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외전 1. 그녀의 비밀1—3화.
“앗! 오빠, 왔어?”
침대에 엎드려 뭔가를 열심히 쓰 고 있던 설이, 환을 보고는 반갑게 달려와 두 손을 공손히 겹쳐 내밀 었다.
“헤헷, 얼른 주세요! 우리 오빠가 세상에서 제일 멋져!”
“뭐래냐?”
물고 뜯지 못해 안달인 남매 사이는 이렇게 살갑지 않았다.
귀엽지 않은 여동생이 이런 공손 한 태도를 보일 때는 항상 이유가 있는 법인데…….
‘아, 맞다.’
환의 입이 떡 벌어졌다.
아침에 제게 5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주며 했던 설의 부탁이 뒤늦게 떠올랐다.
“오늘 〈남주의 엄마가 되어버렸다〉특별 외전〈개와 고양이의 나날〉출간되는 날이야. 작가가 미쳐서 종이책으로만 내니까 서점에서밖에 못 사.”
“오빠 오늘 공강이랬지? 그거 현시되자마자 반나절 만에 싹 팔릴테니까, 시간 맞춰서 꼭 사와 주라. 남은 돈은 오빠 가져도 돼.”
분명 아침까지만 해도 그 부탁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데이트하는 중에 싹 까먹고 말았다.
심지어 오늘 데이트하면서 지갑에 있는 전 재산을 탈탈 털어 다 쓰고 왔다. 설이 준 심부름 값 5만 원까 지.
“설아.”
“응?”
“미안해. 내가 까먹었다.”
환이 실토하자, 설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빠질 듯 치뜬 눈으로 덜덜 떨던 설이 이내 환의 멱살을 잡고 소리 질렀다.
“야아아아! 이 미친 새끼야!”
“아, 잠깐만. 노, 놓고 얘기해.”
“너 그거! 그거! 으아아아……!”
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금세 붉 어진 설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 이 줄줄 흘렀기 때문이었다.
아니, 책 하나 못 샀다고 이렇게까 지 흥분할 일이야?
“뭐야? 무슨 일이야?”
엄청난 소란에 신이 황급히 달려왔다.
“아, 끄, 오빠, 오, 오빠…….”
“어, 그래. 설아. 무슨 일이야? 진 정해. 울지 말고 말해 봐.”
쉴 새 없이 눈물을 흘리며 설이 환을 삿대질했다.
“내가, 외전, 끅, 으아아아……. 사, 사오라고, 컥!”
“이환. 네가 말해 봐. 설이가 지금 뭐라는 거야?”
도무지 울먹이는 설의 말을 못 알아듣겠는 신이 환에게 묻자, 그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아, 그……. 아침에 얘가 나한테 소설책 사와 달라고 했는데 내가 까먹었어.”
“그래? 그럼 지금 사러 가면 되잖 아?”
“꺽! 아, 안 돼. 그거, 그거 금방 다 팔리, 끅!”
“아아, 다 팔렸을 거라고?”
위아래로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설을 안타까운 눈으로 보던 신이, 바지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며 말했다.
“혹시 알아? 운 좋게 몇 권 남았을이지도. 지금 가 보자. 오빠가 얼른 태워다 줄게.”
“끅!”
손등으로 억세게 눈물을 훔친 설 이, 훌쩍이다가 이내 신의 손에 들 린 지갑을 쏙 가져갔다.
“서, 서점, 끅! 여기 바로 앞이라 달, 끅! 달려갔다 오는 게 빨라! 갔 다 올게!”
“어어, 그럴래?”
마지막으로 환을 죽일 듯 노려본 설이, 혹여나 늦을세라 순식간에 달 려 나갔다.
한숨을 쉰 신이 못마땅한 듯 환을 노려보았다.
“너는 까먹을 게 따로 있지.”
“와아, 형. 까먹은 건 미안한데 저 게 정상이야? 책 한 권 못 구했다 고 질질 짜고, 내 멱살 잡아 짤짤 털어 대고, 응?”
