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89 폭발 =========================================================================
엘레나는 잠시 말없이 아드리아나의 곁을 달리다가, 돌연 방향을 틀어서 말머리를 성으로 향하며 외쳤다.
“오언, 마님을 부탁해요!”
아드리아나는 엘레나가 왜 성으로 돌아갔는지 생각해볼 겨를도 없었다. 시선을 똑바로 향한 길 위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 없었다.
“마님, 제가 함께 갈 테니 속도를 내지 마십시오.”
오언이 다급하게 말하기에, 아드리아나는 그제야 자신이 위험하게 달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속도를 늦추었다.
얼마 후 교회 앞에서 멈추자, 오언이 먼저 말에서 내려 아드리아나를 도와주었다. 아드리아나는 그를 데리고 아까 찾아갔었던 사무실로 향했다.
버클리는 아직 그곳에 있었다. 사무실 일을 보는 부인, 마을 사람 몇 명이 그와 함께 둘러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아드리아나는 가슴을 들먹이며 그를 노려보았다.
짐짓 당황하는 듯하면서도 시선을 피하며 표정관리를 하려는 그 행태가 어머니에게 자신들의 탈선을 들킬 뻔했던 그때와도 같아 보였다.
이 순간이 구역질이 날 만큼 끔찍하게 느껴졌다. 그에게 모함 받은 일로 인한 분노만큼이나, 그의 얼굴을 마주함으로써 느껴야 하는 혐오감도 컸다. 게다가 사실은 그가 아버지에게 한 말을 순전한 모함이라고 해도 되는지조차 확실치 않았지만, 최소한 자신이 버클리에게 보상해야 할 죄를 지은 적은 없다고, 그에 대한 누명만은 벗고 싶었다.
“버클리. 내 아버지에게 내가 당신을 유혹했다고 말했어요?”
아드리아나가 신경질적으로 그의 이름을 부르고 나서,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순간, 사무실 안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한 사람을 향해 집중되었다. 그 중심에 있는 버클리의 표정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졌다. 영문을 모르고 쫓아온 오언 역시도 당황해하며 아드리아나를 쳐다보았다.
버클리가 몸을 일으키며 사람들 무리에서 빠져나왔다.
“무슨 말씀이신지요, 부인.”
그는 위선적인 표정을 가장하며 문 앞으로 다가왔다.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떼기로 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비겁했던 본질을 조금도 고치지 못한 듯, 마치 정신이 이상한 여자를 대하는 것 같은 과장된 황당함이 그의 표정에 드러나 있었다.
“무슨 일을 겪고 오신지는 몰라도 몹시 흥분하셨군요. 뭔가 단단히 오해를 하고 오신 것 같은데, 여긴 상담중인 분들께 방해가 되니 밖에서 이야기하시죠.”
아드리아나는 그의 그림자가 자신의 몸에 닿는 것에 기겁하며 허겁지겁 뒷걸음질 치다가, 얼른 몸을 돌려서 밖으로 나갔다.
좁고 긴 복도를 지나자 뒤뜰이 나왔다. 그곳에 보는 눈이 없음을 확인하고, 버클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
“…대체 이게 무슨 짓입니까. 여긴 신성한 교회입니다.”
훈계하는 그의 말에 기가 막혀서, 아드리아나는 헛웃음을 흘리다가 차갑게 그를 쏘아보았다. 입을 움직이면 턱이 떨렸지만, 약해보이지 않으려고 더욱 사나운 목소리를 냈다.
“파렴치한 같으니…. 지금 누구 앞에서 잡아떼는 건가요? 내게 사과해요. 내 아버지 외에 또 누구에게 거짓말을 했죠? 일을 바로 잡지 않는다면 당신을 고발하겠어요.”
“아드리아나.”
“내 이름 부르지 마세요!”
그에게 이름을 불리는 것도, 그에게 얼굴을 보이고 있는 것도, 너무나 불쾌하고 역겨웠다. 빽 소리를 지르자, 버클리가 진저리를 내며 답답하다는 듯 말을 꺼냈다.
“이제 와서 무슨 옛날 얘기를 꺼내려고 오셨습니까?”
“옛날 얘기라고…? 날 음탕한 여자로 매도해서 인생을 망칠 뻔 하게 만들어 놓고 옛날 얘기라고…?”
“전 그런 소문은 낸 적이 없습니다. 대체 뭘 바라고 여기에 온 겁니까?”
버클리는 약간의 초조함을 드러냈지만, 자신이 우위에 있다고 믿는 사람처럼 거만하게 말했다. 그가 입은 투박한 검은색 옷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태도였다.
