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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보다 아름다운-86화 (86/140)

00086  폭발  =========================================================================

‘그자가 내 몫을 가지는 거야.’

생각하면 속이 뒤집힐 일이었다.

아드리아나는 과거 리노아스로 돌아가지 않기로 결정했던 때에 아버지의 유산도 함께 포기했다. 자신의 몫이 아니라고 미련 없이 잊고 살아왔다. 그런데 하필 버클리가 그 재산을 얻게 되었다는 사실은 몹시도 불편했다.

봉헌금이 거부될 턱이 있을까. 버클리가 그걸 노리고 있든 그렇지 않든, 주어지면 넙죽 받아들이고 자신의 부로 삼을 게 아닌가. 영지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여성 수도자들과 달리 남성 수도자들에게는 사유재산이 허가되며, 담당 교회에 바쳐진 봉헌금을 자기 몫으로 취득하고 마음대로 꾸릴 수도 있었다.

버클리의 재산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아드리아나의 남편에게 상속되어야 했을 재산이.

“…내 얼굴 보니까 우울해, 여보?”

발렌틴이 대뜸 물었다.

아드리아나는 그의 어깨에 기대고 있는 자신의 얼굴이 그에게 보이지 않을 줄 알았던 터라, 당황하며 몸을 일으켰다.

“보였어요?”

“보였지. 오리처럼 입이 쏙 나와 있었지.”

심각한 목소리로 설명해주고, 발렌틴이 점잖게 눈을 내리깔았다. 아드리아나는 그의 팔에 매달려서 조금 웃다가, 우울해하고 있던 이유를 가볍게 털어놓았다.

“그냥… 아직도 제 아버지는 미운데, 아버지의 재산이 예쁜 당신을 놔두고 다른 사람에게 돌아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배가 아파서요.”

“괜찮아. 난 지금도 돈이 많으니까.”

새침데기처럼 눈을 내리깐 채로 입 끝을 올리는 그를 보고 또 한 번 웃으며, 아드리아나는 가라앉았던 기분이 금세 밝아지는 것을 느꼈다.

남편과 즐거운 휴일을 보내기 위해 나들이를 나와 있는 만큼, 리노아스의 일은 그만 잊어버리자고 생각했다. 어차피 조만간 아버지와 화해하기로 마음먹었고, 그게 잘 안 된다면 아버지의 재산에 자신이 마음 쓰는 것도 흉한 욕심일 뿐이다.

곁에 소중한 사람이 있고, 분에 넘치는 행복을 누리면서 살고 있다. 더 많은 걸 바라며 행복한 시간을 망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잊어야 해. 버클리 같은 자 때문에 불행한 생각을 하는 건 1초도 아까워. 앞으로 마주치지 않고 잊어버리고 사는 편이 나아.’

아드리아나는 창문을 활짝 열어놓은 차 안을 통과해 지나가는 봄의 향기로 주의를 돌렸다. 얇고 산뜻한 봄 니트 차림으로, 재킷은 벗어놓고 곁에 앉아 있는 남편에게로 흐뭇한 시선을 보냈다가, 그의 팔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팔목 위부터 주물거리다가 팔꿈치 위를 만져보고는 이내 의심스러운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당신 팔이 뭔가 더 두꺼워지지 않았어요?”

“살쪄서 그래.”

그는 말하고 나서 씩 웃더니 쑥스러운 듯 나직이 말했다.

“벗고 있을 때는 모르더니 지금은 알겠어?”

발렌틴이 말하는 그런 때의 아드리아나는 대개 뭔가를 세밀하고 정확하게 판단할 겨를이 없는 상태였다. 아드리나아는 앞좌석을 힐끔대며 얼굴을 붉히고 있다가 슬그머니 그의 팔을 놓았다.

그는 신경 쓰지 않는 듯 자기 몸을 만져보며 말을 이었다.

“더 뚱뚱해지지는 않을게. 당신 만났을 때가 그 전보다 조금 체중이 줄어있던 때였거든. 지금 거의 원래대로 돌아온 것 같아.”

“왜요? 아프셨어요?”

“그때 이래저래 바빠서 그랬어. 결혼하고 나서는 쉬기도 많이 쉬었고 당신이 있어서 살 만하니까 나도 다른 아저씨들처럼 뚱뚱해지려나 보오.”

“뚱뚱하지 않아요. 지금 보기 좋아요.”

아드리아나가 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펜이 심각한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아직은 그렇죠. 운동을 하셔야 합니다. 예전에는 그나마 친구분들과 밖으로도 좀 다니셨는데 지금은 체력 소모가 많은 쪽은 발길을 끊고 계시잖습니까.”

“나도 나이 먹어서 힘들어.”

“혹시 저 때문인가요?”

