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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보다 아름다운-3화 (3/140)

00003  리노아스 편 -  파문  =========================================================================

그는 아드리아나의 두 볼을 감싸고, 좁은 입안에서 잠시 혀를 움직이다가 금방 몸을 떼었다.

“…여기 있는 여자들 중에서 네가 제일 예쁘더라.”

그가 미소 지으며 속삭였다. 그의 웃음 짓는 느낌이, 아드리아나에게는 썩 기쁘게 느껴지지가 않았다. 마치 입으로 하고 있는 말의 의미 외의 다른 무언가를 생각하면서 웃는 것처럼 보였다.

“버클리, 킹스턴에 가면 어떻게 지낼 거예요? 우리 연락하기 힘들겠네요.”

아드리아나가 얼굴을 조금 떨어뜨리며 물었다.

버클리가 소파 한 구석에 있던 쿠션 위로 손을 뻗으며 말했다.

“네가 오기를 기다려야지. 어차피 우리 둘 다 공부하느라 정신없겠지만.”

“저만을 기다리실 거죠?”

아드리아나는 왜인지 좀 전에 그와 인사를 나눴던 여학생을 떠올리며 물었다. 집요할 만큼 버클리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진심을 읽어내려 애썼다. 사랑한다는 그의 고백은 진심인 것이 틀림없었는데, 미래를 약속한 것 역시 그랬을 터인데, 그런데도 왜 자신이 이토록 불안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버클리가 훗 웃었다.

“나한테 와주겠다는 여자는 너밖에 없어, 걱정하지 마.”

그리고 다시 짧은 입맞춤 후에 속삭였다.

“이걸 베고 누워.”

그는 들고 있던 쿠션을 소파 한쪽에 놓고 아드리아나를 눕게 했다. 그리고 자신도 곁에 누워서 비스듬히 체중을 실었다.

아드리아나는 아직 찜찜한 기분이 풀리지 않았지만, 그를 끌어안고 그의 체온을 차지한 것에 작은 만족감을 느꼈다. 이제 낯선 대학생들도, 어색한 표정의 아가씨도 없는 둘만의 공간에서 그를 온전히 차지할 수 있게 되었으니.

포옹과 입맞춤, 애무가 이어졌다. 버클리는 어느 때보다 더 분방하게 아드리아나의 몸을 탐했다.

그러나 그의 애무의 강도가 높아질수록, 아드리아나는 다시 불안해졌다. 낯선 장소에 와 있기 때문인지, 평소처럼 두려움 없이 그에게만 집중할 수가 없었다. 다만 의심할 줄 모르고 순종해온 습성이 선뜻 상황에 반발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옴짝달싹못하고 있는 동안에, 슬슬 피어나기 시작한 쾌감이 그녀를 더욱 무력하게 만들었다.

이내 버클리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아드리아나의 손을 잡아서 자신의 아래쪽으로 이끌었다. 뻣뻣해진 중심이 손가락에 닿았다. 아드리아나는 반쯤 얼어붙은 상태로 그가 시키는 것을 했다. 그의 속옷 위를 쥐고 서툴게 손을 움직이자, 버클리는 기쁘다고 말하며 웃었다.

그는 계속해서 전에 하지 않았던 일들을 하려 했다. 그리고 더 큰 자극을 얻고 싶어 하는 듯했다. 아드리아나는 그를 기쁘게 해주고 싶었지만, 궁지에 몰리고 있는 기분이었다.

마침내 눈앞에 내밀어진 버클리의 성기를 본 아드리아나는 그만 울먹였다. 하지만 지금 그를 밀치고 뛰쳐나갔다가는 두 번 다시 그를 볼 수 없게 될 것만 같았다. 곤경에 처해 가빠진 숨 때문에 가슴이 크게 오르내렸다.

버클리는 그것이 남자에게 아주 소중한 일부라고, 자신을 사랑하듯 사랑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모, 못하겠어요.”

