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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보다 아름다운-6화 (6/140)

00006  헤밀 편 - 찾다  =========================================================================

재잘대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린아이들의 목소리를 듣는 게 얼마 만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작은 목소리들이 아침마다 창가로 노래하러 오던 새들처럼 짹짹 지저귀다가 얼마 후에는 우르르 달아났다. 다시 주변이 고요해지고 평온함에 빠져들었다. 몸을 뒤척이자 부드럽게 뺨을 스치는 천의 감촉이 포근하게 전신을 감쌌다.

아늑하고 따뜻했다. 이런 순간이 오기를 몹시도 간절하게 바랐었다. 추위와 공포에 떨면서, 곧 편안해지리라는 것을 믿고 기다렸었다.

“흐음.”

누군가의 목소리와 함께, 갑자기 이마에 뭔가가 와 닿았다. 아드리아나는 움찔하며 눈을 떴다.

“어, 깼네. 잘 잤어요?”

낯선 여자가 아드리아나의 이마에서 손을 거두며 물었다. 여성다움이 잘 느껴지지 않는 빠른 어조에, 청결해 보이는 흰 가운을 걸치고 안경을 낀, 키가 크고 마른 사람이었다.

아드리아나는 휘둥그레 눈을 뜬 채 얼떨떨한 기분으로 낯선 공간을 살폈다. 무늬 없는 흰 벽지가 발라진 썰렁한 방이었다. 그 안을 차지하고 있는 가구라고는 자신이 누워 있던 것을 포함한 두 개의 침대와, 작은 책상과 의자 한 쌍이 전부였다.

“배 안 고파요?”

여자가 물었다. 아드리아나는 눈을 껌뻑이며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여긴 헤밀에 있는 아동보호소이고, 난 미네타예요.”

아드리아나는 우두커니 그녀를 바라보고 있다가, 자신을 향해 내밀어진 손을 보고 머뭇머뭇 두 손을 내밀어서 조심스럽게 마주 잡았다.

“안녕하세요….”

작게 인사하자, 미네타가 눈을 살짝 찌푸리며 웃었다.

“이름이 뭐예요?”

“이름…?”

대답이 즉각 떠오르지 않았다.

아드리아나는 자신이 입고 있는 잠옷 같은 흰색 원피스를 쳐다보았다. 내게 이런 옷이 있었던가? 가슴 위로 흘러내린 긴 머리카락도 어쩐지 낯설었다. 내 머리카락이 이런 느낌이었던가? 아드리아나는 고개를 숙인 채, 풀어헤쳐진 옅은 색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기억 안 나요?”

미네타가 한 번 묻고는 대수롭지 않은 듯 말을 이었다.

“그럼 천천히 생각해봐요. 엊그제 아가씨 몸뚱이만 덜렁 여기에 맡겨져서, 가족에게 연락을 해주고 싶어도 어디로 해야 할지 깜깜했거든요.”

“가족….”

아드리아나는 자신의 가족을 떠올려 보았다. 그러자 뿌연 머릿속에 갈색 머리카락을 가진 동갑내기 여자애, 카리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카리나를…잃어버렸어요.”

갑자기 눈물이 왈칵 솟았다. 그러자 미네타가 당황한 기색을 비치며 다가와서 어깨를 쓸어주었다.

“천천히 해결하면 돼요. 우선은 기운이 나도록 같이 밥을 먹고, 아가씨의 이름이 생각나면 내게 알려줘요. 괜찮죠? 카리나라는 사람도 곧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우는 건 곤란해. 나, 다 큰 여자의 눈물에 약하다고요.”

미네타는 그렇게 말하고, 아드리아나가 조금 진정하자 일으켜서 식당으로 데려갔다.

식당 안에는 꼬마들 몇 명이 식탁 한가운데 자리를 떡하니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커다란 테이블 하나에 10명 조금 넘는 인원이 앉을 수 있는 작은 식당이었다. 조리대에서는 키가 작고 살집이 풍만한 중년 여성이 밥을 챙겨주고 있었다.

