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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의 엄마가 되어버렸다 외전-15화 (204/221)

외전 15화.

우리는 한참 그 상태로 침묵했다.

“이거 불량푸…….”

“아니야. 정확히 부모, 자식 관계인 영지민 서른여덟 명, 형제 관계인 영 지민 스물일곱 명, 한 대를 건너뛴 조 부모, 자식 관계 서른 명으로 확인했 지. 창조 전 수식을 계산할 때 피와 마력이 희석되는 경우의 수까지 포함했다고 하더군. 그러니까 가장 피가 가까운 부모, 자식 관계가 아니면 반응하지 않는 원리야.”

그러니까 혹시나 어딘가 살아있을 지도 모를 아벨의 친어머니와 내가 멀고 먼 친척이거나, 또는 어릴 때 잃 어버린 자매일지도 모른다는 막장 아 침 드라마 전개를 상상할 여지도 없 다는 얘기다.

하데스의 확실한 일처리는 감탄할 만했지만, 문제는…….

“내가 아벨을 낳았다고요? 아무런 기억이 없는데?”

“나도 없다고 했잖아.”

“아버지, 그럼…….”

가만히 우리 얘기를 듣고 있던 아벨 이 돌연 손가락을 접었다 펴더니 질 겁했다.

“대체 절 가졌을 때 어머니 나이 가…….”

충격받은 아벨은 하데스를 짐승 보 듯하며 벌벌 떨었다.

아, 그럴 만도…….

내가 지금 스물다섯이고 아벨이 열 넷이니 열한 살 때 아벨을 낳았고 하데스와 사고를 친 건 그보다도 더 전의 일이라는 건데.

열 살? 그쯤이려나? 지금 데보라가 열 살이었던가?

나와 비슷하게 데보라를 떠올리기 라도 했는지 아벨은 입을 떡 벌리고 허탈하게 웃었다.

“대체…….”

“아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하데스가 버럭 소리 지르자 아벨이 냉큼 내 품에 안겼다. 우리는 서로 안 고 벌벌 떨었다.

“어머니, 이게 사실이에요?”

“나도 뭐라 말을 해줄 수가 없어. 열여덟 살에 죽다 살아났었는데 그 전의 기억은 없거든.”

“와, 장난해?”

벌떡 일어난 하데스가 답답한지 자 기 가슴을 퍽 퍽 내 려 쳤다.

나는 그의 모습에 못 참고 웃음을 터뜨렸다. 아벨이 그런 나를 의아한 눈으로 바라봤다.

“그렇지만 네 아빠가 그런 나쁜 사람은 아닐 거야. 아마 열 살 때 엄마 몸은 널 가질 준비가 안 되었을 테니 까.”

“그, 그런 거예요?”

불신의 눈초리가 거둬지자 안도하는 하데스를 보며 나는 덧붙였다.

“사람마다 성장 속도가 다르긴 하 니 또 모르지만.”

“아이샤!”

“아, 장난이에요. 장난.”

붉으락푸르락해진 하데스의 얼굴이 볼만했다.

한참 울다가 이제는 장난치기 바쁜 나를 보며, 그는 한숨을 내쉬다가 바닥에 아무렇게나 털썩 주저앉았다.

“그대가 그때 일 떠올리면 싫어하는 거 아는데, 오르쿠스에 가서 가이오니아를 처음 만났을 때 말이야.”

“네.”

“처음에 그놈이 목숨이 아깝다면 그냥 돌아가라고 했었지. 어차피 ‘또’ 실패할 거라면서 말이야.”

“또……라쇼?”

“글쎄, 나도 그 말이 이해가 안 됐 어. 그런데 지금 내가 생각하기로는, 그러니까…….”

말을 꺼내기가 망설여지는지 하데스는 조금 멈칫했다.

“내가 그대의 저주를 풀기 위해 가이오니아를 찾아갔던 게, 처음이 아니었나 봐.”

“뭐라고요?”

내게 안겨있던 아벨도 놀라 흠칫했다.

“이미 한 번 실패를 했던 게 아닐까 싶어. 가이오니아는 그때, 결국 실패하고 내가 죽어버린 뒤에 남겨진 그 대의 모습을 보여줬거든. 그리고 돌 아가라고 했지.”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럼 당신이 죽었다 살아났단 말이에요?”

이게 무슨 공포 스릴러 루프물도 아니고!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면 똑같은 하 루가 계속 반복되는 무시무시한 공포 영화 내용이 지금 갑자기 떠오르는 이유는 뭘까.

“아마도? 그게 가능했던 건 그대 형제의 도움 덕분이 었을 테고.”

“그럼, 그럼 남겨진 내 모습은 어땠 는데요?”

“아마 우리 둘 사이에서 태어난 것 같은 자식의 모습도 봤어. 나는 그 게…….”

“……아벨이라고 생각하고요?”

“확실히는 몰라. 갓난아기 모습만 봐서. 한데 다섯 살 때의 아벨을 내게 맡겼던 건 지금의 당신이거든. 전생의 다른 모습인 당신이 아니라.”