끝내 그것에 입을 대지 못하자, 버클리가 실망한 듯 한숨을 쉬고서 말했다.

“…알았어. 그럼 이건 나중에 하자.”

그는 웬일인지 순순히 물러나서 포옹을 했다.

안심하고 껴안자, 그가 다시 아드리아나의 몸에 입술을 대고 어루만지며 탐닉하기 시작했다. 기분 나쁜 두근거림이 희미하게 지속되고 있었지만, 아드리아나는 조심조심 그의 어깨와 팔을 어루만졌다. 실은 이제 이런 자극을 즐길 기분이 아니었다. 그저 버클리가 이 정도로 만족해서 고집부리지 않고 물러나주길 바라는 마음도 들었다.

“아, 아파요….”

“곧 괜찮아질 거야. 전보다 더 좋아질걸.”

버클리의 손가락이 몸 안에서 평소보다 난폭하게 움직였다.

참고 있던 눈물이 터져 나오고야 말았다.

“아파요, 버클리.”

그의 팔에 매달려서 애원하는 것밖에 할 수 없었지만, 그가 들어주지 않으니 너무 답답했다. 좋은 사람인데,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인데 왜 이렇게 고집을 부리는 걸까, 안타까움과 두려움에 더 서러운 눈물이 솟았다.

겨우 버클리의 손가락이 빠져나가고, 아드리아나가 막혔던 숨을 내쉬려 했을 때였다.

“아!”

버클리가 드러내고 있던 하체를 밀어붙이며 몸을 짓눌렀다.

“괜찮아. 금방 괜찮아질 거야.”

그는 멈추지 않고 침입을 시도했다. 아드리아나는 허벅지를 모은 채 잔뜩 힘을 주고 버텼다. 아프다고 흐느끼며 그의 팔을 움켜쥐고 떨었다. 울음을 터뜨리고 소리를 질렀지만, 버클리는 계속 괜찮다고 말하며 더욱 강하게 몸을 눌러왔다. 그가 멋대로 입구를 찢고 들어오려 하던 직전에, 갑자기 노크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곧바로 문이 열렸다.

“저기, 참견해서 미안한데-.”

허락도 없이 열린 문틈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저택의 주인인 얼린이었다.

“밖에까지 다 들려, 제롬. 일단은 내 집에서 일어나는 일이니까 말이야. 웬만한 일은 괜찮지만, 범죄의 현장이 되는 건 좀 그렇거든. 그 여자애는 아직 준비가 덜 된 것 같은데, 나중에 다른 데서 하지그래?”

얼린의 등장에 버클리와 아드리아나 둘 모두 얼어붙어서 꼼짝하지 못했다.

감당키 어려운 수치심으로 입술이 마르고 뺨이 뜨거워졌다. 얼린의 입에서 나온 ‘범죄’라는 말이 귓속에 강하게 박혀들었다. 내가 범죄를 저지른 건가? 나는 그 정도로 나쁜 짓을 하고 있었던 건가? 아드리아나는 정리가 되지 않는 머리로 두 남자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버클리 역시 곤혹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빨리 뭔가 얘기해서 오해를 풀어주길 바랐지만, 그는 애매한 태도로 일어나 앉아서 자기 앞만 추스를 뿐이었다.

얼린은 무심한 표정으로 버클리를 응시하고 있다가, 그의 대답을 더 기다리지 못하겠다는 듯 시선을 움직여서 아드리아나를 향했다.

“뭐, 혹시 그런 걸 좋아하는 취향이었다면 미안하고. 난 시끄러워지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 계속 즐기려거든 목소리를 조금만 낮춰줘.”

도로 문이 닫혀버렸다. 아드리아나는 그때 그의 말을 부정하고 얼른 일어나서 따라 나갔어야 했다고 뒤늦은 후회를 하며 버클리를 바라보았다. 그는 웃음기가 완전히 가신 얼굴로 겉옷을 입고 있었다.