“설이 성격 알면서 그런다.”
“알아도 적응 안 돼! 이거 봐. 이 게 뭐냐고, 대체.”
바로 옆에 서 있는 하데스 루버몬트의 등신대를 가리키며 환이 혀를 내둘렀다.
“차라리 실존 인물 덕질할 때가 나았다. 이건 진짜 선 넘었지.”
그래도 미우나 고우나 아끼는 여 동생인 설인데, 웬 실재하지도 않는 2D 남자에 미쳐서 오빠 멱살까지 잡아채니 환은 울컥할 수밖에 없었다.
거만한 표정으로 턱을 세운 하데스 루버몬트 등신대를 한참 노려보 던 환이, 이를 갈며 그의 얼굴에 가볍게 잽을 날렸다.
툭.
“오, 시발.”
동시에 경악했다.
그리 세게 힘을 싣지도 않았건만, 등신대의 몸과 머리가 보기 좋게 분리되고 만 것이다.
“야, 이환! 너 미쳤어?!”
“크, 크, 큰일 났다. 어떡해. 이거어떡해, 형.”
환이 제 머리를 쥐어뜯으며 발을 동동 굴렀다. 대형사고였다.
***
산발이 된 머리와 슬리퍼 차림으 로 설은 단숨에 서점에 도착했다.
. 〈남주의 엄마가 되어버렸다〉특별 외전〈개와 고양이의 나날〉만큼은 절대 놓칠 수 없었다.
완결이 난 지 1년여 만에 나온 새로운 외전이었고, 누구의 이야기일 지 빤히 알겠는 외전 제목부터 설을 설레게 했다.
개와 고양이처럼 티격태격하던 등 장인물, 아자르 로만과 록사 트리볼트!
은발의 실눈 마법사 록사 트리볼트는 하데스 다음으로 설이 좋아하는 차애 캐릭터였다. 특별 외전을 절대 놓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였다.
허겁지겁 서점 안으로 들어선 설 은 외전 출간 기념으로 마련된 매대를 향해 곧바로 직진했다.
‘와! 남았다! 정말 남았어!’
하마터면 설은, 보는 눈도 많은데 비명을 내지를 뻔했다.
〈남주의 엄마가 되어버렸다—개와 고양이의 나날〉
얇은 종이책 한 권이 마치 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매대 위에 놓여 있었다.
감격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손을 뻗던 그 순간이었다.
‘……?’
옆에서 불쑥 튀어나온 누군가의 손이 설의 눈앞에서 먼저 책을 집 어 들었다.
경악한 설이 옆을 휙 돌아보았다.
“하, 하대수?”
웬걸. 여기에서 마주치리라고는 상 상도 못 했던 얼굴, 대수였다.
그는 여느 때처럼 무심하고 도도 한 표정으로 설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이거 사려고?”
“어, 어?”
설은 긴장했다. 그녀의 눈이 슬쩍 굴러 대수의 손에 들린 책 표지를 훑었다.
〈남주의 엄마가 되어버렸다〉.
항상 생각해 왔던 거지만…….
‘대체 작가는 무슨 생각으로 책 제 목을 저렇게 지은 걸까?’
유치해도 너무 유치한 제목 때문에 도무지 어디 가서 좋아하는 책이라고 당당히 말할 자신이 없었다.
꼭 제목 때문만이 아니라도, 설에게는 학교에서의 이미지란 게 있었다.
놀 땐 놀지만 학업에는 충실한 불 수능 만점 전적의 완벽한 경영대 여신.
성적을 유지하기 위해 자투리 시 간에는 전공 책만 들여다보는 성실 한 이미지를 깨고 싶지 않았다.
설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내가? 그걸?”
“아냐?”
“뭐래…….”
급히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설이 자기계발서 매대에 놓인 책 한 권을 들었다.
〈경영과 사업, 그리고 인간관계 론〉.
흠잡을 데 없는 제목이었다.
“나 이거 사러 왔거든?”
