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6화.
가짜 친모의 등장으로 한바탕 소란을 겪었던 루버몬트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마법 재단 발표식에서 벌어진 일을 낱낱이 기록한 록사의 발명품인 영상 기록구가 공개되었고, 모두에게 진실 이 알려지며 하데스는 오명을 벗었다.
사기꾼들의 최후?
그것은…… 모두에게 비밀에 붙이 기로 했다. 어떤 처벌을 내렸느냐 묻는 아이샤에게도 하데스는 말을 아꼈다.
그저…….
「목숨은 살려뒀으니 걱정하지마.」
……그 한마디로 일축했을 뿐.
안타까운 일이지만 아벨의 친모가 아이샤라는 사실까지는 공표할 수 없 었다.
제국민들에게 알려진 이런저런 상황을 생각할 때, ‘실은 스물다섯 살인 공작부인이 진짜 공자의 친모다! ’라는 공표가 하데스의 이미지에 크나큰 타격을 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사실을 알고 있는 아벨은 굉 장히 행복해했으므로, 모두에게 나쁘 지 않은 결말이 었다.
그렇게 한 달여.
몸살을 겪은 루버몬트는 금세 또 바 빠졌다.
일주일 뒤로 훌쩍 다가온 아벨의 생 일 때문이었다.
황실도 무서워 벌벌 떠는 제국, 아니, 세계의 주역인 루버몬트의 대경 사.
당연히 제국 귀족들은 값비싼 생일 선물들을 챙겨 루버몬트로 모여들었 고 바람 잘 날 없는 이 영지는 수많 은 인파로 시끄러웠다.
“아, 죽겠네.”
웬만해선 힘든 소리 안 하는 하데스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미리 도착한 귀족들의 알현 신청을 받아주느라 요새 그는 눈코 뜰 새 없 이 바빴다.
정확히는…….
해가 떠 있을 땐 루버몬트 공작의 의무를 다하느라, 해가 지곤 남편의 의무를 다하느라 바빴다.
아벨의 생일 선물을 위해 밤마다 노 력할 땐 오히려 체력이 남아도는 느 낌인데…….
말 많은 귀족들을 상대할 땐 그렇게 도 힘이 들었다.
오늘도 일정이 빠듯했다.
한 달 전 데보라를 남겨두고 돌아갔 던 미하일과 신전의 신관들이 다시 방문하는 정기 세례일이었으니까.
“고놈의 대신관은 잊을 만하면 오고, 잊을 만하면 오고…….”
신전 사람들과 함께 점심을 먹어야 했으므로, 오늘도 아내와 아들을 옆 구리에 끼고 오붓하게 식사하기는 그 른 셈이었다.
쾅쾅쾅……!
투덜거리며 옷을 갈아입던 하데스 가, 멀리서부터 복도를 쩌렁쩌렁 울 리 며 가까워져 오는 발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발소리만큼이나 무례한 노크 소리 가 이어 졌다.
쾅쾅쾅!
“전하! 안에 계셔라?! 계시지라? 드갑니데이~!”
“야, 시끄러워!”
버럭 소리를 내지르는 하데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록사가 흥분한 얼굴로 방문을 훌쩍 열어젖혔다.
“너 진짜 죽고 싶냐?”
대뜸 침입한 록사를 보며 하데스가 이를 갈았다.
그는 왜인지 눈 밑이 시커먼 데다 가, 며칠 안 감았는지 잔뜩 떡이 진 백발을 질끈 묶고 있었다.
‘저놈의 실체를 제국민들이 다 알아야 할 텐데.’
부들부들 떨며 하데스는 생각했다.
‘친자 감별 마도구’를 발명해 제국에 한바탕 혁명을 가져온 록사.
그는 이제 황실 소속의 대마법사인 위그노어 메이도우보다 더 유명해졌다.
외부에 얼굴을 내보이는 일이 거의 없는 록사였던지라, 베일에 가려진 신비한 능력자라는 이미지까지 생겨 버렸다.
실은 먹을 거 대령해, 따뜻한 방 있 어, 편한 연구 환경까지 배려해준 덕에 딱히 밖으로 나갈 일 없어 틀어박 혀 있는 거지만…….
