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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의 엄마가 되어버렸다 외전-22화 (완) (211/221)

외전 22화 — 그들의 끝나지 않 은 이야기 (完).

“야, 이 돼지야~! 일어나라!”

“아, 5분만…….”

“뭘 또 5분만이야?! 오늘 빨리 깨워 달라며! 나도 데이트 있어! 빨리 일 어나!”

아침 댓바람부터 발로 엉덩이를 쿡 쿡 찔러 기상시키는 익숙한 목소리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둘째 놈이었다.

비몽사몽 일어나 눈을 비비고 보니 둘째 놈의 표정은 가관도 아니다.

흥분해서 커진 콧구멍하며, 어울리 지 않게 벌게진 얼굴.

놈은 열심히 누군가와 메시지를 주 고받는 중이었는데, 아마 23년 만에 처음 생긴 그 여자친구인 모양이었다.

대학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첫눈에 반해 고백을 했다는데…….

갓 입학한 새내기 여학생이 대체 뭐 가 아쉬워서 이런…… 얼굴만 번지르 르하고 인성은 파탄 난 둘째 놈에게 홀라당 넘어갔단 말인가?

머지않아 파국일 테지. 놈의 실체를 알면 삼십육계 줄행랑을 칠 것이 뻔하다.

‘제발 도망가세요!’

나는 속으로 그녀의 무사한 해방을 기원했다.

“이환〜! 설이 깨웠어? 얼른 나와서 밥 먹어!”

“돼지 완전 굼떠! 지가 무슨 잠자는 숲속의 공주인 줄 알어!”

“아, 깼잖아!”

“아악! 이게 뒤질라고!”

핸드폰에서 눈을 못 뗀 채로 나를 타박하는 둘째 놈의 옆구리를 힘차게 한번 꼬집어주고, 방을 나오니.

“깼어? 얼른 밥 먹어. 오늘 학교 일 찍 갈 거라며.”

“우웅…….”

앞치마가 잘 어울리는 우리 첫째 오라버니께서 보글보글 끓던 된장찌개를 식탁 가운데 내려놓고 나를 불렀다.

대충 눈곱만 떼고 앉으니, 여느 때처럼 아침이라기엔 화려한 식단이었다.

“형, 나 5만 원만.”

“아, 오늘 데이트하러 간댔나?”

옆에 앉자마자 돈 달라는 둘째 놈에, 오빠는 자연스레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얘 어제도 5만 원 타 갔잖아! 그만 줘! 버릇 나빠져!”

“와……. 누가 들으면 지가 용돈 주는 줄? 뭔 상관이세요?”

젓가락을 든 둘째 놈이 인상을 확 찌푸리곤 날 노려봤다.

“그만, 그만. 설이 얼른 밥 먹어.”

“헤헤……. 형, 알러뷰~!”

기어코 오빠의 지갑에서 5만 원을 갈취해낸 저 악마 놈…….

“자, 우리 설이도 용돈.”

다정한 오빠가 내 밥그릇 옆에도 5 만 원짜리 한 장을 내려놓았다.

“난 괜찮은데…….”

입은 그렇게 말하지만 몸은 솔직했다. 나는 슬그머니 샛노란 지폐 한 장을 수금했다.

“얘야말로 버릇 나빠져! 용돈 주지 마! 주는 족족 뭔 임부복소년단인지 방탄복소년단인지에 쓰는 거 몰라서 그래?”

“방탄복소년단이야!”

내가 덕질하는 아이돌이다.

감히 신성한 우리 오빠들의 그룹명을 헷갈리다니.

“이환, 그러지 마. 설이가 좋다는데 왜 그래?”

역시 우리 다정한 첫째 오빠가 최고다.

한참 돈 많이 드는 대학생인 둘째 놈과, 올해 입학할 예비 대학생인 나를 책임지고 있는 첫째 오빠지만 걱 정은 없었다.

왜냐고?

이신. 잘난 우리 첫째 오라버니께서는 유명한 작가거든.

전에 인세 들어오는 통장을 슬쩍 봤 는데, 그 정도면 죄책감 없이 용돈 받 아도 된다.

“그런데 오늘은 왜 이렇게 일찍 가? 졸업식이 내일 모렌데…….”

오늘은, 수능 보고 겨울방학을 늘어 지게 보내던 나의 졸업식 전전날이었다.