아드리아나는 비틀거리며 일어나서 소파와 테이블 사이를 헤치고 나왔다.

“그, 그만 나가요.”

목소리가 떨렸다.

“그래.”

버클리는 아드리아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앞장서서 방을 나갔다. 그는 들어올 때처럼 손을 잡아주지도 않았고, 그 길로 곧장 저택을 나가며 어느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아드리아나는 버클리의 뒤를 따라가며 허둥지둥 리디를 찾았다. 말론의 곁에서 뭉그적대는 리디를 재촉해서 현관 밖으로 나가자, 이미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버클리가 작별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아드리아나를 마차에 올려 태웠다.

“다음에 보자.”

“기다릴게요.”

아드리아나는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몇 번이나 버클리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버클리에게는 그녀를 돌아봐줄 여유가 없어보였다.

아직 날이 완전히 저물기도 전이었다. 아버지에게 허락 받았던 시간은 한참이나 남아 있었다.

아드리아나는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하고 애를 태웠다.

하늘이 어둑어둑해지고, 마차 안이 창문에 비치기 시작했을 때 문득 거기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붉어진 두 뺨에 얼룩덜룩하게 말라붙은 눈물 자국이 남아 있었다.

‘창피해….’

지금까지 버클리의 앞에서 줄곧 이런 모습이었던 건가. 사람들 앞에서 이런 꼴을 하고서, 연인을 얼마나 부끄럽게 만들었을지 자괴감이 들었다.

얼린의 저택에서 벌어진 상황이 머릿속에서 반복되며 들러붙었다.

자신에게 쏟아지던 눈길들, 기분 나쁜 웅성거림, 다른 여자와 인사를 나눴던 버클리의 부자연스러운 태도, 둘만 있던 방에서의 그의 강요, 그 광경을 목격한 얼린의 냉소적인 시선….

이루 말할 수 없는 죄책감으로 괴로워졌다.

‘내가 그런 곳에 갔기 때문에….’

*

“왜 이렇게 일찍 돌아왔니?”

“그냥…사람들이 많은 곳이 잘 안 맞는 것 같아서요.”

아드리아나는 어머니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볼 수도 없었다.

터덜터덜 방 안으로 들어가자,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인 두 통의 편지가 눈에 들어왔다. 기다리는 이에게서 벌써 소식이 왔을 리 만무함에도 후다닥 편지를 집어 들고 확인했다.

첫 번째 편지는 킹스턴에서 온 것이었다. 상위 장학생들에게 입주 지원금을 지급하니 그것을 수령하라는 안내서였다. 또 다른 한 통은 아드리아나와 같은 학기에 입학하게 된 친척 여성에게서 온 것이었다.

아드리아나는 두 번째 편지를 읽다 말고 내려놓았다. 허탈함을 감출 수 없었다.

한동안 망연자실하게 앉아서 책상 위의 편지들을 내려다보고 있다가, 문득 해야 할 일을 생각해냈다. 버클리에게 편지를 쓰는 것이다. 이틀 후면 그가 저택으로 찾아올 터였지만, 일 분도 편하게 기다리고 있을 수 없는 상태로 이틀을 어떻게 버틸까.

‘언제까지나 그가 뭘 해주기만 바라고 있으면 안 돼. 그 사람은 이미 내게 많은 걸 베풀어주었으니까, 나도 우리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하도록 노력해야 해.’

사랑하는 법 같은 것은 배운 적이 없었다. 연인을 행복하게 해주는 방법 따위는 더더욱 몰랐다. 버클리가 자신에게 해주어서 기뻤던 일을 떠올리면 그저 이야기를 들어주고 웃어주고 위로해 주고, 곁에서 바라봐주고 다정하게 어루만져주는 것, 그런 것들이었다.

‘아까 내가 너무 싫은 내색을 해서 기분이 나빴을 거야.’