지금 제국은 록사의 얼굴 한번 실제 로 보고 싶다는 바람들로 떠들썩했 고, 아벨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찾 아온 귀족들 중에도 그를 궁금해하는 이들이 꽤 많았다.
“전하, 전하, 전하! 칼튼 녀석이랑 제가 또 뭘 만들어냈는지 함 보실랍 니까?!”
“뭔데 호들갑이냐.”
피곤한 하데스는 록사가 귀찮았지만 참았다.
칼튼, 그리고 록사. 두 천재가 만든 ‘무언가’라면 피곤함을 감수하고 귀를 열어줄 가치는 있었으니까.
“흐흐흐…….”
록사가 음흉한 웃음을 흘리며 로브 안에 소중히 숨겨온 무언가를 불쑥 꺼냈다.
그가 꺼낸 건 친자 감별 마도구와 똑같은 수정 구슬 생김새에 크기만 조금 더 작은, 익숙한 모양새였다.
“이것이 또 엄청나게 획기적인 새 발명품이지라.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애들의 속성과 마력 수치까지 확인가능한 마도구거든예.”
“마력 수치를 확인할 수 있는 마도 구라고?”
“옙! 마력을 주입했을 때 나타나는 색의 진하기로 수치 확인이 가능하지 라! 함 쥐어보셔예!”
손 안에 딱 들어오는 크기의 수정 구슬을 받아 쥔 하데스가 약간의 마력을 운용하자, 투명했던 그것은 금 세 붉게 물들었다.
점차 진해지던 수정 구슬의 붉은빛 은 투명함을 아예 잃고 원색으로 물 들었다.
“보이시지예? 대단하지라?”
“투명할수록 마력 수치가 낮은 거 겠군. 그래, 뭐. 괜찮네.”
하데스는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 덕였다.
보통 마력을 어디까지 개방했는지는, 대상이 시전할 수 있는 마법의 종 류로 판단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다.
예를 들면, ‘발화’ 능력을 사용해야 만 저 사람이 2차 개방에 성공한 만 큼의 마력 수치를 지니고 있구나, 가 늠할 수 있었다.
사실 2차 개방에 성공한 제국인들이라도 그 마력 수치가 다 달랐기 때 문에, 정확한 수치를 측정해줄 수 있는 이마도구는 꽤 괜찮은 발명품인 건 맞았다.
하지만 유전 형질을 해석해 만들어 낸 ‘친자 감별 마도구’만큼 대단하다 고 하기엔, 글쎄.
약간 실망한 얼굴로 하데스가 흥미를 잃자, 록사가 발끈했다.
“어허! 이 게 그냥 괜찮다고만 할 게 아녀라!”
이건 어쩌면 친자 감별 마도구보다훨씬 획기적인 발명품이건만!
대수롭지 않은 하데스의 반응에 록사는 입을 삐죽였다.
“이게 뭐가 대단하냐면…….”
“여보〜 준비 다 했어요? 방금 신전 사람들 왔어요. 어머, 록사 씨도 있었 네?”
때마침 아이샤가 문을 열고 들어오 자 하데스가 록사에게 나가라는 손짓을 했다.
“어, 다 했어. 너는 알았으니까 좀 나가라. 오늘 바쁜 거 모르냐.”
“오오! 마침 잘 오셨슴다, 부인!”
하데스의 말을 간단히 무시한 록사 가 아이샤에게로 달려갔다.
“제가 또 제국 역사에 한 획을 그을 대단한 발명품을 만들어냈지라! 제 국인들의 마력 수치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강력한 마도구!”
“어머, 정말요?”
“예, 부인. 이걸 쥐고 마력을 조금 만주입해보셔라.”
흥미로운 눈으로 아이샤가 마도구를 쥐었고 하데스는 흥분한 록사를 못마땅한 듯 바라보며 혀를 찼다.
“솔직히 별 거 없다. 그 마력 수치미리 알아서 뭐 하게? 어차피 개방하는 마법 따라 뻔히 보이는 거.”
“아녀라, 아녀라. 지금은 확인이 힘 들겠지만 요거이 획기적인 마도구인 진짜 이유는, 아직 태어나도 않은 아 새끼들이 최종적으로 개방할 수 있는 마력 수치까지 미리 알려준다는 점이 지라.”
“배 속에 있는 아이의 마력 수치 말 하는 건가? 그거 미리 알아서 뭐 하 게?”
