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보다 아름다운-103화 (103/140)

00103  허니문, 향수, 우울  =========================================================================

글라디스 영부인의 주도 하에 본격적으로 회의를 시작하는 것은 오후의 일정으로 정해졌다. 오전 시간에는 부인들이 서로 인사를 나누고 다과를 즐기며 자유롭게 떠들었다. 20여 명의 부인들과 그들이 각자 데려온 하인들, 거기에 성의 일꾼들까지 더해지니 제법 어마어마한 규모의 자리가 되었다.

“어머나, 안녕하세요, 웨버 부인. 오랜만에 뵙네요. 겨울 연주회 때 인사를 드린 적이 있는데 저를 기억하실지 모르겠어요.”

젊은 부인 한 명이 아드리아나에게 다가와 살갑게 인사했다. 얼굴에 짙게 바른 분과 색조 화장이 아니었어도 오목조목한 이목구비가 예쁠 듯한 여성이었다. 그녀는 아드리아나가 자신의 이름을 기억해낼 시간을 벌어주려는 듯 인사를 길게 늘였다.

“아직 약혼하지 않은 제 여동생이 부인을 대단히 존경하고 흠모한답니다. 덕분에 집안 장식품으로 전락해 있던 첼로와 교양서들이 먼지를 벗게 되었죠. 하지만 남편 고르는 눈까지 어찌나 높아졌는지 혼처 구하기가 큰일이 되었어요.”

그녀는 변죽 좋게 아드리아나와 남편까지 함께 비행기를 태워놓고,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생긋 웃었다. 아드리아나는 가만히 그녀의 말을 듣다가 부드럽게 대답했다.

“여동생께서도 좋은 혼처를 찾으실 수 있을 거예요, 내쉬 부인. 부인 가문의 교양이야 나무랄 데 없다고들 하시니, 동생께서 부인만큼 아름답고 다정한 아가씨이기만 하다면요.”

아드리아나로서는 거의 혼신의 힘을 다해 쥐어짜낸 대꾸였다. 비록 자신의 귀에는 말투가 평소보다 울적하고 느려 거만하게 들렸을지도 모른다는 염려가 들었으나, 내쉬 부인은 아드리아나의 응대에 만족한 듯 보였다.

그러나 몇몇 예민한 부인들은 아드리아나의 컨디션 이상을 느낀 듯 눈길을 보내왔다. 평소라면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세심하게 주변을 살피고, 의도적으로든 마음이 동해서이든 환한 미소를 지었어야 할 아드리아나가 아직 한 차례도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서 표정관리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입가가 더욱 굳었다. 이목이 쏠린 탓에, 내쉬 부인에게 지어주었던 온화한 표정마저도 사라졌다.

아드리아나는 속으로 안절부절 못하다가, 무기력해 보이지 않으려고 허리에 힘을 주며 고고하게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근처 벽에 걸린 그림들을 들여다보며 표정을 감추고 걸었다. 얼마 후에는, 테이블 위에 놓인 채로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했던 신문 한 부를 조용히 집어 들고 심각한 얼굴로 그것을 들여다보았다.

여전히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는 부인이 몇 명 있었지만, 섣불리 캐묻기 위해 몰려들지는 않았다. 그 대부분이 신문을 뒤적이며 관심 있게 읽는 기사라고는 이웃의 경조사와 루머 정도로 국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아드리아나는 본의 아니게 대화는 일절 거절하겠다는 듯한 무거운 침묵 속에 서 있다가, 곧 신문을 접어놓고 세면대로 가서 물을 틀고 손을 씻었다.

쏴아아, 쏟아지는 물소리에 수군거림이 감춰졌다.

깊은 한숨이 토해져 나왔다. 마음 같아서는 찬물로 얼굴도 씻어내고 나서 소파 위에라도 눕고 싶었다. 이런 휴식 시간에는 얼마든지 그렇게 하는 부인들도 있었다. 하지만 안 하던 짓을 그렇게까지 할 정도로 자제력을 잃지는 않았다.

수도를 잠그자, 머리 뒤에서 대놓고 쑥덕거리기 좋아하는 여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꼬투리를 잡는 여자들은 대개 정해져 있었다.

“이제 슬슬 본성을 드러내시려나 봐요. 그동안 순진하고 귀염성 있는 새댁을 연기하며 지내 오시느라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사실 타고난 분위기부터가 싹싹한 인상은 아니셨죠. 오히려 새침하고 쌀쌀맞은 계열이라고나 할까요?”

