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73 바쉬 공작의 성 =========================================================================
아드리아나는 영부인을 따라 텅 빈 회랑을 걸었다. 벽에는 선대 당주들의 인물화가 그려진 대형 액자들이 걸려 있었고, 붉은 바닥과 높다란 천장이 끝없이 이어질 듯 펼쳐져 있었다. 마치 딴 세상에 와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라티스는 우리 국경에서 아주 가까운 곳이지요.”
영부인이 말했다.
아드리아나는 그녀가 라티스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 것에 내심 당황하며 그녀의 안색을 살폈다.
오드리 라티스라는 가명 때문일까? 아니면 누군가로부터 아드리아나의 출신지를 라티스라고 전해 들었기 때문에? 후자일 수는 없을 터였다. 아드리아나는 발렌틴에게 처음부터 리노아스 출신이라고 사실을 밝혔으니, 그를 통해서는 라티스 출신이라는 거짓 정보가 들어갔을 리가 없었다.
‘어쩌면 슈하스에서… 그때 보셨을 수도 있을 거야.’
함께 슈하스의 성에서 서류를 처리하던 때에, 발렌틴이 아드리아나의 출신지로 적힌 정보를 보았을 수는 있다. 하지만 라티스가 아드리아나의 모친 쪽 본가인 것이 사실이니, 출신지가 그쪽으로 적혀 있었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외부인 유입에 느슨하고 개방적인 아이넨인 만큼, 이주가 잦은 경우에는 출신지나 본적, 이전 거주지 따위가 혼잡하게 기록되는 일도 허다했다.
아드리아나는 모호한 미소를 지은 채로 겸손하게 묵례했다.
영부인이 다시금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라티스 양을 보니 애틋한 마음이 들어요. 투스미아가 한 사람의 남성이라면, 코니스는 우리와 서로 아끼는 한 사람의 여인이라고 묘사되기는 일이 있지요. 우리 사이에는 일종의 천성적인 감성이 존재하는 듯합니다. 그대가 타지에서 지내고 있는 만큼 안정감이 부족한 느낌은 드나, 귀한 피를 타고난 아가씨라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모쪼록 발렌틴을 도와 가정을 다스리며 나태해지지 않고 이름에 어울리는 여인으로 성숙해가기를 바랍니다.”
“말씀 새겨듣고 그리하겠습니다, 이웨리드 영부인.”
아드리아나는 작게 대답하며 미소 지었다.
실은 영부인이 당장 남편을 공작으로 만들라고 설득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영부인은 그 뒤 이런저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짧고 평이한 덕담을 마친 후에 부드러운 침묵 속에서 긴 회랑을 거닐다가 아드리아나를 어느 방으로 데려갔다.
“연주할 수 있는 것을 가져오세요.”
그곳은 악기가 진열되어 있는 커다란 방이었다. 다양한 종류의 관현악기가 전부 있었다. 대개 오래되지 않은 사용감이 있는 걸로 보아, 영부인 개인의 것일지도 몰랐다.
아드리아나는 거기서 첼로를 발견하고 가슴 속에서 무언가가 뭉클하게 치미는 것을 느꼈다. 악기점에서 볼 때와는 감회가 달랐다. 13년을 함께 했던 기억과 어린 소망이 아직 가슴 속에 생생했다.
클로제 남작은 필시 딸이 공작가의 여자가 되어서 예술성과 교양을 뽐내는 데에 사용하기를 바라며 이 악기를 가르쳤으리라. 바로 이 영부인처럼.
그리고 그 순간에 아드리아나는 바쉬 공작 부부가 내내 강조하던 ‘피’를 자신 안에서 느꼈다. 아드리아나 클로제라는 이름을 준 부모의 일부와, 그들의 기른 흔적이 현재의 자신 곳곳에 남아 있음을.
아드리아나는 상념을 털어버리고 잠시 망설이다가, 첼로 앞에 다가갔다.
