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보다 아름다운-79화 (79/140)

00079  돌아오다  =========================================================================

아드리아나는 손 안에 있는 그의 남성을 어루만지며 애무하다가, 손등 위에다 가볍게 턱을 대고서 고개를 들어 발렌틴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아내가 처음 하는 행동에 조금 어리둥절해진 듯 보였다. 당장 몸을 연결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탓에 상체를 가쁘게 들썩이는 그의 모습을 보며, 아드리아나는 내심 우쭐해졌다. 이 사람을 이렇게 애태울 수 있는 이가 세상에 많지는 않을 거라고 미소 지으며, 손을 옮겨서 그의 허벅지 안쪽을 마사지했다.

“오드리.”

발렌틴이 아드리아나의 머리카락 안에 손을 넣으며 초조함이 배어나는 목소리로 불렀다. 그의 성기 끝에서 투명한 액이 분비되어 우람하게 솟은 기둥을 타고 가느다랗게 흘러내렸다. 흥분한 그의 모습을 보며 아드리아나의 흥분감도 고조되었다. 그녀는 입술 밖으로 뜨거운 한숨을 뱉어내며, 맑은 액체가 지나온 길을 거꾸로 훑어 올라가며 손가락으로 부드럽게 닦아냈다. 젖은 손가락으로 액체가 솟아나오는 좁은 틈을 문지르자, 그가 낮게 신음하며 아드리아나의 머리카락을 살짝 움켜쥐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 은근하게 짜릿한 쾌감이 피어났다.

남편이 좋아할까. 내가 기분 좋아지는 것처럼, 그를 기분 좋게 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아드리아나는 살짝 긴장하며 마른 입술을 적셔서 촉촉해지게 만들었다. 입술을 크게 열고 혀로 그의 기둥을 받치며 입 안에 가득 머금었다. 입술로 꼭 물고 깊이 빨아들이자, 머리 위에서 숨이 막히는 듯 억눌린 신음이 터져 나왔다.

고개를 들어서 그를 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지만, 입 안에 넣을 수 있는 데까지 머금고 잠시 멈추었다. 손톱이 살짝 닿기만 해도 아픔을 느끼는 예민한 곳에 이가 닿지 않도록 조심했다.

머릿속으로는 현란한 기술을 구사해 본 적도 있었지만, 실제로는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입을 오물거려야 뭔가 자극을 줄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그의 일부를 머금은 것만으로도 빠듯해서 생각보다 힘이 들었다. 안 그래도 작은 입을 힘껏 벌려야 했고 그 안에서 혀를 움직일 만한 공간도 없었다.

이래서야 남편이 별로 기분 좋아할 것 같지 않다는 생각에, 아드리아나는 질척이는 소리를 내며 입에서 그의 음경을 빼냈다. 지그시 바라보고 있노라니, 자신의 타액으로 젖은 모습이 너무 외설적이고 부끄럽게 보여서 저도 모르게 잠옷자락을 들어 조심조심 닦았다.

“…뭘 하고 싶은 거야, 여보.”

발렌틴이 분위기를 깨며 큭큭 웃는 소리를 내기에, 아드리아나는 얼굴이 새빨개져서 몸을 일으켰다.

“이, 이리 오셔서 앉아 보세요.”

그의 손을 잡아 침대로 이끌고 모서리에 앉혔다. 발렌틴은 억지로 점잖은 체하는 얼굴을 하고 아드리아나의 요구에 따랐다. 그의 입가에서 금방이라도 웃음이 삐져나올 것 같았지만, 아드리아나는 모르는 척 새침한 얼굴로 그의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고 무릎을 꿇었다. 침대 앞에는 푹신한 깔개가 깔려 있어 한결 편안했다.

