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의 엄마가 되어버렸다 외전-3화 (192/221)

외전 3화.

“뭐야? 왜 울어?”

“몰라서 물어요?”

“왜? 누가 그랬는데!”

“당신이요! 나를 피해 다니잖아 요!”

내가 소리 지르자 하데스는 멍하니눈만 깜빡이다가, 곧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시선을 비틀었다.

“피해 다닌 거 아니야.”

“아니라고요? 내가 바보예요?”

“…….”

“이러지 말고 말을 해요. 갑자기 각 방 쓰자고 하는 이유가 뭔지!”

내가 다그치자 하데스는 뭔가 말하 려고 힘을 주다가…….

곧 손등으로 입을 가린 채 붉어진 얼굴을 홱 틀었다.

“여보?”

“됐어.”

“잠깐만요!”

나는 다시 도망치려는 하데스를 붙 잡았다.

그는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못 하는 눈치였다.

“사실대로 말해도 난 이해할 수 있 어요.”

“뭐? 내가 뭔 말을 할 줄 알고?”

“생각해봤는데……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도 한결같을 수는 없잖아요. 사랑의 유효기간은 3년이라는 유 명한 말도 있고…….”

“……뭐?”

아, 말하다 보니 서운하고 비참해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다른 남자면 모르겠는데 어떻게 하데스가 나한테 이래? 다음 생에서도, 또 다음 생에서도 나를 사랑한다고 그랬던 남자가?

꾹 참고, 나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계속 말했다.

“솔직히 나는 아직도 당신이 좋거 든요. 잘생겨서 볼 때마다 새롭고 짜 릿해요. 매일매일 설레고 그래요. 그 래서, 그래서 당신은 이제 안 그런다는 게 조금 서운하긴 한데……. 그래도 이해할 수 있어요.”

“…….”

“흑. 우리가 사실 이틀에 한 번 꼴 로 쉬지도 않고……. 그래, 그랬잖아 요…….”

말하는 도중에 힐끔 하데스의 눈치를 보니 그는 멍하니 입을 벌린 채눈만 깜빡이며 나를 보고 있었다.

“음, 내가…… 그래요, 당신이 질리 고 피곤하고 귀찮을 수도 있다는 걸 생각 못 했어요. 배려가 부족했던 것 같아요.”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사실대로 말해줘도 괜찮아요. 바 리알 경이 그랬거든요. 저녁에 아내 보는 게 무섭대요.”

“하…….”

황당하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린 하데스가 머리를 쓸어 넘겼다.

“대체 날 어디까지 무시하는 거지? 내가 잭스 놈이랑 비교 당할 수준까 지 떨어진 건가?”

“당신이…….”

“오해야. 그리고 나도 그대랑 다르 지 않아. 아니, 어제보다 오늘 더 예 쁘고 오늘보다 내일 더 좋아.”

“그런데 왜 그래요? 갑자기?”

듣기 좋으라고 거짓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데…….

그럼 대체 문제가 뭐지?

“그대가!”

“내가?”

뭔가 아주 대단한 말을 할 것처럼 숨을 삼키고 말을 멈춘 하데스의 얼굴은, 삽시간에 잘 익은 사과처럼 빨 갛게 달아올랐다.

생각해보면 어제 방에서도 그렇고 지금도, 24시간 거만하고 여유로운 표정을 유지하는 그답지 않은 모습이 었다.

“대체…….”

“됐어. 아무튼 오해하게 한 건 미안 하군. 이건 다 내…….”

부끄러워하는 하데스는 왜인지 상처받은 커다란 짐승 같기도 했다.

분명 이유도 모르고, 무작정 피해 다니는 하데스 때문에 속상한 건 난 데 내가 미안하다고 해주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대체 뭐지?

“내 잘못…….”

“…….”

뭔가…… 다 자기 잘못이라고 말하 고 싶은듯한데.

그 말이 뭐 그리 어려운지 하데스는 한참 뒷말을 흐리다가, 곧 투정 부리는 어린아이처럼 빽 소리 질렀다.

“내 잘못 아니야!!!”

그리고는 황당한 표정으로 얼빠진 나를 내버려둔 채, 엄청난 속도로 사 라졌다.

***

「내 잘못 아니야!!!」

하데스에게는 분명 뭔가 있다.

내 얼굴을 마주치기 부끄럽고, 또 애써 나를 탓하고 싶은 무슨 일이 분 명 생긴 거다.

속 시원하게 말해주면 사과를 하든 변명을 하든 하겠는데, 어제 그의 태 도로 봐선 쉽게 입을 열 것 같아 보 이진 않고…….

결국 나는 하데스의 일거수일투족을 나만큼이나 잘 아는 사람을 찾아 가기로 했다.

내가 루버몬트에 오기 전부터 하데스와 함께 일했던, 유능한 집사 테롯 경.

‘테롯 경은 뭔가 알겠지.’

한 줄기 희망을 안고 집사의 방을 찾아갔을 때였다.

나는 의외의 얼굴을 발견했다.

“록사 씨?”

