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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보다 아름다운-75화 (75/140)

00075  봄의 소식  =========================================================================

아드리아나는 발렌틴의 목소리가 지나간 자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이전의 울림이 남아서 귓속을 맴돌았다. 아드리아나, 자신의 이름이 마치 처음 듣는 낱말처럼 생소하고도 아름답게 들렸다. 홀 안에서 들었던 영부인의 파이프 오르간 소리처럼, 아드리아나의 전신을 통해 공명되며 몸을 떨리게 했다.

발렌틴은 조금 멋쩍은 얼굴을 했다. 그러다 손을 뻗어서 아드리아나의 한쪽 뺨을 감싸고, 거듭 그녀의 이름을 확인시켜주었다.

“…아드리아나 클로제, 내 아내의 첫 번째 이름.”

그가 말하고서 미소 짓기에, 아드리아나도 입술 끝을 부드럽게 끌어올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이 이름을 불리며 두려움 없이 그의 눈을 마주할 수 있게 될 줄 몰랐다. 이 이름을 불리며 이토록 깊은 애정을 느껴본 일도, 이토록 복잡한 감정을 느껴본 일이 없었다.

그저 이것이 내 이름이었다고, 새로이 깨달은 사실처럼 느껴졌다. 잃어버렸던 진짜 이름을 되찾은 기분이었다.

아드리아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고만 있다가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제가 밉지 않으셨어요? 제가 당신께 감추는 일이 있었는데도.”

조그맣게 묻자, 발렌틴이 아드리아나를 끌어당겨서 자기 허벅지 위에 앉혔다. 그런 후에 입을 열었다.

“내가 고향에 대해 물었을 때, 당신은 리노아스라고 대답했었어.”

그의 눈길이 너무 다정해서, 아드리아나는 얼굴을 짙게 물들이며 시선을 떨어뜨렸다.

“내 눈치만 보고 있었다는 거 알아. 내게 진실하려는 마음과 지금까지 지켜왔던 비밀을 유지하는 일 사이에서 갈등했겠지. 만약 당신이 영원히 과거를 묻으려고 했어도 탓하지 않았을 거야. 그건 날 만나기도 전에, 우리 일과 관계없이 결정된 일이었을 테니까…. 중요한 건 앞에 어떤 이름이 붙든 당신이 이제 웨버 부인이고 내 거라는 사실이지.”

그가 소유권을 강조하는 말을 붙이기에, 아드리아나는 작게 웃으며 그를 꽉 끌어안았다. 고집스럽고 강해 보이는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웅크리자, 따뜻하고 커다란 손이 등을 쓸어주었다.

“그래도 내게 말해줘서 고마워.”

발렌틴의 나직한 목소리에 아드리아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내 삼을 여자의 평판이 궁금해서 조금 알아보기는 했지만, 불법적인 일을 저지르지는 않았어.”

아드리아나는 이번에는 조금 웃었다.

“당신의 옛날 연인 얘기 따위도 캐고 다니지 않았으니까 안심해.”

그 말에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랐다. 단지 그에게 더 힘껏 매달렸다. 확실한 건 발렌틴이 아내의 미심쩍은 점을 다 감수하고 받아주었다는 사실이었다.

미안함과 고마움에 말없이 끌어안고만 있다가, 눈을 감고 발렌틴의 머리카락에 뺨을 비비며 응석을 부렸다.

결 좋은 머리카락을 자신의 볼과 입술에 스치게 하며 부드러운 감촉을 즐기고 있으려니 그가 장난스럽게 고개를 들고 가까이에서 쳐다보았다. 닿을 듯 말 듯이 그의 입술에 살짝 입술을 댔다가, 함부로 물어 삼키기도 아까워져서 도로 가볍게 그의 머리를 감싸 안았다.

“…참, 저 조만간 어머니를 만날지도 몰라요.”

“그래?”

아드리아나는 가슴 안에 안은 발렌틴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이런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음에 기쁨을 느꼈다.

“편지를 드렸거든요. 실은 헤밀에서 보셨던 카리나가 저희 어머니의 하녀였어요.”

“흠, 그렇군.”

