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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보다 아름다운-58화 (58/140)

00058  입맞춤  =========================================================================

발렌틴은 자기가 놀 줄 모르는 재미없는 사람이라는 것이 진심으로 걱정되고 있다는 말을 했다. 오늘 둘만 있을 때마다 방치한 것 때문인 듯했다. 아드리아나가 괜찮다며 웃어주자, 그는 썩 미덥지는 않아 하며 모호하게 미소 지었다.

“…소니아에게 뭐라고 말했어?”

맞은편 의자에 비스듬히 몸을 돌리고 앉아 있던 그가, 아드리아나를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아드리아나가 작게 입을 벙긋거리며 눈치를 살피자, 발렌틴이 한쪽 입술 끝을 슬쩍 올렸다.

“아….”

아드리아나는 뭔가 말하려다가 멈추었다. 그가 어느 부분을 물은 건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가 자신들이 떠들었던 부끄러운 화제에 대해 지적하고 있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저는….”

순식간에 얼굴이 뜨거워져서 눈가가 촉촉해졌다. 발렌틴이 기분 나빠하는 걸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어젯밤부터 줄곧 그와의 입맞춤을 곱씹으며 색정적인 생각에 빠져 있었다는 사실을 그에게 들킨 것만 같아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오드리.”

그가 테이블 위로 상체를 조금 내밀며 손을 뻗었다.

아드리아나는 눈을 깜박이며 자신 앞으로 뻗어진 그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을 잡아달라는 것 같아서, 무릎 위에 포개고 있던 손을 테이블 위로 올리고 조심스럽게 그의 손등 위를 덮었다.

손 크기의 차이 때문에 전체가 다 덮이지 않기에, 작아 보이는 자신의 손을 살짝 옮겨서 덮어보았다.

그가 웃는 기척이 들렸다. 그가 웃기에 금방 따라서 미소 짓자, 그가 아래에 깔려 있던 손을 천천히 뒤집어서 아드리아나의 손을 꼭 잡았다.

“혹시 조바심 내고 있다면 그러지 않아도 돼. 나는 당신이 원할 때까지 기다릴 테니까.”

그가 말했다.

아드리아나는 지금도 그를 원하고 있었다. 물론 혼인 서약을 할 때까지는 기다리고 싶었다. 고민한 것은 그저 서류가 완성되는 모레냐, 결혼식 뒤냐 하는 것이었는데, 그가 이다지도 자상하게 말을 해주니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제까지라도 기다려주실 건가요?”

“아니. 식을 올리고 나면 안 기다리지.”

그가 정색하고 말했다.

아드리아나는 조금 웃다가 다시 물었다.

“당신은 이런 대화가 부끄럽지 않으신가요?”

“안 부끄러워. 난 아가씨가 아니니까.”

“전 너무 부끄러워요. 그리고 당신은 남자 치고도 말씀하시는 데에 부끄러움이 없으신 것 같아요.”

발렌틴이 잠시 머뭇거렸다.

“…더 조심하는 게 좋을까?”

“지금도 조심하고 계시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러려고 노력하는 편이야.”

아드리아나는 눈을 가늘게 하고 그를 바라보다가, 그의 손을 살짝 쓰다듬었다.

“좋아요. 지금 정도면 돼요. 싫다는 말은 아니었어요.”

“알겠소.”

발렌틴은 아드리아나에게 부끄럽다는 말을 듣고는 더 묻지 않았다. 그는 앞으로 자기가 특별히 조심해주었으면 하는 것이 있지는 않은지, 내일 성에 가서 하고 싶은 일이 있는지, 그런 것들에 대해 묻고 자리를 접었다.

그날도 역시 그는 같이 자자고 말하지 않았다.

아드리아나는 발렌틴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조심하는 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아드리아나도 말을 삼켰다. 그래야 했다. 실은 그와 함께 자면서 다짐대로 그를 귀찮게 하지 않고 편히 재워주리라고 스스로를 과신하는 일이 어리석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아드리아나는 잠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고요함 속에서, 옆방에 곤히 잠들 약혼자를 생각했다. 자신과 그의 평온한 잠을 생각하며 눈을 감았지만, 얄궂게도 꿈속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그토록 원하는 것이 주어졌다. 아드리아나는 곁에 다가오는 그를 느끼고 그의 품에 안겼다. 따뜻하고 나른한 행복에 잠겨들었다. 그대로 평화롭게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이내 발렌틴이 아드리아나의 몸을 더듬기 시작했다. 아드리아나는 눈을 감은 채로 뜨거운 한숨을 토해내다가, 문득 자신이 아래에 아무것도 입지 않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어질 상황을 예상하며 터질 듯 심장을 울리고 있다가, 갑자기 눈이 떠졌다.

