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70 바쉬 공작의 성 =========================================================================
아드리아나가 늦은 아침이 되어 잠에서 깼을 때는 발렌틴이 곁에 없었다. 나가서 찾아보려고 몸을 일으키자 배에 둔탁한 통증이 느껴지기에, 끙끙대며 도로 드러누웠다. 문득 아래가 축축해지는 느낌이 들어 이불을 들춰보니 옅게 배어나온 혈흔이 보였다.
“아, 아직도….”
몸을 웅크린 채로 당황하고 있는 사이에, 발렌틴이 방으로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수프 접시와 샐러드가 놓인 쟁반이 들려 있었다.
그는 아드리아나에게 아침 인사를 해주며, 작은 테이블을 침대 옆으로 끌어와 수프를 올려주었다.
“당신 몸은 좀 어때? 괜찮아?”
“네…. 식사는 하셨어요?”
“나 먼저 먹고 왔어. 앉을 수 있겠소?”
아드리아나는 조금 머뭇거리다가, 발렌틴에게 피가 또 나온다고 알렸다. 그는 새벽보다 침착한 태도로 들어주고, 엘레나를 불러서 도와주게 했다. 그러고나서 나중에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이따 의원이 올 거야. 우선은 이거 먹고 쉬어요.”
발렌틴이 아드리아나를 안아서 침대에 기대어 앉히고 등에 베개를 받쳐주며 말했다.
“네, 고마워요.”
아드리아나는 파리한 모습을 보이는 게 부끄러워서 고개를 조금 숙인 채로 대답했다. 음식을 앞에 두고 쭈뼛대고 있노라니 그가 곁에 와서 앉았다.
“먹여줄까?”
“제, 제가 먹을 수 있어요.”
아드리아나가 얼른 수저를 들고 수프를 떠서 입에 넣자, 발렌틴이 작게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는 포도 한 알을 집어서 자기 입 안에 넣고 우물거렸다.
“혹시 식사하는데 내가 옆에 있으면 불편한가?”
“아뇨, 좋아요.”
아드리아나의 대답에 발렌틴이 기분 좋은 듯 미소 지었다. 그는 곁에서 과일을 야금야금 집어먹으며 기다려주다가 아드리아나가 먹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식사를 다 마치자, 손으로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빗어주고 칭찬해주듯 꼭 끌어안고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왠지 어제보다 더 다정해졌다. 아드리아나가 혼절하고 하혈한 것 때문에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발렌틴은 웬만한 일은 직접 수발을 들고 곁에 있어주려 했다. 일에 복귀하고 나면 이렇게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날이 더 많을 거라며 쓴웃음을 짓기도 했다.
잠시 쉬고 있는 사이에 의원이 방문했다. 아드리아나는 여성 의원을 처음 봐서 매우 신기했다. 그녀는 진찰을 해보더니 괜찮다고 부부를 안심시켜주고, 출혈이 멎을 때까지는 관계를 삼가라고 일렀다. 발렌틴은 고분고분하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 후 발렌틴은 오후에 잠깐 외출을 했다가 저녁 시간이 되어서 돌아왔다. 그는 나가지 못하는 아드리아나를 보살피느라 같이 방 안에 틀어박혀 있었다. 신문을 뒤적이는 그의 곁에서 뒹굴거리며 그가 다 본 신문을 가져가 읽는 아드리아나를 재미있어 하며 몇 번이나 입을 맞추었다.
밤이 되자, 그가 침대 옆으로 들어왔다.
아드리아나는 발렌틴이 다른 방에서 자겠다고 하지 않아서 기뻤다. 의원의 당부대로 관계를 갖지 않고 얌전히 잠들어야 했지만, 그날은 불평하지 않았다. 그는 아드리아나를 품에 안고 다정하게 몸을 어루만져주다가 잠이 들었다.
