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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보다 아름다운-115화 (115/140)

00115  결실  =========================================================================

아드리아나는 공작 부부에게 인사를 올리고 와서 잠시 쉬고 있다가, 성에 도착한 왕자 일행을 함께 맞이했다. 결혼식 때 한 번 본 적이 있다고, 왕자들은 아드리아나를 오래된 친구를 보듯 친근한 미소로 대하며 인사를 건네주었다.

오찬이 성대하게 치러지고 난 후, 두 왕자는 공작과 긴밀한 자리를 갖기 위해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왕세자의 약혼녀인 리네트가 영부인과 아드리아나와 함께 남았다.

아드리아나는 리네트 공주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눠보고 곧 그녀를 마음에 들어 하게 되었다. 그녀는 올해로 18세가 되는 밝고 솔직한 아가씨였다. 그녀와 이웨리드 영부인은 그동안 자주 만남을 가져오며 사이가 가까워져 있었다.

“요즘엔 이웨리드 영부인과 웨버 부인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나이 차이도 적은데다 성격도 잘 맞을 거라고 하셨지요. 이렇게 직접 뵈니 너무 기쁩니다. 특히 부인의 어여쁘신 얼굴 생김새가 제 취향이라서 마음에 쏙 들어요.”

리네트의 장난기 가득한 말투가 왕세자 못지않은 듯했다. 아드리아나가 미모를 칭찬하는 말을 듣고 이렇게 낯가림 없이 웃어본 것도 처음이었다.

“내일은 비가 올지도 모른댔어요. 오늘은 실컷 밖에서 놀아요.”

리네트의 제안으로 세 사람은 바깥에서 가벼운 오락을 하기로 했다.

아침에는 다소 뿌옇게 안개가 끼어 있었지만, 지금은 완전히 개어 있었다. 투스미아의 맑고 선선한 6월 공기는 야외 활동을 즐기기에 나무랄 데가 없었다.

세 사람은 나이와 성격, 신분까지 모두 제각각이었지만, 자신들이 내적으로 소통하기 쉬운 성향을 가졌다고 느꼈다. 다들 악기 연주를 즐겨했으며 선조들이 물려준 이야기, 특히 북해 낙원의 신들을 노래에 관심이 많았다. 또한 사색하고 내면을 돌보는 일을 사랑하는 만큼 자신을 둘러싼 존재들도 사랑했다. 각자의 독립적인 일을 가지고 있으면서, 막중한 사명과 의무를 짊어진 짝을 만나 그의 일을 돕고 그의 내면을 돌봐주는 역할을 소중히 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같았다.

“자, 두 분 긴장하세요. 제 바이올린 활 다루는 실력에는 이견이 많은 듯하지만, 이쪽 활을 잡으면 만만치 않아지거든요.”

리네트가 볏짚 기둥 위에다 묶어둔 표적을 향해 활시위를 당기며 말했다. 최근 여성용으로 장력을 낮춰 만든 활을 가지고 노는데 재미를 붙였다는데, 남자들이 쓰는 일반 활을 가지고 팔을 약간 부들부들 떨면서도 제법 점수가 괜찮았다.

아드리아나도 의욕에 차서 활을 잡았다.

“아아, 전 안 되겠어요. 못하겠어요.”

“하하. 힘내세요, 웨버 부인. 어쩜 그렇게 팔 힘이 하나도 없으세요?”

“제 건 고장 난 것 같아요. 줄이 안 늘어나요. 저도 한 힘 하는 여잔데 이상하네요.”

아드리아나는 활이 고장 났다고 엄살을 떨다가, 영부인이 활을 넘겨  받고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시위를 당겨 줄을 쫙 늘리는 것을 보고 조용히 입술을 오므렸다.

“제 남편이 나중에 은퇴하시면 제게 사냥해서 먹을 걸 구해오라고 하시겠다던데 큰일이에요.”

“채식하셔야겠네요.”

