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보다 아름다운-90화 (90/140)

00090  지친 날의 유혹  =========================================================================

‘…어떻게 이렇게 빨리 오셨을까. 테스카에서 새를 타고 날아온다고 해도 이보다 빨리 올 수 없을 텐데. 엘레나는 어디에 가서 이분을 데려온 거지? 이제 이이도 다 알아버리셨을 거야. 내 말을 들으셨을 테니…. 그런데 버클리의 이름은 어떻게 아셨을까? 그래, 일하는 부인이 사제들의 새 명단을 교체해놓았었지. 벌써 그걸 보시고 나서 나를 데리러 오신 걸까. 얼마나 마음이 상하셨을까. 그래도 내가 잘못한 게 아니라고 말해주셨으니까, 아마 이이는….’

아드리아나는 발렌틴의 목을 안고서 아픈 눈을 깜박이며 멍하니 생각하다가, 얼마 못 가서 의식을 놓았다.

*

꿈속에서 눈을 바라보았다.

고요한 어둠 속에서, 아드리아나는 작은 침대 위에 누워 밤하늘에 날리는 흰 눈을 바라보았다.

꿈. 새하얀 눈. 아무도 짓밟지 않은 이시스 중턱 벌판의 눈부시게 새하얀 아름다운 눈. 아드리아나의 꿈속의 이상향이자 또 하나의 고향.

‘버클리는 심판을 받게 될 거야.’

아드리아나는 버클리를 몰락시키고 저주하고 싶었던 어제 그 순간으로 되돌아갔다. 타오르는 시커먼 증오심에 휩싸여, 자신의 삶을 흙발로 더럽혀놓고 승리자처럼 웃고 있는 그자를 진창으로 밀어 넣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검고 끈적끈적한 구정물이 늪처럼 버클리를 서서히 집어삼키고 그의 숨구멍으로 흘러들어갔다. 그가 흔적 없이 삼켜지는 것을 바라보며 아드리아나는 가슴 속의 분노를 남김없이 태워버리려 했다. 그러는 동안 버클리를 집어삼킨 구정물이 아드리아나의 새하얀 드레스 자락을 검게 물들였고, 발버둥 치던 악마의 흙발자국이 더해졌다.

마침내 그가 보이지 않게 되었다. 버클리의 아내는 남편을 잃었다. 버클리의 부모도 아들을 잃었다.

아드리아나는 진흙투성이로 서 있었다.

그가 사라진 것에 잠깐은 후련했지만, ‘너도 함께 추잡한 짓을 즐긴 잘못이 있으면서 그자만 파멸시키는 게 공평하단 말이냐’하고 외치는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듯했다.

그 후 아드리아나는 버클리와 함께 진창으로 떨어지는 자신을 보았다. 암흑뿐인 끝없는 수렁으로, 어디선가 살을 에는 시린 비바람이 몰아쳐 들어오고 있었다.

‘무서워….’

여보.

아드리아나는 발렌틴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그의 목소리, 그의 손길, 그의 품….

그리고 그의 마음.

그것을 잃는다는 것은, 모든 것을 잃음을 의미했다. 춥고 어두운 수렁보다도, 그를 잃게 된다는 사실이 더욱 두려웠다. 그의 마음을 다치게 하는 것은 더더욱 두려웠다.

‘나는 그이의 아내로 살기에는, 그와 함께 이시스의 눈을 밟기에는, 이미 너무 더럽혀져버린 게 아닐까.’

가슴속이 새카맸다. 분노와 아픔과 자책감과 또 뭔지 모를 것들로 새카맣게 타버린 것만 같았다.

*

아드리아나는 소리 내어 울면서 깨어났다.

주변은 한밤중인 듯 캄캄했다. 남편은 곁에 없었고 다른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혼자 덩그러니 남겨졌다는 사실이 사무치게 두려워져서, 아드리아나는 꿈의 연장 속에서 깨어난 기분을 느끼며 몸을 웅크렸다.

“끄응.”

그때 근처에서 강아지가 낑낑대는 소리가 들렸다.

아드리아나는 감았던 눈을 뜨고 몸을 일으키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침대 옆에서 환히 빛나는 두 눈동자가 보였다. 그의 새하얀 털이 응접실에서 새어 들어오는 희미한 빛을 반사해, 어렴풋이 형체를 알아볼 수 있게 했다.

