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의 엄마가 되어버렸다 특별 외전-32화 (완결) (221/221)

특별 외전 3. 당신을 기억하는 법3—4화(完).

‘왜 저렇게 쳐다보지?’

멈춰 서서 한참 남자와 시선을 나 누던 설이, 대수의 기척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이설.”

“아, 어!”

“왜 그래?”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집요한 남자의 시선을 지나치며, 설이 계속 걸었다.

“우리 무슨 얘기 중이었지? 아! 둘째…….”

설이 또 놀라 멈췄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눈 앞에 환이 있었다. 옆에는 설의 또 래로 보이는 여자 한명과 함께.

뜬금없이 왜 환이 여기 있는가 했 는데 벌써 집 앞이었다.

“둘째……. 둘째가 저기 있네.”

“뭐?”

옆에 선 여자와 웃는 얼굴로 두런 두런 대화를 나누던 환이, 무심코 고개를 돌리다 설을 발견했다.

“……설이?”

놀란 척 반갑게 웃던 환의 시선이 재빠르게 대수의 얼굴을 훑고 이내 서로 꽉 붙잡은 둘의 손에까지 닿 았다.

“오빠 동생이야?”

“아, 응. 쟤가 설이야. 인사할래?”

무해한 웃음을 얼굴 가득 피운 환 이 설에게로 한달음에 달려가 그녀의 머리를 다정하게 헝클어뜨렸다.

“우리 설이, 저녁 먹었어?”

“……아니.”

당장이라도 토할 것 같은 기분을 가까스로 참으며 설이 대답했다.

“누구야? 여친?”

“아! 반가워, 설아. 오빠한테 얘기많이 들었어. 나는 서이연이야. 우리 동갑 맞지?”

갈색 단발이 잘 어울리는 이연은 얼굴에 대놓고 ‘나 착함’을 써 붙여 놓은 듯한 인상이었다.

환의 마수에 걸린 예쁘고 착한 동 갑내기 친구라니…….

마음이 측은해진 설이, 한숨을 쉬 며 이연이 내민 손을 맞잡았다.

“응, 반가워. 이설이야. 그런데 대 체 우리 오빠 왜 만…….”

“여기는 혹시 우리 설이 남자친구인가?”

환이 재빨리 설의 말을 자르며 물 었다.

대수가 인사했다.

“예. 하대수라고 합니다.”

“하하……. 엄청 잘생겼네?”

“그런 말 많이 듣습니다. 감사합니다.”

“하하! 하하! 그렇구나…….”

아무도 모르게 환의 이마에 작은 힘줄이 솟았다.

“아, 택시 왔다. 오빠, 나 먼저 가 볼게. 설아, 나중에 우리 한 번 더 보자.”

“그래, 이연아. 조심히 들어가.”

설은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 어주었다.

택시로 향하며 두런두런 나누는 둘의 대화가 참, 가관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정말 안 데려다줘도 돼?”

“어우, 정말. 괜찮다니까. 오빠가 맨날 데려다 줘서 오늘은 내가 꼭데려다 주겠다고 약속했잖아.”

“그래도 좀 걱정되는데…….”

“아이고, 됐어요. 집에 들어가자마 자 전화할게.”

“그래, 그럼. 기사님, 잘 부탁드립 니다.”

이연을 차에 태우고, 기사님에게 택시비를 미리 지불하며 예의 바르 게 인사까지 남기는 환의 모습을 쭉 지켜보고 있던 대수는 생각했다.

‘멋진 사람이네.’

떠난 택시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손을 흔들던 환이 빙글,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웃는 얼굴로 저벅저벅 다가와—

“안 떨어지냐? 뒤질래?”

—잡고 있던 설과 대수의 손을 제 손날로 팍 끊어놓으며 말했다.

대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 하는 거야!”

빽 소리를 내지른 설이 한숨과 함 께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다시 소개할게, 대수야. 우리 둘째 오빠 이환이야. 이중인격자지.”

멍해진 대수의 얼굴을 죽일 듯 노 려보던 환이 설에게 소리쳤다.

“이거 지금 뭔데! 진짜 남친이야?

어제까지만 해도 없었잖아?”

“오늘 사귄 거니까!”

“장난해?”

“장난 아닌데?”

