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의 엄마가 되어버렸다-185화 (185/221)

185화.

처절하게 울부짖는 아이샤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가이오니아는 허탈함에 웃음 지 었다.

[이곳에서의 죽음이 곧 소멸이라는 것을 몰랐느냐.]

“…….”

[차라리 몰랐다고 말해라.]

“아버지, 제발…….”

[차라리! 몰랐다고 말하라지 않느 냐!]

분노한 가이오니아의 주변으로 새 어나오던 마력이 날뛰었다.

누구의 것인지 모를 피로 얼룩진 금 빛 머리카락이 나부끼고 핏발 선 눈 동자가 요동쳤다.

[알면서도 뛰어들었느냐? 정말로 죽어 사라지고 싶어서? 누구를 위 해?]

“아버지…….”

공격을 취소하기 전까지는 가이오니야, 그 자신조차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다.

아이샤는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 생 각하고 뛰어든 게 아니다.

그저 다른 인간을 막아서겠다는 일 념으로…….

[어리석은, 어리석은 것…….]

무릎을 굽힌 가이오니아가 그녀의 턱을 잡아 올려 억지로 눈을 맞췄다.

[대답해보아라. 내가 어찌하길 바라 느냐?]

“저는, 저, 저 사람을…….”

[내가.]

“…….”

[듣기 바라는 대답을 해라.」

터지는 울음을 억지로 참는 아이샤의 입술이 벌벌 떨렸다.

하데스의 목숨을 구걸하는 것은, 가이오니아가 바라는 대답이 아닐 테다.

그렇지만 그것 말고는 바랄 것도, 할 말도 없었다.

질끈 감은 눈 아래로 흐른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저 사람을 살려주세요…….”

[내가…….]

“…….”

[아주 큰, 실수를 했구나.]

아이샤의 턱을 붙잡고 있던 손을 놓 고 가이오니아가 힘없이 몸을 일으켰다.

어느새 무심한 눈빛으로 되돌아온 그가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처음부터 너희에게 허락해서는 안 됐다. 너희가 목숨보다 소중하게 생 각하는 존재들을…….]

“…….”

[만들어줘서는 안 됐어.]

“아버지…….”

[처음으로 돌아가자꾸나. 저 아이에게 내린 벌이 너를 괴롭게 했다면 그 만두자.]

한참 아래에 있는 아벨을 내려다보 며 가이오니아가 무심히 말했다.

지긋지긋한 형벌의 굴레를 풀어주 겠다는 말이었지만, 아이샤는 오히려 놀라 벌벌 떨었다.

“아, 아버지…….”

[원한다면 네 괴로운 기억도 다 지 워주마. 그리고 처음으로 돌아가자.]

“아버지, 안 돼요. 이러지, 이러지 마세요.”

내 무릎을 베고 낮잠 자는 걸 좋아하지 않았느냐. 이그니스는 잡지도 못할 사슴을 쫓다가 흙투성이 가 되어 돌아오곤 했지』회상에 빠져 중얼거리던 가이오니아는, 곧 지친 표정이 되어 제 앞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아이샤를 안아들 었다.

날개 잘린 새처럼 무기력하게 가이오니아의 품에 안긴 아이샤의 눈에는 공포가 어려 있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아 두려웠다.

[내가 정말로,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이곳에 머물렀다고 생각하느냐.]

“…….”

[그저 너희를 사랑했기 때문에, 하 고 싶은 대로 하도록 두었을 뿐이다. 한데 그것도 이제는 지쳤단다.]

차마 눈을 감지도 못하고 공포로 떨 고 있는 아이샤의 이마 위에, 가이오니아가 짧게 입을 맞췄다.

[딸아. 내 사랑하는 제누스.]

“…….”

[다시 돌아가자꾸나 너희를 괴롭게 하는 쓸모없는 존재들은 다 지워버리 고.」

“아……. 제, 발…….”

가이오니아가 눈을 한 번 감았다 뜨 자, 둘은 어느새 미하일의 앞으로 와 있었다.

[소풍은 이제 그만 끝내자꾸나.]

조심히 아이샤를 내려둔 가이오니아가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아버지!”

“뭐 하는 겁니까?”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미하일이 물 었지만, 가이오니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아이샤와 미하일의 주변으로 투명한 결계가 생겨났다. 얼마 남지 않은 마력으로 가이오니아가 만들어 낸 보호막이었다.

“아버지! 안 돼요! 제발!”

쾅!

놀란 아이샤가 손을 뻗었지만, 투명 한 벽 위로 내질러진 주먹은 부질없이 막히고 말았다.

정확히 둘만을 보호하듯 감싼 결계 와, 미친 듯 소리치며 발악하는 아이샤.

미하일은 그제야, 가이오니아가 무 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모두 없애버리 려는 거였다.