아드리아나가 걱정하는 얼굴로 물었다. 어쩌면 남편이 여가를 보내는 시간마다 자신을 배려해서 점잖게 앉아 있거나 느긋하게 걸으며 문화생활을 즐기는 쪽을 주로 선호하게 된 까닭일지도 몰랐다. 딱 한 번, 아너슨 부부와 함께 사냥을 간 일도 있었지만, 아드리아나가 말을 잘 타지 못하는데다 체력적으로 힘들어해서 두 번째 기회가 오지 않았다.

“저는 괜찮으니 우리 많이 돌아다녀요. 저도 체력을 키울게요. 승마도 잘하고 싶고, 나중에 이시스에도 올라가야 하니까요.”

아드리아나가 의욕적으로 말했지만, 발렌틴은 동네 뒷산도 못 오르는 부인께서 이시스에 잘도 오르시겠다며 비웃었다. 아드리아나는 두고 보라고 말해놓고, 차가 서자마자 기운차게 로빈의 줄을 거머쥐고서 해변으로 뛰어갔다.

모래사장이 바다와 작은 숲 사이를 가르고 넓게 펼쳐져 있었다. 아드리아나 일행 외에도 꽃구경을 하기 위해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곳곳에 무리지어 자리를 깔아놓고 간식을 먹거나 산책을 하는 가족들도 있었다.

아드리아나가 로빈을 데리고 잔잔하게 파도치는 바다 옆을 돌아다니는 동안, 발렌틴은 느긋하게 뒤를 따라다니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인들은 다른 사람들과 멀찍이 떨어진 자리에다 챙겨온 천을 깔아 자리를 만들어놓고 작은 의자도 세웠다.

“아, 엘레나, 우리 부메랑 어디 있어?”

오언이 만들어준 나무 부메랑이 있었는데, 그걸 던지면 로빈이 곧잘 물어왔다. 아드리아나는 부메랑을 받아와서 로빈에게 던져주며 또 한참을 뛰어다녔다. 아이넨에서는 보기 어려운 품종의 덩치 큰 강아지가 새하얀 털을 휘날리며 뛰어다니니, 멀리서 호기심을 보이며 손가락질을 하는 꼬마들도 보였다.

“여보, 당신도 운동을 하셔야지요.”

아드리아나가 숨을 헐떡이며 발렌틴에게 말했다.

“지금 가려고 했소.”

막 와인이 든 잔을 입에 대려다가 내려놓고, 발렌틴이 일어나 둘 사이로 끼어들었다.

체력으로는 웨버 가의 어느 누구도 따라잡지 못할 강아지에, 그래도 아드리아나보다는 한참 위인 발렌틴이 끼고 보니 아드리아나는 둘이 도망 다니면 도저히 따라다닐 수가 없었다.

“아휴, 힘들어.”

결국 10분을 겨우겨우 버티고, 아드리아나는 숨이 끊어질 듯이 씩씩대며 자리로 가서 바닥을 짚으며 털썩 주저앉았다. 의자에 올라가 앉을 힘도 없었다. 보는 눈만 없었으면 그대로 드러눕고 싶었다.

“나 못하겠어. 조금만 쉬었다가 놀자.”

보채는 로빈을 위해 아드리아나 대신 하인들이 나서고, 발렌틴은 이내 아드리아나의 옆으로 와서 앉았다.

발갛게 상기된 뺨 위에, 그의 손등이 닿아 시원했다. 아드리아나는 숨을 헐떡이면서도 헤헤 웃으며 발렌틴을 바라보았다. 그도 미소 짓는 얼굴로 아드리아나를 바라보았다.

가슴은 터질 듯이 뛰고 있었고, 자신에게 향한 그의 눈빛은 너무나도 따뜻했다. 봄바람에 살랑거리는 머리카락 때문에 뺨이 간지러웠지만, 손을 뻗어서 그의 앞 머리카락을 먼저 정돈해주었다. 머리카락을 평소처럼 말끔하게 넘기지 않아서 바람에 흐트러지는 것도 왠지 멋있어 보인다고, 아드리아나는 속으로 생각하며 수줍게 웃었다.

“이시스를 올라가겠다고?”

발렌틴이 놀리듯, 나직이 말했다.

“언제는 당신이 업고 올라가주신다면서요.”

부끄러워하며 말하자, 그의 눈이 한껏 가늘어졌다.

그가 손을 뻗어서 아드리아나가 앉은 자리의 바로 옆을 짚었다. 그 순간, 아드리아나는 사람들이 있는 훤한 바깥에서 그가 너무 가까이 다가오는 것 같아 미소를 거두었다. 그리고 얼굴을 더욱 붉혔다.

입술이 서로 닿기 전에 멈추었다. 발렌틴은 실수를 깨달은 듯 바로 자세를 되돌렸다가, 아드리아나의 팔목을 잡으며 몸을 일으켰다.