아드리아나는 아이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되자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자신의 단정하지 못한 차림이 몹시 의식되었다.

미네타가 끼어들더니, 아드리아나가 앉을 자리의 의자를 빼주며 꼬마들에게 눈을 흘겼다.

“어떤 녀석들이 그렇게 예의 없이 손님 얼굴을 흘끔흘끔 쳐다보냐. 그리고 밥 먹기 전에 손 안 씻은 사람은 자수해서 광명 찾아라, 응?”

그 말에 꼬마 하나가 슬그머니 일어나서 조리대에 있는 수도 앞으로 걸어갔다. 아드리아나의 옆에 앉아서 밥을 먹던 여자애가 키득대며 말을 걸었다.

“언니는 이름 뭐예요?”

아드리아나는 여자아이의 어깨 위 길이 단발머리가 신기해서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예닐곱 살은 되어 보이는 아이였다. 그때까지 머리카락이 그만큼밖에 자라지 않았을 리 없었다.

“나는….”

순간 ‘아드리아냐야.’하고 자연스럽게 자신의 이름이 떠올랐다.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려던 것과 동시에 ‘마티아스’라는 이름도 떠올랐다.

‘…그 사람들이 나를 잡으러 올지도 몰라.’

아드리아나가 이곳에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 아버지나 스콰이어 가에서 데리러 올지도 몰랐다.

마차 사고가 전화위복이 되어 겨우 탈출한 참이었다. 앞으로의 대책을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어머니에게는 자신이 무사하다는 소식을 전하고 싶었지만, 다른 이들에게 위치가 알려지면 안 될 것 같았다.

여자아이의 의아해하는 눈길을 받으며, 아드리아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진땀만 흘렸다.

어색한 두 사람 사이에, 빵과 수프가 담긴 그릇이 쑥 들어와 놓였다.

“질문 금지다. 이 언니는 어제 비를 많이 맞고 아파서 굉장히 피곤한 상태란 말이야. 그나저나 웬디가 밥을 이렇게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먹고 있으면 그동안 동생들이 웬디 방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놓을 텐데. 미술 도구들은 치워놨니?”

“아, 아뇨. 다 먹었어요.”

웬디라고 불린 여자아이가 미네타의 말에 허겁지겁 빈 식판을 들고 일어섰다.

협박으로 비워진 자리 앞에 커다란 스프 그릇이 놓였다. 미네타가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그 자리에 앉았다.

“어제까지 아가씨 열이 심했거든요. 큰 병원으로 데려가야 할 것 같았는데 기상 상황이 최악이라 움직이질 못했어요. 보기보다 약하지 않은 것 같아서 정말 다행이에요. 난 아가씨를 돌보느라 잠을 하루 8시간밖에 못 잤더니 계속 하품이 나오네요.”

미네타의 말에 아드리아나는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입만 벌리고 있었다. 폐를 끼친 데 대해서는 백번 사과해야 마땅했다. 그런데 이곳의 사람들은 대체 하루에 몇 시간을 자기에 8시간밖에 라는 표현을 쓰는 걸까?

“…간호비 낼 수 있어요?”

미네타의 한쪽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내려왔다. 아드리아나는 자신이 맨몸이라는 것을 의식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죄송해요….”

“흠. 괜찮아요. 몸으로 갚으면 되니까.”

미네타는 그렇게 말하고서 수프를 가득 떠서 한 입 먹었다. 그리고 얼어 있는 아드리아나의 어깨를 두드렸다.

“일단 먹어요. 먹고 계산합시다.”

미네타는 수프를 후루룩후루룩 먹어치우고, 양이 부족하다며 다시 조리대로 갔다. 먼저 식사를 마친 아드리아나는 방으로 돌아와서 그녀를 기다렸다.