아드리아나는 다시 그의 성기를 쥐고서 흘끔 위를 올려다보았다. 발렌틴은 팔을 약간 뒤로 뻗어 침대를 짚고 앉아서 아드리아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장난스러운 미소가 떠올라 있었지만, 아드리아나가 손을 움직이자 그의 웃음기가 걷히고 미간이 좁혀졌다. 타는 욕정으로 번들거리기 시작한 그의 회색 눈동자를 바라보며, 아드리아나는 그의 성기에 입술을 눌렀다. 그리고 혀를 내밀어서 기둥과 음낭을 핥으며 꾹꾹 눌렀다. 끝부분만 입에 넣고 쪽쪽 소리 내며 빨다가, 턱이 아파지면 다시 기둥에 불거진 길을 따라 혀를 굴려보며 뿌리 부분을 손으로 잡고 흔들었다. 그가 어떻게 느끼고 있을지,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보이고 있을지 부끄러워서 뺨이 타들어갈 것 같았다.

“하아….”

살짝 눈을 들어서 올려다보았을 때, 그가 신음을 토해내며 목울대를 울리는 것이 보였다. 아드리아나는 기뻐져서 더욱 열심히 입을 움직였다. 그가 자신에게 남성의 상징을 내맡기고 쾌감에 빠져 있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중심이 저릿저릿해졌다.

시트를 쥐고 있어서 힘줄이 일어선 두꺼운 팔과 긴장으로 수축되어 더욱 단단해진 배 근육이 시야를 자극했다. 점점 호흡이 가빠지고 숨이 막혀서 입을 떼려다, 갑자기 그에게 팔을 움켜잡혔다. 당황하며 고개를 들다가 그만 날카로운 이가 그의 피부에 스쳤다.

“앗, 괘, 괜찮으세요?”

“이리 와요, 여보.”

발렌틴은 눈썹을 약간 찡그렸을 뿐, 제대로 대답할 겨를도 없어보였다.

그는 아드리아나를 일으키고 잠옷을 벗긴 후에 침대 위로 눕혔다. 한순간에 알몸이 되어서 누운 아드리아나는 아직 당황해하며 팔을 굽혀서 앞을 가렸다.

“읏….”

발렌틴의 손가락이 거침없이 아드리아나의 다리 사이로 들어와 아래를 살짝 문질렀다. 그는 노골적으로 아내의 몸이 젖었는지 확인하고는, 곧바로 자기 품 안에 가두듯 단단히 끌어안고 엎드렸다.

그가 허리를 들어서 성기로 입구를 더듬었다. 아드리아나는 두려움과 기대감으로 그의 등을 꽉 끌어안으며 눈을 감았다.

“아, 아….”

단단하고도 쿠션감이 있는 끄트머리가 좁은 문을 꾹 누르더니 강한 힘으로 안을 밀어젖히며 파고들었다.

아드리아나는 흐느끼며 그에게 힘껏 매달렸다. 가슴을 짓누르며 한껏 밀착되어 있던 그의 상체를 부둥켜안고, 그가 치받는 대로 받아내며 끙끙 신음했다. 점차 격해지는 허리짓에 그의 음낭이 아드리아나의 엉덩이에 살짝 닿을 정도로 연결이 깊어졌다. 그리고 각자 다른 이유로 둘 다 괴로워져 거칠게 숨을 헐떡였다.

“발렌틴.”

얼마 후, 아드리아나가 몸을 움츠리며 작게 부르자, 그는 짐승처럼 낮게 목을 울리며 하반신을 후퇴시켰다.

“헉, 헉….”

발렌틴은 머리를 식히려는 듯 꼼짝 않고 있다가, 아드리아나의 얕은 숲 아래쪽에다 아직 달래지 못한 음경을 문지르며 그녀의 허벅지를 가지런히 모았다.

“아, 젠장….”

그는 아드리아나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은 채로 거의 필사적으로 허리를 움직였다. 오직 욕정을 주체 못 하고 저지르는 행위에 대한 그 스스로의 경멸이 느껴졌다.

아드리아나는 그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지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관계를 갖는 중에 그가 지나치게 흥분해서 이성을 잃으면 자신의 몸으로는 그를 감당해주기가 벅찼다. 처음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은 자신이 그를 만족시켜주기에 한참 부족한 듯했다.

그의 얼굴을 들게 해서 뺨과 입술에 키스해주었다. 격렬한 정념에 사로잡혀 무서운 눈을 하고 있던 그가 표정을 조금 느슨하게 했다. 그리고 고개를 기울이며 벌린 입술을 겹쳤다. 혀만 움직여 입술을 핥고 이로 깨물다가, 그가 문득 낮게 숨을 터뜨리며 움직임을 멈추었다.

