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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의 엄마가 되어버렸다 외전-21화 (210/221)

외전 21화.

“어, 어머니……. 저, 저거 진짜예 요?”

“응. 네가 말했던 생일 선물. 약속 지켰지?”

“아빠가 고생 좀 했다.”

“와, 와, 와…….”

놀란 아벨이 일어나 떨다가 결국 입을 틀어막고는 한참 감격했다.

“우와!!!”

이윽고 두 팔을 허공 위로 뻗으며 소리 지르는 아벨에, 우리는 모두 웃을 수밖에 없었다.

“공자님 동생이 태어나는 거예요?”

아벨과 마찬가지로 소식을 처음 들 은 데보라도 기대하는 눈치였다.

발그레해진 뺨으로 묻는 데보라에 나는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갑자기 아벨이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얼마나 흥분했는지 그는 숨까지 헐 떡이며 아직은 티도 안 나는 내 배를 빤히 바라보았다.

“여, 여자예요? 남자예요?”

“아직 모르지. 여동생이었으면 좋 겠어? 아니면 남동생?”

“두, 둘 다 좋아요. 쓰다듬어줘도 될까요?”

“뭐어? 상관은 없지만…….”

아직 인간보다는 세포에 가까울 텐 데, 이거 참…….

뭘 잘 모르는 14살 아벨은, 내 배 속에 귀가 달리고 쓰다듬어줄 머리가 있는 동생이 벌써 있는 줄로 아는 모양이었다.

천천히 내 배 위에 손을 가져다 댄 아벨이, 긴장한 표정으로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아, 안녕?”

데보라도 미하일의 무릎에서 쪼르 르 내려와 신기한 눈으로 내 배를 바 라봤다.

“안녕하세요, 공자님 동생님.”

둘의 모습이 귀여워 나와 하데스, 그리고 미하일은 한참 웃었다.

아벨이 내 허리를 끌어안고 배 위에 뺨을 붙이며 물었다.

“이름은, 이름은 지어주셨어요?”

“아직. 네가 지어줄래?”

“그래도 돼요?”

“응. 그런데 네 아빠가, 여동생이면 자기가 짓고 싶은 이름이 있다고 했 어.”

“네! 그러면 남동생이면 제가 지어 줄래요. 여동생 이름은 뭐예요?”

아직 나도 듣지 못했기 때문에 궁금 했다.

딸 이름은 자기가 짓고 싶다기에 그러라고 했는데…….

하데스를 돌아보자, 그는 아벨의 뺨을 살짝 꼬집으며 웃고 말했다.

“시냐.”

“시냐? 예뻐요! 완전!”

뭐든 안 예쁠까.

지금 아벨은 동생에게 어떤 이름을 가져다 붙여도 예쁘고 좋다며 고개를 끄덕일 게 틀림없었다.

“건강하게 자라주세요, 내 둘째 조카님.”

“푸하하하……!”

미하일이 덕담을 붙이자 하데스가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미하일을 보며 만족스럽다는 듯 말했다.

“대신관의 세례는 항상 재수 없었 는데 말이야. 이번에는 상당히 마음에 들어.”

“공익을 위한 세례랍니다. 이런 건 괜찮죠?”

“그럼, 그럼.”

뜻 모를 대화를 나누던 둘이 마주 웃었다.

“그나저나 이번에는 어딜 갈까.”

하데스가 계속 폭죽이 터지고 있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축제 기간은 바쁘다.

축하하러 온 귀족들을 일일이 상대 하랴, 영지민들 앞에서 축사하 랴…….

모두에게는 축제지만, 정작 주인공 인 아벨이나 우리 부부에게는 업무 기간이라고 해야 할까?

해서 언제나 그랬듯, 여러 이유로 가족끼리 오붓하게 보낼 수는 없을 테지만 아벨은 동생 때문에 그럭저럭 만족하는 듯했다.

진짜 생일 파티는, 항상 이 축제 기 간이 끝나고 가깝거나 먼 곳으로 떠 나는 짧은 여행이었다.

아벨은 고민하다가 고개 저었다.

“잘 모르겠어요. 전 아무 데나 괜찮 아요. 이번에는 대신관님 이랑 사제님 도 함께 가는 거죠?”

들뜬 아벨의 목소리에, 다시 무릎에 앉힌 데보라를 안고 물끄러미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던 미하일이 그를 보았다.

미하일은 말없이 웃었고 데보라는 약간 씁쓸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갑자기 조용해진 분위기에, 나는 애써 웃으며 말했다.

“이번에는 남부에 있는 파라디스 군도로 가는 게 어때? 거기 아무도 안 가봤지? 바다가 얼마나 맑으냐면, 물속에 있는 물고기들이 다 보일 정 도거든.”

“우와!”

내 말에 데보라가 눈을 휘둥그레 뜨 며 탄성을 질렀고, 그런 데보라를 보 며 아벨이 더 들떠서는 고개를 끄덕 끄덕했다.

“네!”

