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보다 아름다운-37화 (37/140)

00037  [2부] 기로 (발렌틴)  =========================================================================

“그 여자와 결혼하겠어.”

리무진의 뒷좌석에 몸을 기대고 눈을 감으며, 발렌틴이 말했다.

“소니아가 그 정도로 말하는 여자라면 내가 재볼 필요도 없을 테지.”

“어차피 보는 눈도 없으시지 않습니까.”

펜의 들뜬 목소리가 들려와 발렌틴은 순간 눈을 떴지만, 마음을 가라앉히며 눈길을 낮게 유지했다. 펜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굳이 노려보지 않아도 훤했다. 다른 가족들도 모두 그런 반응을 보일 것이다. 이걸로 공작 영감의 피를 안 보고도 일을 되찾을 수 있게 되었고, 듣기 지겨웠던 노총각이며 고자 소리와도 작별하게 되었으니 다 잘 된 일이다.

발렌틴은 속히 일을 실행하기 위해 목적지를 정했다.

“은행으로 가지.”

공작과 결탁해서 발렌틴을 괴롭히는 은행장이므로, ‘얌전히 결혼하기로 했소’ 한 마디만 해도 공작이 묶어둔 로아타르 명의 계좌가 풀릴 것이다. 공정거래라는 말도 허울뿐인 테스카의 비리 은행에다 돈을 맡긴 이들이 다리를 뻗고 있을 걸 생각하면 통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발렌틴은 내리깐 시선을 움직여서 차창 밖을 향했다.

밖은 노을이 가라앉고 있었다. 이제 겨우 날이 저물기 시작했을 뿐이건만 아침은 언제 오는 건지 정체 모를 초조함이 느껴졌다.

토요일에도 테스카 시내의 가게들은 은행을 포함한 많은 곳이 영업을 하고 있었다. 놀러 나온 저 많은 사람들은 일하지 않고 어디서 쏟아져 나온 건지 의문이 들었다. 이른 시각부터 취해서 떠드는 자들도 있었다.

“웨버 경도 진즉 저렇게 놀아도 보고 하셨으면 이리 갑자기 결혼하시게 되더라도 덜 아쉬우셨을 텐데 말입니다.”

펜이 말했다.

“저 따위 짓이 아쉽지는 않아. 그저....”

그저 뭐가 허무한 건지 몰랐다. 얼굴도 보기 전인 여자와 순순히 결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뿐이다. 그렇다고 유별난 방법을 택한 것은 아니었다. 발렌틴의 부모 또한 그렇게 결혼해서 지금까지 행복하게 잘 살고 있었다.

아무튼 결혼하게 되면 가정에 충실하며 그 안에서 재미를 찾으려고 노력할 것이고, 살다보면 가정을 꾸리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즐거움을 찾게 되리라고 예상하면서도 당장은 울적하기만 했다.

지나온 시간과 자기 자신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지금까지 소중하게 지켜왔던 무언가를 이대로 길에 내버려두고 덜컥 어딘가를 향해 떠나버리게 된 기분이었다.

이런 길바닥에 남겨둔 미련 따위는 아무것도 없는데.

한동안 말없이 창밖을 쳐다보고 있던 발렌틴의 눈에, 언뜻 아는 이의 모습이 스쳤다.

“세워 봐.”

은행가에 다다랐을 때였다.

발렌틴이 멀찍이에서 발견한 것은 예의 그 여자였다. 헤밀에서 처음 만났고 슈하스와 테스카에서도 우연히 마주친 적이 있었던 조난자.

몇 달 전에 제스가 마다하스로 돌아가며 저 여자의 거주지에 대해 보고한 적이 있었지만, 그때 발렌틴은 그런가 하고 말았을 뿐 어떻게 살고 있는지 직접 본 일은 없었다.

그때만 해도 호텔 안에서 혼자 불안해하며 두리번거리던 여자였다. 그런데 지금은 이곳의 주민이나 된 것처럼 돌아다니며 곁에는 어린 여자아이까지 하나 데리고 있었다.

발렌틴의 눈에는 그녀가 여전히 조난자처럼 보였다. 두 팔로 안은 커다란 쇼핑 봉투가 제법 생활력을 느끼게도 했음에도, 여자는 마치 윤곽을 따라 테두리를 따로 그린 그림처럼 배경과 전혀 어우러지지 않아 보였다.

“차를 돌릴까요?”

발렌틴은 펜의 물음을 듣지 못했다. 그는 여자가 리무진 쪽으로 가까워지는 모습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저 여자는 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첫 만남 자체도 충분히 괴상했다. 게다가 만날 때마다 점점 더 평범한 삶과 멀어지고 있는 듯 보였다. 발렌틴이나 이전의 그녀의 수준에서 생각할 수 있는 ‘평범’으로부터 말이다.