아드리아나의 허벅지 안쪽에 뜨뜻한 액체가 뿌려지는 느낌이 났다.

“발렌틴, 아읏…!”

그 직후 지체없이 그가 안으로 얕게 들어오기에, 아드리아나는 그의 어깨에 손톱을 세우며 비음 섞인 교성을 흘렸다. 그는 음경의 끄트머리만 들어왔다가 빠져나가기를 몇 번 반복했다. 그리고 남은 씨를 아내의 안에 채워 넣으려는 듯 느릿하고 세심하게 내벽을 애무하며 마지막까지 사정했다.

두 사람은 잠시 안은 채로 있었다. 이내 발렌틴이 옆으로 내려와서 몸을 반만 겹치고 누웠다.

“…아까 미안해.”

그가 아드리아나의 팔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드리아나는 미소 띤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정사의 여운과 그의 다정한 손길에 곧 잠이 들 듯 나른해졌다. 눈을 뜨고 있기도 어려웠다.

“뭐가 미안하신데요?”

“당신을 아프게 해서.”

“일부러 그러신 게 아니잖아요.”

달래주려고 얼굴을 만져주자, 그가 조금 시무룩한 얼굴로 아드리아나의 팔위로 손가락을 미끄러뜨렸다.

“조금은 일부러였지. 정신이 나가서, 끝까지 깊게 넣고 싶어져서….”

그의 말에 아드리아나는 얼굴을 붉힌 채로 대답하지 못했다. 슬그머니 이불을 끌어당겨서 몸을 덮었다.

“내가 또 당신을 아프게 하면 어떻게 하지?

그가 걱정스러운 듯 머리카락을 아드리아나의 어깨에 비비며 속삭였다. 아드리아나는 작게 웃으며 그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제가 싫다고 하면 금방 그만두시잖아요. 이렇게나 제 말을 잘 들어주시면서 뭐가 걱정이세요?”

“흐음.”

발렌틴이 눈을 가늘게 뜨고 미심쩍어하며 바라보았다. 아드리아나가 그를 따라하며 ‘흐음.’ 소리 내고 말을 이었다.

“혹시 저 때문에 도중에 그만두시느라 만족 못 하시는 거예요?”

“아니, 난 아주 만족하지만….”

그가 상체를 일으키고 뭔가 말하려다가 조용해지더니, 재미있는 일을 떠올린 듯 한쪽 입술 끝을 올렸다.

“…내가 얼마나 만족했는지 오늘의 감상을 듣고 싶어?”

“아뇨.”

아드리아나는 자신이 오늘 처음 시도한 그 일 때문이라고 알아채고, 얼른 이불을 말고 일어나서 욕실로 도망쳤다.

다시 침대로 돌아와서 그가 씻고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에, 깜빡 잠이 들었다.

잠결에 그가 돌아와서 가볍게 입을 맞춰주는 것을 느끼고 그를 끌어안았다. 그럴 의도는 아니었지만, 입맞춤이 농도 짙게 변해가는 것에 헐떡이다가 겨우 그를 밀어냈다.

“내일… 일찍 나가셔야 하잖아요. 저도….”

내일은 그가 아침 일찍 수도에 일을 보러 갔다가 저녁 식사 시간이 지난 후에나 돌아올 예정이었다. 그래서 아드리아나도 외출을 내일로 잡았다. 며칠 있으면 그와 바다를 보러 가기로 한 주말이었고, 그 전에는 해치우고 싶은 일이 있었다.

리노아스에 다녀오는 일이었다. 어쩌면 하루 정도는 묵고 와야 하게 될 수도 있었기에 가급적이면 발렌틴이 일을 쉬는 주말을 피하고 싶었다.

‘아침에 나가시기 전에 얘기해야지.’

아드리아나는 아쉬워하는 그의 팔에 안겨서 포근함을 느끼며 몸을 웅크렸다. 그에게 잘 자라는 인사를 해주려고 가슴을 쓸어주며 입을 떼었다가, 한 음절도 소리내지 못한 채 곯아떨어졌다.

