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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보다 아름다운-24화 (24/140)

00024  슈하스 편 -  그가 남기고 간 것  =========================================================================

노아는 그로부터 3개월 만에 왕실에서 주관하는 시험에 합격했다. 1년에 단 한두 명만이 대학에 들어가는 헤밀 같은 시골마을에서 단번에 대학에 합격했던 사람이었으니 공부하는 데에는 진즉에 도가 터 있었을 것이다.

“언제 돌아오세요?”

“다음 주. 이번에는 그냥 인사하고 상 받고 그런 거라 오래 안 걸려.”

노아는 찻집에 들러서 아드리아나에게 케이크를 전해주고 잠시 얘기를 나누다가 금방 집으로 돌아갔다.

며칠 전부터 그의 부모님이 헤밀에 돌아와 있었다. 집안의 복잡한 일로 내려와 있는 거라서 인사를 드리고 말고 생각해볼 여유도 없었다. 아드리아나는 자기 사정으로 노아에게 가문을 소개하지 못하고 있었음에도, 노아의 집안일에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에 소외감을 느꼈다. 그에게 진짜 현실이 따로 존재하는 것 같아서 불안해지기도 했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하고 기다렸지만, 뭘 어떻게 노력해야하는지도 모르게 된, 그저 막연한 바람뿐이었다.

다음 날, 오랜만에 노아가 점심시간에 찻집을 찾았다.

아드리아나는 가게 주인 부부와 점심을 먹으려고 막 문을 닫으려다가 그를 발견하고 반색하며 달려나갔다.

“노아, 어쩐 일이에요? 오늘은 일 바쁘지 않은 거예요?”

“겨우 빠져나왔어. 저녁 때 못 올 것 같아서 점심이라도 같이 먹으려고. 괜찮아?”

“좋아요. 사라 씨한테 말씀드리고 얼른 올게요.”

두 사람은 자주 가는 식당에 가서 각자 메뉴를 주문했다.

실은 노아의 출장이 내일부터라고 들었던 만큼, 당장 저녁부터 못 보게 된다는 것이 서운했지만, 이렇게 그가 낮에라도 짬을 내서 만나러 와준 게 고마웠다.

“당장 오늘 가야하게 된 거예요?”

“부모님이 오늘 올라가야 한다고 하셔서, 아무래도 같이 가야할 것 같아.”

“그렇군요…. 노아, 이것도 더 먹을래요?”

“아냐. 요즘 살이 찌는 것 같아. 자제해야지.”

“하나도 살 안 쪘어요. 보기 좋기만 한 걸요.”

실제로 노아는 거의 표준체형이었고, 계절에 따라 근소하게 체중이 줄고 느는 변화가 있는 정도였다. 게다가 아드리아나는 평소에 건강을 해칠 정도만 아니라면 남자는 조금 후덕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편이어서, 그의 먹성 좋은 면도 좋아했었다.

“새삼스럽게 먹고 싶은 걸 참을 필요가 있어요? 조금 통통해져도 괜찮아요.”

“무슨 소리야. 나도 이제 나이가 있으니까 건강을 위해 신경을 써줘야지.”

노아의 말에, 아드리아나는 순간 표정을 관리하지 못하고 미소를 잃어버렸다.

마치 ‘신경을 써주지 않는다’고 면박을 들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언제나 그의 건강을 신경 쓰고, 식사는 잘 하는지, 잠은 잘 잤는지, 과로하지는 않는지 걱정해온 자신이었다. 노아가 그걸 몰라줄 리가 없었다.

아드리아나는 지나친 생각을 했다고 자신을 타이르고, 일찍 손을 놓은 노아 앞에서 꾸역꾸역 식사를 마쳤다.

“조심히 다녀오세요. 일 무리하지 마시고요.”

“응.”

노아는 밝게 대답하고 사무실 쪽으로 차를 몰았다.

역시, 그의 짧은 대답에 느껴지는 불만족을 어쩔 수가 없었다. 그렇게 잘 챙겨주고 다정한 사람인데 이상하게도 인사하는 일에는 정말 인색했다. 아드리아나는 자신이 사소한 데에 이토록 얽매이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런데 그가 처음부터 이렇게 짧게 대답했던가?

불현듯 가슴 속에 떠오른 질문에 대한 답은, 결국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았다.

*

노아가 출장에서 돌아오기로 한 날, 아드리아나는 그를 기다리며 조금 늦게까지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아무래도 주인 부부가 있는 집으로 데리러 오는 건 그에게도 불편할 터였기 때문이다.

오늘은 조만간 함께 여행을 가자고 말해볼 셈이었다. 전부터 그가 그렇게도 여행을 가고 싶어했었는데 아드리아나의 일 때문에 계속 미뤄왔었다. 항상 맞춰주고 잘해주는 그인데 자신은 너무 소홀했던 건 아닌가, 미안함을 느끼던 참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큰맘 먹고 이틀간 찻집 일을 쉬기로 했다.