부인들은 주어를 쏙 빼놓고, 드디어 '그녀'가 가면을 벗고 콧대 높은 본성을 드러내려나 보다 하고 떠들어댔다. 그러나 아드리아나는 부인들이 뭐라고 하든 그쪽으로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저 피곤하고 지겨웠다. 게다가 괜한 루머가 생기는 것에 비하면 사실 새침한 여자더라, 라는 편이 나았다.

그렇게 한참을 혼자서 가만히 앉아 있자니 가슴이 답답하고 축축 처지는 듯해, 아드리아나는 엘레나를 데리고 디저트들이 놓인 테이블 앞으로 갔다. 평소 즐겨 마시는 무알콜 샴페인을 한 잔 집어 들고, 쫀득거리는 과일 잼이 듬뿍 든, 향기로운 단 과자를 색깔별로 맛보았다.

상큼한 라즈베리와 레몬라임 같은 게 마음에 들어서 엘레나에게도 먹어보라고 입에 넣어주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고 있는 오언의 얼굴도 한 번 쳐다보았다. 그의 표정을 보아하니 관두는 게 나을 듯해, 다시 자기 입에 집어넣었다. 간식거리에 빠져 있는 동안 팽팽하게 내뿜고 있던 긴장감이 좀 누그러들었는지, 전에 인사를 한 적 있는 부인들이 몇 명 다가와서 디저트에 대한 평을 하며 안부를 물었다.

아드리아나는 부인들과 이야기를 하는 내내, 그리고 부인들이 자리를 옮겨간 이후에도 계속 과자를 집어먹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던 엘레나가 조용히 주의를 주었다.

“마님, 너무 드시는 거 아니에요?”

그녀의 말에, 아드리아나가 겸연쩍어하며 손을 털었다. 그리고 슬며시 테이블 앞을 떠나며 말했다.

“사실 나 결혼하기 전에는 이만큼씩 자주 먹었어. 웬디랑도 케이크 같은 과자를 많이 사다 먹고 그랬는데, 결혼해서 건강이나 품위에 신경 쓰다 보니 많이 줄인 거지.”

“전혀 몰랐어요. 과자를 많이 찾지 않으셔서….”

“그때처럼 막 생각나고 그러진 않네. 그이가 부족하지 않을 만큼 사다주시기도 하고.”

아드리아나가 쑥스러워하며 말했다.

삶이 훨씬 각박하던 때에는 그랬다. 하루를 고단하게 일하고 돌아와 손에 넣을 수 있는 달콤한 보상이 맛있는 과자 정도였다. 지금은 그때보다 물질적으로나 심적으로나 풍족해져서 그때만큼 과자에 집착하지 않게 된 건지도 모른다.

“어쩐지 웨버 경도 딱히 케이크를 좋아하지 않으시면서, 마님이 사다달라고도 안 하시는데 자주 사 오신다 했어요.”

“그이는 내가 좋아한다는 걸 아시거든. 그래, 결혼 전에도 그이가 내게 정말 맛있는 케이크를 보내주신 일이 있었는데, 내가 그 자리에서 이만한 케이크를 혼자 다 해치웠다니까.”

아드리아나가 말하고 갑작기 들뜬 웃음소리를 냈다. 웬디와의 이야기, 특히 발렌틴과의 옛날 일을 꺼내니 밝아진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남편과 만났던 그날을 생각하면 정말 좋았다. 그날 이후로부터 지금까지 수도 없이 그날을 떠올렸다.

둘 사이에서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았던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 것도 상상했었다. 그때 무서워하며 이불 속에 숨는 대신에 그의 얼굴을 보았더라면 어땠을지, 그때 자신이 수수한 겨울 잠옷이 아닌 아주 야한 속옷 같은 걸 입고 있었더라면 남편의 반응은 어땠을지, 말하기 부끄러운 망상에 잠겨 설레기도 했었다.

‘내일이면 그이가 돌아오실 거야.’

아드리아나가 순식간에 기분을 회복하고 오찬을 기다리며 서성이고 있던 무렵, 소니아와 레빙턴 부인이 연회장에 도착했다. 그들은 글라디스 영부인에게 먼저 인사를 올린 뒤, 아드리아나에게 인사를 하러 왔다.

“우리 부인 잘 다녀오셨어요?”

소니아가 우리 부인 하고 부르며 능청스럽게 포옹해주자, 아드리아나도 그녀를 마주 안아주며 웃었다. 기분이 나아지고 있던 차에, 친구들이 와줘서 더 든든해졌다.

다만, 주변의 분위기는 은근히 날카롭게 긴장되는 것이 느껴졌다. 이제 테스카 내에서 글라디스 영부인에게 필적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맞수, 즉 레빙턴 파벌이 전부 자리에 모임으로써 연회의 분위기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것이다.

