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45 불안한 각오 =========================================================================
“멀리 나가시려고요?”
“아니, 그렇게까지는 시간 여유가 없을 것 같아. 아까 뜰에 나가보고 싶다 하지 않았소?”
아드리아나는 새벽에 했던 말 때문에 그가 집 앞에 같이 나가주려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정도의 외출을 위해 두꺼운 옷에다 장갑까지 챙기라는 건가 싶어서 웃음이 나왔다.
“저 그렇게까지 추위 많이 안 타요, 발렌틴. 입고 왔던 코트 정도면 돼요.”
“장갑이 있어야 해.”
발렌틴이 단호하게 말하며 포크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의아해하는 아드리아나의 눈을 보며 물이 든 잔을 들어올렸다.
“당신에게 눈사람을 만들어 달라고 할 거야.”
아드리아나는 진지한 그의 목소리를 듣고 작게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발렌틴은 뭐가 우습냐는 듯 눈썹을 살짝 찌푸린 채로 꿀꺽꿀꺽 물을 마셨다.
둘은 나중에 점심 식사를 한 후에 외출하기로 하고, 오전 시간을 집안에서 함께 보냈다.
아드리아나는 저택 안을 구경한 후 발렌틴의 방 앞 응접실로 가서 따뜻한 불 앞에서 편지를 읽는 그를 구경하며 빈둥빈둥 시간을 보냈다. 턴테이블을 끌고 와서 레코드를 골라 틀자, 발렌틴은 처음 듣는 곡이라며 심각한 얼굴로 그것을 들었다. 체스를 두자고 말했을 때에는 왜인지 약간 움찔하는 것 같았지만, 그는 판이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시무룩해 하는 아드리아나를 보며 짓궂게 웃기도 했다.
일찍 점심을 먹고, 해가 높이 올라 찬 기운이 누그러진 낮이 되자 둘은 약속했던 대로 정원으로 나가기로 했다.
바람을 쐬겠다고 알리자, 엘레나가 뭔가 잔뜩 들고 오더니 폭신폭신한 장갑과 양털 모자로 아드리아나를 무장시키고, 목도리로는 목과 얼굴의 반 정도를 칭칭 감싼 뒤에야 밖으로 내보냈다.
추운 날씨에 주인과 약혼녀를 마당에서 뛰놀게 해주겠다고 모닥불을 지피는 일꾼들을 보니 무안하기도 했지만 본격적인 의욕이 솟기도 해서 엄청난 눈사람을 만들겠노라고 각오를 다졌다.
“저기부터 끝까지 눈을 다 써서 아주 크게 만들거예요. 옛날에 헤밀에서 해본 적이 있어요.”
아드리아나가 발자국 하나 없이 깨끗하게 눈으로 뒤덮인 넓은 잔디 쪽을 가리키며 호기롭게 말했다. 도보를 중간에 두고 작은 연못의 반대편에 있는 평평한 잔디밭은 눈덩이를 굴리기에 최적의 장소로 보였다.
“발렌틴, 당신은요? 눈사람을 안 만들어 보셨나요?”
아드리아나가 묻자, 발렌틴이 옅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로아타르에 있을 때는 겨울 내내 만들었소. 동생들 두 녀석 것을 만들어줘야 했는데 어느 한쪽이 조금이라도 크게 되면 둘이 치고받고 싸워대서 힘들었어.”
아드리아나는 열심히 눈덩이를 굴리는 발렌틴과 싸우는 두 동생의 모습을 상상하며 웃다가, 새초롬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왜 제게는 안 만들어 주세요?”
“여긴 내 집이니까.”
발렌틴은 차분한 얼굴로 대답하고서, 코트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으며 어서 일을 하라는 듯 아드리아나를 쳐다보았다.
아드리아나는 그의 황당한 대답에 입을 조금 내밀고 서 있었다.
‘언제는 이제 내 집도 된다고 하시더니.’