“하….”

등이 축축했다. 침대에 닿아있는 등에서 발산하고 있는 열이 이부자리를 데우고 다시 몸을 덥히고 있었다.

‘더워….’

아드리아나는 방 안에 자기 혼자뿐이며 잠옷 원피스 아래에 속옷도 제대로 입고 있음을 확인하고 몸을 일으켰다. 땀으로 살짝 젖은 자리에 서늘한 밤공기가 닿아 부르르 몸이 떨렸다.

마음에 드는 것으로 골라서 입으라며 몇 벌을 내어받았던 잠옷들 중에 새것으로 갈아입고 나서 세수를 했다. 빨리 다시 잠이 들려면 그러지 않는 게 좋았겠지만, 야릇한 꿈 때문에 잠이 달아나버렸고 목이며 등 같은 곳이 너무 뜨거워서 식히고 싶었다.

잠깐 바람을 쐬기 위해 방을 나왔다. 아드리아나는 컴컴한 벽난로 앞에 혼자 멍하니 앉아 있다가, 달빛에 환하게 밝혀져 있을 발코니로 향했다.

커튼을 살짝 젖히고, 발코니의 창문을 열었다.

그가 거기에 서 있었다.

“…왜 깼소?”

문 열리는 소리에 돌아본 발렌틴이 아드리아나를 보고 물었다. 아드리아나는 입만 벌리고 그를 바라보고 있다가 이윽고 정신을 차렸다. 슬며시 잠옷 위에 입은 가운의 앞을 여미면서 입을 열었다.

“그냥… 좀 더워서요. 열이 나서….”

“열이 난다고? 어디 안 좋아?”

발렌틴이 다가오더니 이마를 짚었다.

“아….”

그의 손길이 닿자 저도 모르게 떨리는 한숨이 새어나왔다. 그는 아파서 그렇다고 생각한 듯 심각한 얼굴로 눈을 들여다보았다.

“지금은 열이 내린 것 같은데… 어디 아픈 거야? 또 무서운 꿈을 꾼 건가?”

아드리아나는 몽롱한 기분으로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눈동자, 걱정하는 목소리, 뺨과 목을 만져보는 그의 시원한 손이 기분 좋았다.

“괜찮아요, 발렌틴. 자기 전에 생각을 너무 많이 해서, 좀 심란한 꿈을 꿔서 그래요.”

아드리아나가 안심시켜주려 말하자, 발렌틴이 고개를 끄덕이며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그러고는 몸을 살짝 끌어안아 주었다.

그대로 잠시 서 있다가, 아드리아나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우리 오전에 성에 가면 뭘 하나요?”

“복잡한 건 없어. 이름 쓰고 주소 쓰고 전화번호 쓰고 그러면 끝이야.”

“저와 당신 따로 따로 다 쓰나요?”

“이름만. 현재 같이 살고 있는 걸로 하면 나머지는 하나만 써도 되겠지.”

조용히 그런 대화를 주고받으며, 아드리아나는 그의 품에서 눈을 감고 아늑함에 젖어 있었다.

역시 오늘도 서로 끌어안고 자자고 말하고 싶었다. 또 키스해주길 바란다고 말하고 싶었다. 당신이 너무 좋다고, 그런 고백을 할 수 있게 되는 건 언제일지 몰랐다.

만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약혼자. 그에게 몸가짐이 가볍고 경솔한 여자로 생각되고 싶지 않아서 무엇도 선뜻 말하기가 어려웠다.

“…잘 수 있겠어?”

발렌틴의 물음에 아드리아나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은요?”

“나도 금방 잘 거야.”

아드리아나는 두 손을 내밀어서 조심스럽게 약혼자의 얼굴을 감쌌다. 까치발을 들고 고개를 들자, 그가 얼떨결에 허리를 숙여주었다.

가까워진 그의 뺨에 입을 맞추었다. 그가 전에 했던 것처럼, 지그시 입술을 누르고 있다가 아쉬움을 남기며 느릿하게 물러났다.

그리고 옅게 미소 지은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눈동자 역시 많은 할 말을 담고 있는 듯 보였다. 그의 얼굴에 닿아있던 손이 스르르 미끄러져 내려와 그의 팔을 살짝 쓰다듬었다. 그도 아드리아나의 손을 잡아주었다.

“잘 자요. 만약 잠들기 어려울 것 같으면….”

그가 말하려다 갈등하는 것 같기에, 아드리아나가 먼저 말했다.

