 삼아야겠어.’
이번에야말로 일평생의 반려가 될 여자를 만났다는 생각에 몸이 달았다.
사실 마티아스는 언제나 그런 생각으로 부인들을 대해왔다. 번번이 부인을 잃고 비극적인 남자라는 딱지가 붙게 된 것은 무척 뼈아픈 일이었다. 지독한 운명이라고 밖에는.
그럼에도 마티아스는 늘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부인들을 사랑했다. 그는 뛰어난 정력가였고, 사내로서 여자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 황홀한 잠자리를 날마다 부인에게 선사했다. 신혼 때에는 바람피우는 일도 삼갈 정도로 부인을 잘 돌보았다.
아마 타고난 힘과 능력을 가진 남자라면, 한 여자에게 매여 산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다들 공감할 거라고 마티아스는 믿었다. 그러나 아버지인 필립 스콰이어 공작은 아들들이 둘째 부인이나 첩을 두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당시 공작이 지지하고 있던 첫째 왕자가 일부일처제를 강력하게 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마티아스는 한 명의 부인과 좋은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서 나름의 노력을 했다. 가끔 가볍게 바람을 피우는 것 이외에도, 부인과 같이 더 큰 자극을 찾는 일이었다. 마티아스는 부인을 다른 남성과 간음하게 하는 일에서 희열을 느꼈다. 길게는 5년 가까이, 오랫동안 재미를 볼 수 있었다. 자기 소유물을 다른 이에게 빌려줌으로써 자신이 얼마나 훌륭한 것을 가졌고 잘 길들여놨는지를 과시할 수 있는 일이었다. 행위를 옆에서 관음하거나 같이 나누는 것도 짜릿했다.
그러나 마티아스도 다른 사내들만큼은 소유욕이 강했다. 남과 나눈 여자에 대한 관심이 식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자신보다 못한 남자와 몸을 섞는 일에 무뎌지고 익숙해지는 여자를 보는 것은 역겨운 일이었다.
아쉬웠다. 부인들이 다른 남자와 간음하는 일을 끝끝내 허락해주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다못해 거기에 너무 익숙해져서 창녀처럼 다른 남자의 육체를 원하면 안 되는 게 아닌가? 게다가 그녀들은 하나같이 마티아스에게 아이도 낳아주지 않았다.
그렇게 마음이 떠나고 나면, 그때부터는 아예 새로운 사랑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희한하게도, 부인에 대한 애정이 식고 역겹게 느껴지고 나면 부인이 병을 앓게 되었다. 마티아스로서는 고작 속으로 혐오한 것뿐인데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그저 서로가 피해자인, 비극적인 운명일 뿐이었다.
애인들은 비밀을 잘 지켜주었다. 교제 중에는 마티아스가 떠나갈까 봐, 교제 후에는 스콰이어 가에 보복당할까 봐 그랬을 것이다. 그런 편리한 애인도 괜찮았지만, 마티아스는 늘 자신을 진실하고 헌신적으로 사랑해 줄 부인을 원했다.
그리고 이번에야말로 더럽혀지지 않을, 자신을 만족시켜 줄 운명적인 여자를 찾았다.
“부인께서 속히 쾌유하시길 바랍니다.”
클로제가 마티아스에게 들려준 유일한 말이었다.
마티아스가 그녀에게 왈츠를 청했을 때부터, 그녀는 마티아스를 지나치게 두려워했고 조심하는 기색이었다. 마치 황제라도 만난 것처럼 깊이 머리를 조아리고 무릎을 굽혀 인사했다. 그 정도로 소심하고 사교성 없는 여자였다면 소문이 돌지 않았을 리가 없는데도.
그러다 이내, 마티아스는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안 그런 척 하고 있었지만, 웨버가 부인을 단속하는 일에 있어서 만만치 않은 사내였던 것이다.
부인에게 왈츠를 좀 청했기로서니, 웨버는 한순간 마티아스에게 살기를 담은 시선을 보냈다. 기가 막혔다. 아니, 어쩌면 사내 구실을 못해 여자의 유혹에조차 넘어가지 못하는 자로서 어쩔 수 없는 자격지심일지도 몰랐다. 클로제의 일행을 보면 더 가관이었다. 그녀는 항상 웨버의 하인 두 명과 동행하는 듯했고, 친구로서는 웨버가 소개시켰을 게 뻔한 북국 여자와 함께하고 있었다.