앞으로의 일을 생각해 보려 해도 사고가 멈춘 듯 정리가 되지 않았다.

입고 왔던 옷은 세탁 중인 모양이었지만, 갖가지 장신구며 마차에 싣고 있던 짐의 행방은 알 수 없었다. 수중에 남겨진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어서, 낯선 땅에 홀로 떨어진 현재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되었다.

마티아스, 버클리, 아버지.

이제부터 평생 피해야 할지도 모를 남자들의 이름이 떠올랐다. 그 이름들은 사고 당시 마차 안으로 튀어들었던 진흙 섞인 물방울처럼 아드리아나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괜찮아요?”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서 돌아보자, 미네타가 빨랫감이 높이 쌓인 바구니를 들고 서 있었다.

“아, 괜찮아요.”

아드리아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미소 지어 보였다. 미네타도 싱긋 웃었다.

“소일거리 같이 할래요? 간병비 차감해줄게요.”

미네타는 맞은편 침대에 앉아서 옷과 수건들을 보기 좋게 착착 개어나갔다. 아드리아나도 수건 정도는 예쁘게 갤 수 있었다. 하지만 작은 티셔츠를 갤 때에는 그것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버벅거리다가 어쩐지 일 못하게 생긴 손이었다는 타박을 들었다.

“아가씨는 나이가 몇이에요?”

“열일곱이에요.”

부끄러워하며 작게 대답하자, 미네타가 빨래 개던 손을 멈추고 안경을 추켜올렸다.

“결혼을 일찍 했네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다시 빨래 개는 일에 정신을 쏟았다. 아마도 아드리아나가 입고 온 화려한 드레스 탓일 거다. 예식을 앞두었거나 치른 후라고 짐작할 만한 차림이었으니까.

아직 결혼하지는 않았다고 밝힐까 하다가, 아드리아나는 어색한 미소만 지어 보였다.

“가족들에게 연락하고 싶어지면 언제든 말해줘요. 할 수 있는 한은 도와줄게요.”

“고마워요….”

아드리아나는 미네타에게 감사했지만, 아직 자신의 이름이나 가족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기로 했다. 이제부터 남들 몰래 어머니에게 자신이 무사하다는 소식을 전하고, 카리나를 찾아서 자신들을 아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살아야 할지도 몰랐다. 그러려면 신분을 드러내서는 안 될 터였다.

다음날도 아드리아나는 별일 없이 비슷한 하루를 보냈다. 미네타는 전날처럼 아드리아나의 끼니를 챙겨주고 보호소에 대해 안내해주었다. 무료할 때 읽으라며 책도 몇 권 꺼내주었다.

“글 읽을 줄 알아요?”

“네.”

“흐음. 좋은데?”

글을 읽을 줄 안다는 아드리아나의 대답에, 미네타의 얼굴에 반기는 기색이 비쳤다. 안경 위로 눈썹을 까닥이며 능글맞은 표정을 짓는 게 우스워서, 아드리아나는 예의도 잊고 쿡쿡 소리 내서 웃었다.

보호소의 사람들은 어른, 아이를 막론하고 웃을 때 마음대로 소리를 내서 웃었다.

미네타는 낮 동안만 빨래 무더기를 세 번이나 가져와서 개고, 온종일 아이들 뒤치다꺼리를 하며 돌아다녔다. 그러다 쉴 틈이 생기면 사무실 겸 응접실로 돌아와서 아드리아나와 함께 따뜻한 차를 마셨다.

무사한 날이 또 하루 지나고 있었다.

먹는 음식, 입는 옷, 방 안의 가구 등은 훨씬 수수했지만, 대부분은 잃었다고 해서 불만을 가질 만큼 매여 있던 적도 없는 것들이었다. 더욱이 벼랑 아래로 떨어질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던 이틀 전의 밤과는 비할 수 없이 안락하고 안전한 공간이었다.