철저한 이방인의 모습이었다. 그에 비하면 발렌틴은 이곳의 원주민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저 아가씨도 참 안타깝네요. 보호받고 자랐을 귀족 영애가 혼자 저만큼 애쓰고 있다는 것도 대단한 일입니다만, 안타깝다고밖에 못하게 되었어요.”

펜의 말에 발렌틴은 속으로 동감했다. 그의 말마따나 저만큼 하고 있는 것도 대단한 일이라고. 여자는 살아남는 법을 배운 노동자의 딸이 아니라 그저 우아하고 예쁘게 걷는 걸음마나 겨우 배운 아가씨였을 테니까.

문득 바람이 크게 일었다. 여자와 소녀가 꺅 하는 표정으로 어깨를 움츠리더니 서로 쳐다보며 웃었다. ‘잠깐’ 하고 여자가 멈춰 서서 치마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그런 다음 손을 살살 움직여 아이스크림을 든 소녀의 입가를 닦아주었다.

어머니와도 같은 다정한 미소를 짓는 그녀를 보며, 발렌틴은 엉뚱한 생각을 했다.

그녀는 내 아이에게도 저렇게 다정한 어머니가 되어줄까?

미친 게 아니고서야.

결혼을 작정하고 있는 지금이어서일 거다. 보자마자 금방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까닭이 달리 있을 리 없다. 신붓감으로 고려해볼 상대가 아니었다. 지금 여자가 처해있는 상황은 위험 수준의 결핍을 갖고 있었다.

제스의 말에 따르면 저 여자는 결혼한 적이 없을 것이다. 오래전 헤밀의 숲에서 사고를 당한 그 때가 결혼 직전이었으리라. 그 후 몇 년간의 삶이 어땠을지 대강 추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발렌틴이 속한 사회의 기준으로 재본다면, 그녀는 거의 끝장난 밑바닥 인생을 살고 있는 존재다.

그 점이 너무 신경 쓰였다.

그동안 그녀의 영혼은 어떻게 되었을까? 몸은? 그전과 같을까? 어디가 얼마나 망가졌는지, 혹은 그렇지 않은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발렌틴은 끝없이 이어지려는 질문을 멈추었다.

다음 순간 여자가 바로 앞까지 다가왔고, 발렌틴은 더 자세히 그녀를 볼 수 있었다. 피부는 다소 윤기를 잃었고 초췌한 기색이 드러나 있었지만, 표정과 눈빛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섬세하게 움직였던 손가락, 소매 아래로 드러나 욕망을 부추기는 여린 손목, 소녀에게 향한 부드럽고 조용한 말씨와 미소는 다른 어느 귀한 가문의 영애에게 뒤지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 안에 있는 영혼도 저만큼은 무사하지 않을까, 못 견디게 신경이 쓰였다.

“왜 보호자에게 돌아가지 않는 걸까요? 배경만 괜찮았더라면 좋은 남편을 만나서 참하게 잘 살 수 있을 것 같은 아가씨였는데 말입니다. 뭔가 문제가 있는 가문이었거나, 아가씨 본인에게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겠죠?”

펜이 몸을 돌리고 불구경이라도 하듯 여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럴 수도 있겠지.”

발렌틴은 나직이 대답하며 곁을 지나치는 여자를 응시했다. 그녀는 소녀의 팔을 잡고 조심스럽게 자동차를 멀찍이 피해서 지나갔다. 지금 차 안의 두 남자가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는 얼굴로.

그동안 그녀의 존재를 무시할 수 있었던 이유를 다시금 되새겼다. 특정한 상대로 의식되기에는 턱없이 떨어져 보이는 지금의 상태와 조건들을. 지금까지는 그렇게 하면 그녀에 대한 생각 따위는 머릿속에 머무르지 않고 금방 스쳐지나갔다. 그런 시도를 해야 했던 것도 몇 차례 되지 않았다.

하필 지금 이 순간이 아니었다면, 발렌틴은 영영 깨닫지 못하고 넘어갔을 수도 있었다. 단 몇 차례나마 스스로 경고하고 위기의식을 높였던 까닭이, 자신이 저 결핍 있는 여자에에 끌리고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중대한 흠결이 있는 아가씨야.”

발렌틴은 펜이 한 말을 수긍하듯, 그리고 자신을 설득하려는 듯 중얼거렸다.

길바닥에 떨어진 것과 다름없는 그녀의 신분, 부랑자보다 근소한 차이로 나아보이는 생활수준과 건강하지 않은 몸....

그런데, 영혼은?

나머지가 모두 확연한 답을 내릴 수 있게 하는 데도, 그 한 가지를 확인해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아졌다.

'...나머진 다 내가 채워줄 수 있는 것들이야.'

발렌틴은 무심코 그것을 실현했을 때를 상상했다.