아드리아나는 그가 전부터 자신을 만져주기를 바랐다는 것을 얼핏 눈치 채고 있었다. 그래서 얼린의 저택에서 몸을 드러낸 그를 보았을 때에도 당황하는 한편, 언젠가는 그걸 요구받게 될 거라는 예감을 느끼고 있었던 자신을 깨달았다.

‘어쩌면 버클리도 나를 기쁘게 해주려고, 자기는 즐겁지도 않으면서 내게 그런 일을 해왔던 건지도 몰라.’

도덕성을 두고 설득하기에는 이미 늦어버린 건지도 몰랐다. 이미 자신들은 함께 사람들을 속이고 선을 넘었는데, 아드리아나 혼자 아프고 무서워졌다고 싫다고 하는 건 얌체 같은 태도일 수도 있다.

아드리아나는 다음날 아침 일찍, 리디를 통해 편지를 전달하게 했다.

편지 속에 열심히 자신의 진심을 적어 넣었다. 버클리를 더 배려해주지 못한 잘못에 대한 사과와, 그가 자신의 부족함을 보듬어주고 가르쳐주길 바란다는 수줍은 소망을 적었다. 버클리는 똑똑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므로 아드리아나의 마음을 충분히 알아 줄 터였다.

그날 저녁, 조용했던 저택이 소란스러워졌다.

계단을 뛰다시피 올라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리디가 답장을 가져온 걸까?’

아드리아나는 쿵쾅대는 발소리에 선잠을 깨고 일어났다. 문 앞으로 다가가자, 밖에서 다급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여보, 여보 나중에 하세요. 내일 얘기하세요.”

어머니의 긴박한 말투에 불현듯 두려움이 와락 밀려들었다.

문을 열려고 잡고 있던 손잡이를 놓지도 못한 채로 벌벌 떨었다.

이내 어머니의 작은 비명이 울렸다. ‘마님’하고 부르며 울먹이는 카리나의 목소리와 아버지의 거친 발소리가 공포심을 배가시켰다.

아드리아나는 손을 덜덜 떨면서 문고리를 놓았다. 그러나 그 앞에서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아버지가 손찌검을 하실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아주 어릴 때였지만,화가 난 아버지가 집안의 물건을 부수는 것을 본 일이 있었다.

철컥 철컥, 문고리 반대편에서 쇳소리가 울렸다. 하지만 난폭하게 열릴 거라고 생각했던 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 대신 아버지의 낮고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 들어왔다.

“누구든 멋대로 열어줬다가는 무사하지 못할 줄 알아라.”

무거운 발소리가 멀어졌다. 아드리아나는 가시지 않은 공포 때문에 크게 어깨를 들썩였다. 그래도 아버지가 그대로 물러간 것이 다행스럽게 생각되었다.

“어머니.”

턱을 떨며 불러보았다. 답이 돌아오지 않을까 무서웠지만, 어머니는 금세 대답을 들려주었다.

“아드리아나, 아가. 조금만 참으렴. 아버지 화가 풀리시면 열어주실 거야. 그래도 마음이 약한 분이시지 않니? 하루 이틀 지나면 괜찮을 거야. 너는 집안에서 얌전히 지내다가 학교에 가면 된다. 거기서 구속받지 말고 자유롭게 살아.”

어머니는 아드리아나를 달래고 안심시켜주었다. 그리고 내일 봐서 먹을 걸 갖다 주겠노라고, 하녀를 근처에 있게 하겠다고, 한참을 문 앞에서 말을 걸다가 떠났다.

아드리아나는 어머니도 자신도 걱정이 되어서 견딜 수 없었다.

어머니는 무슨 일 때문에 아버지가 화를 내고 있는 건지 언급하지 않았다. 아드리아나도 물어볼 수도 없었다. 자신의 짐작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이유 때문일 거라는 예감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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