“로빈…?”

로빈이 대답하듯 멍! 하고 작게 한 번 짖었다.

“어떻게 들어왔어?”

아드리아나는 로빈이 움직이는 대로 길을 더듬어서 불을 켜는 스위치를 찾았다. 눈꺼풀이 무겁고 잘 들어 올려지지 않아서 시야가 더 어둡게 느껴지는 듯했다.

불을 켜자, 로빈과 둘뿐인 방 안의 풍경이 보였다.

자신의 방이 아니라, 남편의 방이었다.

아드리아나는 저도 모르게 다시 울 것 같은 미소를 지었다.

‘그이가 나를 자기 침대에서 재웠나 봐.’

창가로 돌아가 커튼을 열어보자, 파란 아침이 밝아오는 정원 풍경이 보였다.

“네 주인은 어디 가셨니?”

아드리아나가 로빈에게 말하며 창가에서 물러났다. 기우뚱하며 침대 옆의 사이드 테이블을 짚었다가, 그 위에 쪽지가 하나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사랑하는 여보. 내가 로빈을 목욕시켰어. 당신을 지키라고 여기 두고 갈게. 오늘은 누구랑 결투하러 가지 말고 우리 집에서 나를 기다려 줘.

소리 없이 웃음이 새어나왔다.

“이것 봐, 로빈. 사랑하는 여보래.”

아드리아나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그가 곧잘 쓰는 말이었다. 직접 고백하며 말할 때가 아니라면.

과연 아드리아나의 앞에 대고 ‘사랑해’라고 말할 줄은 아는지, 이 말이 무슨 뜻인지는 알고 쓰고 있는지 의심이 갈 정도인데도, 그에게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이토록 행복해졌다.

“어디, 그이가 얼마나 목욕을 잘 시켜줬는지 보자.”

아드리아나는 침대에 걸터앉아서, 부은 눈으로 코를 훌쩍이며 로빈의 앞발을 들게 했다. 로빈은 침대 앞에 점잖게 앉아서 한쪽 앞발을 보여주었다.

“하하하, 발바닥이 분홍색으로 변했네. 아기 같아.”

아드리아나는 로빈을 끌어안고 웃다가 이내 조용해져서, 한참을 그대로 미소 짓고 있었다.

“일하러 가시는데 배웅도 못 해드렸다, 그치. 넌 인사드렸니?”

그를 얻고 이렇게만 살아도 넘치게 행복하다고 생각했는데. 버클리나 아버지를 미워하며 그 미움으로 남편에게 상처를 줘서는 안 되었다. 어제 자신을 데리러 왔던 때의 발렌틴은 얼마나 아픈 얼굴을 하고 있었던가.

‘버클리를 벌하는 것보다, 발렌틴을 상처주지 않는 일이 더 중요해.’

아드리아나는 그와 상의도 없이 충동적으로 일을 벌인 자신을 탓하며 소매로 눈가를 훔쳤다. 자신의 행동 때문에 그의 명예가 실추되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깜깜했다.

‘어쩌다 나를 만나셔서….’

흠 없는 완벽한 신붓감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열일곱 아무것도 모르던 그때로 돌아가서 버클리가 아니라 발렌틴을 만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부질없는 안타까움에 사로잡혀 한숨이 흘러나왔다.

이윽고 엘레나가 식사를 하라고 부르러 올라왔다.

아드리아나는 그녀의 허락을 받고 로빈을 데려가서 바닥에 밥그릇을 놓아주고, 자신은 식탁 위에서 식사를 했다.

오늘은 발렌틴의 당부가 아니었어도 외출할 기분이 들지 않아서, 정원을 산책하고 로빈과 놀아주었다. 오전 내내 반쯤 멍한 상태로 그렇게 있다가 점심을 먹고 나서는 또 잠깐 산책을 하고, 몹시 피곤해져서 낮잠을 자고, 일어나서 잠깐 첼로를 켜고….

