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91 지친 날의 유혹 =========================================================================
그의 잠옷 바지의 허리를 조인 끈을 풀어내고 불룩해진 바지 앞을 살짝 끌어내리자, 속옷을 입지 않은 탓에 바로 성기가 노출되었다. 그는 본래 잘 때 바지 한 장 입고 자면 예의를 후하게 갖췄다고 생각하는 부류였고, 아드리아나와 처음 침대를 같이 쓰던 얼마간 셔츠까지 챙겨 입고 자던 일은 아주 특별한 배려였던 듯했다. 거기에 가슴의 체모를 감추기 위한 용도도 있었던 듯, 면도했던 체모가 원래대로 자란 이후로 그는 다시 자주 자유인이 되어 발가벗고 다니기 시작했다. 아드리아나가 그의 알몸을 본 지도 석 달이 다 되어가지만, 여전히 부끄럽고 가끔은 충격을 받고 있었다.
지금처럼 점잖게 상하의를 다 차려입고 있다가, 그곳만 내놓고 있는 모습을 보니 새삼 또 충격적이었다.
“당신이 꺼내놓고 굳어 있으면 어떻게 해.”
발렌틴이 한쪽 팔을 의자 등받이에 올려놓고 느긋하게 기대며 말했다. 아드리아나는 마른 침을 꿀꺽 삼긴 후, 아직 완전히 빳빳해지지 않은 커다란 살덩이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음경이 금세 단단해지며 우뚝 일어서자, 두 손으로 기둥을 잡고 위아래로 쓸어주며 펌프질을 했다. 남편을 파정하게 해주려고 심각한 얼굴로 분투하는 아내를 보며, 발렌틴은 불손하게 웃음 짓고 있을 뿐이었다.
“벼, 별로 안 좋으세요?”
“아니, 좋아.”
평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그를 보며, 아드리아나가 조금 당황해서 그의 반응을 살폈다.
“더 빨리 해볼까요? 아니면 더 천천히…?”
“지금도 좋아, 여보.”
“놀리지 마시고 어서 도와주세요.”
웃기만 하는 그에게 아드리아나가 눈을 흘기며 입을 내밀자, 그는 부탁을 들어주는 대신, 손을 뻗어서 아드리아나의 머리를 붙잡고 진하게 키스했다. 아드리아나가 입맞춤에 빠져 눈을 감은 채로 그의 성기를 애무하는 동안, 그는 이내 팔을 뻗어서 아드리아나의 엉덩이를 움켜쥐고 주무르기 시작했다.
“아, 아직 안 돼요.”
아드리아나는 그를 떨어지게 하고, 그의 하반신 위로 상체를 숙였다. 입술을 크게 벌려서 그의 음경을 입 안 깊숙이까지 삼켰다가, 팽팽하게 당겨진 부드러운 피부를 빨아 당기며 입에서 빠져나가게 했다. 자신의 타액으로 젖어서 미끄러워진 기둥을 손으로 훑으며, 그를 흘긋 올려다보았다. 그의 표정에서 장난스러운 웃음기가 사라져 있기에, 아드리아나는 뿌듯해져서 살짝 입술 끝을 올렸다.
다시 입술을 벌리고, 보란 듯이 혀를 내밀어 그의 성기를 핥았다. 귀두에서 넓게 퍼져 내려가며 돌출된 밑 둘레를 따라 혀를 미끄러뜨리다가, 입 안에 넣고 쪽쪽 빨았다. 그와 사랑을 나누면서 그를 입 안에 머금어본 횟수는 몇 번 되지 않았지만, 할 때마다 그럭저럭 조금은 능숙해지는 것 같기도 했다. 그의 기둥을 가볍게 쥐고 훑으면서 성기 꼭대기부터 음낭까지 입술과 혀로 오가며 정성껏 애무했다. 이따금 고개를 들고 그의 반응을 확인했는데, 어느새 발렌틴은 여유로웠던 자세를 고치고, 팔걸이에 기대서 이마에 손을 짚은 채 뜨거워진 눈으로 아드리아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학….”