“그래?”
다행히 대수는 의심하지 않는 듯했다.
어깨를 으쓱한 대수가, 그대로 책을 든 채 설을 지나쳤다. 계산을 하러 카운터로 가는 모양이었다.
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쟤 지금 저거 사려는 거야?’
퍼뜩 정신을 차린 설이 황급히 대 수의 앞을 가로막았다.
“자, 잠깐만.”
“왜?”
“너 그거……. 그거 읽으려고? 네 가 읽으려고 사는 거야?”
“어, 왜?”
하대수 취향 무슨 일이지?
“그, 그거 로맨스 소설 아니니?”
“맞는데.”
“네가 읽겠다고?”
“왜? 남자는 로맨스 소설 읽으면 안 돼?”
“아니, 물론……. 그런 건 아니지 만.”
앞을 막고 얼버무리는 설을 내려 다보던 대수가, 그녀를 지나치기 위 해 왼쪽으로 발을 옮겼다.
쓱, 울상을 지으며 시선을 내린 설 이 본능적으로 대수의 앞을 가로막았다. 멈칫한 대수가 눈썹을 세웠다.
다시 대수가 오른쪽으로 발을 돌 리자 이번에도 설이 앞을 막았다.
“하?”
머리 위에서 하대수 특유의 비웃 음이 들려왔다. 눈을 질끈 감은 설 이 입술을 물고 부들부들 떨었다.
이윽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보니 대수의 예상했던 표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또, 또, 또 나한테 관심 한번 받아보려고 이러지.’
—라고, 생각하는 게 뻔해 보였다.
설은 찰나의 순간에 고민했다.
대수에게 사실을 말하고〈남주의 엄마가 되어버렸다〉특별 외전을 쟁취할 것이냐, 아니면 그놈의 이미 지를 위해 포기할 것이냐.
“뭐 할 말 있어?”
거만하게 턱을 세운 대수가 물었다.
“으응…….”
“말해, 그럼.”
“그게, 그게 있잖아…….”
입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대수는 참을성 있게 설을 기다려 주었다.
“대, 대수야. 일단……. 내가 지금 부터 하려는 말, 소문 안 내줬으면 좋겠어. 너무 부끄러워서 말이야. 꼭 좀 부탁할게.”
“그걸 내가 뭐 하러 소문내?”
의외로 담백하게 부탁을 받아들이는 대수에, 설이 놀랐다.
“무슨 말 하려는지도 알아. 부끄러 우면 굳이 말로 할 필요 없어.”
“저, 정말?”
설이 내심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긴 바보가 아닌 이상, 누가 봐도 설이 로맨스 소설책을 사러 온 것쯤은 눈치챌 터였다.
괜히 민망해진 설이 들고 있던 자 기계발서를 옆에 조심히 내려놓았다.
“고마워. 그럼 내 부탁 들어주는 거지?”
눈을 빛낸 설의 손이 본능적으로대수가 들고 있던 책으로 향했다.
휙, 그러나 순간 손을 든 대수 때 문에, 목표물은 눈앞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좋아.”
피식 웃으며 대답하는 대수를 보 고, 설도 어색하게 마주 웃었다.
“응, 고마워.”
그러니까 빨리 좀 주라고.
혹시나 대수가 말을 바꿀까, 설은 재촉하고 싶은 마음을 꾹 삼킨 채 얌전히 기다렸다.
그러나 대수는 책을 줄 생각이 없 어 보였다.
“저…… 대수야?”
“알았다고.”
“응, 그러니까 빨리…….”
“빨리 뭐? 내가 지금 뭘 더 해 줘 야 해? 산책이라도 하자고?”
“그게 무슨 소리니?”
아무래도 무슨 오해가 또 있었던 모양이다. 이마를 긁적이던 설이 물 었다.
“내 부탁 들어주겠다며?”
“그래. 사귀어줄게.”
……?
설의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얘가 지금 뭐라는 거지?