“나?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아벨. 너, 오비투스에서 만났던 네 엄마의 얼굴 기억하냐?”

하데스가 아벨을 향해 물었고 그는 고개 저었다.

“제누스라는 이름만 기억해요. 그 때 만났던 제 또래 아이들이나, 마수 들 생김새도 다 기억이 나는데, 뭐랄까…… 그때 어머니 얼굴은 꼭 일부 러 누가 기억을 지운 것처럼 잘, 떠오 르지가 않아요.”

“정말?”

“네.”

“그것 봐. 아벨은 어렸으니까 그렇 다고 치더라도 말이야, 적어도 나는 그때 그대의 얼굴을 기억해야 정상 아니겠어? 그런데 나도 꼭, 뿌옇게 안개 낀 것처럼 그대의 얼굴만 떠오 르지 않거든. 가이오니아가 그 상황을 다시 보여주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기 억하지 못했을 거야.”

“그럼 그때 그게…… 아이샤 에스클리프의 몸이었다고요?”

저주의 굴레를 기억하는 내 전생의 몸이 하데스에게 아벨을 맡겼다고 생 각했는데…….

‘생각해보면, 그때는 저주를 풀지 않았을 때야. 아벨이 살아있으니 나 도 죽을 수 없었던 게 당연해.’

만약 다른 몸이었다면, 잠깐 대한민 국에 다녀왔던 나는 다시 그 몸에서 눈을 떠야 했을 것이다. 아직 아벨을 죽이지 못했으니까.

한데 나는 아이샤 에스클리프의 몸에 들어왔었지.

이상하긴 하다, 여기긴 했어도 프로크레아토르가 손을 써놓았을 거라 대 수롭지 않게 치부했었다.

하지만 말도 안 되지. 아벨을 죽이 지 않았는데도 새 몸을 받았다는 건 저주의 굴레에서 벗어났다는 뜻.

전능한 내 형제 프로크레아토르가 유일하게 개입할 수 없었던 부분이 바로 그 저주가 아니 었던가.

다시 말해 이번 생에는 내가 아벨의 생물학적 어머니가 맞는다는 소리.

아벨이 내 얼굴을 기억해서는 안 되니, 하데스에게 그를 맡겼을 때 정신 지배를 이용해 둘의 기억을 전부 지 웠을 테고…….

‘그 다음에 프로크레아토르의 세계 로 갔겠구나. 내가 죽을 준비를 한다는 걸 그 앤 알았을 테니까, 어떻게든 말리고 싶었겠지. 저주 때문에 다시 돌아와야 할 나를 위해서 이 세계의 모든 상황을 다시 안배해 놓고…….’

기억이 없는 상황을 가늠하려니 머리가 아팠지만, 대충은 알 듯했다.

죽으려고 발악할 나를 살리기 우]해, 저주를 풀기 위해, 프로크레아토르가 얼마나 머리를 싸매고 이 상황을 만 들어놓았을지 생각하니 놀라웠다.

“걔 머리 터져서 죽지 않았을까.”

나는 혼잣말하다가 문득, 뺨을 붙잡 고 소스라쳤다.

“그럼 나, 실은 한 여섯 살쯤 더 많 은 건가? 아니, 그것보다…….”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아벨을 끌어안고, 옆에 가만히 선 하데스에게까지 시선을 돌린 순간 울컥 눈물이 났다.

“당신은요. 대체 몇 번이나…….”

아직 아벨을 낳지 않았을 때에도 하데스를 만나 사랑을 했고, 그때도 이 남자는 나를 위해 목숨을 걸고 지옥에 뛰어들었다.

기억은 안 나지만 첫 번째 시도에도 나는 그를 말렸을 테지. 하지만 하데스는 기어코 나를 위해 가이오니아를 찾아갔고…….

‘이번에도 또.’

그리고 결국은 내게 기적을 선물해 줬다.

“흐으아아아…….”

“뭐야? 또 뭐가 문제야?”

“어머니…….”

“내가, 내가 뭐라고 이렇게, 이렇게 바보같이…….”

가이오니아를 죽인 뒤로 울 일 따윈 없을 줄 알았는데.

눈물에 삼켜진 내 뒷말을 알아들었 는지, 하데스는 피식 웃으며 나와 아벨을 끌어안았다.

“미안해. 흑……. 그리고 고마워요. 나 같은 거 좋아하고 사랑해줘서. 나 랑 아벨을 살려줘서. 다, 흑, 당신 아니었으면 나…….”

“나 같은거라니. 아벨.”

“네, 아버지.”

아벨이 나와 하데스의 품에서 쏙 빠 져나왔다.

그는 우리 둘의 친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돼 꽤나 흥분한 얼굴이었지만, 감정을 억지로 내리누르는 듯 씰 룩이는 입꼬리로 말했다.

“어머니가 또 맞을 소리를 하신 거 죠?”

“그래.”

“너무 많이 때리진 마세요!”

씩 웃은 아벨이 후다닥 방을 나가버 리고, 나는 엉엉 우는 얼굴로 하데스를 보며 웃었다.

“매번 감동하면 곤란한데. 지겨울 테니까.”