그에게 흥분되는 기미가 보일수록 아드리아나 자신도 더욱 상기되어서 헐떡였다. 그가 어두운 테라스에서 바깥바람을 맞으며 앉아서, 자신에게 남성을 내준 채로 조용히 쾌락에 젖어가는 모습이 몹시 자극적이었다.
아드리아나의 머리카락과 목덜미 사이로 그의 손이 들어왔다. 동시에 그의 입술 사이에서 흘러나온 낮은 숨소리가 그의 단단한 손끝을 타고 목덜미로 전해져 오는 듯했다.
“아읏.”
짜릿하게 소름이 끼쳐 어깨를 움츠렸다가, 꾸중하듯 그의 허벅지를 꽉 깨물었다. 그러고는 그에게 몸을 만지지 못하게 하려고 고개를 들었다.
“가만히 계셔야 해요, 여보.”
“나올 것 같아.”
그의 말에 아드리아나가 얼굴을 확 붉히며 얼른 시선을 아래로 되돌렸다. 손 안의 물건은 아직 터질 듯이 부풀어 있는 채였다.
“그렇게 고개 바짝 대지 마.”
그가 작게 웃으며 아드리아나를 뒤로 물러나게 했다.
“자, 자세히 보고 싶어요.”
“거기서도 다 보여.”
발렌틴이 인상을 찌푸리며 웃었다. 아드리아나는 그의 몸 구석구석, 그의 몸이 일으키는 변화를 하나하나 상세히 들여다보고 싶었지만, 스스로 생각해도 조금 변태 같지 않나 하고 의기소침해져서 그에게는 말하지 못했다.
겸연쩍어하는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고서, 옆에서 바라보며 그의 음경을 주무르며 기다렸다. 더 커질 수 없을 듯한 성기가 더욱 팽창할 것처럼 보이더니, 울컥하고 희뿌연 사정액을 토해냈다.
“앗….”
아드리아나는 움찔하고 놀랐다가, 두 번째 정액 줄기가 조금 높게 분출되는 순간에는 헉 하는 소리까지 냈다. 얼굴을 들이대고 있었다가는 부끄러운 모습을 보일 뻔했다. 남은 것까지 짜내주겠다고 꽉 쥐고서 훑어올리자, 한 번 더 사정액이 나와 기둥을 타고 달라붙으며 느리게 흘러내렸다.
“아우….”
아드리아나가 그의 성기에 묻은 체액을 미끌미끌하게 문질러보며 헐떡이고 있는 동안, 발렌틴은 테이블 위에 있던 새 냅킨으로 정액을 대충 닦아내고 상의를 훌렁 벗어낸 뒤, 아드리아나를 의자 위로 쓰러뜨리며 그 위로 체중을 싣고 몸을 겹쳤다.
그가 아드리아나의 머리를 팔 안에 넣어서 받쳐주고 입술을 깊게 포개었다. 뜨거운 숨결을 부딪치고 미끄러운 점막을 세게 문지르며 쾌락에 도취되게 하다가, 끓어 넘치는 정욕과 힘을 주체하지 못하는 듯 강한 힘으로 몸을 눌렀다. 그는 아드리아나의 속옷을 벗기고 성난 중심을 깊숙이 밀어 넣으려다, 신음하는 아드리아나의 표정이 심상치 않음에 당황하며 엉덩이를 살짝 뒤로 뺐다.
그런데도 아드리아나의 얼굴은 여전히 힘겨워 보였다.
“여보… 무, 무거….”
“아.”
그가 의자를 짚으며 급하게 상체를 일으켰다.
“헉, 헉….”