오찬 중에도 테이블 위로 사소한 신경전이 오갔다.

“요즘 테스카 교회에서 과도한 수렵을 비판하며 성토하고 있다던데, 우리 신앙심 깊은 부인께서는 육식을 아주 즐기시는 듯 보이네요.”

“저도 일주일에 닭 한두 마리 정도는 소화한답니다. 좋은 양계장을 알고 있지요. 물론 사냥도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해요. 그렇다고 부인 댁처럼, 새들을 재미로 수십 마리씩 잡아 죽이지는 않지만요.”

“그보다, 추행 사건에 휘말린 사제가 있다는 기사가 실렸던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모쪼록 우리 부인들께서 테스카 교회의 사제들을 각별히 단속해주셨으면 좋겠어요. 후작님과 영부인께 누가 될까 두려우니 말이에요.”

“늘 단속에 힘쓰고 있으니 두려워 마세요, 부인. 혹시 부인의 친척 중에 사제가 되어 신분 상승을 해야겠다고 꿈꾸는 분이 계시다면 꼭 알려주시고요. 눈 여겨 감시해야 할 듯하니까요.”

글라디스 파벌의 공격은 주로 교회 자체를 소재로 삼는 일이 많았다. 아무래도 교리 안에 감시 받으며 레빙턴 부인에 의해 지혜롭고 엄하게 관리되는 부인들에게서는, 외도를 즐기는 글라디스 파벌만큼 화려한 스캔들이 터져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글라디스로서는 테스카 영부인이라는 입장이 있었으므로, 다른 부인들의 공격 수위가 너무 높아지면 중재에 나섰다. 레빙턴 역시도 그랬다.

불편했던 오찬 후에는 여흥거리가 제공되어, 분위기가 다소 누그러졌다.

소규모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성악이 시작되자 홀 안이 정숙해졌다. 부인들은 의자에 앉거나 서서 깃털 부채를 팔랑거리며 곡을 감상했다. 몇몇은 연주를 듣는 둥 마는 둥 하품을 하거나 눈을 감았지만,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부끄러워하는 기색 없이 식곤증을 즐겼다.

그런 부인들의 잠을 내쫓고 집중하게 한 것은, 두 번째 볼거리의 등장이었다.

무대를 대신한 홀 중앙에 등장한 것은, 아이넨의 남성 전통춤을 보여줄 건장한 청년들이었다. 꾸벅꾸벅 졸던 부인들이 식곤증을 쉽게도 이겨냈다. 사내들은 검을 찬 기사 같은 복장을 하고, 상의 단추를 쫙 풀어놓아 v자로 깊이 파진 자리에 훌륭한 조각품 같은 상체 근육을 드러내고 있었는데, 그들이 움직임 하나하나에 호응이 대단했다. 교회의 일부 부인들은 취미에 안 맞는 듯 탐탁지 않아 했지만, 아무튼 소니아는 무척 즐거워하며 시시덕댔다.

“오드리, 발렌틴한테 저런 거 배워보라고 해보면 어때? 그이도 어릴 때 칼질 좀 배웠을 테니 금방 하지 않을까?”

소니아가 아드리아나에게 몸을 기울이고 소곤댔다.

“아너슨 씨가 아니고요? 아마 발렌틴은 질색할 거예요. 니트 목선이 조금만 파여도 싫어하는 사람인 걸요.”

“희한해, 그 남자. 분명히 과시욕이 좀 있는데 말이에요.”

“옷을 훌훌 벗는 건 아무렇지도 않으신데, 야릇하게 입는 건 싫으신가 봐요.”

“하여튼 정말 까다로우세요. 안타깝게도 우리 프란체는 배가 나와서 저런 셔츠는 단추를 잠그지 못한단 말이야. 아래 몇 개는 잠그는 편이 아슬아슬한 맛이 있어서 좋은데.”

레빙턴 부인이 당장 끼어들며 ‘이를 거예요’하고 나서자, 소니아가 안된다고 말리며 입술을 오므렸다. 요즘은 남편을 너무 놀리면 삐친다는 것이었다. 아드리아나는 남자들의 박력 넘치는 춤사위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가만히 미소 짓고 있다가, 조용히 속삭였다.

“근데 남편들 삐치시는 것도 귀엽지 않아요?”

“알게 되셨군요.”

소니아는 레빙턴 부인이 곱게 눈을 흘기는 것도 무시하고 키득거렸다. 그녀들이 똑같이 눈살을 찌푸렸던 것은, 어디선가 ‘이따 저 남자들을 방으로 불러주시면 좋을 텐데’ 하고 진지한 기대를 담은 바람을 주고받는 여자들의 말을 들었을 때였다.