여자의 원래 신분이 무엇이었든 이전의 삶과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게 자신이 채워줄 수 있다. 배경으로 사람을 택하는 여자라면 발렌틴이 손을 뻗어서 닿지 못할 곳에 있는 여자가 많지 않다. 어느 알려지지 않은 왕국의 공주쯤 된다면 모를까, 여성의 눈에 들기 위해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얼마든지 있었다.

“투스미아에서 선을 볼 때 이런 마음가짐이었어야 했는데.”

발렌틴은 시트에 머리를 기대며 작게 한탄하다가 펜을 쳐다보았다.

“내가 취한 것 같나?”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주 멀쩡하시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럼 나를 좀 말려줘 보게.”

뒷좌석을 돌아보고 있던 펜의 미간이 굳어졌다.

“저 여자와 결혼하고 싶어.”

“주인님.”

“이런 길바닥 위가 아니라 내 집에서 살게 하면 훨씬 좋아질 거야. 일꾼들에게 집안을 돌보는 지시를 내릴 수 있도록 가르치고 테스카에 맞는 사교도 익히게 하면 여느 부인들 못지 않게 될지도 모르네. 바깥세상에 뚝 떨어져서 여태 살아남은 걸 보면 머리가 아주 나쁜 여자는 아니겠지. 뭐가 되었든 복을 가진 여자이든가.”

“무리한 생각을 하시는군요. 이미 그렇게 태어나고 배운 아가씨들 놔두고 모험을 하실 이유가 없습니다. 다음 주에 약속하신 맞선을 먼저 보시지요.”

펜의 말투가 무뚝뚝해지는 것을 느꼈지만, 발렌틴은 느긋하게 말을 이었다.

“난 저 아가씨로 하고 싶어졌네.”

“못 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자네는 그녀가 꽤 내 취향의 미인이라는 걸 알 테지. 그동안 의식하지 않으려고 해왔지만 방금 나도 모르게 생각해 버렸어. 그녀가 매일 내 집에서 나를 기다리며 살게 하고 싶어. 내 아이를 낳게 하고 같이 키우면서 살면 기분이 좋을 것 같아.”

“...굉장히 급작스럽고 당황스럽군요.”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 중이네.”

“선 봐서 결혼하시는 게 그렇게 싫으신 겁니까?”

“별로 그렇지는 않아.”

결혼상대로는 맞선에 나올 여성들 쪽이 훨씬 안전할 것이다. 발렌틴이 원해온 것은 오로지 안전이었다. 테스카를 좋아하는 이유인 한편, 테스카의 변덕스러운 여성들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투스미아에서 만났던 연인도 종국에는 변덕을 부렸다. 딱히 먼저 끌린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정성과 주변의 보증으로 마음을 열게 되었다가, 그 변덕이란 것에 당했다.

“어차피 보통의 정숙하고 순종적인 여성이면 돼. 그 이상은 바라도 소용없고 그럴 생각도 없네. 부인이란 그 존재만으로도 내 일을 유지하는 데에 도움이 되어 줄 테니, 적당히 마음에 드는 아가씨를 결혼반지로 구속하고 사람을 붙여놓으면 되는 게 아닌가.”

펜이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바로 조금 전에 하신 말씀을 취소하실 셈입니까? 웨버 경의 입으로 아너슨 부부가 소개해줄 아가씨와 결혼하시겠다 하셨습니다. 길에서 몇 년을 방황하며 산 여성을 아내로 맞으시다니, 왜 얼토당토않은 말씀을 하십니까?”

“다시 얼굴은 본 이상은 안 되겠어.”

조금 초조함이 담긴 목소리로 작게 내뱉었다. 무의식 속에 감춰놓고 지내다가 이렇게 결정적인 순간에 얼굴을 마주치고서는 어쩔 수 없었다.

이제 그녀를 혼자 길바닥에 버려둔 채로는 떠나지 못하게 된 것이다.

펜의 입이 떡 벌어져 있는 것을 보고, 발렌틴이 물었다.

“자네 외에는 반대하는 사람이 없겠지? 하나는 멋대로 결혼하고 하나는 수녀가 된 걸 보면.”

“가문에서 반대하셔서 지금껏 노총각이셨습니까?”

펜이 내심 흥분한 듯 낮게 쏘아붙였다. 그러다 발렌틴이 말없이 바라보고만 있자, 곧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실언을 했습니다.”

“그 정도로 반대한다는 건가?”

“제 의견을 물으신다면 그렇습니다.”

발렌틴은 의기소침해져서 몸을 돌리는 펜의 뒤통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가, 여자가 아직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그녀는 소녀와 함께 은행가가 끝나는 곳에 있는 주택가를 향해 멀어져 있었다.

“차를 돌리지.”

“웨버 경.”

“들어가는 걸 보기만 하겠네.”