아드리아나는 계속 버클리를 보고 있다가는, 그가 바라는 대로 정신이 이상한 여자가 될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4년 전 그날 그대로였다. 조금도 뉘우치거나 변한 기미 없이 옷만 바꿔 입었을 뿐인 버클리를 보고 있자니, 제정신으로 서 있기가 어려웠다. 그가 이상한 건지 아드리아나 자신이 이상한 건지 헷갈렸다.
분노가 가슴 속을 온통 오염시키고 곧 아드리아나 자신 자체를 망가뜨리며 폭발해버릴 듯 끓어오르는데도, 화를 풀어낼 길이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당신 같은 자가 성직자가 될 수가 있죠?”
“부인이 절 어떻게 생각하시든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본인은 흠결이 없다고 생각합니까? 인간은 모두 크게 다르지 않은 나약한 존재이고 심판은 신께서 하실 겁니다.”
그의 말에 웃음이 새어나왔다. 당당하게 말하는 품새가 마치 자기는 당연히 신의 심판을 피해갈 사람이라고 믿는 듯 보여서 조소를 참기 어려웠다.
버클리는 건물 안쪽을 흘끗 확인보더니, 다시 말투를 바꾸어 이야기했다.
“일단 좀 진정해. 그렇게 감정적으로 흥분해서는 너와 이야기할 수 없어.”
그는 깊은 한숨을 쉬고 나서 말을 이었다.
“그래, 너한테는 내가 잘못한 것도 있어. 젊고 철없던 시절에 유혹에 빠졌던 잘못이었어. 오래되어서 기억은 잘 안 나지만, 남작님께도 그렇게 말씀드렸을 거야. 네가 날 유혹했다고 말한 적은 없어.”
그는 억울하다는 듯 뻔뻔하게 말끝을 올렸다. 그리고 급하게 말을 이었다.
“벌써 4년이나 지났다. 이제 그만 잊자. 서로 좋을 것도 없잖아. 넌 모르겠지만, 나도 그때 많은 걸 잃었어. 그 뒤로 오랫동안 참회하면서 살았다고. 이제 와서-.”
“참회라고? 이 쓰레기 같은….”
아드리아나가 튀어나갈 듯 몸을 내밀자, 오언이 붙잡았다. 아드리아나는 붙잡힌 채로 소리를 질렀다.
“똑바로 무릎을 꿇고 사과해! 내 아버지에게 가서 다시 말해! 널 유혹한 건 내가 아니라 악마 같은 너 자신이었다고 말이야!”
“아드리아나.”
버클리가 계속 안을 눈치 보며, 꾸짖 듯 불렀다. 그가 이름을 입에 올림에 거의 발작적으로 반응하며 소스라치는 아드리아나를 보며, 그가 있는 대로 짜증스러운 얼굴을 하며 입을 열었다.
“대체 왜 그래? 넌 딱 봐도 부자한테 시집가서 잘 살고 있는 거 같은데, 내가 더 잃어야겠어? 내가 파멸해버려야 속이 시원하겠어? 남녀가 서로 좋아해서 사귀다가 안 맞으면 헤어질 수도 있는 거지, 그게 이럴 정도의 죄라는 거야?”
조금만, 조금만 하면서 몸을 만지던 그의 음흉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의 성적인 호기심을 자신에 대한 관심이라고 생각했던 어리석은 여자애도. 버클리는 사랑한다고 말했었다. 사랑하지 않는다면 만지지 못하게 하겠다고, 아드리아나가 스스로 힌트를 줬던 까닭이었다.
지금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처럼 선명했다.
결혼하고 책임질 생각이지만, 당장은 그럴 수 없다던 그.
바지를 내리고 흉측한 물건을 얼굴 앞에 들이대다가 아드리아나가 거부하자 강제로 몸을 짓누르며 추잡한 욕망을 채우려던 그.
“…더러운 악마 같은 게.”
아드리아나가 뜨거운 눈물을 쏟아내며 뇌까리자, 버클리의 안색이 변했다. 오언이 ‘마님’하고 말리려 들었지만, 이대로 돌아가서 묻어 버리고 말면, 과거의 오명에 덧붙여져 또 어떤 소문이 퍼질지 모른다고 초조해졌다.
“네 죄까지 다 내게 씌워놓고 너 혼자 속죄했다고?”
“제발 그만해, 아드리아나. 우리 둘 다 잘못이 있었잖아. 이젠 서로 지켜야 할 가정이 있는 몸인데 이렇게까지 해야겠어?”
버클리가 거의 속삭이듯 목소리를 낮춰서 말했다.
“서로…? 결혼까지 했다고?”
속죄 어쩌고 떠들더니, 욕심내서 남들이 가지는 건 다 챙기고 있는 남자라고 비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드리아나가 멍하게 서서 답답한 마음으로 흐느끼고 있는 동안, 뒤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버클리는 건물 안을 흘깃 보고는 오언을 향해 위엄있게 말했다.