딸랑, 가게 종이 울렸다.

“노아…?”

벌떡 일어나서 문을 쳐다보았지만, 그가 아니었다.

아드리아나의 또래쯤 되어 보이는 청년이 당황한 듯 서서, 겨우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

“저…. 오늘은 늦게까지 여시는 건가 해서….”

“아…. 네,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서요. 뭔가 필요하신가요?”

“아직 안 닫으셨으면 책을 한 권 사고 싶은데요.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얼굴을 붉히고 사과하는 청년에게, 아드리아나는 아니라고 웃어주었다. 그리고 그가 책을 찾는 동안 계산대 앞에 앉아서 기다렸다. 그는 빨리 고르려고 초조해하며 어떤 책도 뽑아보지 못하는 채로 책장 앞을 서성였다.

“천천히 고르셔도 돼요. 제 친구가 안 와서 어차피 저도 아직 못 들어가거든요.”

“네…. 고맙습니다.”

청년은 부끄러운 듯 미소 지으며 인사하더니, 책장 구석으로 가서 쪼그리고 앉아 책을 꺼내보기 시작했다.

아드리아나는 손님용 테이블에 앉아서 기다리며, 잠시 옛생각에 잠겼다.

수줍어하는 청년을 보니 몇 년 전의 노아가 생각났다. 물론 노아는 하나도 수줍은 남자가 아니었다. 그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하하 웃으며 자기가 터프하게 생겼다느니 하는 농담을 하는 남자였지만, 그때는 저 손님 청년에게서 느껴지는 것 같은 풋풋함이 노아에게서도 느껴졌었다. 추격자로 오해하고 벌벌 떨던 아드리아나를 보고, 조금 전의 청년처럼 걱정스러워 보이는 얼굴로 괜찮냐고 물었었다.

‘그러고 보면, 노아는 우리가 동침할 사이는 아니라는 둥 짓궂은 소리도 제법 할 줄 알았어.’

아드리아나는 그런 생각에 잠겨 있다가 씁쓸함을 느꼈다.

왜 지금 과거를 회상하고 있는 것일까. 왜 가슴 저릿하도록 그때의 노아를 그리워하고 있는 것일까. 노아는 그때 이상으로 아드리아나에게 헌신하며 잘해주고 있는데.

그로부터 5분도 지나지 않아서, 청년이 책을 한 권 가져왔다. 아드리아나는 그것을 계산해주고 그를 배웅한 후, 손님용 테이블 앞에 앉았다.

‘많이 늦네….’

슬슬 걱정이 되었다.

노아가 분명히 금방 끝나는 일이라고 했는데 이렇게 늦어지는 건 이상했다. 간혹 날씨가 안 좋은 날은 길이 나빠져서 차가 다니지 못하기도 했지만, 오늘은 날이 맑았다. 10월에는 아이넨 전체적으로 비나 눈이 거의 내리지 않았다. 다른 지역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을 터였다.

밤이 깊어가며 적막이 가라앉았다. 문밖에는 이제 아무도 다니지 않았다.

“오드리. 아직도 있어?”

어느새 가게 뒷문으로 들어온 사라가 오드리를 불렀다.

“네. 노아 씨가 늦네요.”

“저런. 이 시간까지 일을 하는 걸까?”

사라가 걱정스러운 듯 손바닥으로 턱을 짚으며 말했다. 그녀는 잠시 아드리아나의 곁에 서서 함께 가게 문을 바라보며 기다렸다.

“들어가 계세요, 사라. 추워지네요.”

“오드리도 춥잖아. 그러지 말고 같이 들어가자. 감기 걸리겠어. 가게 문이 잠긴 걸 보면 휴스턴 씨가 집으로 올 거야.”

“전화도 없고 이상해요.”

아직까지 도착하지 않을 정도라면, 이미 출발하기 전부터 상당히 지체되었을 터였다. 전화를 해줬어야 할 일이었다. 수도에서는 전화를 찾는 일이 쉬웠다. 하물며 그가 사무실 근처에 있다면 더더욱 전화를 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무슨 일이 생기지 않고서야.

“조금만 더 기다려볼게요, 사라.”

아드리아나는 이제 울먹일 것 같았다. 억지로 미소 지어 보이고 겉옷을 여미자, 사라가 한숨을 쉬며 난로에 불을 넣어주었다.

“시간이 너무 늦어지면 슈하스에 도착하더라도 가게에는 못 올 테니까, 오드리도 조금만 더 기다려보고 들어와. 알았지?”

“네. 죄송해요.”