애당초 집이 누구의 것인지와 눈사람을 만들어주는 일이 무슨 상관인지. 아드리아나는 그가 그저 자신을 놀리려고 한 말일 거라고 생각하며 금세 웃음을 되찾고서, 약혼자를 위해 최대한 커다란 눈사람을 만들었다.
몸뚱이를 만들고 나서는 잠시 불 앞에서 쉬며 발렌틴이 건네준 따뜻한 차를 한모금 마셨다. 그런 응원까지 받고 있으니 막중한 작업이라도 맡은 듯한 기분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힘들지 않아?”
“아뇨, 재밌어요.”
아드리아나가 헤헤 웃고 컵을 넘겨주자, 발렌틴은 그것을 내려놓고 아드리아나의 목도리를 다시 끌어올려서 뺨을 가려주었다.
얼마 후, 키가 아드리아나의 어깨까지 오는 대단한 눈사람이 완성되었다. 발렌틴은 그것이 무척 마음에 드는 듯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았다.
“...여긴 해가 잘 안 드는 자리니까 빨리 녹지 않을 거야.”
나직이 말하는 약혼자를 바라보며, 아드리아나도 덩달아 미소 지었다. 그리고 슬슬 돌아갈 준비를 하기 위해 그를 따라 집안으로 들어갔다.
헤밀로 돌아가는 길에는 펜이 동행해서 운전을 하고, 아드리아나는 발렌틴과 함께 뒷좌석에 탔다.
펜은 거의 항상 발렌틴을 수행하고 다닌다고 했다. 그래서 발렌틴이 아드리아나를 알게 된 시점부터 그도 역시 아드리아나를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몇 달 전 보석들을 잃어버리고 길에 앉아 있던 아드리아나를 알아본 것도 그 때문이라고 했다.
‘노예라고 하신 건 농담이시겠지? 그런 것치고는 꽤 발언권도 있어 보였고 일꾼들 중 가장 서열이 높아보였어.’
아드리아나는 청혼의 답을 듣기 위해 올 때에 펜을 두고 직접 차를 운전하여 단신으로 왔던 발렌틴의 속마음을 좋을 대로 추측해보며, 옆자리에 앉은 약혼자에게 미소를 보냈다.
그는 배시시 웃고 있는 아드리아나의 속마음은 알 턱이 없이, 근엄해진 얼굴로 눈을 맞췄다.
“오드리. 다음 주말에 당신이 와 주면 좋겠는데 내가 데리러 올 수 있을지 모르겠어. 일 때문에 멀리 다녀올 일이 있어서 말이야.”
“무리는 하지 마세요. 조심히 잘 다녀오시고요.”
“응.”
그는 잠시 차창 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는 듯 하다가, 누군가 거리에 세워놓은 눈사람을 보더니 좋은 일이라도 생각난 듯 혼자 슬며시 웃었다.
“…발렌틴, 눈사람을 그렇게 좋아하세요?”
“아니, 딱히.”
그가 정색하고 말했다.
그럼 아까는 왜 만들어달라고 한 걸까. 게다가 무척 기뻐했던 게 틀림없는데 이상하다며 아드리아나는 그의 옆모습을 곁눈질로 빤히 훔쳐보았다.
‘...하여튼 정말 특이한 분이셔.’
하지만 더욱 특이했던 호텔에서의 첫만남부터 바로 조금 전 그의 집에서 함께 보냈던 시간까지, 앞으로도 두고두고 생각하게 될 것 같았다.
아드리아나가 따뜻한 차 안에서 졸고 있는 동안, 어느덧 헤밀에 도착했다. 눈 때문에 길이 막혀서 저녁 시간이 다 되었을 무렵이었다.
보호소로 가는 비탈길에서 미끄럼을 타는 사람들 때문에 차는 거의 사람이 걷는 듯한 속도로 길을 올라갔다.
아드리아나는 썰매를 타는 아이들 속에 보호소의 어른들도 섞여 있는 것을 발견하고서 창문을 열고 웃어댔다.
