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의 엄마가 되어버렸다 외전-4화 (193/221)

외전 4화.

“아, 저, 저…….”

난데없이 등장한 아이샤가 꼭 몇 년 은 헤어져 있던 형제와 재회한 듯 자 길 끌어안고 울먹이자, 사내는 얼굴을 붉히 며 당황했다.

멍해 있다가 3초 만에 상황 파악을 끝낸 하데스는 바로 달려들어 아이샤를 떼어냈다.

“아니야!”

“네?”

벌써부터 그녀의 눈에는 오랜 형제를 향한 그리움과 재회의 가슴 벅참 이 가득했다.

어디서 뭘 듣고 왔는지 모르겠지만, 착각한 게 틀림없었다.

뜬금없이 미녀의 포옹을 받고 멍하 니 얼굴을 붉히고 있는 사내를 향해 하데스가 버럭 소리 질렀다.

“죽고 싶나? 태워줄까? 뭘 좋다고 뻘게져 있어?”

“아이고! 저, 전하. 제가 죽을죄를……!”

“악! 그러지 말아요!”

사내에게 성큼성큼 다가가던 하데스를 아이샤가 막아섰다.

아니, 이 여자가…….

부들부들 떨던 하데스가 겨우 심호 흡하고는 아이샤의 어깨를 꽉 붙들고 물었다.

“갑자기 뭐야?”

“로, 록사 씨가…….”

“그놈이 뭐?”

“전하가 제도에서 유명한 작가를 데려왔다고 하길래요!”

“그래, 그랬지. 그 빌어먹을 책!”

수치스러움에 부들부들 떠는 하데스의 모습을 분노한 걸로 오해했는 지, 멀뚱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사내 가 다시 냉큼 머리를 조아렸다.

“저, 저를 용서해주십시오! 아무리 돈이 궁해도 그, 그런 글을 쓰면 안 되었는데!”

눈치 없이 끼어드는 사내를 노려보 던 하데스가 반쯤 포기한 듯 아이샤 에게 말했다.

“아니야, 저 남자는. 그대의 형제가.”

“아니라고요?”

아이샤는 여전히 애틋한 눈으로 사내를 돌아보았다.

하데스가 길게 한숨을 내지르며 물 었다.

“이봐. 책 첫 장에 있는 작가의 말 은 뭐야? 형제니, 제누스니 하던 거.”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사내가 냉큼 대답했다.

“아! 그건……. 제가 꿈속의 남자에게 고맙다고, 어떻게든 보답하고 싶 다고 했더니…… 됐다면서 자기는 책에 그 말만 실어주면 된다고 하더라 고요.”

“그래…….”

하데스의 중재에 얼떨떨한 표정으 로 천천히 상황을 파악하고 있던 아이샤는, 그가 서랍에서 꺼내 건네주는 책을 받아들고 책장 하나를 넘겨보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아…….”

〈페르소나—외전 증보판〉

“그렇대.”

저쪽 세계에서 이 소설을 그렇게나 좋아하던 아이샤를 위해, 후일담까지집필해 이쪽 세계로 보내준 프로크레아토르의 불필요한 친절.

그것은 하데스를 한없이 수치스럽 게 만들고 말았다.

이미 오래전에 아이샤 앞에서 늘어 놓았던 수많은 제 발언들은, 어찌 잊 히지도 않고 머릿속에 생생히 떠오르 는지…….

「난 한 입 갖고 두말하지 않아. 내가 영애와 결혼해주겠다고 한 게 믿 기지 않을 테지만, 꿈이 아니니 깰까 봐 전전긍긍할 필요는 없어.」

「한시도 눈을 못 떼겠는 마음은 이 해하지만, 어서 식사를 하는 게 어 떻 겠나?」

「그대가 진심이라는 거 알아. 다른 의도 없이 순수하게 좋아하는 마음.」

「언제부터 좋아한 거냐고.」

「나는 이런 무조건적인 애정을 퍼 붓는 사람을 만나본 게 처음이라 서…….」

「나를 향한 그대의 마음에 보답할 수 있게 나 또한, 그대를 진심으로 좋 아해보겠다고.」

저절로 올라간 손이 부들부들 떨며얼굴을 감쌌다.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당장은 아이샤의 얼굴을 뻔뻔히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가만히 얼굴을 가리고 있던 손을 내 리자, 한껏 당황한 표정의 아이샤는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여, 여보. 저기…… 호, 혹시 이, 이거…….”