“…이걸로 해보겠습니다.”
그 말에 영부인이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 중앙에 놓인 자줏빛 의자로 가서 앉았다.
아드리아나는 투스미아의 궁정 소나타 중, 북해 너머의 여신을 흠모했던 음유시인의 노래를 연주했다. 영부인의 차갑고 부드러운 이미지가 그를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었다.
곡이 시작되고, 영부인은 아드리아나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아드리아나는 오랜만의 연주에 긴장한 터라 얼굴이 달아오를 만큼 부끄러웠지만, 차츰 곡에 몰입하면서 그녀의 시선이 느껴지지 않게 되었다.
한 악장을 완곡하기까지 20여분이 걸렸다. 연주가 끝난 후에도, 영부인은 잠시 눈을 감은 채로 앉아 있었다. 아드리아나는 조용히 앉아 그녀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이전의 실력에 비하면 서러워질 정도로 손가락이 잘 움직여주지 않았다. 하지만 연주해본 지 너무 오래되었다는 변명은 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교양과 담을 쌓았다는 것 자체도 흠 잡힐 일일뿐이었다.
“…내게 이 곡을 연주해준 이는 그대가 두 번째랍니다.”
영부인이 여운에서 깨어난 듯 눈을 뜨며 말했다.
“첫 번째는 형편없었지요. 그대의 연주는 그보다 조금 나았습니다.”
그 말에 아드리아나는 얼굴이 더욱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은근한 자존심을 내세울 것 없이 연주해본 지 너무 오래되었다고 털어놓을 걸 하고 후회가 되었다. 자신의 미흡함에 대한 자각도 없는 사람으로 여겨졌다면 큰일이었다.
이제 와서 변명하지도 못하고 부끄러워하며 눈치 보는 아드리아나를 보고, 영부인이 입술 끝을 살짝 끌어올려 보였다. 그녀는 잠시 깊어 보이는 아름다운 미소를 짓고 있다가 이내 거두었다. 그리고 우아하게 허리를 세우며 몸을 일으켰다.
아드리아나는 뭔가에 홀린 기분으로 영부인의 뒤를 따라 걸었다.
“우리는 발렌틴이 바쉬의 상속 문제를 어떻게 결정할지 걱정하는 것만큼이나, 그 아이의 행복에 대해서도 생각합니다. 오랫동안 마음을 잡지 못하고 혼자 떠돌며 생활하는 모습이 늘 안쓰럽고 아팠지요. 오늘 그 아이가 자기 짝이라며 아가씨를 데려와 보살피고 사랑하는 모습을 보니, 큰 소망 하나를 이룬 기분입니다.”
영부인은 지극히 차분한 말투로 이야기하며 천천히 길을 밟았다. 아드리아나는 얼굴을 조금 붉히며, 그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나는 그대를 잘 모르나, 그대의 눈과 내게 들려준 연주가 마음에 듭니다. 이 순간부터 내 가족으로서 사랑하게 되었으니, 설령 내가 가장 원하는 이를 후계자로 얻는 바람을 이루지 못하여 멀리 떨어지게 되더라도, 발렌틴과 라티스 양에 대한 나의 애정이 변치 않을 것임을 믿으세요.”
순간, 아드리아나는 대답하려고 성급하게 열었던 입을 다물고 뺨을 물들였다.
역시 다른 세계에 온 것 같았다. 공작의 말마따나, 얄팍한 경험과 배움은 무용지물이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세계의 소통방식이나 상식으로는 이 땅의 사람들을 진정으로 이해하기가 어려우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발렌틴의 청혼도 이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비록 그의 입에서 나왔던 말은 훨씬 낭만 없는 말이었지만, 그도 지금의 영부인과 비슷한 눈으로 아드리아나를 보고 있었다.
아드리아나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영부인에게 긍정과 감사의 인사를 돌려주었다.