발렌틴이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처음 듣는 이야기라는 듯 대답하면서도 놀란 기색이 전혀 없었다. 아드리아나는 팔을 풀고 눈을 가늘게 뜨며 그를 내려다보았다.

“이건 모르셨어요?”

“몰랐어.”

발렌틴이 눈썹을 살짝 치켜 올리며 말을 이었다.

“당신 뒤를 시시콜콜하게 캐내고 다니는 건 아니야. 그럴 때도 있지만.”

“그럴 때도 있다고요?”

아드리아나가 묻자, 그가 비딱하게 미소 지으며 눈을 피했다.

“글쎄. 그냥 해본 소리야.”

“그냥 하신 말씀이 아닌 것 같아요. 방금 너무 자연스럽게 말씀하셨잖아요.”

“하녀에 대해선 정말 몰랐어. 그렇게 자세한 일까지 다 알고 있지는 않아. 물론 언제든 궁금해지면 당신 뒤를 쫓아다닐 수도 있겠지만.”

“뒤를 쫓아다니신다고요?”

아드리아나가 목소리를 높이며 조금 웃자, 그가 주의를 끌려는 게 분명한 태도로 아무렇게나 입술을 꾹 눌러서 뽀뽀하고, 아드리아나를 안아 올렸다.

침대로 향하는 게 눈에 보여, 아드리아나가 얼굴을 붉히며 작게 반항했다.

“아, 아직 시간이 일러요.”

“시간은 아무리 많아도 모자라.”

발렌틴이 아드리아나를 침대 위에 눕히고 그 위에 자기 그림자를 실었다.

촛불이 아스라하게 밝히고 있는 방 안의 빛을 등지고 내려다보는 그의 시선에, 아드리아나의 가슴이 살짝 움츠러들었다. 입술을 포개고 천천히 위치를 바꾸어가며 온 감각을 일깨우려는 듯한 그의 정성스러운 입맞춤에 부끄러워하며, 살며시 그의 팔에 손을 얹었다.

그가 손가락으로 아드리아나의 턱을 들어 올리더니, 목의 중앙을 따라 입술을 꼭꼭 누르며 내려갔다. 목젖을 가볍게 압박당하는 순간, 아드리아나는 숨이 막혀서 작게 신음하며 그의 어깨를 꽉 움켜잡았다.

“발렌틴….”

“엉덩이를 들어.”

어느새 드레스 치마 안으로 손을 넣어 가느다란 속옷 끈을 쥔 그가 부드럽게 명령했다. 그를 위해 제대로 준비하고 오겠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아드리아나는 서로에게 그럴 여유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애써 수치심을 억누르며 허리에 힘을 주고 엉덩이를 들어 올리자, 곧 속옷이 허벅지를 타고 끌어내려졌다. 발렌틴은 평소처럼 윗옷부터 먼저 벗어던지지는 대신 벨트를 풀었다.

“하아….”

아드리아나는 상기된 얼굴로 숨을 들먹이며, 자신의 위에서 앞을 열어젖히는 그를 바라보았다. 치솟는 흥분으로 눈가가 뜨거워졌다.

“아!”

벌써 녹을 만큼 녹아 있었는데도 짧은 전희 뒤에 곧바로 들어오는 그가 버거워서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긴장한 몸을 이완시켜주려는 듯, 그가 아드리아나의 민감한 목덜미를 핥으며 느리게 허리를 움직였다.

서두르지 않고 여러 번 젖은 길을 비집고 드나들면서 그의 성기가 충분히 적셔지자, 아드리아나가 느끼고 있던 고통이 한결 편안해졌다. 두꺼운 겨울 드레스와 발렌틴이 입고 있는 셔츠가 가로막은 간격이 안타까워서, 피부가 드러난 그의 목덜미와 얼굴을 어루만졌다. 은밀하게 맨 살갗을 드러내고 연결된 좁은 부위로 온 신경이 집중되었다. 몸 안을 빠듯하게 채우고 뜨겁게 고동치는 힘을 느끼며, 아드리아나는 전신의 감각을 휩쓰는 쾌락에 먹혀들어 곧 아무 생각도 할 수 없게 되었다.