아드리아나는 짓눌렸던 가슴이 압박에서 해방되자, 참고 있던 숨을 터뜨렸다. 푹신한 침대도 아닌 긴 의자 위의 비좁은 자리에서 끌어안고 있겠다고 제 몸의 두 배나 되는 체중을 다 받아내고 있던 탓이었다.
“미안해, 여보.”
발렌틴이 얼른 의자에서 내려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새빨개진 아드리아나의 얼굴과 배 위를 쓰다듬어주었다.
“바로 말을 해줘야지. 당신을 깔아뭉개서 기절시킬 뻔했잖아.”
아드리아나는 남편의 애타는 속도 모르고 수줍어하며 웃었다.
“당신이 제게 들어오고 나시면 금방 몸을 일으키시니까 그때까지 기다리려고 했어요. 근데 저 짜부라지는 줄 알았어요.”
“아프게 하는 건 참지 마, 여보.”
걱정되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그를 보며, 아드리아나는 태연히 웃으며 호흡을 추슬렀다.
실은 버클리의 일 때문에, 발렌틴이 한동안 자신을 안고 싶어 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럴 의도가 없다고 해도, 자신을 안으면서 기분 나쁜 상상으로 불쾌함을 느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그의 곁에서 자고 싶다고 말하기도 두려웠다.
어쩌면 아드리아나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르지만, 그토록 다정한 말로 안고 싶다고 해주었을 때는 너무 기뻐서 그가 원하는 것을 다 해줘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자신을 숨 막히게 하고, 부술 정도로 강하게 원하는 그도 기쁘기만 했다.
“내가 까닥 실수해서 당신 다치게 하기라도 하면….”
발렌틴이 아드리아나의 팔에 이마를 기대며, 원망하는 투로 말했다. 아드리아나는 그의 머리를 끌어안고 뺨을 비볐다. 그렇게까지 약하지는 않다고 말하려다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알겠어요. 다음에는 좀 더 빨리 말할게요.”
발렌틴은 그다지 안심하지 않는 얼굴로 아드리아나를 안아올렸다.
그는 침실 안에 들어가자마자 아드리아나의 옷을 벗기고 잠시 감상하다가, 어정쩡하게 앞을 가리고 선 아드리아나의 얼굴에 수치심이 가득 떠올라 있는 것을 보고 빛이 들어오는 창문을 커튼으로 가려주었다.
그가 원한다면 부끄럽고 수치스러워도 좋았으나, 웬만해서는 강압적인 분위기를 만들지 않는 것에 안심이 되었다. 그런 순간에는 ‘사랑하니까’ 라고 참고 넘어가도 언젠가 상처로 떠오를 수 있음을 서로가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희미하게 남아 번지는 달빛을 등지고, 그가 바지를 마저 벗었다. 이성을 잃고 덤비면 충분히 깔아뭉개 실신시키고도 남을 듯한 커다랗고 험악한 그 실루엣에도, 애정과 기대감으로 가슴이 마구 뛰었다.
수줍게 바라보며 그 실루엣 안을 상상하는 아드리아나에게 다가와서, 그가 이번에는 훨씬 부드럽게 포옹하고 깃털처럼 가볍게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
“언젠가는 환한 태양빛 아래에서 당신을 발가벗겨놓고 구석구석 감상할 거야. 비좁은 공간에서 앙탈부리고 도망치지 못하도록 꽉 끌어안아 구속해서 삽입하거나, 매일 밤 내게 사랑받고 있다는 걸 남들이 다 알도록 흔적을 남겨놓는 짓도 할 거야.”
발렌틴이 나른한 얼굴로 자기 팔을 베고 누워서, 앞으로 언젠가의 일정이라는 듯 진지하게 알려주었다.
“그게 언제인가요?”
아드리아나가 그의 가슴 한복판을 손으로 쓸어주며 물었다.
“당신이 준비가 되었다고 느껴질 때.”