“아니, 본인은 뭘 할 생각이시기에 부인께 사냥을 시킨다던가요?”

이웨리드도 작게 미소 지으며 거들었다. 아드리아나가 '남편은 직접 밭을 갈고 농사를 지을 예정'이라고 말하자, 이웨리드는 어이없어하며 양미간을 좁히고 웃었다.

“그나저나 저희 남편 말씀이 본인이 원래 농사꾼이었다던데 왜 식구분들마저 웃으시는지 모르겠어요.”

“발렌틴이 그러던가요?”

이웨리드가 아주 부드러운 눈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그녀는 발렌틴이 아버지 농장을 관리하던 시절이라고 해봤자 일꾼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장부나 들여다봤겠지 제 손으로 감자나 캐 봤는지 모르겠다며 입끝을 올렸다.

왠지 리네트도 발렌틴에 대한 이야기를 무척 진지하게 듣는 듯했다. 아드리아나는 흥미 깊어 보이는 그녀의 반응의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발렌틴을 잘 아는 사람들에게야 그냥 의외성 때문에 웃을 만 한 이야기들이 나왔지만, 그를 모르는 이에게도 놀라울 점이 있는 특이한 이야기인가 싶어 조금 의아했다.

이웨리드가 자리를 비우고부터는, 자리에 없는 짝에 대한 이야기가 본격적이 되었다.

“공주님, 아이넨에서도 레이넌 왕세자께서 결혼을 늦게 하시는 게 굉장한 화제였답니다. 왕자님들이 인기가 아주 좋으시거든요. 이제 가을에 왕세자님께서 유부남이 되시고 나면 브렛 왕자님이 인기를 독차지 하게 되시겠네요.”

아드리아나가 말하자 리네트가 콧잔등을 찡그리며 웃었다.

“그분이 협조만 해주셨더라면 전 3년 전쯤에 제 가정을 갖게 되었을 거예요. 세간에서는 그분이 제가 성인이 되기를 기다려주셨다고 오해하지만, 실은 이제나저제나 파혼할 틈만 노리고 있었던 분이에요. 이해는 해요. 처음 보셨을 때 제가 네 살이었으니까요. 이런 유아랑은 절대로 결혼 못한다고 질겁하셨대요.”

아드리아나는 왠지 남일 같지 않아 눈썹꼬리를 늘어뜨리고 웃었다. 언젠가 발렌틴이 웬디에게 ‘내가 너만 한 딸도 가질 수 있었다’고 말했던 때, ‘그럼 아드리아나가 8살일 때 나를 낳을 수 있었겠느냐’던 웬디의 깜찍스러운 냉소도 떠올랐다.

“어쨌든 지금은 왕세자님께서도 뭇 남편들 부럽지 않게 자상하시던걸요.”

“자상하다는 말로 꾸미기엔 민망하지만, 그분 성품 치고는요.”

리네트가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아드리아나는 내심, 레이넌 왕세자도 충분히 다정해 보였지만, 자상하기로는 우리 남편을 따라올 남자가 많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저 혼자 부끄러워했다. 비단 콩깍지 쓴 자신의 팔불출 같은 시선으로 보지 않더라도, 발렌틴이 사려 깊고 자상한 남편이라는 점은 테스카의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었는데, 이상하게도 그의 과거 지인들은 그 소리만 들으면 배를 잡았다.

“웨버 부인. 레이넌의 말로는 웨버 경이 자기보다 훨씬 어른스러운 느낌이고 바쉬 공작님의 피를 그대로 물려받은 분이라고 하셨어요. 너무 궁금했는데 내일 오신다니 빨리 뵙고 싶네요.”

리네트의 말에 아드리아나가 고개를 살짝 갸웃하며 웃었다.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요. 왕세자님께서는 제 남편을 결혼식 때 보셨으니, 한껏 점잖은 체 하시는 모습만 아셔서 그럴 거예요. 그리고 음... 제 남편의 겉모습은 공작님과 전혀 닮지 않으셨어요.”

