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화.
“아자…….”
[윽.]
하데스가 미처 그의 이름을 다 부르 기도 전에, 가이오니아의 입에서 묵 직한 신음이 터 졌다.
놀란 하데스가 곧바로 그를 돌아보 았다.
‘무슨 일이지?’
날렵한 생김새의 검이, 정확히 가이오니아의심장을 관통해 있었다.
쉽게 뚫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던지라 하데스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가이오니아의심장을 뚫고 나온 검 은, 그의 가슴을 한 번 헤집고 빠져나 갔다.
대번에 신의심장을 찌른 장본인은…….
“아벨.”
가이오니아가 천천히 몸을 틂과 동시에 하데스의 시야에도 들어온 그는, 아벨이었다.
아벨은 재빨리 다섯 걸음 정도 뒤로 물러섰고, 가이오니아는 틈을 놓치지 않고 손을 휘둘렀다.
허공에서 만들어진 날카로운 화염의 칼날이 정확히 아벨을 조준하며 날아갔다.
“아벨!”
하데스가 다급히 소리 질렀다.
푸쉬이이—!
그러나 곧바로 아벨을 태워버릴 줄 알았던 가이오니아의 공격은, 그에게닿기 전에 산화되어 사라졌다.
‘무효화?’
아니, 그렇게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가이오니아가 직접 공격을 취소한 듯했다.
왜?
이유는 바로 알 수 있었다.
어느새 아벨의 앞을 가로막고 선 아이샤…….
근처에 있었던 듯한 그녀가 달려들 어 아벨을 막아선 모양이었다.
두려운 눈으로도 똑바로 가이오니아를 응시하는 아이샤의 얼굴이, 멀 리서도 하데스의 눈에 선명히 잡혀들 었다.
「설사 그 아이들이 나를 배신하고 가슴 아프게 하더라도, 나는 그 아이 들을 고통스럽게 할 생각이 없지.」
아벨에게는 가차 없이 발동하던 공격을, 아이샤가 다칠까 찰나에 취소시킨 것만 봐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하데스는 혀를 내둘렀다.
‘비뚤어진 놈이다. 정말로 심각하게.’
자식들이 털끝 하나 다치는 걸 용납하지 못하는 자가, 자신이 내린 ‘형 벌’이 자식들을 가장 고통스럽게 함 은 어찌 모르는 것인가?
뭐가 됐든, 인간인 하데스의 기준에 서는 평생 가도 이해할 수 없을 가이오니아의 속내였다.
“오랜만입니다, 아버지.”
문득 귓가에 감겨온 익숙한 목소리에 하데스가 곧바로 옆을 돌아보았다.
방긋 웃는 얼굴로 하데스의 옆에 와 선 것은, 미하일이었다.
부들부들 떨고 있는 데보라를 안은 채로, 그는 지금의 상황과는 전혀 어 울리지 않는 무해한 웃음을 짓고 있 었다.
어떤 의미로는 참 한결 같은 인간이 라고, 하데스는 생각했다.
[이그니스.]
가이오니아가 살짝 고개만 틀어 미하일을 바라보았다.
“잘 지내셨습니까? 얼굴이 훤하신 걸 보니 잘 지내신 모양이네요.”
[…….]
“심장은 안타깝게 되었습니다.”
아벨의 공격에 뚫린 가이오니아의 가슴에서는, 무언가가 쉴 새 없이 홀 러내리고 있었다.
그것은 록사가 발동하는 마력을 시 각화할 때 보이곤 하는 오오라와도 비슷했다.
아니, 비슷한 것이 아니라 분명히 가이오니아의 마력이었다.
그의 무한한 마력의 결정체였던 심 장이 뚫렸으니, 저것은 그곳에서부터 새어나오고 있는 ‘힘’일 터.
“아, 오해는 마시길. 당연히 ‘신을 믿지 않는 자’의 손에 뚫리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즉 사였을 텐데.”
미하일은 안타깝다는 듯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이그니스.]
“당신이 붙여준 그 더러운 이름으 로는 더 이상 불리고 싶지 않군요. 전하, 가능하시다면 저 주둥이부터 베 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는 옆에 서 있던 하데스를 돌아보 며 웃는 얼굴로 부탁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하데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감사합니다.”
활짝 웃으며 인사한 미하일이 조금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덧붙였다.
“그런데 이렇게 대책 없이 움직이 시면 어떡합니까. 부인께서 함께 가 자고 하셨을 텐데도 이렇게 막무가내 로 움직이시다니…….”
“왜 왔어? 뭔 도움이 된다고.”