다 준비가 된 여자를 억지로 끌어안고 몸을 연결한다는 발상에는 뭔가 모순이 있는 듯 느껴지지만, 다른 두 가지는 충분히 겁이 났기 때문에 아드리아나는 입을 삐죽이고 그의 어깨를 콱 깨물었다.
“우리 부인은 점점 짐승이 되어가는 것 같소. 물고 빠는 일에 관심이 많아지니.”
그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말에 다시 한 번 이를 세워주고 싶었지만, 그의 말을 인정하는 셈이 될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그리고 놀리려는 듯 이불을 슬쩍 들쳐서 그 안을 들여다보았다. 가슴의 체모보다 짙은 숲이 무성했고, 그 안에 차분해진 그의 남성이 길게 누워 있었다. 좀처럼 볼 수 없는 얌전한 모습이었다.
“…아휴, 부끄러워요, 여보.”
아드리아나가 다시 이불을 덮어주며 그의 목덜미에 고개를 묻었다. 멋대로 들춰봐놓고 부끄럽다고 키득키득 웃고 있으려니, 발렌틴의 어이없어 하는 코웃음 소리가 들렸다.
“엉큼한 부인 같으니.”
순간 아드리아나는 자신이 지나쳤던 것 같아 걱정하며 그의 눈치를 보았지만, 그는 그저 거만하게 입술 끝을 올리고 있을 뿐이었다.
발렌틴이 아드리아나의 표정을 보고는 몸을 돌려서 품 안에 안아주었다.
“내 침대에서만 엉큼해진다는 거 알아. 왜 그렇게 눈치를 봐?”
“죄송해요, 여보….”
무엇에 대한 사과인지 이해한 듯, 발렌틴은 말없이 아드리아나의 등을 쓰다듬어주었다.
오늘은 오전 중에 약속이 없다고, 발렌틴도 아드리아나와 함께 침대에서 늑장을 부렸다.
그는 느지막이 일어나서 아드리아나와 같이 산책을 하고 돌아와, 잠시 일감을 들여다보았다. 심각한 얼굴로 신문을 읽다가, 창밖으로 로빈이 노는 모습을 쳐다보다가, 뜬금없이 ‘여보, 뭐 먹을 거 없어?’하고 물어보는 그를 보고, 아드리아나는 영감님 같다고 놀렸다.
“영감님이라고 하지 마, 여보. 안 그래도 나이 많은데.”
“당신이 나이가 뭐가 많아요?”
왠지 짠해져서 울컥한 마음으로 아드리아나가 말했다. 발렌틴은 그냥 말없이 턱을 괸 채로 쓴웃음을 지었다. 그에게 결혼할 생각이 없던 시절에는, 주변으로부터 애가 태어나면 아빠를 보고 할아버지라고 부른다는 둥 농담을 듣고도 아무렇지 않게 인상을 구기고 지나쳤다는 것을 아드리아나도 알고 있었다.
“당신보다 두 살 위인 아너슨 씨에게도 한 살짜리 아기가 있잖아요? 금슬 좋은 부부들은 3,40대에도 얼마든지 아이를 낳는데 그 애가 첫째인지 둘째인지 무슨 상관이 있겠어요.”
아드리아나는 이렇게 젊고 건장한데다 잘생긴 할아버지가 세상 어디에 있느냐며, 애가 태어나서 자기 아빠를 보면 너무 멋있어서 깜짝 놀랄 거라고 온갖 아부를 늘어놓았다. 그 강도 높은 아부의 말에 발렌틴이 웃고 넘기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진심으로 자식 걱정을 하는 기색이 비쳐져 아드리아나로서도 조금 염려가 되었다.
‘아기가 빨리 생겨야 할 텐데…. 걱정되시나 봐.’
아직 임신 걱정을 하기에는 이른 때였고 채근하는 이도 없었지만, 남편을 생각하면 되도록 빨리 아기가 생겨주길 바랐다.