얼마 후 사내들이 물러가고 나서도, 연회장 안은 한동안 흥분의 도가니였다.

화제가 여전히 사내들에게 집중되어 있을 때에, 글라디스가 곧 자리를 옮겨서 회의를 시작하겠노라 선언했다. 부인들은 아직 감동으로 빛나는 눈으로 저들끼리 이야기꽃을 피우며 자리를 옮겼다. 어찌 보면 사내들이 부인들의 정신을 바짝 깨워 말짱해진 정신으로 회의에 참여할 수 있게 했으니, 유익한 시간이었다고 봐야 할지도 몰랐다.

새로운 홀에서 글라디스가 서문을 열었다.

“…그리하여 이번에 후작께서 라르슨 백작가의 장녀가 우리 테스카 땅의 일부를 사들여 이주해오는 것을 받아들이셨습니다. 저는 여기서 비롯될 몇 가지 문제를 후작님과 의논하기에 앞서, 여러분들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세금 제도를 보완해야 하게 되었고, 또 우리가 이주자들의 자선 활동 범위에 대해서 규제하는 것에 반대가 있따고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인들은 원으로 쭉 둘러앉아서 이야기를 들었다. 글라디스와 레빙턴 두 사람을 주축으로 몇 개의 그룹이 자기들끼리 붙어 앉아 있었고, 아드리아나처럼 적당히 섞여 있는 몇몇 사람이 있었다.

‘라르슨…. 어디서 들었더라.’

아드리아나는 얼핏 라르슨이라는 어떤 이름을 들은 기억이 있었다. 신문 기사 따위가 아닌 누군가의 입으로 들었던 것 같은데 생각이 날 듯 말 듯 나지 않았다. 한 번 들은 이름도 잘 잊어버리지 않는데, 머리가 복잡하긴 복잡한 모양이었다.

“테스카의 땅을 사들이고 지주가 되어 수익을 올리면서, 자선 활동을 명목으로 밖에다 돈을 돌린다는 건 정말 얌체 짓이에요.”

“하지만 개인이 소비하는 형태를 영지법으로 규제하는 것에 대해서는 말이 많아요. 수도에서도 철폐하자는 분위기라던데요.”

“어머, 영지 이름을 내세우는 세력가를 개인으로 취급하기에는 무리가 있죠. 까놓고 말해 침략의 의도가 아닌가요? 라르슨 백작령의 모자란 땅을 테스카에서 빼앗아 쓰겠다는 발상이에요.”

“저도 우리 후작님이 라르슨 가와 어떤 협의를 하셨는지 자세히 듣지는 못했습니다만, 손실이라고 생각되는 점이 분명히 있습니다. 제가 제안하고 싶은 것은 여러분께서 다소의 희생을 감수해주실 수 있다면….”

글라디스는 대체로 본인이 원하는 방향으로 분위기를 이끌었고, 라르슨 부인을 회의의 새로운 일원을 받아들이는 일에 대해서도 사람들의 우려를 이끌어냈다. 본인은 어디까지나 중립을 유지하는 투로, 다른 부인들이 나서서 견제하도록 하고 있었다.

“고루한 백작가의 장녀라니, 이번엔 또 얼마나 목소리가 큰 분이실지.”

“의도가 분명한 외지인에게 테스카의 살림을 의논한다는 건 어불성설이야.”

적어도 이 자리에 모인 부인들 중에, 라르슨 가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이는 없어 보였다. 새로운 세력이 생겨나는 것을 달가워하는 이 역시 없었다.

사실 최근에 신흥세력가로 주목 받았던 것은 아드리아나였다. 남편인 발렌틴이 테스카에서 3순위 안에 꼽힐 것으로 추정되는 자산가였고, 아드리아나 본인이 다른 부인들의 추종을 불허하는 지식과 교양 수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상 아드리아나가 테스카 사교에 무성의하지는 않았어도 적극적이지 않았고 자기 파벌을 따로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부인들이 점쳤던 ‘가능성’에 비해서는 활약이 미미한 채로 순위 밖으로 밀려났지만.

이런 분위기에서 또 다시 타 영지로부터의 세력가가, 그것도 테스카의 땅을 사들이며 등장하게 되었다니 부인들의 사교계에서도 눈에 불을 켤 특종일 수밖에 없었다.

“제가 테스카를 비웠을 때인가 보네요.”

벌써 신문에 기사가 실렸더라는 말을 듣고, 아드리아나가 말했다. 잠시 휴식이 주어진 틈에 레빙턴이 아드리아나에게 말을 걸어온 참이었다.