“이이…….”

이를 갈던 환이 대수를 노려보며 말했다.

“외박은 절대 금지. 평일이든 주말 이든 이설은 8시 이전까지 귀가시 켜라. 오밤중에 전화해서 애 잠 못 자게 하지 말고. 그리고 만나다가 차이면 깔끔하게 떨어질 것. 질척거 리거나 새벽에 집 앞에 찾아오면 죽인다.”

“…….”

“너 미쳤어, 진짜?!”

설이 환의 어깨를 퍽퍽 때리며 등을 떠밀었다.

“미안해, 대수야. 개소리니까 한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줘. 그리고 다음에 이 인간 길에서 마주치 면 모른 척해도 돼.”

“야, 아직 내 말 안 끝났거든!”

“시끄러워, 좀!”

환을 멀찍이 밀어놓은 설이 한숨 돌리며 대수에게 인사했다.

“나 이만 들어가 봐야겠다. 데려다 줘서 고마워.”

“어, 그래.”

“내일…….”

설이 뺨을 긁적이며 머뭇거리자대수가 작게 웃었다.

“데리러 올게.”

“으응, 그래. 집에 가서 전화해.”

“알았어.”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는 설의 걸 음에는 아쉬움이 묻어 있었다.

한참 멀어지고 나서, 설은 목소리를 살짝 높여 말했다.

“진짜 갈게.”

“그래.”

피식 웃은 대수가 가볍게 손을 올려 흔들고는 덧붙였다.

“내일 봐, 설아.”

퍽 다정한 인사에, 흠칫 놀란 설이 빨개진 얼굴로 뒤돌아 도망치듯 달 려갔다.

멀찍이서 기다리고 있던 환이 질 색했다.

“저기요, 아줌마. 얼굴 터지시겠어요.”

“아! 몰라, 몰라~!”

“억! 야, 잠깐만! 어억!”

부끄러워 한껏 뺨이 달아오른 설이 마구잡이로 손을 휘둘렀다. 제법 매운 손길에 얻어맞으며 환은 눈물까지 찔끔 흘렸다.

“아퍼, 이 돼지야! 동네 사람들! 돼지가 사람 잡아요!”

“조용해, 이 바보야!”

요란한 남매의 귀가였다.

그리고, 멀찍이서 그들을 지켜보던 금안의 남자는 이내 시선을 거두고 뒤돌았다.

멀어지는 것이 못내 아쉬운 남자의 느릿한 걸음마다, 떨어진 벚꽃잎 이 발에 챘다.

‘제누스….’

오랜 시간을 돌아 다시 만난 그의 자식 제누스의 영혼은, 더 이상 찢 기고 비틀리지 않은 채로 더할 나 위없이 향기로웠다.

한때 그녀가 ‘아버지’라 불렀던 남자의 품을 완전히 벗어난 지금에서 야 비로소.

가이오니야.

자신이 만든 세계에서, 사랑해 마지않았던 자식들을 지옥 속에 살게 했던 존재.

그는 그 대가로 지금, 이 세계의 신으로부터 끝나지 않을 형벌을 받 고 있었다.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자식들을 갈구하며 사랑하는 본능만은 뼈에 새겨져 영원하리라.’

‘다만 결코, 그들에게 기억되지 않는 존재로 영원을 살게 되리니.’

‘잊힌 채로 영원을, 반복되는 삶 속에서도 기억되지 않을 존재로 다시 영원을.’

천천히 멈춰 선 남자가 공허한 눈으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잔혹한 형벌의 계절이, 또 지나가 고 있었다.

***

[안녕하세요, 실버라이트 작가님.

이설이에요. 잘 지내셨나요?

어제 나온 특별 외전 정말 재미있 게 잘 읽었습니다.

마지막 비하인드 스토리가 아쉬운 독자들이 많은 것 같던데 리뷰에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실은…… 저도 조금 당황하긴 했 습니다. 작가님의 의문처럼, 가이오니아가 그리 쉽게 사라지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요.

그렇지만 저는 걱정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왜냐면 저는…….

믿습니다!

프로크레아토르!

분명 나쁜 가이오니아가 더 이상 은 형제들의 행복을 위협할 수 없 도록, 그가 완벽한 결말을 마련했을 것이라고요.