그토록 속박당하고 감시당하는 삶이라니. 여성으로서 마땅히 환희를 알아야 할 그 몸이.
마티아스는 하루빨리 클로제를 구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쉽지가 않았다. 그녀는 남편에게 단단히 구속되고 있는 모양으로, 어떠한 작은 틈조차 주지 않았다. 편지를 보내도 답하지 않았다. 참다못해 직설적으로 웨버 부부를 불러냈을 때조차 그녀는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웨버가 임신한 아내를 지극하게 보살핀다는 주변의 평가에도 배알이 뒤틀렸다.
‘애 가진 게 대수라고, 사내놈이 별 호들갑을 다 떠는군. 바람 피울 능력도 없는 고자놈이니 집 안에만 붙어 있는 것도 당연하지.’
그 며칠 뒤 마티아스는 친척들과 어울려 폭음하고 나서 충동적으로 일을 벌였다.
“강제로라도 끌고 와, 젠장! 손이라도 잡아볼 기회가 있어야 내 것으로 만들 거 아니야? 내게 안기고도 굴복하지 않는 여자는 없었어. 미천한 북국 촌놈 따위가 가질 여자가 아니야. 여자를 사랑할 줄 모르는 고자놈 주제에 그럴 수는 없어. 그 자식은 내 여자를 가로채서 떵떵거리고 있다고.”
마티아스의 보좌인 던트는 몇 주를 말려오며 지쳤던 터라, 아예 한술 더 떠서 구체적으로 사람을 구하고 일을 진행시켰다.
“주인님의 별장으로 데려가라 하겠습니다. 다만 이건 염두에 두셔야 합니다. 만약 여자를 길들이시지 못하면 그걸로 끝입니다. 우리는 위험을 무릅쓰고 그녀를 살려둘 수는 없습니다.”
“그런 일은 없다. 어떤 정숙하고 고결했던 영애들도 다 내게 넘어왔아. 이미 남자를 아는 몸이라면 더 쉽지.”
마티아스는 테스카로 사람들을 풀어놓고 자신의 비밀 별장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기쁜 소식이 찾아올 순간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 다음날이 되어서 찾아온 하인은 테스카의 치안대가 신원불명의 수상한 사내 다섯의 시신을 발견했더라는, 예상치 못한 비보를 전했다.
던트가 보낸 자객은 여섯 명이었다.
“젠장할.... 그 자식이 불지는 않겠지?”
마티아스는 초조해하며 우왕좌왕 방 안을 서성였다. 던트는 미간을 잔뜩 좁힌 채로 무심하게 고개를 저었다.
“분다고 뭐가 달라지지는 않을 겁니다. 경께서 공작님께 꾸중을 좀 듣고 말 뿐이겠지요. 그보다는 그들을 그렇게 쉽게 처리했다는 게 더 찜찜합니다만....”
“꾸중이라니! 내가 일곱 살 어린애인가!”
마티아스는 손에 집히는 대로 물건을 집어던지며 고함을 질렀다. 던트는 황송해하며 고개를 숙였지만, 그 눈빛에 반성이라고는 티끌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늘 속을 뒤집어놓는 그조차 없으면 마티아스의 곁에 자신만큼 머리가 돌아가는 수하가 없다는 것을 그도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설상가상, 오후에는 마티아스의 어머니까지 찾아왔다. 그녀의 귀에 들어갔을 리 없는 일을 다 알고 찾아와, 사색이 되어서 매달렸다.
“마티아스. 대체 무슨 일을 벌이고 다니시는 겁니까. 남의 부인을 납치하려 하다니요. 경께서 어디 능력이 없어서 그런 짓을 해가며 여자를 만나야 한답니까? 제발 그만두세요. 아기까지 가졌다는 그 유부녀는 잊으세요.”
“제 것이었잖습니까, 어머니.”
마티아스는 다 알고 있다며 눈을 부라렸다.
