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보다 아름다운-108화 (108/140)

00108  새로운 세력가들  =========================================================================

의원은 주의사항을 일러준 후, 약을 복용하는 이외의 일상적인 생활 처방도 함께 적어주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며칠 뒤에 약이 도착했다. 아드리아나는 그것을 개봉하지 않은 채로 보관만 해두었다. 발렌틴이 물었을 때에는, 요즘 기분이 괜찮아서 약을 먹지 않아도 될 듯하다고 말했다. 그날 의원과의 상담 결과를 남편에게 들려주어야 했을 때에도 무척 고민을 해야 했지만, 막상 얘기를 나누면서는 잠시도 심각한 표정을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시작부터 그랬다. 그날 저녁에 목욕을 하고 나온 발렌틴이 팬티 한 장도 걸치지 않은 채로 방에 들어와서, 위기감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태도로 머리카락을 털어 말리며 말을 꺼냈기 때문이다.

“의원이 뭐래, 여보?”

“건강 상태에 큰 문제가 있지는 않은 것 같대요. 마음의 문제이고 극복할 수 있을 거랬어요.”

“오드리는 보기보다 강한 여자니까.”

그가 얇고 부드러운 소재로 된 잠옷 바지 안에 두 다리를 집어넣고 허리끈을 가볍게 조이며 미소 지었다. 아드리아나는 침대 옆에 걸터앉아 있는 자신의 앞으로 다가오는 그를 바라보고 있다가, 서로 다리가 맞닿을 정도로 가까워지자 손을 내밀어 그의 바지 위를 쓰다듬었다.

“…제가 쉽게 우울해지는 성격이래요. 아주 아주 소심하고요.”

사실 의원은 아드리아나가 쉽게 우울해질 수밖에 없었던 요인을 강조하며 자책하지 않도록 도와주었지만, 아드리아나는 자신이 매일 발렌틴을 놀리고 있으니 그에게도 기회를 주자는 생각으로 장난스럽게 말했다. 작게 웃는 그의 숨소리를 들으니 뿌듯하게 보람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심하지는 않아. 나로선 귀엽게 볼 수 있는 정도지.”

“제가 자꾸 우중충해져 있으면 당신도 힘드실 텐데 걱정이에요. 당신이 저 때문에 남들에게 흠 잡히는 말을 들으시는 건 싫어요.”

“당신은 금방 나아질 거야, 오드리.”

그가 아드리아나를 일으켜 세우더니 입술에 쪽, 하고 입을 맞추었다. 아드리아나는 지그시 눈을 감고 두 번째 입맞춤을 재촉하며, 그의 울퉁불퉁한 복부 근육을 쓰다듬었다.

“이거 봐. 우리 부인은 내가 뽀뽀만 해줘도 기분 좋아하잖아.”

발렌틴은 역시 아무 문제없을 거라며 아드리아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고 나서는 의원이 적어준 생활 지침들을 넘겨받고, 웃음기가 싹 가신 얼굴로 신중하게 주의사항들을 훑어보았다.

약을 먹으면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는 말에는 그도 약간 당황하는 듯 했었다. 그 뜻인즉, 임신 여부를 알게 될 때까지는 약도 먹지 말아야하고 아이도 만들지 말아야한다는 뜻이니까. 둘 다 아이에게 미칠 부작용을 무릅쓸 생각은 없었다.

“한두 달 견디면 될까. 우리가 아예 금욕을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니 그럭저럭 참을 만 할지도 몰라. 그보다는 당신이 약도 먹지 못한다는 게 문제군.”

아드리아나는 자신의 우울증이 최근 생긴 문제가 아니라 이미 몇 년 전부터 시작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남편에게 더욱 미안해졌다. 자신의 과거 때문에 그에게 너무나 많은 짐을 지우게 된 것 같았다. 그러나 발렌틴은 자기도 힘든 시기를 겪어보았고 그로 인해 몇 년을 힘들었던 적이 있는데 다행히 지금 완전히 나아졌노라고, 아드리아나도 그럴 거라고 위로했다.

아드리아나는 자기 자신과 그를 믿기로 했다. 그리고 의연하게 웃어 보였다.