#봄의 소식

“오늘 귀한 시간을 내서 찾아주신 은인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의 첫날입니다. 지난 겨울에도 여러분께서 베풀어 주신 보살핌과 온정 덕분에 우리의 어린싹들이 차가운 땅속에서 얼어붙지 않고 이 봄에 새롭게 움틀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희 브루아뉴 아동 기금은 올해로 49주년을 맞이하는….”

자선 연회의 환영 인사말을 읽는 노부인의 목소리에 잔 떨림이 느껴졌다. 굽은 어깨와 등허리가 연약한 느낌을 주었지만, 젊은 시절에 여자 힘으로 자선 모임을 만들고 지역 제일의 기금으로 자리 잡게 하기까지 운만 작용한 것은 아닐 터였다.

아드리아나는 존경 어린 눈빛으로 자선 기금의 회장인 노부인을 우러러 보았다.

오늘은 남편을 대신해서 이 자리에 와 있었다. 발렌틴은 일 때문에 어제부터 타 지방에 가 있었다. 당초에는 아드리아나도 그와 함께 떠날 예정이었지만, 며칠 전에 브루아뉴 영지의 초청을 받고 부부의 몸이 둘인데도 구태여 한쪽의 초청만을 소화한다면 남보기가 좋지 않을 듯하다고 따로 일정을 소화하기로 한 것이다.

“내 일을 당신에게 나눠서 짊어지게 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안 좋소.”

발렌틴은 함께하기로 한 여행이 무산되자 몹시 울적해하며 그렇게 말했다.

“어느 누구의 부인이나 남편의 일을 같이 짊어져요. 저는 훨씬 더 많은 제 짐을 당신께 드리고 있는데, 당신이 미안해하시면 어떻게 해요?”

아드리아나가 안쓰러워하며 그의 뺨을 만져주자, 그가 시무룩한 얼굴로 입 끝만 살짝 올려 보였다.

“내가 옆에 있을 때는 그나마 괜찮지만, 당신 혼자서 내 일을 맡고 간다는 게 영 그렇군.”

“제가 못 미더우세요?”

“아니. 당신이 내게서 떨어져 다녀야 한다는 게 가슴 아파서 그래. 어쩌면 그냥 내가 당신과 떨어지기 싫은 건지도 모르고.”

그의 말에, 아드리아나가 웃으며 포옹해주었다.

“이틀은 금방 지나갈 거예요. 살펴서 잘 다녀오세요, 여보.”

“당신도…. 난 당신 없어서 시간이 금방 안 지나갈 거야.”

“아휴, 자꾸 걱정시키실 거예요?”

눈을 흘겨주자, 그제야 발렌틴이 웃으며 나갈 채비를 했다. 그리고 하인들을 향해 거듭 당부를 했다.

“오언, 엘레나, 마님께 꼭 붙어 다니고 잘 보살펴 드리게.”

“잘 알겠습니다, 주인님.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이제 결혼한 지 두 달이 되었다.

아드리아나는 남편이 생각보다 감정표현이 풍부한 데다 응석이 좀 있다는 사실에 매일같이 놀라고 있었다.

그는 서로 외출할 때와 돌아올 때에 반드시 끌어안고 입 맞추어 주기를 원했고, 각자의 방이 있었어도 누군가 앓거나 불면증을 겪는 게 아닌 한 함께 잠들기를 원했다. 처음에는 비율이 비슷하던 단독 일정과 부부동반 일정도 점차 한쪽으로 기울었다.

물론 같이 있는 편이 즐거웠던 것은 두 사람 모두 마찬가지였고, 한창 알콩달콩해야 할 신혼이니 당연하다 싶으면서도, 아드리아나는 발렌틴이 갈수록 자신에게 정서적으로 깊이 의존하는 듯해 내심 걱정이 되었다. 자신의 존재 때문에, 험난한 사회생활을 해야 하는 발렌틴이 심적으로 나약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들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그이가 일이나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등한시 하는 건 아니잖아요. 신혼 때야 온종일 찰싹 달라붙어 있으려고 하기 마련이에요. 우리같은 잉꼬부부가 아니라도 그래요.”

