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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의 엄마가 되어버렸다-186화 (186/221)

186화.

“아아아악!!!”

“아버지!”

절규하는 아이샤와 아벨의 목소리 가 터져 나왔다.

순간 중심을 잃은 하데스가 휘청거 리며 무릎 꿇었다.

만감이 교차했다.

당연히 죽일 수 있을 줄 알았던 가이오니아의 앞에서 한순간에 무릎 끓게 된 자신이 무엇을 더 할 수 있을 지.

왼팔로 검을 쥐는 게, 가능할까.

스윽.

그때, 가이오니아가 제 가슴팍에 꽂 혀 있던 산트크리아의 보검을 뽑아들 었다.

그는 아주 다정한 움직임으로, 직접 검 손잡이를 하데스의 왼손에 쥐여주었다.

의도를 가늠할 새도 없이, 천천히검날을 타고 올라온 가이오니아의 손 이 힘을 주어 그것을 부러뜨렸다.

챙—!

‘신을 믿지 않는 자’의 무기는, 그 이름값과 달리 맥없이 파괴되어 마른 땅 위로 처박혔다.

하데스의 입술 사이로 작게 헛웃음 이 터졌다.

눈앞에서 희망을 쥐여 줬다 부숴버 리는 행동.

과연, 자식들을 영원 속에 고통 받 게 했던 그다웠다.

[감히 한낱 인간이, 나를 죽이고 내자식을 훔칠 꿈을 꾸었느냐?]

“개자식……!”

하데스가 곧바로 부러진 검을 위협 적으로 휘둘렀으나 가이오니아에게 닿지 못했다.

가볍게 한 발 물러선 가이오니아가 다시금 팔을 변형시켰다.

긴 송곳처럼 변한 팔이 하데스의 복 부를 그대로 관통했다.

“헉!”

“아, 아, 아버…….”

놀란 아벨의 눈이 차마 눈물도 떨어뜨리지 못하고 휘둥그레졌다.

와중에도 다가오려는 아벨을, 하데스가 성한 팔로 저지하며 고개 저었다.

울컥, 말라붙은 입술 사이로 피가 터져 흘렀다.

“그만! 그만! 제발!”

다 쉬어버린 목소리로 아이샤가 목 놓아 울부짖었다. 연신 보호막 위로 내지르는 작은 주먹이 까져 피가 홀 렀다.

쾅, 쾅…….

그것으로도 부족한지 제 머리를 가 져다 박으며 아이샤는 연신 오열했다.

투명한 막 위로 깨진 머리에서 흐른 피가 묻어 흘렀다.

[…….]

무심히 아이샤를 바라보던 가이오니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가 턱짓하자, 그녀를 가로막고 있던 막이 사라졌다.

“전하!!!”

몇 번을 넘어질 듯 비틀거리며 위태 로운 걸음으로, 아이샤는 기다시피 달려와 무릎 끓은 하데스의 앞에 마주 앉았다.

“아, 흐…….”

잘린 오른팔과 복부에서 쉴 새 없이 피가 흘렀다. 제정신을 유지하기 어려운 듯, 하데스는 억지로 눈을 부릅 뜬 채였다.

차마 어느 한 곳에도 손을 가져다 댈 수가 없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아이샤는 꺽꺽 울음만 흘렸다.

“울지 마.”

“아, 어, 어떻, 어떻게…….”

검을 버린 하데스가 왼손으로 아이샤의 뺨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뻥 뚫린 복부의 상처 위로 아이샤의 두 손이 가 닿았다. 볼품없이 상처가 난 손이 금세 흥건히 피에 젖었다.

하데스를 살리는 것을 허락할 수 없 다는 뜻일까.

아무리 마력을 운용하려 해도 소용없었다. 지친 몸 안에 얼마 남지도 않 은 한 줌의 마력조차, 그녀의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아, 혹……. 아아, 제발…….”

하데스의 숨이 점차 거칠어지는 게 느껴졌다. 그의 얼굴이 아이샤의 어깨 위로 힘없이 처박혔다.

벌벌 떨리는 팔로 하데스의 몸을 끌 어안으며, 아이샤는 가이오니아의 무 심한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제발…….”

[살려주었으면 하느냐?]

가이오니아가 묻자, 아이샤는 오열하던 입을 꾹 다물고 미친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가만히 그녀를 내려다보던 가이오니아가 다시 물었다.

[대신 죽을 수 있느냐? 네 팔을 잘 라 내놓으라 하면, 그리할 것이냐?]

멀리서도 그의 매정한 질문이 잘 들 려왔다. 듣고 있던 미하일은 흠칫했다.

바라는 대답이 확실한 질문.

그러나 제정신이 아닌 아이샤가, 곧 이곧대로 그가 원하는 대답을 할 리 없었다.

