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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보다 아름다운-129화 (129/140)

00129 선전포고 =========================================================================

마티아스는 이제 당당한 방법으로 두 사람에게 접근하려 들었다. 그는 친분을 쌓고 싶다는 명목으로 여러 번 발렌틴에게 연락을 했다. 스콰이어에 초대하고 싶다거나, ‘아내와 함께’ 방문하고 싶다는 식의 제의였다.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발렌틴이 온갖 핑계를 대고 혼자 나가서 그를 대접한 적도 있었다.

아드리아나는 발렌틴이 머릿속으로 치열하게 갈등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아드리아나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 투스미아로 이주할까 고민하거나, 지난번에 했던 말처럼 아드리아나만이라도 떠나보내야 겠다는 유혹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둘 중 후자의 일이라면, 아드리아나는 원치 않았다.

“저 당분간 집 안에 있을게요. 성에 갔기 때문이에요. 다른 곳이었다면 그자와 마주칠 일도 없었을 거예요. 조금만 더 조심하면....”

사실 막연하고 답답한 일이었다. 치안대에 신고를 할 빌미도 없었다. 마티아스가 뭔가를 꾸미고 있다는 증거도, 눈에 보이는 피해를 당한 것도 없었다. 본격적인 해결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마티아스가 그의 지저분한 꼬리를 드러내거나, 또는 발렌틴이 계획하고 있는 일이 완성된 후여야 할 듯했다.

“...당신이 걱정 되어서 미칠 것 같아. 정말 괜찮아? 몇 주가, 몇 달이 걸리지도 모르는데....”

발렌틴이 아드리아나를 걱정하며 불안해 할 때마다, 아드리아나는 얼른 괜찮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으면 그가 자기 혼자 테스카에 남겠다고 할 것만 같았다.

“당신을 믿어요. 당신 곁에서 떨어지지 않을게요. 집에 있거나 당신과 붙어 다니면 전 괜찮아요.”

아드리아나가 간절하게 말하면, 발렌틴은 선뜻 투스미아로 가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 대신 되도록 오랫동안 집에 머물렀고, 아드리아나가 혼자 해오던 일을 하거나 친구들을 초대하는 데에 불편함이 없도록 더욱 신경 써주었다.

한편 주변에는 문제없이 대응할 수 있었다.

“웨버 부인, 너무 무리하지는 마세요,. 아이를 가진 동안쯤은 일을 쉰다고 게으른 여자 취급하는 사람도 없으니까요.”

부인들은 아드리아나가 거의 집에서만 지내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고 그렇게 위로해주었다. 임신 중이어서 바깥 활동을 줄여도 이상한 시선을 받지 않아서 그 점만은 다행이었다.

그렇게 2주가 지났다.

숨 막히는 생활이 몇 달씩 가지는 않을 듯했다.

마티아스도 급했는지, 생각보다 빨리 꼬리를 드러낸 것이었다.

소니아의 생일 파티에 참석하려고 모처럼 외출하고 오는 길이었다. 적어도 마티아스가 아너슨 가에 들이닥칠 가능성은 없었다. 아드리아나는 집안에서 차를 타고 출발해서 소니아의 집 안에서 내렸다. 그리고 오찬 파티가 끝난 후에는 다시 차를 타고 곧장 집으로 향했다.

별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길이 한적해지고 인적이 드물어졌을 무렵, 어디선가 나타난 말들이 차 앞으로 뛰어들었다.

“아!”

아드리아나가 작게 비명을 질렀다. 순간 옆자리의 엘레나가 아드리아나를 안으며 몸을 감쌌다. 오언은 침착하게 핸들을 꺾고 브레이크를 밟아, 차가 길 밖으로 빠지지 않도록 멈춰 세웠다.

여러 명의 사내들이 차를 에워쌌다. 그들은 모두 복면을 했고 무사처럼 커다란 검을 들고 있었다.

“...야, 잘 만났다. 다들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제시카가 욕설을 내뱉더니, 바닥에 있던 장검을 주워 움켜쥐고 조수석 문을 열고 뛰쳐나갔다.

“마님, 고개 돌리세요.”

엘레나가 아드리아나를 끌어안고 눈을 뜨지 못하게 했다. 아드리아나는 몸을 웅크리고 귀를 막았다. 아기가 놀라지 않도록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에 두 손을 배로 옮기자, 엘레나가 대신 귀를 막았다.

차 문이 닫히면서 진동을 일으켰다. 귀를 막은 것과는 별개로, 차문이 닫히니 아주 작은 소리밖에 들리지 않게 되었다.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신경 쓰였지만 상상하지 않으려 애썼다. 다만 무장한 사내가 대여섯이나 되어 보였는데 제시카가 괜찮을지 걱정이 되었다. 오언은 유사시에 아드리아나를 보호하며 돌아가야 하는 역할을 맡고 있으니, 제시카를 도와주러 나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차로 뚫고 돌진해볼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제시카가 기다리라며 일부러 박차고 나간 걸 보면 자신이 있어서라고 생각하는 편이 맞을지도 몰랐다.

가슴이 쿵쾅대고 식은땀이 솟았다. 이따금 엘레나가 아드리아나의 등을 쓸어내리며 안심시켰다.

“마님.”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엘레나가 아드리아나의 등을 조금 펴게 해주며 말했다.