지금 이 자리에 살아있는 하데스와 아벨, 아자르, 데보라만이 아니라…….

수많은 영혼들이 존재하는 오르쿠스, 그리고 그 위에, 가이오니야 그자신이 만들었던 세계까지 전부.

“미친…….”

어쩌면 계획이 어긋날지도 모른다.

프로크레아토르가 가이오니아를 봉 인하고 재창조했던 이 ‘세계’가 완전 히 파괴된다면…….

프로크레아토르가 개입해 흘러가고 있었던 모든 것이 어긋나게 된다면.

기회는 다시없을지도 모른다.

“젠장!!!”

광! 쾅!

부질없이 몇 번 결계를 두드리던 미하일의 눈이, 결계 밖의 데보라를 다 급하게 쫓았다.

데보라도, 하데스도 사라지고 나면 모든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 것이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

아이샤가 가이오니아의 앞을 막아 섬으로써, 그의 멈춰있던 감정에 균 열을 낸 게 틀림없었다.

“이게…….”

미하일이 허탈한 눈으로 가이오니아를 응시했다.

푸욱!

어느새 가이오니아의 앞으로 달려 간 하데스가 그의 복부에 검을 찔러 넣었다.

하데스는 반사적으로 가이오니아가 심장을 보호할 거라 예상했고, 그 예 상은 틀리지 않았다.

남은 마력을 모아 갑옷 같은 피부를 덮어씌운 가슴팍 대신, 하데스는 무 방비한 복부에 치명상을 남기는 데 성공했다.

코앞에서 가이오니아를 마주하며 하데스가 보란 듯 입술을 기울였다.

그러나 가이오니아의 무심한 얼굴에는 당황도, 고통도 떠오르지 않았다.

[대체 네가 무엇이기에…….]

그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 개를 기울이며 중얼거 렸다.

이윽고 창백한 손이 천천히 올라와 제 배에 꽂힌 검을 쥐었다.

보란 듯, 하데스는 그의 복부를 관 통한 검을 무자비하게 한 번 틀어 헤 집었다.

한데도 가이오니아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중얼거렸다.

[……나의 제누스를 이리 괴롭게만드는 것인지.]

“뒈질 때가 되니 책임 전가인가. 그 걸로 네놈 마음이 편해진다면 그렇게 생각해라.”

가이오니아의심장에서 새어나오던 마력은 이제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그의 공격을 막아줄 아이샤의 무효 화는 사라졌지만, 하데스는 상관없다 고 생각했다.

심장의 상태로 봐서는 제대로 된 공격 마법을 구사할 마력도 남지 않은 듯했으니까.

지그시 눈을 감은 가이오니아가 마지막으로 마력을 방줄하려는 것이 느 껴졌다.

쑥, 검을 뽑아낸 하데스가 몸을 물 리며 방어를 준비했다.

하지만…….

‘뭐지?’

자신을 겨냥하고 공격 마법을 시전 할 줄 알았던 가이오니아는, 왜인지 정신을 집중하고 멍하니 허공을 응시했다.

그의 몸 주변으로 생겨난 금빛의 오 오라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무슨…….”

하데스가 당황해 중얼거 렸다.

아이사와 미하일을 보호하는 막을 쳐둔 것이나,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공허한 가이오니아의 표정.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가이오니아가 ‘최후의’ 무언가를 준 비하고 있다는 걸.

“아벨!”

하데스는 본능적으로 뒤에 서 있던 아벨을 향해 외쳤다.

가이오니아의 마력이 발동되려는 순간 물약의 효능이 다했는지, 가이오니아의 마력에 감응한 것인지 한순간 그가 본모습으로 돌아왔기 때문이 었다.

놀라 허둥거리는 아벨을 향해 달려 간 하데스가 그를 감싸 안았다.

“안돼…….”

동시에, 미하일의 힘 빠진 목소리가 결계 안을 울렸다.

가이오니아의심장 부근에서부터 뻗어져 나온 빛은 원을 그리며 점차 커져 공간을 삼켜갔다.

하데스와 아벨,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고 있던 데보라, 겨우 숨만 붙어 살 아있는 아자르, 결계 안의 아이샤와 미하일까지…….

공간은 소리를 잃었고 귓가에는 알수 없는 이명이 맴돌았다.

시야가 뿌옇게 사그라지던 그 순간.

옆에서 느껴지는 강한 마력에 미하일이 흠칫 놀라 돌아보았다.

“제누스?”

뺨에 눈물이 말라붙은 안쓰러운 얼굴은 여전했지만, 그녀의 표정만큼은 어째서인지 위화감이 들었다.

“왜 이래.”

멍하니 뜬 아이샤의 푸른 눈동자가 왜인지 신비롭게 반짝이는 듯한 착각 이 들었다.

꼭 정신을 빼앗기고 조종당하는 사람처럼, 아이샤는 멍하니 표정을 잃 은 채였다.