늘 이 정도만 되어도 좋겠다, 이 정도 온화한 일상이 주어지기만 하면 좋겠다고 아드리아나는 생각했다. 감사한 마음으로 책 한 페이지를 읽다가 한참을 생각하고, 또 한 페이지를 읽다가 생각에 잠겼다.

문득 한줄기 빛이 뻗어져 나와, 펼쳐진 책 페이지 위를 환하게 가로질렀다. 커튼 틈으로 들어온 가느다란 햇빛이었다.

“어, 해 떴다.”

미네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당에서 밥을 해 주었던 아주머니도 같은 말을 하며 손에 복도를 빠르게 지나는 게 보였다. 여기저기서 커튼과 창문을 여는 드르륵 드르륵 소리가 났다.

“이놈의 장맛비가 오다가 말다가 징그럽게도 길었지. 꿉꿉했는데 너무 반갑네. 이불도 다시 널어야겠어.”

“저, 저도 도와드릴게요.”

아드리아나가 책을 놓고 일어서자, 미네타가 바깥을 정리할 동안 기다리라고 말하고서 먼저 문밖으로 나갔다.

아드리아나는 응접실 안을 서성대다 창가로 다가가서 커튼을 젖혔다.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에 눈이 부셔서 저도 모르게 눈매가 좁아졌다.

“환하다….”

창문을 활짝 열고, 두 손으로 이마 아래에 작은 그늘을 만들며 바깥을 바라보았다.

보호소 밖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넓게 펼쳐진 풀밭 위에 판자로 된 낮은 울타리가 와, 작은 가로등 하나가 보였다. 울타리 안과 밖으로 키 큰 나무들이 듬성듬성 뻗어 있었다. 하늘의 푸른빛이 초록 위로 맞닿아 녹아들고 있는 듯 보였다. 높은 언덕지대 위에 있는 곳일까.

“우리 이불 널어요!”

어느새 꼬마 하나가 들어와 뒤에서 소리쳤다. 식당에서 늘 아드리아나의 옆에 앉는 단발머리 웬디였다.

아드리아나는 웬디의 손에 이끌려 바깥으로 따라 나갔다.

“정말 높네요.”

동산 아래로 멀리 마을의 모습이 내려다보였다. 빨갛고 파란 지붕으로 덮인 작은 집들이 오밀조밀 늘어선 낯선 마을이었다.

새삼 자신이 고향으로부터 멀리 떠나왔다는 실감이 들었다. 리노아스에서 마차를 달려 수 시간이 넘게 떨어진 이곳. 함께 있는 사람들은 미네타가 관리하는 작은 아동보호소의 아이들과 일꾼 몇 명뿐이었다.

‘…탈출했어.’

17년 동안 외출도 자유롭게 못 하고 살아왔을지언정 한 번도 자신의 삶이 답답하거나 불행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행복한 줄만 알았던 그 시간의 끝은 너무도 가혹했다. 버클리도 아버지도 아드리아나에게 잘 대해주다가, 때가 되자 기다렸던 것처럼 두려운 일들을 하라고 강요했다.

이제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으리라.

“…개 무서워해요?”

미네타의 목소리가 정신을 현실로 돌아오게 했다. 그녀는 아드리아나의 발치에 있는 강아지 한 마리를 가리키고 있었다.

“못생겼지만 물지는 않아요. 아마도.”

“아, 귀여워요.”

아드리아나는 쪼그리고 앉아서 회색 털이 복슬복슬한 강아지를 쓰다듬어봤다. 어릴 때부터 이런 작은 개를 키우고 싶었지만, 저택에서는 방범용 셰퍼드와 사냥개들만 길렀다. 그 개들은 너무 사나워서 아버지 외에는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했다.

‘그래도 며칠 전에 보았던 그 커다란 개는 주인에게 애교를 잘 부리는 것 같았어.’