“이리 와, 여보.”

바다 반대쪽으로 향하는 그에게 끌려가듯 따라가며, 아드리아나는 안정되어 가던 심장이 다시 거칠게 뛰는 것을 느꼈다. 눈앞은 꽃나무 대신 잎이 푸른 커다란 나무들이 이어지는 숲 방향이었다.

차에 타기 전에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바깥에서 사랑을 나누는 부부도 있다는 망측스러운 이야기, 그리고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그늘로 향하며 그에게 잡혀 있는 뜨거운 손목.

“발렌틴….”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도 않았다. 부끄럽고 가슴이 떨렸다. 또 조금 무서웠다.

발렌틴은 깊이 들어가지 않고 바로 앞에 보이는 커다란 나무 뒤 그늘에서 멈추었다. 그대로 나무 기둥을 등지고 서서 아드리아나를 품 안에 안았다.

“아….”

포옹을 했을 뿐인데도 가슴 속부터 뜨거워지며 몸이 녹아내릴 것 같았다. 아드리아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에게 끌어안긴 채로 부드럽게 팔을 어루만져졌다. 그의 등에 가만히 손바닥을 얹고 있다가, 손바닥에 닿아 있는 그의 등이 점점 의식되면서 니트 안의 피부를 만지고 싶다는 욕구가 솟아났다.

발렌틴이 아드리아나의 두 팔을 잡고 살짝 몸을 떼어냈다.

잠시 포옹을 하고 있는 동안에 그의 알몸까지 상상해버린 자신이 부끄러워서, 아드리아나는 민망해하는 얼굴로 눈을 깜박이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키스해줘.”

그가 웃음기 가득한 눈을 하고 말했다.

아드리아나는 당연히 그가 해도 되냐고 물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던 터여서, 해달라는 요구를 듣고 조금 당황했다. 하지만 곧 눈동자를 움직여서 주변을 힐끔대며 보는 이가 없는지 확인한 후, 그의 어깨를 안으며 뒤꿈치를 들어올렸다.

기다렸다는 듯 그가 곧장 몸을 숙여주었다. 아드리아나는 입술을 그의 입술 위에 지그시 누르고서, 충분히 음미하며 기다렸다가 작게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그리고 아쉬워하며 눈을 뜬 순간, 그의 손에 뒷덜미를 감싸이며 도로 끌어당겨졌다.

밖이라는 사실을 의식한 탓인지, 그는 나름대로 혀를 넣지 않고 입술만 가볍게 애무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입맞춤이 길어지면서, 아드리아나는 위기감을 느꼈다. 입술 안쪽의 젖은 살이 문질러지고 살짝 깨물리는 동안, 허리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그때 별안간 멍멍 우렁차게 짖는 강아지 소리가 들려왔다.

아드리아나는 화들짝 놀라며 남편에게서 몸을 떼었다.

발렌틴이 나무 기둥 밖으로 몸을 내밀며 해안 쪽을 보더니, 로빈이 노느라고 그런 것 같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깜짝 놀랐어요.”

아드리아나는 손으로 두 뺨을 식히고, 흐트러지지도 않은 옷차림을 매만지며 겸연쩍게 웃었다.

“조금만 여기 있다가 가자.”

그가 나무 기둥에 등을 기대며, 아드리아나의 두 손을 잡고 끌어당겼다. 아드리아나는 그의 위로 몸을 겹치고 기댔다가, 그가 조금 기다리라고 한 이유를 깨달았다.

“…괘, 괜찮으세요?”

“음. 금방 괜찮아질 거야.”

배에 닿는 존재가 심상치 않게 느껴졌지만, 그는 태평하게 말했다. 그리고 속삭였다.

“나 쓰다듬지 마, 여보.”

아드리아나가 두 손을 얌전하게 그의 가슴 앞에 웅크려 넣고 키득키득 웃자, 그는 진동이 전해진다면서 웃지도 못하게 했다.

잠시 후에 두 사람은 자리로 돌아가서 점심 도시락을 나눠먹은 후,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꽃나무 주변을 걸었다. 산책하는 다른 젊은 부부들도 몇 쌍인가 보였다. 리노아스 같은 보수적인 마을에서는 부부 사이라도 남들 앞에서 팔짱끼고 스킨십하는 모습을 보이는 걸 예의 없게 생각하는 일이 있었지만, 테스카처럼 대놓고 애인과 어울려 다니는 사람들도 활보하는 도시에서 굳이 남편과 내외하듯 떨어져 다닐 이유가 없었다.

로빈과 좀 뛰어다녔다고 완전히 지쳐서, 아드리아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남편에게 기대서 잠만 잤다. 차에서 내릴 적에는 다리가 풀려, 업혀서 들어가는 신세가 되었다. 사실 못 걸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발렌틴이 아드리아나를 놀릴 셈으로 덥석 업고 들어가는 것을 내버려두었다.