“파라디스라……. 관광지 하면 거 기만한 곳이 없지. 그곳이…….”

문득 하데스가 내 어깨에 팔을 두르 며 말했다.

“더글라스 후라네 자작이 3년 전에 매입했던 사유지던가?”

헉!

이 치밀한 남자. 아직까지 더글라스 후라네의 자취를 예의주시하고 있었 단 말인가.

나중에 가족끼리 전세 내고 놀 생각으로, 아무도 모르게 사놓았던 관광지였는데…….

이쯤이면 더글라스 후라네의 일거 수일투족은 감시하면서 정작 그가 나인 건 모르는 하데스가 더 신기하다.

이거, 이거…….

설마 이미 다 알면서 모른 척하는 건 아니 겠지?

내가 어색하게 웃었고 하데스는 눈을 가늘게 뜬 채 그런 나를 바라봤다.

“아벨 생일이라고 친히 놀러 오라 연락이라도 보낸 모양이군. 드디어 이번에는 그자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건가?”

“하하…….”

아니, 뭐.

불법이든 뭐든 황실 위에 있는 루버몬트니 이제 딱히 숨길 필요도 없는 이름이지만, 하데스에게 실토할 타이밍을 놓친 게 문제였다.

의문의 후견인 더글라스 후라네를 향해 이를 바득바득 가는 하데스를 지켜보며, 나는 이번 파라디스 여행 에서야말로 진실을 밝히기로 마음먹 었다.

“다 같이 가요! 대신관님도, 사제님 도, 앤이랑 마법사님, 그리고 아자르도……! 제 동생도요!”

잔뜩 기대하는 표정으로 아벨이 말 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파라디스 군도는 예전에 한 번 다 녀왔던 기억이 있군요. 정말 멋진 곳 이죠. 함께 갈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말이죠.”

미하일의 말에, 나는 문득 씁쓸해졌다.

그러기 힘들다는 걸 미리 들어서 알 고 있던 탓이다.

“부인, 저쪽 세계는…… 어떤가요? 여기만큼 아름답습니까? 파라디스섬처럼 물이 맑은 관광지도 있겠 죠?”

“당연하죠. 데이트 장소로 딱인 곳 이 얼마나 많은데.”

“기대되네요.”

나는 가만히 일어나 미하일의 뒤로 다가갔다.

마지막을 준비하는 그를, 데보라는 알고 있는지…….

품 안으로 파고드는 그녀의 눈에 슬 픔이 가득했다.

나는 뒤에서 미하일을 가만히 끌어안았고 그는 살짝 웃으며 내 팔을 어루만졌다.

한참 그렇게 온기를 나누다가, 나는 조용히 말했다.

“보고 싶을 거야.”

“나도.”

미하일이 웃으며 대답했다.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어. 나는 여 기서 조금만 더 행복하다가 갈게.”

“당연하지. 너무 늦지 마.”

“거기서는…… 누나라고 불러라.”

“하하하……. 뭔 소리야. 내가 오빠 지.”

“아냐, 내가 누나야.”

“아냐, 내가 오빠야.”

“아니라고.”

“어디 한번 보자.”

조용히 속삭이듯 주고받는 우리 대 화에 모두가 침묵했다.

이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게 느껴 졌다.

「낮에 봤던 오색찬란한 불빛 말인 데, 내가 죽는 미래에서도 봤던 거야. 아마 오늘일 듯해.」

록사가 아침에 실수인지 고의인지하늘 위로 쏘아 올린 불꽃. 그걸 본 미하일이 내게 한 말이었다.

아름다운 밤하늘 아래에서 눈을 감 았다는 그의 마지막.

데보라는 벌써부터 눈물을 흘리며 미하일의 품을 파고들었다.

그는 살짝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

“피곤하다…….”

“그럼, 조금 자. 계속 네 옆에 있어 줄게.”

“그래.”

“행복한 꿈을 꿀 거야.”

“그렇겠지.”

“고생했어.”

“너도…….”

“사랑해.”

“나도……. 나도 사랑, 해…….”

“사랑해, 이그니스.”

“응…….”

“사랑해…….”

“…….”

“행복해야 돼.”

더 이상, 들려오는 답이 없었다.

내 팔을 어루만지던 그의 손이 천천히 아래로 떨어졌다.

“정말 사랑해.”

가련한 나의 형제여.

“이그니스.”

“…….”

끝내 답은 듣지 못했지만, 그는 내게만 들릴 마지막 인사를 남기 고…….

그렇게,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응. 사랑해. 너도 행복해.’

***

미하일의 장례식은, 축제가 모두 끝난 뒤 루버몬트에서 조촐하게 치렀다. 그가 그러길 바랐기 때문이었다.

검은 상복을 입은 신관들은 눈물 흘리며 대신관의 죽음을 애도했다.

나는 한쪽에는 아벨의 손을, 한쪽에는 데보라의 손을 잡은 채 검은 드레스 차림으로 그의 마지막을 지켰다.