“당신도 너무 염려치 마세요. 혹시나 글라디스 영부인에게 불려갈 일이 생기거든, 그때는 약을 꺼내서 냄새라도 맡아보고 갈게요.”

그렇게 의원에게 상담을 받고 생활을 조정하고, 또 지나치게 부정적인 자극이 되는 일과 사람들을 멀리하는 동안, 실제로 컨디션이 꽤 좋아졌다. 덕분에 새로운 한 주 동안에는, 적지 않은 일들을 처리할 수 있었다. 아드리아나는 남편을 대신해 집안일을 돌보고, 이웃과 각 영지의 기관, 남편의 거래처나 중요한 손님들에게도 편지를 보내고 답장을 썼다. 하루는 자주 애용하는 과자 가게에 부탁해서 웬디의 학교 학생들과 선생님들을 위한 간식을 보내주고, 헤밀의 시설 홍보를 위한 기획서를 다듬는 일도 도와주었다.

그 한 주 동안에 가장 즐거웠던 것은 물론 주말의 일로, 발렌틴에게 새 옷을 맞춰주고 길어진 머리카락을 자르도록 데려가서 구경한 일이었다.

“조만간 대청소를 하고, 교체할 커튼과 침구류를 세탁해서 준비할 거예요. 당신에게 예쁜 여름옷이 충분히 있는지도 확인해야겠어요.”

“우리 중에 예쁜 건 당신 하나면 족해.”

발렌틴은 쇼핑을 귀찮아하는 기색이었지만, 이곳저곳 가보자는 곳마다 군말 없이 잘 따라다녔다.

아드리아나는 다가오는 여름을 곧 들이닥칠 적병 떼로 여기기라도 하는 듯, 안팎으로 열심히 정비하고 대비했다. 해가 거듭될수록 기승을 부리는 습한 더위에 약한 탓도 있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여름은 언제나 힘들었다. 최근 몇 년 아드리아나의 귀에 패전의 북소리가 울렸던 것은 가을과 겨울이었지만, 그이전에 여름 내내 혼자서 전쟁터를 전전했던 기분이 들었다. 어쩐지 올여름을 나는 일도 녹록지 않을 것 같았다.

‘기분이 다 낫지 않은 탓에 괜한 상상을 하고 있는지도 몰라.’

아무튼 마음을 편하게 하기 위해 일련의 일들을 처리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 정도의 상태는 유지되었다. 금요일에는 학교 일을 점검하기 위해 슈하스에 들러, 신세를 졌던 지인들에게 인사도 하고 왔다. 시간이 촉박해서 헤밀에는 들르지 못하고, 예전에 일했던 찻집의 주인 부부와 오토 부부를 만났다.

찻집의 사라는 아드리아나를 보고 변함없이 친척에게 하듯 반겨주며 따뜻하게 대해주었지만, 아드리아나의 달라진 차림새와 몸가짐을 보고 자못 삼가며 어려워했다.

“이젠 어린 소녀가 아니라 어엿한 귀부인이 되셨으니….”

사라는 그렇게 겸연쩍어하며 웃었다. 아드리아나는 자신이 높은 소리로 웃고 떠들며 어린 소녀처럼 자유롭게 행동하던 그때와 달라져 있음을 실감했다. 경계심과 호기심, 호의 등 다양한 감정으로 넘쳐나던 그 시절에는 다른 이를 바라보며 지금처럼 조용히 상대를 관찰할 여유가 없었다. 무조건 의심부터 마음에 감추고 상대를 대하지도 않았다. 남들에게 보인다는 사실을 의식하며 허리를 펴고 조심조심 걷거나 말하지도 않았다.

물론 지금도 가끔은 소녀 때처럼 돌아간다. 적어도 발렌틴이나 웬디 앞에서는.

새삼, 변해간다는 일에 대해 생각했다.

이 왕국이 리노아스처럼 닫힌 문화를 가진 사회에서 테스카처럼 문을 열고 거대한 도시로 변해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아드리아나 자신도 문을 닫고 있던 소녀였다가 이제 문을 열고 무뎌지는 여자가 되어가는 중인지도 모른다. 자신에게는 평생토록 닫아두고 지키고 싶은 문도 있지만, 문이란 문은 닥치는 대로 열려드는 외압이 끊임없이 가슴을 두드리는 그런 세상에서 살고 있으니.