그리고 그 다음 주가 돌아왔을 때, 아드리아나는 아버지와 화해를 하기 위해 다시 혼자서 고향길에 올랐다.

발렌틴은 처음에 반대했지만, 아드리아나는 그와 함께 가면 아버지와 풀어야 할 일을 풀지 못하고 어물쩍 넘어가게 될 것 같으니 혼자 보내달라고 했다.

“그러지 말고 같이 가, 오드리. 당신 혼자 가는 거 싫어. 저번에도 울고 돌아왔잖아.”

“괜찮아요, 여보. 혼자도 아니에요. 당신 하인들을 데려가면 든든한 걸요. 저도 당신 식구들처럼, 아버지와 치고받고 해결해야 할지도 모르는데, 당신 앞에서 어떻게 해요?”

실제로 아드리아나가 아버지에게 모멸적인 폭언을 듣는 것을 들었던 엘레나가 여주인의 마음을 헤아리고 편을 들어주었다.

“만약 마님이 지셔서 울고 돌아오시면 그때 달래주셔도 됩니다. 주인님께서 같이 가셨다가 마님이 싸워보시기도 전에 훼방을 놓으시거나 같이 싸우시려 들면 엉망이 될지도 몰라요.”

“싸우는 게 아니라 화해하러 가는 거라며.”

“아무튼요, 여보.”

아드리아나는 밝게 말하며 그를 다독여놓고 하인들을 데리고 집을 나섰다.

엘레나와 오언이 있어도 충분했다. 그들을 보면 그들의 주인인 발렌틴을 생각할 수 있었다. 어머니와 통화를 하며 ‘커다란 하인 때문에 아버지가 너를 가두지 못하셨다’는 말을 들은 후로는 무뚝뚝하게 곁에서 걷는 오언의 얼굴만 봐도 웃음이 나왔다.

마차가 리노아스에 들어섰을 때부터, 아드리아나는 창밖을 살피며 주시했다. 그리고 마부를 시켜서 교회가 어디에 있는지 묻게 했다.

아드리아나가 떠나 있는 동안에 새로 지어진 교회가 있을 터였다.

“마님, 고향에 계실 적에는 교회에 다니셨나요?”

엘레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미소 띤 얼굴로 물었다.

아드리아나는 ‘그런 건 아니지만….’하고 겸연쩍게 미소 지어보이고, 다시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리노아스의 새 교회는 슈하스의 것보다 조금 더 큰 규모로 지어져 있었다. 마당도 훨씬 넓었다. 신교가 유입된 역사는 짧았지만, 영지의 주인부터가 열성적인 신자였으니 조금은 특혜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오늘은 예배가 없는 날이라 한산한 분위기였지만, 드나드는 주민들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으로, 또는 이웃 사교의 장으로 이용하기 위해서였으리라. 테스카의 교회가 종종 그렇게 이용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드리아나는 트렌치 코트의 모자를 써서 머리를 가리고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사무실을 찾았다. 테스카나 슈하스의 교회 사무실에 가봤던 바, 해당 지역의 담당 사제들의 이름이 사무실에 적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제롬 버클리의 이름은 없었다. 그 부친의 이름도 없었다. 아드리아나가 모르는 이름이 의 사제명이 몇 개 적혀 있을 뿐이었다.

‘내가 잘못 본 걸까….’

그렇게까지 그와 닮은 얼굴이 있었을까? 아니면 신경이 너무 예민해져서 전혀 다른 인물을 그라고 믿어버린 것일까?

“도와드릴까요?”

문득 뒤에서 상냥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드리아나는 등 뒤를 돌아보았다가, 젊은 부인 한 명이 종이를 들고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에게 예의를 차리기 위해 코트 모자를 벗고, 차분하게 미소 짓는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지나던 길에 교회가 보여서 들어와 봤어요. 리노아스에 와 본 지가 오래되어서, 혹시나 아는 이름이 있지 않을까 보던 참이에요.”

“그러셨군요, 부인. 제가 잠시 사무실을 비운 탓에 불편을 겪고 계셨나 걱정했어요.”

“잠깐 구경한 것뿐이니 괘념치 마세요. 그럼 저희는 이만….”

아드리아나가 가볍게 눈인사를 하며 자리를 뜨려고 한 그때, 다시 사무실 문이 열렸다.

들어서는 남자를 향해, 사무실 내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어머, 신부님. 손님은 벌써 가셨나요?”

입구에 서 있던 부인이, 문을 열고 들어온 사제를 향해 말을 걸었다.

아드리아나는 사제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어떤 의도나 생각을 가지고서 한 행동은 아니었다.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눈을 깜빡거리는 일조차도 잊어버렸다.

============================ 작품 후기 ============================

고맙습니다.u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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