“그러게 참, 투스미아 여행은 좋으셨어요, 부인? 아너슨 부인이 아주 성화였답니다. 부인을 따라가고 싶다고 아너슨 씨한테 난리를 피웠다지 뭐예요.”

“전혀 못 들었어요. 아너슨 부인이 저한테는 시치미를 뚝 떼고 계신데요?”

소니아는 나중에라도 아드리아나에게 들키지 않고 따라가야 하니 누설하지 말라며, 입술 앞에 집게손가락을 댔다.

“그런데 부인, 정말 웨버 경하고 지나치게 정답게 지내신 거 아니에요? 얼굴이 핼쑥해지셨어요.”

“저희가 좀 그렇기는 했답니다. 신혼여행 대신인 것도 있었거든요.”

“어머나, 부러워라!”

아드리아나는 거의 허세에 가까운 투로 과장되게 자랑하고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면서, 나는 이렇게 행복한 사람이라고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일이기도 했다.

회의 자체는 감정 상태를 다스리는 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부인들은 아직 본 적도 없는 라르슨에 대해 온갖 구실을 갖다붙이며 견제하고 헐뜯고 따돌릴 투지로 불타올랐다. 거기에 끊임없이 제동을 걸며 도를 넘지 않도록 분위기를 흐트러뜨리는 레빙턴 부인 무리가 없었더라면, 그들이 과연 어디까지 갈지 두려울 정도였다.

아드리아나는 부인들의 열성에 지쳐, 정찬을 생략하고 진이 빠진 채로 집에 돌아왔다.

회의에서 건실한 제안은 얼마 나오지도 않았다. 글라디스의 계획들은 그래도 상식 안에 있었고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지만, 그녀는 분쟁을 일으키고 지켜보며 즐겼다. 그녀는 레빙턴 무리와 아드리아나가 귀가하려는 때에 맞춰서, 춤을 췄던 사내들을 다시 불러들였다. 아까와는 확연히 표정이 달라진 사내들이, 아까처럼 춤을 춰주기 위해 들어왔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런 사람들과 교류하며 살아야 한다는 사실에 신물이 났다.

마차에서 내려 터덜터덜 대문 앞에 다가가자,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로빈.”

아드리아나는 지쳤던 얼굴에 미소를 떠올리며 집안으로 들어섰다. 로빈이 뛰어나올 법도 한데 발소리가 나지 않았다.

발렌틴이 로빈의 털을 빗겨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보!”

아드리아나가 발걸음을 서두르다가, 일어서서 다가오는 발렌틴에게 뛰어가 안겼다. 발렌틴은 아드리아나를 품에 안고 잘 다녀왔느냐고 인사했다.

너무나 듣고 싶었던 목소리로, 너무나 그리웠던 품으로, 그가 맞이해주고 있었다.

“일찍 와서 놀랐지.”

“일이 벌써 끝나셨어요?”

아드리아나의 동그래진 눈을 내려다보며, 발렌틴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드리아나는 너무 기뻐서 말도 하지 못하고 그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목을 꼭 끌어안았다.

한동안 석상이 된 듯 꼼짝 않고 있다가, 발렌틴이 부드럽게 등을 쓸어주며 몸을 떼어놓았다. 그리고 허리를 안은 채로, 고개를 숙여서 입술을 포갰다.

“…음. 우리 부인 입술에 키스해본 게 얼마만인지.”

그의 말에 아드리아나가 겨우 환하게 웃었다. 그를 기쁘게 해줄 만한 대답이 얼른 떠오르지 않아, 그저 다시 그를 끌어안았다.

“여보, 잘 지내셨어요?”

“응.”

발렌틴이 아드리아나의 등을 토닥이며 나직이 대답했다.

“그간 식사는 잘 하셨고요?”

“잘 했소.”

“잠은요? 편히 잘 주무셨나요?”

아드리아나가 그의 가슴에 뺨을 비비며 물었다. 발렌틴은 이번에는 금방 대답을 하지 않았다.

“…당신을 이렇게 끌어안고 자고 싶었어.”

그걸로 질문이 멎었다.

자주 듣는 말이었다. 같이 자고 싶다는 말. 끌어안고 자는 게 좋다는 말. 그냥 기뻐하면 되었을 텐데, 이상하게도 그렇게 되지가 않았다.

발렌틴도 평소처럼 잠들지 못하고 나를 그리워했을까, 하는 생각이 목이 메었다. 아드리아나는 곧 가슴을 들먹이고 숨 참는 소리를 내며, 그의 셔츠 앞을 눈물로 흠뻑 적시고 말았다.

============================ 작품 후기 ============================

우리 새댁 감수성 터지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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