사라가 집으로 들어가고 가게 안은 다시 적막 속으로 빠져들었다.

아드리아나는 몸을 일으켜서 레코드 앞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음악 소리 때문에 노아가 오는 소리를 잘 들을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이내 다시 일어나 가게 문을 잠그고 와서 벽에 머리를 기대고 앉았다.

한참 동안 어두운 문밖을 바라보다가 벽시계를 한 번 보고, 테이블 위에 엎드렸다.

그는 보통 귀가할 때, 저녁 식사 시간인 5시, 6시를 넘기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시계는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눈물이 나왔다.

두렵고 불안하고 벌써 무섭도록 커다란 슬픔이 밀려들었다. 어디에 도움을 구해야할지 막막했다.

‘어떻게 찾지?’

불길한 생각이 머릿속을 점령했다.

“흐…흑…. 으흑….”

그대로 얼마간을 흐느끼고 있었는지 몰랐다.

문득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고, 아드리아나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문 밖에서 치안관 아론이 눈을 크게 뜨고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가씨, 괜찮아요?”

“아론….”

아드리아나는 일어나서 떨리는 손으로 문을 열어주었다. 아론은 시내를 담당하는 치안관 중 한 명이었는데, 듬직하고 성실한 사람이어서 혼자 가게를 지키며 알게 모르게 의지가 될 때가 많았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그가 덥수룩한 수염을 씰룩이며 물었다. 그러면서 눈으로는 가게 안에 뭔가 없는지 훑었다.

“노아가… 으흐흑….”

아드리아나는 말을 하려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치, 친구가 안 돌아와요. 돌아올 시간이 지났는데…. 흑… 멀리 출장을 가서 아직 안 돌아와요. 연락도… 없고….”

“진정하세요, 아가씨.”

“이렇게… 연락 없이 조금이라도 늦는 사람이 아니에요. 단 한 번도….”

아드리아나가 울며 자초지종을 말하는 동안, 아론은 주의깊게 말을 들어주었다. 그는, 다 큰 어른이 길이라도 잃었겠냐는 식으로 타박하곤 하는 다른 치안관들과는 달랐다.

“노아는 자동차를 운전해서 다녀요. 아마 마차는 타지 않았을 거예요. 이렇게… 이렇게 오랫동안 연락이 없다는 건… 이상해요. 어쩌면 출발하기 전에 무슨 일이….”

“일단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만약 차 사고가 있었다면, 수도에서 이쪽으로 이어지는 영지의 각 담당들이 소식을 알고 있을 겁니다. 저희가 금방 알 수 있어요.”

아론의 말에 아드리아나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렇지. 혹시 여기에도 전화가 있지 않습니까?”

“네, 있어요.”

아드리아나는 얼른 몸을 돌려서 그를 전화기 앞으로 안내했다.

아론은 슈하스 성의 치안대로 전화를 걸었다. 그는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아드리아나가 알려준 노아의 신상과 인상착의에 대해 말한 후, 비슷한 사람에 관해 접수된 사건이 없는지 확인했다.

아드리아나는 그 옆의 벽에 기대서 덜덜 떨고 있다가 몸을 부지하기 힘들어서 테이블 의자에 매달려 앉았다.

“아가씨. 지금까지 노아 씨와 비슷한 사람에 관해 접수된 사건은 없는 듯하군요.”

“아아….”

아드리아나는 고개를 빠르게 끄덕였다.

“차 사고는 아니라고 보셔도 됩니다. 다만 개인적으로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는 신고가 들어오지 않는 한 알 수 없으니까요. 오늘은 제가 당직이라 내일 낮에나 퇴근합니다. 그 안에 뭔가 소식이 들어오면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아마 그분께 말도 못하게 급한 일이 생긴 거겠지요. 오늘은 댁에 들어가서 쉬십시오.”

아드리아나는 도로 울상을 지었다. 그에 대한 소식도 없이 이대로는 잠들지도 쉬지도 못할 것이다. 계속 눈물을 닦아내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자, 아론은 돌아가지도 못하고 머뭇거렸다.

“저, 실례지만 아가씨 가족 분들은 안 계십니까? 가족 분들하고 같이 계시는 게 좋겠습니다만.”

아론이 말하는 것은, 아드리아나를 보호해줄 보호자를 가리키는 것이리라. 가게 주인 부부가 지금은 그 역할을 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아드리아나가 ‘가족’이라는 말을 들은 순간 떠올린 것은 노아였다.

그 사람밖에 없는데. 내게는.

무슨 일이 생긴 건지, 그가 무사한 건지 무서워서, 아드리아나는 어쩌지도 못하고 흐느꼈다. 자리를 떠날 수가 없었다. 차 사고는 아닌 게 확실했다. 만약 급한 업무가 생겨서 어쩔 수 없이 지체되고 있는 거라면 괜찮다. 하지만 혹시라도 그가 어딘가에서 위험을 겪고 있다면, 그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상황이라면….