“응.”

하데스는 환하게 웃었다.

표정과는 달리, 이제는 더 부끄러울 것도 없는 해탈한 눈빛이었다.

“다 읽었어.”

***

사내를 내보낸 뒤 하데스의 방에서 마주 앉은 부부의 표정은 대조적이었다.

고양이 앞의 쥐처럼 떨며 하데스의 눈치를 보던 아이샤가 먼저 입을 열었다.

“화 많이…… 났어요?”

“화? 아니……. 이게 뭐 내가 화를 낼 일인가.”

생각해 보면 아이샤는 한 번도 ‘당신이 좋아서 여기까지 왔어요! ’라고 직접적으로 표현한 적은 없었다.

당연히 꺼릴 거라고 생각했던 사생 아 아벨에게 지나치게 진심이었던 것 도, 보통 여인이었다면 힘들 일이었 지.

누가 결혼을 앞둔 남자의 사생아를 진심으로 예뻐해 줄 수 있겠는가.

착각을 깨닫고 나니 아이샤의 행동 이 전부 이해가 되었다.

하데스는 어김없이 달아오르는 얼굴을 한 손으로 가린 채 생각했다.

처음 제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아이샤의 존재를 눈치챘던, 메르엔 백작 령에서의 추수 감사 축제.

‘아벨도 있었지.’

그 이듬해 열렸던 제도의 데뷔탕트 볼그곳에 축사를 부탁받아 갔을 때에 도 분명…….

‘아벨을 데려갔었지.’

그뿐 아니다. 공사다망한 루버몬트 공작을 초대하는 자리는 많았지만 아벨을 함께 데려갔던 때는 그럴 만한이유가 있는 자리뿐이었다.

후에 후계자가 될 아벨의 얼굴을 사람들에게 알려 둘 필요가 있는 곳.

저명한 귀족 가문의 작위 계승식, 중부 귀족들이 다 모였던 대형 무도 회, 제도 공개 기사 서임식 전부…….

먼발치에서 자기를 힐끔힐끔 훔쳐보던 아이샤를 발견한 자리에는 항상 아벨이 함께 있었다.

당연히 제국민들 모두가 선망하는 대상이었던 자신을 좇고 있는 줄 알 았던 아이샤의 시선은, 처음부터 그 옆의 어린 공자님께 꽂혀있었던 거였다.

‘모두…….’

아벨이었다.

‘……너였다.’

“후…….”

부끄러워 절로 나오는 한숨이었지만, 화가 났다고 오해했는지 아이샤는 흠칫 떨었다.

하데스가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아니야. 그대를 탓할 생각 없어. 내가, 내가 너무 당연히…….”

도대체 무슨 자신감이었단 말인가!

“아니예요. 사실 당신이 착각하는 거 알았는데 말을 못 한 내 잘못도 있어요. 솔직하게 아벨을 따라다녔다 고 말하면 당신이 날 오해할 것 같아 서…….”

“…….”

“어디 정신 나간 여자가 내 아들한 테 눈독을 들여? 슥, 삭. 이렇게.”

제 목 긋는 시늉을 하며 다시 눈치를 보는 아이샤에, 하데스가 황당하 다는 듯 웃었다.

“내가 뭐 그런 걸로 그대를 죽이겠 어?”

“그렇지만 그때 당신 악명이 얼마 나 높았는데요. 아벨이라면 엄청 끔찍이 여기기도 하고.”

“하아…….”

“다른 세계에서 책으로만난 소설 속 남자주인공이 아벨이었다고 사실 대로 말하면 믿어줄 것도 아니었잖아 요?”

구구절절 맞는 말이라 하데스는 반 박할 수가 없었다.