그때의 남편의 갑작스러운 고백이 싫지 않았듯, 지금부터 사랑하겠노라는 영부인의 말도 무척이나 괜찮게 들렸다. 시할머니의 애정을 샀다는 사실이 기쁘지 않을 리 없었다.
그래서 묘한 아쉬움이 들었다. 가짜 이름이 아닌, 진짜 이름을 그녀에게 가르쳐주었더라면, 그래서 그 이름으로 불리울 수 있었더라면 하고.
오드리라는 이름에는 익숙해져 있어서 몰랐지만, 라티스라는 익숙치 않은 성으로 불리게 되었을 때에는 그것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그분에게 진짜 이름으로 불리게 되면 어떤 기분일까.’
문득 그가 못 견디게 보고 싶어졌다.
*
오후 8시, 아드리아나는 부인들의 어울림에서 빠져나와 발렌틴을 찾았다. 성 안 곳곳에 촛불이 밝혀져 있었고 아직도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아직 사람들과 만나고 계시려나.’
미리 침실로 사용하라고 안내받은 적이 있는 방 근처에 도착했을 때, 아드리아나는 복도를 걸어오는 펜과 마주쳤다. 그는 발렌틴이 이제 막 잘 준비를 하고 침실로 들어가더라고 알려주었다.
“벌써 주무시겠다던가요?”
“글쎄요. 아무튼 손님들이 물러가자마자 도망쳐 오셨습니다. 마님께서 아직 안 돌아오셨다고 우시기 직전이니 어서 가 보십시오.”
펜이 웃지도 않고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아드리아나는 설마하면서도 입꼬리를 한껏 올린 채로 침실 문을 열었다. 그리고 안쪽을 빼꼼 들여다보았다. 몰래 훔쳐보려던 생각은 수포로 돌아갔다.
이미 침대 한쪽에 자리 잡고 기대어 앉은 발렌틴이 자기 팔로 머리를 받친 채로 문 쪽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앗, 다 들렸나?’
아드리아나는 겸연쩍어하며 문을 닫고 침대로 다가갔다. 발렌틴이 이불을 들쳐주었다.
“당신 피곤하세요? 일찍 잠자리에 드셨네요.”
“응. 당신은 기운 넘쳐 보이는군.”
“방에 들어오기 전에 기분 좋은 얘기를 들었거든요.”
아드리아나가 이불 속에서 발렌틴의 가슴을 끌어안고 기대며 말했다.
“어떤 얘기인데?”
그는 펜의 이야기를 듣지 못한 듯, 아드리아나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아드리아나는 대답해주지 않고 싱글싱글 웃으며 남편의 얼굴을 만졌다. 그러자 발렌틴이 몸을 눕히고 팔베개를 해주며 입을 열었다.
“…낮에 내 사촌이 당신에게 무례하게 굴어서 미안해. 아직 어려서 그럴 거야.”
“이해해요. 자기 아버지의 라이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영부인께서는 뭐라고 하시던가?”
발렌틴이 애처로운 듯 아드리아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저를 사랑해주시겠다 하셨어요.”
아드리아나가 으쓱해하며 말하자, 그가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웃었다.
“그게 뭐야.”
“그게 다예요. 정말이지 당신 판박이 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슨 뜻이야?”
발렌틴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인상을 더욱 찌푸리며, 상체를 일으키고 아드리아나의 위로 올라왔다. 웃으며 버둥대는 아드리아나에게 몸을 누르며, 그가 입술을 겹치고 깊은 입맞춤을 했다. 저도 모르게 애타는 한숨이 흘러나오고, 섞이는 숨결이 금세 뜨거워졌다.
아드리아나가 어깨에 팔을 두르며 안기자, 발렌틴은 곧바로 옷을 벗기 시작했다.
“저, 씻고 잘 준비하고 올게요.”