어디 겉모습뿐이랴, 성격도 천지차이인 두 남자였지만, 어째서인지 이 나라에 오면 두 남자가 같은 피를 갖고 있다는 말을 종종 듣게 되었다. 아드리아나는 이 왕국의 인간들만이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기운 같은 게 있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어머, 그건 좀 서운하네요. 전 이젠 바쉬 성의 군주라고 하면 키가 2m에 체중 100kg은 가뿐히 넘어야 할 것처럼 인식이 박혔거든요. 새로운 스타일에 적응하려면 시간이 좀 필요하겠어요.”

리네트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녀의 말에 걸리는 점이 있었다.

아드리아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기울였다.

‘...바쉬 성의 군주?’

그때 마침, 공작의 방에 들어가 있었던 레이넌이 쿵쿵 발소리를 내며 찾아와서 약혼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고는 여성들만 앉아 있는 테이블 앞에 불쑥 끼어들어 앉더니 세 사람의 현악 트리오가 어땠는지 따위를 물었다. 그는 아드리아나에게 자기 약혼녀가 3살 때부터 바이올린 활을 잡고 노력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실력이 형편없어서 그녀를 보고 있으면 예술성은 오로지 영감과 재능만으로 결정된다는 편견을 버릴 수가 없다는 둥 실컷 흉을 보았다.

“지엄하신 왕세자님. 자기 약혼녀를 감싸주시지는 못할망정 그렇게 흉만 보시기예요? 예술성으로 말하자면 이웨리드 영부인과 웨버 부인께서 특별히 출중하신 거지, 제가 형편없는 건 아니랍니다.”

“양심도 없군. 그리고 나 없는 동안에 당신도 실컷 내 흉 봤을 거 아냐.”

“어머, 설마요. 여기 계신 귀부인께서는 그런 품위 없는 일은 모르시는 분인걸요.”

리네트가 새침하게 눈을 깜박이며 말했다. 과장된 부정이 영락없는 긍정 그 자체여서, 아드리아나는 자신이 했던 말 중에 발렌틴의 귀에 들어가면 안 될 내용이 있었던가 되돌아보며 손톱을 살짝 깨물었다.

“웨버 부인, 잠시 내 약혼녀를 빌려가도 되겠습니까?”

이윽고 레이넌이 쾌활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드리아나가 수줍어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리네트가 얼른 덧붙였다.

“그렇다고 엉큼한 생각은 하시면 안 돼요, 부인. 저흰 아직 키스도 못 해본 사이거든요.”

“그런 말은 뭐 하러 해? 내가 고자 같아지잖소.”

“당신은 숙녀들 앞에서라도 그 입버릇 좀 삼가실 수 없어요?”

“없소. 부인네들한테 남편 흉보지 말라는 게 더 쉽지.”

두 사람은 티격태격하면서도 일어서자마자 팔짱을 꼈다. 아드리아나는 남편의 조국 남자들이 자주 쓰는 그 단어를 애용함에 있어서는 대 왕국의 차기 국왕이 될 남자도 예외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작게 한숨을 쉬며 웃었다.

금세 만찬 시간이 지나고, 해가 저물었다. 날씨가 쌀쌀해져, 엘레나가 아드리아나에게 도톰한 겉옷을 챙겨주었다. 발렌틴이 자기는 이 옷이 좋다며 손수 챙겨준 봄 코트였다.

“오늘 저녁에 오시기는 힘드시겠다. 벌써 밤이 되었으니....”

조금 서운했지만, 아드리아나는 그의 고향에서 주인 행세하며 그를 맞이해 편안한 기분을 선사해주게 되었을 때 얼마나 뿌듯해질지를 상상했다. 자신이 여기서 즐거운 하루를 잘 보냈다는 말을 전해 듣고 기뻐할 그의 얼굴도.