다행스럽게도 다음 날은 컨디션이 좋아져서, 낮에는 함께 산책도 할 수 있었다. 출혈이 조금은 있었지만, 이제 진통제를 먹지 않아도 통증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아드리아나는 그날 밤에도 자신을 끌어안고 누운 남편을 바라보다가, 슬금슬금 그의 몸을 더듬기 시작했다. 그의 셔츠 위로 가슴을 쓰다듬고 킁킁대자, 그가 한쪽 입술 끝을 올리고 말했다.
“영락없는 강아지로군.”
그의 말에 아드리아나는 입술을 삐죽 내밀고 눈을 흘겨준 후, 다시 손을 놀리는 일로 돌아갔다. 어쩐지 애무를 받는 그보다 아드리아나가 더 흥분해서 금세 헐떡였다. 집요한 손길에 발렌틴이 느끼는 듯한 낮은 숨소리를 내자, 아드리아나는 더 참을 수가 없어져서 아래로 손을 내렸다.
남편의 부푼 앞을 어루만지며, 달아오른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촉촉하게 젖은 눈을 내리뜨고 조용히 아드리아나를 바라보았다. 아드리아나는 그의 품 안에서 그를 올려다보며 계속해서 손을 움직였다. 손 안에서 그의 중심이 커다랗고 단단하게 변해가는 것을 느끼며 침을 꼴깍 삼켰다.
“…꺼내도 돼요?”
조그맣게 묻자, 그가 바지 앞을 약간 내려주었다. 아드리아나는 이불 속에서 그의 남성의 상징이 살갗을 드러내고 나와 있을 장면을 상상하고 더욱 상기되었다. 입을 앙다물고 코로 가쁜 숨을 쉬며, 남편의 앞을 쥐고 흔들었다. 첨단에서 배어나온 미끄러운 체액을 문질러보고 손가락으로 성기 전체를 신중하게 훑으며 모양을 살펴본 후, 다시 기둥을 잡고 흔들었다.
발렌틴이 희미하게 신음하더니, 작게 말했다.
“…그 아래도 만져줘.”
아드리아나는 눈가를 적실 정도로 흥분하며 그의 기둥 아래에 있는 음낭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다리 사이가 뜨거워졌다. 어젯밤의 상처가 다 낫지 않은 탓에 달아오른 자리가 따갑고 화끈거렸다.
“학, 학….”
헐떡이는 아드리아나의 입술을 발렌틴이 쪽 빨아들이며, 손으로는 머리카락 사이를 부드럽게 헤집으며 두피를 마사지했다. 그러다 얼마 후에는, 그의 남성을 쥔 그녀의 손 위를 감싸고서 스스로 수음하듯 자극하기 시작했다. 지그시 내려다보고 있던 그의 눈이 감겼다. 그는 이내 자신의 다른 손 안에다 사정했다.
“후아….”
아드리아나는 몸을 잘게 떨며 짜릿한 쾌감을 느꼈다.
이내 손을 씻고 오겠다고 일어난 발렌틴의 자리를 만져보았다. 그의 체온이 아직 남아 있었다. 사랑을 나눌 때면 좀 더 관능적으로 짙어지는 체향도.
조금 전, 자신의 손 안에서 절정을 느끼던 그를 떠올렸다. 직접 몸을 섞은 것도 아닌데 이루 말할 수 없는 만족감과 피로감에 휩싸여, 아드리아나는 발렌틴이 돌아오기도 전에 잠이 들고 말았다.
*
“당신 정말 괜찮겠어?”
“네. 이제 아무렇지도 않아요.”
토요일 아침, 두 사람은 예정대로 투스미아로 출발하기로 했다.
아드리아나는 처음으로 배를 타게 되어 들떴다. 투스미아까지는 육로로도 갈 수 있었지만, 전부터 근사한 배에 올라보고 싶다며 기대하고 있던 터라 선로를 통해서 가기로 했다.
성으로 향하는 도로를 달려, 리무진이 항구에서 멈추었다. 멀리 해안에 정박해 있는 몇 척의 배가 보였다. 일대가 무척 소란스럽기에, 아드리아나는 자신처럼 배를 처음 타는 이가 많은 모양이라고 여겼다.
“발렌틴, 우리는 어디에 타고 가나요?