그리고…….

그녀로부터 뻗어 나온 백색의 빛이 순식간에 빠른 속도로 그들이 있던 공간을 집어삼켰다.

가이오니아의 마력을 상쇄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힘이었다.

“이게 무슨…….”

맞물린 두 힘이 충돌하면서 들려왔던 커다란 이명이 끊긴 순간.

미하일은 번쩍 고개를 들었다.

가이오니아의 놀란 눈이 아이샤에게 향해 있었다.

‘대체 무슨 능력이지?’

미하일은 언젠가 보았던 미래를, 그 순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지옥처럼 보였던 세계를 한순간에 살려놓았던 아이샤의 능력은, 자신이 알고 있는 상식의 범위에서 벗어나 있었다.

파괴를 막고 생명을 살리는 그 이능 은 분명 백속성에서 비롯되었을 테지만, 미하일이 알고 있는 백속성의 힘 은 이런 종류가 아니 었다.

아이샤의 마력에 감응한 육체는 기 운을 회복하고 생기를 북돋웠다.

멀리, 아자르의 곁을 지키고 있던 데보라도 놀랐다.

완전히는 아니었지만 거의 죽음을 앞두고 있던 아자르 또한 정신을 차 리고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아이야, 대체…….]

“허억!”

“괜찮아?”

곧 멍해져 있던 아이샤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휘청거렸다. 미하일이 다급 히 그녀를 부축했다.

“뭘 한 거야?”

“뭐?”

당황스러운 표정의 아이샤는 방금 자신이 뭘 했는지 기억이 없는 사람 처럼 굴었다.

“네가 방금…….”

“아!”

의아할 새도 없이, 아이샤의 놀란 시선을 따라 미하일이 고개를 돌렸다.

틈을 놓치지 않은 하데스가 다시 가이오니아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그의 검이 날카롭게 가이오니아의 가슴을 노렸고, 꿰뚫었다.

본능적으로 몸을 비틀었기 때문인 지, 이번에도 정확히 심장을 뚫지 못한 검은 아슬아슬하게 빗나가 있었다.

쉬이이익—!

[아.]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이 가이오니아의 어깨를 관통했다. 연이어 두 발 이 더 날아와 꽂혔다.

겨우 활만 잡을 수 있을 정도로 회 복된 몸이었지만, 끝까지 하데스를 돕기 위해 일어난 아자르의 화살이었다.

가까이서 가이오니아의 얼굴을 마 주한 하데스가 웃었다.

“뭔 짓거리를 하려고 했는지는 모 르겠지만, 이제 발악은 끝났다.”

하데스가 검을 쥔 손에 힘을 실었다.

그대로 옆으로 긋는 순간, 가이오니아는 죽게 될 것이다.

한 손으로 날을 쥐고 버티는 가이오니아와 하데스의 힘겨루기가 이어졌다.

‘젠장.’

아직까지 이런 힘이 남아있다는 게, 하데스는 조금 놀라웠다.

그때였다.

작아진 몸으로 가이오니아의 등 뒤에 서 있던 아벨이, 버거울 만큼 큰 하데스의 검을 낮게 휘둘렀다.

정확히 가이오니아의 발목을 겨냥해 휘두른 검은, 한순간 그를 휘청하 게 만들었다.

‘기회다.’

하데스가 다시 한번 검을 쥔 손에 힘을 실은, 그 순간이었다.

그의 시야에 거 대한 칼처럼 변한 가이오니아의 오른팔이 들어왔다.

하늘을 향해 번뜩이며 치켜 올라간 흉악한 생김새의 그것.

전사의 본능이 경고음을 울렸다.

그것은, 하데스를 겨냥하기 위해 만 들어진 무기가 아니 었다.

아마도…….

“아벨! 피해라!!!”

작고 어려진 아벨이 무사히 저 공격을 피할 확률 따위 없다는 걸, 하데스는 찰나의 순간에 본능적으로 감지했다.

가이오니아가 몸을 틂과 동시에 하데스는 검을 쥔 손을 놓았고, 재빨리 발을 굴러 내려치는 그의 공격을 몸으로 막았다.

“아…….”

하데스의 오른팔 위로 검처럼 변한 가이오니아의 날카로운 손이 내려쳐 졌다.

짧은 순간, 하데스는 가이오니아의 금빛 동공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전쟁터에서 만난 수많은 상대의 얼굴, 그 마지막 표정과 같았다.

결정적인 일격을 당했을 때, 자신의 최후를 예감하는…….

그런 표정.

“아버지!!!”

아벨의 놀란 목소리가 주변을 쩌렁 쩌렁 메웠고, 동시에 가이오니아는 1 초의 망설임도 없이 손에 힘을 주었다.

서걱.

오른팔이 맥없이 잘려나갔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