이것저것 정리해야 하는 마지막 등 교일이었는데, 대다수가 출석도 안 한다는 이날 내가 서두르는 이유가 있었다.

“내 친구 안나 알지? 오빠가 주근깨귀엽다고 했던 애 있잖아.”

“어어, 기억나. 저번에 같이 차로 데려다줬던 걔 말이지?”

“응응. 안나 반에, 출석부에 이름만 있던 남자애가 있었거든? 미국에 유 학 갔었대. 그런데 이번에 한국 들어와서 수능 보고 오랜만에 학교 나온 대서.”

“음? 그게 너 학교 일찍 가는 거랑 무슨 상관이야?”

오빠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헤헤……. 구경하러 가려구. 안나 말이, 엄청 잘생겨서 여자애들이 다까무러칠 정도였대. 그뿐이야? 걔 나 랑 같은 대학, 같은 과 붙었다니까?”

이 시점에서 짚고 넘어가자면 나는 ‘불’수능이라고 말 많았던 이번 대입 시험의 만점자다. 공중파 뉴스 인터 뷰까지 한 몸이 라 이 거야.

한국대학교 경제경영학과 20학번 새 내 기!

“와, 잘생겼는데 공부도 잘해?”

“나도 예쁜데 공부 잘하잖아.”

“지랄.”

둘째 놈이 찬물 끼얹으며 끼어들었다.

“너 지금 그러니까 남자 새끼 보러 가겠다고 아침 댓바람부터 깨워달라 고 한 거냐?”

“그게 뭐?”

“이게 아주 벌써부터 놀 생각에 정신이 쏙 빠졌지? 어? 머리 꼬라지 뭔 데?”

“아악!”

내 머리카락 끝을 쭉 당기며 둘째 놈이 시비 걸었다.

수능 끝나자마자 멋 좀 부려보려고 신이 오빠 따라 탈색한 내 머리…….

어이가 없다. 자기도 군대 다녀와서머리 기르자마자 샛노랗게 염색한 주 제에.

“너 정신 똑바로 차려. 남자는 나랑 형 빼고 다 늑대야. 특히!”

둘째 놈이 얼굴을 쭉 들이밀었고 나는 질겁하며 한 뺨 고개를 물렀다.

“음흉한 복학생들 조심해라. 지금 너 같은 새내기들을 노리고 있다고.”

“와, 진짜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이다. 새겨들어야겠다.”

아무것도 모르는 새내기를 낚아챈 음흉한 복학생을 조심하라니. 자기소 개도 이런 자기소개가 없군.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

“불쌍한 여친이 얼른 이 새끼 실체를 깨닫고 도망가야 할 텐데.”

“뭐야?!”

집에서는 말 안 듣고 성질 더러운 인성 파탄자지만, 밖에서는 어찌 그 리 다정한 미남 행세를 하시는지.

무려 심리학과라는 사실까지 소름 돋는다. 말도 안 돼, 진짜.

“돼지 너 이리 와. 이 쥐콩만 한 걸 그냥 확!”

“어~ 때려봐! 때려봐!”

“자, 자. 그만 싸우고 밥 먹자.”

오늘도 어김없이 다투는 나와 둘째 놈을 오빠가 중재했다. 흔한 우리 세 남매의 아침 풍경이었다.

***

등굣길.

잘나가는 신이 오빠의 삐까뻔쩍한 외제차가 여친과 조조영화 보기로 했 다는 둘째 놈을 영화관에서 내려주 고, 우리 학교 정문 앞에 섰다.

“나갈게!”

“응. 끝나면 데리러 올까?”

“아니, 아니. 나 오늘 안나랑 노래 방 가기로 했어. 용돈 잘 쓸게.”

“그래, 그래. 다 놀면 전화해. 밤늦 으면 위험하니까.”

“응!”

마음이 급해 후다닥 내리는 나를 보 며 오빠가 재미 있다는 듯 웃었다.

“이설!”

가려는데 조수석 차창을 내린 오빠 가 고개를 살짝 뻗고 나를 불렀다.

돌아보니 씨익 웃는데, 누구 오빠인 지 참 잘생겼다. 우리 오빠랑 결혼하는 여자는 진짜 좋겠다.

“오랜만이라 반갑겠다. 잘 만나고 와. 그잘생겼다는 친구.”

“응?”