‘...여기가 네 아빠의 할아버지, 할머니 집이란다.’

아드리아나가 문득 자신의 배에다 손을 올리고 속으로 말을 걸어 보았다.

처음 해보는 행동이었다.

‘오늘밤은 엄마랑 둘이서 자고, 내일 아빠가 오시기를 기다리자.’

형언할 수 없는 뭉클함이 가슴 속에서 온 몸으로 번져나갔다. 그러다가는 이내 얼굴이 새빨개져서 입매를 늘렸다.

뱃속에 아직 아이가 없다면, 자신은 얼마나 우습고 부끄러운 흉내를 내고 있는 것인지.

그러고 나서 잠자리에 들었을 때, 아드리아나는 한 쌍의 베개 중에 하나는 자신이 베고 나머지를 끌어안았다. 아이넨에서는 침대를 쓰는 사람 수대로 베개를 놓았지만, 투스미아에서는 작은 간이침대를 제외한 모든 침대에 베개가 두 개씩 놓였다.

‘내일은 일찍 일어나서 더 신경 써서 예쁘게 하고 있어야지. 이곳의 드레스를 입을까? 그이는 내가 그걸 입기만 하면 웃기게 생각하시는 것 같지만....’

아드리아나는 기분 좋은 고단함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잠이 들락말락 하는 동안, 해야 할 일 등 여러 생각이 짧게 스쳐지나갔다. 슈하스의 새 학교에 보낸 테스트지를 확인할 일, 혼자서 테스카 후작 영애의 결혼식에 간 발렌틴에 대한 염려, 로빈과 집안 식구들, 리노아스... 그리고 리네트가 했던 ‘바쉬의 군주’라는 말이었다.

온갖 상념들이 무아지경으로 펼쳐지다가 꿈속으로 뻗어져 들어갔다.

그리고 침실 안이 어슴푸레하게 밝아질 즈음, 얼핏 잠에서 깨어났다.

몹시도 사랑하는 이의 품속임을 느끼며, 아드리아나는 눈을 뜨지 않은 채로 몸을 꿈지럭거리며 더 가까이 달라붙었다. 꿈인지 생시인지 헷갈렸지만, 달콤하게 느껴지는 체향을 맡으며 얼굴을 부비적댔다. 매끄럽고 얇은 천이 뺨을 스쳤다. 따뜻하고 단단한 가슴 부근의 옷자락을 움켜쥐고 매달려 있다가, 팔을 뻗어서 커다란 어깨 위에다 둘렀다. 그러자 따뜻한 입술이 이마에 조심스럽게 눌렸다가 소리없이 떨어졌다.

행복해.

스르르 눈꺼풀을 들어 올리고 바라보자, 피곤해 보이는 눈을 껌벅이며 다정하게 미소 짓는 남편의 얼굴이 보였다.

“발렌틴....”

“당신 정말 잘 자더라. 버둥거리면서 깨지도 않고.”

“언제 오셨어요?”

아드리아나는 기쁨으로 속삭이며 그의 목덜미에 뺨을 문질렀다. 나른하고 포근한 감각에 눈이 도로 감겨왔다.

“새벽에 왔소. 좀 더 자도 돼.”

“응.... 위험하게 밤길을 다니시면....”

“걱정 마. 위험한 일은 안 해.”

발렌틴의 낮은 목소리가 귓가에서 허리를 울렸다.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는 손길에 한숨이 흘러나왔다. 졸음에 몸을 맡기고 잠들고 싶다는 유혹과 그에게 몸을 맡기고 그를 더 느끼고 싶다는 유혹, 어느 쪽이 더 크다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아드리아나는 그에게 몸을 문지르다가 그의 앞이 단단해진 것을 느끼고 눈을 떴다.

“...당신 안 피곤하세요? 잠은 주무신 거예요?”

달뜬 한숨을 흘리며 손으로 그의 뺨을 쓸어내렸다.