“웨버 부인도 처음 뵈었을 때와는 정말 많이 달라지셨어요.”

“사교계에 반년만 딱 지내 보면 누구나 다 변하죠. 웨버 부인도 마침 그 정도 되시지 않았나요?”

아드리아나가 자신의 변화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난 후의 가장 큰 변화는, 모든 이에게 상냥해지려 애쓰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 점을 두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떠들고 수군대는 말도 끊이지 않았다.

“부부 사이가 시들해진 거 아닐까요? 전에는 어딘지 좀 들떠 있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갈수록 쌀쌀해지시는 것 같아요. 보통은 남편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잖아요?”

“그보다 임신하신 거 아니야? 집에 하인도 많고 돈도 펑펑 쓸 수 있을 텐데 인생 즐겁지 못한 일이 뭐가 있겠어요.”

“여자를 즐겁지 못하고 피곤하게 하는 건 바로 남자예요.”

한편으로는  아드리아나의 반응이 불편했던 상대에게마저 침착해지고 심드렁해지기까지 하는 것을 기회처럼 여기는 부인들도 있었다. 그들은 조심스럽게 아드리아나에게 구애의 손길을 뻗쳤다.

“웨버 부인, 한가하실 적에 함께 마사지를 받으러 가시지 않겠어요? 솜씨가 아주 좋은 가게를 알고 있답니다.”

“요즘 같은 날씨에는 자연을 즐기는 게 최고죠. 웨버 부인의 부군께서도 사냥과 낚시에 일가견이 있는 분이시잖아요. 저희 고향 영지에 있는 근사한 사냥터에도 한 번 와주시면 좋을 텐데요.”

“여성에게는 몸에 무리가지 않는 운동이 효과적이죠. 성 근처의 수영장에 새로 개설된 레슨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그런 때에 아드리아나가 그녀들의 제안을 들어주고 생각해보겠다며 고개를 끄덕이기라도 하면, 경솔하게 선을 넘는 이도 없지 않았다. 그녀들의 주장은 글라디스가 자주 하는 말과도 같았다.

“변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아요. 고결한 환상 속에 살던 소녀도 시간이 흐르면 결국 현실의 여자가 되죠. 우리 여자들은 내면에 귀 기울이고 감정이 이끄는 대로 마음을 열고 순응할 필요가 있어요. 넘쳐나는 순간순간의 사랑에 충실한 수 있다는 건 축복이에요. 난 모름지기 아름다운 여성이라면 미를 흠모하는 남성에게 베풀 의무가 있다고 생각해요.”

“옳으신 말씀이에요, 영부인. 낭만을 즐기지 못하고 사는 인생은 얼마나 허무한가요? 사랑을 느낀 일도 없이, 단지 집안에서 정해줘서 만난 남자와 사는 인생에 자신을 가둬두는 건 아둔한 일이죠. 어떻게 자신의 감정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있죠? 결혼식을 올렸다고 사랑이 태어난다고 믿는 여자들이라니. 남편들이 사랑한다고 하는 말은 다 껍데기뿐이에요. 남편과 연애하는 흉내를 내는 건 정말 창피한 일이라고요.”

그녀들은 레빙턴이나 소니아가 있는 자리에서는 감히 꺼내지 못하는 말을, 아드리아나가 과묵하고 잠잠해진 틈을 타 거침없이 떠들어댔다. 아마도 이제 아드리아나가 ‘남편과 연애하는 여자’ 신분을 벗어던졌다고 착각한 모양이었다.

아드리아나는 작게 한숨을 쉬었을 뿐, 굳이 그녀들과 이러쿵저러쿵 말을 섞지 않았다. 어차피 그녀들은 이해하지 못할 터였다.

6월은 그렇게 조용히 다가오고 있었다.

지난 월경일로부터 거의 한 달이 채워지고 있었다. 평소에도 컨디션이 나쁠 때는 1주일 정도 늦춰지기도 했던 편이라, 아드리아나는 이른 축포를 터뜨리지 않으려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기다렸다. 발렌틴에게는 알리지 않았지만,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부터 몇 차례나 혼자 기대하고 실망해왔었다.