모자 아래로 내려온 검은 베일이 내엉망인 얼굴을 가려주어 다행이었다. 나는 맘껏 울 수 있었다.

“죽었어도 번지르르한 얼굴은 여전하구만.”

옆에 서 있던 하데스가 조용히 말했 고, 나와 아벨은 동시에 그를 돌아보 며 입가에 검지를 붙였다.

하데스의 말대로 관에 안치된 미하일의 얼굴에는 생기가 여전했다.

하얀 국화 사이에 누운 그는 미소 짓고 있는 것도 같았다.

‘지금은 만났을까?’

이곳과 저곳의 시간이 똑같이 흐르 지는 않을 테니, 어쩌면 미하일은 그 티웠던 형제와. 그리고 연인과 벌써재회했을지도 모른다.

“나, 있잖아.”

문득 든 생각에 입을 열자, 하데스 와 아벨이 나를 빤히 바라봤다.

똑 닮은 부자의 얼굴에 또 웃음이 났다.

“죽음이 무서웠던 적은 한 번도 없 거든. 매 생이 고통이었으니까.”

살아남아 있다는 것 자체가 고통스 러웠기에, 매번 죽음을 선택하는 데에 미련이 없었다.

“그런데 모든 게 끝나고 난 후에는, 거짓말처럼 죽는 게 두려워지더라고.”

태어나 처음으로만끽해 본 행복은 너무나도 달콤해서, 영원히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하지만 언젠가는, 내게 행복을 안겨준 이 첫 번째 삶도 끝이 보일 것이다.

그 사실이 참 슬펐는데…….

“그렇지만 우린 슬퍼하지 않아도 괜찮아.”

오히려 미하일의 죽음은 내게 안도를 가져다주었다.

이것이 영원한 헤어짐이 아님을, 그의 죽음으로 인해 확신할 수 있었기 에.

“데보라, 울지 않기로 나랑 약속했 지?”

어느새 우리는 편해졌다. 나는 다정 하게 데보라의 손을 잡고 물었고 그 녀는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행복하게 지내다가 다시 만나러 가자.”

“네에.”

“지금 파라디스는 엄청 따뜻하겠다. 즐거운 여행이 될 거야. 그치?”

이번에는 아벨을 향해 물었다. 그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다음에 나는 옆에 든든히 선 하데스를 돌아보았다.

“우리도 언젠가는 헤어지겠죠?”

“사랑하니 까 한날한시에 죽자.”

“풉.”

과격한 하데스의 고백에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는 헤어지는 게 안 무섭네. 다시 만날 걸 아니까.”

“나도 무섭진 않은데, 매번 그대를 다시 기억해야 하는 건 좀 성가셔.”

하데스가 내 어깨를 감싸 안고는 투 덜거렸다.

“벌써부터 걱정하는 게 우습긴 하 지만, 나중에 기 억 안 난다고 다른 놈 이랑 나를 착각하면 각오해야 할 거 야. 아주…… 퉁퉁 부르를 정도로 때 려줄 테니까.”

“휴, 아벨……. 정말 네 아빠는 너무 폭력적이라 걱정이다. 동생이 아 빠 닮으면 어떡하니.”

무기가 그의 입술인 걸 아는 아벨은 그저 풉 웃고 말았다.

정말로 걱정은 됐다.

태어나자마자 불을 뿜으면서 말을 하는 건 아닐까.

이를테면 ‘햐, 잘나서 너무 피곤한 내 인생이 시작되었군!’, 뭐 이런 대 사 말이야.

순간 든 오싹한 상상에 몸을 부르르 떨자, 하데스가 무슨 생각을 한 거냐 고물었다.

나는 모른 척 고개를 저으며 잡고 있던 아벨의 손을 꽉 쥐었다.

“사랑해, 아들.”

“저도요.”

새벽하늘에는 천천히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죽음에서 피어난 새로운 시작이었다.

“아들만 사랑해?”

“말하려고 했어요. 성질 급하긴. 사랑해, 여보.”

나는 가만히 하데스의 어깨에 기대 속삭였다. 그런 나를 하데스가 한 품에 단단히 끌어안았다.

새로운 시작과도 같은 끝.

다음이 기약된 죽음.

헤어지더라도 영원할 인연을 확신할 수 있음이, 이 얼마나 다행인 일인 가.

슬픔이 없는 수많은 헤어짐은 결코 두려움이 아닌 행복이리라.

우리는 영원으로 묶여있으니까.

“파라디스에 가면 실컷 수영을 하 자.”

그러니까 슬퍼하지 말기로.

지금처럼 그저 평범한 행복을 만끽하기로.

“좋아요!”

“저도 좋아요.”

“그런데 당신 수영할 줄 알아? 바보 같이 빠져서 허우적대는 거 아냐?”

“못해. 그러니까 나 업고 자기가 대신 해 줘.”

하데스는 나를 끌어안고 이마를 맞 댄 채 피식 웃었다.

“쉽지.”

그에게 안긴 채 웃으면서, 나는 아 주 조용히 속삭였다.

“행복하다.”

—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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