“미네타, 쉐이드 양! 다들 거기서 뭐하세요?”
“엇, 오드리, 어서 와! 안녕하세요, 웨버 경.”
건축 자재를 담아온 푸대자루를 깔고 앉아 있던 미네타가 벌떡 일어나서 차 옆으로 다가왔다. 발렌틴의 리무진을 발견한 쉐이드는 그 표정이 두려울 만큼 환하게 만개해 있어서 아드리아나를 겁나게 했다.
차 한잔 대접할 시간도 없이, 이미 시간이 너무 늦어서 어두운 길을 돌아가야 할 발렌틴 일행을 길에서 인사만 하고 돌려보내줘야 했다. 흥미 어린 시선으로 몰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발렌틴은 잠깐 내려서 인사를 나눈 후, 그곳에서 아드리아나의 배웅을 받았다.
#불안한 각오
“저기, 쉐이드 양. 쉐이드 양한테 그 책 있지 않아요?”
“어떤 책이요?”
방으로 돌아와서 넌지시 물어보자, 쉐이드가 눈을 빛내며 상체를 내밀었다.
“그... 투스미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책....”
쉐이드의 수집 품목 중 하나인 그 책에는 론도 내 왕국들의 문화와 특색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주기 위한 교본이라는 소개글이 붙어 있었는데, 실상은 그녀가 가진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남녀에 대한 호기심을 채워주기 위한 내용들로 가득했다.
예전에 쉐이드가 그것을 봐두라고 내밀 적에는 건성으로 넘겨보다 말았지만, 지금은 발렌틴과 관련한 힌트 하나라도 적혀 있는 책이라면 통독할 의지가 있었다.
“자, 그럼 힘내요, 오드리 양!”
책을 전해주며 쉐이드가 아드리아나의 손을 한번 꼭 잡았다가 놓았다.
아드리아나는 잠들기 전에 테이블 앞에 앉아서 그것을 펼쳤다.
아이넨, 코니스, 바넬, 투스미아, 이센. 북부 연합국들을 제외한 각 왕국과 독립 공국의 문화 탐구가 그 소재였다. 물론 거기서 지칭하는 문화란 게 대단히 협소한 범위일 것이 분명한데다, 각국과 남녀에 관한 선입견 가득한 비유들로 내용이 채워져 있을 걸 알면서도, 아드리아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책장을 펼쳤다.
본문의 제일 앞부분에는 각국의 복식을 차려입은 남녀의 삽화가 있었다. 아드리아나는 당장 투스미아의 남성 이미지부터 찾아보았다. 조금 실망스럽게도, 평균 신장 195cm에다 조금 비정상적으로 보일만큼 커다란 골격, 허리에는 칼을 차고 험상궂은 이목구비를 하고 있는 투스미아인의 그림은 발렌틴과는 전혀 달랐다. 그와 투스미아인의 특색에서 일치하는 것은 머리카락과 눈동자의 색 정도였다.
‘...그럼 그분은 거의 아이넨인이라고 봐야 하나.’
하지만 발렌틴은 막상 아이넨 남자들의 유들유들하고 사교적인 성격과는 너무 큰 차이를 보였고, 아이넨 평균 신장에 대비해 봐도 10cm 정도는 컸다.
‘아니, 중간 어딘가 인가?’
한편 코니스 여성의 이미지를 보니 사람들이 자신에게 코니스에서 왔냐고 묻는 이유를 백번 알 것 같았다. 아드리아나는 자신과 닮은 그 그림을 신기해 하며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다가, 쉐이드의 목소리가 들려와 뒤를 돌아보았다.
“제가 보기에는 말이에요. 겉은 중간이시고 속은 저쪽에 가까우신 것 같아요.”
쉐이드가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자못 확신하는 어조로 끼어들었다. 가히 독심술의 경지라고 생각했지만, 그 책을 달라고 한 자신의 의도를 그녀가 파악하지 못했을 리 없었다.
“...쉐이드 양도 웨버 경을 아셨어요?”