아드리아나는 노아가 처해있을 상황에 대한 안 좋은 상상으로 점점 이성을 잃어갔다. 테이블을 붙잡고 있는데도 몸이 점점 바닥으로 미끄러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가씨, 아가씨 정신 차리세요. 댁이 어딘지 말씀해 주세요.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걱정 돼요. 그가…. 노아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내가 살 수 있을까? 아드리아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자신이 그 없이 무사히 살아갈 수 있을지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노아가 무사한가, 그뿐이었다.

“아가씨, 진정하세요.”

아론이 아드리아나를 부축했다. 제대로 앉지도 못하는 아드리아나를 안정시키려고 애쓰며 겨우 다시 의자에 앉혀서 등을 두드려주었다.

그때 가게 문이 열렸다.

“…저 분인가요?”

아론이, 문 앞에서 멍한 얼굴로 아드리아나를 쳐다보는 노아를 가리키며 말했다.

“노아!”

“…뭐야?”

“당신이 안 돌아오니까….”

아드리아나는 그에게 가기 위해 일어서려다가 풀썩 주저앉았다. 아론이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다가, 노아가 다가오자 물러났다.

“죄송합니다, 치안관님. 제가 사정이 생겨서 늦는 바람에 이 사람을 걱정시켰나 봅니다.”

노아가 아드리아나를 대신해 사과했다. 아론은 괜찮다고 다행이라고, 친절하게 다독여주고 돌아갔다.

“부모님이 갑자기 불러들여서 잡혀 있느라고 연락을 못했어. 굳이 빨리 돌아가야 할 필요 없지 않냐고 하시는데, 내일까지는 일이 없다고 먼저 말해뒀던 탓에 일로 핑계 댈 수도 없었어.”

그는 미안하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그에게 정말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을 수도 있다. 노아가 거짓말을 한다는 의심은 하지 않았다. 다행이라고, 그가 무사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가장 큰 것도 사실이었다.

“전 당신에게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그랬어?”

아드리아나는 그가 위험을 당하고 있을까 봐 제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는데, 노아는 그랬냐고만 묻고 있었다.

노아는 아드리아나가 무슨 생각으로 이 시간까지 가게에 있었는지 모를 리 없다. 그는 분명히 가게로 먼저 왔다. 아드리아나가 여기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거다. 그런데도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의 눈을 하고 있었다.

그는 아드리아나를 안고 토닥여주며 걱정 끼친 어린애한테 들려주듯 한숨을 쉬었다.

이미 시간이 너무 늦어서, 이렇게 보고하러 와준 것 이상을 기대하고 조를 수 없었다.

아드리아나는 노아가 돌아간 후, 자신의 침대에서 혼자 생각했다. 노아와 여행을 가기로 하고 기대했던 자신이 서글퍼졌다. 사라에게 말하고 얻어놓은 그 휴가를 노아와 함께 보내지 못하게 되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노아는 요즘 들어서 자신의 건강을, 혹은 외모를 신경 쓰고 걱정하게 되었지만, 반대로 아드리아나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게 된 건지도 모른다.

아드리아나는 다음 날 노아가 데리러 오기로 한 낮이 되기 전, 일찍 집을 나와 걸어서 그의 집에 갔다.

우편함에 편지를 한 통 넣었다.

실은 현관문을 열고 뛰어 들어가 그를 안고 싶었다. 자신과의 약속을 떠올려 달라고, 자신이 뭔가 부족함을 보였다면 고칠 테니 알려달라고, 그에게 매달리고 싶었다. 혹은, 그가 이 편지를 읽고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냐고 안 된다고 화내주길 바랐다.

한참이 지나서, 저녁 무렵에서야 노아에게서 기별이 왔다. 그는 사무실에서 가게로 전화를 걸어왔다.

“…그게 다야?”

지독히도 냉정한 목소리였다.

아드리아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겨우 이만큼도 기다려주지 못하겠다는 거야?”

노아는 그 후로도 몇 마디를 더 했지만, 앞으로 어떻게 하자거나 헤어질 수 없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아드리아나는 전화를 끊고, 사람들에게 얼굴을 보이지 않으려 애쓰며 집안으로 들어왔다. 그만두고 싶다는, 그런 편지를 보낸 것을 후회했다. 하지만 보내지 않았다고 한들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으리라. 내일은 더 후회하게 될지도 몰랐지만, 이미 끝내버렸다. 어쩌면 훨씬 더 전에 끝나 있던 건지도 모른다.

노아는 아마도 더 예전부터, 아드리아나를 매일은 생각하지 않게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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