아드리아나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그러면서도 미련이 남아 젖어드는 눈으로 그의 살갗을 쓰다듬었다. 남편의 탄탄하게 솟은 가슴을 어루만지는 손을, 발렌틴이 지그시 누르고 아래로 미끄러뜨려 바지 앞으로 집어넣었다.
“조금만 이따가.”
그의 입술이 목에 닿고, 아드리아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
성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되면서 필연적으로 규모가 커지리라고 예상은 했지만, 성내를 가득 채우고 떠들썩해진 인파를 보니 도저히 자신의 결혼식이라고 믿을 수가 없었다.
“보셨어요? 왕자님들이 오셨어요!”
“헉….”
아드리아나는 신부 대기실이 차려진 2층에서 방문객들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크게 숨을 삼켰다. 살면서 아이넨의 왕족을 만나본 일도 없었다. 왕자라니. 그들이 왕자인지 모르는 채로 지나치다가 보았어도 ‘이 사람들 왕자인가 보다.’하고 생각할 법한 오라가 보이는 듯했다.
“아아, 레이넌 왕세자님은 정말…. 같은 인간인데 어떻게 저렇게 생기실 수가 있죠?”
투스미아 출신인 엘레나는 왕자들을 보며 지금까지 보인 적 없는 흥분을 드러냈다.
아드리아나는 왕자들이 자신의 미의 기준에서는 조금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말할 수가 없었다. 둘째 왕자는 거의 거인족으로 보였고, 왕세자는 표정과 태도에 거만함이 넘쳐 흘렀다.
“나 좀 봐, 얼른 들어가서 마무리해요, 마님.”
아드리아나는 오늘 아침에 합류한 엘레나와 공작의 시녀들의 손길로 단장을 했다. 웨딩드레스는 사이즈도 재 가지 않고 도대체 어떻게 맞췄는지 신기하게도 몸에 꼭 맞았다.
‘아는 사람들을 보면 정신이 좀 현실로 돌아올 것 같은데. 오빠 결혼식이니 로레인 수녀님도 오늘은 와주시겠지? 소니아랑 웬디는 언제 오려나….’
투스미아의 까다로운 입국 심사나 여행 경비 문제가 있어서 지인들을 초대하기는 어려웠지만, 소니아 부부가 헤이즐과 웬디를 데려와주겠다고 했었다.
‘웬디가 얼마나 기뻐할까.’
아드리아나는 혼자인 자신을 보고 아직도 시집 못 갔냐며 걱정하던 웬디를 떠올렸다. 빨리 좋은 남편감을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해 준 일도. 잘생긴 남자를 만나게 해달라던 웬디의 기도가 떠올라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엘레나, 나 아직 밖에 나가면 안 돼? 친구들이 왔는지 보고 싶어.”
“가만히 계세요, 마님. 아직 머리 장식도 안 끝났어요. 신부를 만나고 싶은 사람은 이쪽으로 오시라고 할게요.”
엘레나가 다른 시녀를 시켜서 하객들에게 말을 전하도록 했다. 아드리아나는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발렌틴은 어떻게 되어있을지 상상하며 미소 지었다.
시녀가 나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신부를 보겠다고 들어오는 이가 있었다.
아드리아나는 작은 티아라 장식을 고정하느라 고개를 움직이지 못하고 거울에 비친 손님의 모습을 확인하려 흘끔대었다. 그러나 손님의 키가 너무 커서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안녕, 예쁜아.”
웃음기 가득 섞인 허스키한 목소리에, 아드리아나는 심장이 철렁할 만큼 놀랐다. 아직 엘레나가 자신의 머리에 손을 대고 있다는 사실도 있은 채, 벌떡 일어나며 뒤를 돌아보았다.
제시카는 상상도 하지 못한 긴 치마 드레스 차림을 하고 있었다. 시원하게 트인 치마 옆선으로 다리를 떡 벌리고 서 있는 폼은 이전과 다름없었지만.
“제시카….”