잘못 들었나, 설이 귀를 의심하는 데, 피식 웃은 대수가 거만하게 턱을 세우고는 한 번 더 쐐기를 박았다.
“사귀어주겠다고.”
—
“……사귀어준다고? 나랑?”
“그래.”
“내, 내가 언제 너한테 사귀자고 했어?”
설이 황당하다는 듯 말하자, 대수가 한쪽 눈썹을 세웠다.
“방금 하려던 말이 그거 아냐?”
“허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현기증을 느끼며 설이 머리를 짚었다.
“미안한데 오해야. 내가 하려던 말 은, 그러니까…….”
정정하려는 순간 설은 또 한 번 고민에 휩싸였다.
대답을 기다리는 대수의 얼굴을 바짝 긴장한 채로 마주 보던 설이, 이내 크게 심호흡을 하곤 말했다.
“……보고 싶어.”
“…….”
말했다. 완벽한 이미지를 쌓아오고 있던 경영대 여신이, 저 유치한 제 목의 로맨스 소설책을 사기 위해 슬리퍼 바람으로 달려 나왔노라고.
눈을 질끈 감고 대수의 반응을 기 다리던 설이, 이어지는 정적에 슬며 시 눈을 떴다.
왜인지 대수는 붉어진 얼굴로 눈을 껌뻑거리다가—
“……뭐, 뭘 보고 싶다는 건데.”
—반사적으로 제 옷깃을 여미며 되 물었다.
놀란 설이 질색했다.
“아, 말고!”
“…….”
“그거! 지금 네 손에 든 그거! 남주……. 어쩌고 그거 특별 외전 말이야!”
이내 알아들은 대수의 눈이 제 손에 들린 책으로 흘깃 향했다가, 다시 설을 돌아보았다.
“네가? 이걸 사러 왔다고?”
“그, 그래!”
뺨을 붉힌 채 부끄러운 표정으로 대답하는 설의 얼굴을 빤히 응시하 던 대수가 피식 웃었다.
“잘도…….”
“정말이거든?”
“그래. 여기.”
대수가 순순히 건네는 책을 설이 급히 잡았다. 그러나 여전히 손에 힘이 실려 있어 뺏을 수는 없었다.
“준다며?”
“나한테 다른 할 말은 더 없고?”
“없는데? 줄 거야, 말 거야?”
정말 책에만 관심 있는 듯한 설을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대수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
틈을 놓치지 않은 설이 책을 냉큼 빼앗았다.
“고마워, 대수야. 이 은혜는 잊지 않을게. 아, 다 읽고 나면 너 빌려 줄게.”
“…….”
그렇게 말한 설은 방긋 웃더니, 뒤 도 돌아보지 않고 계산대를 향해 사라졌다.
그 뒷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며 대 수는 눈만 껌뻑였다.
‘……?’
한참 서 있는데, 시선이 느껴져 돌 아보니 누군가가 자신을 측은한 표 정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잔뜩 떡이 진 머리를 대충 묶고 두꺼운 안경을 쓴, 삐쩍 마른 여자였다.
“뭘 봐요?”
왜인지 설과의 대화를 다 엿듣고 있었던 것 같아, 대수가 불쾌한 표 정으로 물었다.
여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들고 있던 책 한 권을 대수에게 내 밀었다.
“제가 한 권 드릴게요.”
〈남주의 엄마가 되어버렸다—개와 고양이의 나날〉.
대수가 집어 들었던 책이었다.
“필요 없는데요.”
“예? 이거 사려고 하셨던 거 아니 었나요?”
“아뇨. 제가 이런 유치한 책을 왜 봐요?”
대수의 말에 어이없다는 듯 천천히 입을 벌린 여자가, 이내 추리하는 탐정처럼 턱을 쓰다듬더니 중얼거렸다.
“아아……. 실은 이 책엔 전혀 관 심이 없지만, 저 여학생과 우연한 만남을 가장하기 위해 근처에 있던 이 책을 집어 들었고, 겨우 여학생 과 말을 섞어볼 수 있나 했더니의 외로 진짜 이 책을 사러 왔던 여학 생이 눈치 없이 책만 홀라당 가져 간 상황인가요?”