아드리아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자, 쉐이드는 침대에 앉아서 종이접기를 하고 있던 손을 놀리며 여유만만하게 미소 지어 보였다.
“아까 저도 그분과 인사를 나눠봤잖아요? 그 정도만 봐도 알 만한 건 다 알 수 있죠. 제겐 오라버니만 네 분이 계시답니다. 웨버 경은 저희 둘째 오라버니와 조금 비슷해 보였어요.”
아드리아나는 에이, 하고 장난스럽게 웃었지만, 속으로는 외동딸인 자신과 달리 형제가 많아서 비교할 대상이 있는 그녀가 부럽게도 생각되었다. 쉐이드와 마주보고 웃다가, 이내 다시 턱을 괴고 책장을 넘겼다. 고풍스러운 테두리 장식으로 디자인된 페이지들이 마음에 들어서 손으로 만져보며 흐뭇하게 종이의 질감을 느껴보았다.
몇 장 넘겨보다 보니 책이 각국의 문화에 대해 조금도 다뤄지지 않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왕국들의 환경에 대해서도 학습서보다 실용적인 정보가 적혀 있었는데, 특히 투스미아 편에서는 눈에 관한 이야기에도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었다.
설경이 아름다운 거대한 산 이시스에 관한 것도 있었다. 거기에는 눈사람을 세워 놓으면 얼마 만에 파묻힌다는 둥의 이야기도 과장되게 적혀 있었다.
그러고보면 예전 슈하스의 찻집에서 투스미아 동화책을 봤을 때에도 눈사람이 나왔었다. 남자 아이가 여자 아이에게 눈사람을 만들어주는 이야기였다. 그때는 눈이 많이 오는 지역이라서 그러려니 했었지만, 뭔가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한번 여쭤봐야지.’
페이지는 금세 각 왕국 간의 상성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마치 별자리 궁합을 다룬 책들처럼 남녀가 짝지어져서 풀이되고 있었다.
‘이런 건 그냥 재미로 보는 거니까....’
그러나 아드리아나는 눈을 말똥말똥 뜨고 지면을 읽어내려가다가, 커플 궁합 1순위로 나와 있는 ‘투스미아 남성’과 ‘코니스 여성’의 조합 편을 보고는 표정이 확 밝아졌다.
[왕국들 중에 거인왕의 피를 가장 짙게 남긴 투스미아의 남성은 남다른 신체조건을 가졌으며 혈기왕성하고 다혈질적인 본성을 갖고 있다. 다소 파괴적인 성향이 있으나 그것을 억제하는 책임감과 지킬 대상에 대한 의무감을 심어줌으로써 다스리기가 어렵지 않은 편이다. 과거에는 전쟁과 부족 내의 결투가 난무하여 평균 수명이 짧았던 탓에 현재까지도 10대에 결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가정과 자손에 대한 애착과 보호본능이 강하다. 한편 코니스 왕국은 건국 이래로 오랜 평화기를 보냈는데 남녀할 것 없이 얌전하고 예의범절을 중시하는 내성적인 이들이 많다. 특히 여성의 경우에는 자립성이 부족하고 유약하다는 단점이 있는 반면, 남편을 내조하고 북돋아주는 데에 탁월하여 투스미아 남성의 성급한 기질마저 부드럽게 달래줄 수 있다. 자기 영역 안을 벗어나는 일을 두려워하는 온화한 코니스의 아가씨와 자기 가정 안에서 활력을 얻어 울타리를 지키는 보수적인 투스미아의 전사는 상성이 상당히 좋아...]
아드리아나는 거기까지 보다가 책에 고개를 박고 끅끅 웃었다. 어떤 왕국의 이름을 갖다붙였어도 반은 수긍하고 반은 고개를 갸웃할 만한 전형적인 비유가 조금 허무하기도 했지만, ‘투스미아 남성의 성급한 기질’이라는 표현에서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입가에 미소를 가득 담고서 눈을 내리뜨고 턱을 괸 채 느긋하게 책장을 넘겼다. 다른 왕국 간의 조합에 대해서도 흥미롭게 읽어본 후, 심화 탐구 페이지에 이르러서는 느슨해져 있던 자세를 꼿꼿하게 펴며 얼굴을 붉혀야 했다.