“저와 결혼해야 했어요. 멍청한 놈들이 마차 하나 끌지 못하고 사고를 낸 탓이잖습니까. 왜 제가 손해를 봐야 합니까?”
“엇갈리고 끝난 인연입니다. 지난 일을 따져봐야 소용없어요. 그 남편이란 자도 무척 걸립니다. 더 이상 건드리면 안 돼요, 마티아스. 느낌이 좋지 않아요. 괜한 봉변을 당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하! 설마, 그 남편이란 작자가 벌써 찾아와 고자질을 했답니까? 아니, 저도 아니고 어머니께요?”
마티아스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그는 두려워하는 어머니 앞에서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리고 배를 잡았다.
“남성우월주의자처럼 행동하는 촌놈이 이럴 때는 여자를 찾는군요. 코미디가 따로 없어요. 왜, 스콰이어 가의 사내와는 얼굴을 마주하고 말할 용기가 없었답니까?”
“웃을 일이 아닙니다. 오늘 새벽에 투스미아 대사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왕국의 국민이 억울한 일을 당하여 내게 직접 탄원할 일이 있다하니 그자의 면회를 허가하라고 말이에요. 내가 알기로는-.”
어머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마티아스가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그 겁쟁이 촌놈이 자기 왕국에까지 고발을 했다고요? 농담이라고 해주세요. 전 너무 우스워서 울 것 같습니다, 어머니.”
“제발 어미 말을 들어봐요, 마티아스. 그건 요청이 아니라 통보예요. 분쟁이 생겼을 때 명분으로 삼겠다는 선전포고란 말입니다. 하룻밤 사이에 스콰이어 가로 압박을 넣게 하는 자가 평범한 인물일 거라고 생각할 수가 없어요.”
“평범하지 않은 인물이 남의 나라에 와 노동자 짓을 하고 살 리가요. 북국 촌놈들은 원래 성질을 잘 내고 무식하죠. 평범한 농부의 땅을 좀 빼앗아도 영주가 나서서 전쟁을 하겠다고 달려드는 족속 아닙니까.”
“그걸 아시면 제발 그만두세요, 마티아스.”
“하지만 지난 시대의 이야기입니다. 제 버릇 개 못 주고 허세를 부리지만, 힘이 아니라 법으로 하는 시대라고요. 내가 사람을 납치하려 했다는 증거라도 있답니까? 법으로든 힘으로든 우리 스콰이어를 대적할 자가 얼마나 될까요? 북국 놈들이 아이넨에 와서 꼬투리를 잡는대도 우리 왕실과 동맹들이 가만있지 않을걸요.”
마티아스는 오기로 더욱 바득바득 우겼다.
요즘 세상에 무력으로 위협이라니 되도 않는 일이다. 누구든 감히 스콰이어 가의 아들을 겁박했다가는 아이넨 전체를 적으로 돌릴 각오를 해야 할 터였다.
어머니는 한참을 설득하고 설교하다가 결국 발길을 돌렸다. 보나마나 아버지에게도 이야기가 들어갈 것을 생각하면 위장이 뒤집혔다. 아버지는 어차피 신경도 쓰지 않을 테지만, 그에게 더 업신여기고 무시할 기회를 주게 된 것 같아서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첼시아는 왜 계속 연락이 안 돼?”
던트에게 신경질적으로 묻자, 그는 ‘글쎄요.’하고 무성의하게 대답할 뿐 조치를 않았다.
“그보다는 좀 젊은 아가씨들과 만나십시오. 취미가 나빠지셨습니다.”
“네놈이 농익은 여인의 맛을 모르는군. 맛을 보여줄 생각도 없다만.”
마티아스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서 롭슨 가로 향했다. 갑자기 왜 그렇게 튕기는지는 몰라도, 어쨌든 만나서 좀 건드리면 다리를 벌리고 매달리게 만드는 것쯤 일도 아니다.
‘클로제를 손에 넣으면 너 따위는 버려주겠어.’
그는 첼시아를 괘씸하게 생각하며 이를 갈았다.
클로제도 첼시아도, 자신을 거절만 하고 있었다. 자신 같은 남자가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한다는 부조리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용한 반격
발렌틴이 스콰이어에 다녀오고 사흘 후, 토요일이었다. 웨버 가의 저택은 때 아니게 북적북적해져 있었다.