“아직 눈은 뜨지 마세요. 이제 괜찮으니까 무서워하지 마세요. 안심하셔도 돼요.”

엘레나가 아드리아나의 손을 들어서 눈을 가리게 했다.

이내 차 문이 다시 열렸다.

“열쇠.”

제시카의 목소리였다.

뒤 트렁크가 열리는 기척이 느껴진 직후, 쿵 하고 무언가가 차에 실렸다.

제시카는 곧 다시 조수석에 타서 ‘출발’하고 시원스럽게 말했다.

차가 움직이고 난 후에야, 엘레나가 아드리아나의 눈을 가렸던 손을 놓아주었다. 다만 그녀는 아직 걱정스러운 듯 부드러운 손길로 아드리아나를 토닥여주었다.

아드리아나는 사이드 미러로 제시카를 쳐다보았다. 제시카는 조수석 창문에 팔을 기대고 턱을 괴고 태연하게 앉아 있었다. 약간 흥분한 듯 다리를 살짝 건들거리며 창문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그녀를 보고, 아드리아나는 작게 숨을 삼켰다.

그녀에게서 피 냄새가 났다.

사이드미러를 통해 눈이 마주치자, 제시카가 표정을 바꾸며 씩 웃었다.

“몇 분 걸렸어? 오언보다 내가 빠를걸. 좀 멋있지 않냐?”

그녀의 말에, 아드리아나가 동그랗게 뜨고 있던 눈을 가늘게 만들며 조그맣게 웃었다.

제시카도 만족한 표정으로 웃고는, 팔을 내리고 시트에 느긋하게 머리를 기댔다.

*

현관 안에 들어서자, 맥없이 다리가 풀렸다. 아드리아나는 계단을 올라갈 기력도 없어 1층 응접실에서 로빈을 끌어안고 쉬었다.

‘이제는 꼼짝없이 투스미아로 가라고 하시겠지.’

그러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마티아스는 쉽사리 멈출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자신은 몸이 나빠지고, 발렌틴은 걱정하느라 속을 더 까맣게 태울 것이다.

얼마 후에 오언이 돌아오자, 제시카가 그에게 ‘짐’은 어쨌냐고 물었다. 오언은 창고에 두었다고 대답했다.

“곧 치안대에서 난리 나겠네요.”

엘레나가 그들을 향해 말했다.

“어쩔 수 없지. 아직 신고하면 안 돼. 아까 그 말들도 우리가 먼저 수거해서 알아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제시카가 아쉬워하며 말을 이었다.

“남의 부인을 막무가내로 납치하려 하다니, 공작 아들씩이나 돼서 별 정신 나간 놈이 다 있네. 그냥 다 같이 투스미아로 돌아가는 게 속편하지 않아?”

“그러게. 정말 그이한테 말해볼까....”

아드리아나가 중얼거렸다.

이렇게까지 위협 받고 두려움에 떨면서도 남아 있을 이유가 없는데. 막상 느껴지는 패배감과 아쉬움을 자신도 이해할 수 없었다. 아이넨이 고향이기 때문에? 부모님이 이 땅에 계시기 때문에? 교육과 자선, 사교 등 하던 일들은 투스미아로 가서도 할 수 있다. 이 시대의 여성으로 태어나 시집가서 가문을 멀리 떠나는 것은 특별한 일 축에 속하지 않았다.

발렌틴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

“제스. 오언.”

발렌틴은 플레밍의 연락을 받고 두 시간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오늘은 회사에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는 상기된 얼굴로 문을 벌컥 열고 들어서자마자, 큰소리로 두 사람부터 찾았다. 발걸음은 곧장, 소파에 누워 졸고 있던 아드리아나에게로 향했다.

“여보....”

아드리아나가 팔을 뻗어 그의 품에 안겼다. 발렌틴은 말도 하지 못하고 아드리아나를 꽉 부둥켜안고서, 연신 몸을 쓰다듬었다. 부드러운 머리카락으로 덮인 귓가에 조그맣게 쪽쪽, 입술이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무서웠지, 여보.”

그가 괴로운 듯 속삭였다.

아드리아나는 미소를 보이며 괜찮다고 대답했다. 일단은 안심시켜놓고, 차라리 그의 고향으로 함께 떠나지 않겠냐고 물을 생각이었다. 그는 아마도 자신의 말을 들어줄 것 같았다.

갑자기 발렌틴이 고개를 돌리고 집사를 찾았다.

“플레밍, 바쉬에 연락하게.”

짧게 지시하고 난 후, 발렌틴은 전화가 연결되는 동안 아드리아나의 어깨를 세게 끌어안고 어떤 말도 꺼낼 틈을 주지 않았다.

아드리아나는 시간이 조금 지난 후에야 입을 열 수 있었다.

“여보, 바쉬에 가시려고요?”

“아니오, 그보다 일단은....”

발렌틴은 뭔가 대답하려다, 전화가 연결되었다는 플레밍의 말에 몸을 일으켰다.

그 동안 아드리아나는 엘레나의 부축을 받아 2층으로 올라가서 발렌틴을 기다렸다. 통화가 길어졌다. 발렌틴은 반 시간이 넘도록 통화를 한 후에 아드리아나에게로 돌아왔다.

“내일 날이 밝는 대로 스콰이어에 좀 다녀와야겠소. 일찍 돌아올게.”

============================ 작품 후기 ============================

선추코평쿠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납치하려 했다는 문장을 추가했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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