소니아가 쿠키 하나를 오독오독 베어 먹으며 말했다. 그녀와 아드리아나는 자선 연주를 듣기 위해 기다리고 앉아서 수다를 떨고 있었다. 아드리아나가 테스카로 온 이후에는 소니아가 연주회에 부쩍 관심이 많아져서, 본래의 관심사이던 자선 모임과 연주회가 결합한 자리라면 당장에 발 벗고 나섰다.

“그래서 저도 지금은 다 받아주고는 있는데, 가끔 슬프게 느껴져요. 실망이 되어서 슬픈 게 아니라, 그분이 저를 좋아해주시는 모습이… 저를 지나치게 소중히 여기시는 모습이 뭔가 애달프다고 해야 하나…. 이렇게 말하니까 참 그냥 복에 겨운 소리처럼 느껴지네요.”

아드리아나는 자기가 말하고도 신혼의 애정을 자랑하는 말 같아서 겸연쩍게 웃었다. 소니아도 웃더니 약간 정색하고 말을 이었다.

“하지만 뭔지 알 것 같아요. 우리는 둘 다 시끄러운 성격이라 그런 느낌이 없지만, 웨버 부부는 둘 다 조용히 눈빛만 오가니 더 애틋해 보여요. 근데 선은 있어야겠더라고요. 남편 응석을 한없이 받아주고 의존하게 만들었다가는 정말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 될지도 몰라요. 둘이서 정답게 살다가 한날한시에 천수를 다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만약 그런 남편이 혼자 세상에 남겨지기라도 했다가는 얼마 견디지 못할 거예요.”

“아너슨 부인, 그런 말은 너무 슬퍼요.”

상상만 해도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그를 남겨두고 먼저 세상을 떠나야 하게 된다면 얼마나 걱정이 될지, 고작 이틀 떨어지는 걸로도 우울해하는 그인데 자기 혼자는 못 살겠다고 하기라도 하면 얼마나 억장이 무너질지….

“아, 안 되겠어요. 울 것 같아.”

아드리아나가 손수건을 뒤적이자, 소니아가 쓴웃음을 지었다.

“꿀 같은 신혼부부에게 제가 심한 소릴 했군요. 그저 유한한 생명으로 태어난 이상 최소한의 대비는 하고 사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전 이것저것 미리 생각하기도 하고 그랬거든요.”

“무슨 대비 말씀이세요?”

“예를 들자면, 우리 프란체는 재혼을 무조건 반대해요. 그이 아버지도 그런 신조라 어머님과 사별 후에도 지금까지 혼자 사세요. 하지만 전 만약 나중에 제가 없으면 프란체를 대신 돌봐줄 좋은 여자가 나타나길 바라거든요. 그래서 친지들에게 당부도 해놓았고, 헤이즐에게도 당부를 해놨죠.”

“세상에, 그 어린애한테요?”

“충격 받지 않게 조곤조곤 잘 이야기하면 다 이해한답니다. 그 애랑 나랑 눈물 한바가지는 쏟았지만요.”

“전 못 할 것 같아요….”

발렌틴을 누구에게 부탁한단 말인가. 아직 갖지도 않은 자식에게? 꼭 해야 한다면 자식에게 부탁하는 편이 그나마 낫겠지만, 남편은 삼십대에 첫 아이를 볼 것이다. 헤이즐이나 웬디처럼 다 큰 자녀가 있다면 모를까, 아이가 태어나서 웬만큼 자라기도 전에 그런 불행이 닥쳐온다면….

아드리아나는 ‘으….’하고 신음하며 다시금 손수건으로 눈가를 누르며 눈물을 훔쳤다.

“아휴, 우리 웨버 부인은 참 상상력이 풍부하신 것 같아요. 그 연주 실력이나 시 읽으시는 감성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알겠어요.”

소니아가 웃으며 다정하게 등을 쓸어주었다. 아드리아나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자기 행동이 기가 막혀서 허탈하게 웃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웨버 부부, 지금 떨어져 있어서 더 그런 거 아니에요? 그이의 이름만 입에 담아도 눈물이 터져 나오도록 보고 싶고 그립고 그런 거 아니냐고요. 아마 저쪽에서 발렌틴도 난리 났을 거야.”