“오는 길에 계속 잤소. 좀 피곤하지만 걱정할 정도는 아니야.”

발렌틴은 지금 육체관계를 나눈다는 선택이 생길 수도 있음에 대해서는 아예 고려하지 않는 듯 말했다. 그는 아드리아나가 시선을 미묘한 방향으로 내리고 뺨을 물들였을 때에야 그 문제를 언급했다.

“괜찮아, 더 자요. 어차피 욕정이 일 때마다 당신과 잘 수도 없어. 지금은 당신 몸을 각별히 신경 써야 하고.”

“안 힘드세요?”

아드리아나는 언젠가 잠자리에서, 그가 자신과 약혼한 이래로 자신을 통하지 않고서는 스스로라도 욕구를 해소한 일이 없다는 사실을 들은 적이 있었다. 딱 한 번 스스로 해결한 것은, 그와 약혼하고 테스카에서 처음 잤던 날이었다. 육체관계 없이 함께 자기로 했던 그 직전에. 그는 ‘며칠 금욕한다고 곤란을 겪는 일은 없는데, 당신이 옆에 있을 때는 자주 정신이 혼미해진다.’고도 말했었다.

“음. 생각보다는 참을 만 해. 당신을 위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아드리아나는 그가 지금은 자신이 아니라, 자신의 뱃속에 있을지 모르는 생명을 생각하고 참는 게 아닌가 의심하면서도, 기특해하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고삐가 풀리면 며칠이고 침대 밖으로 안 내보내줄 만큼 방탕해질 수 있는 사람이, 아내의 이런 저런 형편을 신경써주며 금욕적인 인물로도 돌변하는 게 신통했다.

“제가 원해도 참으실 거예요?”

아드리아나가 손바닥으로 발렌틴의 가슴을 누르며 느릿하게 쓸어내렸다. 배 근육의 움푹 파진 자리를 더듬으며 내려가다가 그의 바지 앞을 지그시 쓰다듬고 지나쳤다. 그에게서 신음 같은 숨소리가 작게 새어나오는 것을 듣고 흥분하며 그의 단단한 허벅지를 살며시 움켜쥐었다. 겨우 이 정도 그를 만진 것만으로 숨이 가빠졌다.

“...이따 낮잠 잘 수 있게 해줄게.”

발렌틴이 마음에서 갈등을 몰아낸 듯 말하고, 자기 허벅지에서 아드리아나의 손을 떼어냈다. 그리고 가는 손가락 위에 하나 하나 소중한 듯 입술을 눌렀다가, 다시 자기 하반신 위에 대고 눌렀다. 그가 빠르게 셔츠 단추를 풀어내는 동안, 아드리아나는 그의 바지 안으로 손을 집어넣고 그가 바로 자신의 몸 안으로 들어올 수 있을 만큼 완전히 단단해지게 만들었다.

“여보, 조금만....안 돼요?”

아드리아나가 그의 남성을 가볍게 잡아당기며 보채듯 속삭이자, 발렌틴이 알아듣고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아예 하지 말라는 것보다 더 어려운 요구를 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가 들어줄 거라고 생각하니 기대감으로 들떴다. 두 사람은 이내 알몸이 되어 몸을 연결했다. 발렌틴은 아드리아나의 몸 위에서 침대를 짚은 팔을 쭉 뻗어 상체를 완전히 들어 올리고 삽입이 깊어지지 않도록 했다.

따뜻하게 채워진 샘의 입구에 그의 성기 끝이 살짝 닿자마자, 아드리아나의 입에서 흐느낌이 새어나왔다. 뭉툭한 살덩이가 좁은 입구를 세게 누르고 밀며 들어온 순간, 작게 비명을 질렀다. 발렌틴은 거의 고뇌하는 것 같은 심각한 얼굴로 아래를 응시하며 깊이를 조절하고 있었다. 그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아드리아나는 그가 아주 얕게 삽입해서 관계를 가지는 게 좋았다. 그 정도로도 아래를 빠듯하게 채워지고 내벽을 문지르는 쾌감이 충분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후에 다른 식으로 그를 만족시켜주면 되었다. 실제로는 어떤지 걱정이 될 때도 있었지만, 그도 말로는 만족한다고 했다.