그러니까 작가님도, 걱정하고 계신 다면 부디 안심하세요.

영원한 실버라이트 작가님의 팬, 설이가.]

***

타닥타닥.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던 신이, 작 업용 안경을 벗고 잠시 목을 풀며 벽시계를 확인했다.

‘애들 올 시간이네.’

소설책 결말이 마음에 안 든다며 아침까지 투정을 부리고 나갔던 설 이 떠올라 신이 웃음을 터뜨렸다.

“찝찝해도 너무 찝찝해. 솔직히 작가님이, 가이오니야 시체라도 확실히 나오는 특별 외전 또 내줬으면좋겠다.”

“아냐, 그치만 나는 똑똑한 프로크레아토르 믿는다. 가이오니아가 지옥에서 살아 돌아올 것까지 예상했을 거라고! 꼭!”

제법 예리한 추측이 아닌가.

턱을 괴고 모니터를 들여다보던 신이, 숨겨져 있던 파일 하나를 찾 아 열었다.

〈페르소나〉.

지금 이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그의 첫 출간작이었다.

〈페르소나—숨겨진 이야기〉.

그리고…….

이전의 생에서도 읽힌 적 없고, 앞 으로도 누군가에게 읽힐 일 없을 〈페르소나〉의 최종장.

곧, 창조의 이능으로만들어 낸 프 로크레 아토르의 결 말이 었다.

***

심장이 꿰뚫린 가이오니아는 무(無)로 돌아가 아주 오랜 꿈을 꾸 기 시작했다.

“아버지에게도 죽음이라는 것이 있나요?”

꿈속에서, 그가 가장 사랑했던 자 식 프로크레아토르는 물었다.

[글쎄……. 네가 말하는 ‘죽음’。], 생명이 다한 존재가 비로소 눈을 감을 때를 말하는 거라면…….]

“…….”

[……나는, 죽지 않는다.]

태초의 근원인 ‘신’은 소멸하지 않 는다.

[다만 나에게도 최후가 있단다. 비 로소 소멸이라고 일컬을 수 있는…….]

“아버지도요?”

[그래, 아이야.]

가이오니아는 천진한 자식의 눈을 바라보며 슬프게 웃었다.

그는 전능하며 또한 전지한 존재였다.

수만 갈래의 미래를, 그는 이미 전 부 내다보고 있었다.

[나의 숨보다 중한 너희들에게 잊 히게 될 때.]

“…….”

[내가 더 이상, 너희들에게 기억되 지 않는 존재로 남을 때.]

“…….”

[나에게는 그때가 최후일 것이다.]

가이오니아는 자식의 뺨을 어루만 지며, 슬프게 웃었다.

[나를 가장 닮은 아이야. 나를 죽이고, 다시 살리고, 또 태어나게 하 겠구나.]

아주 오래전, 가이오니아는, 자신을 죽일 프로크레아토르의 운명을 알고 있었으나 그를 막지 않았다.

그마저도,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

의식마저 사라진 무(無)의 세계에 서, 가이오니아는 또 오랜 시간을 부유했다.

이윽고 그가 눈을 떴을 때는—

낯선 세계였다.

그는 늙어가고 병드는 한낱 인간의 육체 속에 하릴없이 갇혀 있었다.

“…….”

가만히 손을 펼쳐 내려다본 가이오니아는 깨달았다.

이곳에서는, 자신이 더 이상 전능 하지 않다는 사실을.

“아버지.”

익숙한 목소리.

꼭 자신과 같은 인간의 껍데기를 입고 있었으나 가이오니아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래.

이곳은 바로, 가이오니아가 가장 사랑했던 자식—

프로크레아토르의 세계.

길고 긴 무의식에서 깨어났을 때, 가이오니아는 비로소 자식의 ‘피조 물’로서 눈을 뜨게 되었음을 깨달 았다.

“이곳은 제가 만든 세계입니다.”

“……그래.”

낯선 풍경을 찬찬히 둘러보며, 프로크레아토르가 덧붙였다.

“그러나 저의 것이 아닙니다.”

“…….”

지그시 눈을 감은 가이오니아가 희미하게 웃었다.

프로크레아토르가 무슨 말을 하려 는지, 알 수 있었다.