아드리아나가 차에서 내리며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발렌틴은 크게 한숨을 내쉬며 해안 쪽을 돌아보았다.
“셋이서 저 계단을 올라가면 얼마나 웃길지….”
발렌틴은 아드리아나를 항구로 데려가더니, 배들 중에 가장 큰 유람선 쪽으로 이끌었다. 아드리아나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바쉬 공작님은 무조건 큰 걸 선호하시지.”
그 거대한 유람선은 두 사람의 결혼식이 치러질 바쉬의 성주가 보낸 것이었다. 선체에는 바쉬의 위풍당당한 문장까지 떡하니 그려져 있었다.
발렌틴은 이제 요란 떤다는 소리를 듣겠다고 창피해했지만, 아드리아나는 유람선이 그의 회사에서 본 그림과 비슷한 디자인이라는 사실에 감격하고 있었다.
“케이드 왕자님의 배와 비슷해요, 발렌틴. 너무 멋있어요. 공작님은 정말 좋은 분이시네요. 저희를 위해서 성을 빌려주신 데다가 배까지 보내주시다니….”
아드리아나가 벅찬 감동에 젖어 말하자, 발렌틴은 복잡한 표정으로 웃었다.
“당신이 기뻐하니 이것도 괜찮군.”
“…제가 보기엔 압박의 일종 같습니다만.”
펜이 발렌틴에게 작게 말했다. 발렌틴은 생각하기도 싫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아드리아나를 데리고 유람선의 계단을 올랐다.
청명하게 빛나는 맑은 하늘과 바다, 오케스트라의 유려한 연주, 산해진미를 담아 내온 맛있는 요리에 아드리아나는 연신 감탄을 터뜨렸다.
신분 높은 이들의 대접은 그들 자신의 명예와 관련된 것이다. 대접받는 이의 겸손함과는 별개로 마냥 부담스러워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다. 게다가 공작쯤 되는 존재라고 하면 같은 세계의 사람이라는 현실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높은 곳의 존재다. 빚지는 기분에 안절부절 하는 일 없이 호의를 즐길 수 있었던 이유는 그 때문인지도 몰랐다.
“바쉬 공작님은 배포가 크신 분인가 봐요. 선뜻 이렇게나 베풀어주시다니.”
투스미아 왕국의 공작쯤 되면 부와 권력 면에서 아이넨의 왕세자 정도에 비유되곤 했다. 통치하는 땅과 거느린 군대를 가지고 말하자면, 사실상 아이넨의 국왕과 견주어도 지지 않을 터였다.
“꿈만 같아요. 그분은 당신 고향의 영주도 아니신데 어째서 이렇게 성대하게 은혜를 베푸시는 건가요? 너무 황송해요.”
“음…. 굳이 따지자면 친척이신데…. 그분도 다른 높은 분들이 그렇듯이 이런 자랑을 좋아하시지. 당신이 배를 타고 싶어 한다고 부모님께 말을 했는데, 그분의 귀에도 들어간 모양이야.”
아드리아나는 허억 하고 숨을 삼켰다. 귀족 가의 사람들이란 몇 사람 건너면 왕가의 친척이 되는 일도 흔하다지만, 아드리아나가 만나본 몇 안 되는 친척들은 다들 비슷비슷한 신분을 갖고 있었다. 설령 왕가와 인연이 있었다고 한들, 아버지가 수도까지 데려가주지 않았을 터였지만.
머릿속에서 바쉬 공작에 대한 커다란 동경의 이미지가 무럭무럭 자라났다. 이시스 산이 있는 바쉬 땅의 주인, 친척의 신부가 말한 소망을 들어주겠다고 자신의 호화 유람선에 호의를 가득 실어서 보내주는 자상한 인물.
‘그분께 뭐라고 감사를 드리면 기쁘게 여기실까.’
어릴 적부터 낙원처럼 상상하며 좋아하던 땅의 주인이다 보니 처음부터 막연한 호감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발렌틴의 자상한 친척이라는 이유로 더욱 존경하게 되었다.