‘아휴. 일이나 만들고 다닐 게 아니라….’
집안일도 버클리의 일도 해결되다 던져놓고 돌아온 상태라 생각만 해도 한숨이 나왔다. 임신한 상태였다면 백번 생각해도 무리인 일들이었다. 어쨌든 빨리 확실하게 마무리 지어놔야 했다.
아드리아나는 발렌틴이 일을 하는 동안, 곁에서 자기 나름대로 생각에 잠겼다.
‘아버지는 아무튼 이이를 사위로 인정하기로 했으니, 버클리의 일만 마무리 되면 같이 찾아뵈어야지. 아버지에게 그자를 추천한 걸 철회하시라고 할 거야. 내 말을 믿으시든 안 믿으시든 내 청을 들어주시지 않으면 상속을 그자에게나 하시라고 하겠어.’
강경하게라도 그자를 떨쳐내지 않으면 언제까지나 그자를 두려워하며 살게 될 것 같았다. 계속 얼굴을 마주치고 부딪치면서 강해져야 할, 그런 종류의 일이 아니다. 세상에는 멀리해야 하는 더러움도 있는 법이다.
‘만약 그자가 주임직 추천을 철회한 것 때문에 뒤늦게 사과한다고 해도 절대 만나주지 않겠어. 내 변호사와 얘기하라고 해야지. 내 뜻은 충분히 전했어. 그따위 인간에게 다시는 내 기분을 휘둘리지 않겠어.’
지금도 그자를 생각하면 속이 메스꺼워졌다. 리노아스에 갔다가 당한 일을 생각하면 바보 같은 자신에게도, 비열하기 짝이 없는 그 자에게도 화가 나서 억장이 무너질 것 같았다.
아드리아나가 이따 오후에 남편을 출근시키고 나서 리노아스에 전화해 봐야겠다고 기다리는 동안, 그쪽에서 먼저 전화를 걸어왔다.
이윽고 통화를 한 집사 플레밍이 내용을 고하러 올라왔다.
“바르테즈 집사였습니다. 리노아스의 남작님께서 웨버 경을 상속인으로 지정하시기 위한 일정을 의논하고 싶어 하신다고 합니다.”
그의 말에 아드리아나는 바로 표정이 환해졌다. 응접실에서 수첩을 들여다보고 있던 발렌틴도 플레밍의 말을 덤덤하게 듣고 있다가, 아드리아나의 환한 얼굴을 보더니 미소 지었다.
‘버클리 일을 어찌하실지 여쭤야 하는데….’
아드리아나는 발렌틴에게 잠깐만 기다려 달라고 하고, 전화기를 찾았다.
아버지가 이렇게나 빨리, 그것도 자진해서 테스카로 연락을 넣어준 것은, 버클리가 아니라 아드리아나의 말을 인정하기로 했다는 증거인지도 모른다. 버클리와 아버지 사이에서 있었던 거래를 새로이 알게 된 어머니도 증언을 더했을 것이고, 어쩌면 교회에서의 일도 아버지 귀에 들어갔을지 모를 일이다.
“얘, 집에 올 준비를 하려무나.”
어머니가 밝은 목소리로 반겨주며 말했다.
“아버지가 우리 말을 믿으시던가요?”
“그렇고말고. 이리 되었는데 뭘 어쩌시겠니? 교구에 정식으로 탄원서를 넣으실 게다. 그러면 주임직은 일단 보류될 거라고 하더구나.”
“탄원서요…?”
“그래. 뭐 이런저런 조언도 좀 들었고…. 아무튼 리노아스에 발붙이고 있지는 못하게 될 테니 염려 말거라.”
탄원서라니, 체면을 따지는 아버지가 교구에 정식으로 일을 맡기기까지 했다는 건 놀라운 발전이었다.