“유용하지라~! 전하야 이미 후계자 가 있으니 걱정 없으시겠다마는 제국귀족들 사이에서는 이거이 불티나게 팔릴 거여라. 미리 후계자를 점찍어 놓는 데 도움도 되고…….”
“이거 어떻게 보는 거예요?”
한참 마도구의 장점을 역설하던 록사가, 아이샤의 질문에 고개를 돌려 대답했다.
“아, 보시면 부인은 백속성인께 고 구슬이 백색으로 꽉 차부러…….”
설명하던 록사가, 아이샤의 손에 들 린 구슬을 보곤 말을 멈췄다.
“록사 씨?”
“저건 뭐냐? 불량품이냐?”
구슬은 정확히 반으로 나뉘어 다른 색을 띠고 있었다.
한쪽은 백색, 한쪽은 적색.
둘 다 최대의 마력 수치를 나타내는 지 투명도가 없는 수준.
“에이, 못난 놈. 아이샤가 화속성이 기라도 하냐? 기껏 만들어왔다는 게……. 쯧쯧.”
책상 위에 놓여있던 크라바트를 들 어 매며 하데스가 혀를 찼다.
제 발명품을 대놓고 무시하는 하데스에도 록사는 대꾸 않은 채 그저 멍 하니 눈만 깜빡이며 아이샤의 손에 들린 구슬만 응시했다.
고개를 갸웃하던 아이샤도 이내 흥미를 잃었는지, 록사의 손에 구슬을 넘겨준 뒤 하데스에게로 다가갔다.
“내가 해줄게요.”
크라바트를 받아 대신 매주는 아이샤의 머리를 다정하게 쓸어넘기며 하데스가 물었다.
“안 피곤한가? 한 네 시간은 잤 어?”
“당신 나가고 나는 좀 더 잤죠. 아 침에 어디 갔어요?”
“포트넨 백작을 보고 왔지. 아침부터 살인적인 일정을 들이밀지 뭐야.”
“으으, 힘들죠. 세례일이라도 미룰 걸 그랬나? 아니지, 저녁에 딴짓 안 하고 잤어야 했어.”
“그건 안 돼. 아벨의 생일 선물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아잉, 뭐야…….”
뺨을 붉히며 제 가슴을 톡 건드리는 아이샤에 확 불이 붙은 하데스가 그 녀를 끌어안으려다가 멈칫했다.
문득 여전히 남아있는 불청객이 떠 오른 탓이다.
그러나 대단히 충격받은 록사의 귀에는 부부의 대화가 잘 들어오지 않 았다. 그는 그저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우두커니 서 있었을 뿐이다.
“……야! 좀 나가라니까?”
못마땅한 하데스의 고함에 정신을 차린 록사는, 긴장한 표정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록사 트리볼트.
그는 천재다.
지금껏 창조의 이능으로 유용한 마 도구를 많이 만들었고 그중 단 한 번 도 실패를 겪어본 적 없었다.
이 마도구도 마찬가지다.
그의 획기적인 발명품은, 결코 불량 품이 아니었다.
태중에 있는 아이의 속성과 마력 수 치도 확인할 수 있는 마도구.
‘임산부’의 손에 쥐여주면, 이런 식으로 엄마와 아이의 마력이 동시에 반응하는 구조였다.
록사는 한참 생각하다가 하, 하, 웃 음을 터뜨렸다.
“저게 미쳤나?”
하데스가 인상을 찌푸리며 록사를 바라봤다.
그는 하데스를 간단히 무시하고는 아이샤를 보며 말했다.
“부인……. 지가, 지가 의원은 아니 지마는, 어떻게…… 가장 먼저 알게 되었네예…….”
어째 묵직해진 록사의 목소리.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어 아이샤가 고개를 갸웃했다.
긴장한 표정으로 마른 입술을 한 번 홅은 록사가, 천천히 다가와 갑자기 엎드려 절했다.
“진심으로 축하드리지라.”
“뭐, 뭘요?”
대뜸 절을 하는 록사에, 어리둥절해진 아이샤가 주춤거 렸다.
의아해하는 둘을 향해 록사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벅찬 목소리로 성이 떠나 가라 소리 질렀다.
“두울째 보시겄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