“부인을 잘 모시고 돌아가십시오. 교회보다는 댁에서 안정을 취하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등 뒤로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아마도 아드리아나가 나중에 다시 이곳에 돌아와 보면, 저 수군거림은 아드리아나 자신을 향한 오도로 변해 있을 터였다.
버클리를 고발한다면 어떤 죄목으로 해야 할까. 그는 아주 파렴치한 사기꾼이다. 성직자가 되어서는 안 되는 음험한 남자다. 4년 동안 뉘우치고 참회한 흔적은 어디에서도 느껴지지 않았다.
고발은 어떻게 해야 하지? 증거는?
그걸 먼저 생각한 후에 그를 만났어야 했는데.
“내 여주인께 다시 사과를 하시오, 사제.”
오언의 목소리였다.
아드리아나는 곁을 돌아보았다가, 버클리의 팔목을 잡고 있는 오언의 모습을 보았다. 그는 거구에 어울리는 굵고 낮은 목소리로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사과할 일이 있다면 화를 낼 게 아니라 공손하게 해야 하는 것이오. 이대로는 내 여주인께서 허튼 시비를 거셨다고 오해를 받겠소이다.”
버클리의 손보다 2배쯤 커보이는 큼지막한 손이 그의 팔을 쥐고 놓아주지 않았다. 버클리는 정색하고 팔을 뿌리치려 했다.
“이거 놓으시오. 이게 무슨 짓입니까? 거기 누구 없나!”
버클리의 외침에, 사람들 곁에서 상황이 돌아가는 것을 살피고 있던 하인들이 얼른 뛰쳐나왔다.
“이, 이게 무슨 행패요. 성직자를 위협하다니!”
하인들은 두려워하면서도 불의를 당하고 있다고 생각한 듯 오언에게 맞섰다. 그러나 감히 그에게 손대지는 못하고, 아드리아나를 향해서 그만 돌아가 달라고 독촉했다.
관계도 없는 이들에게까지 수치를 얻으며 내쫓길 위기에 놓이자, 아드리아나는 눈앞이 하얘져서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오언을 바라보았다.
일이 버클리에게 유리해졌다고 느껴졌다. 아버지가 자신보다 그의 말을 믿었듯, 사람들도 그러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을 폭로하기 위해 감내했던 수치심보다 더 큰 오욕에 발목을 잡히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괜한 짓을 했다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어떻게 하면 이 곤경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버클리를 만난 게 실수였다. 더러움을 짓밟아 없애려 할 것이 아니라 멀리 피했어야 할 일이다. 그의 얼굴이 지워지지 않을 정도로 눈에 박혀버렸고, 그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맴돌아 구역감이 치솟았다. 제대로 된 생각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부탁드립니다, 부인. 점잖으신 부인께서 어찌 이런 난동을 부리신단 말입니까.”
하인 하나가 말하며 아드리아나를 밖으로 이끌려고 다가왔다.
“마님께 손대지 마시오.”
오언이 험악하게 경고하며 버클리의 팔을 쥔 채로 움직여서, 즉각 가로막고 섰다.
아드리아나는 현기증이 일고 숨이 가빠지는 것을 느꼈다. 할 줄도 모르는 싸움을 하겠다고 덤벼든 자신이 나빴다.
버클리는 얼마든지 다시 자신을 매도하고 빠져나가리라. 이대로 쫓겨나면 오늘 일은 아드리아나와 그 보호자, 남편의 수치로 남게 되리라.
“…어서 사과하세요. 그러면 용서해드리겠어요.”
아드리아나는 덜덜 떨리는 팔을 감싼 채로, 두려움을 내비치지 않으려 버클리를 똑바로 응시하며 목소리를 또렷하게 쥐어짜냈다.
“내게 음행을 가르치고 강요한 일들을 사과하고, 리노아스에서 떠나세요.”
사람들 사이에서 헉, 하고 크게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어디선가 조그맣게 ‘혹시 저 부인은 남작님 댁 영애가 아니신가?’하는 말이 터져 나왔다.
큰 소란으로 번질 분위기가 되자, 하인들이 그들을 떠밀며 자리를 비키게 했다.
아드리아나는 다리가 떨려서 곧 쓰러질 것 같았지만, 오언을 가볍게 짚어 의지하며 버클리의 답을 재촉했다.
“사람들 앞에서 사과하면 용서해주겠어요. 날 겁탈하려 했다고 고발하면 결과가 어떻게 되든 당신 부인도 사실을 알게 될 거예요.”
가족을 끌어들이는 건 교활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버클리를 위협할 수 있는 다른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의 안색이 확 변한 것으로 보아,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효과는 있었지만, 그는 원하는 결과를 보여주지는 않았다.