아드리아나는 반가움에 그녀에게 가서 덥석 끌어안았다. 아는 얼굴을 보고 현실감이 느껴지기는커녕 점점 더 흥분하고 혼란스러워졌다.
“세상에…. 정말 제시카예요? 어떻게 왔어요? 제시카도 공작님과 아는 사이에요? 그동안 잘 지냈어요? 아아, 어쩜….”
“야, 하나씩만 물어봐.”
제시카가 허리를 숙여서 아드리아나를 안고 등을 토닥이며 웃었다. 단 며칠을 알고 지냈던 사이인데도, 오래된 친구를 잃었다가 다시 찾은 기분이었다. 아드리아나는 제시카의 목을 풀어주고 믿기지 않아 하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거 봐요. 나 결혼해요.”
드레스 자락을 살짝 들어 올리며 말하자, 제시카가 시원스러운 입매를 가로로 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 널 보러 왔거든.”
그녀의 말이 너무 뻔뻔해서 아드리아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제시카는 여자를 잘 유혹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남자로 태어나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천하의 난봉꾼이 될까 봐?”
둘이서 웃다가, 아드리아나가 크게 심호흡을 해서 흥분을 가라앉힌 후에 입을 열었다.
“…혹시 발렌틴과 아는 사이였어요?”
“뭐…. 웨버 경 때문이기는 했지.”
아드리아나는 발렌틴이 자신의 생각보다 더 깊이 자신의 일에 관여하고 있었음을 깨달으며 기분이 묘해졌다.
나쁜 일은 하나도 없었다. 목숨을 구해주었고 혼자 헤매던 때에 지켜봐주었다. 그래도 희미한 두려움이 일어나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그가 이런 일에 대해 완전히 모르는 척하고 있기 때문에. 어쩌면 자신과 관련한 모든 진실마저 그가 알고도 모르는 척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에.
‘아시면서 눈감아주고 계시는 거라면 더 잘 된 거잖아. 털어놓았다가 그분이 실망하시는 걸 보지 않아도 될 테니.’
“오드리.”
제시카의 목소리에 아드리아나가 내리깔았던 눈을 들었다.
“웨버 경 오늘 완전 잘생겼더라.”
아드리아나는 얼굴을 붉히며 입술을 오므렸다. 아닌 척 애써보려 했지만, 주책스럽게도 입가의 웃음이 가시질 않았다.
“이제 웨버 경한테도 가서 말해야지. 오드리 오늘 완전 장난 아니라고.”
“뭐가 장난 아닌데? 왜 여기에 있어, 제스?”
갑자기 나타난 펜이 제시카를 찾으며 들어왔다. 그는 기겁하는 시녀들에게 허리를 굽실굽실해 숙여 보이고 아드리아나에게도 사과하며 제시카를 밖으로 이끌었다.
“어른들이 찾으시는 거 못 들었어? 빨리 나와.”
“남자가 어딜 들어 오냐. 너나 꺼져.”
“시끄럽게 굴지 말고….”
그때 펜과 같이 왔던 사람이 대기실 밖에서 슬쩍 안쪽을 쳐다보았다.
“여보.”
그가 작게 불렀다.
굳이 그렇게 부르는 게 우스워서, 아드리아나는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미소 지으며 그에게 가서 뺨을 어루만져주었다.
“당신을 데리러 왔어. 신부를 누가 빼앗아갈지도 모른다고, 제스가 겁을 주더군.”
발렌틴의 말에 아드리아나는 제시카를 한 번 쳐다보았다가 남편을 살짝 흘겨보았다. 제시카와 아는 사이라는 사실을 감추지도 않는 그를 보며, 지금까지 고민하던 자신이 바보 같아졌다.
아드리아나는 오늘 그와 둘이 되면 모든 것을 털어놓으리라고 마음먹었다. 자신이 누구의 딸인지를, 그날 마차를 탔던 이유를, 사고 후에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던 이유를.
============================ 작품 후기 ============================
선추코평쿠 고맙습니다. 평안한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