아버지는 이때까지 정말 딸의 행실을 믿지 못해 그토록 엄하게 일을 벌였단 말인가. 딸이 울며불며 억울했던 일을 떠벌이며 망신을 당한 후에야, 그 말을 믿어주기로 했단 말인가. 그 걸로도 다행이지만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그가 널 행실 나쁜 여자로 음해까지 했으니, 양심이 있다면 주임직만 그만둘 게 아니라 어디 먼 영지로든 떠나겠지.”
“네….”
아드리아나는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협조성에 내심 의아해하며 어머니의 말을 듣다가, 물끄러미 남편을 바라보았다.
그는 어제 자기가 리노아스에 이야기를 해두었다고 했었다.
“왜?”
발렌틴이, 전화를 끊고 자신이 앉아 있는 쪽으로 다가오는 아드리아나를 보고 미소 짓는 얼굴로 물었다.
아드리아나는 가만히 의자 옆에 쪼그리고 앉아서, 그의 허벅지 위에 두 손을 올려놓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당신, 어제 어디에 다녀오셨어요?”
“아, 부인 눈치가 빨라지셨구려.”
발렌틴이 웃음기 없이 시치미 떼는 얼굴로 나직이 말했다.
“난 당신이 내 일을 다 해결해놓은 덕분에 장인장모께 편하게 인사드리러 갔다 왔지. 당신이 쿨쿨 주무시는 동안 심심해서 그랬어.”
“심심해서 로빈 목욕도 시키시고요?”
아드리아나가 그의 다리를 끌어안고 눈을 흘기자, 그가 다시 미소 지었다.
안 될 일은 아니었다. 아버지가 그를 사위로 인정하기로 약속한 후였고, 아드리아나가 버클리 일로 소란을 피운 후였으니, 눈치를 보아도 아버지 쪽에서 보았으리라.
“어쩜. 어머니는 아무 말씀도 안 해주시는 거 있죠.”
발렌틴은 대답 없이 아드리아나의 머리카락만 만지작거렸다.
“…당신을 예뻐하시던가요?”
조용히 묻자 그가 ‘음….’하고 미간을 좁혔다. 자신만만하게 예쁨 받을 거라고 큰소리치던 때와 다른 뜻밖의 반응에 아드리아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안 예뻐하시던가요?”
감히, 하고 싸울 기세로 버럭 목소리를 높이며 묻자, 발렌틴이 주먹을 턱에 괴고 슬픈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남작님이 그러셨다고 하면, 당신 또 말 타고 쳐들어갈 거요?”
아드리아나는 웃음이 터지려다가, 몸을 일으키고 그를 끌어안았다.
“그래야겠어요. 더 제대로 예뻐하시라고 제가 혼내드리고 올게요.”
“그러지 마, 여보. 솔직히 말해서 당신 적성은 그쪽이 아닌 것 같아.”
그가 아드리아나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로 중얼거렸다. 아드리아나는 그를 꼭 끌어안고서 보드라운 머리카락을 헤집다가, 입술을 쪽쪽 눌러가며 실컷 애정 공세를 했다. 그러다가는 가만히 뺨을 기대고 생각에 잠겼다.
버클리는 순순히 주임직을 내놓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머니의 말마따나 ‘양심이 있다면’이 전제였으니까.
그가 있는 땅에 발들이고 싶지 않다. 진창이 있는 곳에, 진창을 밟고 들어갔던 자신의 오물을, 남편에게 묻히고 싶지 않았다.
“…발렌틴, 당신께 부탁드리고 싶은 일이 있어요.”
그의 손가락에 입을 맞추며 조그맣게 말하자, 그는 망설이는 기색 없이 다정하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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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건 좋은데 보여주는 건 부끄럽다는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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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올림 후수정하겠습니다.ㅜ0ㅜ 읽어주시고 흔적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버클리 챕터(?)가 울화판인데 답답이 여주를 격려해주셔서 뭉클했던...아니 남주 격려가 더 많았나..?
좋은 밤 되세요.u///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