라르슨 가가 테스카에 들어오는 날을 앞두고, 글라디스 파벌과 레빙턴 파벌의 대립은 휴전 상태였다. 기성 파벌들의 공통된 적, 새로운 견제 대상인 그들을 맞이하기에 앞서 투지를 아끼고 있는지도 몰랐다. 차츰 라르슨 가의 사람들이 테스카로 들어왔다는 소문은 돌기 시작했으나, 그들은 대중 앞에 성급하게 실체를 드러내지 않았다.

자기들의 안전한 영역 안에 철저하게 보호받고 있던 그들이 처음으로 나타난 것은 그들을 환영하는 파티에서였다.

파티의 주인공들답게, 그들은 테스카 성의 연회장 분위기가 얼큰하게 달아올랐을 때를 기다려 느긋하게 입장했다.

아드리아나의 눈에는 민스터의 모습이 가장 먼저 포착되었다. 그녀의 얼굴은 라르슨 영애의 풍성하게 올린 머리 스타일에 반쯤 가려져 있었지만, 일행 중 늘씬한 몸매와 유독 창백하게 보이는 손등이 시선을 끌고 있었다.

“환대에 감사 드립니다. 저희 일가가 이렇게 테스카 시민 여러분과 인사를 나눌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주신 주셉 후작님께 특히 감사 올립니다.”

라르슨 영애는 말투와 움직임이 지독히도 느렸다. 위엄을 나타내는 방법인 것인지 원래 그런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누구든 그녀의 곁에서는 보통 속도로 떠들고 움직여도 경박하게 보일 듯했다. 그녀는 후작을 향해 고개를 숙여 보일 때에도 무거운 올림머리가 한 치 흔들림이 없을 정도로 천천히 움직였다.

라르슨 영애는 나이가 40대 중후반쯤 되어 보였고 사별한 남편의 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모두에게 ‘라르슨 영애’라고 불렸다. 그녀의 자식들은 당연히 남편의 성을 잇고 있었으므로, 그들 일가 중에서 실제로 ‘라르슨’이라고 불리는 것은 그녀의 친척이자 민스터의 남편인 그 사내뿐이었다. 그리고 라르슨 부인, 즉 민스터는 거의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았다.

그 시샘꾼에 새침데기인 민스터가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남편의 친척이 어려웠으리라는 사실은 짐작할 수 있는 일이나, 꼭 필요한 말 이외에는 입을 열지 않고 전보다 기가 눌린 느낌이었다. 그녀는 아드리아나와도 한 번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아드리아나는 라르슨 영애보다는 민스터와 그녀의 남편에게 관심이 갔다. 남편 쪽은 겉보기에는 평범했다. 키는 170대 중반 정도로 딱 아이넨 평균 정도였고, 체격도 얼굴도 크게 눈에 띄는 점은 없다. 단정하고 점잖은 인상이었다. 이웃을 대하는 태도나 민스터를 대하는 태도에도 특별한 구석이 없었다. 바꿔 말하자면, 아내를 대할 때에도 특별한 애정을 드러내는 대신 이웃을 대할 때와 마찬가지로 예의 바르고 담백했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민스터의 얼굴에, 결혼 전 슈하스에서 아가씨들과 어울릴 때와 같은 앙칼진 웃음기가 없음에. 벌써 결혼생활에 지친 오래된 부인 같은 표정을 하고 있음에.

어쩐지 그녀는 무관심하다기보다는 슬픈 듯 보였다.

“웨버 부인?”

아드리아나가 두 번째 음료를 고르고 있을 때, 라르슨 영애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이리도 우아함과 존귀함이 흘러넘치는 여성이시라니, 만나 뵙게 되어 대단히 기쁩니다.”

라르슨 영애가 희미한 미소를 띠며 손을 내밀었다.

아드리아나는 부인 몇 명과 함께 테이블 위에 놓인 여러 음료 재료들의 효능을 따져보며, 어느 쪽이 할트 부인의 변비에 보다 도움이 되겠는가를 같이 고민해주고 있던 참이었다. 그래서 시의적절하지 못했던 칭송의 말에 조금 멍한 표정을 하고 말았다.