루버몬트 마법재단의 수장으로 일 하고 있는 그는 하데스만큼이 나 바빠 져서, 같은 성에서 지내고 있지만 얼굴 보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여전히 결 좋은 백발을 느슨하게 묶은 록사는 테롯 경의 방 앞에서 다 죽은 얼굴로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 었다.

나를 발견한 록사가 화들짝 놀라다 가 울상 지었다.

“부이이인…….”

“록사 씨, 여긴 무슨 일이에요? 안에 테롯 경이 있나요?”

“아뇨. 어디 간 모양이지라. 지도 급하게 집사 양반을 보러 온 건 디…….”

“록사 씨도요? 테롯 경은 왜요?”

내가 묻자, 록사는 왜인지 흠칫했다.

뭔가 예리한 내 촉이 반응했다. 나는 재차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표정은 또 왜 이러 고? 금방 울겠네.”

“부이이인…….”

록사는 흐느적거리며 울먹이다가 말했다.

“지가 애꽂은 사람을 하나 죽여버 렸지라…….”

“네에에에?! 누굴요? 지명수배자 벗어난 지 몇 년이나 됐다고 또 사고를 쳤어요?”

“혹……. 실은 지가 아니라 전하께 서 죽일 예정이시지라…….”

“네? 아니, 좀 이해되게 말을 해 봐요.”

“사실 지가 일 안 하고 소설책 읽다 전하께 걸렸지 뭡니까.”

“그게 왜요? 사람이 어떻게 일만 한 대? 가끔 숨 돌릴 틈도 있고 그래야 죠.”

“아녀라. 문제는 그게 아니고 그 책 이…… 그 내용이…… 영 불경해가지 고…….”

“뭐 어떤 내용인데요?”

“흠, 제도에서 공자님이랑 신전 데보라 사제님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거 아시지라? 아마 그래서 쓴 소설인 모양인디, 대박을 쳤어라. 둘이 뭐,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는 연애 소설 인디…….”

“어머, 그런 것도 있나요?”

새삼스럽지만 〈페르소나〉가 떠올 라 나는 웃음이 났다.

나날이유명해지는 루버몬트의 위 명과 더불어 자랄수록 잘생겨지는 우리 아벨은, 벌써 제도 내에서 1등 신랑감으로 거론되곤 했다.

저쪽 세계에 있을 때도 활자 주제에 엄청난 팬 몰이를 하고 다녔던 아벨 루버몬트가 아닌가.

괜히 뿌듯해지는 마음에 나는 슬쩍 코끝을 훔치고 다시 물었다.

“그런데 어떤 부분이 불경한데요? 어홈, 뭐, 야한 거라도 썼나?”

물론 당사자인 아벨이야 자기를 두 고 그런 글을 쓰면 기분 나쁘겠지만, 그 애의 엄마 된 나로서는 화를 내야 겠지만…….

‘나도 읽어보고 싶다!’

유해한 장면이라곤 하나도 없던 전연령 줄판물이었던〈페르소나〉는 얼 마나 아쉬웠던가.

내 아들 아벨은 내 아들 아벨이고, 소설 남주 아벨은 소설 남주 아벨인 거니까 뭐…….

그렇게 합리화하며 음흉한 얼굴로 묻자, 록사는 고개 저었다.

“그게 아니라 공작 전하가 등장한 지 25페이지 만에 돌아가시지라. 아 무래도 공자님을 얼른 공작으로만들 고 빨리 전개하려고 작가가 죽여 버 린 것 같어예. 저야 소설이라고 그냥 읽었지마는 전하 입장에서는 화날 만도 한 일이지라…….”

“……네? 25페이지에서…… 죽는 다고요?”

“예. 저한테서 그 책 가져가셔가 읽 으신 모양인디……. 그날 당장 제도를 뒤져가지고 작가를 찾아내신 모양 이어라. 지금 도착해가지고 전하께 끌려가…….”

“호, 호, 혹시…… 이미 죽고 아벨의 회상 장면에서 겨우 조연 1로 등 장하는가요?”

“아, 예! 맞지라! 설마 부인도 읽으 셨어라?”

나는 긴장으로 바짝 굳었다.

“화, 수, 풍, 토속성 전부 다루는 말 도 안 되는 능력자인 아벨의 넘치는 힘이 폭주해서 그걸 막아준다고 전하 가 대신 죽는…… 설마 그런 전개?”

록사의 실눈이 오랜만에 크게 뜨였다.

“부인도 읽으신 모양이지라?”

웬만해선 볼 수 없는 그의 당황한 얼굴에 나는 마지막으로 다시 물었다.

“그 소설…… 제목이 뭐예요?”

“……〈페르소나〉예.”

말도 안 돼.

나는 그 길로, 하데스에게 불려갔다는 작가의 얼굴을 보기 위해 그의 방으로 전력 질주하기 시작했다.

***

수치스러워.

수치스럽다.

대단히…….

집무실 책상에 엎어져 하릴없이 시간을 죽이고 있던 하데스가, 가만히일어나 서랍을 열었다.

〈페르소나—외전 증보판〉.

쾅!

“아오, 씨!!!”

이제는 책 제목만 봐도 온몸의 털이 다 곤두서는 기분이었다.