펜이 길게 한숨을 내쉬며 차를 돌렸다.

마차와 사람들이 섞인 길 위를 헤치며 느릿하게 여자를 좇았다. 재잘대는 여자아이를 내려다보며 미소 짓는 얼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온화하고 따스한 그 표정도 좋았지만, 그녀의 지친 몸을 채워주고 더 환하게 빛나는 열정적인 반응을 보고도 싶었다.

‘이런 건 더 나중에 생각해도 돼.’

발렌틴은 흐려진 경각심을 일깨우며 턱을 괴고 있던 손을 내렸다. 감정적이 되어서는 안 되었다. 처음부터 감상에 사로잡혀서 눈에 뭐가 씌고 나면 뻔히 보이는 함정도 볼 수 없게 된다.

그나저나 나는 정말 저 여자랑 결혼할 생각인가. 발렌틴은 자신이 맨 정신인지 미심쩍어 하는 채로 여자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작은 집들이 띄엄띄엄 늘어서 있는 얕은 오르막길을 올라갔다. 리무진은 따라 올라가지 않고 그 아래에까지 가서 잠시 멈춰 섰다. 차 안은 고요했지만 머릿속으로 펜의 한숨소리가 흘러들어오는 것만 같았다.

여자는 얼마 올라가지 않아서 어느 집의 대문을 열고 소녀와 함께 들어갔다. 제 손으로 대문을 열고 소녀를 먼저 들여보낸 후, 다시 직접 문을 닫는 표정이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어두워진 것은 발렌틴의 표정이었다. 이렇게 살고 있는 그녀가 가엾고 애틋했다.

지금 저 여자를 끌어안고 싶어.

차마 그렇게까지 말할 수는 없어서 다른 식으로 표현했다.

“나는 저 아가씨가 마음에 들어, 펜. 정말이야.”

여자를 편안하고 따뜻한 곳에 데려다놓고 좋은 것들을 가져다주며 자신에게 매여 있게 하고 싶었다. 버려진 강아지를 주워서 키우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인간이다. 또한 발렌틴은 그녀를 손에 넣고 나면, 그녀의 진짜 주인이나 다른 더 좋은 주인감이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아무 곳으로도 돌려보내주지 않을 것이다.

“그날 여자를 구해준 후에 혼자 떠돌게 하는 게 아니었네. 내가 주웠으니 내 거라고 생각하고 집에 둘 것을 그랬어.”

말도 안 되는 뻔뻔한 소리에, 펜은 뭐라고 대꾸하지도 못했다. 그는 잠시 주인을 원망스러운 듯 쳐다보고 있다가 마음대로 차를 출발시켰다.

발렌틴은 시트에 등을 기대고 표정 없이 멍하게 앉아 있었다.

그녀에게 생겨난 애정을 이런 식으로 깨닫게 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녀는 지금 혼자다. 발렌틴이 주운 후에 책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라도 ‘내 것’이라고 나서도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게 당연하다.

‘이건 대체....’

아직은 말려주길 바라는 이성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는 한편, 이성도 논리도 이미 자신에게 등을 보이고 있다는 기분도 들었다.

“...지금 어디로 가는 건가?”

리무진이 은행을 그냥 지나쳤다. 펜은 사이드 미러를 확인하며 자동차를 갈림길이 시작되는 광장 쪽으로 돌렸다. 발렌틴의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주무시고 난 후에도 생각이 바뀌지 않으시면 그때 결정하십시오.”

“누구랑 하든 어쨌든 결혼을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을 걸세.”

“전 기회를 드리는 겁니다. 지금 결혼 발표를 하시면 테스카의 영애와 결혼하시게 될 겁니다. 설마 아까 그 아가씨와의 일을 그렇게 일사천리로 진행해도 될 일이라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지요?”

펜의 말에 발렌틴은 멍해있던 눈을 깜박였다.

“내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전 그간 아가씨가 어떻게 지내셨는지 알아보겠습니다.”

발렌틴은 잠시 후에 음, 하고 작게 대답한 후 한결 편하게 머리를 기댔다.

하루의 유예가 주어졌다. 술이 완전히 깬 후에 다시 생각해보는 게 백번 옳다. 감정을 가라앉힌 후에 이 일을 후회하게 될 수도 있다. 마시지도 않던 술을 마시면 작은 사고들을 일으키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만약 아침이 와도 이 기분이 변하지 않는다면. 내일 아침에도 그녀가 애틋하게 떠오른다면. 자신과 그녀가 서로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지금의 기분이 그때에도 이어진다면-.

============================ 작품 후기 ============================

으잉. 책과 이북작업이 겁나게 급해져서 며칠만 쉬다 오겠습니다ㅜ.ㅜ 늦어도 이번 주 주말에는 돌아올게요. 행복한 한 주 되세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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