난 그 애 유학 가기 전에도 본 적 없 는데. 오빠가 말을 잘못 이해했나.

뭐…… 바쁜 와중에 정정해줄 필요는 없지.

“알았어!”

대충 힘차게 대답해주고 손을 들어 크게 흔들어준 뒤, 나는 걸음을 옮겼다.

교실은 3층. 졸업식을 앞둔 마지막 등교일이라 그런지, 안나가 입에 침 이마르도록 칭찬한 그 잘생긴 애 볼 생각에 신난 건지 발걸음이 가벼웠다.

촐랑거리는 걸음으로 두세 칸씩 계 단을 건너 밟고 있던 그때였다.

“어맛!”

층계참에서 돌아 내려오는 누군가를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딱 맞닥뜨 린 내 몸이 휘청 기울었다.

큰일 났다. 못해도 머리는 깨지겠다.

찰나에 그런 생각을 하며 계단 뒤로 넘어가려는 순간.

나는 내 팔을 강하게 휘어잡은 상대 방 덕에 겨우 중심을 잡고 설 수 있 었다.

“엄마야……. 미, 미안해. 앞을 못 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붙잡아준 누군가를 향해 고개를 든 나는, 까무 러치게 놀랐다.

정말, 내 절친 안나의 말 그대로.

‘까무러칠’ 정도로 놀랐다.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잘생긴 남자 순위 1위는 첫째 오빠였고, 인정하긴 싫지만 2위는 둘째 놈이었는데…….

오늘부로 모든 순위를 한 단계씩 뒤 로 미룬다.

그리고 어쩌면벌써 2년이나 덕질해 온 우리 방탄복소년단 오빠들을 내려놓아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신이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공들 여 만든 듯한 이목구비.

3년이나 지겹게 본 흔한 우리 학교 교복 차림이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완벽한 몸매. 큰 키.

그 남학생은 태어나서 본 남자 중에 제일 잘생긴 얼굴이었다고, 자신 있 게 확신할 수 있었다.

근데 우리 학교에 이렇게 잘생긴 애 가 있었나? 있었으면 내가 몰랐을 리 없는데?

아, 혹시…….

“미쳤어? 죽을 뻔했잖아.”

그 애는 나보다 더 놀란 눈으로 말 했다.

“미, 미안.”

“하, 진짜…….”

피곤하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쓸어 넘기는 모습이 상당히 거만해 보였지만, 그마저도 잘생긴 얼굴과 지나치 게 잘 어울렸다.

“피곤해 죽겠네. 제발 부탁인데, 말 걸고 싶으면 그냥 평범하게 말 걸어 라.”

“……응?”

뜬금없는 그 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내가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이렇게 몸까지 던져가면서 열과 성을 다할 필요까지 있냐? 목숨은 한갠데.”

“대체 뭔 소리…….”

“내가 좋으면 좋다고 말로 하라고. 이런 무리수 두지 말고.”

잠깐. 나 언어영역 1등급인데 독해 가 안 돼.

찬찬히 그 애의 말을 이해하려던 나는 경악했다.

설마…… 내가 자기랑 한번 엮여보 려고 일부러 계단에서 쇼를 했다고 생각하는 건가?

뭐 이런 황당한 놈이 다 있어?

잠시나마 방탄복소년단 오빠들을 배신하려고 했던 나를 속으로 채찍질한 뒤, 오해를 풀려던 그때.

내 머릿속에 절친 안나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걔 진짜 잘생기긴 했는데 나는 별 로야. 아주 자기 잘난 맛에 살더라고. 모든 여자애들이 다 자기 좋아하는 줄 안다니까?」

「자의식 과잉 200%임, 진짜.」

그때 깨달았다.

아, 얘가 걔구나.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더 궁금하다. 이름이 뭐야?」

「맞다, 이름. 푸하하……. 미국 유학까지 다녀왔다는 애가, 이름이 진짜 안티더라. 완전 촌스러워. 하 대…….」

아스라이 사라지는 안나의 목소리를 곱씹으며, 나는 물끄러미 그 애의 교복 재킷 가슴팍에 달린 명찰을 확 인했다.

[하대수]

그게 바로, 잘생겼지만 자의식 과잉 넘쳐났던…….

지금은 내 남편이 된 그와의, 고등 학교 때 첫 만남이었다.

—외전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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