숲에서 조난당한 자신을 찾아냈던 큰 개가 떠올랐다. 또한 그 개를 뒤쫓아 온 여자와, 그 뒤에 나타났던 더 커다란 사람의 그림자도.

“저기… 미네타, 저를 데려오신 분들은 누구세요?”

물어보자, 미네타가 두 손바닥을 딱 부딪쳤다.

“아, 그렇지. 아가씨 몸이 괜찮아지면 찾아오라고 했었는데. 뭐, 아무 때나 찾아가면 만날 수 있을 거예요. 혹시 교회 다녀요?”

“아, 아뇨.”

“흠. 그래도 부활절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때에는 다들 맛있는 걸 얻어먹으러 가고 그러잖아요.”

확고함이 담긴 그 말투에, 아드리아나가 수줍게 웃었다.

“전 교회에는 한 번도 안 가봤어요. 사람이 많은 곳에는 별로 가본 적이 없어요.”

“흐음.”

미네타의 눈매가 게슴츠레하게 좁혀졌다.

“아무튼 난 크리스마스만은 함께 즐기는 주의라서요. 애들을 데리고 우르르 털러 가는 맛이 있죠. 중앙 교회가 있는 테스카까지 가본 적이 있는데 축제 규모가 장난 아니었어요. 거기까지 갈 사정이 안 될 때는 슈하스 시내라도 괜찮지만요. 참, 로레인 수녀님도 요즘 슈하스에 계세요.”

미네타가 약간 흥분한 듯 빠른 속도로 떠들었다.

아드리아나는 그 말의 내용을 거의 알아듣지 못했다. 정지된 것 같은 표정으로 눈만 깜박이자, 미네타가 말을 정정했다.

“로레인 수녀님 말이에요. 그분이 아가씨를 여기로 데려오신 분이에요.”

“아….”

로레인….

아드리아나는 왠지 감격한 기분으로 그 이름을 중얼거렸다.

성직자란 사람들은 아주 경건하고 기품 있는 사람들인 줄로만 알았는데. 로레인이라는 사람은 어리게 들리는 목소리로 고함을 버럭버럭 지르고 개에게 엉덩이를 때려주겠다는 위협도 했었다. 웃음이 나왔다.

‘내 생명의 은인이야….’

만약 그녀가 없었더라면. 그녀의 개가 아드리아나를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그들과 함께 있던 남자가 내려와서 구해주지 않았더라면….

‘그럼 그 남성분은 로레인 수녀님과 같은 교회에 계신 성직자이신 걸까?’

아드리아나는 다소 불친절하게 들렸던 낮은 목소리를 기억해내고 눈을 가늘게 떴다. 그리고 미네타에게 말했다.

“저, 그분들을 찾아뵙고 인사드리고 싶어요.”

“아, 그럴래요? 그럼 일요일에 웬디를 데리고 교회에 가주겠어요? 쟤는 교회를 좋아하거든요. 내 자전거를 빌려줄게요.”

미네타가 손가락으로 단발머리 여자애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드리아나와 눈이 마주친 웬디가 배시시 웃었다.

꼬마 여자애와 둘이서 외출을 하다니. 아드리아나는 리오나스에 살면서는 절망에 빠져서 다급하게 버클리를 찾아갔던 그날을 제외하고 혼자서 대문 밖을 나가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자전거를 타고 멀리 시내에 나간다니 상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들떴다.

이제 마음에 걸리는 것은 한 가지뿐이었다.

“혹시 여기에도 전화기가 있나요?”

걱정하고 계실 어머니에게 살아있다고 안부라도 전할 수 있다면. 그 후에는 그럭저럭 새로운 희망을 안고 살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아드리아나는 미네타에게 허락을 받고 사무실 구석에 놓여 있던 전화기를 찾았다. 그리고 바짝 긴장한 채로, 클로제 남작 가의 번호를 짚으며 다이얼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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