“고향에 있는 제 다정한 친구 하나가, 부인을 일컬어 테스카의 백작 부인이시라 하더군요.”

라르슨 영애가 입 끝을 부드럽게 올렸다. 아드리아나는 그만 귀까지 벌겋게 물들이고 말았다. 안 그래도 낯 부끄럽게 여겼던 그 별명을 진짜 백작의 딸 입으로 듣게 되다니, 창피도 이런 창피가 없었다. 머리에 피가 몰려 현기증이 일 것 같았다.

“…얼굴이 다 붉어지는군요. 영애께 저를 놀리는 그 별명으로 불릴 일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놀리다니 당치 않습니다. 실제로 아이넨의 뭇 백작께서 아내로 들이셨어도 부족함을 느끼지 못하셨을 테니까요.”

아드리아나는 순간 저도 모르게 눈동자를 움직여 발렌틴이 있는 쪽을 확인했다. 홀 안에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무리지어 어울리고 있었는데, 주로 같은 성별끼리 뭉쳐 있었고, 발렌틴도 멀찍이에서 다른 남자들과 이야기 중이었다.

무슨 연유로 라르슨 영애가 자신에게 근거 없는 호평을 내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자부심과 긍지가 대단해 보이는 백작가의 여성이 초면에 백작의 부인감이다 어쩌고 하는 칭찬을 하는 건 조금 과해 보였다. 민스터는 멀지 않은 곳에서 다른 부인들과 어울리고 있었다. 아드리아나는 민스터가 라르슨 영애에게 자신에 대해 말했을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부인의 부군께서는 사업에서 성공한, 대단한 신사라고 들었습니다.”

라르슨 영애가 아드리아나의 시선이 움직인 이유를 캐내기 려는 듯 관찰하며 눈매를 좁혔다. 방금 전 아드리아나에게 내린 평가와는 대조적인, 건조하고 박하기 짝이 없는 평가였다. 내심 기분이 상했지만, 아드리아나는 옅게 미소 지으며 적당한 감사 인사를 했다.

라르슨 영애는 자기가 들어온 웨버 가의 덕을 칭송하며, 두 가문이 서로에게 우정을 베푸는 관계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극히 노골적인 이유를 덧붙였다.

“웨버 부인께서 어찌나 겸손하신지, 제 식구가 우연히 왕성에서 모습을 뵙지 않았더라면, 부인께서 남작위의 상속자라는 사실도 모를 뻔했지 뭡니까.”

순간 주변의 말소리가 잦아들었다. 시끄럽던 여자들이 숨죽이고 있다가 수군대기 시작했다.

아드리아나가 태연하려 애쓰며 말했다.

“…상속자는 제가 아니라 제 남편입니다, 부인.”

“부군께서는 부인의 가문 것을 양도받은 것이지요.”

마른 침이 넘어갔다.

본인이야, 직계 후손보다 그 배우자를 우선시하면서까지 가문의 이름을 남성에게 물려주려는 귀족 가의 전통에 불만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남의 남편에게 모욕이 되는 것도 개의치 않는 이 언사는 대체 무슨 무례란 말인가.

“…맞습니다, 부인. 그리고 저희 가문에서는 훌륭한 남성을 맞이해 대를 물려줄 수 있게 된 일을 커다란 행운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아드리아나는 뒷덜미에 열이 오르는 것을 느꼈지만, 흥분하지 않고 나직이 대답했다. 공손한 태도는 지키고 있었으나 표정은 쌀쌀맞게 보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 작품 후기 ============================

새 챕터에 들어왔네요. 지금까지의 호흡으로 보아 한 달 정도면 완결낼 수 있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습니다. 분량 조절을 못 하는 편이라 정확하지는 않지만요.uu 완결 후에는 노블에서 습작할 듯해 관련 공지를 올려두었고 이쪽에도 남겨 봅니다.

늘 고맙습니다. 추천 코멘 평점 쿠폰도 감사히 잘 받았습니다. 좋은 꿈 꾸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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