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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의 엄마가 되어버렸다 외전-19화 (208/221)

외전 19화.

“……갈 거야?”

울며 묻는 나를, 미하일이 한참 응 시했다.

그는 천천히 내가 내민 편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읽고 나면 돌이킬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편지를 쥔 내 손에 힘이 들어갔다.

“우으…….”

결국 편지를 받아든 미하일이 그것을 펼쳐 읽기 시작했다.

놀란 듯, 슬픈 듯, 기쁜 듯, 여러 감 정이 그의 얼굴에 스쳤다.

나는 다시 물었다.

“갈, 거야?”

“음……. 그래야겠지?”

“좀 그래. 억지로 목숨을 끊는 게 쉬운 일도 아니고, 나는 못 보겠어. 그냥…….”

“아니, 그럴 필요는 없어. 사실 얼 마 전에 미래를 봤거든. 내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더라고.”

“뭐?”

나는 놀랐다.

미래를 보았다니. 그것도 자신이 죽는.

그러니까…… 스스로 목숨을 끊을 필요 없이, 지금의 미하일 라이가르트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래서 네가…… 데보라를 부탁했던 거구나.”

“맞아. 네가 괜히 슬퍼할까 봐 말하 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걸 보니 그럴 필요는 없겠는걸.”

“뭘 그럴 필요가 없어! 뭐가 됐든 너랑 헤어지는 거 슬퍼! 봐! 지금도 눈물이 안 멈추…… 큽, 자나…….”

“아이 가졌다며?”

내 눈가를 쓸어주며 미하일이 다정 하게 물었다.

나중에 축하받으려고 아껴뒀던 얘 긴데, 하데스가 먼저 말한 모양이었다.

코를 훌쩍이며 고개를 끄덕이자 미하일이 빙긋 웃었다.

“축하해. 내 조카인데, 보고 갈 수는 있으려나?”

“죽지 마…….”

“영원히 못 만나는 것도 아닌데, 뭐.”

“그래도……. 다시 만날 때, 우린 서로 기 억하지 못하겠지?”

“무슨 상관이야. 다시 만난다는 게 중요하지. 그건 그렇고, 프로크레아토르가 만든 세계는…… 어때?”

“엄청 좋아. 너도 마음에 들 거야. 그리고 어디가 됐든…… 넌 행복할 거야.”

고통과 슬픔이 없는 편안한 죽음. 그리고 기다리고 기다렸던 연인과의 재회.

이제 그에게도 행복밖에 남지 않았 으니까.

그렇지만 그 사실을 알면서도, 나는 잠깐의 헤어짐에 눈물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흐아아아아…….”

“그만 울어. 아기가 나 싫어하겠다. 엄마 울린다고.”

“죽을 때, 까지 어디 가지 마. 여기 있어. 마지막까지 나랑…….”

“그래, 그래.”

미하일은 실소하며 우는 나를 안고 토닥였다.

똑똑.

“대신관, 있나? 들어간다.”

한참 울고 있던 그때,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하데스가 들어왔다.

그는 문을 열자마자 놀란 눈을 했다 가, 서로 부둥켜안고 찰싹 붙어있는 우리 둘을 보곤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지금…….”

“오해십니다. 제 머리통은 곱게 놔 둬 주시죠, 전하.”

하데스가 단숨에 미하일의 품에서 나를 끌어냈다.

그가 말도 안 되는 오해를 하기 전에 미하일은 프로크레아토르의 편지를 건넸다.

하데스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미하일을 훑으며 편지를 읽었고, 곧 뒤에 선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괜찮아?”

“아니, 전하? 죽는 건 전데 그쪽에 괜찮냐고 물어보시면…….”

미하일이 발끈한 표정으로 웃자 하데스가 그를 돌아보며 길게 한숨지었다.

아마 하데스는 미하일의 죽음을 미리 들어 알고 있던 모양인지, 긴 한숨 에는 약간의 안도가 느껴 졌다.

“행복한 죽음이겠군.”

“하하하……. 죽음이 행복하다니. 맞는 말이긴 하지만 좀 어 색하군요.”

“어디 가지 말고 여기 있어. 마지막에 외롭지 않게.”

“그럴 생각입니다.”

“흐아아아…….”

“뚝”

“울지 마. 대신관이 영영 죽어 사라 지는 것도 아닌데 뭘 그래?”