“네. 네, 아버지. 네. 이 사람은 아 무 잘못이 없어요. 다 저 때문이잖아요. 제발 제게 벌을 주세요.”

끼어들려던 미하일이 낭패라는 표 정을 지으며 멈추어 섰다.

예상했던 대로, 가이오니아의 얼굴이 싸하게 굳었다.

이윽고 성큼 다가온 그가 손을 뻗어 하데스의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아이샤의 품에서 떨어진 몸이 힘없이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지며 피를 토했다.

“아!”

놀란 아이샤가 달려드는 순간, 그녀의 앞을 날카로운 가이오니아의 팔이 막았다.

[앞으로는 두 번 다시, 너 자신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존재를 만들지 말거 라.]

푸욱!

반쯤 정신을 잃은 채 누운 하데스의 허벅지 위로 가이오니아의 팔이 깊게 쑤셔 박혔다.

“아아악!”

놀란 아이샤가 소리 지르며 달려드는 순간, 가이오니아는 하데스의 허벅지를 관통한 팔을 무자비하게 비를 었다.

아이샤가 입을 틀어막은 채로 숨을 참았다.

말릴 수 없었다. 더욱 가이오니아를 자극할 뿐이 었다.

무얼 하든, 지금 자신의 행동은 가이오니아를 더 분노하게 만들고 있으 니까.

[너는 그저 나와, 네 형제들만을 사랑하거라. 나는, 그리고 네 형제들은, 결코 너를 괴롭게 하지 않고 결코 너의 희생을 원하지도 않으니.]

“개소리 좀…….”

어느새 다가온 미하일이 끼어들었다. 가이오니아의 시선이 그에게 향 했다.

“……작작, 해. 제발. 당신이 이 애를, 지금 이렇게 벼랑 끝까지 몰아붙였어. 눈이 있으면 좀 봐. 괴로워하고 있다고. 이렇게 만든 건 다른 누구도 아니라 당신이야. 정신 차려, 제발.”

[저것들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 다면 괴로워할 리 있었겠느냐.]

하데스와 아벨을 찬찬히 바라보던 가이오니아가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그는 지극히 무심한 표정으로 다시 한번 손에 힘을 줬다.

“아악! 그만!”

아이샤가 절규했다.

꿰뚫린 다리가 거의 너덜너덜해져 끊어질 듯 말듯 했다.

처참한 광경에 미하일은 입술을 물 며 시선을 비틀었고 아이샤는 입을 막은 채 터지려는 울음을 참았다.

[나를 탓하지마라, 아이들아. 내 잘 못은 오직, 너희가 괴로워할 것을 생 각지 못하고 너희의 정신을 어지럽게 하는 존재들을 만들어준 것뿐이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아이샤는, 그저 생각하는 것을 포기했다.

문득 멍해진 시야에 하데스가 보였다.

만신창이가 된 몸이 이제는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모양인지, 찌푸림 하나 없는 그의 얼굴이 멍하니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울컥, 울음이 쏟아지는 입을 틀어막 은 아이샤가 힘없이 고개를 떨궜다.

어쩌면 처음부터…….

터무니없는, 바람이었는지도 모른다.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가이오니아의 발치에 머리를 조아 리고 손을 모아 빌면, 하데스의 목숨쯤은 충분히 구걸해볼 수 있을 거라 고.

대체 왜 그런 기대를 했을까.

아이샤는 인정했다. 잘 안다고 생각 했던 가이오니아를, 아이샤는 아주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처음부터 단 한 순간도 그를 제대로 이해한 적 없었다. 이해할 수 가 없는 존재이니까.

신의 생각은 인간들의 그것과는 한참 동떨어져 있어서, 이해해보려는 노력도 번번이 부질없었다.

모든 것은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었 다—니.

“아…….”

아이샤가 하데스를 향해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의 왼팔도 힘없이 기울 며 다가온 아이샤의 손을 붙잡았다.

무릎으로 기다시피 다가간 아이샤 가 엉망이 된 하데스를 힘겹게 끌어안았다.

“미안.”

언젠가 들었던 적이 있는 사과. 아이샤의 입술이 허탈하게 기울어졌다.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예요. 더, 말하지 말아요.”

“그대, 를, 내가…….”

“괜찮아. 나는, 나는 괜찮아요.”

울컥, 다시금 하데스가 붉은 피를 토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아이샤가 가만 히 하데스의 이마에 제 이마를 가져 다붙였다.

얼마 남지 않은 가느다란 숨을 겨우 느낄 수 있었다.

“약속, 했는데. 내가…… 그대를, 자, 헉, 자유롭게, 해, 해주겠다고, 그 랬…….”