신경질적으로 서랍을 닫은 하데스 가 두 손을 모아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었다.

“후우우…….”

긴 한숨이 입술 새로 새어나왔다.

‘저 빌어먹을 책이…… 확실히 아이샤가 읽은 게 맞겠지?’

얼마나 충격적이었던가.

당연히 주인공일 줄로만 알았던 자신은 정확히 25페이지 만에 죽은 걸 로 나왔다.

그것도 ‘진짜’ 주인공이었던 아벨의 회상으로 대체되어, 채 한 페이지도 다 등장하지 못하고…….

머릿속에 오래전에 들은 아이샤의 목소리가 맴돌았다.

「제가 그 책의 주인공이었 던…….」

주인공이었던…….

아벨을!

“아니, 사람이 오해를 했으면 정정을 해줘야지!”

부끄러운 마음에 하데스는 애써 아이샤를 탓했다.

어제 끝내 변명을 하지 못하고 아이샤를 보낸 건 미안했지만, 부끄러움 과 함께 그녀가 야속하다는 생각도 들었으니 어쩔 수 없다.

어떤 의미로는 참 대단한 여자였다.

단 한 번도 조연이 되어본 적 없는 완벽했던 하데스 루버몬트의 인생을 처참하게 박살낸!

물론 이렇게까지 생각하는 건 조금 너무하다 싶으면서도, 빌어먹을 책을 쓴 건 아이샤가 아니라 그녀의 형제 라는 걸 알면서도, 하데스는 발끝까 지 오그라드는 수치감에 누구라도 탓 할 수밖에 없었다.

한참을 적응되지 않는 수치스러움에 몸부림치고 있을 때, 가볍게 방문을 두드리는 기척이 났다.

“전하, 말씀하신 자가 지금 방문했 습니다. 들여보낼까요?”

집사의 목소리에 하데스가 정신을 차리고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는 어제 새벽부터 사람을 풀어 제도를 뒤졌다.

바로 그 빌어먹을 책의 저자를 찾기 위해서.

“들여보내.”

곧 문이 열리고 집사의 뒤를 따라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 냈다.

30대 중후반 정도로 보이는 특색 없는 얼굴. 어째 어깨를 움츠리고 벌 벌 떠는 모습이 영 찌질해 보이는데, 걸친 옷이나 손가락마다 달고 있는 값비싼 보석반지가 안 어울렸다.

하고 있는 꼴이 척 봐도 최근에 돈맛을 본 졸부다.

“나가봐라.”

“예, 전하.”

집사가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방을 나서자, 혼자 남은 사내는 더 몸을 떨 다가 돌연 버닥에 바싹 엎드렸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전하!”

“……뭐?”

“모,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후…….”

혹시나 저자가 진짜 아이샤의 형제, 프로크레아토르가 아닐까 해서 얼굴이나 볼까 했더니, 벌벌 떠는 바보 같 은 모습이 역시나 그는 아닌 모양이 었다.

‘아쉽군.’

만나면 저 이상한 소설 전개를 왜 그딴 식으로 했냐고 멱살이라도 잡고 탈탈 털어줄 생각이었는데…….

“요즘 제도에서 유행한다는 책.”

“주, 죽을죄를……!”

“그만! 그거 당신이 쓴 거 맞나?”

“예, 예…….”

“어디서 보고 썼어? 혼자 생각해낸건가?”

“예?”

이마를 붙이고 엎드려 있던 사내가 놀라 얼굴을 들었다.

그는 흔들리는 눈빛으로 하데스를 바라보며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내가…… 25페이지 만에 죽더 군…….”

“저, 저, 전하. 그, 그게…….”

“그 뒤로는 등장도 안 했어. 주인공 은 내 아들이었고.”

“죄송합니다!”

“됐고, 어떻게 쓴 거지? 혼자 생각 한 건 아닐 거야.”

하데스의 날카로운 질문에, 사내는 벌벌 떨며 망설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 사실은…… 소설을 쓰는 내내 꿈을 꿨습니다.”

“꿈?”

“예. 집필하는 동안 매일매일, 꿈에 어떤 남자가 나왔습지요. 자기가 해 주는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 팔면 큰 돈을 만질 수 있을 거라면서…….”

“아하.”

“무명작가로 10년이라 먹고살 길이 요원해서…… 그대로 쓰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그만…….”

거의 울먹이듯 하는 말에, 하데스가 피곤한 표정으로 이마를 짚으며 한숨 쉬었다.

혹시 나 했는데 역시 나.

여전히 어딘가에 살아가고 있을 프로크레아토르가 손을 쓴 것이 틀림없 었다.

‘이제 이걸 어찌하면 좋나.’

고민하던 차였다.

멀리서부터 쿵쾅거리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하데스와 사내는 서로 놀라 흠칫했다.

이윽고 벌컥 열린 문 앞에는, 아이샤가 있었다.

그녀는 왜인지 촉촉이 젖은 눈으로 하데스가 아닌 사내를 한참 응시하다 가 소리쳤다.

“너니?!”

그리고는 말릴 새도 없이 달려와 사내를 덥석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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