유람선은 그로부터 4시간이 지난 후, 투스미아의 해변에 닿았다. 아드리아나는 발렌틴이 우려하던 것처럼 멀미를 겪지 않고, 말짱한 상태로 뭍에 발을 디뎠다. 요리사가 준 멀미약 덕분인지, 들떠서 지나치게 기운이 넘친 덕분인지, 여행은 내내 쾌적했다.
이후 두 사람은 국경에서 로아타르까지 마차를 탔다. 투스미아는 아이넨보다 체계가 엄격하고 폐쇄적이어서 입국할 수 있는 루트가 적었고, 영지간의 경계선을 따라 돌아가야 하는 구간이 있어서, 실제 거리보다 긴 거리를 이동해야 했다.
“피곤하지?”
문득 발렌틴이 물으며 손을 잡았다. 아드리아나는 고개를 저으며 미소 지었다. 그가 손을 잡아주는 게 좋아서 그의 손을 꼭 맞잡은 채로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꿈만 같았다. 꿈에서나 상상하던 연인을 만나고, 그를 따라 꿈속의 세계로 들어와 버린 듯한 기분이었다.
“…당신 정말 강아지 같아.”
발렌틴은 뭐가 우스운지 입꼬리를 끌어올린 채로 아드리아나를 쳐다보고 있다가, 샐쭉하게 올려다보자 아드리아나의 턱을 붙잡고 입을 맞추었다.
“…로아타르에서 키우던 강아지가 있는데, 얼마 전에 새끼를 낳았나 봐. 한 마리를 우리 집에 데려갈 거야.”
“정말이세요?”
아드리아나는 갑작스러운 입맞춤으로 달아오른 뺨을 매만지며 발렌틴을 바라보았다. 이전에 그의 집에서 개를 키우고 싶다고 했던 말을 기억한 모양이었다.
“당신이 보고 예쁜 녀석으로 골라.”
그가 말하고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아드리아나는 새 식구가 될 그 강아지의 어미 털은 무슨 색인지, 성격은 어땠는지, 크기는 얼마나 자라는지 등 질문을 쏟아냈다. 그러다 어느 정도 답을 얻은 후에는 그의 가족들에 대해서도 묻기 시작했다.
‘어떤 분들일까. 내가 그분들의 마음에 들게 잘할 수 있을까.’
아드리아나는 한참 동안 발렌틴의 가족에 대해 생각하다가, 자신의 부모를 떠올렸다.
발렌틴을 가족에게도 보여주고 싶었다. 좋은 사람을 만나서 좋은 대접을 받고 있다고 알려주고 싶었다. 너무 행복에 겨워서인지, 이 순간만큼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을 아버지도 애틋하게 생각이 되었다.
‘어머니와는 곧 만날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어머니에게 남편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것도 좋겠지만, 리노아스의 성으로 데려가서 정식으로 인사시켜주고 사위로서 대접받게 해주면 더 좋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날이 올까.’
아드리아나는 발렌틴의 아내가 되어 항상 받기만 할 뿐, 무엇도 해주지 못한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제가 당신에게 뭘 해드릴 수 있을까요?”
“아기 낳아줘.”
그가 찰나의 고민도 없이 대답했다. 마차의 창가에 턱을 괴고 태연스럽게 말하는 그를 향해, 아드리아나가 살짝 눈을 흘겼다.
“당신은 제게 바라는 게 그것밖에 없으신가요?”
“흠.”
발렌틴의 눈이 가늘어졌다.
“나를 예뻐해 줘요.”
그의 말에 아드리아나는 웃음이 나오면서도 왠지 가슴이 찡해져서 그를 끌어안았다.
이윽고 마차가 멈춰 섰다.
벌판 위에 드문드문 세워진 작은 구조물과 짚더미 외에는 시야를 가리고 방해하는 것이 없었다.
짙푸른 하늘마저도 아이넨의 것보다 광활하고 압도적인 다른 존재로 보였다. 아래로는 새하얀 눈밭이 끝도 없이 펼쳐진, 로아타르 땅의 입구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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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추코평쿠 고맙습니다. 평안한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