“네가 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마음대로 해 봐. 날 무슨 죄로 고발하겠다는 건지, 사귈 때의 일을 가지고 이제 와서 그렇게 추하게 구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겠어.”
그는 버틸 생각인 듯했고, 아드리아나에게는 싸움을 끌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오언도 갈등하는 눈빛으로 버클리의 팔을 쥐고 서 있을 뿐이었다.
“왜, 흑…. 왜 내게 사과하지 않는 거야.”
아드리아나는 서 있을 힘마저 잃어버리고 오언을 붙들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버클리 하나도 이기지 못하는 무력한 자신에게도, 버클리 같은 자가 기혼 성직자로 떵떵거리고 살 부조리에도 화가 나고 북받쳐서, 흙으로 더러워진 치맛자락을 움켜쥐고 흐느꼈다.
“나는 그만두라고 울면서 애원 했어. 그런데도 너는 나를 힘으로 깔아뭉갰어. 얼린이 아니었다면 나는…. 그런데도 네가 벌 받을 이유가 없다고?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여기에 버티고 있겠다고?”
건물 쪽에서 사람들이 다시 나오는 기척이 들렸지만, 아드리아나는 하염없이 바닥만 쳐다보며 앉아 있었다. 난처해하는 교회 하인들의 소리가 가까워져 오자, 이제 정말로 쫓겨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비참해졌다.
“…일으켜 줘, 오언.”
아드리아나는 마른 입술을 떼며 말했다. 내 발로 나가겠다고 멍한 얼굴로 오언을 찾으며 팔을 허우적거렸다. 그러다 휘청하고 앞으로 쓰러질 뻔한 순간, 뒤에서 팔이 뻗어져 나와 부축했다.
그런데 자신을 부축한 그 팔이, 경호원의 것치고는 너무도 거리낌 없는 친밀한 손길로 어깨를 쓰다듬으며 안으려 하기에, 아드리아나는 놀라 움츠리며 고개를 들었다.
“마님….”
울먹이는 엘레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드리아나의 눈앞에 보인 것은 남편의 얼굴이었다.
“일어나요, 여보. 집에 갑시다.”
발렌틴이 말했다.
평온을 유지하려 애쓰고 있었지만, 그의 표정은 희미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아드리아나는 그의 눈에 엿보이는 분노와 고통을 알아차리고 두려움에 휩싸였다.
“여보, 잘못했어요….”
젖은 뺨 위로 눈물이 다시금 왈칵 흘러내렸다.
발렌틴이 미간을 살짝 좁히며 낮게 말했다.
“바닥이 차가워.”
명백하게 서두르는 말투였다. 목소리에 감정이 실려 있지 않았다.
아드리아나는 숨이 막혀서 힘들게 흐느끼면서도 그의 화를 가라앉혀 보려고 애썼다. 그가 시키는 대로 순종하며 몸을 일으키려다가, 그만 그에게 들이받듯이 몸을 부딪쳤다.
“미, 미안해요, 여보.”
“오드리.”
발렌틴이 아드리아나의 몸을 살짝 밀어서 떼어내고, 한 손으로 뺨을 감싸며 눈을 맞췄다.
“당신 잘못 안 했어. 울지 마.”
그는 눈물을 닦아주려다 그만두고, 아드리아나의 팔을 자기 목에 두르게 하며 안아 일으켰다.
그 자리에는 교회의 하인들이 있었고, 엘레나와 오언, 그리고 버클리까지 남아 있었지만, 아드리아나는 이제 남편의 존재밖에 신경 쓸 수가 없었다.
“…나 안아 줘. 여보.”
방황하듯 남편의 안색만 살피고 있는 아드리아나에게, 발렌틴이 다정하게 말했다. 아드리아나는 얼른 그의 목을 끌어안고 어깨에 고개를 묻었다.
몇 발자국 걸어간 후에, 발렌틴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자를 놔 주게, 오언.”
그가 말했을 때에야, 아드리아나는 버클리의 존재를 다시금 의식했다.
옷자락을 터는 소리가 요란하게 나고, 버클리가 성큼성큼 건물 안으로 걸어갔다. 아드리아나는 자신의 뺨과 남편의 옷을 적시는 뜨거운 물기를 느끼며, 손에 잡히는 옷깃을 꼭 쥐었다.
“제롬 버클리… 신부.”
문득 발렌틴이 확인하듯 그의 이름을 뇌까렸다.
신부라고 불리고서는, 버클리가 마지못해 발을 멈추었다.
발렌틴이 아드리아나를 안은 채로 그의 눈을 내려다보며 곁을 지나쳤다.
“그 옷 속에 계속 숨어 계시오. 그게 가능하다면.”
============================ 작품 후기 ============================
선추코평쿠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사..사...u///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