“아니, 가이오니아에게 홈집 하나 못 내고 계셨던 분이 할 말이 맞는 지?”
“시끄럽고. 어떻게 들어왔지?”
“어떻게 들어오긴요? 아직 환생문 이 열려있기에 순간이동으로 들어왔 지요. 풍속성 능력자가 둘이나 되지 않습니까.”
“젠장. 한정 없이 들어오라고 할 셈 인가. 언제까지 열어둘 건지.”
“지금은 닫혔습니다. 다시 말해 죽 거나, 죽이거나. 우리는 둘 중에 하나를 이루지 못하면 여기서 나갈 수 없 지요.”
미하일의 날카로운 눈이 가이오니아에게 향했다.
그는 어느새 하데스와 미하일에게는 등을 내보인 채, 아이샤를 마주 보 고 있었다.
미하일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한 번 맞붙어봤으니 느끼셨겠지요. 그 무기로는 가이오니아에게 흠 집 하나 낼 수 없습니다. 방금 공자님 이 가이오니아의심장을 뚫은, 저 ‘신을 믿지 않는 자들의 무기’로만 상처를 낼수 있어요.”
“뭐?”
놀란 하데스가 제 손에 들린 검을 내려다보았다.
아벨이 들고 있는 건 산트크리아의 보검.
아이샤가 일전에 선물로 보내왔던 거였다. 저것이 가이오니아에게 흠집을 낼 수 있는 무기였다니.
신을 믿지 않는 자의 무기라고 해 서, 제 손에 쥔 무기라 직역했던 게 실수였다.
“멍청했군.”
“네, 그럼요. 사전 조사도 없이 무 식하게 뛰어드신 점은 나중에 탓하겠 습니다. 일단은 가이오니아의 힘을 빼놔야 해요. 마력의 원천에 구멍이 뚫렸으니 이제 그는 무한정으로 힘을 쓸수 없을겁니다.”
“…….”
“그리고 느끼고 계시겠지만, 가이오니아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 니다. 저도 이곳까지 오면서 확신하 게 된 사실이지만요.”
미하일의 말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하데스는 가이오니아의 뒷모 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참으로 황당하지만…….”
오랜 시간을 돌아, 자신이 만든 사랑하는 ‘자식’을 마주한 가이오니아의 뒷모습은 퍽 쓸쓸해보였다.
“……세 명의 자식들에게는 우스울 정도로 관대하거든요.”
***
마지막으로 제누스를 본 것이 언제였던지.
기억도 안 나는 시간을 돌아 자식과 마주한 가이오니아는, 문득 가슴 쓰 라림을 느꼈다.
그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심장이 꿰뚫렸기 때문인지, 알 수 없는 감정이 요동치듯 자신을 괴롭혀서인지는…….
[왜 우느냐?]
천천히 올라간 가이오니아의 손이 아이샤의 뺨에 흐른 눈물을 스치듯이 닦아냈다.
“아버지.”
[그래, 아이야.]
“제가…… 잘못했어요.”
[…….]
“그때, 그때 거짓말을 했어요. 그때는……. 아이를 살리고 싶은 마음에, 눈에 보이는 게 없었어요.”
과거를 떠올리던 가이오니아의 눈이 천천히 감겼다.
다시 눈을 떴을 때에도, 아이샤는 여전히 울고 있었다.
가이오니아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 정으로 말했다.
[그게 어떻게 너의 잘못이겠느냐.]
“아니예요. 제 잘못이에요. 이 아이 에게는 아무런 죄가 없어요.”
왜.
바보 같은 자식들은 하나같이 그들 에게 죄가 없다고 말하는 것인지.
「가이오니아여, 슬프지 않으신가 요? 연인을 위해,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내버릴 준비가 되어있는 저 어리석은 아이들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당신의 운명이?」
가이오니아는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던, 갈라진 혀끝을 가진 마수 한 마리를 떠올렸다.
솜니페르…….
지금은 제 미움을 사 끔찍한 모습이 되어버린 하찮은 미물이었다.
「이그니스를 겪어보시고도, 아직까지 당신의 자식들을 믿으시는군요. 당신이 퍼붓는 그 무한한 사랑을 저들이 조금이나마 감사하게 생각할까 요?」
「당신이 준 목숨도, 마력도, 무한 한 생명력도 부질없답니다. 저들에게는 한순간에 내버릴 수 있는 소모적 인 가치에 불과해요. 내기 하나 하실 래요?」
피조물에 지나지 않은 하찮은 마수 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가이오니아는 다 알았다.