“여보, 좋아요....”

아드리아나가 그의 팔을 붙들고 헐떡이며 말했다. 그러자 발렌틴이 문득 움직임을 멈추고 아드리아나를 내려다보았다. 아무튼 그가 이 순간만큼은 눈곱만큼도 즐길 수 없다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기에, 안쓰러움과 이 상황에 대한 우스움 등이 교차해서 그만 웃음이 나왔다. 몸을 들썩이며 웃자, 그가 윽, 하고 눈썹을 찡그렸다.

“웃지 마, 오드리. 몸 들썩이지 마.”

그는 잠시 참았다가, 한참 허리를 움직이고 성기를 빼낸 후에 아드리아나의 몸 밖에다 사정했다.

“왜 요즘은 계속 밖에다 하세요?”

아드리아나가 얼굴을 붉히며 그를 끌어안고 묻자, 그가 흘러내린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약간 망설이는 투로 말했다.

“안 좋다고 하던데.”

“...당신 아기한테 말이에요?”

발렌틴은 멋쩍은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드리아나는 이마에 배어난 땀을 그의 팔에 쓱쓱 문질러 닦으며 짓궂게 미소 지었다.

“우리 둘 다 기대감을 돌이키기는 틀린 것 같아요. 만일 결과가 나쁘게 나오면, 그냥 사이좋게 같이 실망해요.”

“난 실망 안 할게. 내가 늦은 나이에 아빠가 되는 건 전적으로 내가 너무 늦게 당신을 찾은 탓이니.”

“그래요. 순전히 당신이 잘못하셨어요. 제가 8살 때는 찾아내셔서 신부로 맞으셨어야지요.”

아드리아나가 그를 끌어당기며 꼭 껴안고 웃었다. 놀리는 말에, 발렌틴은 아이한테 말 한 번 잘못 했다가 평생 놀림감이 되었다고 작게 푸념했다.

그러다가는 아드리아나의 맨 살갗을 애틋하게 어루만지며 나직이 말했다.

“일찍 만나면 그만큼 더 일찍 행복해졌을까? 한 10년 전쯤... 그렇게 일찍 만날 수 있었다면 내게는 정말 좋았을 거야. 내 인생에 당신 같은 짝이 정해져 있다고 알 수만 있었더라면, 당장 결혼은 하지 못했다고 해도.....”

발렌틴은 하던 일은 까맣게 잊어버린 듯, 아드리아나의 몸을 다정하게 쓰다듬고 입을 맞추었다.

아드리아나도 그가 말한 것 같은 상상을 해보았다. 아주 어릴 때부터, 그를 짝으로 소개받아서 그의 아내가 되는 날을 기다리며 살게 되었다면 어땠을까. 레이넌 왕세자가 리네트 영애에게 그랬듯, 발렌틴도 이런 꼬마랑 결혼해야 하냐고 질색하지는 않았을까.

‘난 8살이었어도 이이를 보고 반했을 거야.’

아드리아나가 아득한 날을 떠올리며 미소 지었다. 8살 꼬마가 되어 16살의 발렌틴을 짝사랑하는 인생도 좋았을 듯 하지만, 그 나름대로는 고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다 이내 현실로 돌아왔다.

아드리아나는 이미 자신의 남편이 되어 있는 발렌틴을 바라보다 입을 맞추고 뿌듯해 하며, 여전히 우뚝 서 있는 그의 하반신으로 손을 가져갔다.

============================ 작품 후기 ============================

선추코평쿠 고맙습니다.

길어져서 엄정나게 늦어버렸네용.ㅜ.ㅜ 오타랑 비문 심한 건 찔끔찔끔 수정할게요!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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