물론 하데스의 말대로였지만…….

나는 그날 한참 눈물을 그치지 못했 고, 두 남자는 그런 나를 아주 오랫동 안 달랬다.

***

오늘은 드디어 아벨의 14살 생일, 그 당일이었다.

루버몬트의 성대한 축제가 시작되는 날이기도 했다.

사실 그의 생일 축하는 매년 성대하 게 치러졌지만, 이번은 더했다.

‘진짜 부모’를 알게 된 기념이라며 하데스가 무리했기 때문이었다.

아벨의 생일날 아침.

오후에는 가신들과 식사를 하고, 영 지민들을 만나는 게 관례였기에 가족끼리 오붓한 자리는 지금이 마지막일 터.

아침 식사라기에는 테이블이 너무 나도 호화로운 식당으로 들어서며, 하데스는 아벨의 앞에 뭔가를 툭 던졌다.

“선물이다.”

하얀색 편지봉투.

겉으로 보기에는 별것 아닌 편지 한 통 같았지만, 아벨은 뛸 듯이 기뻐했다.

아, 혹시 오해할까 봐 말하는데 아벨이 작은 선물에도 기뻐하는 착한 아이라서 이렇게 흥분한 건 아니다.

“지, 지금까지 받았던 선물 중에 최 고예요!”

만약 저게 마음이 담긴 편지 한 장이라면, 지금까지 받았던 선물 중 가 장 정상적이기 때문에 기뻐하는 거였다.

‘편지 맞아요?’

나는 기대하는 아벨이 걱정되어 하데스에게 입 모양으로 물었고, 그는 생각보다 너무 기 뻐하는 아벨 때문에 조금 당황한 눈치였다.

표정을 보아하니 편지는 아닌 모양인데…….

“하아…….”

나는 그가 아벨에게 선물 주는 걸함께 지내는 세 번의 생일 동안 세번 봤다.

10억 노르트짜리 주먹만 한 루비가 달린 레이피어, 사막 국가 카지트에 딱 세 벌 있다는 마법 망토—이걸 구 한다고 한 30억 노르트는 들였다—, 남부 변경백 영지에서 발견된 블루다이아몬드로 조각한 아벨의 조각상이 바로 그것이었다.

참고로 작년에 받은 블루다이아몬드 조각상은 돈으로 환산할 수가 없는 가치였다.

무색투명한 다이아일수록 값이 나 가는 저쪽 세계와 달리, 이쪽에는 색 이 들어간 다이아가 거의 전무후무했 기 때문이다.

고맙다고 말은 하면서도 당장은 쓸 데도 없는 값비싼 선물들에 아벨이 얼마나 부담스러워했는지…….

“시, 식사하기 전에 읽어봐도 될까 요?”

“아, 저기……. 아벨.”

말리는 하데스를 본체만체하며 아벨이 봉투를 뜯었다.

들뜬 얼굴로 안에서 나온 종이 한 장을 펼친 아벨의 얼굴은, 내용을 확 인한 뒤 삽시간에 굳었다.

천국에서 지옥으로 뚝 떨어진 사람처럼 검어진 안색으로 아벨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뭐, 뭐니?”

“80억 노르트짜리 다이아몬드 광산을 제가 가져서 뭐 해요.”

아하. 그 옛날 내 지참금이 될 뻔했 던 그 다이아몬드 광산.

가신들의 눈을 피해서 갖고 있던, 하데스가 차명으로 계약한 비상금 같 은 거였다. 아벨에게 준 선물은 그 소 유주의 양도 문서쯤 되는 모양이었다.

녀석아, 그거 아주 의미가 큰 거야. 나중에 너 주려고 내가 몇 년을 묵혀왔던 건데.”

“네……. 감사합니다.”

마지못해 인사하며 아벨은 나이프 와 포크를 들었다.

어휴, 저럴까 봐 내가 편지 한 장이 라도 쓰라고 했더니. 말은 진짜 더럽 게도 안들어요.

원망하는 내 눈빛에 어깨를 으쓱하 던 하데스가 아벨을 향해 손짓했다.

“안에 뭐, 더 든 거 없어?”

“네?”

그는 씩 웃으며 빈 봉투를 가리켰 고, 의아해하던 아벨은 황급히 옆에 두었던 그것을 다시 열었다.

“어!”