리노아스에서 살던 그때처럼 아무도 만나지 않고 집안에서만 하루를 보냈다. 마치 어제까지의 생활이었던 것처럼 편했다. 아드리아나는 그때도 부족함을 몰랐고, 바깥세상을 알게 된 지금도 그랬다. 이런 날이 계속 이어진다고 해도, 아마 자신은 견딜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이한테 어떻게 사과하지….’

마음이 많이 무거울 텐데도 강아지를 목욕시켜놓고 쪽지를 주고 갔다. 직접 그의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듣고 그를 만져보며, 그의 진짜 기분이 어떤지 조금이나마 느끼고 싶었다.

발렌틴은 5시가 조금 넘어서 돌아왔다.

아드리아나가 로빈을 데리고 함께 마중 나가자, 그가 둘을 보고서 기쁜 듯 웃었다.

“여보….”

아드리아나도 조심스럽게 미소를 떠올리며 그에게 다가갔다.

“다녀오셨-.”

발렌틴이 인사도 다 듣지 않고 와락 허리를 안으며 입을 맞췄다. 곁에 서 있던 집사에게 부끄러워져, 아드리아나는 얼굴을 붉히며 어깨를 움츠렸다. 발렌틴은 입술을 깊게 꾸욱 눌렀다가 잠시 후에 고개를 들었다.

“잘 잤소?”

아드리아나는 그가 놀리는 것 같아서 입술을 오므린 채 겸연쩍게 그를 올려다보았다.

“내 편지 봤어?”

“네.”

아드리아나는 쪽지의 내용을 생각하며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 배고파, 여보. 얼른 씻고 올게, 기다려요.”

“네.”

아드리아나는 다시금 고개를 끄덕이고 수줍게 미소 지었다. 그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식사를 하게 해주고 조금 쉬게 해준 다음에 하는 게 좋을 터였다.

“나 목욕 잘 시켰지?”

식사 자리에서, 발렌틴이 으쓱해하는 투로 말했다.

아드리아나는 웃으며 그렇다고 칭찬해주었다.

“피곤하셨을 텐데, 언제 로빈 목욕까지 시키셨어요?”

사실 하인들을 시킬 만한 일이었고, 그가 어떤 경로로 움직였는지는 몰라도 리노아스까지 다녀왔으니 다 큰 강아지 목욕까지 시키기는 많이 피곤했으리라는 염려가 되었다.

발렌틴은 별일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어젯밤에. 당신은 일찍 잠들었고 나 혼자 심심해서 그랬소.”

아드리아나는 그의 말에 웃어주면서도, 가만히 쉴 수 없을 만큼 그의 머릿속이 복잡했던 건 아닐까, 잠이 오지 않거나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던 건 아닐까, 가슴이 아파졌다.

접시가 비었을 무렵에 그가 말을 꺼냈다.

“…난 당신이 아버지랑 싸우러 간 줄 알고 기다렸는데.”

“죄송해요, 여보. 아버지 말씀을 듣다보니 속상한 얘기가 있어서….”

이제와 생각하면 버클리 같은 자는 신경도 쓰지 말고 무시할 걸 그랬다. 아버지의 말도 마찬가지였다. 단 두 사람만 무시하면 되었을 일을, 큰 소동을 부리고 온 마을에 다 알려질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하지만 억울하고 서러운 생각이 지금도 마음을 괴롭히고 있었다.

“그자를 나가라고 하려고….”

아드리아나는 ‘그자’라고 입에 담는 것만으로도 울먹여져서 뒷말을 잇지 못했다. 숨을 들이켜며 간신히 울음을 삼키고, 천천히 물을 마셨다.

발렌틴이 애틋하게 보이는 미소를 띤 얼굴로 바라보다가, 아드리아나를 부축해서 2층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그는 술을 좋아하지 않았어도 평소 저녁 식사 후에 와인을 한 잔정도 마시는 일은 자주 있었는데, 오늘은 술을 입에 대지 않고 그 대신 따뜻한 차를 마셨다. 아드리아나가 사온 것을 먹어보고 싶다고 해서, 아드리아나는 기뻐하며 자신이 구해둔 허브차를 내주었다.

2층 발코니의 긴 의자 앞에 작은 테이블이 놓였다.

“우리 마나님이 그렇게 용맹한 여장부인줄은 미처 몰랐소. 오언이 그러는데 당신 승마실력이 아주 거칠고 멋지다더군.”