***

“정말 혼자 가도 되겠어?”

넥타이를 매주는 아드리아나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발렌틴이 물었다. 며칠 전에도 물었고, 오늘 아침에도 두 번째로 묻는 질문이었다.

“네. 정말 혼자 가도 되겠어요.”

아드리아나는 웃음 지으며 손바닥으로 그의 가슴을 가볍게 두드렸다. 발렌틴은 재킷을 걸치고 얇은 코트를 팔에 걸친 후, 고개 숙여 아드리아나에게 뽀뽀하고 밖으로 나왔다.

현관 앞까지 그를 배웅하고 돌아와, 아드리아나도 외출 준비를 했다.

중요한 연회에 참석할 때 입는 드레스를 갖춰 입고, 리노아스에서 살던 때처럼 거추장스럽지 않게 작은 보석을 늘어뜨린 귀걸이를 했다. 그러고서 거울을 쳐다보다가 마음을 바꾸어 좀 더 값비싸고 기혼 여성에 어울리는 우아한 디자인의 귀걸이를 꺼냈다.

화장대 거울 안에 비친 자신은 이제 더 이상 10대 소녀가 아닌, 20대에 들어선 어엿한 여성이었다. 바르테즈가 말했던 것처럼, 짐짓 아버지를 닮은 어른스럽고 엄한 표정도 지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날 보면 얼마나 놀라실까.’

키도 조금이지만 더 컸고, 전체적인 인상과 분위기가 많이 변했다.

아드리아나는 한참 동안 거울 앞을 떠나지 못했다. 오만 감상이 들었지만, 뭘 생각하고 있는지도 뿌옇게 흐려졌다.

잠시 후, 어렵사리 방을 나서서 엘레나와 오언을 찾았다. 선물로 뭔가 골라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가, 그건 남편과 정식으로 방문할 때의 즐거움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마님, 리노아스에서 말씀하시는 대로 기다리시겠답니다.”

엘레나가 리노아스에 전화를 걸어 통화한 결과를 보고하러 왔다. 아드리아나가 직접 걸까 생각도 했었지만, 가슴이 너무 떨려서 그러지 못했다. 다짜고짜 전화를 걸어 목소리라도 들어버리면 서로 어떤 의미로든 충격이 될지 몰랐다.

곧 마차가 길 안으로 들어왔다. 발렌틴이 타고 나간 자동차 외에도 한 대 더 차고에 남아 있었지만, 이동 시간이 더 길어질 것을 감수하고 마차를 가져오게 했다. 리노아스에서 자동차가 달리는 모습이 얼마나 생경하고 눈에 띄어 보일지 말할 필요도 없었다.

비포장 길로 들어서 마차가 살짝 흔들리며 나아갔다. 아드리아나는 눈을 내리깔고 조용히 허공을 응시했다.

그때로 되돌아간 듯한 기분이었다. 눈을 감으면, 스콰이어 가로 향하던 그 시간을 돌아가서 그 마차 안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형언할 수 없는 묘한 감정이 일었다. 뇌리에 그날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만약 그때에도 밖을 쳐다볼 여유가 있었더라면, 지금이라도 기억 속의 그 길을 알아볼 수 있으리라.

도시의 소음과 먼지 냄새가 가시고 흙과 나무의 내음이 짙어졌다. 봄비가 가까이에 와 있는 듯, 비구름을 거느린 습한 바람의 기척이 느껴졌다.

아드리아나는 커튼을 걷고 마차 바깥을 바라보았다.

집 한 채 없는 들판과 먼 숲이 보였다. 테스카 옆 도시의 변두리인 듯했다. 시야는 계속 넓어지고, 아득한 평야가 펼쳐졌다가 마을이 나타나고 또 사라져갔다.

리노아스에 가까워질 무렵에는 커튼을 내려 안을 보이지 않게 했다. 누군가에게 보이지 않기 위해서였다. 리노아스의 저택도 비워주기를 청해두었다.

차츰 심장의 고동이 높아졌다.

“후우….”

아드리아나는 눈을 감고 작게 심호흡을 했다.