흠칫한 대수가 한층 더 불쾌해진 눈으로 여자를 노려보았다.
“제가 딱 맞힌 모양이군요. 그래도 드릴 테니 한번 읽어보세요. 이거는 무려 작가 사인본이거든요?”
“아, 됐다고요.”
여자가 집요하게 들이미는 책의 표지를 힐끔 본 대수가, 질색하는 표정으로 한마디 남기고 떠나갔다.
“제목도 무슨 발로 지은 것 같은 책을 내가 왜…….”
대수의 마지막 발언을 들은 여자 가 충격으로 굳었다.
이내 여자는 씁쓸한 표정으로 코 끝을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역시 제목이 문젠가…….”
특별 외전 판매량을 확인하러 동 네 서점에 잠행을 나왔던〈남주의 엄마가 되어버렸다〉저자 실버라이 트는, 조금 우울해졌다.
***
잔뜩 흥분한 설은 눈 깜짝할 새집에 도착했다.
한 자 한 자 핥을 준비를 마친 뒤경건한 마음으로 책을 펼칠 생각이 었지만, 유혹을 참지 못하고 현관 앞에서 첫 장을 넘겼다.
그녀의 눈이 재빨리 처음 나오는 대사부터 훑었다.
[……하데스가 고개를 젖히고 목을 풀었다.
“……무리했나. 목이 너무 뻐근하 네.”
그때 하데스의 뒤로 다가온 아이샤가……]
이내 콧김을 쉭 뿜은 설이 다시 책을 덮고 감격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너무 좋아, 너무 좋아. 빨리 들어 가서 볼 거야. 우리 오빠 뻐근한 목을 뒤로 다가온 아이샤가 뭘 어떻게 해 줬는지 빨리 볼 거야. 내가 이걸 보려고 지금까지 살아있었 구나. 내 인생 최고다. 빨리, 빨 리…….”
삑삑삑삑—!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만큼 엄청 난 속도로 도어록 비밀번호를 누른 설이 현관문을 홱 열어젖혔다.
“빨리, 빨리! 우리 오빠 뻐근한 목 이! 우리 오빠 목이 어떻게…….”
그러고는 곧바로 마주한 환의 모습에, 설은 굳었다.
살금살금 설의 방에서 제 방으로 향하려다 딱 걸린 환의 표정은, 뭔 가 단단히 사고 친 사람처럼 사색이었다.
설의 시선이 그대로 떨어져 환의 옆구리에 끼어 있는 익숙한 무언가 로 향했다.
“우리 오빠 목이…….”
화려한 제복을 차려입은 하데스 루버몬트 등신대.
“목이…….”
그러나 무슨 일인지, 목이 부러져있다. 몸 위에 달려있어야 할 하데스의 잘생긴 얼굴이 온데간데없었다.
‘꿈인가…….’
설은 멍하니 눈을 의심하며 비비 적거렸다.
“환아, 본드 여기…….”
동시에 신이 제 방에서 나오다 화 들짝 놀랐다. 그의 손에는 하데스의 머리통과 작은 본드 하나가 들려 있었다.
“서, 설아. 빨리 왔네.”
“목……. 우리, 오빠 목이…….”
잔인하게 분리되어 오빠들의 손에 각각 들려 있는 하데스의 몸과 머리.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던 설의 손에서 책이 툭 떨어졌다.
“서, 설아. 일단 진정하고 내 말 좀 들어봐. 내가 그러려고 그랬던 게 아니고…….”
환이 허둥거리며 설에게 다가갔고, 신은 한숨을 쉬며 이어질 소란에 귀를 틀어막았다.
“나는 살짝 쳤는데……. 컥!”
이내 환의 멱살을 단단히 붙든 설의 포효가, 고요한 동네를 쩌렁쩌렁 울리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