“흐응……. 급!”

마주 보며 피식 웃은 그가 내 뺨에 흐른 눈물을 닦아주고 말했다.

“나는 어차피 매 생에서, 몇 번이 고, 언제든, 그대를 위해서 살아갈 거 니까 말이야.”

***

“아무튼, 그렇게 된 모양이야!”

이튿날 날이 밝자마자 미하일을 찾 아온 아이샤는, 마도구를 통해 알게 된 사실들을 고백했다.

그녀는 굉장히 행복해 보였기에, 미하일은 그저 같이 웃어주었다.

“생각해보면 가이오니아를 그렇게 쉽게, 한 번에 죽일 수 있다는 게 더 놀라운 일이지. 실패를 겪은 적 있다는 게 더 말이 돼.”

“아무튼 정말…… 나한테는 과분한 남자야. 하데스를 안 만났으면 우린 얼마나 더 괴로워야 했을까?”

“맞아. 대단한 남자지.”

열심히 하데스의 찬양을 늘어놓는 아이샤에게 맞장구쳐주던 미하일이 말했다.

“그럼 이제 행복할 일만 남았군. 공자님도 걱정할 거 없겠어. 어쩐지 아 침에 데보라와 간식 먹는데 입이 귀에 걸렸더라고.”

“헤헤, 맞아.”

“부탁이 있어.”

“응? 부탁?”

대뜸 꺼낸 말에 아이샤가 고개를 갸 웃했다.

미하일이 살짝 웃고 말했다.

“데보라를 여기서 지내게 해도 될 까? 신전에서 키우는 것보다는 네가 돌봐줬으면 해서 말이야.”

“갑자기?”

“오래 생각했어. 이번에 여기 온 것 도…… 너랑 공자님이 걱정되어서이 기도하지만, 데보라를 부탁하려고.”

“나야 상관없지. 오히려 좋아. 그런 데 넌, 안 외롭겠어? 지금까지 데보라랑 같이 지내다가…….”

“난 괜찮아. 데보라가 여길 더 좋아하니까 그래.”

문득, 괜찮다며 웃는 미하일의 표정이 씁쓸해 보였다.

아이샤는 의아해하다가, 씁쓸한 미하일의 표정에 스치는 그리움을 발견했다.

모두 행복해졌다고 하기에는…….

‘아직 아벨라는 만나지 못했지.’

아직도 어딘가에 떠돌고 있을, 이그니스 연인의 영혼.

미하일은 연인을 다시 만나 하고 싶 은 말이 많을 테지만, 아직 그녀의 영 혼이 어디를 맴돌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암…….”

피곤한 눈으로 크게 하품하는 미하일을 보며 아이샤가 작게 웃었다.

“졸려?”

“아, 미안. 요즘 자주 피곤하네.”

“그럼 낮잠을 좀 자.”

벌떡 일어나 침대에 앉은 아이샤가 제 허벅지를 톡톡 건드렸다.

미하일이 하, 웃으며 물었다.

“네 무릎 베고 자라고?”

“뭐 어때? 옛날엔 자주 그랬잖아.”

“머리통 태워져서 죽을 일 있나. 난 되도록 평화롭게 죽고 싶은데.”

“괜찮아. 지금 우리 남편 바빠.”

“참 나…….”

픽 웃은 미하일이 침대로 다가가 아이샤의 무릎을 베고 덜렁 드러누웠다.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에 거짓말처럼 눈이 감겼다.

“이제 다 끝났어, 이그니스. 우리 모두 행복할 수 있을 거야.”

“그래.”

뭐, 저주의 굴레는 끊었고, 혼자 남을 아이샤에게도 하데스와 아벨이 있 으니…….

이대로 죽게 되어도 충분히 행복한 삶이리라.

미하일은 동감하며, 살짝 고개를 끄 덕였다.

‘그래도…… 네가 행복한 모습을 옆에서 더 지켜볼 수 있다면 좋았을 텐 데.’

약간의 의문이 들었다.

프로크레아토르, 자신의 형제가 남 겨준 건 암속성의 능력만은 아니었다.

미래를 보여주는 예지의 능력도 미하일에게는 여전했다.

사실 그는 약 한 달 전, 조용히 숨을 거두는 자신의 모습을 봤다.

눈을 감는 제 얼굴이 지금의 젊은 모습과 다르지 않았기에, 시간이 얼 마 남지 않았음도 인지했다.

데보라를 아이샤에게 맡긴 건 그런 이유에서였다.

‘왜일까?’

미하일 라이가르트의 삶이 짧게 끝 난다는 걸, 형제인 프로크레아토르가 모르고 있진 않을 텐데…….

그의 능력이라면 미하일을 조금 더 살게 해줄 수도, 아이샤의 곁에서 저주가 끝난 이후의 평화로운 삶을 만 끽하게 해줄 수도 있을 터.

하지만 미하일은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미래를 보았고 순응하기로 결심했다.

“좋다…….”

다정한 아이샤의 손길이 나쁘지 않 았다. 미하일은 지금 그저 이 평화로 움을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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