그의 말에 아드리아나가 부끄러워하며 웃자, 그가 작게 물었다.

“몇 대나 때려줬어?”

“못 때렸어요. 닿는 게 싫어서요.”

“저런. 봐줬군.”

발렌틴의 미소가 만족감을 띠며 한층 밝아졌다.

“무릎 꿇게 해주겠다고 뛰쳐나갔는데… 저만 바보 같이 엎드려서 통곡하고 끝났어요.”

아드리아나는 속상해서 의기소침하게 말했지만, 발렌틴은 소리 내서 웃었다. 아드리아나가 그에게 원망하는 눈길을 보내며 말을 이었다.

“세상이 무너진 것 같았어요. 어제 일을 생각하면 너무나 창피스럽고, 당신께 너무나 죄송하고….”

“오드리.”

발렌틴이 아드리아나의 두 다리를 모아서 들어 올리더니, 자신의 허벅지 위에다 곱게 걸쳐놓았다. 그러고는 팔로 아드리아나의 허리를 감아서 들고 허벅지 사이로 옮겨 앉혔다.

“웃어서 미안하오. 바보 같지는 않았어. 우리 장수님의 첫 출전을 본 소감을 지금 생각하니까, 오도카니 앉아 있던 뒷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그는 가슴 아파하는 것 같기도 하고, 우스워하는 것 같기도 한 표정을 했다. 아드리아나가 그때의 기억에 입꼬리를 내리며 삐죽이자, 그가 얼른 아드리아나의 두 뺨을 감싸고 튀어나온 입술을 삼켰다.

“울지 마.”

그가 다정하게 말하며 아드리아나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당신이 주저앉아 우는 걸 눈앞에서 봤을 땐 가슴이 터질 것 같았어. 당신을 울린 자를 그 자리에서 죽여 버리고 싶었어.”

아드리아나는 말없이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그의 셔츠 허리를 꼭 쥐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그가 말이 없기에, 먼저 입을 열었다.

“…제가 안 미우세요?”

“미워하면 어떻게 해. 당신에게는 나밖에 없잖소.”

아드리아나는 정말 그렇다고 생각하며, 손을 옮겨서 그의 어깨를 붙들었다. 발렌틴이 등을 쓰다듬어주며 나직이 덧붙였다.

“내게도 그래.”

결국 주책없이 눈물이 줄줄 새어나왔다. 발렌틴이 난처해하며 달랬다.

“울지 마, 여보. 우리 부인이 싸움에 지더니 울보가 되셨네.”

아까부터 그가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웃고 있어서, 아드리아나는 어찌 해야 좋을지 몰랐다. 분위기를 무겁게 만들면서 울적한 이야기를 늘어놓기가 어려웠다. 그는 어차피 다 알고 있고, 아드리아나의 뒤늦은 사과가 뭔가를 바꿔놓을 것 같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냥 흘려 넘겨도 될 정도로 가벼운 일인가 의심이 들었다.

발렌틴이 등을 토닥여주며 말했다.

“싫은 생각하지 말고 잊어요. 그자가 뜻을 이루는 일은 없을 테니.”

아드리아나가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편안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영지법은 몰라도, 교회법으로는 그자가 지금 위치에 남아 있기는 어려울 거야. 걱정하지 마. 적어도 리노아스에서 그자를 보게 될 일은 없을 테니까.”

“교회에서 제 말을 믿을까요? 그자는 부인했어요. 증인이라고는 전부 제 하인들뿐이에요.”

당시 아드리아나와 동행했던 리디라는 하녀가 있었고, 어제 버클리의 자백을 들었던 오언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아드리아나 쪽 하인이었고, 애초에 하인 신분으로는 증언의 가치를 높게 인정받지 못했다. 증인의 신분과 평판도 중요했기 때문이다.

“당신이 진술했잖아. 당신의 신분도 무시할 수 없을 거야. 그리고….”

그가 말하며 아드리아나를 품안에 넣고 안았다.

“당신 가족도 있고, 나도 있고, 도와줄 사람은 많으니까 혼자 앓지 마.”