오랜만에 손님들을 잔뜩 초대해서 파티를 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머, 너무 좋다. 전에 왔을 때보다 집이 훨씬 화사해졌어. 정원에 꽃도 새로 심었나 보네? 여름 커튼이랑 침구도 너무 너무 마음에 들어. 우리도 이런 걸로 하나 만들까, 자기야?”
소니아가 말하자 아너슨은 같은 디자인으로 하되 자기네가 좋아하는 색으로 차별화 하자고 말했다.
“남의 침대에 그만 누워 있고 일어나시지?”
발렌틴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말했지만, 프란체는 침대가 편하다며 기대어 앉은 몸을 일으키지 않았고, 소니아는 눈썹을 깜박이며 능청을 떨었다.
“뭐 어때서 그래요, 우리 사이에. 가족이잖아? 하루쯤 안방도 좀 빌려줄 수 있는 거지. 어떤 나라에서는 귀한 손님한테 안방을 내놓는 전통도 있다는데.”
“가족 같은 소리.”
발렌틴은 절대로 재워주지 않을 거라며 투덜대고 밖으로 나갔다. 밖에도 온통 손님들이었다. 아드리아나와 친한 부인들과 남편들, 제시카와 그녀의 바쉬 동료들, 그리고 웬디와 헤이즐까지 와 있었다. 물론 그들 중에 발렌틴이 고깝게 생각하는 인물은 아무도 없었지만, 지금 그의 심기가 불편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조금 전에 아드리아나가 그에게 조금 짓궂은 장난을 쳤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전 웬디와 함께 자야겠으니 혼자 주무셔야겠어요, 여보. 괜찮으시죠?”
괜히 진지하게 말했다. 발렌틴은 차마 안 된다고 하지 못하고 ‘음.’하고 짧게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내색하지 않으려는 듯했지만, 그 뒤부터 그의 표정과 행동의 미묘한 부분에서 깊이 상심한 마음이 너무나도 절절하게 드러났다. 아드리아나는 얼굴을 가리고 혼자 웃다가 금방 농담이었다고 털어놔야 했다. 웬디는 사실 헤이즐과 같이 자고 싶어 했다는 사실을 듣고, 그는 원망하는 말을 했다.
“...나한테 이런 잔인한 장난을 치다니.”
발렌틴은 아드리아나가 자신의 반응을 예상할 수 있으면서도 놀렸다고 삐쳤다. 별생각 없이 했던 장난이었고, 그가 장난에 그토록 서운해 한 일이 드물었기에, 아드리아나는 미안해하며 그를 달랬다. 그래도 사람들의 눈을 피해 자신의 방으로 그를 데려가 끌어안아주고 입을 맞춰주자, 그는 금세 풀어져서 다시 미소 지었다.
“단 하루도 아까워. 당신과 떨어져서 자고 싶지 않아.”
아드리아나도 한편으로는 서로 떨어져서 밤을 보내는 일에 예민해져 있는 그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의 기분을 헤아리지도 못하고 쓸데없이 마음을 상하게 만들었다고 후회가 되었다. 얼마가 될지 모를 숱한 밤을 홀로 지낼 각오까지 하고서 자신을 투스미아에 보내려던 그였으니, 평소처럼 여유 있게 생각하기는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5일 전 사건이 있었을 당시에만 해도, 아드리아나 역시 그와 떨어지게 될 일을 두려워했었다.
하지만 발렌틴은 그때 아드리아나에게 투스미아로 가 있으라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여름휴가를 보내겠다고 일을 쉬고 집 안에 들어앉았다. 길어야 2, 3주를 버틸 방편이었다. 그날 바쉬에 연락했던 것은, 스콰이어 영부인을 만날 수 있도록 조치해달라는 부탁을 하고 경호원으로 쓸 남자들을 더 지원받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그는 이따금 잠시 손님을 만나고 오는 것 외에는 집 안에서 여느 휴일과 다름없이 지냈다.
그가 기다리는 것이 무엇인지 아드리아나도 알 수 있었다.
함께 도망치자고 하기에는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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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추코평쿠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평안한 밤 되세요.u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