조금 앞 페이지에서 다루었던, 1순위 커플이 서로에게 활력을 전해주고 북돋아주는 데에 최적인 조건과 성적인 취향에 대해 상세히 기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과거 유행하던 로맨스 소설에서 나왔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적나라하고 노골적인 표현에 깜짝 놀라며, 아드리아나는 후다닥 페이지를 닫고 쉐이드를 돌아보았다.
쉐이드는 하품을 하며 작게 종이 접은 것들을 유리병 안에 차곡차곡 쌓아넣고 있었다.
‘세상에 이런 책들을 팔기도 하는구나....’
테스카의 서점에도 가끔 다녔지만, 찾는 코너가 한정되어 있다 보니 이런 책들이 있다는 것은 알지도 못했다.
아드리아나는 부끄럽고 민망해 하면서도, 뺨을 새빨갛게 물든인 채로 책장을 다시 펴서 누가 볼세라 얼굴을 가까이 대고 읽었다.
“오드리 양.”
“헉, 네?”
소스라치며 돌아보자, 쉐이드가 깔깔 웃으며 이불을 둘러쓰고 누웠다. 그녀가 눈을 가늘게 뜨고 아드리아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좋았어요?”
“뭐, 뭐가요?”
“테스카에 다녀 오셨잖아요.”
“아....”
아드리아나는 콩닥거리는 심장 때문에 입술을 살짝 적시며 몸을 돌려서 쉐이드 쪽을 향해 앉았다.
“다들 잘해주셔서 편했어요. 너무 편하게 생각해서 예의 없이 보이지는 않았을지 걱정이에요.”
“있죠, 그런 분의 댁에는 침대도 최고급품으로 커다랗고 편안한 걸 들여놨겠죠?”
쉐이드가 이불을 둘러쓰고 머리를 반쯤 감싸며 눈웃음을 지었다.
아드리아나는 포근했던 잠자리를 떠올리며 긍정하는 미소를 지었다. 클로제 남작의 집에도 고급품들뿐이었지만, 아드리아나의 방에 있던 침대는 워낙 크기가 작았었다.
“어머, 오드리 양 웃으시는 것 좀 봐. 그분의 침대가 그렇게 좋던가요?”
쉐이드가 멋대로 상상하며 이불 속에서 다리를 굴렀다. 아드리아나는 당황해서 아니라고 거듭 부정하며, 귀까지 덮은 그녀의 이불을 벗겨냈다.
“어, 어쩜 쉐이드 양은.... 인사를 드리러 간 것뿐이에요. 저는 다른 방에서 잤단 말이에요.”
“뭐하러 그러셨어요? 어차피 두 분 모두 혼기는 꽉꽉 찬 데다 그분이 당장 날을 잡겠다고 하셨다던데. 그분이 잠자리를 하고 싶단 말씀은 안 하시던가요?”
아드리아나는 그런 분이 아니라고 말하려다가, 그가 상당히 유사한 말을 했기 때문에 말을 못하고 멈췄다. 그래도 분명히 그가 선을 넘은 관계를 암시하고서 한 방을 쓰자고 한 건 아니라고 믿었다.
“그, 그래도 아직 결혼을 한 건 아니잖아요.”
겨우 조그맣게 말하자, 쉐이드가 웃음을 그치더니 뜻밖의 말이라도 들은 듯 눈을 크게 떴다.
“...왜요? 쉐이드 양은 제가 그렇게 개방적인 사람일 거라고 생각하셨어요?”
아드리아나가 눈을 살짝 흘기며 묻자, 쉐이드가 의뭉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그냥, 왠지 연인이 있었을 줄 알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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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추코평쿠 고맙습니다. 평안한 밤 되세요.u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