“그, 그건 안 돼요, 설마요.”

아드리아나는 아내가 없다고 훌쩍이는 남편을 상상하며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소란을 피우지 않으려고 손수건으로 얼굴을 감싸고 어깨를 떨며 웃는 모습을 보고, 소니아가 등을 두드려 주며 ‘정말 큰일이네요. 이 새댁 심각해요.’하고 한숨을 쉬어댔다.

“아, 연주를 시작하려나 봐요.”

소규모 오케스트라가 대열을 갖추고, 제각기 나뉘어 수다를 떨던 부인들이 의자를 되돌리며 자태를 가다듬었다.

“전 웨버 부인도 어서 저런 자리에 선을 보이셨으면 좋겠어요.”

소니아가 살짝 귓속말을 했다.

아드리아나는 요즘 테스카의 모임에서는 가끔 첼로 연주를 해주고 있었다. 결혼식을 마치고 테스카로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 영부인이 보낸 첼로가 아드리아나 앞으로 배달된 것이다.

영부인을 위해 만들어졌던 그 악기의 값어치를 생각하면 집안에 두고 썩힐 수가 없었다. 아드리아나는 틈틈이 연습을 하고, 어울리는 자리가 있으면 선뜻 활을 들었다. 그러자 얼마 후, 테스카의 웨버 경이 부인을 들였는데 미모가 뛰어난 데다 음악적 소양이 깜짝 놀랄 만큼 대단한 여성이더라는 소문이 급속도로 퍼졌다. 대부분 부인들끼리의 모임을 통해 연주를 선보였으니, 여자들의 입소문의 위용을 잘 알 수 있는 사례였다,

오찬 전의 간단한 연주회가 끝나고, 아드리아나는 소니아와 함께 기금의 회장 및 귀부인들과 인사를 하러 다녔다.

여자들만 모이는 자리가 더 예민하고 어려운 법이라고 하지만, 아드리아나로서는 이런 자리가 오히려 편했다. 더욱이 브루아뉴의 모임 회원 연령이 높은 편이어서, 눈에 띄게 젊고 수줍음 많은 아드리아나를 어여쁘게 생각하고 너그럽게 대해주는 이가 많았다.

자리를 옮기며 새로운 인물을 소개 받으러 가던 중, 아드리아나는 뒤늦게 들어오는 미네타를 발견하고 앗, 하고 숨을 들이 마셨다.

“미네타!”

“어, 오드리!”

미네타는 손님을 모시고 들어오는 중이었다. 손님 역시도 낯이 익었다. 아드리아나가 결혼 전, 슈하스 성에 서류를 받으러 갔다가 혼자 일 처리를 하러 간 발렌틴을 기다리던 때에, 휴게실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던 노부인이었다.

“어머, 안녕하세요, 힐러 부인.”

“여기서 다 만나네요, 웨버 부인.”

힐러가 푸근한 눈웃음을 지으며 손을 잡았다. 그날 리노아스의 남자들과 마주쳐서 당황하고 있던 아드리아나에게 따뜻한 차를 권해주던 때와 같은 그 미소에, 아드리아나도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힐러 부인께서는 그때도 자선 연주회를 들으러 오셨었죠.”

“이 나이를 먹고 할 일이 없으니 심심해서 말이지요.”

아드리아나가 힐러와 인사를 주고받은 후, 미네타가 기다렸다는 듯 다가와서 말을 꺼냈다.

“오드리, 안 그래도 연락하려고 했었는데. 어제 아르본을 통해서 오드리한테 편지가 왔거든.”

“편지요?”

“리노아스에서 보낸 거였어. 쉐이드가 잘 보관해두고 있어. 테스카에 놀러가서 전해주거나 오드리를 헤밀로 불러야겠다고 하던걸.”

아드리아나는 작게 숨을 삼켰다.

‘어머니야.’

============================ 작품 후기 ============================

고맙습니다. 평안한 하루 되세요.u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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