놀란 아벨이 미처 발견 못 했던 한 장의 편지를 발견하고 열었다.

이번에는 정말 손편지인 모양인데, 아벨은 바로 읽지 못하고 접은 다음 홍분한 얼굴로 소리 쳤다.

“가, 감사합니다, 아버지!”

“그래, 부끄러우니까 혼자 있을 때 읽어라.”

“헤헤……. 네! 얼른 다 먹고 방에 가서 읽어볼게요!”

“천천히 먹어, 아벨.”

얼른 편지를 읽고 싶은지 아벨은 허 겁지겁 음식을 입에 밀어 넣기 시작했다.

“그리고 엄마도 선물 있어.”

“네? 엊그제 옷 사주셨잖아요? 편 지도 세 장이나 써주시고.”

“그건 그거고.”

나는 품 안에서 아벨을 위해 직접 만든 손수건 두 장을 꺼냈다.

사실 수놓는 솜씨는 조금도 늘지 않았지만 아벨은 이해해줄 거라 믿는다.

귀여운 아벨의 얼굴 옆에, 사랑스러 운 데보라의 얼굴까지 꼼꼼히 수놓아 만든 손수건은 두 장.

받아든 아벨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이거…….”

“흐홈. 가서 데보라랑 하나씩 나눠 가지렴. 이런 걸 ‘커플 아이템’이라고 한단다?”

“아니, 아…….”

귀까지 빨개진 우리 아들은 덜덜 떨 리는 손으로 연신 손수건을 들춰보았다.

“아무리 연습해도 실력이 잘 안 늘 어. 좀 서툰 티가 나지? 미안.”

“아니요! 정말 예뻐요! 사제님도 진짜 좋아하실 거예요. 어머니가 직접 만들어주신 거면 뭐든.”

“헤헷.”

“이야, 좋겠네. 영광인 줄 알아라.”

불만스러운 눈으로 턱을 괸 채, 하데스가 중얼거렸다.

마음 급한 아벨은 들은 체 만 체 하 고 그릇을 비우느라 바빴다.

“저, 빨리…….”

5분 만에 음식을 전부 입에 욱여넣 은 아벨이 하데스의 편지와 내 손수 건을 챙겨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저 먼저 가볼게요! 아버지 편지도 읽고 사제님도 만나야 해요!”

“가다 넘어질라. 조심해라.”

‘네에.’ 건성으로 대답한 아벨이 쌩 하니 사라졌다.

뒤늦게 나이프와 포크를 들며 하데스가 중얼거 렸다.

“하여튼 아들밖에 모르지. 내 손수 건 챙겨주는 건 집사뿐이야. 어? 이 게 말이 돼?”

전투적으로 고기를 썰며 혼잣말인 척 중얼거리는 하데스에 나는 못 참 고 웃음을 터뜨렸다.

아벨 주려고 만들었던 손수건을 주 운 하데스가, 처음에 그게 자기 것인 줄 알았다며 실토했을 때에는 얼마나 귀엽고 안쓰럽던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불만스럽게 칼질하는 하데스의 뒤로 다가갔다.

뒤에서 살짝 안자 그가 뚱한 표정으 로 나를 돌아봤다.

삐진 척하기는. 그래봤자 내 팔을 어루만지는 손길만은 다정했다.

“짠!”

나는 소매에 숨겨둔 손수건 한 장을 더 꺼내 하데스의 앞에 놨다.

이번에는 정말로…… 하데스의 얼굴을 수놓은 손수건이었다.

그가 가만히 손수건을 보더니 파하 하 웃음을 터뜨렸다.

“이번엔 진짜 당신이에요.”

“당연히 그래야지.”

“헤헤, 사랑해, 여보~!”

하데스의 목을 끌어안고 뺨에 쪽 입맞추자, 그가 웃고는 다시 내 입술 위에 키스했다.

“내가 더.”

“헤헤…….”

“그나저나 생일선물 하나 더 남았 잖아? 언제 주려고?”

임신 소식을 아벨에게 언제 알릴 거 냐는 질문이었다.

나는 씩 웃고 말했다.

“그건 우리 천재 마법사가 멋지게 도와주기로 했어요.”

***

루버몬트 별채의 꼭대기 층.

사방이 트인 옥상에는 마법 재단 마법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그들은 오늘 아벨의 생일 피날레 장식을 맡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시전자는 창조 마법이 가능한 수장 록사였고, 마법사 들은 그를 위해 부족한 마력을 보태 주는 마력 공급원쯤 되었다.