“아버지가 한낱 피조물에 지나지 않았던 내 형제들에게 ‘의지’를 허 락했을 때부터.”

“…….”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 아니었어요.”

가이오니아는 알 수 없는 표정으 로 침묵했다.

그런 그를 직시하며, 프로크레아토르는 고백했다.

“아버지가 다시 돌아오실 것을 알 고 있었습니다.”

전능한 가이오니아의 끝이 결코 소멸이 아님을, 프로크레아토르는 미래를 내다보는 ‘전지’의 능력으로 이미 알고 있었다.

“수많은 미래 중에, 아버지가 끝내는……. 불쌍한 나의 형제들을 놓아주는 미래가 있기를, 진심으로 바랐 습니다.”

“그래. 있더냐.”

“…….”

프로크레아토르는 대답하지 않았 지만, 그것은 곧 대답이 되었다.

가이오니아는 그 어떤 미래에도 다시 돌아왔으며 매번 그의 전능으 로 형제들을 불행케 했다.

죽여도 죽지 않는 그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그를 더 이상, 전능하지 않은 존재 로만드는 것.

그보다 더 전능한 존재의 감시 아 래, 영원한 피조물로서 봉인해 두는 것뿐이었다.

프로크레아토르는, 제누스의 영혼을 자신의 세계로 데려왔을 때처럼…….

심장이 파괴되고, 무(無)의 세계에 서 잠시 전능을 잃은 채 부유하던 가이오니아를 인간의 육체에 담았다.

자신의 세계에서, 영원히 자신의 전능에 지배받을 수밖에 없도록.

그로써 더는, 가이오니아가 형제들 에게 돌아갈 수 없도록.

“아버지도 보셨지요. 이 미래를.”

“…….”

“그럼에도 저를 살려두었던 이유는…….”

사랑하기 때문에.

프로크레아토르는 답을 아는 말을 끝맺지 못한 채로 씁쓸하게 웃었다.

아버지의 맹목적인 사랑을 이해할 수 있었으나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원하시는 대로, 영원히 우리를 사랑하십시오.”

“…….”

“다만 나의 불쌍한 형제들에게 결 코 기억되지 않는 존재로 영원을 살게 되실 겁니다.”

“…….”

“잊힌 채로 영원을, 반복되는 삶 속에서도 기억되지 않을 존재로 다시 영원을.”

결국.

한때는 창조신이었던 가이오니야 에게 남겨진 것이라고는—

“그것이, 감히 제가 아버지에게 드 리는 형벌입니다.”

그가 저지른 죄로 인한 속박과 형 벌의 굴레뿐.

비로소 영원을 담보로 한 죗값을 치르게 된 것이었다.

***

탁.

신이 노트북을 덮었을 때, 밖이 소 란스러웠다.

“형! 어디 있어! 나와 봐!”

“야, 조용히 하랬다!”

문 너머로 들려오는 정겨운 소란에 신이 픽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문을 열자 엉겨 붙은 설과 환이 여느 때처럼 유쾌하게 다투고 있었다.

“형, 형! 돼지가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밖에서…… 억!”

“조용히 하라고! 내가 말할 거라 고!”

“응, 내가 말할 거야! 돼지 남친 생겼대! 얼굴만 번지르르하고 볼 거 하나 없는 놈이었어!”

“아니거든?!”

“뭐야, 설이 남친 생겼어? 정말?”

“아니야, 오빠. 들어 봐. 걔가 진짜 의외로 괜찮은 앤데…….”

“아냐, 형. 대충 봐도 딱 자기 잘난 맛에 사는 놈이야.”

“너 진짜 죽을래?”

“내가 남자는 다 늑대랬지?”

“아이고, 시끄러워라…….”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신이 부엌으로 향했다.

익숙하게 앞치마를 두른 그가 시 끄럽게 투닥거리는 설과 환을 바라보며 웃었다.

비로소 행복해진, 불쌍하고 아름다운 나의 형제들.

그들이 있고, 또한 자신이 존재하는—

“그만 좀 싸우고, 얘들아.”

소소하지만 분명히 행복할 수밖에 없는 일상이 있는, 그런 세계.

신은 행복하게 웃으며, 여느 때와 다름없이 말했다.

“밥 먹자.”

—특별 외전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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