클로제의 딸 아드리아나로 돌아간다 해도, 열일곱 그 이전의 자신으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이름을 가지고 있는지, 속으로 끊임없이 되새겼다.

“괜찮으세요, 마님?”

엘레나가 안심시켜주려는 듯 미소 지어 보이며 물었다. 오언은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지만, 큰 덩치만큼이나 무거운 입과 웨버 가를 향한 의리 깊은 그의 마음을 아드리아나도 알고 있었기에 그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듬직했다.

다시 슬쩍 커튼을 젖혀보았다.

그러자 마치 바로 얼마 전에도 보았던 듯한 풍경이 펼쳐졌다.

마차가 어느새 리노아스 안에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길을 지나는 사람들이 보였다. 아드리아나는 커튼 뒤로 슬쩍 고개를 감추며 미세한 틈으로 밖을 살폈다.

‘세상에….’

어머니와 함께 산책을 하며 마주쳤던 목사의 딸이 보였다. 아는 얼굴을 보았기 때문인지,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현실감이 확 덮쳐들었다.

봄꽃이 만개한 길을 따라서 아가씨들이 두세 명씩 팔짱을 끼고 걷는 모습이 보였다. 이따금 높은 웃음소리도 퍼져 들어왔다. 기억 속의 리노아스는 고요하고 정숙한, 조금 갑갑할 정도로 엄격한 시골 영지였지만, 실은 아드리아나의 집안만 그랬던 건지도 몰랐다.

이윽고 마차가 길을 따라 각도를 틀었다. 그리고 멀리 영주의 성이 눈에 들어왔다.

클로제 남작의 성. 아드리아나의 집.

그로부터 10분도 지나지 않아, 마차가 멈추어 섰다.

육중한 성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가볍게 풀밭을 스치며 달려오는 발소리가 나더니, 몸집 작은 하인이 나타나서 아드리아나 앞에 꾸벅 허리를 숙였다.

“어서 오십시오, 아가씨.”

하인의 목소리가 떨렸다. 아드리아나는 남자 하인들에 대해서라면 이름도 잘 몰랐지만, 물론 그들은 제 주인의 딸을 잘 알고 있을 터였다.

아드리아나는 하인의 뒤를 따라, 오언과 엘레나를 곁에 바짝 붙게 하고 안으로 들어섰다. 무심코 자신의 방이 있던 자리를 올려다보았지만, 바깥이 더 환한 대낮이었고 창문도 워낙 작았기 때문에 안이 어떤지 들여다 보이지는 않았다.

영주 가족의 생활관 문이 열렸다.

부인 한 명이 응접실 안을 안절부절못하며 왔다 갔다 하다가, 방문자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기억속의 모습보다 훨씬 나이가 든 얼굴의, 어머니였다. 그러나 똑같은 표정으로, 어떻게든 해주겠노라고, 조금만 참고 견디며 기다리라던 어머니의 말이 귓가에 생생해졌다.

“오, 아가….”

그녀의 주름진 눈가가 순식간에 붉어지더니 왈칵 눈물을 쏟아냈다.

“어머니….”

아드리아나는 걸치고 있던 망토를 벗고, 자신을 맞으러 다가오는 어머니를 끌어안았다.

어머니는 생각보다 나이가 많아보였고 생각보다 몸집이 작았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두 사람 모두 그랬다.

클로제 부인은 자신보다 키가 한 뼘쯤 더 큰 딸의 등을 연신 쓸어내리며 흐느꼈다. 아드리아나는 조용히 어머니의 등을 토닥였다.

얼마지 않아, 누군가 나오는 기척이 들려 아드리아나가 살짝 고개를 들었다.

남작이 뒷짐을 지고 선 자세로 모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굳게 다물린 입, 그렁그렁해져 붉어진 그의 눈시울을 보고, 아드리아나는 아버지가 우는 것을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작품 후기 ============================

의욕만큼 기술 발휘를 했던 건 아니라고 전하며...신혼이고 나름대로 중요한 변화(?)라고 생각해서 묘사가 좀 길어졌습니다만, 불편하신 분이 계시지 않겠지요?ㅡㅜ 노블이니까..ㅡㅜ

선추코평쿠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__)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