“소문이 나면 어쩌지요, 여보? 고개 들고 살 수 없게 될 거예요. 저 때문에 당신까지 창피를 당하시게 되면…. 경솔하게 어리석은 연애를 한 헤픈 여자와 결혼하셨다고 소문이 날까 봐 무서워요.”

“그런 헛소문 같은 건 상관 없어. 하지만 당신이 힘들어질 것 같으면 같이 도망가 줄게. 내 고향에 돌아가서 다시 농사를 짓고 살면 되지.”

“로아타르에서요?”

“나는 농사를 지을테니, 당신은 제수씨랑 말을 타고 가서 토끼를 잡아다 줘.”

아드리아나는 발렌틴의 남동생 스테판과 그를 닮은 아내를 떠올리며 미소 지었다. 한 번 만났을 뿐인 사람들인데도 어쩐지 조금 그리워졌다.

“그것도 좋을 것 같아요.”

이미 한 번 리노아스에서 도망쳤고, 또다시 아이넨을 떠나야하게 되는 일은 없길 바랐지만, 남편의 고향에서의 삶만을 상상하면 그 자체로는 나쁘지 않았다. 발렌틴이 마냥 웃고 있는데, 자신이 싫다고 울상 짓는 얼굴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발렌틴이 등을 토닥이며 속삭였다.

“도망쳐야 할 일 없을 거야. 여보.”

“네.”

아드리아나는 그의 말에 안심이 되는 것을 느끼며 그를 꼭 끌어안았다.

멍해져서 잠이 들려던 순간에, 발렌틴이 말했다.

“참, 리노아스에는 내가 연락해 뒀어. 당신 아직 전화 안 했지?”

그 말에 잠이 확 달아나, 아드리아나가 고개를 들었다.

“…당신이 전화를 하셨어요?”

발렌틴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라고 통화하셨어요?”

“글쎄.”

그가 의뭉스럽게 미소 지으며 눈을 피했다.

“여보.”

“왜. 뭐가 걱정되는데?”

“그런 건 없지만….”

당연히 바르테즈가 전화를 받았을 거고, 발렌틴이 어머니나 아버지를 바꿔달라고 하지는 않았을 거다. 발렌틴이 가끔 엉뚱한 일을 하는 걸 보면 100% 확신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얼굴도 못 본 장인장모를 전화기 앞으로 불러내는 무례를 저지를 사람은 아니다.

‘바르테즈를 통해서 내 안부를 전해주셨겠지?’

멍하니 눈을 깜박이고 있는 아드리아나를 보고, 그는 우스운 듯 한쪽 입 끝을 올리고 있다가 나직이 말을 이었다.

“어젯밤에 무서운 꿈을 꾸는 듯하기에, 내가 몇 번이나 깨우고 뽀뽀해줬는데 기억 나?”

“그러셨어요? 저 기억 안 나는데… 아까워요.”

“그럼 다시 해줄게.”

그가 다정하게 끌어안아 주며, 아드리아나의 이마와 뺨에 입을 맞춰주었다. 아드리아나는 몸이 기분 좋게 따끈따끈해져 있는 것을 느끼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작게 쪽쪽, 입을 맞추는 소리가 이어졌다.

“…기분 좀 나아졌소?”

“네.”

“나와 자고 싶을 정도로 나아졌소?”

그의 말에 작게 웃다가, 아드리아나가 얼굴을 붉히며 그의 가슴 위에 한 손을 올려놓았다. 그의 단단한 몸을 천천히 더듬으며 애무하다가, 허벅지 위에 이르러 손끝을 세우고 멈추었다.

“어젯밤에… 제 곁에서 저를 안고 주무셨나요?”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드리아나는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을 느끼며 그의 뺨에 살포시 입술을 눌렀다. 그가 했던 것처럼 작게 쪽 소리를 내며 입을 맞춰주고, 그의 허벅지 위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러다가 의자 위로 내려와서 무릎을 꿇고 앉았다.

“전에 약속하셨던 거, 지금 보고 싶어요, 여보.”

수줍게 속삭이며, 그의 바지 앞을 풀었다.

============================ 작품 후기 ============================

큽...하루만 쉬고 오겠습니다.ㅜㅜ 넘 급하게 써서 되도록 내일 수정도 한 번 할게요.

선추코평쿠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뿐 하루 되세용..S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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