사실 따라다닌 건 아벨이었고 자긴 이 세계 사람이 아니라고 고백하는 아이샤를 만났다면?

웬 미친 여자냐고 당장 끌어내지 않 았으면 다행이지.

“그래…….”

“그런데…… 이제 와서 그런 게 중 요해요?”

하데스의 눈치를 보던 아이샤가,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귀엽게 입술을 모으며 짓는 그녀 특 유의 애교는, 다퉜을 때면 항상 나오 곤 하는 거였다.

저 표정에 약한 건 어찌 알고…….

야속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하데스를 향해 배시시 웃은 아이샤가 총총 걸어가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은 당신인데.”

가슴 떨리는 고백과 함께 쪽, 입까 지 맞추고 나면, 항상 그랬듯 뚱해있 던 하데스의 마음은 사르르 풀리곤 했다.

“아벨은 정말 엄마의 마음으로 좋 아하는 거였고, 날 반하게 한 건 당신 이잖아요. 아벨을 몰랐더라도 난 언 젠가 당신에게 반해서 당신 뒤를 졸 졸 따라다녔을 거야.”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죠?

끌어안고 뺨을 비비며 애교 부리는 아이샤에, 결국 하데스의 표정이 허 물어 졌다.

“얄미워 죽겠군.”

피식 웃은 하데스가 아이샤를 붙잡 아 무릎에 앉히고 턱 끝에 부드럽게 키스했다.

부부의 냉전은 이렇게 이틀을 넘기는 법이 없었다. 금세 묘해진 분위기를 타고 둘의 입술이 서서히 맞물렸다.

마지막 투정이라도 부리는 것처럼하데스의 입맞춤은 아이샤에게 버거울 정도로 격했다.

허리를 강하게 끌어안고 지분거리는 손에 달아오른 아이샤의 몸이 절 로 비틀렸다.

“하아……. 잠깐만요, 여보…….”

“뭘 또 잠깐만이야.”

겨우 입술을 떼고 숨을 고르며 아이샤가 하데스를 밀어냈지만, 태산같이 단단한 가슴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허리를 바짝 조이는 손길과 함께 다시 입술이 삼켜졌다.

집어삼킬 듯 강렬한 그의 입맞춤은 언제나 그랬듯 한결같았다.

이제는 익숙할 법한데도, 여전히 가 장 은밀한 곳을 핥고 달래는 듯한 착 각에 정신은 천천히 혼미해지기 마련이었다.

지루할 만큼 이어지던 키스는 고작 서막.

입술을 뗀 하데스가 아이샤의 가슴 께에 얼굴을 파묻고는 헐떡였다. 거 칠고 불규칙한 숨이 뜨겁다.

“으음…….”

막 무릎에 앉혀졌을 때 이미 알아챘 지만, 키스하며 잔뜩 더 달아오른 하데스의 상태가 여실히 느껴져 아이샤는 조금 부끄러워졌다.

그가 자기에게 질린 게 아닐까 하는 착각을 잠시나마 했음이 퍽 우스울 정도였다.

“거, 건강한 거 봐. 당신은 건강검 진 필요 없겠어요.”

“하아…….”

민망한 마음에 아이샤가 하데스의 무릎에서 훌쩍 내려왔다.

그러나 의미 없는 도주였다.

뒤돈 아이샤가 더 멀리 달아날세라, 바짝 끌어안은 하데스가 몸을 깊이 붙이며 그녀의 귓불을 살짝 깨물었다.

“어딜 가.”

“대, 대낮이야! 그리고 내 엉덩이에 바짝 붙인 그것 좀 떼요 민망해!”

“누가 들으면 이제 결혼한 부부인 줄 알겠는데. 엊그제는 좋다고 내 방으로 달려왔으면서.”

“그, 그거는……!”

“그리고 대낮인 게 무슨 상관이야. 대낮에는 일 치러본 적 없는 사람처럼 내숭은.”

“악!”

끌어안은 아이샤를 덜렁 들어 올린 하데스가 그대로 침대를 향해 직진했다.

싫은 척 발버둥 치면서도 아이샤는 생각했다.

‘나 속옷 뭐 입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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