“전 괜찮아요. 당신도 일찍 들어가셔서 주무셔야 해요.”

아드리아나는 그의 손을 놓으며 몸을 돌렸다.

그런데 손이 아직 그에게 잡혀 있었다.

뒤를 돌아보려고 한 순간에 그가 손을 놓아주었다. 그 대신인 듯, 한 발 다가와 두 팔로 어깨를 감싸안았다.

시간이 느릿하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잠이 다 깼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던 건지도 몰랐다. 아주 느린 속도로 그의 품에 안기고 서서히 밀착되었다. 그의 손이 감싼 어깨 뒤가 강한 힘으로 그의 몸에 눌릴 때도 그랬다.

심장이 크게 울리는 소리를 들으며 멍하니 안겨 있다가 손을 들어서 그의 등을 쓰다듬으려고 한 순간, 몸이 살짝 밀쳐졌다.

발렌틴이 아까 전까지 만져보고 식혀주었던 아드리아나의 얼굴을 다시 만졌다. 아드리아나는 몸에 도로 열이 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가 고개를 숙이고 다가오는 것을 볼 때에는 열 때문에 숨이 멎을 수도 있는 걸까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그의 입술은 광장에서보다 훨씬 뜨겁고 촉촉했다. 아드리아나의 입술 위에 가만히 머물러 있다가, 상상해보았던 것보다 더 유연하고 부드럽게 움직였다. 안쪽의 젖어 있는 매끄러운 점막이 문질러지고 아드리아나의 입술이 그의 입술 틈으로 빨아 당겨졌다.

새소리처럼 조그맣게 비음이 새어나왔다. 아드리아나는 그것이 자신이 낸 소리라는 것을 깨닫고 얼굴이 더욱 뜨거워졌다. 그러나 그로 인한 부끄러움은 타액이 섞이며 내는 선정적인 소리에 묻혀서 곧 잊혔다.

발렌틴은 한 손으로는 아드리아나의 머리 뒤를 받치고, 다른 한쪽 팔로는 아드리아나의 허리를 감고 세게 끌어안았다. 신장 차 때문에 껴안으며 입을 맞추는 것이 힘들었지만, 아드리아나도 필사적으로 뒤꿈치를 들어올리고 팔을 크게 뻗어서 그의 몸을 안았다.

자신 못지않게 흥분해 있는 그를 느낄 수 있었다. 그의 단단해진 중심이 자신의 배에 눌리는 것을 느끼며, 아드리아나는 놀라는 한편 더욱 흥분했다. 두 사람의 잠옷 너머로도 그의 중심으로 몰린 피의 뜨거운 열기가 전해져 왔다.

아드리아나는 발렌틴의 팔을 붙잡으며 입술을 더욱 벌렸다. 그는 입 안으로는 들어오지 않았다. 혀가 입술을 스치고 입을 여닫으며 서로 애무하는 동안에 타액이 온통 섞였고, 아드리아나는 그것만으로도 서로 더 꺼릴 것이 없을 것 같아졌는데도, 그는 그 이상 들어오지 않고 물러났다.

발렌틴이 조용히 호흡을 고르며 가볍게 입술을 누르고 있다가 떨어져서 아드리아나를 끌어안았다. 아드리아나는 그의 등을 안고 꼭 달라붙으며 그의 가슴에서 배어나오는 향기를 맡았다. 그도 몸을 숙인 채로 아드리아나의 목덜미에 대고 그렇게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거칠어진 숨을 헐떡이며 그를 꽉 끌어안고 눈을 감았다. 품안에 다 들어오지 않는 넓은 등을 어루만지며 그가 발기했다는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았다. 그가 자신의 방에 오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하으….”

문득 목덜미에 촉촉한 살덩이가 닿아, 아드리아나는 움찔하며 어깨를 움츠렸다.

“아앗….”

다음 순간 목덜미를 세게 빨리고 작게 비명을 질렀지만, 그는 물러나지 않았다. 아프게 했던 자리를 혀로 핥고 더욱 부드럽게 입을 맞추며 달래주며 가운을 들추고 잠옷 어깨를 살짝 젖혔다.

그는 입술과 혀로 목과 어깨까지 더듬으며 오랫동안 애무했다. 아드리아나는 그의 팔에 매달려 흐느꼈다. 서 있기가 힘이 들었다. 발코니에 있는 긴 의자 위에, 혹은 침실로 가서 누우면 더 좋을 거라는 유혹이 일었다. 스커트가 걷어져 올라가고, 그의 손이 엉덩이를 부드럽게 움켜쥐었다.

============================ 작품 후기 ============================

선추코평쿠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평안한 하루 되세요.u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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