달콤한 독. 그저 흘려듣고 말면 되 었을 텐데…….
제누스의 자식을 아프게 만든 것은 일종의 시험이었다.
가이오니아는 이그니스와 달리, 제누스만큼은 냉정하길 바랐다. 어떤 상황에서도 그녀 자신을 우선시하길 기대했다.
「아이야, 제누스야. 네 자식을 살 리고 싶으냐? 만약 가이오니아께서 주신 네 육체를 버릴 수 있다면 그리 할 것이냐?」
그러나 우습게도, 제누스는 한낱 미물의 속삭임에 주저 없이 고개를 끄 덕였다.
「고통스러워도 소리를 내지 말렴. 네 손으로 직접 네 팔을 잘라 열흘 밤낮으로 약을 지어 자식에게 먹이거 라. 허면 네 자식은 씻은 듯 나을 테 니.」
열흘째 되던 날, 가이오니아는 스스 로 팔을 자른 제누스에게 찾아가 물 었다.
[팔이 왜 그렇게 되었느냐. 내 너를 고통스럽게 한 그것을 찾아내 영원토 록 지옥 불구덩이에서 몸부림치게 하리라.]
눈에 띄게 두려워하던 제누스는, 가이오니아가 모든 것을 내다보고 있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하고 거짓을 고 했다.
숲에서 만난 마수에게 팔을 내주었 다는 터무니없는 거짓말이라도 해야 했을 정도로, 제누스는 두려워하고 있었다.
혹여나 가이오니아의 노여움이 자 식에게 미칠까 싶은 마음에.
「어찌 저리들 어리석을까요. 연인 과 자식이 무어라고, 저렇게 상처를 받으면서…….」
「제누스의 자식은 어떨까요? 제 목숨이 더 중할 테니, 결국은 모른 척어미의 살을 씹어 삼키겠지요.」
그러지 않기를 바랐다.
적어도 제누스의 자식만은, 그녀가 쏟는 애정에 감사할 줄 아는 영혼이 길 바랐다.
가이오니아는 제누스 몰래 그녀의 자식을 찾아가 말했다.
[고통스러우냐. 그렇다면 모른 척 먹어라. 네 어미의 피와 살로 지은 약이라도 괜찮다면.]
아이는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가이오니아의 말에 동요했다. 갈등하는 아이의 표정을 보며 가이오니아는 혹시나, 하고 기대했다.
[너를 위해 기꺼이 팔을 잘라줄 수 있는 어미를, 너는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느냐?]
[적어도 네 어미는 절대, 너의 피를 취하며 고통에서 벗어나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너도 그럴 수 있느냐.]
가이오니아는 가만히 지켜보았다.
고통에 몸부림치던 아이를.
참지 못하고, 결국 내밀어진 그것을 모른 척 들이켜던 아이를.
[저렇게도…… 얄팍한 존재들을.]
가이오니아는 제누스를 이해할 수 없었다.
정작 자신은, 그녀를 위해서라면 목 숨도 내어줄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도.
그녀가 그녀의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것만은 용납할 수 없었다.
처음부터 약 따위가 아니었으니 제누스의 자식이 무사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가이오니아의 노여움을 사고만 아이는 극한의 고통에 몸부림치며 괴로워했다.
「아버지! 제발…….」
“아버지, 제발…….”
짧은 상념 속에서, 울부짖던 제누스 와 아이샤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그만 저를, 용서해, 주세요…….”
[네 잘못이…….]
휙!
눈물 흘리는 아이샤의 얼굴을 향해 가이오니아가 손을 뻗던 순간이었다.
일순 묵직한 검 한 자루가 날아와 둘의 사이를 가르고 꽂혔다.
놀라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선 아이샤의 앞을, 어느새 다가온 하데스가 가 로막고 섰다.
그는 가이오니아를 똑바로 쳐다보 며 말했다.
“네 잘못이 아니다. 너를 슬프게 한 자식새끼의 잘못이지……라고, 지껄 이려고 했나?”
[…….]
“왜.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 줘서 놀란 표정인데.”
하데스는 뒤에 선 아벨의 손에서 검을 받아 들고는, 거만하게 턱을 올리 며 그것을 이리저리 살폈다.
“그렇다면 네놈에게 용서를 빌어야 할 건 내 아내가 아니라 아들이겠 네.”
웃음기가 어려 있던 하데스의 표정 이 일순 싸하게 굳었다.
그는 검을 바로 들며 냉정하게 중얼거렸다.
“그런데 난 내 아들에게 아무에게 나 머리 조아리지 말라고 가르쳤으니 안 돼.”