“이것 좀 드시고 하세요!”

앤은 새벽부터 고생인 그들을 위해 간식을 챙겨주느라 분주했다.

“하아아암……!”

정작 가장 바빠야 할 록사는, 늘어 지게 하품하며 느릿느릿 도착했다.

앤이 그를 발견하고 인사했다.

“어머, 마법사님. 오셨어요?”

“예이~!”

“우와…….”

앤이 록사의 모습을 보고 감탄을 터 뜨렸다.

장발을 단정히 묶은 그는 멋들어진제복 차림이었다.

각이 잘 선 군청색 제복에는 루버몬트를 상징하는 화려한 견장들이 고급스럽게 달려 있었고, 그와 대비되는 하얀색 장갑이 록사의 은발과 꽤나 잘 어울렸다.

장담컨대 앤은 4년 동안 이토록 멀 쩡한 록사의 모습을 본 적 없었다.

“아〜따매, 전하는 불편하게스리 뭔 꼭 요딴 옷을 차려입으라고 지랄이 여, 지랄은…….”

마법 재단 창립 이래, 받아놓고 한 번도 입어본 적 없는 제복이 록사는 조금 불편했다.

이번에는 구질구질한 로브 차림 말 고 꼭 제복을 챙겨 입으라는 하데스의 강요에 결국 따르긴 했지만…….

뻑뻑하게 목을 조이는 검은색 크라바트가 어색해 록사는 연신 그것을 만지작댔다.

“마법사님, 진짜, 지인짜 멋있어요. 세상에나…….”

“예……?”

“와, 맨날 거지같이 하고 다녀서 몰 랐는데 마법사님 생각보다 엄청 잘생 기셨네요. 달리 보이네.”

“거, 거, 거지예?”

“어머, 실수. 나도 모르게…….”

앤이 제 입을 툭 치고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런데 이게 살짝 비뚤어졌네.”

앤이 대뜸 손을 뻗어 목 언저리의 크라바트를 붙잡자 록사가 흠칫했다.

거리가 가까워진 순간 왜인지 작은 실바람이 불었고, 단정히 푼 앤의 머리카락이 흐트러지며 낯선 향기가 혹코끝으로 끼쳤다.

록사가 땡 얼어붙었다.

“그런데 우리 마님이 부탁하신 공자님 생일선물은 제대로 준비되고 있 어요? 다른 분들은 이렇게 열심인데 마법사님은 영 열의가 없어 보이잖아요.”

록사의 크라바트를 만져주며 앤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타박했다.

왜일까?

4년 동안 오며 가며 꽤 많이 마주쳤 던 얼굴인데 새삼 록사는 앤을 다시 보게 됐다.

투명한 녹빛 눈동자하며, 아이샤가 귀여워 죽겠다고 칭찬하고 다니는 하얀 뺨 위의 주근깨까지…….

‘진짜 귀엽지라.’

“……마법사님!”

앤이 무어라 한참 조잘거렸던 것도 같은데, 록사의 귀에는 잘 들리지 않 았다.

“이봐요!”

“예, 예!”

“이거 진짜 걱정되네? 정말 마님께 서 부탁한 그거…… 뭐랬죠?”

“폭죽. 폭죽이예……”

“네, 그거! 어떻게 생겼다더라? 막오색 불빛 찬란한 게 하늘에……. 정말 그거 할 수 있어요? 실수 안 할 거죠? 마님이 엄청 기대하고 있는데 혹시라도……. 어머!”

그때 록사가 얼굴을 불쑥 들이밀었다.

훅 가까워진 얼굴에 앤이 휘둥그레 진 눈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지가 누군데예. 천재 마법사 록사 트리볼트지라.”

씩 웃은 록사가 손가락을 한 번 퉁 겼다.

그 순간, 아직 밝은 하늘 위로 긴 불빛이 솟아올랐다.

붉은색 빛줄기는 하늘 높이 터져 여 러 색의 빛줄기로 갈라졌고, 이내 누군가의 얼굴을 만들어냈다.

“어머!”

하늘을 올려다본 앤이 화들짝 놀랐다.

주홍색 머리카락, 녹색 눈동자.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 위로 아 름다운 빛방울들이 제 얼굴을 그려내 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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