“흐……. 죽, 죽지 마. 제발. 죽지 말아요.”

“어떡, 하지……. 그대, 그대는 또, 계속, 큭…….”

괴로운 생의 형벌이 싫어 ‘죽여 달 라’ 부탁했지만, 언젠가부터 그것은 의미 없는 말뿐이었다.

살고 싶었고 아마 그 이유는 당신 때문이었을 것이다.

겨우 찾은 삶의 의미가 이렇게 무너 져 내리고 말았는데, 어떻게 온전히 살아갈 수 있을까.

이제부터는 당신 없이 홀로 숨 쉬는 것조차 죄스러울 텐데.

“……미안해.”

끝끝내 떨어진 마지막 인사까지, 잔인할 정도로 똑같은 미래.

아이샤는 축 늘어진 하데스의 몸을 끌어안고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텅 비어버린 공허한 표정.

가만히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던 가이오니아의 미간이 좁혀졌다.

가슴이 시릴 정도로 사무치는 낯선 느낌.

아마도 자신이 만든, 자신이 가장 사랑해 마지않았던 자식의 감정이 고 스란히 전염되어온 것일 터였다.

[돌아가자꾸나.]

뚫린 심장에서 새어나온 마력은 이 미 전부 고갈되었지만—, 시간이 흐르 면 다시 재생될 것이다.

가이오니아는 프로크레아토르가 관 여하여 재창조한 자신의 ‘첫 세계’를 파괴하고, 다시 행복했던 과거로 돌 아가고 싶었다.

아직 이곳에 남아있는 제누스, 그리고 이그니스와 함께…….

[이제 그 영혼은 다시 환생하지 않을 것이다. 그 영혼뿐 아니라 너와 이그니스를 제외한 이 세계의 생명 모 두.]

아이샤가 힘겹게 고개를 들어 가이오니아를 응시했다.

감정이 없이 비어버린 그녀의 눈을 마주하는 것이 괴로웠다.

이토록 슬펐다. 슬퍼하는 자식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다만 네가 괴로워하며 형벌이라 여겼던 그 삶도 끝이 나는 것이다. 마음 편하지 않으냐.]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 달래보아도 그녀의 공허한 표정은 달라 지지 않았다.

마치 처음, 인간을 만들었을 때.

아무 감정도 주지 않아 그저 가이오니아가 바라는 대로 대답하고, 행동했던 무지한 진흙 인간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가이오니아는 분노로 외쳤다.

[어째서 행복해하지 않느냐? 내가 너를 사랑하고 너를 위해 무엇이든 해줄 수 있는데 어찌 기뻐하지를 않 아. 너에게 그 존재가 무엇이기에?]

아직 육체에 남아 맴도는 영혼의 기 운이 거슬렸다.

타오를 듯 일렁거리는 붉은 오오라 가 여전히 식어가는 육체를 끌어안은 아이샤의 주변을 맴돌았다.

가이오니아가 아예 끝장을 내야겠 다고 생각하며 하데스의 곁으로 한 발자국 더 다가섰을 때.

아이샤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살려주세요…….”

[…….]

“제게 내리신 벌이 아니라도 영원을 감당하며 살게요. 그러니까 이 사람을…… 살려주세요.”

[뭐라고?]

형벌의 굴레에 갇힌 이후로, 그녀는 단 한 번도 빌지 않은 적 없었다.

괴로운 삶을 그만 끝내줄 것을.

한데 지금은, 평생 자식의 영혼을 죽이는 고통의 삶을 겪어도 괜찮다 말하고 있었다.

[모든 것을 잊으면 그립지도 않을 것이다. 생각나지도 않을 거야. 그저 너희들은 이전처럼…….]

“그냥 죽여.”

미하일의 냉랭한 목소리가 끼어들 었다.

“이 애의 부탁을 들어줄 생각이 없 다면 그냥 다 같이 죽여. 우리는 당신을 가장 증오해. 당신의 곁에서 인형처럼 사는 삶은 죽음보다 더 무가치 할 거야. 그러니까 그냥 죽여.”

“시, 싫어…….”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미하일의 목소리 뒤로, 겁에 질려 벌벌 떠는 아이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아이샤와 미하일의 고개가 천천히 움직여 누군가에게 향했다.

데보라였다.

그녀는 병적으로 손을 떨며 원망스 러운 눈동자로 미하일을 바라보았다.

“나는, 나는 죽기 싫어요. 왜 나를 여기로 데려온 거야.”

울먹이던 데보라가 작은 몸으로 기 어가 가이오니아의 발치를 붙들었다.

“아, 아버지. 저는 죽기 싫어요. 제 발 저는, 저만은 살려주세요. 저는 아 무것도 몰랐어요. 제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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